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박희석의 격돌 인터뷰

‘통합’ 강조하는 ‘탄핵 주역’ 金武星 자유한국당 의원

“박근혜의 ‘不通’이 나라 망쳤는데 문재인도 ‘不通’이라서 큰 걱정… ‘강한 야당’이 ‘문재인 견제’해야”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18대 총선 당시 ‘공천 학살’ 당한 ‘친박 좌장’… 친박 무소속연대 이끌고 생환”
⊙ “잠시 당 떠난 사이 ‘눈초리’ 달라진 朴槿惠에게서 모욕감 느껴 ‘결별’”
⊙ “비극은 ‘공천 파동’ 때부터 시작됐다!”
⊙ “‘공천 파동’ 당시 제왕적 권력에 맞설 방법이 없었다… 개헌해서 제왕적 권력 분산해야”
⊙ “親朴 핵심들은 ‘박근혜 하야’ 주장… 법대로 탄핵 절차 밟자고 할 때 누구 한 사람 반대했었나?”
⊙ “임계점을 향해 가는 광장의 분노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고 온 게 ‘탄핵’이다!”
⊙ “경제 활성화는 기업 투자 이끌어야 가능하지만 ‘정책실장 김수현’ 등장 보고 금고 잠가”
⊙ “문재인, 나라 위해 ▲시장경제정책 시행 ▲기업 ‘기 살리기’ ▲탈원전 포기 ▲노동개혁 해야”

金武星
1951년 출생.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 청와대 민정비서관, 제48대 내무부차관, 15ㆍ16ㆍ17ㆍ18ㆍ19ㆍ20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ㆍ원내대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 새누리당 대표
사진=조현호
  국회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다.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사이 ‘탄핵 논쟁’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박계 수장 격인 김무성(金武星) 자유한국당 의원이 ‘통합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의원은 한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진력했던 ‘원조 친박’에서 ‘비박 수장’이 돼 당내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탄핵 소추안 가결 뒤엔 뜻을 같이하는 비박계를 데리고 당을 나가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은 ‘배신자’란 비판을 받는다. 문재인 정권의 외교·안보·경제 정책에 불안해하는 이들은 ‘박근혜 탄핵’과 ‘보수 분열’의 장본인으로 김 의원을 지목하고 ‘역적(逆賊)’이라고 성토한다. 매주 전국 각지에서 ‘박근혜 석방 촉구 집회’를 갖는, 소위 ‘태극기부대’는 김 의원 화형식을 벌인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지리멸렬한 자유한국당과 ‘탄핵 논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보수 진영을 보며 김 의원은 어떤 생각을 할까.
 
  2018년 12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김 의원은 “탄핵 정국 이후 2년 동안 침묵했지만, 이젠 얘기할 때가 됐다”면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점심 직후 만나 이뤄진 그와의 인터뷰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됐다. 김 의원은 장시간에 걸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자신 사이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자세하게 얘기했다. 박근혜 정부 기간, 정가에서 소문으로만 나돌던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갈등’에 대해 ‘당사자’가 입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김 의원은 “비극은 ‘공천 파동’ 때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박근혜 청와대’와의 갈등상을 얘기했다. 이와 함께 김 의원은 “최순실 사태 덕분에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실정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견제’를 위한 ‘강한 야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2005년 당 대표 시절 ‘오랫동안 지켜봤다’며 사무총장직 제안”
 
김무성(좌) 자유한국당 의원은 2005년, 박근혜(우)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하면서 ‘친박 좌장’ 역할을 한 ‘원조 친박’이었다. 사진=조선DB
  김무성 의원은 자신을 ‘박근혜 대통령과 제일 가까웠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그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새누리당 내부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왜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겁니까.
 
  “나는 박 전 대통령을 ‘동지(同志)’로 여겼는데, 자신을 ‘여왕(女王)’으로 생각한 박 전 대통령은 나를 ‘신하(臣下)’로 봤습니다. 여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다들 박 전 대통령을 여왕으로 모셨는데, 나는 그러지 않으니까 결국 ‘친박’에서 몰아낸 거죠.”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뭡니까.
 
