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이황직 숙명여대 교수

“개인이 국가를 통해 손쉬운 해결을 바랄 때 民主的 專制 출현”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는 자유… 민주적 방식으로도 자유 폐기할 수 없어”
⊙ “토크빌, ‘민주주의의 미래를 내다본 사람’… ‘多數의 暴政’ ‘민주적 專制’ 등의 개념 발견”
⊙ “민주국가의 내부적 붕괴는 대체로 무제한의 권력을 갖는 주권자인 국민 다수가 민주적 제도 바깥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조직화된 선동 세력과 결합하는 순간에 발생”
⊙ “오늘날 代議制, 정당정치의 위기는 평등이 무너졌기 때문. 선동 세력의 성장 배경으로 작동”

李滉稙
1969년생.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同 대학원 사회학 박사. 現 숙명여대 조교수 / 저서 《민주주의의 탄생》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 《군자들의 행진: 유교인의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 《서재필 평전》(근간)
사진=조준우
  잡지사에서 일하다 보면 지면에 소개되기를 바라며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수많은 신간서적을 만나게 된다. 작년 여름, 눈길을 끄는 책이 하나 있었다. 《민주주의의 탄생: 왜 지금 다시 토크빌을 읽는가》라는 책이었다. 저자는 이황직(李滉稙·50) 숙명여대 교수. 저자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양서(良書)를 많이 내온 출판사 아카넷의 이름은 눈에 익었다.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라는 책으로 유명한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지식인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의 생애와 사상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었다. 누군가를 소리 높이 비판·비난하지 않으면서도 행간(行間)에서 오늘날 우리 현실을 걱정하는 충정(衷情)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특히 ‘다수(多數)의 폭정(暴政)’ ‘민주적 전제(專制)’ 같은 개념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지난 2월 사회디자인연구소(소장 김대호)에서 이황직 교수 초청 강연을 두 차례 한다고 해서 가보았다. 이 교수는 체구가 크지 않고 목소리도 나지막했지만 학문적 내공과 확고한 신념이 느껴졌다. 그 후 내내 《월간조선》 지면을 통해 이황직 교수와 토크빌을 소개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11월 1일 숙명여대로 이 교수를 찾아갔다.
 
 
  “핵심은 자유와 인권”
 
《미국의 민주주의》 등을 통해 ‘민주적 전제’를 경고한 알렉시 드 토크빌.
  ― 근래 베네수엘라·폴란드·헝가리·터키 등에서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자유가 후퇴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 중 어느 쪽이 더 본질적인 가치일까요.
 
  “과거에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것은 특정한 나쁜 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하지만, 그 목적이 자유에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democracy・그리스어 demokratia)는 ‘다수(demos) 지배(kratia) 체제’입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도 어쨌든 ‘지배’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왕정(王政)이나 귀족정(貴族政)처럼 민주정(民主政)도 자유를 침해할 우려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수로부터 부당한 지배를 당하기 위해서 민주화투쟁을 했다는 것이 되는데,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결국 자유가 본질적 가치입니다.”
 
  ― 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체제가 민주적인가’라고 물으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민주적인가’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주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민주적인가’라고 물으면, 아무도 민주적이라고 하지 않겠지요.
 
  밖으로 민주주의라고 떠드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무엇이 보장되는가가 중요합니다. 결국 핵심은 자유와 인권입니다.”
 
  ―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자유’를 삭제하려는 움직임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의 핵심이 자유와 인권이라는 사실을 소홀히 하면서, 거꾸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그 안에 수많은 이상적 내용들을 채워 넣으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은 이론적으로는 굉장히 완벽해 보이지만 그걸 실제로 실행하면 더 많은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체제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민주정의 목표는 자유에 있습니다.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민주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유를 지켜내면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가 더 본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주의는 善惡 대결이 아니다”
 
  ― 1987년 이후 5년마다 대통령이 선거에 의해 교체되고, 실질적인 정권교체도 세 번이나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근래에 와서 민주주의는 오히려 표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민주주의라는 것은 선(善)과 악(惡)의 대결이 아닙니다. 선과 악의 싸움이 되면 대화와 타협이 절대로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절대악(絶對惡)과는 무조건 싸우는 수밖에 없죠.
 
