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주동식 지역평등연대 대표

“호남은 자기들이 가진 것을 親盧에게 네다바이 당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일베의 호남 비하는 87년 좌파의 정치적 승리 이후, 호남이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보조금을 가져가는 데 분노하는 것”
⊙ “좌파, 광주를 계속 ‘피해자’로 묶어두고, 광주의 피해의식을 상징자산으로 삼아서 대한민국 흔들려 해”
⊙ “5·18 모독 처벌법은 민주당 영구집권을 전제로 하는 것… 문재인 정권은 사실상의 쿠데타를 하고 있다”
⊙ “우파는 호남을 배제, 좌파는 호남을 협박”
⊙ “좌파는 정당정치·代議정치에 적대적… 당원에 기초한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하는 게 우파 정치 재건의 출발점”
⊙ 민청련·사노맹 등에서 활동… IT 전문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자본주의·비즈니스에 대해 이해하게 돼
사진=조선DB
  각종 의혹으로 가득한 조국(曺國) 전 법무부 장관 문제로 여론이 들끓던 지난 9월 27일 한국갤럽은 9월 4주 차(9월 24~26일)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와 관련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1%,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50%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울산·경남에서도 ‘잘하고 있다’는 대답은 36%, ‘잘못하고 있다’는 대답은 52%였다. 그런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대답이 ‘잘못하고 있다’는 대답을 압도한 지역이 있었다. 바로 광주·전라, 즉 호남(湖南) 지역이었다. 여기서는 ‘잘하고 있다’는 대답이 무려 68%나 나왔다. ‘잘못하고 있다’는 대답은 22%에 불과했다.
 
  사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 현안이건, 대북(對北) 문제건, 사드 배치건, 반일(反日) 드라이브건, 경제문제건 간에 호남은 유독 다른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대체로 친좌(親左)·친북(親北)·친중(親中) 방향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호남은 결국 대한민국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인가?” “호남은 차라리 좌파(左派), 심지어 북한과 손을 잡을지언정 보수우파(保守右派)가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은 못 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고 탄식하는 이들을 곧잘 본다.
 
  이런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주동식(朱銅植·62) 지역평등연대 대표를 만나보았다. 호남 출신인 주동식 대표는 젊은 시절에는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등에서 활동했고, 2013년부터 지역평등연대를 만들어 ‘호남 문제’를 공론화(公論化)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근래에는 반일(反日)민족주의 반대 집회, 조국 퇴진 요구 집회 등을 조직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는 좌·우·중도 성향 논객들이 담론을 펼치는 인터넷 매체 ‘제3의 길’ 편집장을 맡고 있다.
 
 
  “親盧는 左派의 에이전트”
 
  ― 혹시 ‘7시는 과학이다’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럼요. 많이 들어봤죠. ‘까보전’(까고 보면 전라도라는 뜻), ‘7시’(호남이 서남쪽에 있어서 나온 말)….”
 
  ― ‘호남 사람들이 자유한국당, 보수우파, 대한민국과 함께하느니 좌파, 심지어 북한과 함께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호남의 여론 주도층, 즉 시민사회 원로나 시민단체 리더 중에는 반(反)기업·반(反)시장, 반일(反日)·반미(反美)·친중(親中)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호남에서는 이미 여론 주도층을 넘어 밑바닥까지 그런 정서가 뿌리내렸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일반 시민도 여론 주도층의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2016년 제20대 총선(總選) 때에는 호남에서 안철수(安哲秀)씨의 국민의당 돌풍이 불었잖아요. 당시 호남은 친노(親盧)를 거부한 것입니다. 저는 친노를 언더(under)에 있는 좌파가 표면에 내세운 에이전트(agent)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총선에서 호남이 친노를 거부한 것은 호남에 좌파에 대한 거부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그건 좌파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노무현(盧武鉉)·문재인을 압도적으로 밀어주었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 즉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지역감정의 발로 아닐까요.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동시에 호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좌파에 대한 거부감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호남의 오피니언 리더급들은 저하고 얘기가 잘 안 되는데, 평범한 사람들, 이념의 세례를 덜 받은 사람에게는 제 말이 쉽게 먹혀요. 지난 20~30년 사이에 바뀌기는 했지만, 원래 호남이 훨씬 보수적인 동네였잖아요. 현재 호남이 좌파 성향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뿌리는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湖南은 ‘한국의 한국’”
 
