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은 시대의 가치는 제시하나 전략·전술 부족”
⊙ “이재명의 기본소득, 토지공개념은 사회주의 하자는 것”
⊙ “의사들의 행동은 국민 불안 이용하겠다는 집단 이기주의”
⊙ “한국은행에서 돈 찍어서 재정 적자를 메우면 된다? 국제 감각 없고, 국제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분들”
金廣斗
1947년생. 광주제일고·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美 하와이주립대 경제학 박사 /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경제연구소 소장·교학부총장·경제학 석좌교수, 산자부 산업발전심의회위원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위원, 국제통상학회회장, 한국응용경제학회회장, 한국국제경제학회회장,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힘찬경제추진단 단장, 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위원장, 문재인 정부 초대국민경제자문회의부의장 역임 / 現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경제금융협력연구위원회이사장, 남덕우기념사업회장
⊙ “이재명의 기본소득, 토지공개념은 사회주의 하자는 것”
⊙ “의사들의 행동은 국민 불안 이용하겠다는 집단 이기주의”
⊙ “한국은행에서 돈 찍어서 재정 적자를 메우면 된다? 국제 감각 없고, 국제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분들”
金廣斗
1947년생. 광주제일고·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美 하와이주립대 경제학 박사 /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경제연구소 소장·교학부총장·경제학 석좌교수, 산자부 산업발전심의회위원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위원, 국제통상학회회장, 한국응용경제학회회장, 한국국제경제학회회장,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힘찬경제추진단 단장, 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위원장, 문재인 정부 초대국민경제자문회의부의장 역임 / 現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경제금융협력연구위원회이사장, 남덕우기념사업회장
- 사진=조준우
김광두(金廣斗·77) 서강대 명예교수는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요, 아량”이라고 했다. 메모장에 우리나라 경제 지표와 중요 현안을 꼼꼼하게 써 온 김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듯이 조곤조곤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정치인과 권력자에 대한 일갈이라기보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애정이 어린 조언을 쏟아냈다. 여야(與野)를 넘나들며 대통령의 ‘경제 멘토’ 역할을 해온 김광두 교수를 4월 5일, 서강대 남덕우기념관에서 만났다.
―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마디로 참담합니다. 국론(國論)은 내전(內戰) 상태에 빠져 있고 경제 체질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국가공동체는 하나의 유기체(有機體)입니다. 국가 유기체 구성인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그 성과 수준이 높아집니다. 법과 제도가 유기체의 효율적 운용에 적합하게 설정되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이 상호 협조적일 때,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국가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사회 분열이 극심하고 경제 체질 개선 노력이 미흡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좋은 성과를 내긴 어렵죠.”
― 정부가 지난해 말에 발표한 GDP 대비 경제성장률은 2.2% 정도였습니다.
“세계 평균이 3%대인데 우리나라가 2%대라는 것은 경제 올림픽에서 하위 그룹에 속해 있다는 의미죠. 잠재성장률도 2020년 2%대를 기록했는데, 2040년부터는 0%대에 진입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OECD 국가 중 산업경쟁력이 5위(2016년)였던 대한민국이 2020년엔 6위로 밀렸고 앞으로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여 국제사회에서 우리 위치가 약화할 겁니다.”
“경제 양극화가 분열의 시발점”
― 대한민국은 이미 두 개의 국가로 갈라졌다는 얘기를 합니다.
“분열의 시발점은 경제 양극화(兩極化)입니다. 여당·야당 모두 경제 양극화를 막지 못했고 오늘날 분열의 촉매제가 됐습니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너무 차이가 크면 두 그룹은 갈라지게 돼 있습니다. 격차는 내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자녀 세대로 전해집니다. 교육에서부터 불평등이 심화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의식 구조도 갈라집니다. 누군가는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을 하는데, 누군가는 백화점 문이 열리기 전부터 수백만원짜리 가방을 사기 위해 줄을 섭니다. 두 집단이 갈라지지 않을 도리가 없죠. 소득 양극화 지수는 2011년에 4.86이었는데 2022년에 5.23으로 치솟았습니다. 무엇보다 자산(資産)의 양극화가 더 심합니다.”
― 우리나라 사람의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 아닙니까.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文在寅) 정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부동산 양극화는 16.6(2011년)이었는데 2022년 29.8로 급등했습니다. 자산의 양극화가 심해지니 계층 분열이 생기고 갈등이 깊어집니다. 현재, 정부는 갈등을 줄일 대책이 없고 이를 타개하고자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도 없습니다. 야당은 무조건 ‘나눠 먹자’는 식(式)의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파괴적 비전’으로 ‘다 같이 못살자’는 얘기와 같습니다.”
김광두 교수는 오늘날 분열의 원인을 경제 양극화라고 봤고, 경제 양극화 중 상당수는 부동산 등 자산 격차와 소득 격차, 그리고 이것이 자식으로 대물림되는 악순환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구조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사라져”
“2023년에 가계와 기업, 정부 부채를 모두 더한 총부채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6000조원을 넘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한 해 벌어들이는 소득의 2.7배에 달합니다. 가계·기업·정부 모두 빚더미 위에 앉아 있습니다. 부채는 사람으로 치자면 과체중 상태를 말하는데 건강에 안 좋겠죠.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정상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엔 그런 움직임이 미약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분위기도 약합니다.”
―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군요.
“최근 7~8년 동안 구조조정을 한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을 하면 실업자가 나오고, GDP에 단기적인 타격이 있을 겁니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배가 고픈 것을 좀 참을 줄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5년에 3번이나 선거가 있으니 누가 앞장서서 구조조정 얘기를 꺼낼 수 있겠습니까. 인구감소, 고령화 문제까지 겹쳐 경제의 펀더멘털이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습니다.”
― 금융 정책을 사용하는 옵션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부채 수준이 높고 침체된 경제 상황에 돈 또한 엄청 풀려 있고 외환시장이 개방되어 있어서 금융 정책 수단의 선택이 어렵습니다. 다수의 재정학자는 지금과 같은 재정운용 상황이 지속되면 15년 뒤에는 재정 정책 수단이 고갈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 등 야당 정치인들은 GDP 대비 국가 부채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잘못된 접근법입니다. 선진국은 우리보다 고령화 수준이 높고, 고령화 과정에서 정부 지출이 많이 늘어난 것이 반영돼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지출할 세금을 감안하면 부채 비율은 더욱 올라갈 겁니다. 더구나 우리는 한국전력 등 공기업 비중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기 때문에 지금의 부채 비율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사단장이 작전하는데 합참의장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격”
― 경제 전망이 상당히 어둡군요.
