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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한왕기 평창군수

동계올림픽 이후 30개월, 평창은 고민 중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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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계올림픽 유치에 12년, 준비에 8년… 올림픽에 20년 바친 평창군
⊙ “이러려고 올림픽 치렀나”… ‘올림픽우울증’ 앓는 평창군민들
⊙ “IOC는 아직도 평창이 郡이 아닌 市인 줄 안다, 市로 승격돼야”
⊙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산은 평화… 올림픽평화테마파크 건립해야”
사진제공=평창군청
  9월 4일 금요일 아침 강원도로 향하는 열차 안. 객실 안엔 예상보다 꽤 많은 승객이 앉아 있었다. 코로나19 청정지대나 다름없는 강원도에서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으러 가는 걸까. 서울역에 1시간30분을 달려 KTX 평창역에 닿았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평창역에 내린 사람은 기자 한 명뿐이었다. 조용하다 못해, 괴괴한 평창역을 나섰다.
 
  군청이 있는 평창읍으로 가는 길, 2년 전 올림픽의 북적거림은 온데간데없었다. 뭐,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 지 2년 반, 30개월이나 됐으니 말이다. 도로변에 어쩌다 보이는 동계 스포츠 종목 상징물들도 왠지 풀 죽어 보였다. 외지인의 뭣 모르는 감상일까. 평창군민들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했다.
 
 
 
  올림픽과 함께한 20년
 
  “유치하는 데 12년, 준비하는 데 8년. 평창은 20년을 올림픽과 함께 보냈습니다. ‘올인’했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요. 우리 군민들이 올림픽에 애정이 많아요.”
 
  한왕기(韓旺機·61) 군수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올림픽과 올림픽 이후에 대해서 말이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한편으론 올림픽이 없었다면, 평창이 다른 쪽으로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후유증은 생각보다 큰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간 준비한 올림픽은 2월 9일부터 3월 18일까지 단 6주 만에 끝나버렸다. 영원히 계속되는 축제가 있겠냐마는, 들인 애정만큼 허무함도 길 수밖에 없겠다.
 
  한 군수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산증인이다. 처음 유치 신청을 하는 순간부터 폐막 이후까지 전 과정을 지켜봤다. 한 군수는 평창에서 태어난 평창 토박이다. 1986년 공무원 입직 후 2000년 민선 2기 첫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관내 8개 읍·면 중 남부권 2곳(미탄면·방림면)과 북부권 2곳(용평면·진부면)에서 면장을 지냈다. 평창군에선 의미 있는 이력이다. 평창군은 면적이 대단히 큰데 남북의 격차가 크다. 평창군의 바닥 민심을 골고루 체험한 셈이다. 한 군수가 직전 현직 군수였던 심재국 후보를 이기고 민선 7기 군수에 당선된 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올림픽 유치의 꿈은 용평돔 경기장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평창돔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9년에 평창 대관령 용평돔 경기장에서 동계아시안게임을 치렀어요. 성공리에 잘 치렀죠. 그때 강원도의 지도자들이 모였어요.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가 제안했어요. ‘이제 동계올림픽에 도전하자.’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됐어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 강원도에 다른 시·군도 많은데 왜 평창이 올림픽 유치에 나섰나요.
 
  “처음엔 5개 시·군이 하겠다고 나섰어요. 강릉시, 원주시, 횡성군, 평창군, 정선군이 연합으로 유치하자고. 그런데 강릉과 원주가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정부가 덤벼들어도 힘든 판에 강원도와 시장, 군수들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나요? 말로는 전부 ‘유치합시다’ 하고는 실질적으론 평창군수만 적극적으로 뛰었어요. 다른 시·군에서 맨날 우리를 비꽜어요. ‘촌놈들이 뭘 몰라서 무대뽀로 덤빈다’고요.”
 
  ― 왜 평창군만 적극적이었나요.
 
