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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장

폐암 말기 극복하고 다시 정치 현장으로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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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말기 폐암을 극복한 김한길(69)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정계로 복귀했다. 직함은 국민의힘 살리는 선거대책위원회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 ‘새시대준비위원회’라는 이름은 김 위원장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김한길 위원장이 다시 정계로 복귀하리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다. 김 위원장은 2019년 10월 폐암 판정을 받고 여의도를 떠났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하루에 담배를 4~5갑씩 피울 정도로 ‘골초’였다. 폐암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4기였다. 4기는 암세포가 장기 주변부까지 전이되는 단계다. 폐암은 다른 암들과 달리 사전 징후가 거의 없다고 한다. 항암 치료를 한다고 해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암세포 전이를 막기 위해 한쪽 폐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 의식을 잃곤 2주 동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폐암에서 완치된 후 가족과 함께 방송에 출연해 암 투병기를 밝힌 적이 있다. 암 투병 당시 김 위원장은 몸에 근육이 다 없어져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했다고 했다. 아내 최명길은 남편이 혹시나 넘어질까 두께가 5cm가량 되는 스펀지를 집안 곳곳에 깔아놓았다.
 
  집에는 벨을 설치해 김 위원장이 벨을 누르면 온 가족이 들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김 위원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비참했다”면서도 신약(新藥)과 아내 덕분에 완치될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신약은 10명 중 2명에게만 효과가 있다는 약이었다.
 
  김한길 위원장은 정치인 이전에 교사, 작가, 기자, 방송인이었다. 서울 중앙여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책을 써 베스트셀러로 만들기도 했다. 1991년 발표한 소설 《여자의 남자》는 3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가수 조영남을 상징하는 ‘화개장터’는 김 위원장이 작사했다.
 
  1993년에는 방송인이 돼 MBC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을 진행하며 인기를 얻었다. 1995년 당시 인기 여배우였던 최명길과 재혼했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김대중 당시 총재의 권유로 15대 총선에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 전국구로 출마해 처음 당선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고 4선 의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윤석열 후보는 김한길 위원장을 영입한 이유로 “중도적이고 합리적 진보를 포용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함께하자고) 여러 차례 부탁을 드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윤 후보에게 “국민의힘도 이제는 중원(中原)을 향해 두려움 없이 몽골 기병처럼 진격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자기 역할을 명확히 했다.
 
  새시대준비위원회는 ▲기획조정본부(본부장 최명길 전 의원) ▲미래선착본부(유병준 교수) ▲공약지원본부(왕윤종 교수) ▲대외협력본부 ▲지역화합본부(김동철 전 의원) ▲진상배달본부 ▲깐부찾기본부 등이 있다. 각 본부장에는 민주당과 국민의당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이 임명됐다.
 
  호남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최근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시임실군순창군)은 대외협력본부장을 맡게 됐다.
 
  윤석열 후보가 김한길 위원장을 영입한 것을 두고 ‘윤 후보의 안철수 후보와 막판 극적 단일화를 고려한 계산’이라는 말도 나온다.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의도야 어떻든 3월 9일이 다가올수록 윤석열-안철수 후보 사이에서 김 위원장을 주목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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