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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석의 격돌 인터뷰

‘통합’ 강조하는 ‘탄핵 주역’ 金武星 자유한국당 의원

“박근혜의 ‘不通’이 나라 망쳤는데 문재인도 ‘不通’이라서 큰 걱정… ‘강한 야당’이 ‘문재인 견제’해야”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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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총선 당시 ‘공천 학살’ 당한 ‘친박 좌장’… 친박 무소속연대 이끌고 생환”
⊙ “잠시 당 떠난 사이 ‘눈초리’ 달라진 朴槿惠에게서 모욕감 느껴 ‘결별’”
⊙ “비극은 ‘공천 파동’ 때부터 시작됐다!”
⊙ “‘공천 파동’ 당시 제왕적 권력에 맞설 방법이 없었다… 개헌해서 제왕적 권력 분산해야”
⊙ “親朴 핵심들은 ‘박근혜 하야’ 주장… 법대로 탄핵 절차 밟자고 할 때 누구 한 사람 반대했었나?”
⊙ “임계점을 향해 가는 광장의 분노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고 온 게 ‘탄핵’이다!”
⊙ “경제 활성화는 기업 투자 이끌어야 가능하지만 ‘정책실장 김수현’ 등장 보고 금고 잠가”
⊙ “문재인, 나라 위해 ▲시장경제정책 시행 ▲기업 ‘기 살리기’ ▲탈원전 포기 ▲노동개혁 해야”

金武星
1951년 출생.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 청와대 민정비서관, 제48대 내무부차관, 15ㆍ16ㆍ17ㆍ18ㆍ19ㆍ20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ㆍ원내대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 새누리당 대표
사진=조현호
  국회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다.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사이 ‘탄핵 논쟁’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박계 수장 격인 김무성(金武星) 자유한국당 의원이 ‘통합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의원은 한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진력했던 ‘원조 친박’에서 ‘비박 수장’이 돼 당내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탄핵 소추안 가결 뒤엔 뜻을 같이하는 비박계를 데리고 당을 나가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은 ‘배신자’란 비판을 받는다. 문재인 정권의 외교·안보·경제 정책에 불안해하는 이들은 ‘박근혜 탄핵’과 ‘보수 분열’의 장본인으로 김 의원을 지목하고 ‘역적(逆賊)’이라고 성토한다. 매주 전국 각지에서 ‘박근혜 석방 촉구 집회’를 갖는, 소위 ‘태극기부대’는 김 의원 화형식을 벌인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지리멸렬한 자유한국당과 ‘탄핵 논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보수 진영을 보며 김 의원은 어떤 생각을 할까.
 
  2018년 12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김 의원은 “탄핵 정국 이후 2년 동안 침묵했지만, 이젠 얘기할 때가 됐다”면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점심 직후 만나 이뤄진 그와의 인터뷰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됐다. 김 의원은 장시간에 걸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자신 사이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자세하게 얘기했다. 박근혜 정부 기간, 정가에서 소문으로만 나돌던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갈등’에 대해 ‘당사자’가 입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김 의원은 “비극은 ‘공천 파동’ 때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박근혜 청와대’와의 갈등상을 얘기했다. 이와 함께 김 의원은 “최순실 사태 덕분에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실정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견제’를 위한 ‘강한 야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2005년 당 대표 시절 ‘오랫동안 지켜봤다’며 사무총장직 제안”
 
김무성(좌) 자유한국당 의원은 2005년, 박근혜(우)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하면서 ‘친박 좌장’ 역할을 한 ‘원조 친박’이었다. 사진=조선DB
  김무성 의원은 자신을 ‘박근혜 대통령과 제일 가까웠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그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새누리당 내부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왜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겁니까.
 
  “나는 박 전 대통령을 ‘동지(同志)’로 여겼는데, 자신을 ‘여왕(女王)’으로 생각한 박 전 대통령은 나를 ‘신하(臣下)’로 봤습니다. 여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다들 박 전 대통령을 여왕으로 모셨는데, 나는 그러지 않으니까 결국 ‘친박’에서 몰아낸 거죠.”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뭡니까.
 
  “나하고 대화 한 번 안 하고, 차 한 잔 안 마신 사람(박근혜)이 사무총장을 제의(2005년)했어요. 나는 그때 재경위원장을 열심히 하고 있어서 ‘지금 보람되게 일하고 있다. 나랑 차 한 잔도 안 마셨는데, 당 대표의 최측근에게 돌아가는 사무총장을 왜 시키려고 하느냐?’면서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오랫동안 지켜봐서 잘 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도 나는 안 한다고 하니까 나중엔 화를 냈어요. 이후 몇 번 만났는데, ‘당이 어렵다’면서 부탁하니까 맡게 됐습니다.”
 
  ― 어떻게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겁니까.
 
  “나는 당직자 출신입니다. 사무총장 일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어요. 사무총장 판공비에 손 안 대고 내 돈 써가면서 활동했습니다. 당내 낭비 요인도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년 만에 매월 2억4000만원 적자 보던 걸 8000만원 흑자로 돌려놓으니 신뢰를 안 할 수가 없었죠. 그때만 해도 박 전 대통령과 나는 이심전심이었어요.”
 
  ―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품위 있고, 욕심 없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겁니까.
 
  “‘가능성’을 봤습니다. 훌륭한 자질 뒤에 다른 면이 있다는 걸 당시엔 몰랐죠.”
 