  “나하고 대화 한 번 안 하고, 차 한 잔 안 마신 사람(박근혜)이 사무총장을 제의(2005년)했어요. 나는 그때 재경위원장을 열심히 하고 있어서 ‘지금 보람되게 일하고 있다. 나랑 차 한 잔도 안 마셨는데, 당 대표의 최측근에게 돌아가는 사무총장을 왜 시키려고 하느냐?’면서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오랫동안 지켜봐서 잘 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도 나는 안 한다고 하니까 나중엔 화를 냈어요. 이후 몇 번 만났는데, ‘당이 어렵다’면서 부탁하니까 맡게 됐습니다.”
 
  ― 어떻게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겁니까.
 
  “나는 당직자 출신입니다. 사무총장 일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어요. 사무총장 판공비에 손 안 대고 내 돈 써가면서 활동했습니다. 당내 낭비 요인도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년 만에 매월 2억4000만원 적자 보던 걸 8000만원 흑자로 돌려놓으니 신뢰를 안 할 수가 없었죠. 그때만 해도 박 전 대통령과 나는 이심전심이었어요.”
 
  ―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품위 있고, 욕심 없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겁니까.
 
  “‘가능성’을 봤습니다. 훌륭한 자질 뒤에 다른 면이 있다는 걸 당시엔 몰랐죠.”
 
김무성(우) 의원은 2008년, 당시 이방호(좌)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주도한 이른바 ‘친박 공천 학살’ 때 낙천한 뒤 탈당해 ‘친박 무소속연대’를 이끌며 ‘친박 돌풍’을 일으켰다. 사진=조선DB
  익히 알려진 것처럼 김무성 의원은 ‘친박 좌장’으로 활동하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주력했다. 2007년에 있었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그는 ‘박근혜 캠프’의 조직 부문을 맡았다. 당시 박 후보는 조직적 열세에도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1표를 실제의 5표로 환산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李明博) 후보에게 뒤져 석패했다.
 
  이명박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김 의원은 18대 총선(2008년) 전 친이(친이명박)계의 이른바 ‘친박 학살 공천’에 의해 낙천했다. 이후 그는 ‘친박 무소속연대’를 이끌며 ‘친박 돌풍’을 일으켜 당선된 뒤 한나라당에 복당했지만, ‘친박’ 내에서 그의 입지는 예전 같지 않았다.
 
  ― 2008년 낙천 당시 “박근혜 정신에 오물을 끼얹었다”면서 친이계를 비판했는데요. ‘박근혜의 정신’이란 게 뭡니까.
 
  “대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했는데도 자타 모두 ‘친박 좌장’이라고 했던 나를 죽였잖아요?”
 
  ― ‘무소속연대’를 이끌며 ‘친박 돌풍’을 일으키고 돌아왔는데, 이후 박 전 대통령과 거리가 조금씩 멀어졌죠.
 
  “모함 때문이죠. 나를 보는 눈초리부터 달라졌어요. 여러 사건이 있었어요. 이 사람한테 내 모든 걸 쏟았는데, 내 인생이 참 허무했어요.”
 
  ― 그때 모함했다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름은 얘기 안 하겠어요.”
 
 
  “세종시 논란 이후 ‘친박’과 결별하고 ‘배신자’ 소리 들어”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반목하게 된 ‘여러 사건’이란 게 뭡니까.
 
  “2008년 광우병 파동이 있고 나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무장관을 제안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하겠다고 보고했더니 ‘장관이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라고 하는 겁니다. 모욕감을 느꼈죠. 그 당시 나는 이미 언제든지 장관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 뭐라고 답했습니까.
 
  “그 말을 듣고 ‘알겠습니다. 안 하겠습니다’만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당신이 대통령이 되려면 사고의 유연성, 사고의 민주성을 길러야 한다’고 30분 동안 조언했습니다. 그렇게 나와서 맹형규 정무수석한테 전화해서 ‘못한다’고 얘기했습니다.”
 
  ― 이명박 청와대와 친이계가 원내대표로 세우려고 했을 때도 박 전 대통령이 반대해서 무산됐죠.
 