  ― 호남에서 그렇게 좌파가 득세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경제·사회적 조건으로 봤을 때 호남은 농업 지역입니다. 기업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호남에서 좌파적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경제·사회적 기반과는 무관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이런 얘기하기는 뭐한데, 호남 사람들은 워낙 오랫동안 소외(疏外)되어서 그런지 중앙권력, 상징에 대해 약해요. 호남이 노무현에게 처음 손을 내민 것도 고립(孤立)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호남 출신이라는 게 거의 천형(天刑)과 비슷하지 않았습니까. 한번 딱지가 붙으면 떼기 어려운…. 그런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서인지 외부의 탄압에 대해서는 내성(耐性)이 강해요. 반면에 고립이나 인간적 모욕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한 편이에요.”
 
  ― 흔히 호남 차별이 박정희(朴正熙) 정권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호남 사람들은 뒤통수를 잘 때린다’는 둥, 호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예민한 얘기인데, 솔직히 호남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그런 성향이 있다고 봅니다.”
 
  ― 그게 지역성의 문제일까요? 다른 지역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있지요.
 
  “저도 들은 얘기인데, 호남에 대해 평하는 말 중에 ‘한국의 한국(Korea of Korea)’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게 장점이든 단점이든 한국인이 갖고 있는 특성을 호남 사람들이 특히 집약적(集約的)으로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외국, 특히 일본 같은 데서 한국인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실은 한국 내에서 호남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비슷합니다.”
 
  ― 짐작이 갑니다.
 
  “거짓말 잘 하고, 뒤통수 잘 치고…. 반면에 한국인의 장점도 호남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눈치 빠르고, 적응력 강하고…. 그러니 전국에 퍼져서도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한국인의 특성이 다른 지역에서는 변한 반면, 호남에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비판하는 호남 사람들의 특질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뭔지 아세요?”
 
  ― 전근대성(前近代性)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전근대성·반(反)시장성입니다. 예컨대 호남 사람들이 뒤통수치고 약속을 잘 안 지킨다고 하는데, 그건 시장질서가 체화(體化)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다른 지역은 비교적 빨리 근대화(近代化)의 세례를 받아서 바뀌었지만, 호남은 안 바뀌고 있는 거예요.”
 
 
  비판과 혐오
 
  ― 호남이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産業化)와 도시화(都市化)에서 뒤처지면서 전근대 농업 사회의 잔재가 온존했다는 얘기군요.
 
  “물론 그게 근대화의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100% 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을 봐도 그 지역의 문화적 요소라는 게 있기는 하다고 생각합니다. 호남 출신인 제가 봐도 호남 사람들은 삐딱해요. 서울에 와서 살다 보니 그게 느껴지더라고요.”
 
  ― ‘삐딱하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약간 삐뚤어진 영웅주의 같은 게 있습니다. 법질서나 사소한 데 얽매이는 건 남자답지 못하고 쪼잔하다고 생각하고, 남의 말 쉽게 안 듣고…. 그런 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그런 면이 강한 편이었어요. 그런데 도시생활 할 때는 공중질서 같은 것을 지키는 게 중요하잖아요. 호남 사람들은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저는 호남이 바뀌려면, 호남에 시장질서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말씀하신 건 일종의 문화적인 특질인데, 쉽게 바뀔 수 있을까요.
 
  “사실 호남 문제의 원인을 호남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면에서 접근하면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DNA가 바뀌겠습니까. 그러면 호남도, 대한민국도 해결책이 없잖습니까. 답은 결국 갈라서거나 아니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지요.”
 