김무성(우) 의원은 2008년, 당시 이방호(좌)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주도한 이른바 ‘친박 공천 학살’ 때 낙천한 뒤 탈당해 ‘친박 무소속연대’를 이끌며 ‘친박 돌풍’을 일으켰다. 사진=조선DB
  익히 알려진 것처럼 김무성 의원은 ‘친박 좌장’으로 활동하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주력했다. 2007년에 있었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그는 ‘박근혜 캠프’의 조직 부문을 맡았다. 당시 박 후보는 조직적 열세에도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1표를 실제의 5표로 환산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李明博) 후보에게 뒤져 석패했다.
 
  이명박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김 의원은 18대 총선(2008년) 전 친이(친이명박)계의 이른바 ‘친박 학살 공천’에 의해 낙천했다. 이후 그는 ‘친박 무소속연대’를 이끌며 ‘친박 돌풍’을 일으켜 당선된 뒤 한나라당에 복당했지만, ‘친박’ 내에서 그의 입지는 예전 같지 않았다.
 
  ― 2008년 낙천 당시 “박근혜 정신에 오물을 끼얹었다”면서 친이계를 비판했는데요. ‘박근혜의 정신’이란 게 뭡니까.
 
  “대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했는데도 자타 모두 ‘친박 좌장’이라고 했던 나를 죽였잖아요?”
 
  ― ‘무소속연대’를 이끌며 ‘친박 돌풍’을 일으키고 돌아왔는데, 이후 박 전 대통령과 거리가 조금씩 멀어졌죠.
 
  “모함 때문이죠. 나를 보는 눈초리부터 달라졌어요. 여러 사건이 있었어요. 이 사람한테 내 모든 걸 쏟았는데, 내 인생이 참 허무했어요.”
 
  ― 그때 모함했다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름은 얘기 안 하겠어요.”
 
 
  “세종시 논란 이후 ‘친박’과 결별하고 ‘배신자’ 소리 들어”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반목하게 된 ‘여러 사건’이란 게 뭡니까.
 
  “2008년 광우병 파동이 있고 나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무장관을 제안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하겠다고 보고했더니 ‘장관이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라고 하는 겁니다. 모욕감을 느꼈죠. 그 당시 나는 이미 언제든지 장관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 뭐라고 답했습니까.
 
  “그 말을 듣고 ‘알겠습니다. 안 하겠습니다’만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당신이 대통령이 되려면 사고의 유연성, 사고의 민주성을 길러야 한다’고 30분 동안 조언했습니다. 그렇게 나와서 맹형규 정무수석한테 전화해서 ‘못한다’고 얘기했습니다.”
 
  ― 이명박 청와대와 친이계가 원내대표로 세우려고 했을 때도 박 전 대통령이 반대해서 무산됐죠.
 
  “1년 뒤에 국회가 안 돌아가니까 박희태 대표가 MB와 얘기하고 나와서 원내대표를 맡으라고 했습니다. ‘박 대표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미국에 가 있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 유정복 의원한테 전화해서 ‘내가 원내대표를 하면 박근혜 대통령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30분 만에 ‘하지 말라’는 답이 왔습니다. 그때도 ‘안 하겠다’고 했죠. 두 번이나 그랬어요. 그런데 최경환(지식경제부 장관), 유정복(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장관을 했지 않습니까?”
 
  ― 언제 박 전 대통령과 결별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까.
 
  “미디어법(2009년 7월, 국회에서 가결된 미디어 관련 법률들) 처리 당시 ‘친박’ 내부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와서 박 전 대통령한테 ‘지침을 달라’고 했더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만히 계십시오’란 모욕적인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후 ‘내 진정성을 모르고, 모함에 귀를 기울이는 당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나’라면서 ‘친박’을 떠났습니다. 그 결별 방법이 ‘세종시’입니다.”
 
  ― 박근혜 당시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강조하면서 ‘원안’을 주장했고, 이명박 정부는 기업도시로 전환하는 ‘수정안’을 내놨습니다. 그때 ‘친박’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었죠.
 
  “MB 얘기도 맞고, 박 대표 하는 얘기도 맞았습니다. MB의 기업도시안은 그대로 두고, 국민 약속을 지키는 방법으로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같은 헌법상 독립기관을 세종시로 옮기자고 절충안을 제안했습니다.”
 
  ― 당시 절충안에 대해서 박 전 대통령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었죠.
 
  “30분 만에 박 대표 대변인 격이란 호칭이 붙어 있던 이정현 의원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 김무성은 친박 좌장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나를 ‘배신자’라고 했어요. 내가 ‘배신자’입니까? 다들 세종시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했어요. 지금도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이라도 당시 내 제안대로 바꿔야 합니다.”
 
 
  “박근혜한테 찍혀 공천 못 받았지만 ‘분열=필패’란 생각에 ‘백의종군’”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문재인 후보가 이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2009년, 김무성 의원은 ‘세종시 파동’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식적으로 갈라섰다. 이듬해 5월, ‘친박’에서 탈피한 김 의원은 ‘원내대표’에 추대됐다. 불과 2년 전, ‘친박 좌장’이란 이유로 자신을 떨어뜨린 친이계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일이 안 풀리니까 MB가 또 원내대표 하라고 제안했어요. 그때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했죠. MB가 ‘김 대표, 절대로 박지원 믿으면 안 된다’라고 걱정했지만, 그때 MB 원하는 대로 다 해줬어요. 나랑 박지원 의원이 여야 원내대표 할 때 최고로 잘 돌아갔어요.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서 박 전 대통령이 당권을 잡고 날 죽였잖아요.”
 
  ― 2012년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또 공천을 못 받았죠.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대선을 불과 10개월 앞둔 상황에서 분열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결국 ‘백의종군’을 선택했습니다.”
 
  ― 그 뒤에 박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후보로 선출되는 걸 왜 보고만 있었습니까.
 
