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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인간탐험

이어령,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답하다 (3)

“하나님 말씀이 성경이라면, 인간이 쓴 성경은 천 개의 강물에 어린 달그림자(月印千江)”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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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림자에 비친 강에 바람이 불거나 물결이 치면 달빛은 ‘깨진 달빛’이 됩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이지러진 달’로 보이지만 그 원본을 조회해볼 수 있는 캐논, 땅에는 없지만 ‘하늘 위 진짜 모양의 달’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지러진 달을 수정하고 본래의 달에 도달할 수 있어요.”

⊙ 바이블은 그리스어 ‘책’을 의미하는 비블로스에서 유래… 레바논 항구 비블로스는 이집트산 파피루스가 모이던 곳
⊙ 하나님의 창조를 책으로 보면 ‘구약의 창세기’, 물질로 보면 ‘빅뱅’… 빅뱅이론이 과학으로 증명되면서 기독교는 과학과 더 친해져
⊙ 미국 大恐慌이 낳은 3가지 상징 ‘미키마우스’와 ‘타잔’ ‘킹콩’… 하나님이 꼭 아니라도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
⊙ 영어의 ‘릴리전(religion)’은 단절된 하늘과 땅의 일과 말을 다시 이어준다는 의미… ‘나의 삶을 다시 읽는다’는 뜻도

이어령
1933년생.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문화부 장관 역임
  이어령(李御寧·87) 선생과 함께하는 세 번째 항해(航海)를 떠났다. 선생은 우리 대화를 ‘빈자(貧者)의 제단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라 명명했지만, ‘촛불’인지 ‘항해’인지는 독자가 판단하리라. 한층 깊어진 종교와 신앙, 성경의 문제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 선생의 말은 우물 파기와 같았다. 한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돼갔다. 아무리 가지가 옆으로 뻗어 나가도 나무(주제)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기자는 지난 10월 2일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이어령 선생을 만났다. 생각해보니 우연인지 몰라도 선생을 만날 때마다 비가 내렸다.
 
 
  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11세기 비잔틴 제국 시대에 쓰인 ‘누가복음서(루카복음)’ 첫 장.
  “과학자들은 ‘화석’이나 ‘유물’의 발굴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죠. 그런데 저와 같이 문학하는 사람들에겐 ‘말’과 ‘문자’가 바로 그 화석이요, 유물인 게죠. 그리고 또 그들은 있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있는 것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고 물으면 ‘하나님 계시(啓示)를 받아 40명인이 66권을 쓴 전집’(가톨릭 성경은 ‘외경’을 더해 73권이다)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니 ‘성서’니 하는 말부터 캐려고 해요. 그리고 영어로는 ‘바이블(the Bible)’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어디에서 왔으며, 그 본래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 나타내는 겁니다.”
 
  선생의 성경에 대한 언급은 그 역사를 더듬는 일에서 시작됐다.
 
  “‘성경’을 뜻하는 영어의 ‘바이블’은 그리스 말로 ‘책’을 의미하는 ‘비블로스(biblos)’에서 나온 말입니다. 성스럽다(聖)거나 경전(經)이라는 뜻이 아닌 그냥 ‘책’입니다. 그 말의 뿌리를 캐면 종이를 가리키는 페이퍼(paper)와 같은 ‘파피루스(papyrus)’에서 나온 말이에요. 파피루스는 이집트 나일강 습지에서 자라는 2m가 넘는 갈대입니다. 이집트인들은 갈대 껍질을 벗겨 매끄럽게 다듬어 종이처럼 사용했지요. 그런데 이 파피루스를 배로 보급한 항구 이름이기도 합니다.”
 
 
  선생의 성경 뿌리 찾기는…
 
1988년 발행된 레바논 지폐 100리브르(Livres). 이미지 출처=수집뱅크코리아
  바이블, 비블로스, 페이퍼, 파피루스… 선생의 성경 뿌리 찾기는 계속 이어졌다.
 