  “우리한테 비전이 없지 않습니까. 평창군이 전국에서 네 번째로 큰 지자체입니다. 면적순으로 홍천, 인제, 안동 그다음이 평창이지요. 서울의 두 배 반입니다. 면적은 넓은데 쓸 수 있는 땅은 별로 없습니다. 전체 면적의 84%가 산림인데 그중 국유림이 58%예요. 그렇다면 일단 58%는 못 써요. 산림보호법, 백두대간보호법, 환경보호법 생태 1등급, 2등급 법령의 규제를 받아요. 여기에 또 한강수계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어요. 한강 최상류니까요. 규제 때문에 그나마 산림도 활용할 수 없어요.”
 
  ― 올림픽에서 비전을 찾은 거네요.
 
  “올림픽으로 꿈을 이뤄내자고 한 거죠. 다른 도시는 무덤덤했고요. 그러다 보니 도지사는 유치를 해야겠는데 평창군수는 적극적이니 평창동계올림픽이 된 거예요. 안 그랬으면 강릉동계올림픽이나 원주동계올림픽이 됐겠죠.”
 
 
  ‘평창市’로 유치 신청
 
2011년 2월 20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현지실사가 강릉 실내종합체육관에서 열렸다. IOC평가단이 체육관에 들어서자 주민 2018명이 유치 소망을 담은 노래 ‘Why we sing’을 불렀다. 사진=조선DB
  ― 올림픽 유치 신청하는 것도 지켜보셨나요.
 
  “제가 그때 권혁승 전임 군수 비서실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처음 로잔 IOC 본부에 파일을 접수하러 갔어요. 김 지사며 다 같이 가서 제출하는데 접수처에서 ‘노(NO)’ 그러는 거예요. 물었어요. ‘왜 그러냐’ 그러자 이런 답이 왔어요. ‘카운티(county·군)는 안 된다. 올림픽 유치도시는 시티(city·시)여야 한다.’ 창구에서 바로 거절당한 거죠.”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 의견이 나왔어요. ‘그럼 시티로 고칩시다.’ 김 지사도 말씀하셨지요. ‘시티로 고쳐서 다시 제출해 봐.’ ‘평창 카운티’를 시로 고쳐서 한두 시간 후에 제출했어요. 그러니 ‘시티면 괜찮다’ 그러더라고요. 올림픽이 유치되면 정부에 시로 승격해달라고 요청하자, 이렇게 된 거죠.”
 
  ― IOC(국제올림픽위원회)를 속인 꼴이 됐네요.
 
  “사실 평창군이 시로 승격되는 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거든요. 지방자치법에 5만명 이상이어야 시가 될 수 있어요. 근데 계룡시도 시로 승격될 때 인구가 3만명가량이었어요. 지금도 4만3000명이거든요. 계룡시를 위한 특별 규정을 만들어서 승격해준 거죠. 세종시도 시가 될 땐 맨땅이었어요. 지금은 인구가 많지만요. 특별법으로 시가 된 거죠. 우리는 결과적으로 IOC를 속인 셈입니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죠.”
 
 
  1950년에 이미 스키장 들어서
 
  평창이 동계 스포츠대회를 유치하게 된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스키장이 생긴 곳이 바로 평창이다. 1950년 초 ‘평창에 대(大)스키장이 개장한다’는 신문 기사도 있었다. 발상지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스키장이 생긴 곳도 평창이다. 1975년 대관령에 들어선 용평리조트다.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니, 군민 중엔 스키를 수준급으로 잘 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한 군수도 스키를 타며 자랐다.
 
  “어릴 때 나무를 깎아 만든 스키를 탔어요.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진짜 스키를 처음 탔죠. 대관령엔 겨울이 6개월이었어요. 11월에 내린 눈이 4월이 돼야 녹습니다. 치워도 치워도 눈이 쌓여서 포클레인으로 치워야 될 정도였어요. 앞이 안 보이니 집을 나설 땐 다래덩굴로 만든 설피를 신었지요. 나무 스키를 등에 짊어지고, 산을 오를 땐 설피로 내려올 땐 스키를 타고 내려왔어요. 그러다 보니 스키가 생활화되었죠.”
 