  “나는 낭인이었는데, 무슨 방법이 있노? 박 외엔 후보가 없었어요. 내가 반대한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 당시 ‘박근혜 캠프’엔 왜 참여했습니까.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이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 나중엔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서 캠프를 지휘했습니다.
 
  “처음엔 소극적으로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는데, 선거조직 기구표조차 제대로 못 만드는 거예요. 아까워서 자리를 못 주는 거야. 명함 1장 파주는 게 뭐가 그리 아까워서 안 줍니까? 대선 조직은 무한정 키워야 합니다. 임명장을 남발해서 도와달라고 호소해야 돼요. 그게 안 되니까 박 전 대통령과 경선을 치렀던 김태호, 임태희, 안상수 의원하고 내가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서병수 사무총장을 만나서 이대로 가면 진다고 했더니 ‘그걸 후보한테 얘기 좀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들은 말 못하겠다는 거지.”
 
  ― 껄끄러운 사이인데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다 같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대선 이기라고 백의종군했는데, 이대로 가면 선거 진다’고 하면서 ‘후보가 결재하면 안 된다. 남에게 맡겨라’라고 얘기했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박 전 대통령이 ‘선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걸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하니까 다들 ‘아이고, 잘됐다’고 하는데, 나는 선대위원장 대신 급을 낮춰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실무를 책임지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나는 후보님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어떠한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왜 그런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까.
 
  “당선을 기정사실로 알고 여의도의 사무실이란 사무실은 다 잡아놓고 자기들끼리 어떤 권력을 가져갈 건지 혈안이 된 사람들을 정리하려면 내가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총괄선대본부장 맡고 나서 선거기구 조정하고, 당사 3층 조그만 방에 침대 가져다 놓고 잠도 거의 안 자면서 서류 처리하고, 후보 면담하러 온 사람들 대신 만나고, 하루에도 열댓 번씩 임명장 주고 사진 찍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조직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대선에서 이겼습니다. 나는 그때 편지를 써 붙이고 떠났잖아요?”
 
  2012년 12월 21일, 선대위의 총괄사령탑을 맡아 ‘박근혜 당선’에 기여한 김 의원은 당사 3층 사무실 문에 편지 1장을 붙이고 떠났다. 당시 그는 편지에서 “여러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제 제 역할이 끝났으므로 당분간 연락을 끊고 서울을 떠나 좀 쉬어야겠습니다. 제 마음속의 큰절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사의를 표했다.
 
 
  다시 살아 돌아온 대권 주자 김무성 그리고 ‘30시간 법칙’
 
  2012년 19대 총선 당시, 공천에서 배제됐던 김무성 의원은 이듬해 4월 24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선거(부산 영도구)에서 득표율 65.66%를 기록하며 당선해 국회로 돌아왔다. 김 의원에 따르면 당시 당 지도부는 그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려 했다. 다른 ‘제안’을 하며 그를 회유하려 했지만, 김 의원은 이를 거부하고 출마해 다시 살아 돌아왔다.
 
  “국회에 돌아와서 가만히 있었는데, 역사교과서가 엉망이란 걸 알게 돼서 ‘근현대사역사교실’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7시30분에 모여 샌드위치 먹어가며 공부하기로 한 건데, 개강일에 의원들이 한 60명 왔나? 공교롭게도 개강일이 박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일이었습니다. 이걸 보고 청와대 보좌진이 ‘김무성이가 대통령 첫 해외 순방 가는 날 보란 듯이 의원들 수십 명을 불러모아서 계보 발대식을 했다’고 모함했습니다. 대통령한테 그런 식으로 매일 나에 대해 안 좋은 보고를 올리니까 전당대회에서 청와대가 나를 당 대표에서 떨어뜨리려고 적극적으로 개입했는데, 큰 표 차로 이겨버렸지.”
 
  ― 당시는 이미 박 전 대통령과 ‘결별’한 상태였는데, 왜 ‘원조 친박’이었던 사실을 강조했습니까.
 
  “아니, 자꾸 친박들이 그쪽으로 뭉치니까 내가 ‘원조 친박’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 당 대표 당선 직후 수락 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공만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고 했는데요. 진심으로 한 얘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내가 당 대표 할 때 박근혜 정부 정책에 어깃장을 놓은 게 있습니까? 박 대통령의 ‘4대 개혁’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친박들한테 물어보세요.”
 
  ― 청와대와 다른 의견을 성급하게 내놨다가 이내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며 발언을 거둬들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요. 그걸 세간에서는 ‘30시간의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아무 말 안 했으면 모르겠지만, 절대 안 된다고 하면 내가 굽혀야지, 우짜겠노?”
 
  ― 그렇게 일찍 굽힐 심산이었다면 애초에 얘기하지 말든지, 아니면 사전에 청와대와 논의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 내가 대통령하고 싸워야 하나? 내가 사과하고 바보 되고 끝낸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 여당 대표이자 당시 지지율 1위인 차기 대권 주자가 너무 굽힌 건 아닙니까.
 
  “나는 그게 옳았다고 봅니다.”
 
  ―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박근혜 지지층’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청와대에 고개 숙이는 모습을 자꾸 연출한 것 아닙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나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일선에서 총대를 멨습니다. 근현대역사교실 만들어서 역사교과서 문제를 고발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공하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인 ▲공공개혁 ▲노동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을 이루려고 노력했습니다.”
 
  ― 그 과정에서 한때는 28주 연속으로 차기 대권 주자 중 1위를 기록했는데 왜 갑자기 지지율이 빠진 겁니까.
 
