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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 차단? 제가 무슨 內侍입니까?”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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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특검 팀장 당시 우리 측 요구 흔쾌히 받아줘”
⊙ “2004년 총선 유세 때 박근혜 대통령 처음 만나… 총선 후 젊은 당협위원장과의 만남에서 다시 만나”
⊙ “가정집 식사 대접하고 싶어서 대표에서 물러난 박 전 대통령을 집으로 모셔 저녁 식사”
⊙ “박 대통령, 2012년 총선 때 저녁도 굶고 1시간30분 동안 군포 시장 가게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고 지원 유세”
⊙ “추경호 장관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는 출마 않을 것… 전·현직 대통령 대리전 되면 안 돼”
⊙ “박 전 대통령 구속은 윤석열 아닌,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노승권 1차장 등이 김수남 검찰총장과 상의해서 결정”
⊙ “박 전 대통령은 사전에 최서원씨가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는데 공범 판결 받아”
사진=조준우
  대가(代價) 없이 한 사람을 7년 넘게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것도 별의별 오해를 받아가면서 말이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은 2인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제일 신임했던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숨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 전 대통령 주변은 사람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순전히 자신의 ‘개인기’로 측근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줄 수 있는 마지막 정치인이었던 까닭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개인기만으로도 한 정치인의 국회의원 당선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정치인은 3김(YS·DJ·JP)과 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2016년 말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흔들렸다. JTBC의 소위 ‘최순실 태블릿’ 의혹 보도 이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촉발하는 등 여론은 박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고, 2017년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인용’에 따라 직(職)을 상실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흔들렸을 때, 촛불집회가 촉발했을 때,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했을 때,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구속됐을 때 그 많던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은 신기루(蜃氣樓)처럼 사라졌다. 물론 재판 때마다 재판장에 빠짐없이 방문한 이들도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옆에는 유영하(柳榮夏·61) 변호사만이 홀로 자리를 지켰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덕에 배지를 단 인물도 아니었다.
 
 
  “유영하가 박근혜 눈귀를 가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유영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다. 유영하가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차단한다”였다.
 
  202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의 후원회장을 맡고, 공개 지지 선언까지 했지만, 모함은 계속됐다. “수술하고 퇴원한 다음 날에도 몸을 돌보지 않고 법정에서 저를 위해 변론을 했다”는 박 전 대통령의 말에도 “(박 전 대통령이) 유 변호사의 가스라이팅에 묻혀 산다”는 뒷말이 나왔다. 급기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유튜브발 가짜 뉴스까지 등장했다.
 
  진절머리가 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유영하 변호사는 묵묵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와왔다. 주로 박 전 대통령과 언론 사이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방송이나 신문에 그의 얼굴, 이름이 자주 보이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 왔다.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유 변호사에게 ‘박근혜’가 아닌 ‘유영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2023년 12월의 첫날 유영하 변호사의 후배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와 만났다.
 
  ― 정신적·경제적으로 힘들죠?
 
  “뭐 별로 힘든 것 없습니다.”
 

  ―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름을 팔아 돈 많이 벌어 호의호식(好衣好食)한다던데요.
 
  “지난번 선거 나갔을 때 제가 박근혜 전 대통령 비자금을 관리한다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냥 별 대응 없이 넘겼습니다. 제가 뭐라고 한들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인정을 하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있었습니다. 좀 지나니까 저절로 가라앉았습니다.
 
  대구 시장 경선에서 떨어지고 난 후 대통령께 제가 이런 이야기가 또 돌아다녔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이 돈 것이 처음이 아니고, 안에 계실 때도 이런 말이 있었거든요. 대통령께서도 이런 말들을 편지 등을 통해 여러 번 접해보셨기 때문인지 별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불교에서는 구업(口業)을 짓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말을 잘못해 짓는 업으로 가장 중한 죄입니다. 남을 말로 해코지한 사람들은 그걸 자기 몸으로 나중에 다 받는다더군요. 그게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이고요. 그래서 남에게 이유 없이 해코지한 사람은 언젠가는 자기가 뿌린 대로 그 대가를 다 받을 것이기에 굳이 제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구업은 험담, 욕설에서부터 거짓말, 이간질, 아첨하거나 쓸데없는 말까지 모두 해당한다.
 
 
  “모든 것은 대통령께서 직접 결정”
 
  ―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정말로 차단했습니까.
 
  “제가 대통령과의 만남을 막는다, 전화도 차단한다, 편지를 보내도 안 보여준다는 뭐 이런 식의 소문이 나 있더라고요. 지역 언론도 묻는데, 제가 무슨 내시(內侍)입니까? 지금 제가 기자님이랑 인터뷰하는 이 시각에 자신들이 사저(私邸)로 가서 면회 신청을 하라고 하세요. 그러면 여기 서울에 있는 제가 어떻게 차단을 할 수 있습니까? 사저에 있는 경호관에게 신청하면 대통령님께 전달이 되고 대통령께서 그에 대한 답을 주시면 그대로 경호관들이 전달합니다. 모든 것은 대통령께서 직접 결정하십니다. 대통령께서는 모든 편지를 다 읽으시는데, 내용 중에 저를 욕하는 게 있으면 보여주면서 안타까워하시죠. 내용 중에는 편지도 제가 먼저 봐서 없애버린다는 것도 있던데, 대통령께 보낸 편지는 이를 받은 경호관이 곧바로 대통령님께 전달해 드립니다. 하도 말 같지도 않은 거라서 대꾸할 가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한테 어떤 말을 듣고 그런 편지를 보냈는지 오히려 안쓰럽습니다.”
 
