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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원로 사제 鄭義采에게 듣는 2020년 한반도 미래

“늦어도 20년 후면 북한의 共産 왕조체제는…”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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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인(白人) 위주의 국제질서는 서서히 해체돼”… ‘다양성 속에 하나’ ‘하나 속에 다양성’이란 인류 공통 문화 형성
⊙ “분단의 상흔인 38선은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해”
⊙ “북한 변화는… 인간 지혜만이 아니라 더 큰 능력에 의해 움직여”

鄭義采 몬시뇰
1925년생. 덕원 신학교 고등부, 가톨릭대 졸업.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대학 철학박사 / 가톨릭대·서강대 교수, 가톨릭대 대학원장·총장 역임 /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 저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형이상학》 외 다수
  정의채(鄭義采·94) 몬시뇰(교황 명예고위성직자)은 한국 가톨릭의 지성(知性)이라 불린다.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교계에선 세계사의 흐름을 간파하고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는 혜안을 지닌 분으로 알려져 있다. 《월간조선》은 그에게 2020년의 명운(命運)과 한반도의 미래를 물어보았다. 2019년 12월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있는 ‘김성학관’에서 정 몬시뇰을 만났다.
 
  정 몬시뇰은 1925년생이다. 평북 정주(定州)가 고향인데, 일제강점기 피폐해가던 농촌에서 자랐다. 그의 백부는 이른바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日警)의 모진 고문으로 사망했다. 백부의 시신을 수습한 선친에 따르면 “머리 정수리에서 발톱 끝까지 고문의 상처가 안 난 데 없이 온몸이 누더기가 돼 있었다”고 한다.
 
  보통학교 6학년 때 미국 외방선교회인 메리놀회 신부와 만나면서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1941년 함경남도 원산 부근 덕원의 성베네딕도 수도원 신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당시 정 몬시뇰은 “일본 군인이 되어 전쟁의 희생물이 되는 것이 죽기만큼 싫었다”고 한다.
 
  덕원 신학교와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53년 사제 수품을 했다. 부산 피란 시절 초량성당과 서대신동성당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실의에 빠진 많은 피란민에게 영세를 주었다. 첫해에 100여 명에게 영세를 주고 그 이듬해는 500명, 3년 차 신부 때는 700명, 4년 차 때는 2000여 명의 예비자 중에서 1700여 명의 영세자를 배출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한 해에 1700명이라는 영세자를 냈지만,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장소가 마땅치 않아 비가 올 때는 거적을 쓰고 두꺼운 종이로 머리와 몸을 가려야 했어요. 고무신을 신고 땅 위에 서서 교리를 받았습니다. 돈이 없어 성당 건축은 엄두도 못 냈죠. 저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포교성성) 총무인 시지스몬디(Sigismondi) 대주교(훗날 추기경)에게 ‘교구나 선교 수도회가 선교사를 보낼 수 없으면 수도회에 재력이 있으니 무이자로 10~20년간 대여해주면 한국이 부흥하니 후일 갚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성직자 지망생이 많다’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이후 많은 가톨릭 선교단체와 수도회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유럽에서는 사제나 수도자 지망생이 많이 줄어드는데 한국은 성소(聖召) 지망생이 많은 것도 작용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東洋문화권으로 경제체제 중심이 옮겨올 것”
 
1955년 부산 서대신동성당 보좌신부 시절의 정의채. 오른쪽이 메리놀 선교회 권요셉(Fr.J.Conors) 주임신부.
  1957년, 정의채 몬시뇰은 더 높은 지성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그의 장도(壯途)를 축하하기 위해 단층의 부산역사(驛舍)에 2000여 명의 신자가 운집해, 역장이 직접 나와 역내를 정비했다고 한다.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1961년,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라는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교황청은 그를 가톨릭 교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학 중 하나인 라테란대학 교수로 발령을 수차례 냈으나 정 몬시뇰은 고사했다. “폐허가 된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에서였다.
 
