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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베트남 국가대표축구팀 감독 박항서

“베트남 선수들 수준을 아시아에서 통하는 선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제 역할”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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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주변 분들이나 당시 상황과 슬기롭게 지혜롭게 타협해 가면서 지냈더라면…”
⊙ “(베트남 부임하면서) 베트남이 내 축구 인생의 마지막 직장이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 “99%는 제가 부임하기 전에 다 만들어져 있었어요”
⊙ “계산하지 않고 어떤 경우든 당당하게 가는 게 ‘베트남 정신’”
사진=조현호
  2018년 내내 아시아 축구계를 뜨겁게 달궜던 화제가 있다. 베트남 축구의 약진이다. 스스로를 ‘축구 변방(邊方)’이라고 평가하던 나라가 단숨에 아시아 정상권으로 진입하며, 모든 아시아인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것만이 아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즐거움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법이다. 베트남 국민들의 축제가 된 길거리 축구응원을 전(全) 세계가 주목하며 함께 흥겨워했던 이유다.
 
  그 중심에 박항서(朴恒緖·59) 감독이 있다. 아시아 축구 변방이던 베트남 대표팀을 맡아 단 1년 만에 23세 이하 아시아선수권대회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의 업적을 이룩한 사람. 누구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박 감독 본인도 ‘행운이 겹쳤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연과 행운만 가지고 연이어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남자의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탐색해 보아야 한다.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고 파주 국가대표훈련장으로 전지훈련을 온 그를 만난 이유다. 이 글은 베트남 축구의 미래를 위해 드리는 한국 친구들의 헌사(獻辭)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이 가장 마음에 걸려”
 
지난 8월 27일 밤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4강 진출이 확정된 후 호찌민 시민들은 박항서 감독의 입간판을 앞세우고 베트남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사진=조선DB
  ― 파주는 오랜 만이죠?
 
  “장기간 합숙하며 머문 건 10여 년 만이죠. 베트남은 시즌이 막 끝났습니다. 선수들의 잔부상이 많아서 그 점도 살펴보고, 개개인의 몸 상태와 체력도 파주에 와서 정밀하게 체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프로팀들과 연습경기를 3경기나 치렀습니다. 수준 높은 팀들과, 그것도 스타일이 각기 다른 상대와 실전(實戰) 같은 연습경기를 자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2018년 1월의 U-23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여름의 아시안게임 두 대회에서 받은 인상은 ‘베트남팀이 준비를 참 잘했구나’ 하는 것이었다. 특히 아시안게임 때는 1월 중국 대회 때 보이지 않던 ‘자신감’도 보였다. 한국 TV가 베트남 경기를 거의 다 생중계해 줬다. 이번 대회에서 대다수의 한국 팬들은 한국과 베트남 두 팀을 다 응원했을 것이다. 베트남 경기 시청률도 꽤 높게 나왔다. 벤치에 앉아 있는 박 감독의 모습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의 경험을 다 녹여낸 것이랄까?
 
  ―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습니까.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고 베트남에서는 그 점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뒤돌아보면 다 시행착오죠. 그중에서도 2002년 월드컵 끝나고 부산아시안게임 감독으로 출전해 우승하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월드컵 4강 멤버를 이끌고 홈(부산)에서 동메달에 그친 건 누가 뭐래도 실패입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후회가 많아요. 그때 주변 분들이나 당시 상황과 슬기롭게 지혜롭게 타협해 가면서 지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참았더라면 결과도 좋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때는 저도 젊은 나이였어요. 주위 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며 조언해 주셨는데,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그분들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팀 운영을 100% 제 소신껏 한 것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조언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결단대로 밀고 나갈 배짱도 부족했습니다. 2002년 아시안게임 실패는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一喜一悲하지 않아 축구에만 집중”
 
  ― 그렇다면 베트남에서는 소신껏 일하고 계십니까.
 