“정부는 세밀한 시나리오를 갖고 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우왕좌왕하고 있고 일부 공직자는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보다는 개인 생활의 웰빙(well-being)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월급쟁이로 전락했습니다. 판사가 6시 땡 치면 퇴근하는 상황인데 재판이 신속하게 이뤄질 리 없지 않습니까. 국민 분열을 부추긴 데는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가 한몫했습니다. 중도를 표방한 유튜브를 거의 못 봤습니다. 좌든 우든 한쪽을 확실하게 챙겨야 구독자가 일정하게 확보가 되니까 그들은 더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물론 유튜버들이 활개를 치는 데에는 기존의 언론이 신뢰를 주지 못한 부분이 있겠지요. 그걸 유튜버들이 이용해 뉴스로 만들어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 워라밸을 중시하는 세대가 경제 주체가 된 것도 원인 중 하나 아닐까요.
“그런 문화 흐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직자에게는 ‘봉급은 비록 적지만 국가와 사회에 내가 이바지한다’는 프라이드(pride)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단어가 되고 있지만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청산이란 명목하에 열심히 일한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데, 이걸 학습한 공무원들이 소명을 다하지 않는 건 당연한 겁니다.”
― 그런 공무원들도 아직 있을 겁니다.
“공무원이 소명의식이 있어도 지금처럼 용산에서 모든 인사를 좌지우지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사권을 장관이 갖고 있어야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대통령실에서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데 누가 장관 말을 듣겠습니까. 현장 지휘관은 장관입니다. 마치 사단장이 최전방에서 작전을 펼치며 군(軍)을 지휘하는데 합참의장이 저 뒤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장관이 무력화되면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장관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줄 것이냐는 대통령 하기 나름입니다.”
― 낙하산 장관도 많고, 일종의 보은(報恩) 인사라며 대통령실이 나서기 때문 아닐까요.
“민주 정치에서 선거 때 나를 도와준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사람에게 맞는 일자리를 줘야지 그 사람의 직무 능력과 전혀 상관없는 자리에 앉히는 것은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나라를 망치는 길입니다. 보은을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 다들 좋은 자리를 원하니 그렇겠죠.
“특정한 어떤 자리를 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 자리가 그만큼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겠죠. 단순히 자기들이 권력을 쥐었다고, 또 임명할 수 있는 수많은 자리가 있다고 해서 자질이 되지 않는 사람을 임명하고 모든 자리에 관여하면서 국가가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의사들, 국민 불안 이용하겠다는 집단 이기주의”
김광두 교수는 질문에 답을 함에 있어 막힘이 없었다. 인터뷰를 한 날은 국회의원 선거를 불과 닷새 앞둔 시점으로 윤석열(尹錫悅)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의 전날 2시간 만남이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는 뉴스가 쏟아지던 때였다. 대구·경북권 의대들이 전공의를 향해 복귀해달라는 호소 뉴스, 국내 빅5 병원 중 한 곳이 40일 동안 순손실 수백억원을 냈다는 내용도 있었다. 김광두 교수는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집단 이기주의는 결국 사회 경직화를 불러일으키는데 요즘 의사 문제가 그러합니다. ‘필수 의료에 문제가 있다’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입니다. 의사들이 극렬히 반대하면서 ‘우리가 국민을 불편하게 하면 너희 손해야’라는 식(式)으로 행동합니다. 이것은 분열을 이용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겠다는 겁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분열을 이용하는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등에 업고 상대방 세력을 타도하겠다며 싸움을 붙이는 격입니다.”
― 의료 분쟁을 분열을 이용한 집단 이기주의로 보는군요.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정부의 미숙함은 있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의사 증원에 찬성했지만, 국가가 사전에 정교한 시나리오를 가진 줄 알았지 이렇게 사후적으로 대응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실망한 겁니다. 대통령의 마음속에 세밀한 대책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의사들이 예상보다 거세게 반발하니까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노사(勞使) 싸움을 할 때 공장은 절대 파괴하지 않고 공장 밖에서 데모합니다. 지금의 의사들 행태처럼 병원을 떠나 환자를 볼모로 활용하는 것은 공장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국민의 불안, 불편을 이용하겠다는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 전공의들이 MZ 세대들이라 세대 간 갈등이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글쎄요? 의대 교수들도 다 사표를 냈잖아요. 젊은이들이랑 정부 간의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대안을 제시해 중재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거기에 편승했습니다. 의사들의 단체 행동에는 대통령이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불신도 깔려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을 현장에서 자주 만나서 누구보다 그들의 문화를 잘 알고, 병원 실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중재 노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 후보는 소통에 문제 있다”고 直言
김광두 교수의 이름 앞에는 그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대통령의 경제 선생’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김 교수는 박근혜(朴槿惠) 전(前) 대통령이 대선(大選) 후보 시절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힘찬경제추진단 단장,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인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당선 이후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최고 권력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모습을 물었다.
― 박근혜, 문재인 두 분의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한국이라는 움직이는 유기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딱 몇 사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필터로 걸러서 들은 거죠. 대통령이라는 권력자한테는 필터링이 돼버리면 좋은 얘기만 들어가게 돼 있는데 박 대통령이 그러했습니다. 그래도 ‘국민행복론’ ‘창조경제’와 같은 비전은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좋은 얘기만 듣다 보니 사실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일부 세력은 같은 당 사람들입니다. 박 대통령이 필터 소통을 하다 보니 같은 편조차도 자신들이 소외됐다고 느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광두 교수가 지난해에 낸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박근혜 의원(후보 선출 이전)은 ○○, ○○, ○○의 세 사람에게 정책, 정치, 일정 등 부분별 소통의 최종 게이트 키퍼(Gate Keeper) 역할을 맡기는 것으로 나는 인식하고 있었다.
“○○ 등이 성실한 사람인 것은 잘 압니다만, 이들에게 외부와의 모든 소통 라인을 주로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의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이들이 예의 바르지 못한 언행이라도 했어요?”
추가 설명을 했지만, 내 말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략)
대선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던 어느 날, 여의도 캠프에서 핵심 멤버들 15명 정도가 모인, 박 후보가 주재(主宰)하는 회의가 있었다. 나는 이날 소통 문제를 제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런 일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박 후보님은 소통에 문제가 있습니다.”