  귀국한 그는 가톨릭대 교수와 대학원장과 총장, 서강대 교수와 석좌교수, 성심학원 재단 이사장, 아시아 가톨릭 철학인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성직자를 양성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형이상학》 《존재의 근거문제》 등 굵직한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 21세기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만연하여 새로운 정신사적 흐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세기 자본가의 탐욕과 인간의 안락, 편의 추구는 인간 존재의 모태이며 생명의 젖줄인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자연의 놀라운 보복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래서 현존하는 ‘인간 체제의 근본적 개조’라는 요청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미래는, 멀리 잡아 3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서양인(白人) 위주의 국제질서는 전면적으로, 그리고 서서히 해체됩니다. 그리고 ‘다양성 속에 하나(unitas in diversitate)’이며 ‘하나 속에 다양성(diversitas in unitate)’이란 새로운 인류 공통 문화의 흐름이 형성됩니다. 이런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사상은 있을 수 없고, 또 무력으로 제압할 수는 더욱 없어요.
 
  그 속에서 사양길에 들어선 구미(歐美) 교회와 달리 유불선(儒佛仙)이라는 공통 기반을 같이하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인류 보편성의 본질인) 가톨릭성(catholicitas)을 더 풍요롭게 구현하고, 구현하리라는 것이 제 믿음이고 바람입니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 동양문화권으로 경제체제 중심이 옮겨올 것입니다. 이런 인류문화사의 변천이 일어날 때, 아·태(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어, 아·아(아시아·아프리카), 아·미(아시아·북남미), 아·구(아시아·유럽) 등의 문화권을 형성할 것입니다.”
 
  ―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공통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공존(共存), 공생(共生), 공영(共榮)이지요. 이는 하느님의 창조 의지에 따라 사는 ‘현세 삶’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실례로 77%의 백인과 23%의 유색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가톨릭교회가 꾸준히 가르쳐온 정책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학교에서 백인과 흑인의 차별을 없애고 함께 교육받도록 한 것은 가톨릭교회의 굳건한 정책이었죠.
 
  지난 수세기 동안 식민지의 착취와 독재로 인류를 이끌어온 표어가 ‘사회정의’ ‘인권’이었다면, 인류 공통의 문화 시대에는 ‘생명 사랑’이 주제가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인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요한복음 17, 11)의 실현입니다. 먼 미래의 일이지만 3000년대 들어 인류는 하느님의 ‘창조경륜’에 더 가까이 다가섭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구속경륜’이 합쳐질 때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바람은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정 몬시뇰이 말한 ‘구속(救贖)’이란 성서적 의미의 용어로,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건져내어 하느님의 은총 속에 있게 하려는 섭리적 행위를 뜻한다.
 
 
  왕조체제로 회귀하는 북한… 난센스한 인류 흐름의 한 가락
 
1952년 부제 수품을 한 정의채 신부. 오른쪽은 노기남 대주교다.
  ― 한반도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낙관적으로 봅니다. 그것은 새천년이라는 커다란 인류의 흐름에 따라 그럴 것으로 봅니다. 한반도 통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어느 시점, 어느 시간대에 통일이 이뤄진다고 말할 수는 없고요, 인류 공통의 문화라는 커다란 물결 속에서 봐야 합니다.
 
  사실 6·25전쟁 때는 유물론적 공산주의 사상과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세력 간 격돌이었지요. 그러던 것이 1980년대를 지나며 공산주의 사상의 소멸로 인해 어찌 보면 북한은 왕조체제로 복귀하는 현상을 보였어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독재체제, 더 나아가서는 왕조체제의 회귀 현상이지요.
 
  참, 난센스한 인류 흐름의 한 가락이지요. 러시아의 공산혁명 때는 당시 러시아 왕조(차르)체제에 대한 반항으로 레닌 일파에 의해 공산정권이 성공했는데, 그 밑에서 자란 북한은 왕조체제로 복귀했으니 말이죠.
 
  그러나 딱히 그 시간을, 통일의 시간을 꼭 집어 말할 것은 아니나, 아마 늦어도 20년 후면 자연스럽게 북한의 공산(共産) 왕조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겠지요. 인위적으로 너무 서둘 것 없이 인류문화, 즉 인류 삶이라는 흐름에 따라 순리적으로 일구어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만, 인류문화의 큰 흐름에 따라 남북한이 자유롭게 상호 왕래한다면 그 시기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半島)의 땅입니다. 이탈리아 역시 반도입니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의미하는 바가 있을까요.
 