  ―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호남 문제를 정치화(政治化)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쨌거나 호남을 고립시켜 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게 우파의 실수라고 봅니다. 지금은 이게 뒤집혀버린 거예요. 잘못하면 호남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하게 생긴 구도로 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화’한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비판할 건 하면서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비판하는 사람은 혐오할 수 없고, 혐오하는 사람은 비판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판을 하지 않으면 혐오하게 됩니다. 혐오는 문제를 사회문화적인 것, DNA의 문제로 가져가는 것인데, 그러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일베의 호남 혐오는 無賃乘車에 대한 거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 참석한 뒤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했다. 사진=뉴시스
  ― 과거에는 호남의 소외, 호남 비하가 문제였지만, ‘일베’(‘극우’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의 준말) 같은 데서는 5·18 유공자 문제 등에 대해 ‘호남 특혜’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베’가 우리나라 우파의 성감대(性感帶) 내지는 코어(core), 하트(heart)라고 봅니다. 원래 제가 직장 그만두고 지역평등연대를 만든 것도 일베와 싸우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옳은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 ‘요즘은 많이 망가졌지만 초기에는 그랬다’고들 하지요.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루저(loser)’라는 말을 저는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고급 엘리트들이 거기서 글을 많이 썼다고 생각합니다. 일베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만 잡는다면 뭘까요?”
 
  ―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총체적 반감(反感) 아닐까요.
 
  “그것도 맞는 말씀인데, 그 밑바닥에 있는 것은 무임승차(無賃乘車)에 대한 거부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호남에 대한 거부, 페미니즘(feminism)에 대한 거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거부가 나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게 B급도 아닌 C급 혐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 왜 A급 비판이 아닌 C급 혐오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우파 인텔리들이 호남 문제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87년 체제’ 이후 정치적 역학(力學) 관계의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저는 ‘87년 체제’를 좌파의 정치적 승리를 우파가 정치공학적(政治工學的)으로 간신히 막아낸 거라고 생각합니다.
 
  ‘87년 체제’ 성립 당시만 해도 실물권력은 우파가 압도적인 우세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좌파 쪽으로 힘이 넘어갔습니다. 저는 그게 좌파의 정치적 승리의 결과라고 봅니다. 정치적 승리가 모든 걸 결정합니다.
 
  그런데도 우파는 문제를 미봉(彌縫)하면서 권력을 유지해왔습니다. 예컨대 ‘87년 체제’로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경제 분야에서 우파는 ‘경제자유화’라는 어젠다(agenda)를 제시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경제민주화’로 끌려가버린 겁니다.”
 
 
  ‘87년 체제’, 보조금, 光州
 
  ― 맞습니다.
 
  “‘경제민주화’라는 것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공짜를 확대하자는 겁니다. 보조금 많이 주는 거예요. 이 보조금의 핵심에 호남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87년 체제’의 승리에는 호남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죠. 이후 호남은 정치적 승리의 대가(代價)로 공짜를 받아먹는 데 적응이 되어버렸습니다.
 
  5·18 유공자 가산점 등도 일종의 보조금입니다. 예민한 우파 인텔리들의 눈에는 그게 보이는 거예요. 일베는 호남이 정치적 승리의 결과, 시장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로 그런 보조금을 가져가는 데 대해 분노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임승차 거부’라는 정의감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이미 져버리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우파의 어젠다도 없다 보니 정정당당하게 비판하지는 못하고 혐오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혐오라는 게 실은 패자(敗者)의 표현이에요. 그게 문제지요.”
 
  ― 공감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지금 대한민국 전체가 호남화되고 있습니다. 우파 정치인·지식인들도 노동·여성·복지·인권 등의 어젠다와 관련해서는 좌파와 흡사한 주장을 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 호남 문제에서 가장 큰 핵심적 문제가 5·18입니다. 5·18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국민들은 물론 우파 내부조차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이 얼추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인식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나라를 분열시키는 우환(憂患)이 될 것 같습니다.
 