  “‘유승민 파동(2015년)’이 터진 다음부터 지지율이 내려갔습니다. 대통령은 유승민을 죽이라는데, 나는 못 죽인다고 해서 싸움이 난 거예요. 그게 2016년 총선 당시 ‘공천 파동’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청와대의 ‘대통령 탈당 검토 지시’ 정보 접하고 유승민 사퇴 설득”
 
김무성(우) 의원은 ‘유승민 파동(2015년)’ 당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검토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파국을 막기 위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라”고 유승민(좌) 의원을 설득했다. 사진=뉴시스
  ― ‘유승민 파동’ 당시 왜 유승민 원내대표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까. 청와대에 반기를 들면 자신의 대권 도전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까.
 
  “유승민 사퇴 여부를 결정하는 1차 의총을 앞두고 의원들과 점심·저녁 먹어가며 ‘유승민은 잘못이 없다’고 설명해 ‘유승민 유임’ 결정을 이끌어냈는데, 그날 저녁에 청와대에서 ‘탈당 검토’ 지시가 떨어졌다는 겁니다. 저쪽에서 부인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이건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나온 정보입니다.”
 
  ― 당 대표와 원내대표 모두 ‘비박’이라서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탈당을 검토하란 얘기가 나온 겁니까.
 
  “대통령의 탈당을 검토하라는 지시였습니다. 대통령이 탈당하면 당이 깨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유승민 의원을 설득했는데, 유 의원이 ‘난 못하겠습니다’라고 거부했어요. 파국을 막기 위해 2차 의총 때는 손을 쓰지 않았고, 그때는 ‘이 정도 됐으면 원내대표가 손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돼서 결국 유 의원이 사퇴했습니다.”
 
  ― 2016년 당시 ‘공천 파동’도 결국 ‘유승민’ 때문에 일어난 거죠.
 
  “그게 이어지는 거죠. 그 ‘공천 파동’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나는 권력자에게서 공천권을 빼앗아 국민에게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면서 당 대표를 한 사람입니다. 대표가 된 이후 상향식 공천을 할 수 있도록 의원들을 설득해서, 당헌·당규를 고쳤습니다. 선거법도 개정했는데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나한테 ‘형님, 할매(박근혜) 퇴임 이후를 생각해서 TK(대구·경북)만큼은 할매 영향력하에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해요. 못한다고 하니까 ‘그럼 대구만 넘겨주시오. 유승민+6~7명을 넘겨주시오’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계속 못한다고 해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 왜 ‘상향식 공천’을 그렇게 밀어붙인 겁니까.
 
  “나는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인데, 정당 판에 와보니까 민주화 투쟁을 하던 야당도 비민주적이야. 공천이 그랬어요. 말 잘 듣는 사람, 돈 많이 갖고 온 사람에게 공천이 가더란 말이에요. 공천 과정을 보니까 더러워요. 국회의원이 자기 철학과 소신에 따라 정치활동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공천권에 묶여서 그게 안 되더란 말입니다. 그때부터 내 정치 목표를 권력자로부터 공천권을 빼앗아서 국민에게 돌려주는 걸로 잡았어요.”
 
  ― 권력자로부터 공천권을 빼앗는다고 하면, 실제 ‘권력’이 가만히 있습니까.
 
  “친박이 회의 때마다 나를 모욕하고, 난리를 피웠는데도 나는 참고 있었습니다.”
 
  ― 왜 참았습니까.
 
  “‘상향식 공천’은 휴대전화 여론조사로 경선해야 합니다. 여론조사 경선을 위해선 안심번호(위장번호)를 채택하고, 이동통신사 3사가 전국 모든 휴대전화 번호를 위장번호로 만들어야 합니다. 위장번호 추출 시간·비용을 감안하면 최소 24일이 필요했어요. 친박에선 이걸 아니까 기간을 지연시켜서 ‘여론조사 경선’을 못하게 하려고 내게 싸움을 걸었지만, 속내를 뻔히 아는 나는 그 수모를 참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버텨서 전체 공천 중 87.43%는 ‘상향식’으로 했어요. 지금 초·재선 상당수는 자기 실력으로 당선됐는데, 그걸 모르고 박근혜 전 대통령 덕분에 됐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12.57%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한 ‘청와대 공천’입니다.”
 
  ― 그렇게 ‘상향식 공천’을 강조했으면서, 왜 또 ‘소신’을 굽혔습니까.
 
  “내가 협상가 타입이니까, 부당하지만 참았습니다. 안 그러면 선거 자체를 못 치르는 상황이었잖아요? 큰 탈이 없는 건 합의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에게 공천권 주는 ‘상향식 공천’ 이루려고 불가피하게 친박과 ‘타협’”
 
김무성 의원에 따르면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현기환(우)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화해 청와대가 대구ㆍ경북 지역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또 공천관리위원장에 ‘공천 파동’ 주역 중 한 사람인 ‘이한구’를 앉히라고 했다. 사진=뉴시스
  ― 그럼 왜 애초에 이한구 전 의원이 공천관리위원장에 앉는 걸 보고만 있었습니까.
 
  “왜 줬느냐? 현기환 정무수석이 ‘할매가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이한구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반대했지만, 최고위원 9명 중 내 편을 든 건 김을동 의원 1명뿐이었어요. 나머지는 전부 표결하자고 했어요. ‘7:2’니까 표결해 봤자 아니에요? ‘상향식 공천’에 필요한 시간은 촉박하고, 저쪽은 계속 표결하자고 하니까 ‘이한구’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공천 과정에서 이한구 공관위원장과 대립했는데도, 소위 ‘김무성계’ 의원들이 공천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뭡니까.
 