  “비블로스라고 불린 레바논 도시는 BC 4500년 전에 세워진 항구였어요. 그땐 그곳이 페니키아 땅이었어요. 고대에 항구도시로 성장해 이집트산 파피루스가 모이던 지역이었죠. 정리하자면 비블로스라는 도시 이름은 파피루스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어요. 이집트에서 사온 파피루스를 팔던 데에서 유래됐지요.”
 
  ‘말의 화석 캐기’가 이번에는 레바논 삼나무로 이어졌다.
 
  “비블로스는 삼나무(백향목)와 종이(파피루스) 교역으로 번성했는데, ‘레바논 삼나무’는 성경에 수백 군데 나옵니다. ‘구약 시편’에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자라리로다. 주의 집에 심겨진 자들은 우리 하나님의 뜰들에서 번성하리로다’(92장 12~13절)라는 구절이 있지요.
 
  나무가 크고 꼿꼿하기에 사람이 죽으면 삼나무로 널을 만들었다고 해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벌레가 안 먹어요. 신전도, 널도 레바논의 삼나무를 베어 만들다 보니 레바논 지역이 황폐해지고 지금은 천연기념물이 되어 그야말로 ‘살아 있는 화석’이 된 거죠. 레바논 화폐에 그 삼나무가 나옵니다.”
 
  성경이 책이 되고 책이 종이가 되더니, 이번에는 파피루스의 갈대와 레바논 삼나무의 모습으로 이미지가 바뀐다. 몇 개의 화석 쪼가리로 공룡들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고생물학자와 다를 게 없다.
 
  “성경은 ‘책’입니다. 정관사가 붙어 ‘더 북(the book)’이지요. 책은 말을 문자로 적은 것인데 그리스어로는 ‘로고스(logos)’라 했지요. 그런데 그 뜻이 호두 속 같아서 ‘말’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진리, 이성, 논리, 법칙, 관계, 비례, 설명, 계산’ 등 이루 다 적을 수 없어요. 가뜩이나 숨이 찬데 이걸 또 로마 사람들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말’과 ‘이성’으로 두 쪽이 납니다. 주일마다 들고 다니는 《성경》 책 놓고 생각을 정리해보세요. 성경보다 훨씬 윗사람이 누구여? ‘말씀’이지요. ‘요한복음 1장 1절’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의 말씀이 성경보다 훨씬 위야. 그럼 말씀, 즉 로고스가 누구야? 바로 하나님이시지.
 
  하나님 말씀이 성경이라면, 인간이 쓴 성경은 달그림자예요. 알아듣기 쉽게, 시적(詩的)으로 불경(佛經)식으로 표현하자면 ‘월인천강(月印千江)’, 천 개의 강물에 어린 달그림자지요. 대한민국 한강에 비친 달, 북한의 대동강과 독일의 라인강, 미시시피에 비친 달…, 하늘의 달은 그대로인데, 수백 수천의 강물에 비치는 달그림자는 물결에 따라 서로 달라요. 그런데 달그림자를 두고 자꾸 하나님이라고 하면 되것어?”
 
 
  하늘 위 달과 강에 비친 달그림자, 그리고 캐논
 
  ― 천 개의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라….
 
  “우리는 인간의 말과 하나님의 말이 함께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성경 속 이야기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 말과 땅 사이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어요. 성경 속에 담긴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면 절대적이고 성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을 기록한 것은 사람들이었기에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처럼, 인간의 말로 굴절되었다는 것이지요.”
 
  저마다의 강에 비친 달그림자의 모습이 다르다 해도 달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더 알기 쉽게 설명할게요. 사인(sign)을 하잖아요. 그런데 쓸 때마다 조금씩 다 달라져요. 그런데도 그걸 같은 사람의 사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어떤 변하지 않는 원본이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지요. 사인을 할 때마다 대조해볼 수 있는 ‘캐논(canon)’이 있기 때문이죠.”
 