  3수 만의 유치 성공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올림픽 유치할 때까지 12년 동안 1200억원이 들어갔습니다.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도시가 2003년에 체코 프라하에서 결정됐어요. 그때 전세기를 띄워서 갔죠. 1차 투표에선 1등 했는데 2차 투표에서 밴쿠버에 밀렸어요. 그때 김운용 대한올림픽위원장이 IOC 부위원장에 도전했어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한 말입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 하나를 선택하라.’ 김 위원장은 IOC 부위원장에 당선됐고 평창은 올림픽 유치에 실패했어요. 그때 분이 안 풀린 군민 5000명이 국회로 몰려가 시위도 했어요.”
 
  한때 국제 스포츠 외교계를 풍미한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과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올림픽이 중요한 이벤트던 시대의 이름들이다. 김운용 부위원장은 프라하에서의 평창 유치 실패 의혹에다 대한태권도협회에서의 문제가 불거져 결국 스포츠 외교계를 떠났다. 이후 한국은 그만한 영향력을 가진 IOC 위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있었지만 그마저 IOC 위원을 그만뒀다.
 
 
  9000명 인간띠로 실사단 환송
 
2018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렸다. 사진=조선DB
  ― 2011년에 IOC 실사단이 평창을 찾았을 때 여러 얘깃거리가 있었지요.
 
  “실사단을 환송하려고 4km 길을 인간띠로 둘러쌌어요. 평창군민 1000명, 강원도민 8000명이 참여했어요. 그날따라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길에 몇 시간을 서 있었어요. 기다리는데 실사단은 왜 그렇게 안 오는지…. 그런데 사람들 옷이 다 까만색 일색이에요. 보기에 별로라고 해서 알록달록한 스키복을 스키용품점에서 돈을 내고 왕창 빌려 사람들에게 입혔지요. 그때 길에 서 있던 아이들이 지금은 어른이 돼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당시 평창군의 노력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실사단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평창군 군민들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머리까지 다듬었다고 한다. 군민들이 올림픽만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건 다 한 셈이다.
 
  ― 올림픽도 결과적으로 잘 치렀지요. 큰 사고 없이.
 
  “그때 북한이 미사일 쏘고 동아시아에 긴장이 고조될 때였어요. 외국에선 선수 안 보내겠다는 얘기까지 나왔거든요. 그런데 남북한이 개회식에 공동 입장하고 여자 아이스하키는 단일팀으로 출전하며 긴장상태를 완화했어요. 스포츠를 통해 평화 분위기를 만든 ‘평화올림픽’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아쉬운 건 올림픽 이후를 제대로 계획하지 못했어요.”
 
  ― 이후라면요?
 
  “올림픽 스타디움과 메달 플라자가 대회 끝나자마자 싹 철거됐어요. 지금 만약 스타디움이나 메달 플라자가 있었다면 엄청난 관광 자원이 됐을 겁니다. 올림픽 개최도시를 보겠다고 중국에서 관광객이 많이 왔어요. ‘올림픽을 어디에서 치렀나’ 묻는데 그 자리는 폐허가 되어 있는 겁니다. 시설 유산이 있으면 올림픽 유산 사업하기가 굉장히 수월할 텐데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올림픽 유산에 대한 고민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단일기를 흔들며 공동입장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올림픽 유산(legacy)’은 올림픽을 개최한 후 나타나는 유·무형의 긍정적 효과를 뜻한다. 올림픽경기장, 교통 인프라 같은 유형 자산부터, 자부심, 동계 스포츠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 등 무형의 자산이 그 예다.
 
