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영부인 ‘악녀 만들기’ 주력… 김건희는 ‘한국판 마리 앙투아네트’”
⊙ 김건희 맹공격의 이유? “尹 정부 흔드는 가장 ‘약한 고리’”
⊙ “야당 정치인들, 사실무근 판명 나면, 사과 없이 쟁점 이동”
⊙ “김정숙 비판은 팩트 기반… 김건희는 쥴리설·동거설, 터무니없는 얘기 조작”
⊙ “2024 총선 리스크는 여당·중도층 소홀, 야당·극단주의적 팬덤정치”
劉昌宣
1960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同 대학원 사회학 박사(정치사회학 전공) / 한림대, 경희사이버대 외래교수 역임 / SBS, EBS, B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역임 / 저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2021)》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2016)》 外 다수
⊙ 김건희 맹공격의 이유? “尹 정부 흔드는 가장 ‘약한 고리’”
⊙ “야당 정치인들, 사실무근 판명 나면, 사과 없이 쟁점 이동”
⊙ “김정숙 비판은 팩트 기반… 김건희는 쥴리설·동거설, 터무니없는 얘기 조작”
⊙ “2024 총선 리스크는 여당·중도층 소홀, 야당·극단주의적 팬덤정치”
劉昌宣
1960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同 대학원 사회학 박사(정치사회학 전공) / 한림대, 경희사이버대 외래교수 역임 / SBS, EBS, B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역임 / 저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2021)》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2016)》 外 다수
- 사진=월간조선
이탈리아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말했다.
“역사를 바꾼 큰 거짓들은 내가 알기로 모두 거짓임이 입증됐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진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선동(煽動)은 그래서 무섭다. 쥴리, 천공, 빈곤 포르노.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그렇다면 이 책을 보길 바란다. 《김건희 죽이기》. 부제(副題)는 ‘선동은 이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다. 저자인 정치평론가 유창선(劉昌宣) 박사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선동정치에 대한 비판서”라면서 “특히 ‘김건희’라는 이름은 마타도어와 선동정치의 집중적인 타깃이 됐다”고 했다. 책의 일부다.
〈유튜브 채널이나 김어준 방송에서 제시한 ‘쥴리’ 폭로는 대선 정국에서 갑자기 등장한 80대 노인의 25년 전 기억이 전부였다. 그 오래전에 단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초인적인 능력 앞에서, 16년 전 생태탕 집에 왔던 사람의 신발까지 기억해낸 서울시장 선거 때의 스토리는 견줄 상대가 되지 못한다. 주장의 신빙성 자체도 문제지만, 한 여성을 접대부 출신으로 알리겠다는 집요한 공격들에서 보게 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을 유린해도 상관없다는 모습들이다.〉
유 박사는 “지금 야당은 ‘어떻게 하면 김건희 여사를 악녀로 만들지’에만 주력하고 있다”며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교하기도 했다.
“두둔하려는 게 아닙니다. 비리 의혹이 있어도 덮어야 한다는 건 더욱 아니고요. 합리적 의혹이라면 진위를 가릴 필요가 있죠. 돌아보면 근래 우리 정치를 뒤덮어온 담론들은 쥴리, 김건희 동거설, 김건희 강아지, 김건희 장신구, 바이든 팔짱, 빈곤 포르노, 천공입니다. 그사이 위기의 시대 속에서 국가의 앞길을 고민하고 토론하는 담론들은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김건희, 尹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
― 김건희 여사가 왜 이렇게까지 공격받는다고 생각합니까.
“야당에서 윤석열 정부를 흔드는 가장 ‘약한 고리’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기 가장 효과적인 지점인 거죠. 대중은 어렵고 복잡한 정책보다, ‘에코백 속에 명품 가방을 숨겼다’는 데에 더 크게 반응하니까요. 또 하나.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 전부터 정치인 신분이었죠. 때문에 영부인들도 정계 속에서 오랫동안 시선을 받으며 살았어요. 오랜 세월에 걸쳐 사전 검증이 이뤄졌던 셈이죠. 한데 김건희 여사는 갑자기 영부인이 됐습니다. 일생이 압축적으로 단기간에 검증의 도마에 오른 거죠.”
―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은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죠. 그런데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더군요.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다녀간 사람은 ‘천공’이 아니었죠. 지난해 5월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이 ‘김 여사가 외교부 공관 방문 당시 장관 부인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 한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야당 정치인들은 사실이 없던 것으로 판명 나면, 사과 없이 쟁점을 바로 이동시킵니다.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해 오류를 덮는 거죠. ‘천공이 아니라 풍수학자였다, 외교부 공관 방문 때 강아지를 데리고 갔다’는 식으로요. 그러니 정쟁(政爭)이 무한 반복되는 겁니다.”