  사회에는 갈등과 균열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치는 그 갈등을 드러내고 해법을 모색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일을 잘하는 세력이 집권하여 통치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하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이 권력을 누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부턴가 실제 사회 갈등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오직 권력을 획득하는 데만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정치 세력이 잘하는 일은 선악 이분법에 근거해서 상대방을 악(惡)으로 모는 것입니다. 권력에서 밀려난 쪽을 적폐(積弊)로 모는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이럴 때 유권자를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주로 분노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누가 집권한다고 해도 패배한 쪽의 협력을 받을 수 없겠지요.”
 
  ― 우리나라에서 정치 세력 간의 극한 대립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근래에 들어 특히 심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정치를 선과 악의 대결로 인식하는 움직임은 일부 시민단체가 낙천(落薦)・낙선(落選)운동을 벌인 2000년부터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세력이 드디어 정치사회에 경종(警鐘)을 울린 면이 있습니다만, 그 기준이 과연 얼마나 보편적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출마자가 내건 공약의 현실성을 평가하거나 구체적인 갈등 해법을 제안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시민운동을 위해서 더 나았을 겁니다.”
 
  ― 토크빌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보죠. 토크빌은 한마디로 어떤 사람입니까.
 
  “‘민주주의의 미래를 내다본 사람’이라고 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네요. 귀족 출신이면서도 미래는 민주주의의 시대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인격적으로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정의(正義)에 편에 서려고 한 사람, 공정한 사람, 중도(中道)의 사람, 파당(派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미국 정도에서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었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아직 초보 단계에 있거나 경계의 대상이던 시절에 귀족 출신인 토크빌이 민주주의를 일찍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토크빌은 젊은 시절 파리대학의 프랑수아 기조(1787~1874)로부터 ‘문명사’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 강좌에서 기조는 새로운 시대에는 귀족이나 사제(司祭)가 아닌 제3신분, 즉 비특권적 시민계층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이들에 의해 진보된 평등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토크빌은 기조의 강연을 들으면서 ‘미래는 어쨌든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세계가 될 것이고, 그에 맞는 정치질서는 아무래도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때의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었죠.”
 
 
  외증조부 말제르브
 
토크빌의 외증조부 말제르브.
  ― 토크빌을 ‘정의의 편에 서려고 했던 사람’ ‘공정한 사람’이라고 평했는데, 토크빌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외증조부(外曾祖父)였던 라므와뇽 말제르브(1721~1794)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제르브는 법복귀족(法服貴族・프랑스 절대왕정하에서 등장한 신흥귀족)으로 루이 15세 치하에서 대법관 겸 서적검열관장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그는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한 《백과전서》의 출판을 허가해, ‘진보적 지식인들의 대부(代父)’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말제르브는 은퇴 뒤 스위스에서 노후(老後)를 즐기고 있었는데 프랑스혁명 이후인 1792년 국민공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루이 16세를 기소하자 루이 16세를 변호하기 위해 급거 귀국했습니다. 물론 생쥐스트 같은 급진주의자들이 ‘루이 16세에 대한 재판은 재판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선동하는 분위기 속에서 말제르브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갑니다. 말제르브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인 1793년 12월 체포되어 이듬해 4월 딸, 사위와 함께 처형됩니다. 손녀인 루이즈(토크빌의 모친)도 투옥되어 남편 에르베 토크빌과 함께 처형될 날만을 기다리다가 로베스피에르가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실각하는 바람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 토크빌의 가족사는 정말 예사롭지 않습니다.
 