  “반도 국가인 이탈리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재 서구 인류문화는 없었을 것이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말씀에 방향(方向)한 현실적인 고귀한 인간 삶의 형태, 즉 오늘의 인류문화 역시 형성하지 못했겠지요. 그만큼 그리스도 탄생과 그분이 남기신 말씀은 서구문화의 핵심이고 이탈리아를 빼놓고 말할 수 없지요. 다만 인간의 잘못된 성향, 예컨대 식민지 착취나 인권 유린 등으로 인류문화의 흐름에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이탈리아는 한 면은 대륙에, 삼면은 바다에 걸쳐 있어요. 지중해를 끼고 발달한 당시 열강과 이집트 등 아프리카 대륙, 발칸반도의 발전된 문물을 마음껏 흡수·재창출하는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한국 역시 대륙과 접경해 중국의 문화와 문물을 받아들였고, 근현대사를 지나며 일본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영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한반도는 시대 변화에 따라 선진 문명을 흡수·동화하는 과정에 매우 미숙했어요. 그 비근한 예가 신앙인 선조들이 겪은 순교의 역사입니다. 천주교가 도래할 때 조선은 쇄국으로 일관했고, 신자들을 모두 참수하고 말았잖아요. 우리보다 앞선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도리어 비수를 꽂은 셈이지요. 무지는 만사를 비탄과 비참으로 이끌었어요.”
 
 
  38선은 인류의 傷痕
 
  ―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가 한국입니다. 이 분단의 상징인 ‘38선’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어쩌면 6·25는 제3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북한을 대표하는 공산주의와 유엔(UN)과 미국, 남한을 대표하는 민주주의가 격돌한 것이었으니까요. 인류사에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고, 여전히 남북 대치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38선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어요. 인류가 지향하는, 인간 삶의 큰 흐름인 공존·공생·공영에 비춰볼 때 38선은 인류의 상흔(傷痕)을 상징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각도에서 38선을 인류사적 유물로 개발해 전 인류의 전쟁과 비핵화 문제와 연계시켜 평화의 도구로 삼아야 하고, 그 상징성을 인류에 호소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난날의 민족적 희비극을, 더 나아가 인류의 희비극을 그저 지나간 사건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농후해요.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6·25의 참혹함을 몸소 겪은 저로선,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워요.
 
  본래 인간은 인간다운 면, 더 나아가 인간의 존귀성은 인격(人格)에 기인합니다. 그 인격의 존귀성과 불가침성, 신성성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통해 신격(神格)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어요. 하느님이라는 신격의 모습으로서 인격을 서로 존중하여 창조주 하느님이 의도한 바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단의 상흔인 38선은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할 것으로 믿습니다.”
 
  ― 몸소 체험하신 6·25의 참혹함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우리 대화에 6·25 체험이 어울릴지 모르겠어요.
 
  1949년 5월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덕원 수도원이 폐쇄되는 운명을 맞았고, 6·25 발발 이후에도 남쪽으로 가지 못하고 북쪽에 남을 수밖에 없었어요. 사제를 꿈꾸었던 모든 희망이 사라져 암흑 세계에 갇힌 것이죠. 저는 순간순간 죽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어요. 1950년 10월 하순에 접어들 무렵, 북한 전역은 유엔군의 공습으로 마비가 됐어요. 인민군은 퇴각 중이었고, 무차별적 반동분자 소탕으로 집집마다 곡(哭)소리가 났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북한 노동당 ‘세포’위원장과 간부급에게는 총이 주어져 생사여탈(生死與奪)의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했지요.
 
  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마을 뒷산 능선을 타고 이웃 동네 친척 집으로 피해 갔어요. 인민군 부상병인 5촌 조카의 군복을 빼앗다시피 해서 갈아입은 채 다시 도망을 쳤어요. 그때 동네 노동당 세포위원장이 10m 뒤에서 총을 쐈는데 다행히 저를 비켜갔어요. 하느님이 신부가 되려는 이 ‘정의채’를 도운 것이 아닐까요.
 