지난 7월 박영훈 민주당 청년미래연석회의 부의장은 “김건희 여사가 에코백 안에 샤넬백을 숨겨 넣었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사실무근이었다.
“마찬가지로 사과 한마디 없었죠. ‘앞으로 저도 더욱 확인하겠습니다’는 모호한 말로 넘어갔습니다. 같은 당 민형배 의원은 ‘사실이든 아니든 시민 눈에 그리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여사님의 명품 사랑’이라고 비판했고요.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사실이든 아니든’이라는 말은 귀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런 생각을 가질 때 정치는 선동이 됩니다.”
“숨만 크게 쉬어도 죄가 될 정도”
그는 “정치인이 아닌 배우자를 선동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건 정치사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했다.
― 김정숙 여사도 공격을 많이 받지 않았나요.
“물론 김정숙 여사도 반대 층으로부터 여러 비판을 받았지만, 무게나 빈도를 따지면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야당은 김건희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스토커처럼 지켜보고, 꼬투리를 잡고 있어요. 지금은 그야말로 숨만 크게 쉬어도 죄가 될 정도예요.”
지난해 11월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김 여사의 캄보디아 환아(患兒) 방문 사진에 대해 “최소 2, 3개의 조명 등 현장 스튜디오를 동원한 콘셉트 촬영”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장 위원을 고발했다.
“바이든의 팔짱을 꼈다, 명품백을 숨겼다, 조명을 썼다, 이런 게 스토커처럼 지켜본다는 겁니다. 아니, 조명을 쓰면 어떻고 안 쓰면 어떻습니까. 설령 켰다 한들, 그게 그렇게 떠들썩할 일입니까. 아무것도 아닌 일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어요. 낯이 뜨거울 정도입니다. 캄보디아에 가서 아픈 아이를 안아준 건 분명한 선행입니다. 현지 주민들은 모두 감동했어요. 그런데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이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장식품처럼 활용하는 사악함부터 버리기 바란다’고 했죠. 선행도 ‘악’으로 규정한 겁니다. 무슨 정치가 그런답니까. 그냥 꼴 보기가 싫은 거예요. 다 못마땅한 겁니다. 심사가 뒤틀린 거죠.”
― 김정숙 여사는 휘장이 달린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인도에 단독으로 순방을 다녀온 것과 옷값 논란 등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죠. 김건희 여사를 향한 비판과의 차이점이 있습니까.
“김정숙 여사에 대한 비판은 아예 없었던 얘기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 팩트를 기반으로 했지만, 김건희 여사의 경우는 쥴리설, 동거설. 정말 터무니없는 얘기를 조작해 유포시켰다는 점에서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김건희 여사 활동, 오히려 위축돼 있어”
― 일부 대중은 김건희 여사를 두고 “초기 내조에 전념하겠다는 모습과 달리 활동 범위가 너무 넓다”고 지적하기도 하더군요.
“지금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통상적인 역할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따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독자적인 활동을 여기저기서 벌이는 것도 아니죠. 문화예술전문가로서 보폭을 넓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많이 위축돼 있다고 봅니다. 역대 영부인들의 활동 반경과 비교해 봐도요.”
김정숙 여사의 경우 정치적 행보도 많이 보였다. 지난 2017년 7월 독일에서 작곡가 윤이상의 묘소에 참배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여사는 이날 경상남도 통영에서 가져간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했다. 이듬해 인도 방문 당시에는 모디 총리에게 ‘촛불 민심과 혁명’에 대해 설명했으며, 2019년 투르크메니스탄 방문 때에는 현지 대학생들에게 “우리나라에 ‘남쪽’과 ‘북쪽’이 있는데”라고 해 논란을 빚었다.
유 박사는 “김건희 여사는 묵묵히 영부인의 역할을 수행 중인데, 야당과 언론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니 활동 범위가 넓어 보이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 김정숙 여사는 영부인의 역할 범위 안에 있었다고 봅니까.
“김정숙 여사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김건희 여사는 김정숙 여사가 한 일들을 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는 겁니다. 만일 김건희 여사가 김정숙 여사처럼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후폭풍이 불지.”
― 한편 김건희 여사에게 ‘커리어 우먼’이라는 새로운 영부인상(像)을 기대했던 이들 사이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합니다.
“지금 거의 스토커 수준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역할이 좀 변화할 필요가 있어요. 아직까지 너무 과거의 전통적 역할 관념에 갇혀 있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 독자적인 부인의 정체성(正體性)마저 종속돼버리는 거죠. 영부인이 정치에 개입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비정치적인 분야, 본인의 전문 분야, 공익적인 분야에서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은데 말입니다.”
― 앞서 김정숙 여사가 이미 변화된 영부인상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활동 자체가 아닌, 실질적으로 어떤 기여, 역할을 했느냐가 중요하죠.”