  “법복귀족(신흥귀족) 가문이지만 혁명 이전 왕가와 친했던 어머니는 늘 ‘불쌍한 루이 16세’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대검귀족(帶劍貴族・전통귀족) 출신인 아버지는 죽음 직전까지 갔던 공포에 시달리고…. 그런 부모를 보면서 자라난 토크빌에게 삶의 지향을 제공한 것이 말제르브라고 생각합니다. 토크빌은 후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말제르브의 후손이다. 루이 16세 앞에서 인민을 변호했던 말제르브는 인민 앞에서 루이 16세를 변호했다. 나는 이 두 모범적 행위를 잊지 않았고,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진짜 민주주의’를 보다
 
토크빌의 평생 친구 귀스타브 드 보몽.
  ― 토크빌의 대표작인 《미국의 민주주의》 [이황직 교수의 책에는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로 번역되었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제명(題名)이 더 대중적이어서 이 기사에서는 이를 사용한다] 얘기를 좀 하지요. 토크빌이 1831년 미국으로 건너갈 때,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겠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했던 것인가요.
 
  “1830년 7월혁명으로 루이 필립 왕정이 들어선 후, 토크빌은 새 체제와 갈등을 겪게 됩니다. 토크빌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정통 부르봉 왕조에 충성한 경력이 있었던 까닭에 새 체제를 멸시했습니다. 새 정부도 이를 알고 토크빌 일가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고요. 판사로서 새 체제에 충성서약을 거듭 강요당하면서 환멸을 느낀 토크빌은 탈출구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의 교도(敎導)행정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평생의 친구인 귀스타브 드 보몽(1802~1866)과 함께 미국행에 나서게 된 거죠. 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스승 기조에게서 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미국에서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가를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한 지 불과 2~3주 만에 토크빌의 생각은 바뀌게 됩니다.”
 
  ― 어떻게 바뀌게 되나요.
 
  “미국에 가서 보니 부르주아 계급뿐 아니라 인종이나 출신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갖고 잘 살아가는 모습, 시골에서 농사짓는 촌부(村夫)들까지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인 모습, 저마다 자기 이익을 밝히는 시끄럽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히 예의 바르고 종교성도 높은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거죠. 토크빌은 처음으로 피치자(被治者)가 곧 치자(治者)인 ‘진짜 민주주의’를 보고, 이걸 한번 설명해보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루이 필립 왕정 아래서 정치가로 활약한 스승 기조는 자유를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려 했지만, 토크빌은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의 결합을 평생의 과제로 삼게 됩니다.”
 
  ―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토크빌의 지적 능력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어린 시절 교육을 잘 받은 덕분이겠지요. 토크빌은 리세(고등학교) 시절 무장이라는 선생에게서는 그리스・로마의 고전과 역사연구방법, 논리학, 수사학을, 가정교사 르쇠르 신부에게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 및 종교와 도덕성의 상호연관성을 배웠습니다. 이런 것들이 후일 《미국의 민주주의》의 서술 방식이나 내용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 토크빌은 어떻게 그 길지 않은 시간에 미국의 본질적 특징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었을까요.
 
  “요즘 우리 같으면 다른 데 시선을 뺏길 텐데, 토크빌은 잡스러운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투명하게 한 가지 중심 질문을 가지고 강하게 부딪쳤지요.
 
  토크빌은 미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엄청나게 많은 메모를 남겼습니다. 가는 곳마다 자료도 많이 요청해서 수많은 원전(原典) 자료들을 수집했지요. 그리고 당대에 가장 뛰어난 미국의 지성인들과 만나 궁금한 점을 물어봤습니다. 이때 만난 사람 중에는 국무장관을 지낸 거물 정치인 다니엘 웹스터, 후일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에드워드 에버렛, 하버드대 총장이던 조사이어 퀸시 2세, 독립기 미국사 연구의 권위자인 자레드 스파크스 목사, 변호사 존 맥클린, 30년 후 링컨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내게 되는 사이먼 체이스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과 나눈 이야기들은 나중에 ‘다수의 폭정’ ‘민주적 전제’ 같은 개념들로 발전합니다.”
 
  ― 1835년 나온 《미국의 민주주의》 1권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뭘까요.
 
  “그때만 해도 미국에 대해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만 있던 시절이어서 ‘민주주의를 하는 이상한 나라 미국’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들이 미국 독립에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관심이 컸을 것입니다.”
 