  “하하, 일단 말을 100% 다 알아듣는 건 아니니까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SNS나 언론 기사를 소소한 것까지 다 찾아서 읽었습니다. 읽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만 손이 가고 눈이 가더군요.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물론, 큰 틀에서의 기사나 여론 동향은 저에 대한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이동준 대표(저와 베트남 축구를 연결해 준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와 통역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핵심은 베트남 부임 후 제가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정의 급격한 기복(起伏)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으니 축구에만 집중합니다.”
 
  ―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 혹시 나이와 관계가 있습니까. 월드컵 우승팀 감독 중에는 60대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축구 지도자의 정점(頂點), 말하자면 인생의 모든 면을 녹여낼 수 있는 연령대가 그때가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베트남 부임 후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내려놓자는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부임했지요. 그가 직전 월드컵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놓은 세계적인 명장(名將)이잖아요. ‘축구에 관한 한 이분은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몇 수 위 전문가다’라는 생각을 스태프들이 다 공유(共有)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도 코칭스태프 사이에, 선수들과 의견충돌이 있었거든요.
 
  그때 수석코치 입장에서 관찰을 해 보니, 문화적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충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은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니, 내가 노력하면 이 부분은 빨리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견충돌을 줄일 수 있다면 팀을 파악하고 발전시키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노이로 갔습니다.”
 
 
  “내려놓으면 된다”
 
  ― 예를 들면 어떤 것입니까. 팀 내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셨는지요.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를 받으면 일단 ‘알았다’라고 했습니다. 선수단 전체에게 ‘감독이 문제를 인지했다, 풀려고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지요. 문화충돌은 한쪽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잖습니까? 상황을 방치하면 피차간에 그런 의도가 없는데도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개인을 넘어서 문화권 사이의 자존심 대결로 일이 커질 수도 있지요. 제가 발견한 해결책은 이런 경우 한 템포 늦추고, 화난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 오해를 풀어 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갖고 문화적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 왜 서로 간에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를 납득할 수 있거든요.
 
  단, 제 경우 베트남의 문화를 존중하되 축구습관과 연결되는 부분은 양보 불가(不可)입니다. 예컨대 낮 시간 훈련을 없애고 오전, 저녁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오케이죠. 날씨와 관련된 관습이고, 훈련시간을 조정해도 당초에 목표한 성과를 거두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식생활이나 메뉴 등은 양보 불가입니다. 식단을 개선하지 않으면 당장 경기력에 지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 베트남에서 일하는 한국인들, 아니 모든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이네요.
 
  “베트남 부임 당시 저는 정말 절실했습니다. 한국에서는 40대 젊은 지도자들을 선호하는 분위기고, 제 동년배들도 거의 다 지휘봉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이 내 축구인생의 마지막 직장이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빨리 제 자신을 베트남 현지화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노력을 하면 길이 보입니다. 내려놓으면 됩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분석하면 박항서 축구의 성공 요인이 보인다. 자신의 축구를 베트남에 이식하지 않고, 베트남 선수들을 먼저 관찰한 뒤 그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배경은 어떤 것일까.
 
 
  “선수들을 만들어 쓸 생각을 하지 마라”(히딩크)
 
2002년 6월 5일 히딩크 감독과 함께 미국-포르투갈전을 관람하는 박항서 당시 코치. 두 사람은 콤비를 이뤄 2002년 월드컵 4강신화를 일구어냈다.
  “제가 성적을 낸 것은 베트남 사람들의 공로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99%는 제가 부임하기 전에 다 만들어져 있었어요. 제가 기여한 부분은 아주 미미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10년 전에 베트남에 첫 유소년 축구 클럽이 생겼어요. 그 클럽 출신들,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 바로 지난 1월 U-23 아시아선수권대회 준우승 멤버들입니다. 히딩크 감독께서 ‘절대 선수들을 만들어 쓸 생각을 하지 마라. 시간은 감독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리고 선수들을 만들려다 기존의 장점을 해치는 경우도 많다. 대신, 기존 선수들 가운데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찾고 그 장점을 극대화해라’라고 하셨지요.
 