  “5·18은 호남 고립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일 수밖에 없겠지만, 양쪽이 다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준영(朴晙瑩) 전 전남지사가 ‘5·18기념식에 가서 만장(輓章)에 적혀 있는 글귀들을 보면 내가 봐도 섬뜩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광주(光州) 사람이고 5·18 유공자인 내가 봐도 그런데,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어떻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것이 5·18이 호남의 것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일부 사람에게는 이권(利權)이 되고 있고요. 5·18 유공자나 보상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보훈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87년 체제, 호남의 정치적 승리에 따른 보상금 내지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左派, 광주를 계속 ‘피해자’로 묶어둬”
 
  ―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5·18과 관련해서 광주 등 호남이 더 이상 ‘저항’만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5·18 당시 광주가 공권력(公權力)이 실종된 해방구(解放區)가 됐음에도 흉악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잖습니까? 일부에서는 그게 과장된 얘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시민적 자치의식을 내세우면서 광주의 가치(價値)를 전국화(全國化)·대한민국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5·18 광주’ 하면 여전히 ‘저항’이 강조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광주를 계속 ‘피해자’로 묶어두고, 광주의 피해의식을 상징 자산으로 삼아서 대한민국을 흔들려는 좌파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데 우파에서도 그걸 부추기는 세력이 있습니다. ‘적대적 공존(敵對的 共存)’ 관계인 거죠.”
 
  ― 그 ‘적대적 공존’ 관계를 깨야겠군요.
 
  “광주 안에서 이 문제에 대한 건강한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합니다. 광주 사람들 안에서도 유공자 문제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 그렇습니까.
 
  “제일 논란이 되는 게 유공자 선정 시 인우보증(隣友保證)이잖아요? 몇 사람만 내세우면 유공자가 되는 데 대해 말이 많아요. 우리 형님도 광주항쟁 때, 지프 타고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어렵게 사는 분인데 자존심 상해서 그런 짓거리는 못 하겠다고 합니다. 광주 내부에서 이런 문제들이 제기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3월 자유한국당에서 나왔던 ‘5·18 폄훼 발언’ 같은 일이 생기면 광주 내부에서 비판하려다가도 또 자기들끼리 뭉칠 수밖에 없습니다.”
 
  ―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연히 해야죠. 그런 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광주 내부에서 비판하는 전선(戰線)이 만들어지게 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역사의 종언’
 
5·18모독처벌법을 발의한 박광온 민주당 의원. 사진=뉴시스
  ― 박광온(朴洸瑥) 민주당 의원 등은 5·18에 대한 비방·왜곡·날조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저마다 자유로운데 그걸 통제한다고 막아지겠습니까.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처벌하는 법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법을 만들면, 우파가 정권 잡았을 때에는 정반대 입장에서 처벌하는 법을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럼에도 그런 법을 만들겠다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그들이 ‘역사의 종언(終焉)’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스럽습니다.”
 
  ― ‘역사의 종언’이라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더 이상 역사의 논란은 불필요하다’는 얘기죠. 현 집권 세력이 50년, 100년 집권을 얘기하잖아요. 그런 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자기들이 영구집권하겠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정권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얘길 절대로 못 해요. 그런 얘기를 하는 데에는 ‘우리는 절대로 정권을 놓치지 않겠다, 놓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의 쿠데타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문재인 정권은 사실상의 쿠데타를 하고 있는 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동식 대표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체제변혁)는 현 집권 세력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한 일을 보세요. 정권이 바뀌면 상당 부분이 내란(內亂)·외환(外患)·여적죄(與敵罪)에 걸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저들도 그걸 알아요. 무능하긴 하지만 영악한 사람들입니다. 모를 수가 없거든요. 선거가 지금처럼 루틴(routine)하게 되풀이되면 정권을 언제 놓치더라도 놓치게 되잖아요. 경제는 이렇게 추락하지, 국민들 불만은 높아가는데, 저들도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살기 위해서라도 쿠데타, 레짐체인지, 심지어 연방제로 가서 선거를 없애는 게 저들의 목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저도 똑같은 걱정입니다. 저들이 조국 사태로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그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제(10월 3일) 문재인·조국 퇴진 요구 집회에 시민이 많이 나왔지만, 대한민국 권력의 95% 이상은 이미 저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저들은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하려 할 것입니다. 저는 내년 총선 전망을 그리 밝게 보지 않습니다.”
 