나의 표현 방식이 너무 직설적이고, 거칠었거나 서툴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취지는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으니 고치도록 노력해달라는 것이었다.〉
“윤석열, 가치 구현할 정책 비전 제시 취약”
―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과 갈라선 건가요.
“조용히 마음이 떠났다는 표현이 맞죠. 왜냐하면 내가 같이했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건 의리가 아닙니다. 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의리가 없으면 서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선에서 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던 시기에 이 대통령이 나에게 제안했던 KDI원장이란 직책을 사양했던 것도 나로선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 다른 한 분은 어땠나요.
“문재인 대통령은 필터링을 하지 않고 직접 소통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념 성향에 맞는 사람들 이야기를 주로 경청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듣겠다는 자세는 있었는데 실제 운용은 그렇게 안 했습니다. 국가 운용을 통합의 관점이 아닌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고 했다고 판단합니다. 부동산이 대표적입니다. 부동산은 자가, 임대 등의 형태가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임대 주택자 입장만 바라봤습니다. ‘임대 사는 사람들이 안됐으니까 그 사람을 도와야지’ 하며 내놓은 정책이 ‘임대차 3법’입니다. 이 법이 주택시장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시간이 흘러서 지금의 임차인이 나중에 자가 보유자가 될 때 어떤 일이 생길지 균형 있게 고려하지 못한 거죠.”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윤석열 정부에 몸담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겠지만 지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면 정책 비전이 약해 보입니다.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가치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구현할 큰 그림, 즉 정책 비전이 안 보입니다. 전쟁을 할 때에도 워맵(war map)을 놓고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지역, 상황에 따라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지역을 정하기 나름입니다. 큰 전략에 따라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지요. 이분은 그런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한정적인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말하지 않고 그냥 ‘돌파해’라고 하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박정희, ‘안 되는 부분도 얘기해 봐’”

― 미숙하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윤석열 정부의 얘기를 하나하나 들어보면 나름 일리는 있어요. 그러나 국가공동체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균형과 통합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어요. 재정건전성을 얘기하면서 재산세는 깎아주고, 공시지가 현실화를 미루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부자 감세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부동산 보유 양극화 지수가 2022년 현재 29.8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이 정열적이고, 정의감 있고, 간혹 돌파할 때 보면 용감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 참모들이 얘기하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용산의 기본적인 인적 구성이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 검사 그룹 위주입니다. 공직자들은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에 익숙해서 상관에게 대드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까?”
― 예스맨들만 있다는 소리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정치인이나 교수는 행정에 서툴지만 상대적으로 자기 고집이 있는 그룹이라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분명히 밝히지만, 공무원은 다릅니다. 사실 권력자 앞에서 자기 의견을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권력을 쟁취한 지 1~2년이 지나면 더 합니다. 앞에서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보기 싫은 것은 당연지사일 수 있죠. 그런 면에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소통에 탁월했던 분입니다. 박 대통령은 한 채널로만 얘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남덕우(南悳祐) 총리의 회고록을 보면 항상 보고를 받다가 ‘임자, 잘되는 것만 얘기하지 말고 안 되는 부분도 얘기해 봐’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먼저 그렇게 말을 하니 참모들이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균형 잡는 리더십입니다.”
― 권력자로서 쉽지 않은 행동인데요.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요 아량이고 성공한 정치지도자들의 미덕입니다.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이 겪은 경험에 의하면 누군가 누구를 이용하려 할 때, 그 사람은 이용하려는 대상에게 절대 나쁜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책임 맡고 있는 국가미래연구원은 2011년에 《외천본민(畏天本民)》이란 책을 냈어요. 박근혜 당시 의원이 대통령이 될 경우, 또 길게는 모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종대왕의 국정 운영을 깊이 연구해온 신세돈(申世敦) 교수가 집필했는데 세종대왕이 중요한 국사(國事)를 결정함에 있어 소통을 제일 중요시 생각한 것을 부각시켰습니다. 세종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직접 묻고 또 들었습니다. 신하들의 의견은 물론 과거 시험장에 나온 선비들의 의견도 들었고, 전(全)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태종이 왜 자신의 왕위 취임을 반대했던 위징을 죽이지 않고 옆에 두며, 항상 자신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 뒀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본소득, 사회주의로 가는 길”
― 이재명(李在明) 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대표의 기본소득론은 경제학에 나오는 건가요.
“기본소득, 토지공개념 모두 사회주의를 지향하자는 얘기와 같습니다. 기본소득이 제일 먼저 활발히 논의된 영국에서 이루어진 토론 내용 중에 ‘이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에서 돈 찍어서 재정 적자를 메우면 된다고요? 국제 감각이 없고, 국제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국제 경제 질서의 룰은 이미 선진국들이 정해놓았습니다. 만약 돈을 찍어 재정적자를 메운다면, 그 룰에 따라 한국의 주가는 폭락하고, 국제신용도가 떨어져서, 우리 기업들의 무역 활동이 정체(停滯)될 것입니다.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60%이고, 한국 증권시장의 외자 의존도는 30% 수준입니다.”
―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소리네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런 배경은 국제 경제 질서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성남시에서는 혹여 빚진 다음에 갚을 능력이 없다고 배짱부릴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럴 수 없습니다.”
― 다른 얘기인데 박근혜와 문재인 정부를 오가며 경제 프레임을 짜주다 보니 오해를 받은 것 같은데요, 박근혜 정부 때 경제부총리를 못 해서 문재인을 도왔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웃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가치관은 거기에 있으니까 그렇겠죠. 우리 같은 교수들의 가치관은 나름대로 추구하는 경제 질서와 구조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치인을 돕는 것이고 그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떠나는 거고 그런 겁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보수와 진보 간의 소통 채널 구축이었습니다. 이 사회가 좌우(左右) 진영 간 대립으로 경직성이 심화하고 있고, 이것이 국가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치인들 간의 대화가 어려우니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대화의 물꼬를 터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문 후보에게 경제 강의 한 번 해줄 수 있습니까?”(임종석)
김광두 교수의 이런 노력은 불과 몇 해 전 있었던 일이라 언론 보도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김 교수는 2016년에 경제개혁연구소의 이사장이었던 장하성(張夏成)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이었던 김상조(金尙祚) 교수와 함께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는 간판을 걸고 세미나 시리즈를 열었다. 장하성과 김상조는 발표와 토론에 참여할 진보 진영의 인사, 김 교수는 보수 진영의 논객들을 섭외했다. ‘소득과 부(富)의 불평등’ ‘노동 불평등, 그 원인과 해법’ ‘교육의 불평등, 백년대계의 개혁 방향’ 등이 주제였다. 한창 세미나를 하던 와중에 정계(政界)에서는 개헌 논의가 진행됐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슈가 폭풍처럼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2016년 초겨울의 어느 날, 당시 문재인 의원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임종석(任鍾晳)이 전화를 걸어 ‘문재인 후보에게 경제 강의 한 번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광두 교수의 얘기다.