  저는 서해안을 따라 걷다가 40리가량 북쪽에 위치한 정주 읍내로 들어갔어요. 거기서도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해 또다시 북쪽으로 30리가량 걸어 고모댁을 난생처음 찾았습니다. 그날 저녁이 되니 숨어 있던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어요. 그래서 고모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그 동네를 나왔어요. 나중 듣기로, 제가 떠난 뒤 7~8명의 마을 청년들이 모두 체포돼 모래사장에서 총살당했다고 합니다.
 
  무작정 정주읍을 향해 걸었는데, 날은 어두웠지만 달은 유난히 밝았습니다. 읍으로 가는 사람은 저뿐이었어요. 앞에서 인민군복을 입은 두 사람이 다가오더니 ‘거기 꼼짝 말고 서라’고 하더군요. 순간 ‘이제 최후를 맞겠구나’ 하고 느꼈어요. 한 사람은 대위고 다른 사람은 상사쯤 되어 보였는데, 상사가 제 가슴에 총을 겨눴고 대위는 저를 심문했어요.”
 
 
  “하루만, 한 번만 미사를 봉헌하고 죽게 해주소서”
 
  대위는 ‘동무는 누구며 왜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느냐’고 다그쳤고, 저는 차분하게 ‘후퇴하는 인민군인데 신의주로 집결하는 길’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왜 혼자냐’고 묻기에 ‘뿔뿔이 헤어졌다’고 했죠. ‘왜 지금 이 시간이냐’고 하기에 ‘낮에는 공습으로 숲속에서 잠이 들어 늦었다’고 했고요. ‘그러면, 무슨 부대 소속이냐’고 물었는데 ‘2천 몇백 부대’라고 아무렇게나 둘러댔어요.
 
  아마 그 대위는 제가 인민군이 아닌 걸 알아차린 것 같았어요. 저는 지금도 그 순간, 성령님과 성모님이 도우셔서 그의 마음을 변화시켜준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대위는 ‘빨리 가서 본대에 합류하시오’ 했는데 상사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이 동무를 본부로 데려가 신분을 더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상사는 두 번, 세 번 완강하게 나를 다그쳤어요. 그러자 대위는 ‘그만하면 됐으니 빨리 갈 길을 가자’고 명령하듯이 말했어요.
 
  그들과 헤어져 저는 마구 걸었죠. 갈 곳도 없었습니다. 노끈으로 만든 묵주로 감사기도와 간구기도를 드리며 남으로 남으로 향했습니다. 그 길에서 우연히 고모님 댁에서 만난 청년과 동행하게 됐는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떠나고 마을 청년들이 모두 총살당했는데 그는 옆 사람이 총에 맞는 순간, 같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는 겁니다. 총 맞은 사람의 피를 같이 뒤집어쓴 채 말이죠. 그랬더니 인민군이 ‘한 방에 둘이 죽었네’ 하며 같이 땅에 묻어버리더란 겁니다.
 
  남으로 내려가며 제 기도는 더 절박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사제가 되어 1년만이라도 사목 생활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다가 사정이 급박해지자 1개월만, 더 급박해지자 일주일만, 죽음이 경각(頃刻)에 달린 순간에는 하루만, 한 번만 미사를 봉헌하고 죽게 해주소서, 하고 혼신(渾身)을 다해 기도했어요.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한 번만’ 미사를 드리게 해달라는 기도가 66년간 기도하는 삶을 살게 만들었네요.”
 
  ― 다시 북한 이야기로 돌아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점이 북한의 변화에 어떻게 작용할까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98년부터 베른 근처 리버펠트-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를 다니다 9학년이던 2000년 말 학교를 그만두고 평양으로 귀국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스위스 유학 시절에도 NBA 팀의 해외 친선 경기를 종종 보러 다녔고, 영어 실력은 트럼프 대통령과 맞상대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합니다. 여동생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역시 스위스에서 오빠와 초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졌어요.
 
