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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90년대 미남스타’ 배우 박재훈

“배우 때 설렘보다 희열 더 느껴… ‘몸으로 뛰는 감독’ 되겠다!”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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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마지막 승부〉의 마이클 최, 영화 〈쎈 놈들의 반란〉 연출로 감독 데뷔
⊙ 스타덤 뒤엔 오랜 無名… 생활고에 대리기사, 나이트 DJ로 일하기도
⊙ “총 제작비 1억 원으로도 ‘영화다운 영화’ 만든다는 것 보여주겠다”
⊙ “배우든 가수든 연예계 생활은 山… 올라가면 내려오기 마련인 그 이치를 빨리 깨치게 됐다”

박재훈
1971년 출생. 모델·배우 겸 영화감독. 연세대 체육교육과 졸업, 홍익대 공연예술 뮤지컬과 석사, 호서대 정보경영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 드라마 〈마지막 승부〉 〈느낌〉 〈딸 부잣집〉 〈라이어 게임〉, 영화 〈검은 비·악의 연대기〉 〈환상〉 〈차이나 블루〉 등 다수 출연 / 現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모델예술학부 교수, 영화 〈쎈 놈들의 반란〉 감독
사진=조현호
  “배우가 감독을 하면 대부분 그냥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해요. 다른 감독님들이 이제 그 배우 안 써요. ‘감독까지 했으니 내 작품에 오면 얼마나 말이 많겠어.’ 일단 싫은 거죠…. 그런데 저는 이번에 영화 만들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보통 배우는 ‘내가 찍은 게 나온다’는 설렘이 있잖아요. 지금이 그때보다 더 희열을 느껴요.”
 
  1994년 MBC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 출연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박재훈이 영화감독으로 돌아왔다. 당시 극 중 이름은 ‘마이클 최’, 단 4회 출연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출연한 KBS 드라마 〈느낌〉 〈딸 부잣집〉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선 굵은 인상에 준수한 외모, 키만 186cm에 달하는 훤칠한 몸매까지. 인기가 절정에 달할 때는 그의 집 앞에 매일 100여 명의 팬들이 몰릴 정도였다. 영화·드라마는 물론, 음반도 내고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도전하던 그가 돌연 메가폰을 잡게 된 이유는 뭘까. 11월 말 개봉하는 〈쎈 놈들의 반란〉의 박재훈 감독과 공동 제작을 맡은 장유근 감독을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났다.
 
 
  “영화감독은 고교 시절부터 품어온 꿈”
 
배우 박재훈은 영화 〈검은 비〉에 ‘리마리오’라는 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장유근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사진=영화 스틸컷 캡처
  사실 박재훈은 1991년 모델로 데뷔하기 직전까지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고등학생 때 특히 영화를 즐겨 봤는데, 욕심이 생겼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고 싶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조립을 잘했다. 블록이나 탱크·비행기 같은 미니어처 만들기에 능했다. 배우로 인기를 얻고 난 뒤에도 꿈을 버릴 수 없었다. 몇 년 전, 김지훈 작가와 〈궁지〉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면서부터 감독 데뷔에 공을 들였다.
 
  “일단 작가와 함께 ‘글을 쓰자’고 마음먹었죠. 그런 데이터들을 갖고 뭔가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다 영화 〈검은 비〉에 ‘리마리오’라는 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장유근 감독과 인연을 맺었죠. 몽골까지 가서 감독을 만나 어마어마하게 큰 영화 (제작) 현장도 직접 보면서 마음을 굳혔어요. 감독에게 제 꿈을 말하니까 ‘새로운 작품으로 학원물(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과 그들 간의 관계를 묘사한 대중문화의 한 장르)을 한 번 해보자’고 권했어요. 장 감독이 제작 총괄을 하고, 저는 (연출) 감독을 맡아서 〈쎈 놈들의 반란〉을 만들게 된 겁니다.”
 
  두 감독이 합심해 만든 〈쎈 놈들의 반란〉은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액션 영화다. 2학년의 숨은 고수인 주인공 현동이 하급생들을 괴롭히는 3학년 ‘대가리’들을 평정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쎈 놈들의 반란’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었다. 학원물이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타격감과 격투 장면이 실전 같다. 남자들이라면 고교 시절 한 번쯤 접해봤을 듯한, 교내 주먹세계의 혈전(血戰)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구성이나 주제는 진지하지만 코믹적 요소도 없지 않다. 주연은 물론,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감초 배우’들이 열연해 준 덕이다.
 