“내 직업이 교수이고 강의하는 게 일인데 어찌 거절을 합니까. 국가미래연구원으로 찾아오면 강의를 한다고 했죠. 그때 문재인 의원은 차기 대통령 후보 1위였고 연구원으로 오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부드럽게 거절을 한 거죠. 그런데 ‘날짜를 알려주면 도시락을 준비해서 가겠다’는 겁니다. 내심 당황하면서 문 의원에게 할 강의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강의 주제가 뭐였습니까.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두 질서 간의 충돌 요인’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민주주의든 시장경제든 자유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평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시장 경제에서의 평등은 기회를 공평하게 주자는 사전적 평등이고, 민주 정치에서의 평등은 사후적 평등을 요구하는 성향을 갖습니다. 투표권이 한 명당 한 표씩 있으니까요. 그러니 사전적 평등과 사후적 평등이 충돌하게 돼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배분할 수는 없다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우파 경제학이고, 사후적으로 평등하게 배분하자는 데 방점을 두는 것이 좌파 경제학이죠. 강의가 끝나고 얼마 뒤에 문재인 의원, 임종석 실장과 함께 청진동 음식점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셨지요. 그때 도와달라기에 거절하고 딸이 지내는 미국 LA로 떠났어요.”
문재인의 삼고초려
하지만 문재인의 사람들은 김광두 교수에게 삼고초려를 하며 러브콜을 보냈고, 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확정된 후, 문재인 후보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당시 문 후보의 ‘사람 중심 성장 경제’ 비전(2017년 4월 12일)은 김 교수가 주도해서 작성한 작품이었다. 문재인 후보가 직접 발표했고, 오른쪽에는 김광두 교수, 왼쪽에는 김상조 당시 교수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전화를 걸어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경제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조직이 하는 일이 있느냐’니까 지금부터 활성화해서 미국의 NEC(1993년에 백악관 내에 설치한 경제정책기구)처럼 키우겠다며 말입니다. 문 대통령의 진심을 믿고 그가 나에게 원하는 좌우 진영의 통합을 모색하는 경제 정책의 조율에 최선을 다하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런 역할은 경제학자로서 내게 매우 보람 있는 일이고, 동시에 분열과 갈등에 휩싸인 한국 사회의 화합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 대통령에게 말씀드려 정책 조율 기능을 갖는 ‘경제정책회의’라는 분과를 국민경제자문회의 내에 신설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반대했지만, 청와대 비서실의 도움으로 2017년 가을에 분과 신설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분과의 기본 기능은 정책 조율이었습니다.”
― 의도도 좋았고, 교수님도 열의를 보이셨네요.
“그랬지. 문제는 대통령과의 소통 채널 확보 문제였는데 문 대통령은 나한테 ‘조수처럼 도와줄 사람’을 경제보좌관으로 임명하겠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고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을 나와 상의 없이 경제보좌관에 임명했습니다. 한편으론 의아했지만, 대통령의 본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주 52시간제 탄력적 운용 합의했으나…
하지만 1년여 동안의 경제 흐름과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역할을 되짚어보면서 김광두 교수의 고민은 깊어졌다. 2018년 5월에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8월에야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사임 의사를 표명했는데, 문 대통령은 “주 52시간 근무제의 탄력적 운용 방안에 대해 논의해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단둘이 마주 앉아 가슴에 담아 온 얘기들을 했습니다. 문 대통령 말씀 중에는 직무 수행을 하면서 겪은 인간적 고뇌도 포함돼 있었고, 나는 경제학자로서 문 정부에 참여한 동기와 기대, 결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주 52시간제의 탄력적 운용에 대해 경제정책회의 분과에서 논의해달라’고 하더군요.”
― 사임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니 계속 자리를 맡아달라는 거였네요.
“글쎄요. 그런 요청을 한 배경에는 내 사임 이유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배려가 있다고 판단해 그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2018년 10월 23일에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경제정책회의 분과가 열렸습니다. 김동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성윤모(成允模)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李載甲) 고용노동부 장관, 홍남기(洪楠基)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여하고 내가 문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주 52시간 근로제의 탄력적 운용을 추진하기로 모든 참석자가 합의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후 11월 15일에 청와대에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열어 여야 원내대표를 설득했고 정의당 외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 결과가 정반대인데요. 결국 주 52시간제가 관철됐습니다만.
“민노총이 반대한 겁니다. 결국 민노총 뜻대로 된 거죠. 그때 나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주어진 책무를 다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사의를 굳혔습니다. 상근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후임이 정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내 일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자의(自意)로 나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셈이 되었죠.(웃음).”
“기초 데이터 있어야 플랫폼 정부 가능”
― 문재인 정부는 민노총이 좌지우지했다는 말이 입증된 거네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밖에요. 민노총의 반대 때문에 대통령이 물러선 겁니다. 민노총은 이익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겁니다. 국가 전체 입장이 아니라 단체에 가입한 노조원의 입장에서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민노총, 한노총에 가입한 사람은 전체 노동자의 10% 수준밖에 되지 않으니 나머지 90%의 의견은 무시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 나머지 90%는 집단 활동을 안 하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요즘처럼 IT 기기와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인터넷 망이 잘 깔려 있는 나라에서 90%를 위한 소통 플랫폼을 만들어주면 되지, 그게 뭐가 어렵습니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됩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초 데이터 축적이 필수입니다. 일부 좌파에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합니다만 동일 노동의 범위가 명확합니까? 중국 음식 요리사와 이태리 음식 셰프가 동일 노동인가요?
