⊙ “자유와 민주주의 강조하던 윤석열, 의료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반대”
⊙ “의사 수가 적다고 의사가 부족한 것 아니다”
⊙ “고의·중과실 아닌 ‘정부의 건강 보호 시스템 내에서 일어난 행위’로 피해를 본 환자에 대한 배상은 국가·공공기관이 져야”
⊙ “의료계에 대한 공격 집중되는 전쟁 상황… 위기 돌파 능력 있는 리더 필요”
朱秀虎
1958년생.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 외과 전문의, 前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 겸 대변인, 제35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現 미래의료포럼 대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
⊙ “의사 수가 적다고 의사가 부족한 것 아니다”
⊙ “고의·중과실 아닌 ‘정부의 건강 보호 시스템 내에서 일어난 행위’로 피해를 본 환자에 대한 배상은 국가·공공기관이 져야”
⊙ “의료계에 대한 공격 집중되는 전쟁 상황… 위기 돌파 능력 있는 리더 필요”
朱秀虎
1958년생.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 외과 전문의, 前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 겸 대변인, 제35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現 미래의료포럼 대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린 비상계엄령의 일부분이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을 주창하고 나선 이후 1년 가까이 정부와 대치해 온 전공의들을 비롯한 의사들, 의대생들은 격분했다. ‘의료계엄’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들은 지금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집회와 시위에 앞장서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존속이 경각에 달린 지금, 윤 정부의 ‘의료개혁안’ 역시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서툴고 거친 추진 방식은 문제였지만, 의대 증원 자체는 필요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또 건강보험 재정, 저수가(低酬價), 지역 의료 붕괴,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수급 등 ‘의료개혁’ 논란 속에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 여러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아마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문제들은 두고두고 정책 과제로 남을 것이다. 주수호(朱秀虎·67)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만난 것도 이래서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의약분업에 맞서 의권쟁취투쟁위원회 대변인 겸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겸 공보이사, 대한의사협회 회장(제35대) 등을 맡아 의료 현안들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 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나기 전 주수호 전 회장은 “인터뷰를 위한 사전(事前) 질문지는 보내지 않아도 된다”면서 “어떤 현안에 대해서든, 현장에서 바로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12월 6일 주수호 회장을 만났다.
“의사들, 하나의 가치로 결속하지 못해”
— 정말 질문지를 안 보내드렸는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사전 질문지를 보고 답을 준비하는 사람은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 ‘의료인 처단’ 내용이 담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정말 당황했습니다. 밤중에 채널을 돌려가며 확인했지만, 정규 방송에서는 아무 소식도 나오지 않았어요. 계엄령을 선포했는데, 정규 방송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이상하더군요. 2시간 뒤에야 모든 게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부의 혼란스러운 의료 정책과 의사 집단에 대한 비합리적인 압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 의사 집단을 ‘처단’한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꼈습니까.
“충격적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초기에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국민들에게 기대를 줬지만, 의료계를 대하는 태도는 그와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였습니다. 의사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전문가 집단인데, 이런 집단을 억압하는 것은 기본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 어느 사회에서든 전문가 집단이야말로 보수 세력의 든든한 기반인데, 의사들을 이렇게 대하는 걸 보면서 법조인 등 다른 직역(職域)의 전문가들도 많이 분노하더군요.
“사실 그 이전에 의사 집단이 전문가이면서도 하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결속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과도 비슷하죠. 각자 목표가 다르니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다고 해서 부족한 것은 아니다”
—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왔지만, 국민들 중에는 이에 찬성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대부분 왜곡된 여론에 기반합니다. 대한민국의 의사가 OECD 평균보다 적다는 근거만 반복해서 제시되는데, 이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다고 해서 부족한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나라 의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 시간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같은 수의 의사가 더 많은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도 OECD 평균보다 적으니, 의사가 부족하다? 이건 아니죠.”
— 그럼 소아청소년과 진료 공백 같은 현상은 어떻게 설명 가능할까요.