  어린 시절, 서구 세계를 일찍 경험했다는 점에서 김일성·김정일 체제와는 다른 행보를 취하지 않을까요? 북한 엘리트 상류층 자제들 역시 해외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우월함을 경험하거나,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따라서 북한의 젊은 엘리트를 북한 외부로 끌어내어 인류 공통 문화의 형성에 참여하게 해야 합니다.”
 
 
  “북한의 젊은 엘리트들을 불러 서울 거리를 걷게 하자”
 
부산 피란 시절 아이들과 함께 선 정의채 신부.
  ― 젊은 북한 엘리트들을 밖으로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돈이나 물자를 퍼주는 식의 지원보다는 전진하는 인류의 삶, 즉 다양성 속에서 하나를 지향하는 인류 공통 문화에 참여하는 통로로 이끌어야 합니다. 북한의 젊은 엘리트들은 남한에, 특히 서울에 그렇게 가고 싶어 합니다. 미디어를 통해 간접 체험하는 것과 직접 발로 서울 거리를 걷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죠.
 
  국제 기구나 학술 단체, 국제 세미나 등을 통해 북한 엘리트들이 남한의 젊은이와 접촉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 서울의 골목을 걸을 수 있게 우리 정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정치적이거나 이념적 목적 없이 순수하게 만나 어울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바뀐 세계관이 북한 주민들을 세계 인류문화 속으로 끌어낼 수 있어요.
 
  다시 말하거니와 남한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주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것을 다 퍼주면서도 이런 인상을 심어주면 얼마 안 가 큰 암초에 부딪힐 것입니다.”
 
  ―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개인이나 국가, 세계의 역사도 우연적이거나 인간 지혜의 소산만이 아니라 더 큰 능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향후 눈부시게 변해갈 인류문화,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은 북한과의 통일은 시간과 단계를 두고 멀리 바라봐야 합니다.
 
  남북 통일과 관련, 어느 한쪽의 급격한 직접 통합보다 자유 왕래, 자유 투자 등의 과정을 거치며 순리로 이뤄지는 진행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특히 이산가족은 지금도 가족 상봉을 꿈꿉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죠. 부모 세대는 이미 사망했지만, 그분들의 묘를 찾아가 돌보거나 형제자매는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크니 친척 상봉은 여전히 유효하죠.
 
  강경한 북한 군부에 의한 걷잡을 수 없는 이변, 열악한 북한 경제를 탈출하기 위해 수백만의 젊은이가 남한으로 물밀 듯이 내려올 수도 있어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기 여하에 따라 그런 것들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예컨대 강력한 절대자에 의해 유지된 공산 체제가 무너지면 순전히 오합지졸이 되어서 서로 자기 신변과 가족, 자식 챙기기에 정신이 없어지는 것을 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패전에서 보았습니다. 일본 ‘가미카제(神風)’의 자살·자폭 훈련이나 그에 버금가는 죽창돌격 훈련을 받고 실천했지만 천황의 항복 선언이 라디오 전파를 타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식의 분위기에 휩쓸려 군부는 아무런 저항이나 사고 없이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소련을 위시하던 동구(東歐)의 막강한 공산국가들이 자유 세계의 거대한 물결 앞에 도미노처럼 앞다투어 무너질 때, 그런 강력한 군대도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살길을 찾아 산산이 흩어져가는 것을 저는 현장에서 체험했습니다.
 
  그러니 북한의 공산 군사정권을 대체하는 또 다른 정권의 출현을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사 그런 정권이 성립된다 해도 극히 단명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 궤멸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위한 준비 필요”
 
2005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산하 명동개발특별위원회 위원장 시절의 정의채 몬시뇰.
  ― 한국 천주교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저는 미래가 밝다고 봅니다. 우선 전 세계 가톨릭 국가 중에 한국 천주교는 비록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해도 매우 밝은 양상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이 자유화될 때를 염두에 두고 한국 천주교가 준비해야 합니다. 예컨대 ‘한국 교회가 거대한 중국 문화를 가톨릭으로 이끄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겠느냐’ 그리고 ‘지금 그런 문제에 한국 교회가 심각하게 연구하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는 전혀 흡족하다고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런 점을 한국 천주교가 더욱 새겨들어야 합니다.”
 