  캐논은 ‘규칙’이나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그리스도교적 신앙 및 행위의 기준인 법규집(集)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몸은 하루하루 세포가 바뀌어 몇 년이 흐르면 신체 모든 기관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나’인가요? 어렸을 때 나, 30대의 나, 60대의 나가 어떻게 같은 ‘나’인가요? ‘나’라는 어떤 개념, 어떤 캐논이 있어서 같다고 하지 않겠어요?”
 
  ― 성경의 ‘캐논’은 태초에 있었던 하나님 말씀이군요.
 
  놀랍다. 이 말 저 말 하는 것 같은데, 그것들이 하나하나 그물처럼 얽혀 있다. 캐논이라는 말 역시 파피로스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다.
 
  “파피루스는 나일강의 갈대로 만든 것이니까 빳빳해. 빳빳하니까 척도나 잣대로 삼을 수 있었던 거지. 성경의 모든 잣대에 ‘캐논’이 있는데 그게 로고스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 잣대로 오늘날의 성경을 재(尺)봐야 해요. 요약하자면,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옮긴 것은 사실이나 인간의 문화인 언어와 문자로 기록된 매체라는 겁니다. 달그림자에 비친 강에 바람이 불거나 물결이 치면 달빛은 ‘깨진 달빛’이 됩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이지러진 달’로 보이지만 그 원본을 조회해 볼 수 있는 캐논, 땅에는 없지만 ‘하늘 위 진짜 모양의 달’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지러진 달을 수정하고 본래의 달에 도달할 수 있어요.”
 
 
  성경 번역자는 반역자?
 
이어령 선생의 초상화.
  ― 성경을 각 나라 말로 번역하면서 생기는 문제도 있습니다. 축어역(逐語譯)과 의역(意譯) 과정에서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선생께서는 이를 ‘언어로 메울 수 없는 문화 수렁’ ‘번역자는 반역자’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40일 동안 금식한 예수 앞에 마귀가 나타나 ‘이 돌덩어리로 빵을 만들어보라’고 합니다. 그때 하신 말씀이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입니다.
 
  그런데 한국말 성경에는 그것이 ‘빵’이 아니라 ‘떡’이라고 되어 있어요. 가톨릭 성찬식에서 쓰는 빵도 떡을 가리키는 한자 병(餠)을 써서 ‘성병(聖餠)’이라고 하고,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로 5000명을 먹인 기적도 ‘오병이어(五餠二漁)의 기적’이라고 해요.
 
  그런데 ‘(사람은) 떡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목사님, 신부님이 말씀을 하면, 곧이곧대로 들으면 ‘어떻게 사람이 떡만 먹고 살아요. 밥을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이 선생은 장난꾸러기같이 웃는다) 제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밥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다’라고 해보세요. 이번에는 ‘마귀가 돌을’이 아니라 ‘모래를 퍼주며’라고 고쳐야 할 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지만 문화가 다르니 번역이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지요.
 
  히브리말이나 영어로 된 성경을 아무리 한국말로 잘 옮긴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납니다. 나라와 민족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선생의 말을 듣고 있자니 성경 번역 작업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위험천만한 작업인지, 그리고 얼마나 성스러운 작업인지 느낄 수 있었다.
 
  “번역에는 한 구절 한 구절을 그대로 옮기는 축어역과 문장 의미를 파악해 문맥에 맞게 옮기는 의역이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번역론’이라고 하는 히에로니무스의 글에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다뤄져 있지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려면 의역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보전하려면 낱말 하나하나를 원형대로 옮기는 축어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의역이냐 축어역이냐, 번역자들은 항상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말입니다. 서생(書生)들이 베끼는 과정에서 잘못 베낄 수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할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자연의 질서는 인간이 손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자연이 바로 성경이고 바이블이자 책인 것이죠. 그래서 갈릴레오는 지구가 돈다고 하나님을 부정한 게 아니라 지구와 천체(天體)를 성경(책)보다도 더 정확한 성경이라고 한 것이지요. 자신이 그렇게 말했어요. ‘자연은, 우주는 한 권의 책(성경)’이라고. 그의 망원경은 하늘의 책에 쓰인 하나님 말씀을 읽는 돋보기였던 것이지요.”
 