  ― 혼자 변호하기 위해 변호인 임명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말을 만들어도 그럴듯하게 해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믿지 않겠어요? 대통령에 대한 기록이 처음 변론을 맡았을 때 거의 12만 페이지가 되었고 그 이후에 점점 더 늘어났는데 제가 무슨 철인(鐵人)이고 천재라고 혼자서 그 기록을 보면서 검찰, 법원과 상대할 수 있습니까?”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는 어떻게 맡게 되었습니까.
 
  “대통령께서 당시의 민정수석비서관을 통해 변호를 맡아달라고 연락이 온 게 2016년 11월 13일이었습니다. 그날 바로 제가 몸담고 있던 법무법인에 사표를 내고 나왔습니다. 제가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는 보도가 나가면 기자들이 몰려와서 법인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대표님께 말씀을 드리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선 사무실 구하는 것이 제일 시급해서, 혼자서 법인 사무실 부근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에 가서 그곳에서 추천해준 오피스텔(17평형)을 월세로 얻어 들어갔습니다. 당시 사무원도 없어서 오랫동안 제 선거를 도와주었던 후배에게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있었습니다.”
 
 
  “변호사들, 박근혜 변호 거절”
 
사진=조준우
  ― 변호사들을 더 구해서 일할 수는 없었습니까.
 
  “처음에는 대통령에 대한 조사만 준비하면 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주변에 알고 있던 법조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검찰 선배도 있었고, 잘 알던 법원 출신 변호사들도 있었는데, 당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모두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중에는 평소 제가 굉장히 가깝다고 생각했던 분들도 있었는데 다 거절을 하니 저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소개받은 고검장,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을 찾아가 변호를 부탁했는데 ‘조금만 고민해보겠다’라고 했어요. 며칠 뒤 물어보면 모두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분이 전화해서, 저도 잘 아는 선배가 변호를 맡아준다고 하니 같이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 날 ‘변호를 맡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 변호인을 선임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분위기가 엄청난 기세로 일어나고 있었고, 비난 분위기가 정말 험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변호를 맡는 데 부담을 느꼈다고 생각을 합니다. 본인은 맡고 싶어도 가족들이 반대해서 맡지 못한 분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당시 제가 우리 법조(法曹)에 대해 정말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평소와 너무 다른 모습에 오히려 제가 당황스러웠고 ‘정말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많이 서운했겠습니다.
 
  “제가 혼자 변호를 맡으려고 오겠다는 변호사들을 막았다고요? 그런 말을 만들어 퍼뜨린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제가 되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누구한테 그런 말을 들었는지, 그런 거짓말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누가 이런 말을 만들어 퍼뜨렸는지 짐작이 가지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터무니없이 남을 모함하면 다 자신이 돌려받습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대통령님과 별 인연이 없던 한변(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동찬, 채명성, 이상철)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
 
  ―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습니까.
 
  “2004년도 4월 14일 처음 뵈었습니다. 4·15총선(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을 앞두고 제가 군포에서 김부겸 전 의원이랑 붙었었거든요. 이날 2시40분에 대통령께서 우리 군포에 지원 유세를 오셨습니다. 15분 유세하고 가셨는데 그게 첫 만남이었죠.
 
  선거에서 패배하고 난 뒤에 박근혜 당시 대표 비서실장을 했던 동문(연세대)인 이성헌 선배(현 서대문구청장)가 ‘젊은 위원장 몇몇과 대표님(박근혜 전 대통령)이랑 한 번 보려고 하는데 어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좋다고 했죠. 저를 포함해 젊은 당협위원장 4~5명이 대통령과 함께 식사했습니다. 그때가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 그때 자리 분위기가 어땠나요.
 
  “아마 동아일보사 부근에 있는 일식당에서 뵌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당시에 폭탄주가 몇 잔 돌았고, 제 차례가 됐을 때 제가 폭탄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선배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을 했습니다. ‘대표님, 저는 역사를 잘 모르지만, 역사는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있고, 창조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으며, 기록한 역사를 읽는 사람이 있고, 읽은 역사를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대표님께서 힘드시겠지만, 역사를 창조해주시면, 제가 비록 능력이 부족하지만 낱낱이 기록해 후세가 평가할 수 있도록 할 테니 대표님께서 역사의 십자가를 져주시라’고.”
 
  ― 박근혜 전 대통령 반응은 어땠습니까.
 
  “정확히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2주쯤 뒤에 성헌이 형이 전화를 해 조만간 다른 위원장 모임이 있는데 또 참석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형, 저 저번에 대표님 뵈었잖아’라고 하니까 ‘아니, 너 그냥 같이 가자’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간다고 했죠. 가서 대통령께 어떤 말씀을 드릴까 고민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외가 쪽 친척이라는 소문 돌기도”
 
  ― 그래서 어떤 말씀을 드렸습니까.
 