  ― 1835년에 나온 《미국의 민주주의》 1권과 1840년에 나온 2권은 어떻게 다른가요.
 
  “제목은 같지만 두 책은 내용과 형식이 크게 다릅니다. 1권이 미국의 지리, 정치제도, 습속(習俗) 등 ‘미국’에 초점을 맞췄다면, 2권은 민주주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 즉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토크빌의 평전을 지은 휴 브로건이 1권과 2권의 저술을 다룬 장(章)의 제목을 각각 ‘Writing America’ ‘Writing Democracy’라고 한 것은 그 점에서 매우 적확(的確)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평등, 천박한 평등
 
  이황직 교수의 《민주주의의 탄생》에서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비롯해 토크빌의 여러 저작에 나오는 구절들을 많이 인용하거나 해설하고 있는데, 주옥같은 얘기들이 참 많이 나온다. 그 가운데서 평등에 관해 논한 구절을 보자.
 
  〈토크빌은 평등에 대한 열정을 ‘씩씩하고 정당한 열정’과 ‘천박한 열정’으로 구별하여 그것이 각각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당한’ 열정은 모든 이가 지금보다 나아져서 평등에 이르도록 이끄는 데 반해, ‘천박한’ 평등에의 열정은 강자를 약자의 위치로 끌어내려 평등에 이르고자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자유 상태의 불평등보다 부자유 상태의 평등을 강조하여, 자유의 긍정성을 기초부터 붕괴시킨다.〉
 
  ― ‘평등’에 대한 토크빌의 통찰과 표현이 기가 막힙니다.
 
  “평등과 자유 중 어느 쪽을 우선할지는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미국의 민주적 제도와 습속에 영향을 준 핵심 요인은 미국의 평등한 사회 상태였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인들은 절대적 평등을 바란 게 절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도의 사회 상태의 평등, 자기가 가난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는 공화주의적 평등을 원한 것이었습니다. 무조건 기계적인 평등을 원했던 일은 미국 역사에서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 상태의 평등이 깨져버리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대의제(代議制), 정당정치의 위기는 평등이 무너지면서 시작되었는데, 이 틈을 파고들어 급성장한 좌우 선동 세력 때문에 위기가 증폭되었습니다. 선동 세력은 평등을 ‘씩씩하고 정당한’ 데서 ‘천박한’ 데로 끌어내립니다.”
 
  ― 토크빌은 자치(自治)와 분권(分權), 풀뿌리 민주주의가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지방분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억지스럽고 인위적(人爲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미국의 경우 자치의 경험을 가지고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풀뿌리 민주주의 방식인 반면, 우리는 분권을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정부가 가져가는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조차 어느 날 갑자기 중앙에서 계획을 세워 시행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백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민주주의는 실패할 수 있지만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래서부터의 자치 경험을 위로 확산시켜나가는 방식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치 확대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은 시민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종교
 
  ― 시민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
 
  “우리는 시민으로서 살지 않으면서 스스로 시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의 시민은 정말 독립적인 시민이거든요. 스스로 어떤 결정이나 약속을 하고, 그 약속으로서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자신이 한 약속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만든 법률을 지킵니다. 법치(法治)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죠.
 
  우리는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진보라는 좌파운동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의 사명감이라는 것도 자신의 양심으로 판단한 주체적・독립적인 의식이라기보다는 외부의 이념이나 조건들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겉으로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당파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난 몇 달간의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 그런 시민의 상식과 덕성은 어떻게 길러야 할까요? 그에 대해 토크빌이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까.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 2권에서 ‘다수의 폭정’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첫 번째는 이익관계를 분명히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일을 하라’고 규범적(規範的)인 것을 가르치는데, 미국 사람들은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자기 이익 추구에 솔직한 거죠. 그렇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게 되면 결국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손해가 올 수도 있겠지요. 그런 실패의 경험을 통해 이를 깨닫고 자신의 이익을 동료 시민의 이익과 결합하면서 공공(公共)의 이익을 향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의 원리’라고 합니다. 이게 일단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 그게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토크빌은 두 번째로 ‘교육’을 강조합니다. 토크빌 당시 미국인들은 대개 교회에서의 교육을 통해 초등교육은 받았습니다. 여기서 미국인들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남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정신, 자기가 술을 팔든지 장사를 하든지 상관없이 주지사와 만나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평등의식을 익혔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였습니다.”
 