  선수들을 관찰해 보니 기대보다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 선수들을 지켜보며 처음부터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자고 생각했죠. 장점을 살리면,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 박항서가 관찰한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제 감독 데뷔전이 성인 대표팀 경기, 2019 아시안컵 예선 아프가니스탄전이었습니다. 부임 후 2일 만에 치른 경기죠. 그때는 아무 정보가 없었어요. 딱 하나, 베트남 선수들이 ‘체력이 약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것이 다였습니다.
 
  ‘체력’도 분야가 많잖아요? 지구력, 순발력, 스피드, 점프력 등등. 상체와 하체의 근력이나 밸런스, 심박동수도 중요하고…. 그런데 어느 부위가 얼마나 약한지를 알려주는 수치나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부상 이력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요. 2002년 히딩크 감독 부임 전 한국 축구도 그랬습니다.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이 경험과 감이 그렇다는 이야기만 있었습니다.
 
  그 경기는 4백으로 나섰는데 0대0으로 비겼어요. 경기 전날 미팅 때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가장 익숙한 전술이라기에 그대로 나섰다는 얘기였습니다. 신체적으로 보나 기술로 보나 베트남이 뒤질 이유가 없는데, 대등하거나 혹은 약간 밀리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저는 확실한 소득을 얻었습니다. 4백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죠. 베트남 선수들의 능력은 3백일 때 최대치가 된다고 봤습니다.”
 
 
  4백이냐 3백이냐
 

  4백이냐 3백이냐가 왜 중요한가. 팀이 나갈 방향을 가르쳐주는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보아 4백은 지역방어, 3백은 맨투맨(man to man)이다. 4백은 수비수들의 체력소모가 적은 대신 사전 약속에 의한 상호 협력이 필수적이다. 3백은 수비수들의 체력이 90분 내내 왕성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전술이다.
 
  실수를 하면 4백은 수비수 숫자는 많으나 한쪽으로 쏠리며 실점(失點)하는 경우가 많고 3백은 단독돌파를 허용하는 경우가 나온다. 3백은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기대고 4백은 선수들 사이의 조직력에 기댄다. 단, 4백은 수비진의 조직력을 가다듬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당장 활용하기는 3백이 더 쉽다. 문제는 이 경우 수비수들의 체력 소모가 4백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이다. 수비 능력을 갖춘 미드필더들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3백으로 대회를 치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다. 박항서 감독의 말이다.
 
  “베트남의 4백 전술은 아시아권 팀들을 상대로 비길 수는 있지만 이기기는 힘들다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결론이었습니다.”
 
  ―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습니까.
 
  “적어도 동남아권에서는 베트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체력에서 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혹시 체격과 체력을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70분 이후 실점이 많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데, 경기를 지켜보니 팀 전체가 체력이 방전(放電)되었을 때 나오는 문제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어요. 오히려 순발력, 민첩성, 스피드는 수준급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부분만큼은 베트남 선수들의 능력이 한국 선수들보다 나은지도 모릅니다. 중국 U-23 아시아선수권대회 때까지는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으니까 선수들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관찰하며 능력을 파악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상한 작전이 변형 3백이죠.”
 
  박항서 감독이 말하는 전술은 구체적으로 3-4-3 이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에 한국의 주요 전술로 사용했던 포메이션이다. 다만, 베트남의 3-4-3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내용이 다르다. 박 감독이 ‘변형 3백’이라고 말한 이유다.
 
 
  “베트남 3-4-3은 매우 공격적인 전술”
 
지난 2월 4일 베트남 호찌민시 통낫경기장 VIP 대기실에서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한 박항서 감독. 사진=조선DB
  2002년 당시 한국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히딩크 감독은 18개월간 체력 증강 프로그램을 돌려 선수들의 체력을 세계 정상권으로 만들었다. ‘상당 수준의 체력적 우위’가 ‘다소 밀리는 기술적 열세’를 상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3-4-3은 경기장에 선수 개개인을 가장 고르게 배치한 전술이다. 다만, 시작부터 끝까지,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상대를 압박하는 작전이기에 모든 선수가 세계 수준의 체력을 갖추지 않고는 시도가 불가능한 개념이다.
 