 
  “조각품 깎듯이, 배우 한 명 한 명을 다 깎아내”
 
박재훈 감독은 “(영화배우들도) 현장에서 대사를 맞추는 게 아니라, 연습 기간 안에 80% 완성을 시키고 (실전에서는) 바로 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각자 기량을 100% 발휘하도록 사전 연습 때 더 철저히 지도했다”고 말했다. 사진=푸른잎 프로덕션
  ‘선배 배우’ 박재훈 감독의 엄격한 지도 아래 연기력이 살아났다. 공동 제작을 맡은 장 감독의 말이다.
 
  “사실 배우 출신이라면 대단한 사람이 해도 (업계에서 전문적인 감독으로) 쉽게 인정하지 않잖아요. 박 감독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에 도전한 거라고 보면 돼요. 그래서 더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요. 놀라웠던 게, 제가 딱 보니까 박 감독은 (선배 배우답게) 조각품을 깎듯이, 배우 한 명 한 명을 다 깎아내더라고요. 그런 연출 스타일은 처음 봤어요. 감독이 계속 (더 좋은 연기를) 요구할 때 정말 건방진 배우는 이런 말도 합니다. ‘잘 모르겠고요. 감독님이 직접 한 번 보여주세요.’ 그런데 박 감독은 고집을 부릴 때, 제압을 해버리더라고요. 정 안 되는 배우에겐 그 앞에서 똑같이 연기를 해서 카피(복사)라도 하게끔 말이죠.”
 
  〈쎈 놈들의 반란〉의 총제작비는 1억원이다. 수백억 원짜리 영화가 즐비한 시대에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박 감독과 장 감독은 지난여름 스태프 40명을 이끌고 강원도의 한 학교에서 야외촬영을 하면서 그 예산마저 아끼고 또 아꼈다.
 
  그래도 작품성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욕심이 앞섰다. 박 감독의 지휘 아래 연기 연습, 촬영, 편집 등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10일 동안 실전과 똑같이 연습을 시키고, 10일 동안 현지 촬영을 끝내고, 10일 동안 후시 녹음을 진행했다. 수개월이 걸리는 영상·음향 등 제반 편집 작업은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박 감독은 “연극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연극배우들은 한 달간 연습 시간을 두고 몸을 부딪친다”며 “(영화배우들도) 현장에서 대사를 맞추는 게 아니라, 연습 기간 안에 80% 완성을 시키고 (실전에서는) 바로 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각자 기량을 100% 발휘하도록 사전 연습 때 더 철저히 지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박 감독은 배우들 연기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날 때까지 매일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전체를 10번씩 돌렸다”며 “아이디어가 있으면 시나리오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수시로 보내고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회의하더라. 이렇게 하는 감독이 없었다”고 말했다.
 
 
  “장 감독이 없었으면 ‘입봉’ 못했을 것”
 
  두 감독은 왜 〈친구〉 〈화산고〉 〈바람〉 같은 학원물 장르를 선택했을까. 박 감독은 공포·스릴러물을 좋아했지만 ‘내 욕심을 담아서 만드는 영화’를 추구하긴 싫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젊은 트렌드’였다. 학원물이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봤다. 장 감독의 추천도 있었다.
 
  박 감독은 그런 장 감독을 ‘은인’이라고 했다. 몽골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장 감독은 〈쎈 놈들의 반란〉과 함께 11월 말 개봉될 한몽(韓蒙) 합작영화 〈검은 비 -악의 연대기〉에 배우 박재훈을 캐스팅했다. 개그맨 ‘리마리오’와 비슷한 외모에서 착안한, 약간은 코믹한 배역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박 감독은 기자에게 본인이 등장한 클립 영상을 보여줬다. 비 내리는 밤, 지하 주차장에서 조선족에게 마약을 팔아넘기는 능청스러운 그의 연기가 돋보였다. 그의 말이다.
 
  “장 감독이 촬영 끝나고 제가 출연한 영상을 따로 편집해서 보내줬어요. 새벽 4~5시에 (주차장) 복도를 ‘탁탁탁’ 걸어오는 장면인데, 제가 출연한 작품 중에 가장 멋있었어요. 제일 잘 연기했다고 생각하고요. 그건 뭐냐면, 장 감독이 잘 찍어줬다는 거죠. 장 감독이 없었으면 ‘입봉’(영화계 등에서 자기만의 첫 작품을 내며 데뷔하는 것) 못했을 거예요. 누구나 시나리오 의뢰해서 쓰고, 내 이름 조금 써서 ‘제작에 참가하게 해줘’ 부탁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정식) 감독으로 입봉하는 건 쉽지가 않아요. 지금도 수많은 예비 감독님들이 단 1000만원짜리 영화도 못 찍어서 10~20년 동안 스태프·조감독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행운인 거죠.”
 