  ― 미국인들에게 ‘종교’는 초기 개척시대부터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헌법에서는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해놓았습니다. 목회자들은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했지요. 목회자들은 대신 종교를 통해 아주 그윽한 수준의 도덕성, 즉 올바른 것을 위해 혹은 올바르지 않은 것에 맞서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싸워야 한다는 생각, 그 올바른 생각을 전 세계에 펼쳐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들을 심어주었습니다. 그것 말고도 종교의 역할 중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 그게 뭔가요.
 
  “결사(結社)하는 능력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가 소수(少數)를 공격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결사입니다. 혼자서는 약하지만 결사를 만들면 두렵지 않거든요. 미국에서는 종교를 통해 훈련받은 결사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多數의 暴政’
 
  이 기사의 앞머리에서도 썼듯이 이황직 교수의 《민주주의의 탄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수의 폭정’ ‘민주적 전제’에 대한 대목이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핵심적인 부분들인 만큼 이에 관한 대목들을 보기로 하자.
 
  〈토크빌 민주주의 이론의 정교함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힘이 민주주의 원리 자체에 내재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민주국가는 소수의 야심적 인물의 선동에 흔들리지 않게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둔다. 그런데 그러한 장치조차도 국민이 스스로 다수의 지배를 선택하게 되면 무력(無力)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무제한한 권력을 가진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리가 지배하는 민주국가에서 다수 국민의 결정은 헌법기관조차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내부적 붕괴는 대체로 무제한의 권력을 갖는 주권자인 국민 다수가 민주적 제도 바깥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조직화된 선동 세력과 결합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이러한 결합은 경제위기 같은 돌발적 요인에 의해 순간적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조직화된 소수의 장기적인 헤게모니 장악 전략에 의해 서서히 진행되기도 한다. 전자(前者)는 가두투쟁 같은 전면전(全面戰)이라면, 후자(後者)는 저항문화를 내세우는 진지전(陣地戰)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지, 국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붕괴시켰다는 것을 사후적(事後的)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
 
  〈도덕적 정당성을 쥔 민주주의하의 집권 세력이 개인의 세밀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는 중앙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과거 절대왕정기의 권력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힘을 휘두르게 되지 않을까? 주권자들이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 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민주적인 방식으로 전제정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민주적 專制’
 
지난 10월 26일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는 사법적폐청산범국민시민연대 주최 공수처 설치 요구 집회가 열렸다. 사진=조선DB
  토크빌은 이를 ‘민주적 전제(demo cratic despotism)’라고 표현했다. 이른바 ‘촛불혁명’ 이후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있는 모습들이고, 베네수엘라・폴란드・헝가리・터키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들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오랜 항해 끝에 21세기 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공(可恐)할 모습들을 이미 180년 전에 예견했다는 것이 전율(戰慄)스럽다.
 
  ― 토크빌의 ‘민주적 전제’는 꼭 오늘날 우리 현실을 예견한 듯합니다.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투사들은 ‘역사가 나를 무죄(無罪)케 하리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재심(再審)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적으로 수립된 정부에 맞서면 논리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맞서는 게 되기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 과거 유신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그래도 재야(在野) 민주화운동 세력·지식인·학생·언론 등 비판 세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세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시민단체나 지식인, 언론들마저 자발적으로 정권을 위해 복무(服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94년 이후 좌파 헤게모니가 운동권으로부터 사회 전 영역으로 퍼져나가 장악해버렸습니다. 우파 정권이 집권했을 때도 언론・대학・지식인사회・문화예술・여성계 등은 좌파 쪽이 장악하고 있었지요. 이번에도 우파 쪽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들고일어났는데도 결국은 유야무야되고 벌써 두세 달 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그만큼 헤게모니 장악이 무서운 것이죠.”
 