  “단독으로 공천 신청한 곳이 25개 지역이었는데, 거의 나하고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상식적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단독 신청’했으면 제일 먼저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나 때문에 자기들 죽는가 싶어서 잠도 못 자지, 내가 당 대표인데도 공천 심사받았잖아요? 날 꼼짝 못하게 하려고 이 사람들을 다 잡아놓다가 마지막 날 하루 전에 줬어요. 당 대표인 나도 마지막에 받았습니다.”
 
  ― 자기 측근들의 공천을 챙기기 위해서 친박과 ‘거래’한 건 아닙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나는 내 자존심을 지키려고 비례대표 후보조차 단 1명도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 ‘공천 파동’의 ‘대미’를 장식한 게 ‘옥새 갖고 나르샤’죠.
 
  “그것 때문에 내가 욕을 많이 먹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소리를 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생각입니다. ‘유승민과 그 일당 몇 명만 죽이자’고 했는데, 난 ‘손 못 댄다’고 했어요. 친박들도 ‘유승민 죽이면 수도권 선거 못 치른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뜻’이라고 하니까 돌아선 거예요. 나는 끝까지 유승민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내가 도장 갖고 갔다고 생각합니까?”
 
  ― 《월간조선》은 당시 당 대표 직인이 당사 금고에 있었다고 이미 보도했었습니다.
 
  “마지막 6곳이 남았는데, 여론조사에서 1위와 큰 차이가 나는 2위, 4위를 올린 거예요. 그래서 ‘당헌·당규에 심히 위배되는 공관위 결정을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하고 지역구로 내려갔습니다.”
 
2016년 3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이한구 공관위’의 ‘유승민 죽이기 공천안’에 반대하면서 공천장에 당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한 채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시 영도구로 내려갔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옥새 갖고 나르샤’라고 불렀지만, 실제 당시 새누리당 대표 직인은 당사 금고 안에 있었다. 사진=뉴시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공천 과정에서 당헌·당규에 따라 원칙과 정도의 길을 갔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수없이 생겼다”며 “공천권을 국민과 당원에게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된 공천을 최소한이나마 바로잡아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한구 공관위’가 마지막으로 후보를 결정한 5개 지역구에 대한 최고위원회의 의결과 당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하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시 영도구로 내려갔다.
 
  ― 그때도 하루 만에 당무 복귀를 했습니다.
 
  “원유철 원내대표가 따라 내려와 설득해서 하루 있다가 올라왔는데, 이걸로 ‘왜 끝까지 버티지 올라왔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는 타협이에요. 양보를 안 하고 어떻게 타협을 합니까?”
 
  ― 새누리당 내부의 ‘공천 파동’이 생중계되듯이 바깥에 알려져서 총선에서 망했습니다. 책임 통감합니까.
 
  “정의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닙니까?”
 
  ― 그처럼 강조하는 ‘타협’을 일찍 해서 ‘공천 파동’을 막았다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그나마 그리 안 했으면 더 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 20대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에도 ‘상향식 공천’ 원칙을 무너뜨린 친박과 같은 당에서 왜 ‘동거’했습니까.
 
  “방법이 있나? 내가 게임에서 진 건데. 그게 권력이야. 권력 게임에서 내가 진 거야. 제왕적 권력에 내가 이길 방법이 없었지. 그래서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키는 개헌을 하자는 겁니다.”
 
 
  “박근혜 독대한 적 없는 친박들… 최순실 사태 당시 배신감 느껴”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마치고 김무성 의원과 ‘비박 동지’ 김성태ㆍ권성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김 의원은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된 이후 진행된 소위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탄핵’을 주도했다. 사진=뉴시스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과거 인연이 있던 최태민씨의 딸 최순실씨가 박 전 대통령의 비호 아래 국정에 개입하며 사익을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같은 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표결 결과는 투표자 299명 중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7표 ▲무효 7표다. 당시 ‘친박’이 80명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평소 ‘친박’을 자처했던 이들 상당수가 ‘박근혜 탄핵’에 찬성했다는 걸 의미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듬해 3월 10일, 만장일치로 국회의 탄핵안에 찬성했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4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소위 ‘탄핵 정국’을 이끌었던 이가 바로 집권여당의 대표를 지냈던, 김무성 의원이다. 그는 새누리당에서 탄핵을 주도했고, 탄핵 소추안 가결 뒤엔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어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이런 일련의 행적 탓에 그는 지금까지도 ‘배신자’란 비판을 받는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김 의원과의 문답이다.
 
  ― 박근혜 탄핵을 후회하지 않습니까.
 
  “탄핵이란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박 전 대통령은 더 큰 불행을 겪었을 겁니다.”
 
  ―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국민도 폭발했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터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사람이 달라졌어요.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어요. 박 전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한 김막업씨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일주일에 3~4일은 관저에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대통령이 아무도 안 만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은 수시로 만나서 소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정호성이 서류를 갖고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는 게 아니라 김막업씨한테 줘요. 그럼 김씨는 대통령 방 앞에 있는 조그만 탁자 위에 올려놓고, 대통령은 문 열고 나와서 갖고 들어가서 보고. 난 이거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 박 전 대통령의 ‘불통’은 이전부터 다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얘기했다시피, 대통령 되고 나서 사람이 바뀌었어요. 누구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당 대표 되고 나서 누구나 하는 ‘정례회동’을 수십 차례 요청했지만,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니 일이 제대로 됐겠습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까 대통령비서실장조차 대통령과 독대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 분노했습니까.
 