  ― 베트남이 사용하는 3-4-3은 2002년 한국의 전술에 비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겁니까.
 
  “베트남의 3-4-3은 ‘적극적 수비’에 중점을 둔 전술이 아닙니다. 매우 공격적인 전술이죠. 볼을 소유하면, 중간 측면의 두 선수가 안으로 들어오며 공격수가 됩니다. 순간적으로 공격수의 숫자가 5명으로 늘어나는 겁니다.
 
  3백은 수비수가 아니라 미드필더 출신입니다. 저희 팀에서 볼 통제력이 가장 좋은 선수들이죠. 이들에게 작전 개념을 설명하고 포지션 변경을, 정확히 말하면 플레이하는 지역을 바꾼 이유, 제가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미드필더인 자기들이 최후방으로 내려서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더군요. 첫 경기 대 호주전에서 이 작전이 ‘먹히는’ 것을 보고 선수들 스스로가 확신을 가졌다고 봅니다.
 
  이 최후방 3명은 수비수이자 미드필더입니다. 통제력이 좋으니까 공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어이없는 실수가 없는 겁니다. 공을 잡으면 짧게 전방으로 볼을 이어 주며 상황을 전개할 수도 있고, 상대의 뒷공간이 비어 있으면 공을 끊었을 때 전방으로 단번에 롱볼을 날리기도 합니다. 같은 롱볼이라도 통제력이 있기에 이른바 패스줄이 살아있는, 다시 말해 의도한 지점으로 공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들이 있어요.
 
  중앙 미드필더 2명은 수비가 주요 임무입니다. 상대가 밀고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는 역할이죠. 몸싸움도 많이 해야 하고, 공격에도 나서야 합니다. 우리 팀에서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자리입니다. 이들이 버텨 줘야 공격 시 측면 미드필더들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미드필더들이 안으로 조여 들며 공격수가 5명으로 늘어나면, 그러니까 중원에서 숫자의 우위를 확보하면 그때는 선수단 전원이 빠르게 이동하며 짧은 패스로 상대 진영을 야금야금 파고 들어갑니다. 제가 그랬잖아요, 순발력, 민첩성, 유연성은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이라고.”
 
 
  박항서의 역발상
 
  ― 저는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박항서 베트남호의 독창성이 가장 빛나는 부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수비 앞에 미드필더가 서고 최전방에 공격수가 자리한다는 건 세계 축구사에 오랜 불문율(不文律)이죠. 박항서 감독이 창안한 베트남식 축구는 이 오래된 역사적 전통에 창조적인 역발상을 한 겁니다. 이 작전의 장단점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과거 같으면 최종 수비수로 뛰어야 하는 선수 2명을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겁니다. 실질적으로 이곳이 수비진의 본영이죠. 다만 부여하는 역할은 다릅니다. 전통적인 수비수는 스토퍼(stopper), 스위퍼(sweeper)로 불리잖아요?”
 
  ― 그렇죠. 상대의 공격을 끊고 침투를 쓸어내 버리는 것이 수비수 본연의 임무라는 뜻이죠.
 