  ― 토크빌을 보면 ‘다수의 폭정(majority’s tyranny, tyranny of the majority)’이라는 개념도 보이던데, 민주적 전제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다수의 폭정’이란 입법부의 다수와 국민 대다수의 생각이 일치해서, 입법부 내 다수를 견제하기 위한 헌법상의 제도들(하원에 대한 상원의 우위, 양원제, 대통령의 거부권, 연방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 등)이 무력해지는 상황을 말합니다.
 
  반면에 ‘민주적 전제’는 의회나 대통령 같은 헌법기관의 폭정이나 그것에 부가되는 국민 다수의 의견인 여론에 의한 폭정을 넘어서는, 당시로서는 분명히 서구 사회에서 서서히 꿈틀대기는 하지만 아직 명료해지지는 않은, 태동하는 민주주의 원리 자체에 내재하는 징후적 위험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산업화 이후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개인 스스로 국가에 의존하면서 종국에는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다수 지배의 위험을 넘어서 ‘민주적 전제’를 찾아낸 것이 토크빌의 위대한 점이지요. 그로부터 100년 후에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거죠.”
 
 
  “언론인이 엉망이어도 언론자유는 보장되어야”
 

  ― ‘민주적 전제’ 현상은 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산업화가 되면서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개인들은 파편화(破片化)되어버립니다. 고립된 영역에서 혼자 살면서 그걸 더 편하게 여기게 됐죠. 이런 사람들은 토크빌이 얘기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결사를 만드는 등의 공적(公的)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후견인(後見人)을 자처하는 거대한 권력인 중앙집권적 국가를 통한 손쉬운 해결을 바라기 쉽습니다. 개인주의의 확산에 따른 사회적 결속의 해체가 ‘민주적 전제’가 출현하는 조건인 것입니다.
 
  후견인 역할의 거대 권력은 국민들을 어린이로 묶어둔 채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물질적 행복을 제공하겠죠. 하지만 이러한 보호에 익숙해져서 시민들이 공적 업무에 참여하는 자치의 정신을 상실하기 시작하면, 이 권력은 심지어 사회적 관습에 해당하는 문제나 사인(私人) 간의 신의와 약속을 통해 해결할 문제에까지 개입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발휘할 영역을 점차 축소시켜나갈 것입니다.
 
  파편화된 개인과 국가만 남은 상태에서 힘없는 개인들은 국가를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神)인 양 여기면서 계속해서 그런 정권을 찍게 됩니다. 그런 정권에 지배를 당하면서도 자기들이 선거에 의해 뽑는다는 이유로 자기들이 주권자라고, 민주주의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민주적 전제’로 가게 되는 것이지요.
 
  가끔 그런 상황에 저항해서 혁명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전제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끊임없이 정치의식을 발휘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뭐든지 다 해주겠다는 세력에 다 맡기고 다시 사생활의 공간으로 후퇴하는 거죠.”
 
  ― ‘민주적 전제’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상식과 덕성을 가진 깬 시민들이 있어야 하고, 시민들이 개인과 국가 사이에 다양한 중간 세력들, 즉 결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금 언론 상황이 굉장히 엄혹한 시점인데, 언론은 정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 ‘언론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토크빌도 미국에서 당시 언론들이 앤드루 잭슨 대통령을 ‘극악무도한 도박사’ ‘무자비한 독재자’ ‘자신의 미친 과거를 저주할 것’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경악했습니다. 하지만 토크빌은 언론인 하나하나는 엉망일 수 있어도, 국가와 관리(官吏)가 자의적(恣意的)으로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은 어떤 정권이 집권하건 간에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고발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언론이 직접 정치 플레이어가 되어서, 특정 정당이 집권했을 때에는 견제 기능이 급작스럽게 약화되곤 했습니다. 이럴 때 나라는 훨씬 더 분열됩니다.”
 
 
  “자유는 민주적 방식으로도 폐기할 수 없어”
 
  ― 국민이 원한다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 자체를 부정하는 체제를 도입하는 게 가능할까요.
 