“선동정치 뒤 극단주의적 팬덤정치”
김건희 여사 사례뿐만 아니다. 책은 진영정치와 가짜뉴스의 공생(共生) 네트워크를 파헤치며, 국내 ‘선동정치’의 전반을 지적한다.
― 이 같은 선동에 당사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당사자 대응은 우리 정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대응하는 순간 덫에 걸린 것처럼 논란이 더 커지니까요. 영부인 입장에서는 굳이 대응해서 일을 키웠다가 자칫 국정 운영에 누가 될 수 있으니 조용히 넘어가는 거죠. 지금처럼 대통령실에서 대응하는 방법 외에는 없어 보여요.”
― 음모론을 생산하는 세력이 있는 한 당사자는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 거군요.
“영부인의 위치라는 게 ‘약한 고리’라는 게 그런 거죠. 그렇게 해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걸 야당도 아는 겁니다.”
― 사실무근으로 드러나도, 약속한 듯 다들 사과를 안 하는 이유는 뭘까요.
“선동정치의 뒤에는 극단주의적인 팬덤(fandom)정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막무가내 식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팬덤 지지층의 요구에 부합하니까, 잘못을 해도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아님 말고’ 식이 가능한 거죠. 김건희 여사뿐만 아니에요. 한동훈 법무장관의 ‘청담동 바’ 의혹도 얼토당토않은 지라시, 가짜뉴스였죠. 이 또한 끝내 사과를 안 했고요.”
“제3지대 신당, 當爲지만…”
― 양극(兩極)에서 각각 진실이라고 말하는 언론과 정치 환경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파악해야 하는 건 국민인데, 둘 중 무엇이 진짜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환경에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정말 어렵죠. 부끄럽지만, 저 또한 한때 광우병이 진실인 줄 알았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지금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도 대중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합리적인 지식인과 객관적 사실을 우선하는 언론의 역할이 다시 한 번 요구되고, 국민들 또한 내 머리로 스스로 판단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 편’ 얘기라고 무작정 맞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타당성을 온전히 스스로 따져보려는 노력이죠. 이런 게 깨어 있는 시민이고요.”
― 그런 깨어 있는 시민이 우리 사회에 많을까요. 증가 추세라 봅니까.
“한동안 교착 상태로 보입니다. 물론 요즘 깨어 있는 시민들도 많죠. 대개는 부동층(浮動層)이에요. 흔히 부동층은 정치에 소극적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의식이 더 깨어 있어서 여기도, 저기도 성에 안 차서 부동층으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착화된 진영 대결의 정치 구도가 허물어진다면 시민들이 좀 더 깨어날 수 있겠죠.”
그는 “좀 더 다양한 정당이 공존하는 구조가 돼 완충지대가 생긴다면 극과 극이 충돌하는 정당 구조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는 중대선거구제도를 개편해야 하는 등의 절차로 인해 당장은 쉽지 않은 얘기”라고 했다.
― 금태섭·양향자 전 의원 등이 준비 중인 제3지대 신당은 어떻게 봅니까.
“양당 정치에 실망한 부동층이 많아진 정치 환경에서 제3지대 신당은 당위(當爲)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이를 받쳐주기가 좀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요. 우선 사람이 없어요. 창당하겠다는 몇 그룹이 있지만, 정치적인 동력이 약한 상태라 이번 총선에서는 의미 있는 세력이 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민주당은 극단주의 강경파 집단”
유 박사는 1세대 정치평론가다. 정치평론만 30년 넘게 했다. 한때는 진보인사였다. 학생운동을 했고, 평론가 활동 이전에는 진보사회학자로 불렸다. 민주당에 몸담은 적도 있다. 그는 “2012년 대선을 치르며 끝내 기득권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등을 돌렸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반대 진영에 선 건 아니다. 유 박사는 “지금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자유인”이라고 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에게 민주주의는 다양성에서 출발해 다양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였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생각을 갖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렌트가 말한 공동체의 정치적 삶이에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악마로 만드는 정치는 공존을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와는 대척점인 셈입니다.
더 나아가 지금은 ‘정치’라는 게 아예 없어요. 정치는 타협과 조정과 절충의 예술입니다. 내 입장이 100% 관철돼야 하고, 상대를 이겨야 하는데 어떻게 정치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 여야는 싸울 땐 싸우더라도 대화로 매듭짓고 그 다음 정국으로 넘어가는 게 있었어요. 지금은 심지어 타협을 죄악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악의 세력과 손을 잡느냐, 이런 생각에 갇혀 있는 거죠.”
유 박사는 “이는 곧 정치를 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기도 하다”면서 “지금 민주당은 ‘처럼회’를 중심으로 한 극단주의 강경파 집단으로 변모했다”고 했다.