  올림픽 레거시를 잘 살린 올림픽으로 2012 런던올림픽이 꼽힌다. 영국 정부는 런던올림픽 유치를 검토할 때부터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더 위대한 런던)’이라는 프로젝트를 수립해 접근했다. 올림픽을 통해 런던의 낙후 지역인 동부를 재생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대회장을 어디에 세워서 추후에 어떻게 활용할지 등을 세심하게 계획했다. 그 결과, 예를 들어 수영대회장이었던 아쿠아틱 센터는 지역주민 커뮤니티, 클럽, 학교를 위한 시설로 쓰이고 있다. 매년 수십만명이 이용한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에 얹혀 있지 않은 기억은 지속력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잠실 올림픽경기장과 올림픽공원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울올림픽이 되새김질되는지도 모른다. IOC도 서울 올림픽공원을 올림픽 레거시의 좋은 사례로 평가했다.
 
  ― 평창군이 나서서 스타디움을 부수지 말고 일단 보존하자고 제안하지 그랬어요.
 
  “군민들은 실망감이 컸어요. 이러려고 올림픽 치렀나. 올림픽 치르고 나면 아주 잘살게 될 줄 알았죠. 그런데 대뜸 올림픽 스타디움과 메달 플라자가 철거되니 깜짝 놀란 거예요. 폐허가 됐으니까요. 우리가 이러려고 20년을 노력했나, 이거예요. 너무나 안타깝죠.”
 
 
  평창군민의 올림픽우울증
 
올림픽 폐회 직후 철거해 폐허가 되어버린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자리. 현재까지 이런 모습이다. 사진제공=평창군청
  부수지 말자고 버티지 그랬나, 물었지만 사실 평창동계올림픽 스타디움과 메달 플라자는 처음부터 ‘일회용’으로 설계됐다. 제대로 된 체육관을 지어도 지방 재정으로는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올림픽, 패럴림픽의 개·폐회식으로 단 4회만 쓰일 건물이었다. 4회 사용할 건물을 위해 635억원의 건설비에 철거비용 305억원, 보상비 및 감리비 228억원까지 총 1163억원을 투입했다.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팅 후 성화를 점화한 개회식, 싸이·빅뱅·씨엘 등 케이팝 가수들이 빛낸 폐막식이 열렸던 스타디움은 대회 폐막 직후 바로 철거됐다. 이로써 평창군은 개·폐회식장이 없는 유일한 올림픽 개최지가 됐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경우, 개막식·폐막식이 열렸던 나가노 동계올림픽 스타디움을 후에 야구장으로 개조해 활용하고 있다. 한 군수의 말이 이어졌다.
 
  “평창군민 4만3000명 모두 올림픽에 애착이 많아요. 작년에 올림픽 1주년 행사를 강릉에서 치른다는 거예요. 도청으로 군민 1200명이 시위하러 갔어요.”
 
  ― 왜 강릉에서 치르려 했나요.
 
  “평창에는 올림픽 스타디움이고 뭐고 다 부수고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우리 군민들은 스타디움 철거한 것만 해도 화가 나서 죽겠는데 맨땅에서라도 기념식을 하라고 시위했어요. 그것까지 평창에서 안 하면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너무하다고요. 다행히 도에서 수용해줘서 그 추운 날 맨땅에서 기념식을 했어요. 군민 전체가 뭉쳐서 유치하고 치러냈잖아요. 올림픽에 대한 열정은 쉽게 안 사라집니다.”
 
  일종의 ‘올림픽우울증’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도 올림픽이 끝난 후 우울증을 겪는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도 2012년 런던올림픽 후 우울감에 침체기에 빠져 한동안 고생했다. 평창의 경우 올림픽 이후에 대한 준비도 미흡해 군민들이 받은 타격이 더 컸다. 한 군수가 뒤늦게라도 올림픽 유산 사업에 열심인 이유다.
 
