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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8년간 韓日 민간 외교관 활동해온 강성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이사장

“지난 5년간 최악이었던 한일 관계, 윤석열-기시다 시대 맞아 극적인 호전 기대”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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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 출신 기시다 총리는 이전 日 총리들과 달리 한국에 우호적인 인물”
⊙ 기시다 총리, 외무상 시절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위안부협정 맺은 주인공… 한일 관계 개선 의지 커
⊙ “2000년대 일본에서 韓流가 성공한 것은 1990년대 일본 주부들에게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
⊙ 30여 년간 자비 들여 한일 양국 간 문화 교류 주도… “한일 관계 개선돼야 더 많은 한국인 행복해져”

姜星財
1962년생. 일본 히로시마 수도대학원 사회학 석사 / 한일문화교류센터 대표, 現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이사장, 《아시아문화경제신문》 발행인
강성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이사장. 사진=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제공
  문재인 정부 5년간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개선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뜻을 분명히 밝힌 데다 당선된 후 한일 관계 복원에 대한 시그널을 잇달아 보내면서 일단은 희망적인 분위기다. 윤 당선인은 대선 이틀 후인 3월 11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당선 축하 기념 첫 전화통화를 하면서 “4월 중 정책협의단(특사단)을 파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당시 일본 기자들로부터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연히 서로 가능한 한 빨리 직접 만나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과 기시다 총리는 둘 다 전임자(문재인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달리 한일 관계 강화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한일 정상회담이 조기 개최되고 양국 관계가 호전될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선 후 한일을 오가는 기업인 및 재일교포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강성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이사장을 만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강 이사장은 일본 유학생이던 1993년 히로시마에서 ‘한일친구회’를 만든 후 한일문화교류재단(現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을 설립하고 30년 가까이 한국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민간 외교관’ 활동을 해왔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면서 자비(自費)로 오랜 기간 문화 교류에 앞장서 왔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 및 정치권 인맥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특히 기시다 현 일본 총리와는 인연이 깊다. 기시다 총리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1980년대 후반 히로시마 중의원이었던 아버지(기시다 후미타케)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고, 부친 사망 후인 1993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후 20여 년간 히로시마 중의원으로 잇달아 당선됐다. 강 이사장은 기시다 총리가 초선 의원으로 활발하게 지역 활동에 나서던 시절부터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고, 자주 만나면서 마음이 통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기시다 총리는 최근 10여 년간 일본 총리 중 가장 한국에 우호적인 인물”이라며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전역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활동 중인 그를 서울 여의도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1990년대 이후 한일 관계의 흐름
 
  ― 1990년대 초반부터 한일 관계의 변화를 현장에서 실감해왔다고요.
 
  “제가 유학생 신분으로 한일친구회를 만든 1993년 당시는 일본에서 한국인은 한국인이라고 어디 가서 말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월세집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고, 한국어 책을 들고 다니는 것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죠. 그러다 한국에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한류가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까지 한일 관계는 많은 진전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한일 관계는 좋아지다가 갑자기 나빠지기도 하고 누가 풀려고 해도 쉽게 풀 수 없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 아픈 역사가 있는 만큼 한일 관계는 날이 갈수록 조금씩이나마 개선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역대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어요. 재일교포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일 관계가 좀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를 했고, 사실 문재인 정부에는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 어떤 면에서 기대가 된 겁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사나 정치적 기반이 특별히 일본과 나쁠 게 없거든요. 미국이라면 몰라도요. 또 ‘촛불’로 대통령이 된 만큼 우리 사업가나 교포들의 이야기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중국을 향한 구애는 많았지만 일본과는 오히려 사이가 더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거기다 코로나19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고사 직전이 됐고 일본이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왕래 자체도 어려워졌죠.”
 
  ― 기업인들과 교포들은 윤석열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나요.
 
  “기대가 커요. 특히 윤 당선인의 의지에도 기대를 하지만, 그 카운터파트가 기시다 총리라는 점도 기대가 더 커지는 이유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 말 취임했고 윤석열 대통령과 3년여 정도 같이 가지 않습니까. 윤석열-기시다라는 시나리오라면 한일 관계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개선될 것이라고 봅니다. 관광산업도, 양국 교역도, 서로에 대한 편견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시다 총리와의 인연
 
1990년대 히로시마에서 활동하며 친분을 쌓아 온 강성재 이사장과 기시다 후미오 현 일본 총리. 당시 히로시마 강 이사장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강성재 제공
  ―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본류(本流) 출신의 보수 정치인인데 크게 기대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분의 인성과 정치철학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1993년 히로시마 유학생 시절 한일 양국이 서로를 너무 모른다, 교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한일친구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그때 기시다 총리가 1993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를 하면서 지역구 사무실을 얻었는데 그 사무실이 바로 우리 옆이었죠. 그때 자주 만나면서 친분을 쌓게 됐고 20년 넘게 교류를 해왔습니다. 제가 도쿄로 이사를 했는데 기시다 총리도 이제 도쿄에서 활동을 하니 이런저런 이유로 종종 만나게 됐죠.”
 