  “친박들도 배신이라고 느꼈지. 최경환, 유정복, 홍문종, 윤상현. 윤상현? 박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한다는 윤상현 의원에게 대통령과 독대한 일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내가 물어봤는데, 없어요. 소위 말하는 ‘친박 실세’란 사람들이 ‘독대’란 걸 해본 일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사태가 터졌습니다. ‘최순실을 매주 만났다’ ‘최순실과 국정을 의논했다’고 하니까 배신감을 느낀 거예요. 당내에서 친박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면, 탄핵이 추진됐겠어요? 그 누구도 탄핵하지 말자고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 친박도 배신감을 느꼈다는 얘기입니까.
 
  “그렇죠. 모두 다 박 전 대통령한테 배신감을 느꼈지. 최순실과의 관계를 아무도 모르게 수십 년 유지한 건 ‘대단한 능력’입니다.”
 
  ― 소위 친박을 자처한 사람들도 분노했습니까.
 
  “탄핵 표결 직전 의총에서 탄핵 반대 당론 채택 주장을 단 한 명도 안 했습니다. 이때 장면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 당시와 비교해 보세요. 본회의장에서 울고불고, 애국가 부르고, 난리 났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표결 직전 의총에서 친박 핵심들은 침묵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지금 와서 다 나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 당 대표를 지낸 입장에서 왜 최순실 사태 이후 터져 나온 ‘박근혜 하야’ 공세를 방어할 생각은 안 했습니까.
 
  “그게 방어가 됐을 거라고 봅니까?”
 
  ― ‘정치는 타협’이라고 강조해 왔던 만큼, 그때도 야당과 타협을 했어야죠.
 
  “당장 하야하라고 하고, 끄집어내려라, 죽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방어할 수 있습니까. 차기 대권 주자 1등(문재인), 2등(안철수)이 광화문광장에 앉아서 하야하라고 소리쳤잖아요? 내가 ‘사태를 수습해 달라’는 이정현 당시 대표 부탁을 받고 이 사람들 만나서 ‘광장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진 못할망정 부추기는 연설을 하는 건 대통령이 될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다. 임계점을 향해 가는 광장의 분노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고 와야 한다’고 했어요. 그게 ‘탄핵’입니다.”
 
  ― 두 사람은 뭐라고 했습니까.
 
  “반대했습니다. 당장 하야하라는 거였죠. 그건 민중봉기 아이가? (2016년 11월 28일,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 등 친박 핵심 8명이 ‘박근혜 하야’를 건의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여주며) 내가 탄핵 절차를 주도해서 나라 망했다고 다 뒤집어씌우는데 그때 친박들은 뭐 했노? 친박 핵심 중진들은 박 대통령한테 하야하라고 했어요. 법 절차대로 탄핵하자고 한 나한테 ‘사과하라’고? 이게 말이 됩니까? (김진태 “박 대통령 탄핵, 혼돈보다 나라 위해 나은 선택”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여주며) 김진태도 탄핵을 주장했어요. 그 논리대로라면 ‘박근혜는 당장 내려오라’고 한 그 사람들은 ‘배신자’ 아닙니까?”
 
  ― 당시 청와대는 탄핵 절차를 밟는 데 대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마지막에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났어요. 그 자리에서 정진석이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 찬반에 대한 당론은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탄핵이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했어요. 박 대통령 반응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였어요. ‘막아달라’는 말은 일절 없었다는 거야. 광화문 함성 듣고 계엄령 얘기까지 나오던 상황이었으니까 차라리 그렇게 되는 게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박근혜는 국민으로부터 받은 대통령 권력을 사적으로 최순실에 넘겨줘”
 

  ― 정말 탄핵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까.
 
  “대통령이 아무 일도 못하고, 국정이 마비된 상황을 계속 끌고 가는 게 맞습니까? 수십만 명의 촛불시위대가 청와대 100m 앞까지 갔잖아요?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때 현장에서 피를 봤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우리나라는 특수한 상황 아닙니까? 누가 의도적으로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면 폭발하는 겁니다.”
 
  ― 대통령이 소통을 안 했다고 해서 탄핵할 수 있습니까.
 
  “아니죠. 국민으로부터 받은 대통령의 권력을 사적으로 최순실에게 넘겨줬어요. 그것 때문에 탄핵이 된 거예요.”
 
  ―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어서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사적 이익을 취했습니까.
 
  “누가 뭣 때문에 최순실한테 수백억 원을 줍니까?”
 
  ― 최순실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잖습니까.
 
  “그거 인적 구성을 누가 했어요? 최순실 마사지하던 사람이 K스포츠 이사장 했잖아요? 어디 교수 직함이 있던데, 자기는 억울하겠지.”
 
  ―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사실이라고 확신한다는 얘기입니까.
 
  “사실이라고 확신하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거 아닙니까?”
 
  ― 김영삼(金泳三)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의 국정 개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현철이는 YS한테 특별한 존재야. 노태우한테 지고 난 뒤에 5년 동안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현철이가 많이 했어.”
 
  ― 지금 기준으로 보면 김영삼 대통령도 탄핵감입니까.
 
  “지금 와서 그런 얘기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건 말꼬리 잡기밖에 안 돼요.”
 
  ― 탄핵은 물론 분당을 주도해서 ‘보수 분열의 주범’이란 비판도 받습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한테 탈당하라고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보수가 죽는다고 했는데, ‘나는 1원도 받은 일이 없다’면서 안 나갔어요. 세상이 이미 뒤집힌 상황에서 우리가 대선에 이길 수 있었겠어요? ‘문재인 대항마’인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에 들어오려고 했겠습니까? 그래서 분당을 했는데, 반 총장이 귀국 20일 만에 대선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반 총장이 그때 바른정당에 왔으면 ‘친박당’은 없어졌을 텐데, 내가 실패한 거지.”
 