 
  창세기 天地創造를 빅뱅이론이 증명
 
지난 50년간 월드 베스트셀러 톱 10.(단위 백만 부) 자료와 이미지 출처=www.blacksmithpublishing.com
  이 대목에서 그는 숨을 가다듬었다.
 
  “하나님의 창조를 책으로 보면 ‘구약 창세기’지만, 물질로 보면 ‘빅뱅’(the big bang theory)입니다. 그때 천지(天地)가 만들어졌으니까요. 빅뱅이 과학으로 증명되면서 기독교는 과학과 더 친해졌어요. 모든 과학자가 기독교와 친해진 거야. (과학과 종교가) 등을 돌린 것처럼 돌아다니다 보니, 어? 제자리에 와 있는 거야. 빅뱅이야말로 천지창조고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니까요. 그 이전의 무(無)에서 우주가 생성됐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 못 하는 빅뱅이론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이죠.”
 
  《성경》은 세계의 모든 말로 번역된 유일한 책이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성경》이다. 이런 농담이 있다. 한 학생이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해리포터》 읽으셨어요?”
 
  “아직 안 읽었는데.”
 
  “한 달 전에 나왔는데 아직 읽지 않으셨다니….”
 
  교수가 《성경》 책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 책 읽었나?”
 
  “아니요…. 아직 읽지 않았는데요.”
 
  “나온 게 1000년도 넘었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니….”
 
  계속된 선생의 말이다.
 
  “《성경》은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고, 아직도 매년 베스트셀러 자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전역과 부분역을 합해 2400개가 넘는 언어로 60억 부 이상이 발행됐고, 기네스북에도 올랐지요. 2015년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가정의 88%가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성경》이 두 권 이상이고, 4곳 중 한 곳은 (《성경》을) 5권 이상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미국인의 13%는 지난 1년 안에 새 《성경》을 구입했다고 말해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새 《성경》의 구입은 번역의 정확성과 (《성경》) 권위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이 오래된 텍스트의 새 버전에 대한 수요를 유발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2위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인데, 책 제목은 《모주석 어록(毛主席語錄)》입니다. 1964~76년까지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은 빨간책’(서방에서는 이 책을 ‘The Little Red Book’이란 별칭으로 불렀다)은 10억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하지만, 어쨌든 중국 공산당이 자기네 말로 찍은 것이지만 《성경》은 전 세계 나라 말로 출판한 것이니 비교할 수 없지요.
 
  베스트셀러 3, 4위는 자꾸 바뀌어요. 《해리포터》가 되기도 하고 《반지의 제왕》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책들은 10년 전엔 순위에도 없지요.”
 
 
  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1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인간의 종교를 크게 둘로 나누면 신을 믿는 종교, 돈을 믿는 종교로 나눌 수 있지 않겠어요? 돈을 믿는 종교를 물신숭배(物神崇拜)라 하지요. 그런데 영어로 ‘신(god)’에다 ‘엘(l)’자만 넣으면 ‘황금(gold)’이 됩니다. 옛날부터 물질을 숭배하느냐, 하나님을 숭배하느냐에 따라 세속주의와 신성주의로 나뉘었어요.
 
  대개 인간은 오감(五感)을 통해 만져보고 증명하려 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도마(토마스)라는 제자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의 상흔을 내보이시며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돼라’고 하셨죠.
 
