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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선수

은퇴한 ‘조선의 4번타자’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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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자이언츠
  그러니까 2010년 8월 14일로 거슬러 가보자. 2회초 주자 1, 2루 상황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4번타자 이대호(李大浩)가 타석에 들어섰다. 두 번째 타석이었다.
 
  기아 타이거즈 투수 김희걸은 이대호의 방망이를 끌어내기 위해 밖으로 흐르는 체인지업을 초구로 던졌다. 이대호는 기다렸다. 김희걸이 낮은 쪽 포크볼을 2구째 던졌다. 발이 느린 이대호였기에 내야 땅볼을 유도해 병살을 잡겠다는 생각이었으리라.
 
  그 순간, 이대호의 방망이가 거침없이 돌아갔다. 공은 멀리 멀리 하늘을 갈랐다. 공식 비거리 125m, 초대형 홈런이었다. 한·미·일 프로야구를 통틀어 첫 번째 대기록인 9경기 연속 홈런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그런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가 올해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스무 살에 데뷔해 20년간 활약 후 마흔에 은퇴한 것이다. 올해 성적은 타율 0.331(4위), 안타 179개(4위), 홈런 23개(공동 5위), 101타점(4위) 등 노장이라 믿기지 않을 성적이다. 팬, 동료 선수들은 은퇴를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한 야구인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유행시킨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에서 마지막 시즌에 남긴 평균자책점 2.61, 28세이브 기록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멋진 마침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대호는 1982년 6월 21일생. 등번호 10번. 부산 수영초-대동중-경남고를 나왔다.
 
  스무 살인 2001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뒤 2004년 팀의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계약금은 2억1000만원. 2차 지명 1번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당시는 투수였다. 본격적으로 투수 훈련을 시작한 것은 고2였으니 매우 늦은 편이었지만 포크볼과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를 곧잘 던졌다. 입단 후 어깨를 다쳤다. 청소년대표팀 4번타자를 맡을 만큼의 실력이었으므로 타격을 살려보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 생애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넘어 0.336, 26홈런, 88타점으로 세 부문을 석권하면서 투수에서 타자로 완벽하게 전향했다.
 
  이대호의 KBO리그 통산성적은 17시즌(2001~2011, 2017~2022) 타율 0.309에 2199안타 374홈런 1425타점이다. 일본(2012~2015년)과 미국(2016년) 프로야구 성적을 더한 통산 기록은 2895안타 486홈런 1822타점에 이른다. ‘꿈의 3000안타’에 105개가 모자란다. 이승엽 SBS 해설위원은 “이대호의 성적이 너무 좋다. 사실 1년만 더 뛰면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초로 3000안타를 기록할 수 있지 않나”며 아쉬워했다.
 
  1년만 더 현역으로 뛰었다면 대기록을 세웠겠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끝내 롯데 우승 반지는 끼어보지 못한 아쉬움도 뒤로했다.
 

  지난 10월 8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이대호의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이 열렸다.
 
  “오늘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에 은퇴식을 한다는 게 감회가 새롭고 슬프다. 더그아웃에서 보는 사직구장 관중석만큼 멋진 풍경은 없고, 타석에서 들리는 부산 팬의 응원만큼 든든한 소리도 없을 것이다. 그 함성을 들은 이대호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배트와 글러브 대신 맥주와 치킨을 들고 타석을 떠나 롯데 자이언츠 팬의 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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