 
  “문재인이 잘하길 바랐지만 ‘탈원전 강행’ 보며 비판 시작”
 
김무성(좌) 의원은 “문재인(우) 대통령이 잘할 거라고 믿고 비판을 자제했지만, 엉터리 같은 ‘탈원전’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ㆍ안보ㆍ경제 정책 등을 비판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이 나라를 망쳤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불통’이라서 큰 걱정”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이를 놓고 탄핵을 주도해 ‘나라를 망치는’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여한 ‘역적’이란 비판도 받고 있죠.
 
  “문재인 대통령이 상당 기간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하는 와중에 최순실 사태가 터졌잖아요? 그럼 차기 대통령이 누구입니까? 문재인 정부는 내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최순실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걸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사람들이 제정신입니까?”
 
  ― 원인을 떠나 손쉽게 정권을 잡고 호기롭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가 잘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까.
 
  “정권 출범 초반엔 허니문 기간이란 게 있습니다. 보통 6개월입니다. 나름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기를 바라면서 이 ‘허니문 기간’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탈원전 추진을 보면서 말문이 터졌어요. 탈원전을 공격하고, 세미나 열고, 말 많이 했어요. 수위 높은 비판을 하면서 허니문이 날아갔죠. 참 엉터리 같은 짓을 하는 거야.”
 
  ―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떻게 봅니까.
 
  “경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사회주의 경제정책 쓰면 경제 망합니다. 이렇게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말이 되는 소리가? 지금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을 쓰고 있잖아요? 우리가 삼성전자 때문에 겨우 먹고사는데, 두들겨 잡으려고 하잖아요? 분사시킨다고 하고.”
 
  ―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 경제 성장에 온 세계가 찬탄을 보내고 있다”고 했는데요.
 
  “그건 과거의 일이죠. 대통령은 인사를 잘해야 하고, 판단력을 갖춰야 합니다.”
 
김무성 의원은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하고 다니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유럽 주요국의 한 정상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저런 이상한 사람하고 일하는 당신은 얼마나 머리가 아프냐?”고 했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현실 감각을 갖췄다고 생각합니까.
 
  “없다고 보니까 큰일이 났다고 하는 거예요. 1년 반 동안 해서 안 됐으면 사람을 바꿔야 하는데, 장하성 뒤에 그보다 더한 김수현을 정책실장으로 앉혔잖아요.”
 
  ― 경제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불안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북한은 핵 폐기와 관련해서 사실상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선(先) 대북제재 해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북제재 때문에 북한이 어려워져서 국제무대로 나왔다고 얘기하는데, 이건 틀린 말입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어요.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의 효과는 이번 연말부터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이 문 대통령한테 제재를 풀어달라고 하고, 문 대통령은 유럽 다니면서 ‘대북제재 완화’를 얘기한 거 아닙니까? 유럽 정상들은 전부 미국 눈치를 보는데, 그게 됩니까? ‘아니, 자기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대북제재에 동참하는데, 저 당사국 대통령은 대북제재를 풀어달라고 하니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본다는 거예요.”
 
  ― 유럽 강국의 정상이 그런 얘기를 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누가 그랬습니까.
 
  “말하면 외교 파문이 생기니까요. 미국 트럼프한테 ‘저런 이상한 사람하고 일하는 당신은 얼마나 머리가 아프냐’고 했다는 겁니다. 이건 정확한 소식입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내년 봄에 우리 경제는 ‘곡소리’ 날 것”
 
  ― 문재인 청와대의 최대 관심사는 ‘김정은의 방남’입니다. 왜 그렇게 김정은을 기다릴까요.
 
  “이전에 지지율이 확 떨어졌다가 평양 갔다 오니까 올랐는데, 이제는 김정은 불러 사진 한 장 찍는다고 해서 지지율 올라가지 않습니다. 경제가 너무 엉망이라서 이전처럼 무마할 수 없어요.”
 
  ―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앞으로 오를 일이 있겠습니까.
 
  “경제가 이대로 가면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지겠죠. 올해는 그나마 반도체 부문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착시 현상이 있는데, 내년에 반도체 가격이 내려가서 수지가 ‘마이너스’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2.6%로 보고 있어요. 우리 잠재 성장률이 2.8%니까, 사실상 우리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거예요. 내년에는 2.5%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우리 수출 중 26%가 대중(對中) 수출인데, 미국이 중국을 제재해서 중국 경제가 내려가면 우리도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지금 경제 상황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
 
  ― 경제가 돌아가게 하려면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돈 있는 사람이 투자하게 하는 게 경제를 살리는 길이에요. 내년 봄엔 곡소리 나게 생겼어. 사람을 바꿔야 해. 돈쟁이들이 ‘이제 이 정부도 뭔가를 알았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해요. 홍남기, 김수현 가지고는 안 돼요. 지금 다 금고를 잠그고 있잖아요. 박 대통령의 ‘불통’이 나라를 망쳤는데, 문 대통령도 ‘불통’이라니 참 걱정입니다. 나라를 위해 문 대통령한테 꼭 부탁하고 싶은 건 ‘빨리 경제정책을 시장경제 기조로 바꾸고, 기업인들 기 살리는 정책 펴고, 탈원전은 포기하고, 노동개혁 하라’는 겁니다.”
 
  ― 노동개혁의 요지가 뭡니까.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일 중요하지.”
 
  ― 아니, 민노총이 이 정부 출범의 ‘1등 공신’인데 그걸 할 수 있겠습니까.
 
  “해야 돼요. 안 그럼 우리는 망합니다. 그건 선진국 진입 과정의 모든 나라가 다 겪었어요. 영국병, 독일병, 다 그래. 노동개혁 안 하면 거기서 못 헤어나와요. 지금 민노총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 안보문제와 관련해서는 조언할 게 없습니까.
 