  직접 오감으로 확인한 도마가 이르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답했습니다. 비로소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게 된 것이죠.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스승님’이라 불렀지만 도마는 ‘주님!’이라며 제자 중에 최초로 예수님을 신이라 불렀어요. 의심하던 사람들이 믿기 시작하면 진짜 믿는 거야.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봤으니까.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 믿는 쪽이 더 많아요.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봐야 믿는다면 이 세상에 믿을 것이 사라져버립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병철 회장이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라고 물었는데 그 말 자체가 유물적인 것이죠. 그런데 인간은 신이 없어도 살 수 있어요. 돈이 없어도 살아요. 기근이 들어 당장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황금 한 덩어리는 감자 한 조각만 못하잖아요. 신과 황금은 비슷한 게 많아. 번쩍번쩍 빛나잖아요. 예수님 그림을 보면 머리 뒤에 후광이 있어요. 금덩이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죠. 최초의 기마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의 무덤이나 경주 신라 천마총(天馬塚)의 무덤을 열면, 다른 부장품은 다 썩어도 금반지는 그대로예요. 어쩌면 금은 영혼에 가장 가까운 물질인지 모르죠. 그런데 금을 증명해 보이려면 아르키메데스 원리가 나와야 돼요. 가짜 금인지 여간해서 알아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황금의 비율을 찾아내고 ‘유레카!’라고 외쳤잖아요.”
 
 
  예수님과 도마,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자, 그렇게 하나님을, 신을 찾아내라고 얘기했을 때, 수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찾으려면 인간의 지능 안에서 증명이 돼야 하잖아요. 하나님은 ‘에고 에이미’(ego eimi·스스로 존재하는 것)의 존재이시죠. 그분의 뜻을 인간 지능으로선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생명을 증명하는 것과 물질을 증명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황금이 새끼 낳는 것 봤어요? 금 조각을 그냥 놔두면 스스로 증식이 안 돼. 그런데 돼지는 안 그렇잖아요. 2년 전에 돼지 새끼 한 마리를 누구에게 맡겼더니 막 새끼를 쳐서 (돼지) 우리에 가득해요.
 
  이렇게 확실한 생명도 안 믿겠다고요? 생명은 어디서 왔나요?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라고 했어요. 분명히 부모에게서 받았어. 배꼽만 봐도…, 아버지는 몰라도 어머니와 한 몸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라 부르든 안 부르든, 이 세상이 달(月) 세계가 아닌 이상, 생명이 있어서 보고 듣는 자연의 모든 것이 생명의 증명이고 믿음이 아니겠어요?
 
  그게 ‘섬싱 그레이트(something great)’죠. 무(無)에서 태어나 다시 무로 돌아가는 생명인 것이죠. 어떻게 금덩이를 믿으면서 생명을 안 믿어요? 살아 숨 쉬고 아기를 낳는 생명의 근원을 안 믿느냐, 그 말이에요. 불태환(不兌換) 시대인 지금, 지폐도 종이 쪼가리예요. 종이 쪼가리를 믿는 사람이, 인쇄된 숫자를 믿는 사람이, 살아 숨 쉬고 꼬물거리는 이 모든 삼라만상을 안 믿어요?
 
  1930년대에 미국에서 대공황(大恐慌)이 일어났어요. 그때 증권이 다 휴지 조각이 돼버렸어요. 당시 두 가지 행렬이 있었다고 해요. 무료급식소의 긴 행렬, 그리고 영화관에 늘어선 행렬이지요. 현상논리로 말하자고요. 굳게 믿었던 증권이 한순간에 가랑잎이 됐어요. 믿을 게 아무것도 없어. 자살하고 막 그러는 거야.
 
  하지만 하나님이 꼭 아니라도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가 있어요. 바로 영화관에 늘어선 행렬 말이에요. 현실이 망하면 끝인데, 사람들이 왜 영화관으로 갔을까요? 그 무렵 불황이 만든 3가지 상징이 탄생했어요. ‘미키마우스’와 ‘타잔’ ‘킹콩’…. 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것들이야.
 