“소아청소년과 진료 공백은 숫자가 아닌 구조의 문제입니다. 20년 전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늘었지만, 환자는 오히려 40% 이상 줄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소아과 공백이 생긴 건 낮은 수가와 비효율적인 의료 시스템 때문입니다. 신문을 보면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같은 제목의 기사가 뜨는데, 맞벌이 가정이 늘다 보니 출근 전, 퇴근 후 특정 시간에만 소아청소년과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의료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에 가까운 것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건 해결책이 아닙니다.”
— 그래도 국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사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의사 부족이 아니라 필수 진료과의 공백이 문제입니다. 현 제도에서는 필수 진료과 의사가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다른 과로 이동하거나 진료를 포기하는 상황이 대표적이죠. 이를 해결하려면 필수 진료과 의사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고, 그 과로 복귀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 증원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당장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구조가 지속되면 미래에는 의사가 실제로 부족해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먼저 바로잡아야 합니다.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방식은 효과가 없습니다.”
“누가 위험 감수하며 환자 치료하려 하겠나”
— 의료진이 다른 진료과를 선택하거나 이탈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가요.
“의료진이 직면한 법적 리스크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진료 과정에서 악(惡)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가 이를 이유로 의사를 형사 고소하거나 과도한 배상을 요구하는 상황이 빈번합니다. 예를 들어, 최선의 의료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원치 않는 결과를 얻었을 때, 이를 의사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누가 위험을 감수하며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겠습니까?”
—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야 합니다. 서유럽처럼 고의(故意)나 중과실(重過失)이 아닌 의료 행위에서 발생한 악결과는 형사 기소를 하지 않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정부의 건강 보호 시스템 내에서 일어난 행위’로 피해를 본 환자에 대한 배상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책임져야 합니다. 정부의 요구에 따라 저수가로 진료를 제공하는 의료진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합니다.”
— 의료수가 문제도 자주 언급됩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현재는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병원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진료시간이 길어질수록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환자를 3분 동안 보건 30분 동안 보건 받는 수가는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에게 ‘왜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건 불합리합니다. 단순히 수가를 올리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법적 리스크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의사들이 필수 진료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필수 진료과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진은 점점 줄어들고, 기존 의사들마저 이탈할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은 국가 독점 구조”
— 의대 증원 논란을 보니,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점(獨占)은 나쁘다고들 말하잖아요? 독점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 국가 독점입니다.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는 국가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비효율적이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입니다. 사실 건강보험이라는 명칭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은 이를 자동차보험처럼 생각하며 본인이 내는 보험료와 혜택이 직접 연관돼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회보험’ 또는 ‘사회보호’라는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 그렇다면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현재 단일 구조로 되어 있는 국민건강보험을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으로 나눠야 합니다. 책임보험은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제공하고, 종합보험은 추가적인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면 됩니다. 또한 국가보험뿐 아니라 민간보험도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야 합니다.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효율성과 질이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입니다.”
— 일부에서는 그러면 부유층과 저소득층의 의료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건 선동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 제도를 개혁한다고 해서 필수적인 책임보험의 강제 가입 원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보험의 보장성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권과 국민이 논의할 문제입니다. 다만, 기본적인 의료는 보장하되 추가적인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더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됩니다. 민간과 국가가 경쟁하며 효율성을 높이는 시스템만이 지속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방의료원은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해야”
—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문제도 지적받고 있는데요,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는 의료기관이 정부가 정한 방식과 수가대로 환자를 진료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의사와 병원은 자유롭게 진료할 권리가 있지만, 이 제도는 이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의사들은 비효율적인 구조 속에서 환자를 대량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 당연지정제를 폐지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면, 필수 진료과 의사들이 돌아오고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입니다. 아울러 민간 보험사의 참여로 의료 시장이 활성화되면, 환자와 의료진 모두 만족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입니다.”