“과거 민주당은 합리와 균형을 중시했는데, 문재인 민주당 때부터 바뀌었습니다. 강성 팬덤 지지층이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대거 입당하면서 이들이 당을 좌지우지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 처럼회 같은 조직이 실세가 돼버린 거죠. 이들이 할 줄 아는 건 정치가 아니라 투쟁입니다. 싸우는 것밖에 없어요. 그럴 거면 국회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죠. 과거 민주당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장면입니다. 그래도 정치를 아는 3, 4선 중진들이 당의 의사결정을 좌우했는데 지금은 중진들이 문자폭탄이 무서워서 입을 함부로 열지도 못하잖아요.”
그는 현재 민주당에서 일고 있는 막말 논란 또한 ‘극단주의적 팬덤정치’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극단화된 정치는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지금 국민들을 보면, 언제든 화낼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아요.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 봐’ 하는 분위기죠. 재난 사고가 나도 그런 방식이잖아요. 특정인을 지목하고, 그에게 모든 책임을 씌운 뒤, 비난하죠. 요 근래 정치권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입니다. 비난과 공격에 익숙하다 보니, 정작 본질적인 시스템과 제도의 개선, 재발 방지 대책은 뒷전으로 간 거죠. 본질은 놓치고 다들 분풀이만 하는 사회가 됐어요.”
“윤석열, 중도층 껴안는 데 대단히 소홀”
― 윤석열 대통령은 협치(協治)나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봅니까.
“아쉽죠. 물론 당선 직후부터 야당 측에서 결과를 인정 안 하고 ‘김건희 특검법’을 꺼내 들었으니까, 협치의 여지가 없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을 상대로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보였어야 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인사(人事) 문제죠. ‘그때 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대한 건 새로운 보수지, 이명박·박근혜 정부로의 회귀가 아니거든요.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왔어요. 특정 진영에 속한 인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인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새로운 인재를 찾아 발굴하고, 영입하는 모습. 그 이전에 윤 대통령이 그런 의지와 문제의식이라도 보였다면 그 자체로도 통합의 리더십으로 인정받았을 겁니다.”
― 인사 문제 외에 고언(苦言)을 하자면요.
“지금 우리 사회의 복잡한 환경과 다양한 이해관계와 생각들을 읽어내면서, 유연하게 껴안고 조정하려면 섬세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여전히 직선의 리더십인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전(前) 정부 때리기’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권 초기에는 필요했다라고 해도, 이제는 윤석열 정부만의 어젠다(agenda), 윤석열 대통령만의 정책을 가지고 지지율을 높여갈 때인데, 그 점이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복기(復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중도·보수 연합이 이뤄졌기 때문이에요.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중도층들이 많이 이탈하고 보수층만 남았는데, 중도층을 껴안는데도 상당히 소홀해 보입니다. 이탈한 중도층은 민주당으로도 안 가고 있어요. 아직 지켜보는 거죠. 총선 승부수는 중도층이 좌우합니다. 지금은 어느 한쪽도 안정된 우위를 점할 수 없습니다.”
― 중도층의 마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지금 윤 대통령은 보수의 범주 안에서 예상 가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벗어난 신선한 행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실시와 하나회를 해체한 것처럼요. 보수 정부의 대통령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거든요. 반전의 리더십이죠.”
“민주당, 총선서 승부수 띄울 가능성”

민주당은 최근 선거에서 3연패(敗)했다. 2021년 4·7 재보궐 선거, 2022년 대선, 2022년 지방선거까지다.
― 내년 총선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통상 유권자들에게는 균형을 맞추려는 견제 심리가 있어요. 패턴을 살펴봐도 전 선거에서 한쪽이 압승하면 차기 선거에서는 반대 결과가 도출됩니다. 그렇게 보면 이번에 국민의힘이 상당히 긴장해야겠죠. 한편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에 의석수를 몰아줬더니 완전히 독주(獨走)한 것도 봤단 말이에요. 그러니 양쪽 다 긴장해야 하는 거예요. 만일 지금의 극단주의적 행태를 유지한다면 민주당도 희망이 없습니다. 한데 만일 총선 때 과감한 승부수가 나온다면, 그건 민주당 쪽일 가능성이 커요.”
― 과감한 승부수라면 인사 영입의 승부수 말입니까.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승부수가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요. 틀에서 벗어나는 파격적인 시도를 잘 못 하니까요. 윤 대통령의 테두리, 김기현 체제의 리더십하에서는 아마 한계가 있을 겁니다. 반면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선거 때 승부수를 던지는 데 익숙한 당입니다. 지난 2016년에도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 대표를 영입해 ‘공천학살’을 통해 기사회생(起死回生)했잖아요.”
“이재명, 총선 앞두고 뒤로 빠질 것”
―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는 뜻입니까.