  확실히 있다고 믿었던 돈은 다 무너져버리고, 거꾸로 있지도 않은 쥐새끼 보러 영화관에 가서 사람들이 절망을 잊고 울고 웃었어요. 고양이한테 맨날 쫓기는 쥐새끼가 뭔데 말이죠. 미키는 아일랜드 사람을 뜻하는데, 우리나라의 ‘홍길동’처럼 흔한 이름이라 해요. 미키, 미카엘, 그러니까 대천사(大天使)를 말해요.”
 
 
  大恐慌의 삼총사, 미키마우스·타잔·킹콩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이후 등장해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로했던 3가지 상징물 킹콩, 타잔, 미키마우스.
  “가공의 만화 주인공인 미키마우스가 지금 90세야. 나보다 세 살 많아. 사람은 인권이 있는데 쟤는 저작권이 있어. 그런데 어릴 때부터 배꼽친구인 미키는 배꼽이 없어요. 생명을 증명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미키의 아버지는 누구야? 미국이라는 문화가 만든 가공의 존재잖아요.
 
  타잔도 마찬가지예요. 원숭이와 다름없어. 팬티 하나 걸치고 ‘아~ 아아~’ 외치면서 나무 사이를 달려가요. 망한 증권 도시의 존재와 다른, 자연에 가까운 생명 친화적 존재지요. 바이오필리아(biophilia·녹색갈증)예요. 야수 킹콩이 인간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일각에 내려치는 게 뭐예요? 하나님의 힘, 자연의 힘, 그 속에 깃든 생명인 거지요. 1930년대는 돈만 믿고 자연을 저버리며 반(反)미키, 반타잔, 반킹콩으로 살았던 것이에요.
 
  대공황 시절, 삼총사가 사랑받은 이유를 이제 알겠어요? 돈이 무너지면서 증권이 휴지가 되면서 우리가, 인간이, 인류가 자연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하나님이라 하지 말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고 칩시다. 이 삼라만상을 만든 힘과 질서를 못 믿어요?”
 
  선생은 흥분한다. 답답할 때 더욱 흥분한다. 남과 소통이 안 될 때 제일 화가 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종교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간접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의 단절 문제를 생각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지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복음 3장1~13)고 하니까, 니고데모는 ‘늙은 사람이 어떻게 두 번째 모태(母胎)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아무리 알아듣기 쉽게 말해도 끝내 이해를 하지 못하는 니고데모를 보며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라며 탄식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예수님이 하늘의 일을 지상의 일에 빗대어 말하지만 끝내 니고데모의 머리는 이해를 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외롭고 슬프고 아파하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기독교 신자든 비기독교인이든 관계없이 《성경》 말씀은 니고데모 같은 딱딱한 머리로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너무나 많이 나와요. 문학이나 시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신앙과 관계없이 ‘거듭나라’는 말을 진짜로 ‘어머니 배 속에 들어갔다 나오라’는 말로 알아들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성경》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니고데모처럼 문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하늘 나라의 일을 지상의 일로 말하려고 할 때 어쩔 수 없이 비유나 상징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그것을 모르면 많은 오해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 선생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하늘과 땅의 단절을 답답하게 여기신 예수님….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종교란 말은 개화기 때 일본 사람들이 영어의 ‘릴리전(religion)’을 불교 용어인 ‘종(宗)’과 ‘교(敎)’를 따서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릴리전의 어원이 뭣인지 아시지요? ‘다시 잇는다’, 즉 단절된 것을 다시 연결한다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단절된 하늘의 일과 말, 그리고 땅의 일과 말을 다시 이어주는 것! 그것이 종교이며 그 필요성이지요. 그리고 ‘다시 읽는다’는 뜻도 있어요. 나의 삶을 다시 읽는 것, 그 의미를 다시 찾는 것, 그것이 종교라고 말이지요.”
 
  아! ‘성경’ 말의 화석 캐기에서 시작해 ‘종교’ 말의 화석 캐기로 끝난 우리의 대화는 침묵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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