 
  IPTV·넷플릭스 시장 노려
 

  박 감독은 〈쎈 놈들의 반란〉을 찍을 때 강원도에 비가 많이 와서 촬영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또 비가 그치면 매미들 울음소리가 극성이었다. 음향장비에서 소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배우들과 다시 10일 내내 밤을 새워 후시 녹음을 진행했다.
 
  고생이 많았던 만큼 흥행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진을 치고 있는 현 스크린 시장에서 대박을 내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극장 개봉이 우선이지만, ‘IPTV(인터넷을 기반으로 제공되는 TV 서비스)’ ‘넷플릭스(인터넷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미국의 회원제 주문형 비디오 웹사이트)’ 시장에도 초점을 맞춘 이유다. ‘홈시네마’에 적합한 5.1 서라운드 사운드(음향이 청취자를 둘러싸도록 만들어 영상의 몰입도를 높이는 기술)와 절묘한 CG(컴퓨터그래픽) 기술 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배우 박재훈’이 ‘감독 박재훈’이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가 거친 직업은 화려한 모델·배우·가수만이 아니었다. 캐스팅이 끊겼을 때 부모님은 암 투병 중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나이트클럽 DJ, 대리기사를 전전했다. 출연 제의도 오다가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절박한 생계 앞에 서로 다른 감독들의 주문에 시달리며 세월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의 회고다.
 
 
  ‘박카스·우루사’ 서비스하며 대리기사 해
 
  “(신인 시절) 소속사가 음반 회사여서 듀엣 가수로도 잠깐 활동했어요. 팀 이름이 ‘슈라’였는데, ‘오락의 신(神)’이라는 뜻이었어요. 마음에 안 들어서 고민하던 차에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슈라? 푹 쉬어라~’ 진짜, 이름대로 푹 쉬었어요….
 
  드라마 찍을 때는 매니저가 (일정) 통솔을 다 했었어요. 그때는 연기의 ‘연’자도 몰랐습니다. 갑작스레 잠깐 출연을 했는데 좀 잘된 케이스였고, 연기를 더 공부했어야 했는데 당시엔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제 인생에서는 ‘모델이 80, 배우가 20’ 정도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주변에서도 방송 나가는 것만 추천했었지, 실력을 더 쌓고 깊이 있는 연기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없었어요.”
 
  연예계 생활을 접고 평범한 ‘사회인’이 됐지만 세상을 비관하진 않았다. 대리기사를 하면서도 ‘스타 의식’에 젖어 주눅 들지 않았다. 의기소침할 시간에 단돈 만원이라도 더 벌 수 있는, 현실적인 마케팅 전략에 골몰했다. 박 감독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부모님도 편찮으신데 나까지 무책임하게 생을 버리면 ‘줄초상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배우든 가수든 연예계 생활은 산이다. 올라가면 내려오기 마련인 그 이치를 빨리 깨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충고다.
 
  “저는 결혼생활 하면서도 대리운전을 했었어요. 친구랑 ‘티코’ 하나 사서 동업을 했죠. 그때만 해도 보통 경기도 가면 5만원씩 받았었어요. 또 나이트·단란주점에서 부르는 대리운전은 (값이) 비쌌죠.
 
  그때 서비스로 박카스 하나 까서 주고, 우루사 하나씩 주면 (손님들이) 되게 좋아했어요. 10만원짜리 수표가 툭툭 나오고…. 친구랑 가방에 막 박카스 두 박스, 우루사 한 박스 갖고 다니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창피함은 없었어요. 다른 배우들도 그걸 빨리 알았으면 좋겠어요. 내려올 때 어떻게 내려오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올라간다고 정상에서 집 짓고 살 수는 없잖아요.”
 
 
  “2초 등장할 땐 몰랐던 ‘감독의 무게’ 알게 돼”
 
SBS 드라마 〈산부인과〉에 출연한 배우 박재훈의 모습. 그는 연출을 총괄하면서 ‘감독의 마음’을 알았다고 했다. 사진=뉴시스
  배우 박재훈은 연출을 총괄하면서 ‘감독의 마음’을 알았다고 했다. 감독에게는 영화 전체의 구도나 내용을 위해선 좋은 컷이라도 과감히 쳐낼 수 있는 강단이 요구됐다. 본인 연기가 화면에 잘 드러나지 않은 배우들은 “몇 초 나오지도 않는 장면을 살려주지는 못할망정 커트한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나는 왜 캐스팅하지 않냐’며 지인들의 핀잔도 받아야 했다. 박재훈은 이들의 고집을 꺾고 서운함을 달래 가는 과정이 ‘감독으로서 성장’하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보니까 한 사람만 볼 수가 없더라고요. 전체를 봐야 하잖아요. 영화 전체에 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요소를 잡아야 하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딱 적절한 수준을 찾아야 해요.
 