—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공공의료는 사회적 약자(弱者)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경남지사 시절이던 2013년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는데, 공공의료기관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단적인 예입니다. 근무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도 급여를 받는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효율성이 낮아졌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공공의료기관이 단순히 예산 낭비의 온상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 지방의료원의 비효율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방의료원은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건소와 같은 공공의료기관은 중앙에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의료가 복지의 부속품 취급받아”
—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공공의료는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현재 보건복지부 체계에서는 의료가 복지의 부속품처럼 취급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료가 단순히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이 결과 민간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복지와 의료를 분리해야 합니다. 복지부와 독립된 보건의료부, 혹은 의료부를 설립해 의료 문제를 별도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복합 구조에서는 의료의 본질을 살릴 수 없고,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목표 달성이 어렵습니다.”
— 보건의료부를 신설하더라도 리더십이 중요할 텐데요.
“맞습니다. 최소한 의료를 책임지는 장관은 의료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맡아야 합니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정책을 결정하면 현실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FDA(식품의약국)를 보면, 책임자의 90% 이상이 의사입니다. 이는 전문가가 현장을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 의사들 외에 약사, 한의사, 간호사 등 다른 의료 직역에 있는 이들은 반대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 출신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약사들의 반대를 핑계로 의사가 장관이 되는 것을 회피했습니다. 의사가 다른 의료인보다 상위 계층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의료 행위는 여러 의료인이 협력하여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과정입니다. 다만, 최종 판단과 결정은 의사가 해야 합니다.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환자에게 맞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의료인이 힘을 합쳐 하나의 체계를 구축하되 최종적인 판단과 방향 설정은 의사가 맡는 것이 옳습니다.”
“의료 전달 체계 붕괴는 환자와 대학병원 모두에게 피해”
— 의사 부족 문제가 제기된 이유 중 하나가 김대중 정권 시절 이후 의료 전달 체계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의료 전달 체계의 문제는 단순히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특히 대학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합니다. 단순한 질환을 가진 환자들까지 몰리면서, 정말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은 적절한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건 환자들, 즉 국민입니다.”
— 어떤 방법으로 이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환자들에게도 허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병원 진료비를 환자가 먼저 모두 부담하고, 이후 건강보험공단에서 환불(還拂)받는 시스템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동네 의원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질환을 가지고 대학병원을 방문할 동기가 줄어듭니다.”
— 건강보험 재정 문제도 큰 걱정거리입니다.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현재 재정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보험료를 더 올리는 것도 어렵고, 국가가 지원을 더 늘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지출 상한을 정해놓고, 이 안에서 의료 기관들이 알아서 나눠 쓰라는 ‘총액계약제’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의료 서비스의 질을 낮추고, 의사들을 비급여 시장으로 빠져나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 저출산·고령화 문제도 의료 시스템에 있어 큰 도전일 텐데요,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나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의료 수요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닙니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내과를 전문으로 했던 많은 의사들이 노인 의학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학계도 현재의 의료 시스템과 의료계의 자생적 변화를 인정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단순히 숫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미래 예측이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의료 붕괴의 속도를 가장 잘 아는 건 의사들”
주수호 전 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엉아’ ‘~하는 거다’ 같은 말투는 젊은 전공의 사이에서 ‘밈(meme)’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에 특정 야당 정치인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주 전 회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처음 SNS 활동을 시작한 건 의료계 이슈를 조금 더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지려면 메시지를 가볍고 친근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다만 몇 가지 표현이 논란이 된 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정치인을 비판했던 발언도 사실은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라 법조계의 문제를 짚으려던 취지였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의료계의 진지한 논의가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 SNS에서 ‘의료 붕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실제 상황은 어느 정도입니까.