  “당연히 자유는 본질적 권리로서 민주적 방식으로도 폐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목적이 자유의 확대인데, 스스로 민주주의적으로 자유를 폐기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죠.
 
  물론 현실적으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런 사례들을 좌우 모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평등을 앞세우면서 ‘진정한 자유를 너희에게 주겠다. 자본주의하에서의 자유는 사실상 사적(私的) 지배 관계에 종속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자유를 억압합니다. 우리도 과거 경험했지만, 개발독재에서는 경제발전을 내세우면서 ‘국가가 너희의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자유를 잠깐 맡기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토크빌이 뭐라고 말했는지를 살펴보고 넘어가자. 1848년에 토크빌이 쓴 《민주주의의 정의》라는 글의 일부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지식・권력을 최대한 누리게끔 하는 것이다. 민주적 정부란 무엇인가?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를 누리게 하고, 새로운 장벽을 세우는 대신 규제를 혁파하고, 억지로 자유를 이끌어내는 대신 스스로 자유에 이르게끔 지식과 자원을 제공하는 정부이다. … 모든 시민에게, 심지어 가장 비천한 자들까지 포함해서, 최상의 시민으로서의 독립성을 갖고 행동하게끔 하는 정부이다. …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난하라고 강요하는 대신 모든 이가 정직한 방법으로 일을 통해 부(富)를 축적할 수 있게끔 해주는 정부이다.〉
 
  ― 1980년대 이후 민주화를 이루었던 폴란드·헝가리·터키 같은 나라들, 비교적 민주주의가 안정됐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들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1990년대 이후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대의제의 위기, 정당정치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에서는 그럭저럭 버티는데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원인(遠因) 가운데 하나는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고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민족주의가 갑자기 부활한 것입니다. 민족주의란 원래 이념이라기보다는 감성적 요소가 강합니다. 세계화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감성과 폭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몇몇 지식인이 ‘분노’라는 것을 노골적·직접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문법하고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의 탈(脫)민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풀뿌리부터 시작해야”
 
  ―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가 단순히 대의제의 위기, 정당정치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라면 아직까지는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솔직히 많은 분이 베네수엘라처럼 갈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컨대, 서울시장 후보자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대학의 등록금을 깎아주겠다고 공약한 것은 그 대학생들에 대한 노골적인 매표(買票) 행위이고 부패(腐敗)잖아요? 게다가 요즘 선거철이라 국가 수준에서의 매표 행위들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 자기 돈으로 매표하면 유죄(有罪)지만 나랏돈으로 매표하면 무죄(無罪)죠.
 
  “맞는 얘기네요. 그런 게 선거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 그런 상황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참 답답한데 결국은 풀뿌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어렵더라도 아래에서부터 세금감시운동인 ‘티파티(Tea Party)’ 같은 것을 해야 하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대안(代案)이 실질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 게임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정말 너무 편하게 살아왔고, 공동체의 책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것은?
 
미국의 화가 조지 칼렙 빙엄이 그린 〈카운티선거〉. 초기 미국 민주주의의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토크빌이 프랑스인들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한국인과 프랑스인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충동적이고, 평등을 유달리 강조하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런 특질을 가진 프랑스인들은 1789년 대혁명 이후 100여 년 동안 혁명과 반(反)혁명, 쿠데타와 파리코뮌 같은 민중봉기를 겪었다. 이렇게 내홍(內訌)을 앓는 동안 정체(政體)는 공화정과 제정(帝政), 왕정(王政)을 왔다 갔다 했다. 토크빌의 고민도 그런 시대의 소산이었다.
 