  “두 중원 미드필더가 상대의 중앙 침투를 저지하는 것은 맞아요. 다만 공이나 사람 가운데 하나의 통행은 허락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둘 가운데 하나만 막으면 골은 안 들어가니까요. 완벽하게 공이나 사람을 쓸어내 ‘상황종료’까지 가면 좋겠지만, 상대가 가진 공의 소유권을 50-50의 상태로 만들기만 해도 임무 완수다 라고 했어요. 후방에는 볼의 통제력이 좋은 미드필더 출신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의 능력에 맞춰 수비와 미드필더의 역할을 통합하고 임무를 새롭게 배분한 것이다. 수비가 미드필더 자리에서 플레이하고 미드필더가 수비 자리에서 플레이한다. 전후방 배치를 바꾼 것은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체력 부담을 줄인 선택이다. 중앙 미드필더 2명은 몸싸움을 맡는 대신 상황 완전 종료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 후방 3백은 몸싸움의 부담을 줄이고, 소유권 확보와 ‘끊은 뒤 단번에 최전방 연결’이라는 공격적 마인드를 바탕에 깔고 경기에 임한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베트남식 3-4-3 쓸 수 없어”
 

  “경기 초반 ‘롱볼 연결’로 찬스를 만들면 상대가 쉽게 공세적으로 나오지 못해요. 상대가 쉽게 공세적으로 나오지 못하면 팀 전체의 체력소모가 줄어들죠. 우리가 경기 초반 의도적으로 롱볼 연결을 몇 차례 시도하는 이유입니다.
 
  이 전술을 위해서는 또 다른 핵심 인력이 필요합니다. 미드필더 양 측면의 두 선수죠. 무엇보다도 많이 뛰고, 축구 지능이 높아야 합니다. 이 둘은 사실상의 리베로예요. 공격부터 최후방 측면 수비까지를 모두 소화하며 역할을 빠르게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죠. 수비를 할 때도 이들의 지원 여부에 따라 수비 형태가 순간적으로 3백, 4백, 5백으로 바뀝니다. 때로는 트라이앵글 블록을 만들었다 지역방어로 전환하기도 하는데는 이 둘의 움직임이 결정적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지역방어는 수비진 전체의 체력소모를 줄여 줍니다. 그래서 필요하죠.
 
  축구에서는 180회 정도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한 번 에너지를 사용하고 나서 얼마나 빨리 몸 상태를 정상적으로 회복하느냐가 ‘축구선수의 체력’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르는 핵심입니다. 만약에, 두 사람의 헌신적인 움직임으로 다른 선수들이 ‘180회 이하’로 힘을 쓰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여인 겁니다.”
 
  ― 그렇다면, ‘다른 팀들은 왜 베트남식 3-4-3을 쓸 수 없는가, 베트남의 공격스타일을 알면서도 왜 계속 당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전술이 베트남 선수들만의 장점을 바탕에 깔고 설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다른 팀들이 활용할 수 없습니다. 기동력과 엄청난 활동량을 갖춘 측면 미드필더 2명, 순발력이 좋고 급발진이 가능한 공격수 3명, 무엇보다도 스피드와 민첩성이 뛰어난 11명이 없이는 전 세계 어느 팀도 베트남식 3백을 구사할 수 없어요.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이 전술을 따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전술 이해력 약해”
 
지난 8월 29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한민국-베트남 4강전에서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베트남 선수들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선수들에게 부족한 점은 전술 이해력과 패스 능력입니다. 패스 중에서도 짧은 패스는 괜찮은데, 방향을 전환하는 큰 패스에 약합니다. 세계 수준에서 경쟁하려면, 패스 타이밍도 더 빨리 가져가야 합니다. 아직은 경기장 전체를 살피며 플레이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유소년클럽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이런 약점도 많이 극복했습니다.”
 
  ― 베트남팀의 약점도 보였습니다. 중국 대회에서는 세트피스 실점이 많았습니다. 장신 수비수들이 없으니 공중볼 다툼에서 밀려 단번에 실점하는 경우가 거의 매 경기마다 반복되었습니다. 어렵게 넣고 쉽게 먹는 패턴이 이어져 안타까웠습니다. 이것도 당초 구상에 들어 있었나요.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대신 체격이 작아서 발생하는 약점을 감수한다는 뜻이었는지요.
 