  “당시 당내 일각에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흔드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로 인해 한나라당이 거의 소멸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을 때, 그런 당을 천막 당사와 붕대 투혼을 통해 살려냈는데 그런 비판을 하니, 저는 보기에 안 좋더라고요. 우선 양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을 만나면서 절제된 언어 구사와 품격, 애국심 등을 보았는데,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정말 저분(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한 번 하시면 좋겠다.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정도의 어젠다를 간단하게 적어서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내용을 공개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 변호사에 대한 신임은 각별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직을 유 변호사에게 맡겼다. 원래 초선(初選) 국회의원이 맡아온 자리였다. 박 전 대통령은 원외(院外)인 유 변호사에게 “지금은 힘드시지만, 나중에 크게 빛 보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정치권에 소문이 돌았어요. 제가 (박근혜) 대통령 외가 쪽 친척이라고.”
 
  ― 당시 박 전 대통령도 알고 있었나요?
 
  “대통령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2006년 당시 대통령께서 한나라당 대표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 중 신촌에서 커터 테러를 당했을 때 저는 군포에서 시장선거 유세를 돕다가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그 뉴스를 보았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군포에 오셔서 지원 유세를 하고 가셨는데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길로 바로 세브란스병원으로 올라가서 대통령께서 수술을 마치고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다가 수술방에서 나오시는 대통령님을 뵙고 내려왔습니다. 그 이후 테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고요.
 
  처음 밝히지만, 대통령께서 당시 한나라당 당대표직을 내려놓고 난 후인, 2006년 8월경 저의 집으로 대통령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성헌 선배와 다른 정치인 한 분도 같이 있었고요. 그때에도 저는 대통령께 사진을 부탁하거나 또는 글을 부탁해서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누구한테 말한 사실도 없고요. 그저 조용하게 일반 가정집의 식사 한 번 대접해 드리고 싶었던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었습니다.”
 
 
  김경준과의 만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된 유 변호사는 2007년 미국으로 건너가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 전 BBK 투자자문 대표를 만나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5년 전 이 일을 트집 잡으며 2007년 대선 당시 BBK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기획 입국’을 처음 시도한 것은 민주당이 아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 측이라고 공격했다.
 
  “2007년 3월 정인봉 선배(박근혜 경선 캠프 법률특보)가 전화를 했어요. BBK 김경준을 만나러 자기가 가야 하는데, 사정이 생겼으니 제게 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간 겁니다. 김경준씨를 변호한 심인섭 미국 변호사와 함께 김씨를 만났죠. 그런데 제가 검사였잖아요. 특수부와 강력부 검사를 했는데 ‘김씨의 말엔 거짓이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고 자꾸 말을 돌렸거든요.”
 
  ― 김씨에게 기획 입국을 제안했나요?
 
  “제가 그럴 힘이 있습니까. 김경준이 제게 한국에 들어가면 변호사비가 얼마나 들 것 같냐고 묻기에 ‘한국에는 독특한 전관(前官)예우란 게 있다. 대법원까지 가면 한 5억원 정도 들지 않겠느냐’고 답해줬어요. 그랬더니 제게 그 비용을 빌려줄 수 있냐고 하더군요. 제가 ‘내가 돈도 없지만 내가 돈이 있다고 해도 빌려주게 되면 너를 매수한 것으로 오해받지 않겠냐, 그래서 안 된다’고 했죠. 잠시 후에 김씨가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를 사면시켜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죠. ‘내가 그걸 어떻게 결정하고 대답을 하느냐, 그건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고 그건 조건이 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 2007년 4월에도 김경준을 만났는데요.
 
  “서울로 돌아오고 난 후 며칠 뒤인데, 그게 3월인지 4월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심인섭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 김경준이가 BBK 자료를 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갔죠. 그런데 아무것도 주지를 않았어요. 심 변호사가 미안한지 저녁을 사주어서 먹고, 그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심 변호사가 이메일로 관련 자료 몇 개를 보내준 적은 있습니다.”
 
 
  운명을 바꾼 초등학교 동창의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총선 지원 거부를 선언했던 2008년 당시 경기 군포에서 출마했던 유영하 변호사의 사무실 개소식에는 참석했다. 사진=조선DB
  ― 그래도 이명박(李明博) 정부 탄생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았습니다.
 
  “제 지역구가 험지(경기 군포, 당시 김부겸 민주당 의원)였잖아요. 당시 여러 분이 저와 공천 경쟁을 했어요. 그분들 중에는 당시 최고 실세(實勢)라고 불리던 분과 막역한 사이라는 노동운동가도 있었고, 또 다른 분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신 분도 있었고요. 공천심사 날짜가 제 기억으로는 아주 늦게 잡혔어요. 지역에서 저는 절대 공천을 받지 못한다고 소문도 나 있었고요. 다행히 여론조사로 후보를 공천해 제가 받았죠. 지역 여론은 좋았거든요. 당시 친박 인사들이 대거 낙천(落薦)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면서 총선 지원을 안 한다고 했는데, 딱 한 번 해주신 게 제 사무실 개소식 때 오신 겁니다.”
 