  ― 실례되는 말이지만, 그 시절 촉망받는 2세 정치인이 한국인과 친하게 지냈던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한국인이니까 주로 한국과 일본 얘기를 나눴는데, 기시다 총리는 한국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히로시마 사람이고 히로시마가 지역구인 정치인이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히로시마는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지금도 조선통신사 기념행사가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또 2차 대전 당시 원폭 피해를 당한 곳이다 보니 일본 보수 정치인들이 갖는 극우 성향과도 거리가 있고요.”
 
  ― 그래도 아베 정권 내각에 참여했던 정치인이라 친한파라고 보긴 어렵지 않습니까.
 
  “기시다 총리는 친한파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에 우호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3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다 보니 양국의 정치적 분위기에 민감합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해당되는 얘기인데요, 양국 지도자 모두 상대방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더라도 그걸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정치인이 그런 발언을 하면 바로 ‘친일파’나 ‘○바리’라는 비난을 받지 않습니까.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양국의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특히 선거를 앞두고 상대방을 비판해 표심을 얻으려는 전략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은 정권 초기에 더 심하죠. 신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주변국들을 향해 강경 발언을 하는 것은 정권 초기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 그런데 기시다 총리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요.
 
  “네. 제가 기시다 총리 취임 후 공식 석상의 발언을 모두 스크랩해서 봤는데요, 한 번도 한국에 대해 강경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 기시다 총리가 계파 수장인 굉지정책연구회(宏池政策硏究會:약칭 굉지회)는 자민당 내에서는 중도로 불리죠.
 
  “굉지회는 1957년에 결성돼 자민당 내에서 가장 오래된 계파입니다. 관료 또는 대대로 정치 명문가 출신 인물들이 많아 온건한 성향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자민당이 우경화되면서 중도 성향인 굉지회가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죠. 그런데 아베 정권이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견제 세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결국 1998년 이후 23년 만에 굉지회 회장인 기시다가 총리가 된 겁니다. 지금까지 굉지회 출신 총리들은 대체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이었습니다. 한일 관계에 관한 한 기시다 총리에게 기대를 거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봅니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뤄낸 기시다-윤병세
 
  ―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정권의 외무상 출신입니다.
 
  “맞아요. 그의 외무상 시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체결한 당사자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 개선의 공은 한국에 있다고 강조해왔고, 사석에서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윤병세 장관과 합의를 이뤄냈던 데 상당히 애착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저 사람이 나중에 총리가 되면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즉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고리를 기시다 총리가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총리가 되면 입장이 바뀌는 게 아닌가 우려도 했었지만 쭉 지켜보니 강경한 발언은 없었습니다.”
 
  ― 2015년 합의는 문재인 정부와 진보 진영에서 굴욕적인 합의라며 끊임없이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합의를 할 때는 분명한 이유와 합의점이 있으니까 했을 것 아닙니까. 10억 엔이라는 금액이 일본의 어떤 단체나 기업이 아니라 일본 정부에서 나왔다는 점이 중요한 겁니다. 아베 총리도, 일본 정부도 일본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뜻이거든요. 이미 사죄는 받은 것이고 액수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 정부가 그 점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해하도록 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합의금을) 받아내고 빨리 끝내려고 했던 것 아닌가,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 지금까지 이야기의 흐름으로 볼 때,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발을 맞춰 나간다면 한일 관계는 개선될 가능성이 크군요.
 