  “베트남 리그에는 신장이 183cm가 넘는 골키퍼가 없습니다. 수비수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신장이 큰 골키퍼와 중앙수비수를 찾았더니 처음엔 큰 선수만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수 포지션은 아시아 수준의 경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주변을 설득했지요. 적어도 골키퍼와 중앙 수비수 2명은 체격이 큰 선수로 뽑아야 한다고.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장신이어도 아시아권에서는 우월한 피지컬이 아니라는 거죠.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전술을 만든 겁니다. 상황에 따라, 현실적 조건에 따라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거죠.
 
  U-23 대회 때 어느 정도 각오는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세트피스 상황에서 실점하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연습했습니다. 문제는, 준비는 열심히 했는데 선수들이 겁이 나서 실행을 못하는 겁니다. 사실은 베트남 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친선 국제경기인 비나컵 대회 때 한 번 사용했어요. 너희들이 편할 때 써 보라고 주장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수비수 한 명이 약속된 움직임을 깜빡하고 자기 위치에서 뛰어나오지 않아 계획이 어긋나 버렸어요. 다행히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거의 골을 먹을 뻔했죠. 아시안게임 본선에 가서도 계속 연습은 많이 했는데 겁이 나서 못 썼습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실점하지 않는 것이 목표”
 
  ― 하지만 아시안게임 때는 세트피스 실점이 없었습니다. 어떤 변화를 준 겁니까.
 
  “선수들에게 맨투맨을 좀 더 철저히 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골대 안쪽에 세우던 수비수를 앞에다 세웠습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상대가 공중볼을 슛으로 연결하면 골대 안에서 수비수가 공을 막을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봤어요. 장신 수비수가 없는 우리 팀 입장에서, 상대의 슛은 타점도 높고 이마에 정확하게 갖다 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슛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편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골대 양 옆에 서서, 라인 위에서 공을 걷어내는 최후방어를 포기했습니다. 대신 공이 날아올 만한 위험 지역에 수비수를 한 명 배치하고 중앙 포인트에 한 명을 더 세워 상대 선수가 점프할 공간을 줄이자고 했습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집중하고 실점을 하지 않는 것이 목표다. 그러니, 공격 전환의 속도를 늦추자’고 했죠.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순간적으로 4백, 즉 지역방어로 가는 겁니다. 역습 가능성을 스스로 줄이는 건 불이익이지만, 대신 슛을 허용하는 확률을 줄인 거죠. 그 정도가 지금 우리 선수들을 활용해서 구사할 수 있는 최고치라고 봅니다.”
 
  베트남은 지금 커다란 대회를 앞두고 있다. 11월부터 각국을 오가며 열리는 ‘동남아판 월드컵’인 스즈키컵과 12년 만에 본선에 오른 2019년 1월의 아시안컵이다. 스즈키컵은 동남아 각국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다. 각국 축구협회가 사활을 걸고 준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들과 미디어의 관심도 상상 이상이다.
 
  ― U-23 선수권대회 때 드러난 약점을 아시안게임 때 보완해서 성적을 냈습니다. 문제는 스즈키컵이나 아시안컵입니다. 상대도 베트남 축구에 대비책을 세우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죠. 지금은 모든 국제경기가 다 공개되는 세상입니다. 분석하려고 들면 상대는 우리의 장점과 단점을 금방 찾아낼 수 있어요.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선수들의 능력을 고려해야 하니까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저 팀의 장점, 단점이 무엇인지는 다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같은 작전은 두 번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 베트남도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연구하고 대비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술인지는 영업비밀(?)이라 말해 줄 수 없어요.”
 
  ― 알겠습니다. 다음 대회 전략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아시안게임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이 조 예선 마지막 경기 대 일본전, 준결승 한국전에서 수비 위주로 나오지 않고 처음부터 당당하게 맞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마다 작전을 바꿨습니다. 일본전에서는 수비선을 15m 올렸어요. 일본은 거의 모든 경기에서 3백을 쓰더군요.
 