“이재명 대표는 총선 책임 위험을 안고 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대선이니까, 어느 시점에서 본인은 뒤로 빠지고 넘겨줄 것으로 봐요. 예컨대 비교적 중도형, 온건파 리더인 김부겸 같은 인물을 영입해 극단적인 민주당의 이미지를 중화(中和)시키려 하지 않을까 합니다. 총선을 치르는 것은 지금의 민주당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파격적인 변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총선 공천에 너무 지겨운 정치인들을 최대한 컷오프시키고 젊고 새로운 인재들을 많이 영입해야 할 텐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유 박사는 지난 2019년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대체로 회복한 상태다. 후유증으로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기만 한다. 그는 “그간 해왔던 인문학 공부에 더해 문화예술 분야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분야를 넘나드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면서 “이것이 정치에 감정 개입 없이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토대가 될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
“역사를 바꾼 큰 거짓들은 내가 알기로 모두 거짓임이 입증됐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진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선동(煽動)은 그래서 무섭다. 쥴리, 천공, 빈곤 포르노.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그렇다면 이 책을 보길 바란다. 《김건희 죽이기》. 부제(副題)는 ‘선동은 이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다. 저자인 정치평론가 유창선(劉昌宣) 박사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선동정치에 대한 비판서”라면서 “특히 ‘김건희’라는 이름은 마타도어와 선동정치의 집중적인 타깃이 됐다”고 했다. 책의 일부다.
〈유튜브 채널이나 김어준 방송에서 제시한 ‘쥴리’ 폭로는 대선 정국에서 갑자기 등장한 80대 노인의 25년 전 기억이 전부였다. 그 오래전에 단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초인적인 능력 앞에서, 16년 전 생태탕 집에 왔던 사람의 신발까지 기억해낸 서울시장 선거 때의 스토리는 견줄 상대가 되지 못한다. 주장의 신빙성 자체도 문제지만, 한 여성을 접대부 출신으로 알리겠다는 집요한 공격들에서 보게 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을 유린해도 상관없다는 모습들이다.〉
유 박사는 “지금 야당은 ‘어떻게 하면 김건희 여사를 악녀로 만들지’에만 주력하고 있다”며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교하기도 했다.
“두둔하려는 게 아닙니다. 비리 의혹이 있어도 덮어야 한다는 건 더욱 아니고요. 합리적 의혹이라면 진위를 가릴 필요가 있죠. 돌아보면 근래 우리 정치를 뒤덮어온 담론들은 쥴리, 김건희 동거설, 김건희 강아지, 김건희 장신구, 바이든 팔짱, 빈곤 포르노, 천공입니다. 그사이 위기의 시대 속에서 국가의 앞길을 고민하고 토론하는 담론들은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김건희, 尹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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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김건희 죽이기》. 저자인 유창선 박사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선동정치에 대한 비판서”라고 책을 소개했다. |
“야당에서 윤석열 정부를 흔드는 가장 ‘약한 고리’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기 가장 효과적인 지점인 거죠. 대중은 어렵고 복잡한 정책보다, ‘에코백 속에 명품 가방을 숨겼다’는 데에 더 크게 반응하니까요. 또 하나.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 전부터 정치인 신분이었죠. 때문에 영부인들도 정계 속에서 오랫동안 시선을 받으며 살았어요. 오랜 세월에 걸쳐 사전 검증이 이뤄졌던 셈이죠. 한데 김건희 여사는 갑자기 영부인이 됐습니다. 일생이 압축적으로 단기간에 검증의 도마에 오른 거죠.”
―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은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죠. 그런데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더군요.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다녀간 사람은 ‘천공’이 아니었죠. 지난해 5월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이 ‘김 여사가 외교부 공관 방문 당시 장관 부인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 한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야당 정치인들은 사실이 없던 것으로 판명 나면, 사과 없이 쟁점을 바로 이동시킵니다.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해 오류를 덮는 거죠. ‘천공이 아니라 풍수학자였다, 외교부 공관 방문 때 강아지를 데리고 갔다’는 식으로요. 그러니 정쟁(政爭)이 무한 반복되는 겁니다.”
지난 7월 박영훈 민주당 청년미래연석회의 부의장은 “김건희 여사가 에코백 안에 샤넬백을 숨겨 넣었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사실무근이었다.
“마찬가지로 사과 한마디 없었죠. ‘앞으로 저도 더욱 확인하겠습니다’는 모호한 말로 넘어갔습니다. 같은 당 민형배 의원은 ‘사실이든 아니든 시민 눈에 그리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여사님의 명품 사랑’이라고 비판했고요.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사실이든 아니든’이라는 말은 귀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런 생각을 가질 때 정치는 선동이 됩니다.”
“숨만 크게 쉬어도 죄가 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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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지난 2022년 11월 12일(현지 시각)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의 집을 찾아 위로하고 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김 여사의 캄보디아 환아 방문 사진에 대해 “최소 2, 3개의 조명 등 현장 스튜디오를 동원한 콘셉트 촬영”이라고 했다. 사진=대통령실 |
― 김정숙 여사도 공격을 많이 받지 않았나요.
