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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이황직 숙명여대 교수

“개인이 국가를 통해 손쉬운 해결을 바랄 때 民主的 專制 출현”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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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는 자유… 민주적 방식으로도 자유 폐기할 수 없어”
⊙ “토크빌, ‘민주주의의 미래를 내다본 사람’… ‘多數의 暴政’ ‘민주적 專制’ 등의 개념 발견”
⊙ “민주국가의 내부적 붕괴는 대체로 무제한의 권력을 갖는 주권자인 국민 다수가 민주적 제도 바깥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조직화된 선동 세력과 결합하는 순간에 발생”
⊙ “오늘날 代議制, 정당정치의 위기는 평등이 무너졌기 때문. 선동 세력의 성장 배경으로 작동”

李滉稙
1969년생.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同 대학원 사회학 박사. 現 숙명여대 조교수 / 저서 《민주주의의 탄생》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 《군자들의 행진: 유교인의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 《서재필 평전》(근간)
사진=조준우
  잡지사에서 일하다 보면 지면에 소개되기를 바라며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수많은 신간서적을 만나게 된다. 작년 여름, 눈길을 끄는 책이 하나 있었다. 《민주주의의 탄생: 왜 지금 다시 토크빌을 읽는가》라는 책이었다. 저자는 이황직(李滉稙·50) 숙명여대 교수. 저자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양서(良書)를 많이 내온 출판사 아카넷의 이름은 눈에 익었다.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라는 책으로 유명한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지식인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의 생애와 사상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었다. 누군가를 소리 높이 비판·비난하지 않으면서도 행간(行間)에서 오늘날 우리 현실을 걱정하는 충정(衷情)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특히 ‘다수(多數)의 폭정(暴政)’ ‘민주적 전제(專制)’ 같은 개념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지난 2월 사회디자인연구소(소장 김대호)에서 이황직 교수 초청 강연을 두 차례 한다고 해서 가보았다. 이 교수는 체구가 크지 않고 목소리도 나지막했지만 학문적 내공과 확고한 신념이 느껴졌다. 그 후 내내 《월간조선》 지면을 통해 이황직 교수와 토크빌을 소개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11월 1일 숙명여대로 이 교수를 찾아갔다.
 
 
  “핵심은 자유와 인권”
 
《미국의 민주주의》 등을 통해 ‘민주적 전제’를 경고한 알렉시 드 토크빌.
  ― 근래 베네수엘라·폴란드·헝가리·터키 등에서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자유가 후퇴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 중 어느 쪽이 더 본질적인 가치일까요.
 
  “과거에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것은 특정한 나쁜 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하지만, 그 목적이 자유에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democracy・그리스어 demokratia)는 ‘다수(demos) 지배(kratia) 체제’입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도 어쨌든 ‘지배’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왕정(王政)이나 귀족정(貴族政)처럼 민주정(民主政)도 자유를 침해할 우려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수로부터 부당한 지배를 당하기 위해서 민주화투쟁을 했다는 것이 되는데,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결국 자유가 본질적 가치입니다.”
 
  ― 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체제가 민주적인가’라고 물으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민주적인가’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주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민주적인가’라고 물으면, 아무도 민주적이라고 하지 않겠지요.
 
  밖으로 민주주의라고 떠드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무엇이 보장되는가가 중요합니다. 결국 핵심은 자유와 인권입니다.”
 
  ―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자유’를 삭제하려는 움직임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의 핵심이 자유와 인권이라는 사실을 소홀히 하면서, 거꾸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그 안에 수많은 이상적 내용들을 채워 넣으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은 이론적으로는 굉장히 완벽해 보이지만 그걸 실제로 실행하면 더 많은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체제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민주정의 목표는 자유에 있습니다.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민주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유를 지켜내면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가 더 본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주의는 善惡 대결이 아니다”
 
  ― 1987년 이후 5년마다 대통령이 선거에 의해 교체되고, 실질적인 정권교체도 세 번이나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근래에 와서 민주주의는 오히려 표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민주주의라는 것은 선(善)과 악(惡)의 대결이 아닙니다. 선과 악의 싸움이 되면 대화와 타협이 절대로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절대악(絶對惡)과는 무조건 싸우는 수밖에 없죠.
 