이런 토론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직무 분석이 있어야 합니다. 유효한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사회 곳곳에 그런 기초 데이터가 있어야 합니다. 싱가포르가 강소국인 이유 중의 하나가 탄탄한 통계 기초 자료를 바탕으로 내외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각종 정책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원활하게 정책을 펴려면 부처 데이터가 한 군데에 모여 있어야 합니다. 기재부·노동부·산자부가 무엇을 하는지 클라우드에 올려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관련자들이 일괄적으로 볼 수 있어야 효율적 정책 소통이 가능합니다. 이런 기초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지 않고 공직자들이 자기들이 보유한 정보를 꼭꼭 숨기는 한 플랫폼 정부는 탄생할 수 없습니다.”
― 플랫폼 정부라는 말은 한동안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기초 데이터가 없으면 어떤 정부라도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OECD 경제 성적표, 저출산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놀라서 임기응변식 정책을 내어 놓아서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이익 집단이 세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런 기초 데이터 축적과 공유는 정말 중요합니다.”
“나머지야 스쳐 지나가는 자리일 뿐이고…”
김광두 교수는 2019년 1월부터 국가미래원장으로 복귀했고, 그해 가을 서강대 경제과 대학원에 ‘인적 자본론’을 개설해 강의를 시작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오후에도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경제안보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토론회를 연다고 했다.
“경제학 교수는 나의 천직입니다. 나머지야 스쳐 지나가는 자리일 뿐이고…. 인적 자본은 일정 수준 이상의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 건강 그리고 탄력성을 보유한 인간을 말합니다.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인적 자본 형성을 위한 투자는 기업, 산업, 국가의 경쟁력 강화 효과를 통해 안정적인 경제 성장과 1인당 국민소득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진영 갈등을 넘어서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마디로 참담합니다. 국론(國論)은 내전(內戰) 상태에 빠져 있고 경제 체질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국가공동체는 하나의 유기체(有機體)입니다. 국가 유기체 구성인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그 성과 수준이 높아집니다. 법과 제도가 유기체의 효율적 운용에 적합하게 설정되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이 상호 협조적일 때,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국가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사회 분열이 극심하고 경제 체질 개선 노력이 미흡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좋은 성과를 내긴 어렵죠.”
― 정부가 지난해 말에 발표한 GDP 대비 경제성장률은 2.2% 정도였습니다.
“세계 평균이 3%대인데 우리나라가 2%대라는 것은 경제 올림픽에서 하위 그룹에 속해 있다는 의미죠. 잠재성장률도 2020년 2%대를 기록했는데, 2040년부터는 0%대에 진입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OECD 국가 중 산업경쟁력이 5위(2016년)였던 대한민국이 2020년엔 6위로 밀렸고 앞으로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여 국제사회에서 우리 위치가 약화할 겁니다.”
“경제 양극화가 분열의 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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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3일, ‘혁신 24 새로운 미래’ 모임에 참석한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오른쪽). 사진=조선DB |
“분열의 시발점은 경제 양극화(兩極化)입니다. 여당·야당 모두 경제 양극화를 막지 못했고 오늘날 분열의 촉매제가 됐습니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너무 차이가 크면 두 그룹은 갈라지게 돼 있습니다. 격차는 내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자녀 세대로 전해집니다. 교육에서부터 불평등이 심화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의식 구조도 갈라집니다. 누군가는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을 하는데, 누군가는 백화점 문이 열리기 전부터 수백만원짜리 가방을 사기 위해 줄을 섭니다. 두 집단이 갈라지지 않을 도리가 없죠. 소득 양극화 지수는 2011년에 4.86이었는데 2022년에 5.23으로 치솟았습니다. 무엇보다 자산(資産)의 양극화가 더 심합니다.”
― 우리나라 사람의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 아닙니까.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文在寅) 정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부동산 양극화는 16.6(2011년)이었는데 2022년 29.8로 급등했습니다. 자산의 양극화가 심해지니 계층 분열이 생기고 갈등이 깊어집니다. 현재, 정부는 갈등을 줄일 대책이 없고 이를 타개하고자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도 없습니다. 야당은 무조건 ‘나눠 먹자’는 식(式)의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파괴적 비전’으로 ‘다 같이 못살자’는 얘기와 같습니다.”
김광두 교수는 오늘날 분열의 원인을 경제 양극화라고 봤고, 경제 양극화 중 상당수는 부동산 등 자산 격차와 소득 격차, 그리고 이것이 자식으로 대물림되는 악순환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구조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사라져”
“2023년에 가계와 기업, 정부 부채를 모두 더한 총부채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6000조원을 넘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한 해 벌어들이는 소득의 2.7배에 달합니다. 가계·기업·정부 모두 빚더미 위에 앉아 있습니다. 부채는 사람으로 치자면 과체중 상태를 말하는데 건강에 안 좋겠죠.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정상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엔 그런 움직임이 미약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분위기도 약합니다.”
―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군요.
“최근 7~8년 동안 구조조정을 한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을 하면 실업자가 나오고, GDP에 단기적인 타격이 있을 겁니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배가 고픈 것을 좀 참을 줄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5년에 3번이나 선거가 있으니 누가 앞장서서 구조조정 얘기를 꺼낼 수 있겠습니까. 인구감소, 고령화 문제까지 겹쳐 경제의 펀더멘털이 지속적으로 약해지고 있습니다.”
― 금융 정책을 사용하는 옵션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부채 수준이 높고 침체된 경제 상황에 돈 또한 엄청 풀려 있고 외환시장이 개방되어 있어서 금융 정책 수단의 선택이 어렵습니다. 다수의 재정학자는 지금과 같은 재정운용 상황이 지속되면 15년 뒤에는 재정 정책 수단이 고갈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 등 야당 정치인들은 GDP 대비 국가 부채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잘못된 접근법입니다. 선진국은 우리보다 고령화 수준이 높고, 고령화 과정에서 정부 지출이 많이 늘어난 것이 반영돼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지출할 세금을 감안하면 부채 비율은 더욱 올라갈 겁니다. 더구나 우리는 한국전력 등 공기업 비중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기 때문에 지금의 부채 비율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사단장이 작전하는데 합참의장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격”
― 경제 전망이 상당히 어둡군요.
“정부는 세밀한 시나리오를 갖고 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우왕좌왕하고 있고 일부 공직자는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보다는 개인 생활의 웰빙(well-being)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월급쟁이로 전락했습니다. 판사가 6시 땡 치면 퇴근하는 상황인데 재판이 신속하게 이뤄질 리 없지 않습니까. 국민 분열을 부추긴 데는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가 한몫했습니다. 중도를 표방한 유튜브를 거의 못 봤습니다. 좌든 우든 한쪽을 확실하게 챙겨야 구독자가 일정하게 확보가 되니까 그들은 더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물론 유튜버들이 활개를 치는 데에는 기존의 언론이 신뢰를 주지 못한 부분이 있겠지요. 그걸 유튜버들이 이용해 뉴스로 만들어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 워라밸을 중시하는 세대가 경제 주체가 된 것도 원인 중 하나 아닐까요.