“일반 국민들보다 의사들이 체감하는 의료 붕괴의 속도는 훨씬 빠릅니다. 특히 응급실 사례를 보죠. 응급실은 글자 그대로 거쳐가는 곳입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먼저 응급 환자들을 본 후 다른 과에 넘기는 곳입니다. 그런데 해당 과에 의사가 없으면 환자를 넘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전후 상황은 무시한 채 응급의학과 의사가 환자를 안 받는다고 비난만 합니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 최근 의료 행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범죄로도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개정 의료법 조항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의료와 무관한 사안으로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밤새도록 환자를 수술하느라 피로에 지친 의사가 귀갓길에 교통사고를 냈다고 해서 면허를 잃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이런 규정은 결국 의료계에 더 큰 위기를 안겨줄 뿐입니다.”
“전공의 자립환경 만들어줘야”
— 젊은 의사들의 특정 전문과 쏠림 현상이 심각합니다.
“맞습니다. 외과를 예로 들어보죠. 제가 과거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외과를 지도할 때는 전공의들이 다양한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방·갑상선과 같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고 예측 가능한 분야에만 몰리고 있습니다. 간암, 위암, 이식 같은 고위험 분야를 전공하려는 의사는 거의 없습니다.”
—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고위험 수술에는 높은 법적·경제적 리스크가 따릅니다. 수술 결과가 나쁘면 곧바로 소송으로 이어지고, 천문학적 손해배상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결국, 젊은 의사들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 겁니다. 신경외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척추 수술처럼 위험이 낮은 분야에만 집중할 뿐, 뇌출혈이나 뇌종양 같은 고난도 분야를 선택하는 의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 우선적으로 전공의와 의대생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전공의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과거 의협 회장 시절, 전공의 사무실을 의협 내부로 통합해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또 의대생들이 자기들에게도 의사로서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그들에게 의협 준회원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여러 가지 법적·제도적 제약 때문에 성사시키지는 못해서 아쉽게 생각합니다.”
“한의학과의 관계, 근거 중심으로 원칙 세울 것”
— 한의학계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 대해 ‘한의대 입학 인원을 줄이고 의대 증원을 하라’는 발언을 했는데요.
“저는 항상 원칙대로 가자는 입장입니다. 국민 건강을 중심에 두고, 근거 중심의 의학을 주장할 겁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한방 행위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 과학적으로 객관성과 반복성을 갖춘 행위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입니다.”
— 한방 행위에 대한 보험 급여 지원 문제도 논란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성형수술은 효과가 확실하고, 어떤 면에서는 우울증과 자살 예방 등 건강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 적용은 되지 않습니다. 반면 한방 치료는 효과가 불확실한데도 보험 급여를 지원합니다. 이는 근거 중심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결정입니다.”
— ‘이념적’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외래의 의학에 의해 억눌려온 우리의 의학이니 보호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라는 얘기죠.”
— 한의학의 보험 급여 지원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까.
“국민에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합니다. 보험료를 납부할 때, 한방 진료를 받길 원하는 사람은 추가로 보험료를 내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방 관련 보험료를 제외하도록 해야 합니다. 공단 자료를 보면, 국민의 약 20%만 한방 의료기관을 이용합니다. 이는 선택적으로 운영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 초음파 기기 등 의료기기 사용권을 두고도 의사와 한의사 간에 갈등이 있던데요.
“한의사들은 ‘양진한치(洋診韓治)’라고 해서, 의학기기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처방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한 얘긴가요? 한의사가 초음파나 진단기기를 사용하겠다는 건 본질적으로 양의학적 진단을 흉내 내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진단 이후입니다. 제대로 된 치료 없이 단순히 한약을 처방하려는 거라면, 이는 일종의 사기(詐欺)에 불과합니다. 한의사들도 진료 중에 한계를 느끼면 결국 의과(양의)로 환자를 보내잖아요? 한의원에서 한방병원을 거쳐 한방대학병원으로 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의과로 전가합니다. 한방 의료는 한방에서 종료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위기 돌파할 수 있는 리더 필요”
주수호 전 회장은 2025년 1월 2일 열리는 의협회장 보궐 선거에 나선 다섯 명의 후보 중 하나다.