  배우들은 본론(촬영)에 들어가면 다 고집이 나옵니다. 저 배우가 이만큼을 요구하면, 다른 친구들은 (자기 장면을) 뽑을 시간이 없어요. 불만이 나오죠. ‘내가 쟤보다 나은데 왜 날 더 안 써주는 거지?’ 배우들은 다 그래요.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 볼 때는, 이왕이면 연기를 더 잘하는 친구, 작품과 연기가 더 잘 어울리는 친구를 살리게 되죠. ‘1시간 30분짜리 영화에서 주인공은 30분 이상 나오는데 내 장면 15초 더 넣어주면 안 되나?’ 저도 그 (서운한) 마음 모르지 않아요. 제가 생각할 때는 분명 열심히 찍어서 ‘한 30초는 나올 거 같은데’ 보면 2초 나온 적도 많거든요. 그래도 배우라면 몸값·이름값 따지지 말고, 어떤 작품이든 최선을 다해서 끈기 있게 도전하는 게 우선이죠.”
 
  박 감독은 ‘후배’ 배우들에게 배우는 점도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특정 연기를) 지시하면서도 ‘나는 과연 이걸 해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정작) ‘나는 저 표정 나온 적이 있었나?’ 이렇게 반성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다시 브라운관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을까. 박 감독은 영화 제작에 도움이 되는 범위 내에서 방송에 출연할 의향은 있다고 했다. 그는 한때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 부부쇼 - 자기야〉에 출연,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연예인으로서 (방송 출연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건방진 얘기가 될 수 있다. 나갈 사람은 많은데, 그중에 꼭 내가 선택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영화 제작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면 ‘쇼 프로’에도 얼굴을 더 보이고 싶다”고 했다.
 
  박 감독은 ‘공부하고 가르치는’ 감독이다. 작년부터 호서대 벤처대학원에서 정보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모델예술학부 교수로 임용돼 후학도 양성하고 있다. 박 감독은 “지금 (졸업논문 집필 전 단계인) 등재지(논문)를 쓰고 있다. 관련 설문조사는 끝난 상태”라며 “형편이 어려울 때, 배우도 ‘자기 공부’ ‘자기 창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공부는 ‘나의 나쁜 점’을 바로 알 수 있고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몸으로 뛰는 감독’이 되고 싶다”
 
영화 〈쎈 놈들의 반란〉을 공동 제작한 박재훈 감독과 장유근 감독은 1971년생 동갑내기다. 두 감독은 오는 12월 영화 제작사 ‘에스에이치(SH) 기획’과 함께 두 번째 영화를 준비 중이다. 사진=조현호
  ‘박사 감독’ ‘교수 감독’ ‘배우 감독’…. 그는 대중에게 어떤 감독으로 불리고 싶을까.
 
  “저는 ‘몸으로 뛰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배우들과 같이 호흡하고,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10일이 아닌 20일 정도 (연습 기간을 둬서) 영화의 퀄리티도 더 높이고. 관객이 ‘저 배우 어떻게 저렇게까지 연기할 수 있지?’라고 할 정도로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영화 〈쎈 놈들의 반란〉을 공동 제작한 박 감독과 장 감독은 1971년생 동갑내기다. 두 감독은 오는 12월 영화 제작사 ‘에스에이치(SH) 기획’과 함께 두 번째 영화를 준비 중이다. 학원물에 ‘좀비 코드’를 더한 독특한 장르다. 이행복 에스에이치 대표의 말이다.
 
  “영화, 특히 상업영화라는 게 참 힘들거든요. 기본 시나리오 가지고 투자자·배급사 찾아가서 심사를 받고 이런저런 주문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진이 다 빠지죠. 창작물이 기획영화가 될 때까지 (수정) 해도 100% (낙점이)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또 영화만큼 쉽게 평론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전공을 했거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딱 보고서 ‘재미있다, 없다, 뭘 저렇게 찍었어’ 말들이 많이 나오죠…. 그래서 두 감독의 (용기 있는) 시도가 저는 좋았어요. 작은 영화들이 조금씩 성공을 하다 보면, (블록버스터 중심의) 영화 판도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요. 다양성 있는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많이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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