  ― 선거법까지 바꾸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좌파, 고립에 대한 호남의 공포심 자극”
 
2004년 2월 3일 광주 구동체육관에서 열린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정권 규탄대회. 호남에 기반한 민주당과 친노 세력은 내내 갈등을 빚었다. 사진=조선DB
  ― 호남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어떻게 해서 호남이 지금처럼 좌파에게 포획(捕獲)되었다고 봅니까.
 
  “우파는 호남에 대해 분노하고, 호남을 배제합니다. 반면에 좌파는 내심으로는 전근대적이고 낙후되고 촌스럽다고 호남을 혐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협박합니다. 우파는 호남에 ‘너희하고 안 놀아’라고 하지만, 좌파는 호남을 협박해서 자기들 ‘꼬붕’으로 만드는 겁니다.”
 
  ― 협박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 아니면 너희 편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것이죠. 앞서 말한 호남 사람들의 고립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 좌파가 호남을 혐오한다는 것은 어떤 근거로 하는 얘기입니까.
 
  “예컨대 진중권씨는 ‘난닝구’라는 말을 만들어서 퍼뜨렸죠. 난닝구가 상징하는 게 뭡니까. 땀 냄새, 육체노동, 이런 거죠. 난닝구와 가장 대비되는 상징적 이미지는 ‘와이셔츠’입니다. 친노·리버럴·‘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 바라보는 호남은 ‘와이셔츠’와 구별되는 ‘난닝구’인 거예요. 이 말이 그들이 호남에 대해 갖고 있는 혐오감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동식 대표는 “호남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을 친노에게 네다바이(사기) 당했다”고 말했다.
 
  “‘광주의 피’도 제일 잘 활용해 먹고 있는 게 친노 세력이잖아요. 저는 호남이 대대로 전해져오는 집문서, 땅문서, 선산(先山) 다 넘기고 대신 짜장면 몇 그릇 얻어먹는 꼴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 친노에게 네다바이 당하기 전에는 호남에는 김대중(金大中·DJ)이라는 맹주(盟主)가 있었죠. DJ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좌파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그를 노회(老獪)한 보수 정치인 정도로 봤어요. 1997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에도 ‘저 노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냥 DJ 본인과 호남 사람들 한풀이하는 의미나 있는 정도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좌파 정치인 중에서는 나름 자기 정치철학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선언(21세기 한일파트너십공동선언)은 잘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반면에 ‘젊은 피’라는 이유로 ‘386’들에게 길을 열어준 것은 아주 치명적인 해악(害惡)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 호남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DJ에 대한 평가도 피해갈 수 없을 텐데요.
 
  “그 문제는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골화(骨化)된다고 할까…. 사람이 죽어 묻으면 살은 썩어 내리고 뼈만 남지 않습니까. 저는 DJ가 그런 과정을 밟고 있지 않나 싶어요. 호남 내부에서도 DJ에 대해 옛날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점점 소수화(少數化)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메신저가 메시지”
 
  ― DJ를 거의 신격화(神格化)해온 호남의 정서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까요.
 
  “호남의 반기업·반시장 정서의 기제(機制)로서 DJ가 살아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DJ 때문에 그런 것들이 살아 있는 게 아니고, 그런 것들 때문에 DJ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그 상징으로 DJ가 자꾸 소환되는 것입니다.”
 
  ― 호남이 좌파에게 포획되어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호남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야겠지만, 현재 호남 내부의 역량만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새로운 생각을 갖고 가서 정면으로 부딪쳐봐야지요.”
 
  ― 그렇게 가서 부딪힐 주체가 누굽니까.
 