— 의협 회장이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의사들이 단결된 목소리를 내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의사들이 각종 규제와 비합리적 제도로 인해 진료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의사들이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힘을 모으면, 정부와 정치권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의료계에 대한 공격이 집중되는 일종의 전쟁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리더가 필요합니다.”
주수호 전 회장이 말하는 ‘과거’는 교통사고로 피해자를 사망하게 한 사건을 말한다.
“과거 교통사고로 인해 국민과 의사 동료들에게 실망을 안긴 점에 대해 평생 후회하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운전면허를 다시 따기는 했지만, 운전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의사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린 비상계엄령의 일부분이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을 주창하고 나선 이후 1년 가까이 정부와 대치해 온 전공의들을 비롯한 의사들, 의대생들은 격분했다. ‘의료계엄’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들은 지금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집회와 시위에 앞장서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존속이 경각에 달린 지금, 윤 정부의 ‘의료개혁안’ 역시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서툴고 거친 추진 방식은 문제였지만, 의대 증원 자체는 필요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또 건강보험 재정, 저수가(低酬價), 지역 의료 붕괴,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수급 등 ‘의료개혁’ 논란 속에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 여러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아마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문제들은 두고두고 정책 과제로 남을 것이다. 주수호(朱秀虎·67)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만난 것도 이래서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의약분업에 맞서 의권쟁취투쟁위원회 대변인 겸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겸 공보이사, 대한의사협회 회장(제35대) 등을 맡아 의료 현안들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 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나기 전 주수호 전 회장은 “인터뷰를 위한 사전(事前) 질문지는 보내지 않아도 된다”면서 “어떤 현안에 대해서든, 현장에서 바로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12월 6일 주수호 회장을 만났다.
“의사들, 하나의 가치로 결속하지 못해”
지난해 12월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젊은 의사 의료계엄 규탄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비상계엄을 규탄하며 의대 증원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물론입니다. 사전 질문지를 보고 답을 준비하는 사람은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 ‘의료인 처단’ 내용이 담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정말 당황했습니다. 밤중에 채널을 돌려가며 확인했지만, 정규 방송에서는 아무 소식도 나오지 않았어요. 계엄령을 선포했는데, 정규 방송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이상하더군요. 2시간 뒤에야 모든 게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부의 혼란스러운 의료 정책과 의사 집단에 대한 비합리적인 압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 의사 집단을 ‘처단’한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꼈습니까.
“충격적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초기에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국민들에게 기대를 줬지만, 의료계를 대하는 태도는 그와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였습니다. 의사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전문가 집단인데, 이런 집단을 억압하는 것은 기본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 어느 사회에서든 전문가 집단이야말로 보수 세력의 든든한 기반인데, 의사들을 이렇게 대하는 걸 보면서 법조인 등 다른 직역(職域)의 전문가들도 많이 분노하더군요.
“사실 그 이전에 의사 집단이 전문가이면서도 하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결속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과도 비슷하죠. 각자 목표가 다르니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다고 해서 부족한 것은 아니다”
—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왔지만, 국민들 중에는 이에 찬성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대부분 왜곡된 여론에 기반합니다. 대한민국의 의사가 OECD 평균보다 적다는 근거만 반복해서 제시되는데, 이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다고 해서 부족한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나라 의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 시간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같은 수의 의사가 더 많은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도 OECD 평균보다 적으니, 의사가 부족하다? 이건 아니죠.”
— 그럼 소아청소년과 진료 공백 같은 현상은 어떻게 설명 가능할까요.
“소아청소년과 진료 공백은 숫자가 아닌 구조의 문제입니다. 20년 전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늘었지만, 환자는 오히려 40% 이상 줄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소아과 공백이 생긴 건 낮은 수가와 비효율적인 의료 시스템 때문입니다. 신문을 보면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같은 제목의 기사가 뜨는데, 맞벌이 가정이 늘다 보니 출근 전, 퇴근 후 특정 시간에만 소아청소년과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의료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에 가까운 것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건 해결책이 아닙니다.”