  사회에는 갈등과 균열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치는 그 갈등을 드러내고 해법을 모색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일을 잘하는 세력이 집권하여 통치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하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이 권력을 누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부턴가 실제 사회 갈등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오직 권력을 획득하는 데만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정치 세력이 잘하는 일은 선악 이분법에 근거해서 상대방을 악(惡)으로 모는 것입니다. 권력에서 밀려난 쪽을 적폐(積弊)로 모는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이럴 때 유권자를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주로 분노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누가 집권한다고 해도 패배한 쪽의 협력을 받을 수 없겠지요.”
 
  ― 우리나라에서 정치 세력 간의 극한 대립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근래에 들어 특히 심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정치를 선과 악의 대결로 인식하는 움직임은 일부 시민단체가 낙천(落薦)・낙선(落選)운동을 벌인 2000년부터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세력이 드디어 정치사회에 경종(警鐘)을 울린 면이 있습니다만, 그 기준이 과연 얼마나 보편적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출마자가 내건 공약의 현실성을 평가하거나 구체적인 갈등 해법을 제안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시민운동을 위해서 더 나았을 겁니다.”
 
  ― 토크빌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보죠. 토크빌은 한마디로 어떤 사람입니까.
 
  “‘민주주의의 미래를 내다본 사람’이라고 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네요. 귀족 출신이면서도 미래는 민주주의의 시대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인격적으로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정의(正義)에 편에 서려고 한 사람, 공정한 사람, 중도(中道)의 사람, 파당(派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미국 정도에서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었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아직 초보 단계에 있거나 경계의 대상이던 시절에 귀족 출신인 토크빌이 민주주의를 일찍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토크빌은 젊은 시절 파리대학의 프랑수아 기조(1787~1874)로부터 ‘문명사’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 강좌에서 기조는 새로운 시대에는 귀족이나 사제(司祭)가 아닌 제3신분, 즉 비특권적 시민계층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이들에 의해 진보된 평등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토크빌은 기조의 강연을 들으면서 ‘미래는 어쨌든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세계가 될 것이고, 그에 맞는 정치질서는 아무래도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때의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었죠.”
 
 
  외증조부 말제르브
 
토크빌의 외증조부 말제르브.
  ― 토크빌을 ‘정의의 편에 서려고 했던 사람’ ‘공정한 사람’이라고 평했는데, 토크빌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외증조부(外曾祖父)였던 라므와뇽 말제르브(1721~1794)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제르브는 법복귀족(法服貴族・프랑스 절대왕정하에서 등장한 신흥귀족)으로 루이 15세 치하에서 대법관 겸 서적검열관장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그는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한 《백과전서》의 출판을 허가해, ‘진보적 지식인들의 대부(代父)’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말제르브는 은퇴 뒤 스위스에서 노후(老後)를 즐기고 있었는데 프랑스혁명 이후인 1792년 국민공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루이 16세를 기소하자 루이 16세를 변호하기 위해 급거 귀국했습니다. 물론 생쥐스트 같은 급진주의자들이 ‘루이 16세에 대한 재판은 재판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선동하는 분위기 속에서 말제르브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갑니다. 말제르브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인 1793년 12월 체포되어 이듬해 4월 딸, 사위와 함께 처형됩니다. 손녀인 루이즈(토크빌의 모친)도 투옥되어 남편 에르베 토크빌과 함께 처형될 날만을 기다리다가 로베스피에르가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실각하는 바람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 토크빌의 가족사는 정말 예사롭지 않습니다.
 
  “법복귀족(신흥귀족) 가문이지만 혁명 이전 왕가와 친했던 어머니는 늘 ‘불쌍한 루이 16세’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대검귀족(帶劍貴族・전통귀족) 출신인 아버지는 죽음 직전까지 갔던 공포에 시달리고…. 그런 부모를 보면서 자라난 토크빌에게 삶의 지향을 제공한 것이 말제르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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