  유 변호사는 2008년 총선에서 김부겸 전 의원에게 패했다. 하지만 그는 2012년 또다시 군포에 도전했다.
 
  “김부겸 의원이 한나라당에 계속 있었다면 정치를 안 했을 겁니다. 제가 1973년 대구 서구에 있는 서부초등학교에서 6학년까지 다니다가 군포로 가족이 다 이사를 가게 돼서 군포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래서 6학년 2학기를 다니고 군포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2003년 12월 말경, 저랑 정말 친한 초등학교 동창과 맥주를 마시다가 친구가 ‘너 총선에 한 번 출마하면 어떻겠냐’고 했죠. 처음에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고 핀잔을 주었는데 사람 운명이 참 모르겠더라고요. 2004년이 되자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출마 이야기를 집사람에게 했는데 엄청 반대를 했어요.”
 
  ― 부인 입장에서는 많이 걱정됐겠지요.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공천 신청을 했고 때마침 당시 한나라당에서 지역구 몇 군데를 정해 언론에 면접 과정을 공개하는 공개면접을 했는데 군포가 포함되었어요. 그래서 공개면접을 했는데 면접 후 공천심사위원들이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느낌은 좋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검사 사표가 수리돼서 저녁에 송별 회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식 도중에 중앙지 기자 한 분이 전화를 주셔서 ‘내일 단수후보로 발표가 될 것이다’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렇게 정치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정치에 들어서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에 다른 언론을 통해 몇 번 이야기했기 때문에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군포에서 3번 낙선
 
  ― 그런데 계속 낙선했지요.
 
  “사실 17, 18대 연이어 낙선을 하자 집에서는 ‘그만하라고, 군포에서는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고 말렸어요. 그런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한 번 더 도전해보겠다. 정말 한 번 더 해서 안 되면 포기하겠다.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제가 17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난 뒤, 제 선거를 도와주셨던 분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위원장님도 이제 떠나시겠네요?’ 그래서 제가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하니깐 ‘그전에 오신 분들이 한 번 낙선하면 다 떠나서 새로 위원장이 오곤 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분한테 ‘저 안 떠나요’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한 번 마음먹으면 고집이 좀 있어요. 그래서 다시 19대 출마를 했지만 또 2.1% 차이로 낙선했죠. 그래서 3번 심판을 받았으면 됐다고 생각해서 19대 낙선하고 난 뒤 군포에서 더 이상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말을 했죠. 그동안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해단식에서 말했습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 변호사를 위해 선거 전 마지막 날까지도 군포 유세 현장을 돌았다.
 
  “선거 바로 전날 안봉근 비서관한테 전화가 왔어요. ‘형, 지금 대표님이 차 돌려서 형님께 가고 있어요’라고 하기에 ‘왜?’라고 물으니 ‘형이 1% 지고 있다는 보고서를 받으시고 차를 돌리라고 하셨다’라고 해요. 당시 저는 산본 중심상가에서 유세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미 대통령께서 그 전날 유세 지원을 하셨고 모두 3번을 다녀가셨기 때문에 더 오시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오신다고 하니 ‘군포시장으로 오시라고 말씀드려’라고 했죠. 그때가 저녁 7시 정도였는데, 대통령께서 저녁도 굶으시고 1시간30분 동안 시장 가게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고 지원 유세를 해주고 가셨습니다. 당시 대통령께서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 하시면서 차에 타시는데 차 안에 드시지 않은 김밥 한 줄이 보였습니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꼭 살아 돌아가서 도와드리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죠.”
 
 
  계속된 불운
 
유영하 변호사는 2016년 총선 당시 서울 송파을에 단수공천됐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 파동’으로 공천이 무산됐다. 그해 3월 25일 보류된 5명의 새누리당 후보 중 유재길·유영하·정종섭·추경호 후보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김무성 대표의 최고위 복귀를 촉구했다. 사진=조선DB
  ― 안타깝지만 또 패배했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이죠. 낙선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집사람하고 바닷가나 가자고 해서 강원도를 향해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직감적으로 대통령님 전화인 걸 알았는데 받기가 좀 그랬어요. 그렇게 도와주셨는데 죄송하고 면목도 없고…. 나중에 전화를 드리려고 했죠. 그런데 연이어 두 번, 세 번 계속 오는 겁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 후 받았더니 역시나 대통령님 전화였어요.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데 속에서 울컥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께 ‘저는 작은 선거에서 졌지만, 대표님께서 앞으로 남은 큰 선거에서 이기시면 됩니다. 제가 마지막까지 도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유 변호사는 약속대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고 네거티브 대응팀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 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을 꺾고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었지만 유영하 변호사에게 국회의원 배지만은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3월 유 변호사를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으로 배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당시 세간에서는 유 변호사가 청와대로 갈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끝내 그는 청와대에 입성하지 못했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유 변호사는 서울 ‘송파을’ 지역에 단수공천됐다. 그러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옥새 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무산됐다. 김무성 대표가 공천장에 날인을 거부한 것이다.
 