  “‘메신저(messenger)가 메시지(message)’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한국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87년 군부정권이 무너지고 ‘87년 체제’가 수립된 후, 과거 군부정권 시절처럼 채찍을 쓸 수 없게 된 우파는 정권 창출을 위해 한편으로는 ‘보조금’이라는 당근을 내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호남을 고립·소외시켜 왔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그랬던 세력의 후예이기 때문에 같은 메시지를 전하더라도 거기서 진정성이 느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 그럼 그걸 누가 해야 합니까.
 
  “저는 안철수씨의 국민의당에 기대를 걸어보았습니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승리한 2016년 총선 이후 저는 ‘안철수씨가 호남에 가서 호남의 반기업·반자본주의·반미·반일 정서를 정면으로 공격해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안철수씨에게 보낸 호남의 지지가 전국적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런 생각을 안철수씨에게 전했는데 별 반응이 없더군요.”
 
 
  “우파의 정치적 어젠다는 탄핵과 박근혜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2주년이 되는 지난 3월 10일 서울역 앞에서는 박 전 대통령 석방요구 집회가 열렸다. 사진=조선DB
  주동식 대표는 “‘한국의 정치적 변화는 호남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왔는데, 자유한국당은 자격이 없고, 안철수씨는 정치철학이 없다”면서 “지금 우파에게는 정치적 어젠다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우파의 정치적 어젠다라는 게 탄핵과 박근혜 아닙니까. 탄핵과 박근혜가 미래의 어젠다가 될 수 있겠습니까. 자유한국당이나 우리공화당이 아무리 난리를 치고, 문재인 졍권이 아무리 망해도, 탄핵과 박근혜는 미래 어젠다가 될 수 없어요. 아무리 한국 정치가 ×판인 것 같아도 미래 어젠다가 없는 정치 세력이 정권을 쥘 수는 없어요. 우파가 박근혜와 탄핵에 묶여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어젠다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생각하는 미래 어젠다가 있습니까.
 
  “호남에 가서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버려라, 그래야 호남도 살고 대한민국도 산다. 그러지 않으면 호남도 불행해지고 대한민국도 망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미래 어젠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걸 중심으로 우파가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봐요. 너무 황당한 얘긴지 모르겠지만….”
 
  ― 흔히 호남 문제의 해결책으로 나오는 게 호남 출신에게 총리나 장관 자리를 주고 예산을 넉넉하게 배려해주는 방안이 제시되곤 하지만, 그게 해결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절대 반대하는 게 그겁니다. 그건 호남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파악하는 것이고, 호남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가장 악질적인 게 한전공대 만들자는 주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호남에 뇌물을 주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호남이 문재인 정권에 적극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 그런 뇌물이 먹혀들었기 때문이지만, 절대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정면에서 비판할 것은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호남만 비판해서는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남 등 다른 지역에 가서도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는 버려야 한다고 호소해야 합니다.”
 
  주동식 대표와 호남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얘기는 결국 ‘반기업·반시장·반미·반일·친중·친북’의 문제로 귀결되곤 했다.
 
  “호남에서의 싸움은 한반도에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점이고 가장 예민한 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정치적 변화는 호남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그런 얘기입니다. 핵심을 요약하면 ‘공짜는 없다’는 걸 내세우고 정면으로 얘기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좌파, 정당정치에 가장 적대적”
 
2012년 1월 30일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모바일 투표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 촉구 1인 시위를 벌였다. 사진=조선DB
  ―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은 단순히 민주국가에서 통상적인 정권 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좌파가 주류가 된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나라 우파는 경제니 뭐니 하는 건 다 했는데 정치는 안 했다. 좌파는 다른 거 하나도 안 하고 정치만 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우파가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파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우파가 이렇게 허약했나’라고 놀랄 정도로 말입니다. 우파가 다시 승리하려면, 좌파보다 나은 정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좌파보다 나은 정치’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좌파 정치의 핵심은 정당정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당정치에 가장 적대적인 자들이 좌파입니다. 시민단체, 아니 시민단체도 아니고 운동권의 프랙션(fraction·한 정치 세력의 대표로 외부 기관에 파견된 자)이 현재 좌파 정당입니다. 모바일 투표를 하면서 일반 국민에게 당내 투표권을 주고, 민주노총에 대의원 자리를 주고 하는 게 정당정치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는 대의(代議)정치에 대한 치명적인 훼손입니다. 대의정치라는 측면을 떠나서라도 그런 정치는 절대 투명하지 못하고,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우파는 사실 그보다도 못했어요. 정당정치·대의정치를 그냥 청와대의 국회 파견 업무 정도로만 생각했으니까요.”
 