  중국 대회 때 제가 일본 경기를 많이 봤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 감독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보고 팀을 만들어 가겠다고 했으니 큰 작전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정교한 축구를 구사하지만, 다 눈에 보이는 패스입니다. 우리가 수비 밸런스를 허물지 않고 수비 위치를 이동할 수 있다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민첩성과 스피드는 우리가 우위니까 눈에 보이는 패스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죠. 그런 자신감이 있으니까 다른 경기 때보다 수비라인을 10~15m 전진시키고 패스를 끊으면 바로 공격으로 전환하라고 했습니다.”
 
 
  “선수들에게 자신감 선물하고 싶다”
 
  ― ‘2승으로 16강 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일본과의 경기를 전력(全力)을 다해 치를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이 경기에서 베트남은 주전 선수 하나를 부상으로 잃었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이번 1승이 베트남이 일본에게 거둔 사상 최초의 승리입니다. 베트남 축구는 이번 아시안게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도 중요합니다. 친선경기가 아니라,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 일본을 이겨 봤다는 경험은 베트남 선수들에게, 그리고 베트남 축구계 전체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당장 내년 아시안컵에서 일본을 만날 수도 있어요.
 
  저는 우리 선수들이 적어도 경기 전에 위축이 돼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없기를 바랍니다. 전 일본과의 경기를 통해 우리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중동 축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 일본, 태국에는 뭔지 모르게 밀린다는 위축된 마음으로 경기를 해요. 역대 전적(戰績)도 그렇고. 이것을 깨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 경기 이겼다고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언제가 되었든 우리가 일본을 다시 만난다면 적어도 예전보다는 더 나은 마음으로 자신 있게 플레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 다음 상대를 고르려고 일부러 비기거나 지는 것은 좋은 작전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시아 축구팬에 대한 예의도 아니죠. 지난 월드컵 때도 조별리그 이후의 대진(對陣)을 생각하고 일부러 느슨하게 경기를 한 안티 풋볼(anti-football)이 문제였잖아요. 베트남은 그런 계산을 하지 않고 어떤 경우든 당당하게 갑니다. 그것이 베트남 정신입니다.”
 
 
  ‘우리는 베트남이다’
 
  ― 한국과의 경기는 어땠습니까.
 
  “한국과의 준결승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 주장도 아껴 두었죠. 60분이 승부처라고 보고 그때까지만 0대0으로 버티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전력을 다해 승부를 걸 생각이었어요. 피차 하루만 쉬고 하는 경기라 그 시간까지 동점으로 버티면 그 뒤로는 알 수 없는 상황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문제는 우리 선수들이 손흥민과 이승우의 이름값에 위축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선수들도 한국팀 유명 선수들의 소속팀, 명성은 다들 알거든요. 초반부터 주눅이 들어 우리 축구를 하지 못했어요. 마치 2002년 이전의 한국 선수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 아까 말씀하신 베트남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U-23 대회 때 조별리그를 통과하니 언론에서 ‘베트남 정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베트남 정신’이 무엇인지 정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분임토의 후 선수들 스스로가 단결심, 자존심, 영리함, 불굴의 투지라고 정리를 하더군요.
 
  제가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고 했습니다. 리더가 솔선수범하며 목표를 제시하면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구호가 ‘우리는 베트남이다’입니다. 선수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면 저는 딱 한마디만 합니다. ‘베트남 정신을 잊었나?’ 그러면 선수들의 플레이가 바로 달라집니다. 이제는 패배의식도 없어졌습니다. 중국 대회 때 조별리그 통과하고 3경기 연속 연장전을 치렀습니다. 그런데도 체력적으로 상대 팀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죠.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 베트남 축구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본인들 스스로가 확인한 겁니다. 그러니까 팀 전체의 자신감이 상승하더군요.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베트남 정신을 강조하는 건 선수들의 패배감,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겁니다.
 