“그런 문화 흐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직자에게는 ‘봉급은 비록 적지만 국가와 사회에 내가 이바지한다’는 프라이드(pride)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단어가 되고 있지만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청산이란 명목하에 열심히 일한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데, 이걸 학습한 공무원들이 소명을 다하지 않는 건 당연한 겁니다.”
― 그런 공무원들도 아직 있을 겁니다.
“공무원이 소명의식이 있어도 지금처럼 용산에서 모든 인사를 좌지우지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사권을 장관이 갖고 있어야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대통령실에서 모든 것을 다 결정하는데 누가 장관 말을 듣겠습니까. 현장 지휘관은 장관입니다. 마치 사단장이 최전방에서 작전을 펼치며 군(軍)을 지휘하는데 합참의장이 저 뒤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장관이 무력화되면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장관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줄 것이냐는 대통령 하기 나름입니다.”
― 낙하산 장관도 많고, 일종의 보은(報恩) 인사라며 대통령실이 나서기 때문 아닐까요.
“민주 정치에서 선거 때 나를 도와준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사람에게 맞는 일자리를 줘야지 그 사람의 직무 능력과 전혀 상관없는 자리에 앉히는 것은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나라를 망치는 길입니다. 보은을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 다들 좋은 자리를 원하니 그렇겠죠.
“특정한 어떤 자리를 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 자리가 그만큼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겠죠. 단순히 자기들이 권력을 쥐었다고, 또 임명할 수 있는 수많은 자리가 있다고 해서 자질이 되지 않는 사람을 임명하고 모든 자리에 관여하면서 국가가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의사들, 국민 불안 이용하겠다는 집단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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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일, 서강대학교 마태오관에서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 론칭 기념 모임이 열렸다. 오늘날까지 김광두 교수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연구원이다. 사진=조선DB |
“집단 이기주의는 결국 사회 경직화를 불러일으키는데 요즘 의사 문제가 그러합니다. ‘필수 의료에 문제가 있다’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입니다. 의사들이 극렬히 반대하면서 ‘우리가 국민을 불편하게 하면 너희 손해야’라는 식(式)으로 행동합니다. 이것은 분열을 이용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겠다는 겁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분열을 이용하는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등에 업고 상대방 세력을 타도하겠다며 싸움을 붙이는 격입니다.”
― 의료 분쟁을 분열을 이용한 집단 이기주의로 보는군요.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정부의 미숙함은 있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의사 증원에 찬성했지만, 국가가 사전에 정교한 시나리오를 가진 줄 알았지 이렇게 사후적으로 대응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실망한 겁니다. 대통령의 마음속에 세밀한 대책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의사들이 예상보다 거세게 반발하니까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노사(勞使) 싸움을 할 때 공장은 절대 파괴하지 않고 공장 밖에서 데모합니다. 지금의 의사들 행태처럼 병원을 떠나 환자를 볼모로 활용하는 것은 공장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국민의 불안, 불편을 이용하겠다는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 전공의들이 MZ 세대들이라 세대 간 갈등이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글쎄요? 의대 교수들도 다 사표를 냈잖아요. 젊은이들이랑 정부 간의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대안을 제시해 중재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거기에 편승했습니다. 의사들의 단체 행동에는 대통령이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불신도 깔려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을 현장에서 자주 만나서 누구보다 그들의 문화를 잘 알고, 병원 실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중재 노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 후보는 소통에 문제 있다”고 直言
김광두 교수의 이름 앞에는 그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대통령의 경제 선생’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김 교수는 박근혜(朴槿惠) 전(前) 대통령이 대선(大選) 후보 시절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힘찬경제추진단 단장,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인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당선 이후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최고 권력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모습을 물었다.
― 박근혜, 문재인 두 분의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한국이라는 움직이는 유기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딱 몇 사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필터로 걸러서 들은 거죠. 대통령이라는 권력자한테는 필터링이 돼버리면 좋은 얘기만 들어가게 돼 있는데 박 대통령이 그러했습니다. 그래도 ‘국민행복론’ ‘창조경제’와 같은 비전은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좋은 얘기만 듣다 보니 사실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일부 세력은 같은 당 사람들입니다. 박 대통령이 필터 소통을 하다 보니 같은 편조차도 자신들이 소외됐다고 느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광두 교수가 지난해에 낸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박근혜 의원(후보 선출 이전)은 ○○, ○○, ○○의 세 사람에게 정책, 정치, 일정 등 부분별 소통의 최종 게이트 키퍼(Gate Keeper) 역할을 맡기는 것으로 나는 인식하고 있었다.
“○○ 등이 성실한 사람인 것은 잘 압니다만, 이들에게 외부와의 모든 소통 라인을 주로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의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이들이 예의 바르지 못한 언행이라도 했어요?”
추가 설명을 했지만, 내 말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략)
대선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던 어느 날, 여의도 캠프에서 핵심 멤버들 15명 정도가 모인, 박 후보가 주재(主宰)하는 회의가 있었다. 나는 이날 소통 문제를 제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런 일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박 후보님은 소통에 문제가 있습니다.”
나의 표현 방식이 너무 직설적이고, 거칠었거나 서툴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취지는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으니 고치도록 노력해달라는 것이었다.〉
“윤석열, 가치 구현할 정책 비전 제시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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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30일에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는 토론회에 참석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의원(오른쪽 두 번째),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왼쪽 두 번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이사장이(왼쪽)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
“조용히 마음이 떠났다는 표현이 맞죠. 왜냐하면 내가 같이했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건 의리가 아닙니다. 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의리가 없으면 서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선에서 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던 시기에 이 대통령이 나에게 제안했던 KDI원장이란 직책을 사양했던 것도 나로선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 다른 한 분은 어땠나요.