“물론 김정숙 여사도 반대 층으로부터 여러 비판을 받았지만, 무게나 빈도를 따지면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야당은 김건희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스토커처럼 지켜보고, 꼬투리를 잡고 있어요. 지금은 그야말로 숨만 크게 쉬어도 죄가 될 정도예요.”
지난해 11월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김 여사의 캄보디아 환아(患兒) 방문 사진에 대해 “최소 2, 3개의 조명 등 현장 스튜디오를 동원한 콘셉트 촬영”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장 위원을 고발했다.
“바이든의 팔짱을 꼈다, 명품백을 숨겼다, 조명을 썼다, 이런 게 스토커처럼 지켜본다는 겁니다. 아니, 조명을 쓰면 어떻고 안 쓰면 어떻습니까. 설령 켰다 한들, 그게 그렇게 떠들썩할 일입니까. 아무것도 아닌 일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어요. 낯이 뜨거울 정도입니다. 캄보디아에 가서 아픈 아이를 안아준 건 분명한 선행입니다. 현지 주민들은 모두 감동했어요. 그런데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이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장식품처럼 활용하는 사악함부터 버리기 바란다’고 했죠. 선행도 ‘악’으로 규정한 겁니다. 무슨 정치가 그런답니까. 그냥 꼴 보기가 싫은 거예요. 다 못마땅한 겁니다. 심사가 뒤틀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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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1월 12일(현지시각) 오후 캄보디아 주최 갈라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팔짱을 낀 김건희 여사.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공적 마인드가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대통령실 |
“김정숙 여사에 대한 비판은 아예 없었던 얘기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 팩트를 기반으로 했지만, 김건희 여사의 경우는 쥴리설, 동거설. 정말 터무니없는 얘기를 조작해 유포시켰다는 점에서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김건희 여사 활동, 오히려 위축돼 있어”
― 일부 대중은 김건희 여사를 두고 “초기 내조에 전념하겠다는 모습과 달리 활동 범위가 너무 넓다”고 지적하기도 하더군요.
“지금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통상적인 역할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따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독자적인 활동을 여기저기서 벌이는 것도 아니죠. 문화예술전문가로서 보폭을 넓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많이 위축돼 있다고 봅니다. 역대 영부인들의 활동 반경과 비교해 봐도요.”
김정숙 여사의 경우 정치적 행보도 많이 보였다. 지난 2017년 7월 독일에서 작곡가 윤이상의 묘소에 참배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여사는 이날 경상남도 통영에서 가져간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했다. 이듬해 인도 방문 당시에는 모디 총리에게 ‘촛불 민심과 혁명’에 대해 설명했으며, 2019년 투르크메니스탄 방문 때에는 현지 대학생들에게 “우리나라에 ‘남쪽’과 ‘북쪽’이 있는데”라고 해 논란을 빚었다.
유 박사는 “김건희 여사는 묵묵히 영부인의 역할을 수행 중인데, 야당과 언론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니 활동 범위가 넓어 보이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 김정숙 여사는 영부인의 역할 범위 안에 있었다고 봅니까.
“김정숙 여사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김건희 여사는 김정숙 여사가 한 일들을 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는 겁니다. 만일 김건희 여사가 김정숙 여사처럼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후폭풍이 불지.”
― 한편 김건희 여사에게 ‘커리어 우먼’이라는 새로운 영부인상(像)을 기대했던 이들 사이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합니다.
“지금 거의 스토커 수준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역할이 좀 변화할 필요가 있어요. 아직까지 너무 과거의 전통적 역할 관념에 갇혀 있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 독자적인 부인의 정체성(正體性)마저 종속돼버리는 거죠. 영부인이 정치에 개입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비정치적인 분야, 본인의 전문 분야, 공익적인 분야에서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은데 말입니다.”
― 앞서 김정숙 여사가 이미 변화된 영부인상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활동 자체가 아닌, 실질적으로 어떤 기여, 역할을 했느냐가 중요하죠.”
김건희 여사 사례뿐만 아니다. 책은 진영정치와 가짜뉴스의 공생(共生) 네트워크를 파헤치며, 국내 ‘선동정치’의 전반을 지적한다.
― 이 같은 선동에 당사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당사자 대응은 우리 정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대응하는 순간 덫에 걸린 것처럼 논란이 더 커지니까요. 영부인 입장에서는 굳이 대응해서 일을 키웠다가 자칫 국정 운영에 누가 될 수 있으니 조용히 넘어가는 거죠. 지금처럼 대통령실에서 대응하는 방법 외에는 없어 보여요.”
― 음모론을 생산하는 세력이 있는 한 당사자는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 거군요.