  “1년 뒤에 국회가 안 돌아가니까 박희태 대표가 MB와 얘기하고 나와서 원내대표를 맡으라고 했습니다. ‘박 대표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미국에 가 있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 유정복 의원한테 전화해서 ‘내가 원내대표를 하면 박근혜 대통령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30분 만에 ‘하지 말라’는 답이 왔습니다. 그때도 ‘안 하겠다’고 했죠. 두 번이나 그랬어요. 그런데 최경환(지식경제부 장관), 유정복(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장관을 했지 않습니까?”
 
  ― 언제 박 전 대통령과 결별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까.
 
  “미디어법(2009년 7월, 국회에서 가결된 미디어 관련 법률들) 처리 당시 ‘친박’ 내부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와서 박 전 대통령한테 ‘지침을 달라’고 했더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만히 계십시오’란 모욕적인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후 ‘내 진정성을 모르고, 모함에 귀를 기울이는 당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나’라면서 ‘친박’을 떠났습니다. 그 결별 방법이 ‘세종시’입니다.”
 
  ― 박근혜 당시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강조하면서 ‘원안’을 주장했고, 이명박 정부는 기업도시로 전환하는 ‘수정안’을 내놨습니다. 그때 ‘친박’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었죠.
 
  “MB 얘기도 맞고, 박 대표 하는 얘기도 맞았습니다. MB의 기업도시안은 그대로 두고, 국민 약속을 지키는 방법으로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같은 헌법상 독립기관을 세종시로 옮기자고 절충안을 제안했습니다.”
 
  ― 당시 절충안에 대해서 박 전 대통령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었죠.
 
  “30분 만에 박 대표 대변인 격이란 호칭이 붙어 있던 이정현 의원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 김무성은 친박 좌장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나를 ‘배신자’라고 했어요. 내가 ‘배신자’입니까? 다들 세종시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했어요. 지금도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이라도 당시 내 제안대로 바꿔야 합니다.”
 
 
  “박근혜한테 찍혀 공천 못 받았지만 ‘분열=필패’란 생각에 ‘백의종군’”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문재인 후보가 이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2009년, 김무성 의원은 ‘세종시 파동’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식적으로 갈라섰다. 이듬해 5월, ‘친박’에서 탈피한 김 의원은 ‘원내대표’에 추대됐다. 불과 2년 전, ‘친박 좌장’이란 이유로 자신을 떨어뜨린 친이계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일이 안 풀리니까 MB가 또 원내대표 하라고 제안했어요. 그때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했죠. MB가 ‘김 대표, 절대로 박지원 믿으면 안 된다’라고 걱정했지만, 그때 MB 원하는 대로 다 해줬어요. 나랑 박지원 의원이 여야 원내대표 할 때 최고로 잘 돌아갔어요.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서 박 전 대통령이 당권을 잡고 날 죽였잖아요.”
 
  ― 2012년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또 공천을 못 받았죠.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대선을 불과 10개월 앞둔 상황에서 분열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결국 ‘백의종군’을 선택했습니다.”
 
  ― 그 뒤에 박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프리미엄 결제안내

본 기사는 유료기사입니다. 전문을 보시려면 로그인 후 프리미엄회원 등록을 하시기 바랍니다. 로그인하기

프리미엄 결제하기

* 월간조선 정기독자는 추가 비용 없이 프리미엄 이용이 가능합니다.   정기독자 프리미엄 신청

캐시 결제 안내(건별기사)

캐시로 결제하기

캐시 충천은 1,000원부터 입니다.
캐시로 결제된 기사는 결제 후 1시간 동안만 읽으실 수 있습니다.

캐시 충전 하러 가기      캐시 충전내역 확인법

* 캐시를 정상적으로 충전 후 위의 '캐시로 결제하기' 버튼을 한번더 클릭하여 주셔야만 기사전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조회 : 2977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마이웰컴    (2018-12-24)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2
김무성 대표 말씀 백번 지당합니다 나라가 어려워지는 이때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보수가 단합해 정권을 되찾아야 하는 필요성 朴 前대통령에도 절실합니다. 이제는 하나로 뭉쳐라’고 옥중 에서라도 메시지 전하는 게 전직 대통령의 도리입니다.

20190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