“문재인 대통령은 필터링을 하지 않고 직접 소통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념 성향에 맞는 사람들 이야기를 주로 경청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듣겠다는 자세는 있었는데 실제 운용은 그렇게 안 했습니다. 국가 운용을 통합의 관점이 아닌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고 했다고 판단합니다. 부동산이 대표적입니다. 부동산은 자가, 임대 등의 형태가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임대 주택자 입장만 바라봤습니다. ‘임대 사는 사람들이 안됐으니까 그 사람을 도와야지’ 하며 내놓은 정책이 ‘임대차 3법’입니다. 이 법이 주택시장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시간이 흘러서 지금의 임차인이 나중에 자가 보유자가 될 때 어떤 일이 생길지 균형 있게 고려하지 못한 거죠.”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윤석열 정부에 몸담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겠지만 지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면 정책 비전이 약해 보입니다.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가치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구현할 큰 그림, 즉 정책 비전이 안 보입니다. 전쟁을 할 때에도 워맵(war map)을 놓고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지역, 상황에 따라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지역을 정하기 나름입니다. 큰 전략에 따라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지요. 이분은 그런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한정적인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말하지 않고 그냥 ‘돌파해’라고 하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박정희, ‘안 되는 부분도 얘기해 봐’”

― 미숙하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윤석열 정부의 얘기를 하나하나 들어보면 나름 일리는 있어요. 그러나 국가공동체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균형과 통합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어요. 재정건전성을 얘기하면서 재산세는 깎아주고, 공시지가 현실화를 미루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부자 감세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부동산 보유 양극화 지수가 2022년 현재 29.8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이 정열적이고, 정의감 있고, 간혹 돌파할 때 보면 용감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 참모들이 얘기하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용산의 기본적인 인적 구성이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 검사 그룹 위주입니다. 공직자들은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에 익숙해서 상관에게 대드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까?”
― 예스맨들만 있다는 소리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정치인이나 교수는 행정에 서툴지만 상대적으로 자기 고집이 있는 그룹이라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분명히 밝히지만, 공무원은 다릅니다. 사실 권력자 앞에서 자기 의견을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권력을 쟁취한 지 1~2년이 지나면 더 합니다. 앞에서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보기 싫은 것은 당연지사일 수 있죠. 그런 면에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소통에 탁월했던 분입니다. 박 대통령은 한 채널로만 얘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남덕우(南悳祐) 총리의 회고록을 보면 항상 보고를 받다가 ‘임자, 잘되는 것만 얘기하지 말고 안 되는 부분도 얘기해 봐’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먼저 그렇게 말을 하니 참모들이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균형 잡는 리더십입니다.”
― 권력자로서 쉽지 않은 행동인데요.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요 아량이고 성공한 정치지도자들의 미덕입니다.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이 겪은 경험에 의하면 누군가 누구를 이용하려 할 때, 그 사람은 이용하려는 대상에게 절대 나쁜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책임 맡고 있는 국가미래연구원은 2011년에 《외천본민(畏天本民)》이란 책을 냈어요. 박근혜 당시 의원이 대통령이 될 경우, 또 길게는 모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종대왕의 국정 운영을 깊이 연구해온 신세돈(申世敦) 교수가 집필했는데 세종대왕이 중요한 국사(國事)를 결정함에 있어 소통을 제일 중요시 생각한 것을 부각시켰습니다. 세종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직접 묻고 또 들었습니다. 신하들의 의견은 물론 과거 시험장에 나온 선비들의 의견도 들었고, 전(全)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태종이 왜 자신의 왕위 취임을 반대했던 위징을 죽이지 않고 옆에 두며, 항상 자신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 뒀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본소득, 사회주의로 가는 길”
― 이재명(李在明) 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대표의 기본소득론은 경제학에 나오는 건가요.
“기본소득, 토지공개념 모두 사회주의를 지향하자는 얘기와 같습니다. 기본소득이 제일 먼저 활발히 논의된 영국에서 이루어진 토론 내용 중에 ‘이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에서 돈 찍어서 재정 적자를 메우면 된다고요? 국제 감각이 없고, 국제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국제 경제 질서의 룰은 이미 선진국들이 정해놓았습니다. 만약 돈을 찍어 재정적자를 메운다면, 그 룰에 따라 한국의 주가는 폭락하고, 국제신용도가 떨어져서, 우리 기업들의 무역 활동이 정체(停滯)될 것입니다.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60%이고, 한국 증권시장의 외자 의존도는 30% 수준입니다.”
―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소리네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런 배경은 국제 경제 질서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성남시에서는 혹여 빚진 다음에 갚을 능력이 없다고 배짱부릴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럴 수 없습니다.”
― 다른 얘기인데 박근혜와 문재인 정부를 오가며 경제 프레임을 짜주다 보니 오해를 받은 것 같은데요, 박근혜 정부 때 경제부총리를 못 해서 문재인을 도왔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웃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가치관은 거기에 있으니까 그렇겠죠. 우리 같은 교수들의 가치관은 나름대로 추구하는 경제 질서와 구조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치인을 돕는 것이고 그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떠나는 거고 그런 겁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보수와 진보 간의 소통 채널 구축이었습니다. 이 사회가 좌우(左右) 진영 간 대립으로 경직성이 심화하고 있고, 이것이 국가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치인들 간의 대화가 어려우니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대화의 물꼬를 터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문 후보에게 경제 강의 한 번 해줄 수 있습니까?”(임종석)
김광두 교수의 이런 노력은 불과 몇 해 전 있었던 일이라 언론 보도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김 교수는 2016년에 경제개혁연구소의 이사장이었던 장하성(張夏成)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이었던 김상조(金尙祚) 교수와 함께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는 간판을 걸고 세미나 시리즈를 열었다. 장하성과 김상조는 발표와 토론에 참여할 진보 진영의 인사, 김 교수는 보수 진영의 논객들을 섭외했다. ‘소득과 부(富)의 불평등’ ‘노동 불평등, 그 원인과 해법’ ‘교육의 불평등, 백년대계의 개혁 방향’ 등이 주제였다. 한창 세미나를 하던 와중에 정계(政界)에서는 개헌 논의가 진행됐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슈가 폭풍처럼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2016년 초겨울의 어느 날, 당시 문재인 의원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임종석(任鍾晳)이 전화를 걸어 ‘문재인 후보에게 경제 강의 한 번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광두 교수의 얘기다.
