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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재능기부협회 최세규 이사장

“24년 동안 전세금 안 올린 이유요? 세입자 잘되니 제 기분이 좋던데요”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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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전 ‘재능기부’ 용어 만든 주인공
⊙ 누구나 재능은 있다, 어깨 주물러주는 것도 재능기부… 작은 것부터 나눠야
⊙ 주방기기 사업으로 사옥 올려 24년간 세입자에 전세금 7000만원 ‘생활 속 나눔’
⊙ ‘허리 펴는 시간도 아깝다’며 나눔 실천한 부모님 기질 물려받아

崔世圭
1960년생. (사)한국재능기부협회 이사장, (사)한국창조경영인협회장, (주)동양테팔키친 회장, (사)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상임부회장, 동반성장클럽 회장, 제주특별자치도 홍보대사, 여수 세계엑스포 홍보대사, 순천 정원박람회 홍보대사
사진=최세규 제공
  언제부턴가 들려온 단어다. 재능기부. 처음엔 생소했지만 지금은 고유명사가 됐다. 사전에도 나온다.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개인의 재주와 능력을 대가 없이 내놓는 일’이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이 있다. (사)한국재능기부협회 최세규(60) 이사장이다. 그는 “사용하고 나면 없어지는 현금 기부와 달리, 쓰면 쓸수록 불어나는 것이 ‘재능’이더라”고 말했다.
 
  “재능은 개인, 기업, 단체 모두가 갖고 있습니다. 이를 나눠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누구나 쉽게 소외계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협회를 설립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다
 
기부를 위해 직접 김치를 담그는 최세규 이사장. 사진=한국재능기부협회 제공
  2012년 11월 발족한 협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부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실현’에 초점을 뒀다. 설립 계획은 2009년부터 세웠다.
 
  “당시에도 나눔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이가 재능기부에 관심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일례로 전문지식을 갖고 은퇴하면 그 재능이 아깝잖아요.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무료로 재능을 나누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협회가 최소한의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지속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명예이사장인 정운찬 전 총리를 포함해, 초기 30명이던 협회원은 창립 4개월 만에 500명을 넘어섰다. 설립 10년인 지금은 무려 7500명에 달한다. 머릿수가 많아질수록 나눔도 커졌다. PC(개인 컴퓨터)·마스크·연탄 등 물품기부, 무료급식, 집수리, 농촌일손돕기 같은 현장 봉사는 기본이다. 미술품 자선경매, 무료 합동결혼식, 재소자를 위한 희망콘서트, 군부대 위문공연 등 기부행사도 정기적으로 열었다. 지금까지 40회가 넘는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십억원이다. 최 이사장은 “이 모든 게 정부 지원 없이 7500명 협회원의 재능이 모여 이룬 일”이라고 했다.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망설일 필요 없다. 최 이사장은 “재능이란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특별한 무언가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면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 누군가에게 주는 도움이 곧 재능”이라고 말했다.
 
  “성공한 CEO의 창업 멘토링, 문화예술인의 자선공연, 목소리 기부 등이 전형적인 재능기부이지만, 몸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안마를 해드리는 것, 목욕봉사, 설거지 등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도 재능기부가 될 수 있습니다. 소소한 재능이 모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개개인의 작은 재능이 모여 큰 규모의 콘서트도 열 수 있는 것처럼요.”
 
  최 이사장의 본업은 따로 있었다. 동양키친나라를 설립한 그는 주방용품 업계에서 입지전적 인물이다. 매출액 100억원대 회사의 출발은 한 지하상가였다. 당시 수중에 있던 돈은 단 300만원.
 
  “1989년 3월이었어요. 서울 신당동 동화극장 지하상가에 월세 30만원짜리 점포를 얻어 주방용품 할인매장을 열었어요. 처음 해본 일인데다, 해가 들지 않는 허름한 곳이라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손님은 없었죠.”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용품 몇 개를 챙겨 지하철 입구에 좌판을 차렸다. 좋은 물건을 싸게 내놓으면서도 한 번 온 고객은 반드시 다시 오게 만든다는 각오로. 행인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였다. ‘거기가 어디냐’며 지하상가로까지 찾아왔다. 단골이 생겼고, 좌판을 치웠다. 1년 반 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
 
 
  전셋값 동결로 나눔 실천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사업 시작 6년 만인 1996년, 4층 규모의 사옥을 짓기에 이르렀다. 눌러붙지 않는 팬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주방기기 업체 테팔의 한국 공식 총판사로 선정되면서 사업은 더욱 승승장구했다. 협회를 만든 건 그 무렵이다. 받은 만큼 베풀기로 한 것.
 
  “어느 날 퇴근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일몰이 참 아름답더라고요. 갑자기 눈물이 흘렀어요. 생각해보니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하는 게 6년 만이더군요. 제3단계 꿈의 마지막 절차였던 사옥을 짓고 나니 이제는 이익 창출이 아닌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렵 뜻이 통하는 몇몇 기업인과 한국프랜차이즈협회를 설립해 예비 창업자들에게 지식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으며 1999년 정부로부터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한국신지식인협회 회장을 맡아 사비로 협회를 운영하기도 했다. (사)한국창조경영인협회장, 동반성장클럽 회장을 맡은 것도 그 연장선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회사 일을 병행하기 힘들어졌다. 어느 한쪽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는 ‘돈 버는 일’이 아닌 ‘나누는 일’을 택했다.
 