  ― 한국인과 프랑스인들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의 민주주의도 프랑스처럼 표류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프랑스는 그래도 혁명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싫어하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해방과 함께 민주주의 제도를 그냥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역사도 굉장히 짧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70년 동안 있었던 몇 가지 혁명이나 정치변동을 두고 자랑하기 바쁩니다. 심지어 다른 나라들에 우리를 보고 민주주의를 배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는 우리 것이 최고라고 자만(自慢)할 게 아니라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얼마 안 되는 민주주의 성공 국가들을 따라잡은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민주주의 문턱 언저리에서 좌절해버린 나라들을 공부하는 것이 솔직히 우리 수준에서 더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프랑스도 그 당시 수없이 좌절했던 나라입니다. 여러 차례 혁명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기간 동안 반동과 민중봉기의 시기를 보내야 했던 그 나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토크빌도 그걸 솔직히 인정했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어떤 점을 말하는 것입니까.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하면서 미국인들이 제도도 잘 만들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습속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토크빌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미국이 건국된 지 50여 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많은 유럽인이 미국의 역사를 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토크빌은 영국계 기독교인들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실상 민주주의를 하기 시작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미국은 이미 25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프랑스가 어느 날 대혁명 한 번 했다고 그 앞에서 자랑할 수 있겠는가’라는 솔직한 자기비판이 《미국의 민주주의》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토크빌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 하나가 등장한다. ‘습속’이 바로 그것이다.
 
  ― ‘습속’을 뭐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토크빌은 라틴어에서 기원한 모레스(mores)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요즘 말로 문화(culture)라고 하면 거의 포괄이 됩니다. 토크빌은 습속 개념을 설명하면서 ‘habits of the hearts’라는 표현도 사용했는데, 이는 조금은 강제성이 있는 문화로서 내면(內面)에 새겨진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 유지의 핵심 요인을 습속이라고 보면서, 프랑스의 습속을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에 친화적으로 변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토크빌의 재발견
 
  이황직 교수는 1969년생, 연세대 행정학과 87학번이다. 요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586세대’의 막내인 셈이다.
 
  ―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습니까.
 
  “군대에 갔다 온 후 1990년 하반기부터 뒤늦게 학생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복학생협의회·동아리연합회 같은 단위 조직에서 실무적인 역할을 하다가 주로 문예운동 조직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집회에서 거대한 스크린 속에 김일성이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저건 아니다’ 싶었지요.”
 
  ― 토크빌은 어떻게 만나게 됐습니까.
 
  “굉장히 운이 좋았어요. 1991년 10월 박영신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님, 진덕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님, 정인재 서강대 철학과 교수님 등 다섯 분의 스승이 세운 고전독서모임인 ‘작은대학’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듬해 5월 처음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었습니다. 마침 진덕규・박영신 선생님께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모색하면서 국내에서는 최초로 집단적으로 토크빌 연구를 시작하시는 것을 곁눈질하면서 관심이 시작되었습니다.”
 
  ― 그 업적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토크빌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토크빌은 민주주의 이후, 시민문화, 습속, 다수의 전제 같은 얘기를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독재정권을 타도해야 하는 민주화운동 단계에서는 관심을 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에는 학계에서 좌파 헤게모니가 강했기 때문에 토크빌이 말하는 자유주의 자체가 인기가 없었고요.”
 
  ― 구미(歐美)에서는 어땠습니까.
 
  “서양지성사에서도 토크빌은 레몽 아롱(1905~1983)이 재(再)발견하기 전까지는 마르크스주의, 새로운 과학주의,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것들에 밀려 거의 100년 가까이 잊힌 인물이었어요. 그러다가 레몽 아롱이 1960년대에 좌파에 맞서 자유를 강조하는 유산(遺産)으로서 토크빌을 강조하기 시작했죠. 그래도 토크빌은 잘 알려지지 않다가, 국가론이 위기에 빠지는 1990년대 이후 ‘시민’에 관한 담론이 미국 사회과학을 점령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세 시간이 훌쩍 갔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황직 교수는 “외교문제에 관해 조지 워싱턴이 했던 말을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 소개한 게 있다”고 했다. 워싱턴의 말은 다음과 같다.
 
  “다른 나라에 대해 일상적으로 증오나 호감의 감정에 빠지는 나라는 어느 정도 노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자신의 증오나 애정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 두 가지 감정 가운데 어느 것도 그 나라의 임무나 이해관계에서 엇비껴 나가도록 하기에 족한 것입니다.”
 
  워싱턴의 이 말을 소개하는 속뜻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해졌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007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도서출간 배너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