“내 직업이 교수이고 강의하는 게 일인데 어찌 거절을 합니까. 국가미래연구원으로 찾아오면 강의를 한다고 했죠. 그때 문재인 의원은 차기 대통령 후보 1위였고 연구원으로 오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부드럽게 거절을 한 거죠. 그런데 ‘날짜를 알려주면 도시락을 준비해서 가겠다’는 겁니다. 내심 당황하면서 문 의원에게 할 강의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강의 주제가 뭐였습니까.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두 질서 간의 충돌 요인’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민주주의든 시장경제든 자유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평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시장 경제에서의 평등은 기회를 공평하게 주자는 사전적 평등이고, 민주 정치에서의 평등은 사후적 평등을 요구하는 성향을 갖습니다. 투표권이 한 명당 한 표씩 있으니까요. 그러니 사전적 평등과 사후적 평등이 충돌하게 돼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배분할 수는 없다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우파 경제학이고, 사후적으로 평등하게 배분하자는 데 방점을 두는 것이 좌파 경제학이죠. 강의가 끝나고 얼마 뒤에 문재인 의원, 임종석 실장과 함께 청진동 음식점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셨지요. 그때 도와달라기에 거절하고 딸이 지내는 미국 LA로 떠났어요.”
문재인의 삼고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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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사람중심 성장경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 김광두 교수가 서 있다. 사진=조선DB |
“경제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조직이 하는 일이 있느냐’니까 지금부터 활성화해서 미국의 NEC(1993년에 백악관 내에 설치한 경제정책기구)처럼 키우겠다며 말입니다. 문 대통령의 진심을 믿고 그가 나에게 원하는 좌우 진영의 통합을 모색하는 경제 정책의 조율에 최선을 다하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런 역할은 경제학자로서 내게 매우 보람 있는 일이고, 동시에 분열과 갈등에 휩싸인 한국 사회의 화합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 대통령에게 말씀드려 정책 조율 기능을 갖는 ‘경제정책회의’라는 분과를 국민경제자문회의 내에 신설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반대했지만, 청와대 비서실의 도움으로 2017년 가을에 분과 신설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분과의 기본 기능은 정책 조율이었습니다.”
― 의도도 좋았고, 교수님도 열의를 보이셨네요.
“그랬지. 문제는 대통령과의 소통 채널 확보 문제였는데 문 대통령은 나한테 ‘조수처럼 도와줄 사람’을 경제보좌관으로 임명하겠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고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을 나와 상의 없이 경제보좌관에 임명했습니다. 한편으론 의아했지만, 대통령의 본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주 52시간제 탄력적 운용 합의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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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 26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종석 비서실장, 문 대통령, 김광두 부의장. 사진=뉴시스 |
“문 대통령과 단둘이 마주 앉아 가슴에 담아 온 얘기들을 했습니다. 문 대통령 말씀 중에는 직무 수행을 하면서 겪은 인간적 고뇌도 포함돼 있었고, 나는 경제학자로서 문 정부에 참여한 동기와 기대, 결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주 52시간제의 탄력적 운용에 대해 경제정책회의 분과에서 논의해달라’고 하더군요.”
― 사임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니 계속 자리를 맡아달라는 거였네요.
“글쎄요. 그런 요청을 한 배경에는 내 사임 이유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배려가 있다고 판단해 그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2018년 10월 23일에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경제정책회의 분과가 열렸습니다. 김동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성윤모(成允模)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李載甲) 고용노동부 장관, 홍남기(洪楠基)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여하고 내가 문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주 52시간 근로제의 탄력적 운용을 추진하기로 모든 참석자가 합의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후 11월 15일에 청와대에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열어 여야 원내대표를 설득했고 정의당 외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 결과가 정반대인데요. 결국 주 52시간제가 관철됐습니다만.
“민노총이 반대한 겁니다. 결국 민노총 뜻대로 된 거죠. 그때 나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주어진 책무를 다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사의를 굳혔습니다. 상근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후임이 정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내 일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자의(自意)로 나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셈이 되었죠.(웃음).”
“기초 데이터 있어야 플랫폼 정부 가능”
― 문재인 정부는 민노총이 좌지우지했다는 말이 입증된 거네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밖에요. 민노총의 반대 때문에 대통령이 물러선 겁니다. 민노총은 이익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겁니다. 국가 전체 입장이 아니라 단체에 가입한 노조원의 입장에서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민노총, 한노총에 가입한 사람은 전체 노동자의 10% 수준밖에 되지 않으니 나머지 90%의 의견은 무시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 나머지 90%는 집단 활동을 안 하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요즘처럼 IT 기기와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인터넷 망이 잘 깔려 있는 나라에서 90%를 위한 소통 플랫폼을 만들어주면 되지, 그게 뭐가 어렵습니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됩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초 데이터 축적이 필수입니다. 일부 좌파에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합니다만 동일 노동의 범위가 명확합니까? 중국 음식 요리사와 이태리 음식 셰프가 동일 노동인가요?
이런 토론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직무 분석이 있어야 합니다. 유효한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사회 곳곳에 그런 기초 데이터가 있어야 합니다. 싱가포르가 강소국인 이유 중의 하나가 탄탄한 통계 기초 자료를 바탕으로 내외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각종 정책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원활하게 정책을 펴려면 부처 데이터가 한 군데에 모여 있어야 합니다. 기재부·노동부·산자부가 무엇을 하는지 클라우드에 올려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관련자들이 일괄적으로 볼 수 있어야 효율적 정책 소통이 가능합니다. 이런 기초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지 않고 공직자들이 자기들이 보유한 정보를 꼭꼭 숨기는 한 플랫폼 정부는 탄생할 수 없습니다.”
― 플랫폼 정부라는 말은 한동안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기초 데이터가 없으면 어떤 정부라도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OECD 경제 성적표, 저출산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놀라서 임기응변식 정책을 내어 놓아서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이익 집단이 세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런 기초 데이터 축적과 공유는 정말 중요합니다.”
“나머지야 스쳐 지나가는 자리일 뿐이고…”
김광두 교수는 2019년 1월부터 국가미래원장으로 복귀했고, 그해 가을 서강대 경제과 대학원에 ‘인적 자본론’을 개설해 강의를 시작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오후에도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경제안보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토론회를 연다고 했다.
“경제학 교수는 나의 천직입니다. 나머지야 스쳐 지나가는 자리일 뿐이고…. 인적 자본은 일정 수준 이상의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 건강 그리고 탄력성을 보유한 인간을 말합니다.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인적 자본 형성을 위한 투자는 기업, 산업, 국가의 경쟁력 강화 효과를 통해 안정적인 경제 성장과 1인당 국민소득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진영 갈등을 넘어서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