  “당시를 떠올리면 솔직히 억울하죠. 집사람이 엄청 충격을 받았고 나중에 병을 얻어 5년간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그게 제일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당의 결정이기 때문에 저는 바로 승복하고, 그길로 해단식을 하고 사무실을 폐쇄했습니다. 속리산에 있는 아는 스님의 암자로 가서 일주일 넘게 있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21대 때 구미 출마 제안 거절”
 
2020년 3월 4일 유영하 변호사는 보수 세력 단결을 호소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사진=조선DB
  ― 21대 총선 때도 논란에 휘말렸죠.
 
  “2020년 2월부터 3월까지 당시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 쪽에서 여러 번 중간에 청와대 수석을 지낸 분을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저보고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구미 지역에 출마해달라더군요. 제가 국회의원 배지에 목숨 건 사람이었다면 ‘고맙습니다’ 하고 출마했을 겁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께서 안(구치소)에 계시는데 제가 출마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드렸습니다.”
 
  ― 다른 사람이 곁에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저만 박근혜 대통령 옆에 있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 차단하고, 총선도 출마 안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당시 저 이외에 다른 사람을 안 만난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치소에 계시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겁니다. 가족들한테도요. 한 명은 봐야 하는데 어차피 저는 다 봤으니 저를 찾은 거죠.”
 
  ― 21대 총선을 앞두고 출마 제안이 공식적으로 온 것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알고 있습니까.
 
  “대통령께 말씀을 드렸죠. 이런저런 제안이 와서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요. 2020년 3월 4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옥중편지를 공개했습니다. 이날 공관위에서 연락을 하기에 ‘죄송합니다’ 하고 끝냈습니다.”
 
  ― 21대 때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했었죠.
 
  “자신 때문에 제가 총선에 출마 못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박 대통령께서 비례로 출마하면 어떻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다음 날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한 겁니다.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저도 정치판에 있었는데 왜 촉이 없겠습니까? 다만 어른께서 말씀하시니 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안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유영하 변호사는 2020년 3월 4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서로 분열하지 말고 역사와 국민 앞에서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란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자필(自筆) 서신을 공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서신에서 “여러분의 애국심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저도 하나가 된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이는 2020년 4·15 총선에서 보수 진영이 ‘반문(反文)연대’로 뭉치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다음 날인 5일 유 변호사는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했다. 김형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유 변호사와 같은 중요 인사들이 우리 당에 들어오는 것에는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유 변호사가 미래한국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이후, 미래한국당 내에서는 ‘자칫 박근혜 전 대통령 이슈가 지나치게 부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다수 제기됐다. 유 변호사는 비례대표 공천서 탈락했고, 박 전 대통령은 격노했다.
 
 
  “총선에 나쁜 영향 없는 방향으로 결정할 것”
 
  2024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경북의 최대 관심사는 유영하 변호사의 출마 여부다. 이미 지역 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달성군에 유 변호사가 출마할 것이란 설이 나오고 있다.
 
  “지금 아시다시피 달성군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역구입니다. 현 정부의 부총리를 지낸 분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다시 출마하시겠다고 하는데, 전직 대통령의 측근이 공천 경쟁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작은 시끄러움이 큰 싸움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대통령께 말씀을 드렸고, 큰 틀에서 수긍을 하셨습니다. 현명하게 잘 판단해서 이번 총선에 나쁜 영향이 없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겠습니다.”
 
  ― 희생적 결단이네요.
 
  “희생이 아니고요. 전·현직 대통령의 대리전(代理戰)이 되면 자칫 그게 수도권 선거까지 여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되잖아요.”
 
  ― 박근혜 전 대통령 보좌를 위해서는 대구에 출마해야 하잖아요.
 
  “현실적으로는 그렇죠. 대통령이 계실 동안은 대구에서 정치를 해야죠. 대구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저는 고향을 오랫동안 떠나 있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대구에 대한 애틋함이 있습니다. 예전에 대구가 가졌던 자존감을 되찾게 하고 싶습니다.”
 
 
  “달성군과 가까운 지역 출마 생각”
 
  ― 대구 서구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더군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갔기 때문에 서부초등학교를 졸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직도 동창들이 그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어릴 때 살던 곳이기 때문에 친척도 있고, 지인도 친구도 있고 편하죠. 낙후된 동네를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대통령께서 달성군에 계시니까, 달성군과 가까운 지역 출마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달성군과는 달서구가 붙어 있잖아요.
 
  “달성군 다사면과 달서구가 맞닿아 있습니다. 대통령 계신 곳과 지리적으로는 가깝습니다. 달서구는 대구시 구(區) 중에 가장 큰 지역이고 중심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번에 국회 입성하면 초선입니다.
 