“영부인의 위치라는 게 ‘약한 고리’라는 게 그런 거죠. 그렇게 해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걸 야당도 아는 겁니다.”
― 사실무근으로 드러나도, 약속한 듯 다들 사과를 안 하는 이유는 뭘까요.
“선동정치의 뒤에는 극단주의적인 팬덤(fandom)정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막무가내 식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팬덤 지지층의 요구에 부합하니까, 잘못을 해도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아님 말고’ 식이 가능한 거죠. 김건희 여사뿐만 아니에요. 한동훈 법무장관의 ‘청담동 바’ 의혹도 얼토당토않은 지라시, 가짜뉴스였죠. 이 또한 끝내 사과를 안 했고요.”
“제3지대 신당, 當爲지만…”
― 양극(兩極)에서 각각 진실이라고 말하는 언론과 정치 환경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파악해야 하는 건 국민인데, 둘 중 무엇이 진짜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환경에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정말 어렵죠. 부끄럽지만, 저 또한 한때 광우병이 진실인 줄 알았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지금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도 대중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합리적인 지식인과 객관적 사실을 우선하는 언론의 역할이 다시 한 번 요구되고, 국민들 또한 내 머리로 스스로 판단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 편’ 얘기라고 무작정 맞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타당성을 온전히 스스로 따져보려는 노력이죠. 이런 게 깨어 있는 시민이고요.”
― 그런 깨어 있는 시민이 우리 사회에 많을까요. 증가 추세라 봅니까.
“한동안 교착 상태로 보입니다. 물론 요즘 깨어 있는 시민들도 많죠. 대개는 부동층(浮動層)이에요. 흔히 부동층은 정치에 소극적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의식이 더 깨어 있어서 여기도, 저기도 성에 안 차서 부동층으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착화된 진영 대결의 정치 구도가 허물어진다면 시민들이 좀 더 깨어날 수 있겠죠.”
그는 “좀 더 다양한 정당이 공존하는 구조가 돼 완충지대가 생긴다면 극과 극이 충돌하는 정당 구조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는 중대선거구제도를 개편해야 하는 등의 절차로 인해 당장은 쉽지 않은 얘기”라고 했다.
― 금태섭·양향자 전 의원 등이 준비 중인 제3지대 신당은 어떻게 봅니까.
“양당 정치에 실망한 부동층이 많아진 정치 환경에서 제3지대 신당은 당위(當爲)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이를 받쳐주기가 좀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요. 우선 사람이 없어요. 창당하겠다는 몇 그룹이 있지만, 정치적인 동력이 약한 상태라 이번 총선에서는 의미 있는 세력이 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민주당은 극단주의 강경파 집단”
유 박사는 1세대 정치평론가다. 정치평론만 30년 넘게 했다. 한때는 진보인사였다. 학생운동을 했고, 평론가 활동 이전에는 진보사회학자로 불렸다. 민주당에 몸담은 적도 있다. 그는 “2012년 대선을 치르며 끝내 기득권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등을 돌렸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반대 진영에 선 건 아니다. 유 박사는 “지금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자유인”이라고 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에게 민주주의는 다양성에서 출발해 다양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였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생각을 갖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렌트가 말한 공동체의 정치적 삶이에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악마로 만드는 정치는 공존을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와는 대척점인 셈입니다.
더 나아가 지금은 ‘정치’라는 게 아예 없어요. 정치는 타협과 조정과 절충의 예술입니다. 내 입장이 100% 관철돼야 하고, 상대를 이겨야 하는데 어떻게 정치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 여야는 싸울 땐 싸우더라도 대화로 매듭짓고 그 다음 정국으로 넘어가는 게 있었어요. 지금은 심지어 타협을 죄악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악의 세력과 손을 잡느냐, 이런 생각에 갇혀 있는 거죠.”
유 박사는 “이는 곧 정치를 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기도 하다”면서 “지금 민주당은 ‘처럼회’를 중심으로 한 극단주의 강경파 집단으로 변모했다”고 했다.
“과거 민주당은 합리와 균형을 중시했는데, 문재인 민주당 때부터 바뀌었습니다. 강성 팬덤 지지층이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대거 입당하면서 이들이 당을 좌지우지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 처럼회 같은 조직이 실세가 돼버린 거죠. 이들이 할 줄 아는 건 정치가 아니라 투쟁입니다. 싸우는 것밖에 없어요. 그럴 거면 국회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죠. 과거 민주당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장면입니다. 그래도 정치를 아는 3, 4선 중진들이 당의 의사결정을 좌우했는데 지금은 중진들이 문자폭탄이 무서워서 입을 함부로 열지도 못하잖아요.”