  “그렇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이런 상황을 잘 알아서 외교부 장관과 주일한국대사를 임명하는 데 깊이 고민했으면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있죠. 한국은 6월 1일에 지방선거가 있고 일본은 참의원 선거가 7월 1일에 있습니다. 지방선거는 정권 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지만 일본 참의원 선거는 총리 교체도 가능한 선거입니다. 만약 이때 우경화된 세력이 다시 집권한다면 한일 관계가 다시 고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1990년대 일본에 한국 문화 전파한 주인공
 
강성재 이사장은 30여 년간 일본에서 한일 문화 및 한일 관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강연해왔다. 사진=강성재 제공
  강성재 이사장은 3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각종 사업을 하며 재산을 축적했고 이 중 상당 부분을 한일문화교류사업에 쏟았다. 그가 한일 문화 교류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일본 대학교 시절 은사인 고(故)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의 역할이 컸다. 김 교수는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금지돼 있던 1990년대 중반 각종 강연과 방송, 기고 등을 통해 일본 대중문화 전면 개방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버지처럼 모시던 김용운 교수의 주장에 깊이 동의한 강 이사장은 김 교수의 각종 대외활동에 동참하며 일을 도왔다. 그러면서 양국의 대중문화의 차이점과 각각의 장점에 눈을 뜨게 됐고, 양국 간 문화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는 스스로 한일 간 문화 전도사 겸 민간 외교관이 되기로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의 영화나 음악, TV 프로그램을 접하려면 일본인이나 여행객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 이사장은 사업을 하는 틈틈이 일본에서 판매되는 영화와 드라마 비디오테이프, 예능 프로그램 녹화 테이프와 일본 아이돌 가수의 CD들을 대량 사비로 사들여 서울 정동 사무실에 일본문화 자료실을 만들고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라면 대여해 갈 수 있도록 했다. 수많은 방송국 PD와 작가, 연예인, 기자 등이 이곳에 드나들었다. 그 시절에 한일 문화를 소개하는 인터넷 방송을 개설하기도 했다.
 
  결국 일본 대중문화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차에 걸쳐 개방이 된다. 이 시점에 강 이사장은 일본 전국 48개 현을 돌며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가요 등 한국 문화에 대해 강연을 했다. 관광거리와 음식 등에 대한 강의도 했는데, 주로 40대 이상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센터 강좌가 중심이었다. 2002년 배용준과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대히트를 치게 된 데는 이런 배경도 한몫했다. 한류 드라마의 열풍이 일본 주부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 이사장의 얘기다.
 
  “제가 1990년대에 일본 방방곡곡에서 특강을 많이 했는데 그 강의를 들은 분들이 한국으로 많이 놀러 왔어요. 주부들은 특히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들이 많았거든요. 그때 한국을 접한 40대 주부들이 2000년대 〈겨울연가〉에 열광한 겁니다. 한 번도 한국 문화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한류에 빠져들겠어요?”
 
 
  30년간 한일 관계 개선에 앞장서온 이유
 
강성재 이사장이 일본 《아사히신문》에 기고했던 칼럼. 재일한국인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진=강성재 제공
  강 이사장은 1993년 ‘한일친구회’, 1994년 이를 확대한 ‘한국 친구를 사귀는 모임’을 결성해 기관지 《친구》를 발행, 공공기관과 관광지 등에 배포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한일문화교류센터’로 이름을 바꿨고 같은 해 ‘한일 친구의 밤’ 등 행사를 개최했다. 센터는 일본 내에서 한국요리교실, 한국어강좌, 한국자료관 등을 운영하고 한국에도 일본자료관을 만드는 등 양국 간의 교류를 위한 공간을 먼저 만들었다.
 
  이후 일본 회원의 한국 관광, 한국 회원의 일본 관광, 한국과 일본 지자체 및 학교의 자매결연 등을 주관했고 한류스타의 팬미팅을 주선하는 등 다양한 문화 관련 활동을 끊임없이 해왔다. 언론매체 기고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한일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의 주요 업무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명사특강, 아시아문화경제인 교류의 밤, 아우(아시아는 우리)마당포럼을 매년 개최했고 양국의 문화예술인과 정치인 등이 다수 참여했다. 2015년에는 사단법인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로 진출했다. 진흥원이 발행하는 《아시아문화경제신문》은 한국어와 일본어, 중국어 3개 국어를 한번에 싣고 있으며 아시아 전역에 배포되고 있다. 현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은 13개국에 본부가 있고 2024년 출범 30주년에는 재단법인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는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더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의 여의도 사무실 중심에는 ‘만나는 사람은 모두 친구’라는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었다.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상생(相生)이 그의 신조다. 강 이사장의 얘기다.
 
  “1995년 히로시마 사무실에 ‘한일문화교류센터’라는 간판을 달았더니 건물 주인 할머니가 ‘한국이 싫다’며 당장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일본 내 한국인들이 얼마나 편견에 시달리며 살아왔을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30여 년 가까이 지나면서 편견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이해하고 우호 관계를 증진시킨다면 서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물론, 양국 교류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한 편견 없이 행복하고 풍요롭게 사는 것, 그 외에 다른 바람이 뭐가 더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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