  “그렇죠. 요즘 지역 여론을 들어보면 예전에는 TK 출신 정치인들 중에서 중앙무대에서 큰 역할을 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이 없지 않냐라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수(選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정치인들의 그릇의 가치와 무게는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과 박근혜의 만남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 7일 오후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해 박 전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尹錫悅)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악연(惡緣)으로 얽혀 있다. 윤 대통령은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이어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일했다. 이보다 앞서 윤 대통령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국회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가 좌천(左遷)당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인 2021년 12월 사면됐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22년 4월 12일 대구 달성군 박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아가 박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 회동 후 “아무래도 과거가 있지 않나”라며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음속으로 가진 미안함, 이런 것을 말씀드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취임식 참석을 요청해 박 전 대통령이 한 달 뒤인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2023년 10월 26일 윤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다시 만났다. 윤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식 이후 약 1년 5개월 만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후 다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집 현관 계단 앞에서 윤 대통령을 맞았다. 윤 대통령이 “지난번 왔을 때보다 정원이 잘 갖춰진 느낌”이라고 인사하자 박 전 대통령은 “오신다고 해 잔디를 깨끗이 정리했다. 이발까지 한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집 현관 진열대에는 지난달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 후 두 사람이 현충원 오솔길을 함께 걸어 내려오는 사진도 진열돼 있었다. 윤 대통령이 사진을 언급하면서 “누가 (우리 두 사람이) 누나와 남동생 같더라고 얘기하더라”고 말해 박 전 대통령이 한껏 웃었다고 한다.
 
  ― 분위기가 좋아 보이던데요.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가 얼마나 엄중하고 바쁜지 잘 알고 계십니다. 현직 대통령께서 바쁜 국정(國政)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셔서 사저를 방문했으니 당연히 예의를 갖춰야죠. 제가 대통령실을 통해 윤 대통령께서 평소 즐겨 마시는 차와 좋아하시는 과일 등을 알아본 후 준비를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윤 대통령에게 감과 배, 얼그레이 밀크티를 대접했다.
 
 
  “특검 시절 윤 대통령, 요구 조건 흔쾌히 받아줘”
 
  ― 두 분 간 구원(舊怨)은 해소됐다고 보는 게 맞습니까.
 
  “제가 검사 출신이라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는 게 아니고요, 특검(特檢) 조사를 앞두고 당시 특검 수사팀장이던 윤 대통령과 조사 일정 등에 대해 협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윤 대통령이 제가 요구한 여러 가지 조건을 흔쾌히 받아주어 30분 만에 협의를 끝냈습니다.”
 
  ― 아, 그렇습니까?
 
  “윤 대통령은 검찰 선배이고 여러 번 만난 적도 있어서 편하게 협의를 했습니다. 저는 ‘형님’이라고 호칭을 했고, 윤 대통령은 저를 ‘유공(柳公)’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당시 보도를 보면 특검 측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측 요구를 잘 안 받아준 것 같던데요.
 
  “대통령 조사를 앞두고 특정 방송사를 통해 조사 일정이 공개됐습니다. 그래서 그 경위를 확인해보니까 특검 측에서 이를 알려준 것으로 확인이 됐고 그래서 다른 일정을 잡아서 조사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다음 일정 조율 때는 윤 대통령이 나오지 않고 다른 특검보인 검찰 선배가 나왔습니다.”
 
  유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때 특검보와 다른 한 분 등 두 분이 나오셨는데, 새로 협상에 나온 특검 측 관계자는 전에 합의된 내용과 다른 내용을 요구했습니다. 그중 가장 첨예하게 부딪친 것이 대통령에 대한 조사 시 녹음·녹화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게 당신 뜻인지 특검 뜻인지 확인해서 통보 달라’고 하니, 조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조사받는 사람이 따지는 거지, 조사하는 사람이 따질 문제는 아니다. 무슨 참고인 조사를 녹음·녹화합니까. 억지 좀 부리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자기들 말만 하더라고요.”
 
  2017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수사 기간 종료를 하루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면(對面)조사가 무산된 이유를 공개했다. 특검 대변인 역할을 맡았던 이규철 특검보는 그해 2월 27일 브리핑을 통해 “특검은 조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돌발 상황 예방을 위해 녹음·녹화를 원했으나, 대통령 측은 불가(不可) 입장을 고수했다”면서 “최종적으로 (대면조사가) 무산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뇌물 먹은 범죄자로 만든 박영수 전 특검은 최근 스스로 구린 돈을 챙긴 특대형 부패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근혜 구속,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 결정”
 
  ―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는 건 오해네요.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한 것이 아니라, 당시 김수남이 총장으로 있던 검찰에서 구속한 것입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노승권 1차장 등이 검찰총장과 상의를 해서 결정을 한 것이죠.”
 
  2016년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것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태블릿PC’는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 초기에 중요한 증거 역할을 했다.
 
  일각에선 “태블릿PC가 최씨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고, JTBC의 입수 경위도 불분명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태블릿PC가 탄핵 사태를 촉발한 계기가 된 만큼 조작 여부에 대한 진상도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기자가 취재한 바로는 JTBC가 텅 빈 사무실의 고영태 서랍에서 태블릿PC를 입수하게 된 경위와 그 태블릿PC가 과연 최서원씨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혹이 있는 게 사실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태블릿PC 사용자를 최서원으로 특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태블릿PC 소유와 관련된 내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유죄의 주요 쟁점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서 그 논란은 사그라져 갔다.
 