그는 현재 민주당에서 일고 있는 막말 논란 또한 ‘극단주의적 팬덤정치’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극단화된 정치는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지금 국민들을 보면, 언제든 화낼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아요.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 봐’ 하는 분위기죠. 재난 사고가 나도 그런 방식이잖아요. 특정인을 지목하고, 그에게 모든 책임을 씌운 뒤, 비난하죠. 요 근래 정치권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입니다. 비난과 공격에 익숙하다 보니, 정작 본질적인 시스템과 제도의 개선, 재발 방지 대책은 뒷전으로 간 거죠. 본질은 놓치고 다들 분풀이만 하는 사회가 됐어요.”
“윤석열, 중도층 껴안는 데 대단히 소홀”
― 윤석열 대통령은 협치(協治)나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봅니까.
“아쉽죠. 물론 당선 직후부터 야당 측에서 결과를 인정 안 하고 ‘김건희 특검법’을 꺼내 들었으니까, 협치의 여지가 없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을 상대로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보였어야 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인사(人事) 문제죠. ‘그때 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대한 건 새로운 보수지, 이명박·박근혜 정부로의 회귀가 아니거든요.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왔어요. 특정 진영에 속한 인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인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새로운 인재를 찾아 발굴하고, 영입하는 모습. 그 이전에 윤 대통령이 그런 의지와 문제의식이라도 보였다면 그 자체로도 통합의 리더십으로 인정받았을 겁니다.”
― 인사 문제 외에 고언(苦言)을 하자면요.
“지금 우리 사회의 복잡한 환경과 다양한 이해관계와 생각들을 읽어내면서, 유연하게 껴안고 조정하려면 섬세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여전히 직선의 리더십인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전(前) 정부 때리기’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권 초기에는 필요했다라고 해도, 이제는 윤석열 정부만의 어젠다(agenda), 윤석열 대통령만의 정책을 가지고 지지율을 높여갈 때인데, 그 점이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복기(復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중도·보수 연합이 이뤄졌기 때문이에요.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중도층들이 많이 이탈하고 보수층만 남았는데, 중도층을 껴안는데도 상당히 소홀해 보입니다. 이탈한 중도층은 민주당으로도 안 가고 있어요. 아직 지켜보는 거죠. 총선 승부수는 중도층이 좌우합니다. 지금은 어느 한쪽도 안정된 우위를 점할 수 없습니다.”
― 중도층의 마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지금 윤 대통령은 보수의 범주 안에서 예상 가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벗어난 신선한 행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실시와 하나회를 해체한 것처럼요. 보수 정부의 대통령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거든요. 반전의 리더십이죠.”
“민주당, 총선서 승부수 띄울 가능성”

민주당은 최근 선거에서 3연패(敗)했다. 2021년 4·7 재보궐 선거, 2022년 대선, 2022년 지방선거까지다.
― 내년 총선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통상 유권자들에게는 균형을 맞추려는 견제 심리가 있어요. 패턴을 살펴봐도 전 선거에서 한쪽이 압승하면 차기 선거에서는 반대 결과가 도출됩니다. 그렇게 보면 이번에 국민의힘이 상당히 긴장해야겠죠. 한편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에 의석수를 몰아줬더니 완전히 독주(獨走)한 것도 봤단 말이에요. 그러니 양쪽 다 긴장해야 하는 거예요. 만일 지금의 극단주의적 행태를 유지한다면 민주당도 희망이 없습니다. 한데 만일 총선 때 과감한 승부수가 나온다면, 그건 민주당 쪽일 가능성이 커요.”
― 과감한 승부수라면 인사 영입의 승부수 말입니까.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승부수가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요. 틀에서 벗어나는 파격적인 시도를 잘 못 하니까요. 윤 대통령의 테두리, 김기현 체제의 리더십하에서는 아마 한계가 있을 겁니다. 반면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선거 때 승부수를 던지는 데 익숙한 당입니다. 지난 2016년에도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 대표를 영입해 ‘공천학살’을 통해 기사회생(起死回生)했잖아요.”
“이재명, 총선 앞두고 뒤로 빠질 것”
―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는 뜻입니까.
“이재명 대표는 총선 책임 위험을 안고 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대선이니까, 어느 시점에서 본인은 뒤로 빠지고 넘겨줄 것으로 봐요. 예컨대 비교적 중도형, 온건파 리더인 김부겸 같은 인물을 영입해 극단적인 민주당의 이미지를 중화(中和)시키려 하지 않을까 합니다. 총선을 치르는 것은 지금의 민주당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파격적인 변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총선 공천에 너무 지겨운 정치인들을 최대한 컷오프시키고 젊고 새로운 인재들을 많이 영입해야 할 텐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유 박사는 지난 2019년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대체로 회복한 상태다. 후유증으로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기만 한다. 그는 “그간 해왔던 인문학 공부에 더해 문화예술 분야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분야를 넘나드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면서 “이것이 정치에 감정 개입 없이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토대가 될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