  “군사합의가 잘못됐어요. 그거 바꿔야 해요. 정찰을 못 하게 해서 ‘눈’을 뺐잖아요? 정찰을 못 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엉뚱한 일이 전쟁으로 번질 수 있어요. 며칠 전에 군인이 아팠는데 헬기를 못 띄웠다는 거 아닙니까? 인권이 중요하니까 사람 살리려고 헬기를 띄웠는데, 저쪽에선 공격하는 줄 알고 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걸 막는 게 정보력이고, 정보력을 갖추려면 정찰해야죠.”
 
 
  친박과 홍준표는 당권 도전하지 마라?
 
  ― 문재인 정부는 자기들의 실패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듯한데요. ‘강한 야당’이 견제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걸 해야 하는데, 회의만 열면 탄핵 사과하라고 하니까 일이 안 되는 거죠.”
 
  ― 해결책이 있습니까.
 
  “내일모레 원내대표 선거 끝내고, 친박과 추진하는 화해부터 빨리해야죠. 나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으니까 나 갖고 시비 걸 일은 없잖아요?”
 
  ― 어제(2018년 12월 7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대통령을 잘못 모신 핵심, 탈당과 복당 과정의 주동자, 선거 참패에 책임 있는 사람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을 잘못 모신 핵심은.
 
  “그건 친박 핵심이지.”
 
  ― 탈당했다가 복당했던 사람은.
 
  “그건 나처럼 주동했던 사람들이고.”
 
  ― 선거 참패에 책임 있는 사람들? 내가 안 나갈 테니까 친박과 홍준표도 나오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석할 수 있지.”
 
  ― 그럼 남은 당권 주자가 누구입니까.
 
  “많이 있어.”
 
  ― 차기 당 대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통합이지.”
 
  ―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당 대표도 안 하겠다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을 생각입니까.
 
  “내 임기 동안 평의원으로서 국회의원 활동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상임위 활동 열심히 합니다. 지난 국감 때도 상 받고 그랬어요. 그동안 서로 경직돼 있었지만, 소위 친박들 만나서 대화도 하고 그래야죠. 1987년 민주화 투쟁 결과 ‘6·29 항복 선언’을 받아냈으나 양 김(김영삼·김대중)이 단일화를 하지 못해 노태우가 집권했고, 민주화 세력은 분열됐습니다. 지금 친박・비박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통합하지 않는다면, 그와 똑같은 ‘우(愚)’를 범하게 되는 겁니다.”
 
  ― 진작 그렇게 할 걸 하는 후회는 안 합니까.
 
  “지금까지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 계파 갈등이 해소된다면, 자유한국당이 차기 총선에서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합니까.
 
  “그렇게 되도록 해야죠.”
 
  ― 과반도 이룰 수 있을까요.
 
  “그걸 목표로 해야죠.”
 
  ― 자유한국당이 그렇게 성공한 뒤에는 뭘 할 겁니까.
 
  “그건 아직 생각 안 했어요.”
 
  김 의원과의 인터뷰 이틀 뒤, 자유한국당의 신임 원내대표로 나경원 의원이 뽑혔다. 나 의원은 김 의원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했고 탈당·복당을 함께한 김학용 의원을 가볍게 누르고 원내대표가 됐다. 표결 결과를 놓고 ‘비박 수장’인 김 의원의 입지가 좁아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비박 후보 단일화를 주도하고, 전당대회 불출마까지 선언하면서 지원한 자신의 ‘측근’이 큰 표 차로 패배한 데 대해 2018년 12월 13일, 김 의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동지들 모인 자리에서 오래전부터 원내대표 선거와 전당대회에는 친박, 우리 같은 탈당·복당파가 아닌 중립지대에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좋다고 얘기해 왔습니다. 나도 전당대회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 결과에 따르면 결국 그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됩니다. 나경원 의원이 원내대표가 된 건 ‘중립지대에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는 당내 여론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2월 15일 자유한국당은 ‘인적 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현역의원 21명을 당협위원장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최경환・홍문종 의원 등 친박핵심들과 함께 ‘비박수장’인 김무성 의원도 포함됐다. 김의원은 이미 오래 전에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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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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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성아    (2019-01-31)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1
아 진짜 뭘 잘했다고 뻔뻔하게 인터뷰하나 ㅋㅋㅋㅋㅋ
너는 은퇴해
  친중이바른당    (2019-01-20)     수정   삭제 찬성 : 3   반대 : 1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시킨것들이..
뭘하겠다고 나와서 떠드니?
원조 친박에서 비박으로 등뒤에 칼꽃는
당신같은 박쥐같은 정치인들 정치판에서 떠나야해
중국 미세먼지얘기나해봐라...화웨이나..
말할수나 있을까?ㅋ
  337baksu    (2019-01-19)     수정   삭제 찬성 : 4   반대 : 1
이 인간아 양심이 있으면 찌그러져 있고, 월간조선 박희석 전남영광에 있는 고등학교 나온 것 맞냐 ? 김무성과 같이 한양대 경영학과 나온 것도 맞나 ? 맞다면 왜 저런 뻔뻔한 인간을 인터뷰하는 지 이해가 간다만, 이런 짓 계속 하지말길, 우파 국민들이 우습나 ?
  마이웰컴    (2018-12-24)     수정   삭제 찬성 : 3   반대 : 7
김무성 대표 말씀 백번 지당합니다 나라가 어려워지는 이때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보수가 단합해 정권을 되찾아야 하는 필요성 朴 前대통령에도 절실합니다. 이제는 하나로 뭉쳐라’고 옥중 에서라도 메시지 전하는 게 전직 대통령의 도리입니다.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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