— 그래도 국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사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의사 부족이 아니라 필수 진료과의 공백이 문제입니다. 현 제도에서는 필수 진료과 의사가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다른 과로 이동하거나 진료를 포기하는 상황이 대표적이죠. 이를 해결하려면 필수 진료과 의사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고, 그 과로 복귀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 증원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당장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구조가 지속되면 미래에는 의사가 실제로 부족해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먼저 바로잡아야 합니다.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방식은 효과가 없습니다.”
“누가 위험 감수하며 환자 치료하려 하겠나”
— 의료진이 다른 진료과를 선택하거나 이탈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가요.
“의료진이 직면한 법적 리스크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진료 과정에서 악(惡)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가 이를 이유로 의사를 형사 고소하거나 과도한 배상을 요구하는 상황이 빈번합니다. 예를 들어, 최선의 의료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원치 않는 결과를 얻었을 때, 이를 의사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누가 위험을 감수하며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겠습니까?”
—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야 합니다. 서유럽처럼 고의(故意)나 중과실(重過失)이 아닌 의료 행위에서 발생한 악결과는 형사 기소를 하지 않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정부의 건강 보호 시스템 내에서 일어난 행위’로 피해를 본 환자에 대한 배상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책임져야 합니다. 정부의 요구에 따라 저수가로 진료를 제공하는 의료진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합니다.”
— 의료수가 문제도 자주 언급됩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현재는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병원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진료시간이 길어질수록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환자를 3분 동안 보건 30분 동안 보건 받는 수가는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에게 ‘왜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건 불합리합니다. 단순히 수가를 올리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법적 리스크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의사들이 필수 진료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필수 진료과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진은 점점 줄어들고, 기존 의사들마저 이탈할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은 국가 독점 구조”
— 의대 증원 논란을 보니,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점(獨占)은 나쁘다고들 말하잖아요? 독점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 국가 독점입니다.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는 국가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비효율적이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입니다. 사실 건강보험이라는 명칭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은 이를 자동차보험처럼 생각하며 본인이 내는 보험료와 혜택이 직접 연관돼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회보험’ 또는 ‘사회보호’라는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 그렇다면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현재 단일 구조로 되어 있는 국민건강보험을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으로 나눠야 합니다. 책임보험은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제공하고, 종합보험은 추가적인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면 됩니다. 또한 국가보험뿐 아니라 민간보험도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야 합니다.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효율성과 질이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입니다.”
— 일부에서는 그러면 부유층과 저소득층의 의료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건 선동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 제도를 개혁한다고 해서 필수적인 책임보험의 강제 가입 원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보험의 보장성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권과 국민이 논의할 문제입니다. 다만, 기본적인 의료는 보장하되 추가적인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더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됩니다. 민간과 국가가 경쟁하며 효율성을 높이는 시스템만이 지속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방의료원은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해야”
홍준표 대구시장이 경남도지사였던 시절,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진주의료원을 폐업시켰다. 이에 전국보건의료노조와 민주노총조합원 300여 명이 진주의료원 본관 건물 앞에서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즉각 재개원·정상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고 강하게 저항했다. 사진=뉴시스 |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는 의료기관이 정부가 정한 방식과 수가대로 환자를 진료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의사와 병원은 자유롭게 진료할 권리가 있지만, 이 제도는 이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의사들은 비효율적인 구조 속에서 환자를 대량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 당연지정제를 폐지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면, 필수 진료과 의사들이 돌아오고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입니다. 아울러 민간 보험사의 참여로 의료 시장이 활성화되면, 환자와 의료진 모두 만족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입니다.”
—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공공의료는 사회적 약자(弱者)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경남지사 시절이던 2013년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는데, 공공의료기관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단적인 예입니다. 근무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도 급여를 받는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효율성이 낮아졌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공공의료기관이 단순히 예산 낭비의 온상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 지방의료원의 비효율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방의료원은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건소와 같은 공공의료기관은 중앙에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의료가 복지의 부속품 취급받아”
—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공공의료는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현재 보건복지부 체계에서는 의료가 복지의 부속품처럼 취급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료가 단순히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이 결과 민간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복지와 의료를 분리해야 합니다. 복지부와 독립된 보건의료부, 혹은 의료부를 설립해 의료 문제를 별도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복합 구조에서는 의료의 본질을 살릴 수 없고,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목표 달성이 어렵습니다.”