  ― 정당정치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당원이 있어야 합니다. 당원이 없는 정당정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자기가 당원인 줄도 모르는 당원, 2중 당적(黨籍), 3중 당적을 가진 당원 말고, 진짜 당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당원에게 의사결정권을 주어야 합니다.”
 
  ― 그런 주장은 많이 있어 오지 않았습니까.
 
  “서글픈 얘기지만, ‘당원’의 핵심요건은 딱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에 당비(黨費)로 1만원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저도 바른미래당 권리당원이지만, 한 달에 당비로 1000원을 가져가요. 당비를 이렇게 저렴하게 하면 마음만 먹으면 몇만 명이라도 당원으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그건 진정한 당원이라고 할 수 없지요.
 
  한 달에 1만원씩 내는 당원이 20만명이면, 한 달에 20억원의 당비가 들어옵니다. 그러면 국가보조금 없어도 당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그 사람들이 진성(眞性)당원이 되면 그들을 중심으로 토론과 콘텐츠의 유통이 가능해집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당에서 유통되는 건 콘텐츠가 아니라 정치적 이권(利權)입니다. 그러면 절대 정당정치가 될 수 없어요. 저는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하는 게 우파 정치 재건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치권 물갈이 주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총선 할 때마다 평균 48%가 교체된다고 합니다. 물갈이는 수없이 많이 했는데도 계속 ‘젊은 피’ 얘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에 와 있는 젊은이들은 청년들에게 특권을 준다니까 와 있는 애들입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그들이 무슨 ‘젊은 피’입니까.”
 
 
  운동권 시절
 

  이렇게 지금은 호남의 자기비판, 시장과 기업, 해양 세력과의 연대(連帶)를 주장하지만, 주동식 대표는 원래 좌파 운동권이었다. 국민대 국문학과 78학번인 그는 “내세울 만한 운동권 경력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운동권은 선배가 후배를 훈련시키는 스타일이잖아요. 창피한 얘기지만 제게 이런 책 한 권 읽어보라고 소개해주는 선배 하나 없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는데, 한순간에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더군요.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알아왔던 것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 이게 진실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학내에 독서회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1980년 전투경찰로 군대에 갔다. 1983년 복학을 하고 보니 학내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학내 운동권 주류와는 별개의 조직을 하나 만들어 이끌었다. 1985년 대학 졸업 후에는 김근태(金槿泰)씨가 이끌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 들어가 1년6개월 동안 활동하다가 노동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87년 이후에는 백기완 대선(大選)본부, 민중의당 등에서 활동했다. 민중의당 안양지구당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조국 법무부 장관 때문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서도 활동했다. 하지만 사노맹 특유의 비분강개하는 관념적 용어들과 일방적인 조직문화에 질려 활동을 접었다. 그러다가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선배의 소개를 받아 들어간 게 IT 관련 잡지사였다.
 
  “IT 잡지사에 들어간 것은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처럼 게으르고 무식하고 공부 안 하는 놈이, 시대의 첨단 분야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거죠. IT 산업 분야를 취재하면서 비즈니스나 자본주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취재차 관련 업계의 조찬 모임에 가보곤 했습니다. 대개 아침 7시에 호텔에서 모이는데, 그러자면 5시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야 하잖아요. 충격을 받았어요. 후배들을 만나서 ‘야, 자본가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공부하고 그러는데, 너희는 새벽 2, 3시까지 술 퍼마시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서야 되겠느냐’고 했더니, ‘선배가 이상해졌다’고 그러더군요. 어느 선배는 ‘컴퓨터에 영혼을 빼앗겼다’고도 하고….”
 