  “평창동계올림픽은 평화올림픽, 안전올림픽이었습니다. 강원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협력해 올림픽 테마파크 사업을 승인받았어요. 사업이 잘 진행되면 여기에서 올림픽평화유산 사업을 할 평화센터를 건립해 평창평화포럼에서 채택된 의제들을 실천하는 장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 이후에 잉여금 28억원을 받았어요. 이 28억원은 단순 예산으로 쓰기보다는 평화재단의 기금으로 쓰려 합니다. 군에서 22억원 보태서 50억원으로 평화재단을 출범시켜 전문가 그룹에 맡기려 합니다.”
 
  ― 평창평화포럼은 뭡니까.
 
  “다보스포럼이 경제포럼이라면, 평창포럼은 평화와 관련한 회의를 하는 포럼입니다. ‘평창(平昌)’이라는 한자를 파자(破子)해 해석해보면 ‘평화가 태양처럼 솟구치는 곳’이랍니다. 평화올림픽이 된 것도 어쩌면 운명이었던 거죠. 여기에서 세계 평화 회의를 열면 올림픽도 잘됐듯이 잘되지 않을까요. 대북 관계 회의도 평창에서 하면 좋겠어요. 다보스에 가보니 교통도 열악하고 대관령보다 못합니다.”
 
 
  ‘평화올림픽’으로 기억되길
 
2013년 평창돔(용평돔)에서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이 열렸다.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폐막식에서 김연아 선수와 미쉘 콴 SOI 이사가 지적장애 선수들과 환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사진=조선DB
  ― 평창군민들은 올림픽에 20년을 쏟아부었는데, 그러면 평창올림픽이 평창군민에 남긴 건 뭡니까.
 
  “사실 평창을 우리나라 안에서도 잘 몰랐거든요. 평창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어요. 올림픽 때 오신 분들이 평창의 자연에 반했어요. 토마스 바흐 위원장도 그랬어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공기도 좋고, 산이 어떻게 이렇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도가 700m다 보니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고 쾌적하다는 거예요. 평창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전 세계에 알려졌어요.”
 
  한 군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올림픽 유산 사업으로 평화센터를 건립해 군민들이 직접 평화재단을 운영하게 되면 이제 평창군민들도 평화라는 무형의 올림픽 유산을 갖게 되는 겁니다. 평창군의 힘은 약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보여준 평화로 세계 곳곳 분쟁과 갈등 있는 곳에 평화를 주면 보람된 일 아닙니까. 스포츠로 남북관계 물꼬도 틀 수 있지 않을까요?”
 
  ― 평창돔도 헐릴 뻔했다지요.
 
  “원래 소유한 업체가 평창돔 주차장 부지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거예요. 아파트 사이에 파묻히면 결국 어느 날 슬쩍 헐리거든요. 운영비도 많이 들어가고 시설이 노후돼서 유지하기 힘들다는 거예요. 그런데 역사적인 장소거든요. 평창동계올림픽이 처음 시작된 곳입니다. 동계아시안게임이며, 세계태권도한마당 같은 의미 있는 행사를 많이 치렀어요. 우리도 돔 경기장이 있다, 평창돔 때문에 참 뿌듯했어요. 그래서 평창군이 맡기로 했어요. 무상양여를 받았습니다.”
 
  ― 동계스포츠의 역사가 숨겨져 있는 곳이네요.
 
  “건물도 무척 튼튼합니다. 22년 전에 250억원을 들여서 지었거든요. 그런데 안의 기계시설이 노후됐어요. 냉방 시설도 전혀 없고요. 22년 전만 해도 평창에 냉방 시설이 필요가 없었거든요. 지금은 기후가 변화돼 여름이면 안이 찜통이 됩니다. 전체 정비하는 데 60억원이 든답니다. 잘 정비해서 2024년에 열릴 강원청소년동계올림픽 때 활용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이동하는 길, 저만치 사과 농장이 보였다. 평창에서도 이제 사과를 재배한다. 기후 변화 때문에 작물 생육선이 북상한 탓이다. 강산도 변하는데 규제에 묶인 평창의 거리 풍경은 10여 년 전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올림픽 유산을 계승하며 발전시킬 수 있을까. 평창은 요즘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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