  그런데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면서 국정 농단의 증거가 된 태블릿PC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태블릿PC 문제는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송 전 대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태블릿PC를 조작했다’는 변희재씨의 주장을 언급하면서 “태블릿PC 증거 조작 의혹으로 변희재씨가 지속적으로 (한동훈 장관) 집 앞에까지 가 데모를 해도 아무 대응을 안 하고 있지 않으냐. ‘한동훈 검찰’은 증거 조작의 달인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7년 전에는 태블릿PC의 출처가 분명하게 밝혀졌다고 주장했었다. 2016년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송 전 대표는 그해 11월 열린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어버이연합 수사를 촉구하며 태블릿PC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송 전 대표는 “어버이연합이 (태블릿PC 관련) 손석희 JTBC 사장을 고발했다. 최순실씨의 태블릿PC 출처는 (청와대 행정관) 김한수가 선물로 준 것으로 밝혀졌는데, 무고죄(誣告罪)로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었다.
 
  아마 태블릿PC와 관련한 진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박 전 대통령을 변호한 유영하 변호사가 가장 잘 알 것이다.
 
 
  “박근혜 뇌물죄 공범 성립 이해 안 돼”
 
2022년 4월 12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구 달성군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했을 때, 유영하 변호사가 그를 맞이했다. 사진=조선DB
  ― JTBC 태블릿PC 문제가 또 나왔네요.
 
  “태블릿PC가 조작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있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태블릿PC 안에 들어 있는 관련 기록을 조작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개입해야 합니까. 포렌식은 검사가 하지 않고 담당하는 직원들이 따로 있어요. 그분들이 이를 조작할 무슨 이유가 있죠? 조작해서 자신들에게 어떤 이득이 있나요? 만약에 조작을 했다면 이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침묵할 수 있다고 봅니까? 검사, 포렌식을 담당한 직원 등등 그 사람들 입을 어떻게 다 막습니까.”
 
  ―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탄핵 사태를 촉발한 계기가 된 건 맞지 않나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태블릿PC 때문에 탄핵을 당한 게 아닙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한테 뇌물을 받았느냐는 겁니다. 검찰이 든 기소 근거는 공모자 중 직접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동으로 범죄 책임을 묻는 ‘공모공동정범(共謀共同正犯)’ 법리(法理)였습니다. 어쨌든 공모공동정범이 되려면 쉽게 설명해서 대통령이 직접 뇌물을 받지 않더라도, 사전에 최서원씨와 뇌물을 받기로 서로 협의를 하고, 그 후에 최서원씨가 뇌물을 받으면 함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사전에 최서원씨가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최서원씨가 대통령에게 자기가 삼성으로부터 돈 받은 것을 이야기한 사실이 없어요. 그럼에도 공범이 성립된다는 것이 전 이해가 안 되는 거죠.”
 
 
  “박근혜, ‘네(최서원)가 날 속였다’”
 
  ― 최씨는 왜 진실을 말하지 않은 걸까요.
 
  “대통령이 ‘네(최서원)가 날 속였다’라고 말한 이유가 다 있는 겁니다. 최씨가 당당하다면 ‘저는 속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때 삼성한테 돈 받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라고 말하면 끝나는 일인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을 한 사실이 없으니 말입니다.
 
  최씨가 횟수로 한 8년 정도 복역하고 있잖아요. 몸이 아주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현 정부에 자신의 사면 요청을 했던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안쓰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전에, 혐의 중에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잘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런 잘못된 부분에 대해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 태블릿PC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쪽에서는 변호사님이 태블릿의 실소유주인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을 감싼다고 비판하던데요.
 
  “제가 앞서도 말했지만 처음 변호인으로 선임된 후 여직원도 없었고 누구 하나 일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김한수 전 행정관이 상담을 위해 제 오피스텔에 왔는데 제가 당시 언론 기사 출력이나 기사 검색 등을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김 전 행정관이 제 오피스텔에 한 달 정도 출근하면서 변론 관련 자료 수집 등을 도와주게 된 것이고, 이게 다입니다. 물론 일에 대한 대가도 지불한 적이 없고 그저 점심, 저녁 같이 라면, 국밥 이런 거 먹은 것뿐이에요.”
 

  ― 문제의 태블릿PC가 김한수 전 행정관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나요.
 
  “그때만 해도 태블릿PC가 김한수 것이라는 그런 문제가 제기되는지도 몰랐어요. 한참 뒤에 저도 그런 말을 들어서 물어본 적이 있어요. ‘태블릿PC가 네가 사용하던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자기가 사용하던 게 아니고 개통을 해준 것인데, 그런 얘기가 돈다고 해요.
 
  사건 기록에 태블릿PC에 대한 포렌식을 한 수사보고서가 있어요 그걸 보면 누가 이것을 사용했는지 바로 답이 나옵니다. 저도 제가 김한수를 숨겨주었다는 둥, 태블릿PC 조작의 공범이라는 둥 별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진짜 대꾸할 가치가 없어 그냥 내버려 둡니다. 음모론자들에게는 논리가 필요 없어요. 자기 주장만 옳고 이에 반대되는 것은 전부 믿지 못한다고 하니까요.”
 
 
  “태블릿PC 때문에 탄핵된 것 아니다”
 
  ― 태블릿PC는 누가 사용한 겁니까.
 