  최 이사장은 요즘도 직접 재능기부에 나선다. 성공한 기업가로,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사업 컨설팅을 해주는가 하면, 사정이 어려운 지인의 주례사를 맡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건물 세입자에게는 24년간 전세금을 ‘동결’해주고 있기도 하다. 서울 용두동. 그가 세운 건물 꼭대기 층은 가정집이다. 옥탑방까지 세 가구가 살 수 있다. 그중 20여 평(약 66m2) 집은 지금까지 전세금 7000만원이고, 10평(약 33m2)짜리 원룸은 3000만원을 받는다. 옥탑방 세입자에게는 24년간 전기·수도 요금과 방세를 받지 않고 ‘무상임대’ 중이다.
 
  “요즘 집값 때문에 난리지 않습니까. 고위직 분들의 부동산 문제도 많이 입에 오르내리고요. 왜 그럴까. 저렇게 해서 돈을 더 벌면 좋은 걸까. 한번 되돌아봤습니다. 나는 잘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24년간 한 번도 전세금을 올리지 않았더군요. 계획한 일은 아니었는데, 그저 세입자들이 돈을 많이 모아서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것을 보니 뿌듯하고 제 기분이 좋더군요, 허허.”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문자메시지
 
  나누는 삶,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그는 “상대가 먼저 등을 올리지 않는 한 한번 인연은 끝까지 가져간다”면서 “세월이 갈수록 사람이 모이는 이유”라고 했다. 10년 전 30명이던 협회원이 단기간 7500명으로 늘어난 것도 그래서다. 그만의 인맥관리법도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최 이사장은 인연을 맺은 7500명 회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이런 식이다.
 
  〈“주먹을 쥐고 있으면 악수를 할 수 없고 마음을 닫고 있으면 진정한 행복을 나눌 수 없습니다.”
 
  “삶은 어차피 연극인데 좀 멋들어지게 연극합시다. 여러분은 모두 주연배우입니다.”
 
  “제 목표는 70세가 되었을 때 ‘이건 꼭 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지 않는 겁니다.”
 

  “다른 누군가를 밝혀주기 위해 등불을 켜면 결국 자신의 길도 밝힐 수 있습니다.”
 
  “꿈과 희망은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희망을 버릴 뿐입니다.”〉
 
  매주, 정해진 시각에 보낸 짧은 글. 혹자는 ‘얼마 하다가 말겠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벌써 24년째다. 한 주도 거른 적 없다. 매주 보내는 문구도 다르다. 처음엔 시중의 명언을 각색해서 보내다가 지금은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24년 전 어느 가을, 미시령에 갔는데 풍광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동창 100명에게 즉흥적으로 감상문을 적어 보냈는데 반응이 좋더군요. 좀 더 많은 사람과 좋은 글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죠.”
 
  7500명 중 답장을 보내오는 사람은 100명 남짓이다. 회수율(?)이 낮지만 섭섭하지 않다고 했다.
 
  “애초에 답장을 바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 짧은 글을 보내려고 몇 시간씩 고민할 때도 있어요. 감동을 줘야 하니까 굉장히 신경을 쓰죠. 덕분에 제 글솜씨도 많이 늘었습니다. 남을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 저한테 좋은 일이었던 거예요.”
 
 
  나눔에 눈뜬 계기
 
지난 3월 30일 개최한 ‘2021년 제29차 재능나눔공헌대상&창조혁신경영대상 시상식’. 사진=한국재능기부협회 제공
  그는 “나눔 또한 마찬가지로, 결국 내가 충만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에 눈뜬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시골에서 어렵게 모은 돈을 마을길 넓히는 데 사용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중에 돈을 벌면 사회에 기부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허리 펴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셨어요. 손이 마를 새 없이 일을 하시면서도 누군가가 오면 혹 빈손으로 보낼까 대접 하는 일을 잊는 법이 없었죠.”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의 경험도 자극이 됐다. 친구가 시애틀의 한 교회에서 만난 ‘보드만 부부’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이 부부가 무려 7명의 입양아를 들였다고 한다. 심지어 입양아 전원이 장애인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봉사를 사랑을 실천하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가. 먹고살기 위해 돈을 쫓았지만 먹고살 만한 후에는 뭘 쫓고 있는가…. 질문은 끝이 없더군요.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 그리고 나누자. 설령 내가 가진 것이 보잘것없더라도, 보드만 부부만큼은 아닐지라도.”
 
  최 이사장은 “협회의 장기적인 목표는 재단법인으로 전환해 사회에 더 큰 폭으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서 “금년 안에는 ‘재능기부 매장’을 만들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재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훗날 어떤 ‘이름’으로 남고 싶냐고 묻자, “그저 ‘좋은 이웃집 아저씨’로 기억되기 바란다”고 했다.
 
  “저의 꿈은 많아요. 박물관 설립, 나눔 관련 법 제정, 전 세계적인 재능기부의 확산…. 하지만 결국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더군요. 사람을 사랑하자. 사람이 행복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는 없죠. 꼭 재능기부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향해서,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란 것은 사람을 받드는 일임을 압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저 평범하게 살다 간 사람이고 싶어요. 제가 하는 일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재능기부 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 이사장은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 하는 것”이라면서 “실천이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기부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한 사람은 없습니다. 해본 사람은 계속합니다. 그렇다고 나눔이란 게 누가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에요. 들불처럼 번져나가야 합니다. 깃발을 꽂아놓았으니 모여드는 사람이 계속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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