  《월간조선》은 2019년 4월호에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임종 전 영혼과 신에 대한 질문 24가지에 대한 정 몬시뇰의 답변을 실었다. 그의 답변은 방대한 사고와 행간을 담은 것이었다. 기자는 이후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에게 이 회장이 남긴 질문을 던져 네 차례에 걸쳐 연재했다. 정 몬시뇰은 이 교수의 답변에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대한 이어령 교수의 답변은 좋은 것이지만, 이 회장은 그런 답변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 회장의 질문은 젊은 날부터 장년기를 거쳐 생각하던 것을 정리하여 제출한 것뿐이지, 이 회장 자신의 죽음을 대하는 순간의 마지막 문제 제기는 아니었지요.
 
  저는 이 회장 형님인 이병각(李秉珏)씨의 일생을 편안하게 정리해서 어떤 면에선 그야말로 ‘인생은 저렇게 마감해야지’ 할 정도로 행복한 죽음으로 가셨기에, 이 회장도 그렇게 제 도움을 받아 세상을 떠난 것이죠. 그분이 죽음에 즈음하여 당면한 과제는 이른바 고해 신부에게 말하듯 전한 것이어서 일절 밝히진 못하지만, 죽음에 관한 지난날의 그분 생각을 정리한 것뿐입니다.
 
  그분과 대면이 없는 분들이 보는 시각과는 좀 다른 면이 있어요.
 
  이 회장이 제게 한 질문은 전문가의 의견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럴 뜻이 있었다면 세상의 ‘지성’을 모아놓고 답을 찾지 않았을까요.
 
  그런 질문은 죽음을 앞둔 시점에, 제 정리해보라는 요구에 응하기 위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정리한 것뿐이지요. 다시 말해 그분이 죽을 때 직면한 절박한 문제는 전혀 아니었지요. 죽음에 처한 심각한 문제도 아닌, 지나가는 여담 비슷한 것을 그런 심각한 문제인양 《월간조선》이 대서특필할 줄 알았다면 가톨릭교회가 20세기 공산(共産) 무신(無神) 체제를 완전히 뒤엎는 로마 교황청의 이론으로 설명했겠지요.
 
  사실 이 점, 제가 후일 저서에서 다룰 것입니다. 이 회장은 제 답을 요구한 것이지 여타 인사들의 답을 원한 게 아님을 확신해요. 유독 제게 제출한 문제를 본인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분이 원치 않는 방향에서 문제가 논의된 것이지요. 물론 널리 세상에 알려진 질문이니 그분의 의도와 상관없이 논의될 수도 있지만, 질문은 제 요청에 의한 것이고 이 회장 자신도 제 답을 바라며 사경을 헤매면서 질문 24개를 건넨 것이지요.”
 
  기자는 끝으로 정 몬시뇰의 건강과 수복(壽福)을 빌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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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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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로    (2020-01-06) 찬성 : 0   반대 : 0
정은이에 대하여 뭘 모르시고 계십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그에게 희망을 거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 순진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제대로 정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실망입니다.
  최익선    (2020-01-06) 찬성 : 1   반대 : 0
정의체 몬시놀꼐서 정확하게 70년전의 북괴의 6/25 남침 전쟁을 평가해 주셨다! 이렇건만 현 정부는 제주 4/3 남로당 빨갱이들 내란 사건을 완전히 역사를 왜곡시켜서,정반대로 해석시켜서,당시의 군과 경찰및 그 가족들이 역적이요,당시의 남로당,인민군,부역자들과 그 가족들이 옳다고 평가를 해 놓았으며,이로써 다음 평가할 그 범위가 훨씬 더 큰 여순 반란에 대한 평가를 준비중에 있슴에,얼마나 비상식적인 비판을 했기에,이에 대한 진도,진행을 못하고,국민들의 평가를 지켜보고 있갰는가? 역사는 분명한 것!이들의 논리데로 한다면,남로당 박헌영,제주 4/3사태 주동자 김달삼은 義人이고,당시 대한민국 국방수비대와 경찰 가족은 惡人이 되는 셈이니,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남로당 빨갱이가 의인이요,경찰 총경 차지혁은 악인?개소리!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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