  “그냥 이런 말씀을 드릴게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국과수 포렌식 결과를 보면 태블릿PC가 독일에서 구동된 적이 있습니다. 2012년 7월경과 2013년 7월경에 두 번 독일에서 태블릿PC가 사용된 적이 있어요. 그러면 그때 누군가가 독일에 있었어야 이 태블릿PC를 사용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 태블릿PC가 김한수 행정관이 사용한 거라면 당시 김 행정관이 독일에 있었어야 되겠지요. 근데 김 행정관은 두 번 다 한국에 있었어요. 그러면 태블릿PC 혼자 독일로 이동해서 혼자 구동이 되었나요?
 
  그때 독일에 두 번 다 있었던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는 사건 기록에 다 나와 있으니깐 제가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 태블릿PC 문제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군요.
 
  “태블릿PC가 최서원씨 것이 아니라 김한수 전 행정관 것이라고 해서 대통령이 뇌물 받았다는 판결이 뒤바뀝니까? 아니잖아요. 태블릿PC와 대통령 뇌물 유죄 판결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까 잠깐 말씀드렸지만 JTBC에서 태블릿PC 안의 내용을 조작하고, 검찰은 소유자를 김한수에서 최서원으로 바꿨다고 칩시다. 벌써 개입한 사람이 몇입니까. 검찰도 검사 혼자 결정합니까. 위에 층층 보고해야 하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이게 지금까지 안 밝혀졌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만해야 합니다.”
 
  ― 그래도 JTBC가 텅 빈 사무실의 고영태 서랍에서 태블릿PC를 입수하게 된 경위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저는 이 의문에 대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고, 그리고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입수경위를 허위로 보도한 것이 밝혀지면 여기 관여한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아무도 없는 책상 안에서 발견되었고, 우연히 비밀번호를 풀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믿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태블릿PC가 탄핵의 단초(端初)는 됐을지언정, 이것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아닙니다. 탄핵소추안에 뇌물죄는 없었지만 이미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이유로 당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구속된 상태였잖아요. 뇌물 준 사람이 구속됐는데 뇌물 받은 사람은 구속 안 되겠습니까? 헌법재판관들은 (탄핵 인용 결정을 하면서) 분명 이런 사실을 염두에 뒀을 겁니다.”
 
 
  “박근혜 재평가 반드시 이뤄질 것”
 

  ―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간이 지나면 사실이 밝혀지고 진실이 드러날 것으로 봅니다. 저는 사실이 다 밝혀지면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가두어 둘 수 없고, 사실이 아닌 것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실로 둔갑할 수는 없습니다.”
 
  ― 박 전 대통령은 최씨가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까.
 
  “재차 말씀드리지만 전혀 몰랐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 속을 어떻게 압니까. 말 안 하면 모를 수밖에 없잖아요.”
 
  ― 민정(民情) 라인은 파악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그 부분이 가장 이해가 안 됩니다. 언젠가 그 이유나 경위가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 최서원씨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알려진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2015년 1월 대통령이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방안들에 대해 연구해보라고 지시를 했고,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기업들이 공동으로 문화·스포츠계를 지원하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이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기업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문화재단을 설립하면 정부가 이를 지원하고 해외 순방 등에서 적극 활용해 국익과 기업 가치가 함께 증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주요 구상이었죠. 자세한 과정이나 경위는 대통령께서 쓰시는 회고록에 담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 변호사는 “최씨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재단을 만든 것이라는 주장은 말도 되지 않는 궤변”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변호사이기 때문에 법정 밖에서 공개적으로 세세하게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도 않겠다. 제 사무실에 대통령에 대한 공판기록 30만 페이지가 보관되어 있다”면서 “언젠가는 누군가가 이 기록을 분석하고 평가해서 박 대통령에 대한 판결의 옳고 그름에 대해 역사적인 단죄를 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웃어본 적이 별로 없어 잘 못 웃는다”
 
  유 변호사는 동안(童顔)이었다. 군살 하나 없는 몸매였다.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으며 웃어달라고 하자, “웃어본 적이 별로 없어 잘 못 웃는다”고 했다. 실제 웃는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정말 머리가 좋다’고 소문난 검사가 2004년 정치권에 입문했는데, 2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면서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일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악의 위기에 몰리자 7년 넘게 한결같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녹음한 녹취를 다시 들어보며 웃어본 적이 별로 없다는 유 변호사의 말이 이해가 갔다. 언젠가 그가 마음껏 웃을 날이 오길 기대한다.⊙
 
 

  반론보도
 
  월간조선은 2024년 1월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의 인터뷰를 게재했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 "태블릿PC가 조작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있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란 내용에 대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최순실 태블릿’에 대한 포렌식을 담당했던 송지안 수사관은 법정 증언을 통해 과거 자신이 관련 포렌식 과정에서 거의 모든 법적 절차와 규정을 어겼으며 이는 검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음도 자백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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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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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바람    (2023-12-20) 찬성 : 23   반대 : 3
자신에게 덧씌워진 오해들을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야 일반인들이 알죠. 정치가는 이미지가 중요한 게 아닌가요? 아마 보수 지지자들 절반 이상 아니 대다수는 유튜브에 속아서 오해하고 있을 건데 정치에 뜻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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