— 보건의료부를 신설하더라도 리더십이 중요할 텐데요.
“맞습니다. 최소한 의료를 책임지는 장관은 의료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맡아야 합니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정책을 결정하면 현실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FDA(식품의약국)를 보면, 책임자의 90% 이상이 의사입니다. 이는 전문가가 현장을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 의사들 외에 약사, 한의사, 간호사 등 다른 의료 직역에 있는 이들은 반대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 출신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약사들의 반대를 핑계로 의사가 장관이 되는 것을 회피했습니다. 의사가 다른 의료인보다 상위 계층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의료 행위는 여러 의료인이 협력하여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과정입니다. 다만, 최종 판단과 결정은 의사가 해야 합니다.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환자에게 맞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의료인이 힘을 합쳐 하나의 체계를 구축하되 최종적인 판단과 방향 설정은 의사가 맡는 것이 옳습니다.”
“의료 전달 체계 붕괴는 환자와 대학병원 모두에게 피해”
— 의사 부족 문제가 제기된 이유 중 하나가 김대중 정권 시절 이후 의료 전달 체계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의료 전달 체계의 문제는 단순히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특히 대학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합니다. 단순한 질환을 가진 환자들까지 몰리면서, 정말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은 적절한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건 환자들, 즉 국민입니다.”
— 어떤 방법으로 이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환자들에게도 허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병원 진료비를 환자가 먼저 모두 부담하고, 이후 건강보험공단에서 환불(還拂)받는 시스템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동네 의원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질환을 가지고 대학병원을 방문할 동기가 줄어듭니다.”
— 건강보험 재정 문제도 큰 걱정거리입니다.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현재 재정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보험료를 더 올리는 것도 어렵고, 국가가 지원을 더 늘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지출 상한을 정해놓고, 이 안에서 의료 기관들이 알아서 나눠 쓰라는 ‘총액계약제’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의료 서비스의 질을 낮추고, 의사들을 비급여 시장으로 빠져나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 저출산·고령화 문제도 의료 시스템에 있어 큰 도전일 텐데요,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나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의료 수요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닙니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내과를 전문으로 했던 많은 의사들이 노인 의학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학계도 현재의 의료 시스템과 의료계의 자생적 변화를 인정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단순히 숫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미래 예측이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의료 붕괴의 속도를 가장 잘 아는 건 의사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환자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다. 사진=고기정 |
“처음 SNS 활동을 시작한 건 의료계 이슈를 조금 더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지려면 메시지를 가볍고 친근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다만 몇 가지 표현이 논란이 된 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정치인을 비판했던 발언도 사실은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라 법조계의 문제를 짚으려던 취지였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의료계의 진지한 논의가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 SNS에서 ‘의료 붕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실제 상황은 어느 정도입니까.
“일반 국민들보다 의사들이 체감하는 의료 붕괴의 속도는 훨씬 빠릅니다. 특히 응급실 사례를 보죠. 응급실은 글자 그대로 거쳐가는 곳입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먼저 응급 환자들을 본 후 다른 과에 넘기는 곳입니다. 그런데 해당 과에 의사가 없으면 환자를 넘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전후 상황은 무시한 채 응급의학과 의사가 환자를 안 받는다고 비난만 합니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 최근 의료 행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범죄로도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개정 의료법 조항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의료와 무관한 사안으로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밤새도록 환자를 수술하느라 피로에 지친 의사가 귀갓길에 교통사고를 냈다고 해서 면허를 잃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이런 규정은 결국 의료계에 더 큰 위기를 안겨줄 뿐입니다.”