  우리 선수들의 체격이 작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작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과 눈 오는 날 결승전을 했죠. 모두가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우즈베크가 더 추운 나라고 눈에도 익숙하니 우리가 불리한 건 사실이었죠. 하지만 경기 전날 선수단 미팅에서 제가 말했습니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는데 그러면 신장이 큰 선수들은 바닥이 미끄러운 상태라 턴 동작이나 중심이동에 훨씬 불리하다. 짧은 볼로 연결하면 우리가 유리하다. 눈 때문에 베트남이 경기에서 졌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다. 그건 핑계다. 나는 핑계는 듣지 않겠다. 불리하다고 위축되지 않고, 핑계를 대지 않고 당당하게 맞붙는 것이 베트남 정신이다. 우리는 베트남이다.’”
 
 
  박항서의 꿈
 
  ― 베트남 대표선수 가운데 현재 유럽에서 통할 만한 선수는 있습니까.
 
  “아직 그 정도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는 전제 아래, 5~6년 후에는 베트남 출신 제1호 유럽리거의 출현을 기대합니다.”
 
  ― 앞으로 베트남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제 능력의 한계를 잘 압니다. 베트남 선수들의 수준을 아시아에서 통하는 선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제 역할이죠. 제가 세계 수준의 감독은 아니지 않습니까. 베트남을 세계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강팀으로 만드는 것은 제 다음에 오실 세계 수준의 지도자가 하실 일입니다. 그분이 능력발휘를 잘하실 수 있도록 좋은 팀을 만들어서 넘겨 드리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제가 가진 축구의 지식과 노하우를 베트남 축구발전을 위해 쓰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베트남은 아직 축구 시스템이 미비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도 경제발전과 축구 시스템 확립이 같이 이뤄졌잖아요.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이지만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축구 시스템도 빠르게 확립되기를 기대합니다.
 
  베트남 축구계의 가장 큰 문제는 유소년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점입니다. 몇 개 구단은 독창적으로 유소년 클럽을 아주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번 두 대회에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유소년 클럽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지금의 규모를 가지고는 아시아권을 넘어서는 경쟁력을 기를 수 없습니다. 일단 선수 숫자가 너무 적어요. 유소년 시스템의 개선이 없이는 장기적으로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난 30년간 200개가 넘는 FIFA 회원국 중에 자국 리그를 발전시키거나 독창적인 선수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세계축구 변방으로부터 탈출한 나라는 유럽에서는 아이슬란드,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 목록에 꼭 베트남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베트남 정신’이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오래도록 베트남 사람들의 친구이며 스승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축구의 미래를 설계하고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구루.
 
  스즈키컵과 아시안컵, 그리고 그 너머의 올림픽과 월드컵을 향해 베트남 축구가 힘차게 전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박항서 매직은 끝나지 않았다.
 
  ‘사위의 나라’ 한국에서도 베트남 축구를 밤새워 응원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베트남 도심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신나는 거리축제가 이어지기를. 빛나라 베트남 정신이여, 휘날려라 깃발이여, 오 필승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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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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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모짱    (2018-12-07)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3
잘스다가 마지막 사위의 나라는 ...
안티 기자분인가
  빵씨일보    (2018-12-07)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5
기사에 한자 섞어쓰면 수당받니?..... 기레기 수당
  jinggiskan    (2018-12-07)     수정   삭제 찬성 : 9   반대 : 7
작금의 대한민국은 고정간첩과 너무도 흡사한 문재인 때문에 좌불안석인데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이 있어 희망이자 기쁨이 있어 삶의 욕망이 생길 것 같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절망뿐이다. 박항서 감독 화이팅 ...
  thematador    (2018-12-07)     수정   삭제 찬성 : 25   반대 : 0
박항서 님은 별볼일 없는 한국의 무식한 축구 감독이 아니라는 점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러한, 대단한 축구 전문가가 월남으로 쫓겨난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이 있겠지만, 어쨋든, 이처럼 축구를 생각하며 지도하는 축구인이 한국에도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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