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의 人物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인생 세 번째 도전에 나서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사진=대통령실
  역도 선수, 교육자, 이번엔 관료다. 장미란(張美蘭·39)은 지난 7월 3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임명됐다. 서른아홉, 현 정부 최연소 차관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인생으로 보자면 세 번째 도전이다.
 
  장미란의 등장이 단순한 깜짝 인사가 아니라 의외의 인재 발굴로 여겨지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선수 시절 그가 보여준 인내심과 인성이다. 장미란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후 2013년 은퇴할 때까지 10년 이상을 한결같이 세계 정상급 선수로 살았다. 외국에선 두 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딴 선수는 ‘백투백(Back to Back) 메달리스트’라며 대단하게 생각한다. 장미란은 세 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했다. 선수로서 기록 관리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 세월 동안 흔한 구설 한 번 없었다.
 
  2010년 그는 뒤차에 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2주 입원 후 계속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상을 당했다.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다. 사실 자신의 선수 생활을 위해서라면 대회를 건너뛰고 재활에 전념하는 게 나았을 상황이었다. 장미란은 다른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티켓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갔다.
 
  지난 2016년 역도 선수들의 약물 복용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국제적인 파문이 일었다. 선수 9명이 제재를 받았다. 그중엔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도 포함되어 있었고, 메달을 박탈당했다. 약물 따위에 기대지 않고 당시 4위를 기록한 장미란은 뒤늦게 동메달을 획득했다. 결과적으로 올림픽에서 금(2008 베이징), 은(2004 아테네), 동(2012 런던) 메달을 모두 목에 건 선수가 되며 자신과 한국의 명예를 지켰다.
 
  둘째, 선수 은퇴 후 보여준 도전정신이다. 장미란은 용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2016년 용인대 체육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의 선수 생활 이력은 체대 교수로서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굳이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201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오하이오주의 켄트주립대학에서 스포츠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장미란의 은퇴 후 행보를 지켜보며 흥미로웠던 대목이다. 은퇴한 정상급 선수에게 진로에 대해 조언해주는 건 사실 조심스럽다. 결국 본인의 의지에 따라 은퇴 이후의 삶이 결정된다. 대개 더 이상의 도전을 멈추고 과거의 명성을 쪼개 쓰며 안주하는 쪽을 택한다. 장미란은 달랐다. 여느 은퇴 선수들처럼 방송에 출연하거나, 가끔 광고를 찍으며 사는 대신 교육자, 연구자로서 제대로 도전해보는 쪽을 택했다.
 

  셋째,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다. 은퇴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IOC 선수위원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번 문체부 차관행도 주변의 권유에 떠밀려서가 아닌 장미란 스스로 판단해 결정했으리라 보는 이유다. 원하던 IOC 위원은 못 됐지만, 행정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장미란의 행보를 보며 문득 미국의 피겨 선수 미셸 콴(Michelle Kwan)이 떠올랐다. 콴을 만나보면 도전정신이 대단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콴 역시 은퇴한 피겨 전설로 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해 주벨리즈 미국 대사로 임명되어 외교관이 됐다. 벨리즈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영연방 국가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