“전공의 자립환경 만들어줘야”
— 젊은 의사들의 특정 전문과 쏠림 현상이 심각합니다.
“맞습니다. 외과를 예로 들어보죠. 제가 과거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외과를 지도할 때는 전공의들이 다양한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방·갑상선과 같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고 예측 가능한 분야에만 몰리고 있습니다. 간암, 위암, 이식 같은 고위험 분야를 전공하려는 의사는 거의 없습니다.”
—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고위험 수술에는 높은 법적·경제적 리스크가 따릅니다. 수술 결과가 나쁘면 곧바로 소송으로 이어지고, 천문학적 손해배상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결국, 젊은 의사들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 겁니다. 신경외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척추 수술처럼 위험이 낮은 분야에만 집중할 뿐, 뇌출혈이나 뇌종양 같은 고난도 분야를 선택하는 의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 우선적으로 전공의와 의대생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전공의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과거 의협 회장 시절, 전공의 사무실을 의협 내부로 통합해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또 의대생들이 자기들에게도 의사로서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그들에게 의협 준회원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여러 가지 법적·제도적 제약 때문에 성사시키지는 못해서 아쉽게 생각합니다.”
“한의학과의 관계, 근거 중심으로 원칙 세울 것”
— 한의학계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 대해 ‘한의대 입학 인원을 줄이고 의대 증원을 하라’는 발언을 했는데요.
“저는 항상 원칙대로 가자는 입장입니다. 국민 건강을 중심에 두고, 근거 중심의 의학을 주장할 겁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한방 행위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 과학적으로 객관성과 반복성을 갖춘 행위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입니다.”
— 한방 행위에 대한 보험 급여 지원 문제도 논란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성형수술은 효과가 확실하고, 어떤 면에서는 우울증과 자살 예방 등 건강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건강보험 적용은 되지 않습니다. 반면 한방 치료는 효과가 불확실한데도 보험 급여를 지원합니다. 이는 근거 중심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결정입니다.”
— ‘이념적’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외래의 의학에 의해 억눌려온 우리의 의학이니 보호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라는 얘기죠.”
— 한의학의 보험 급여 지원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까.
“국민에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합니다. 보험료를 납부할 때, 한방 진료를 받길 원하는 사람은 추가로 보험료를 내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방 관련 보험료를 제외하도록 해야 합니다. 공단 자료를 보면, 국민의 약 20%만 한방 의료기관을 이용합니다. 이는 선택적으로 운영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 초음파 기기 등 의료기기 사용권을 두고도 의사와 한의사 간에 갈등이 있던데요.
“한의사들은 ‘양진한치(洋診韓治)’라고 해서, 의학기기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처방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한 얘긴가요? 한의사가 초음파나 진단기기를 사용하겠다는 건 본질적으로 양의학적 진단을 흉내 내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진단 이후입니다. 제대로 된 치료 없이 단순히 한약을 처방하려는 거라면, 이는 일종의 사기(詐欺)에 불과합니다. 한의사들도 진료 중에 한계를 느끼면 결국 의과(양의)로 환자를 보내잖아요? 한의원에서 한방병원을 거쳐 한방대학병원으로 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의과로 전가합니다. 한방 의료는 한방에서 종료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위기 돌파할 수 있는 리더 필요”
주수호 전 회장은 2025년 1월 2일 열리는 의협회장 보궐 선거에 나선 다섯 명의 후보 중 하나다.
— 의협 회장이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의사들이 단결된 목소리를 내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의사들이 각종 규제와 비합리적 제도로 인해 진료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의사들이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힘을 모으면, 정부와 정치권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의료계에 대한 공격이 집중되는 일종의 전쟁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리더가 필요합니다.”
주수호 전 회장이 말하는 ‘과거’는 교통사고로 피해자를 사망하게 한 사건을 말한다.
“과거 교통사고로 인해 국민과 의사 동료들에게 실망을 안긴 점에 대해 평생 후회하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운전면허를 다시 따기는 했지만, 운전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의사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