  이후 이태복씨가 하던 《주간노동자신문》으로 옮겨 편집·취재 데스크로 일했다. 운동권 계파 간의 치열한 갈등은 《노동자신문》 안에서도 벌어졌다. 때로는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환멸을 더한 것은 사내(社內) 조직문화였다.
 
  “사람을 완전히 관리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노동자신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본가들 뺨칠 정도였습니다. 상종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해 나와 다시 IT 잡지사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두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하나는 ‘내 노동으로 먹고살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알량한 운동 경력을 팔아먹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50대 중반에 다시 ‘운동’ 시작
 
  ‘운동에는 눈을 돌리지 않기로’ 결심한 후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다니던 IT 잡지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먹고살기 위해 막노동이나 노점 등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IT 잡지사에서의 이력을 바탕으로 IT 컨설팅 회사에 전문위원으로 들어가 월급 받으며 생활한 7년이 인생에서 가장 평탄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2013년 일베에서 횡행하는 호남 비하 발언들을 접하고 나서였다.
 
  “일베를 보니 돌더라고요. 당시 ‘아크로’라는 토론 사이트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호남 난닝구’와 친노가 싸우는 것을 보면서 그 둘의 대립이 근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 지역차별연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더니 10여 명이 호응을 했습니다. 그게 2013년 10월이었습니다. 이후 오프라인에서 회원을 모집하고 서울시 NPO(비영리단체)로 등록도 했습니다.”
 
  ― 지금 현재 본인의 이념적 좌표는 어디쯤 있다고 생각합니까.
 
  “사회·경제적 어젠다에서는 우파입니다. 그런데 철학적으로는 생산력 발전을 통해서만 사회가 진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은 ML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이잖아요? 그걸 가지고 ‘너는 아직 좌파’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재미있는 게 지금 우리나라 좌파들은 생산력 발전 그 자체를 굉장히 적대시한다는 점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의 좌파는 ‘진보’라고 주장할 근거를 상실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좌파는 관념론에 근거한 도덕주의 운동에 불과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사노맹 외곽 조직인 남한사회과학원에서 활동했던 조국 법무부 장관의 일이 문득 생각났다.
 
  ― 문재인 대통령이 왜 저렇게 조국 장관을 감싸는 것일까요.
 
  “잘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권 내에서 호남과 PK의 대립이라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들을 보면. 언론 취재나 야권이 얻기는 어려운 정보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은 집권 세력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회 : 10468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3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세환    (2019-11-14) 찬성 : 4   반대 : 1
사회운동을 정치와 그리고 금전적 보상과 절대 연관 시키지 마세요. 그렇다면 광주 6.10만세운동은 지금 왜 끽소리도 없는가요? 아니면 6.10만세 사건이 거짓말이었는가요? 좀 냉정하세요.그리고 진실하세요. 우리나라 정치 권력에 대한 독재항거운동은 지방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독 광주에서만 유별나게 한 것 같이하니 전체적으로 반항하는 것 뿐입니다. 그것을 왜 모르시나요. 정말 답답합니다.
  지나가다    (2019-11-14) 찬성 : 4   반대 : 1
이 사람은 무슨 잠꼬대냐?
거짓말 잘하고 남의꺼 꺼 뺏기 좋아하는 조직폭력배들의 고향이 전라도 아닌가?
절라치들은 사노맹이나 공산주의가 딱이다.
  오동근    (2019-11-14) 찬성 : 3   반대 : 23
극우 우파 일베 토왜들이 집단적 상상에 빠져 있군요.
조선일보는 왜 이딴 글을 올리는가 ? 그 정체성을 의심하게?
그대들 우파 영남 토왜들에게 나라 맡기면 망할 것 같아
호남인들이 나서서 나라 지키고 있는 것도 모르냐.

2019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도서출간 배너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