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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元老 언론인 柳根一

“‘자유가 삭제된 민주주의’의 妄靈이 한반도를 떠돌고 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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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민주주의를 내건 광장과 군중의 결합, 주로 광장의 군중을 백(back)으로 삼은 특정 이념 그룹의 획일화 기도가 진행 중”
⊙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1948년 8월 15일 세워진 대한민국이 망하리라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을 지워버리려 한다’는 생각 들어”
⊙ “양식이 있다면 좌파 지식인도 ‘집단주의의 횡포로부터 어떻게 개인을 지키느냐’ 하는 문제에 관심 가져야”
⊙ “개인이 독립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민주에 대한 인식은 강했어도, 자유에 대한 인식은 희박”
⊙ “지금은 단절적 혁명 상황… 지금 말하는 ‘남북평화’라는 것은 혁명 과정의 일부가 아닌가 싶어”
⊙ “일제 36년에 대해서는 치를 떨면서도 중화제국주의 2000년에 대해서는 치를 떠는 사람이 없는 건 이해할 수 없어”

柳根一
1938년 출생.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선일보》 논설위원·주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역임 / 저서: 《이성의 한국인 김규식》 《지성(知性)과 반지성(反知性)》(공저) 외 다수 / 수상: 제4회 관훈언론상(1987), 삼성언론상 특별상(2010), 제2회 서재필 언론문화상(2012)
사진=조현호
  ‘최순실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됐다. ‘촛불’의 격랑에 밀려 탄핵을 당한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은 권좌에서 내려왔고, 문재인(文在寅) 정권이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면서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낙연(李洛淵) 국무총리는 5월 31일 취임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산물”이라며 “촛불혁명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끝난 것이 아니며 촛불혁명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후 1년 5개월 동안 대한민국에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공존과 통합’의 훈풍은 불지 않았다. 대신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장했던 ‘촛불혁명’의 칼바람이 몰아쳤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그들을 모시던 비서실장・국가정보원장・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갔다. 작년 대선(大選) 과정에서 ‘보수궤멸론’을 주장했던 이해찬(李海瓚)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앞으로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고 호언(豪言)하더니, 10월 5일에는 평양에서 북한 측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 정권을 안 빼앗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다짐했다. 국가정보원・국방부・경찰청・KBS・MBC 등에는 ‘적폐청산위원회’가 설치됐다. KBS와 MBC에서는 ‘적폐’로 몰린 이사・기자・아나운서들이 쫓겨났다. 사법부도 ‘적폐청산’의 회오리바람에 말려들었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압수수색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들을 사법처리하라는 아우성이 들린다. ‘촛불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전 정권과 야당에 대해서는 이렇게 모질게 굴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금년 한 해에만 3차례나 김정은과 만나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를 민족적 화해와 협력, 확고한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연초만 해도 당장 북한을 폭격할 것 같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을 만나더니 “나는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걱정까지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했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70년 전 건국한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이상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우려가 많은 국민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원로 언론인인 류근일(柳根一 ·80) 전 《조선일보》 주필을 만나 대한민국의 오늘에 대한 진단을 들어보았다.
 
 
  “우리 세대 전체가 집단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아”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친구들을 만났더니 어느 친구가 ‘우리 세대 전체가 집단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비관론, 우울감, 무력감(無力感)…. 솔직히 그런 것을 마음 한구석에 느낍니다.”
 
  ―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에는 사이클이 좀 밑으로 내려가도 이러지 않았는데, 나이 탓인 모양이다 싶기도 해요. ‘우리가 이 나이가 되어 이런 꼴을 보아야 하느냐’ 하는 생각도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꼭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적정 수준의 대항력(對抗力)’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나이가 되어 이런 꼴을 보아야 하느냐’ 하는 생각도 들고…”라는 말에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류 전 주필과 비슷한 연세인 기자의 아버지도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언뜻언뜻 그런 정서를 내비치곤 했기 때문이다.
 
  ― ‘대항력’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지요.
 
  “사실 남이 해주기에 앞서서 내가 먼저 대항력이 되면 되거든요. 그런데 내가 대항력이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사람들은 열정이 가득하고 시대적 고민을 많이 하리라고 믿습니다만,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고…. 그러다 보니 회색빛 정서가 가끔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 마지막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럴수록 서로 ‘희망 만들기’를 권장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단절적 혁명 상황”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적폐청산’을 내세우는 ‘촛불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10월 23일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관계자들의 촛불 1주년 선포 기자회견 모습. 사진=조선DB
  ― 지금 이 상황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단절적 혁명 상황이라고 봅니다.”
 
  ― 무슨 의미입니까.
 
  “집권세력 스스로가 ‘촛불혁명의 산물’이라고 자임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혁명정권이라는 얘기예요. 아닌 게 아니라 혁명적 방식이 눈에 많이 띕니다. 예를 들어서 특정한 공공 회사에 위원회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그 위원회가 징계권을 행사해요. 그거는 혁명권력 양상이거든요.”
 
  ― 그들이 추구하는 혁명은 어떤 혁명일까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삭제된 민주주의’, 대의(代議)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 넘어가는 혁명이지요. ‘직접민주주의’라고는 해도, 본연의 직접민주주의는 아닙니다. 직접민주주의를 내세운 특정 이념 그룹의 주관적 노선으로 우리 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끌고 가려는 것이죠.”
 
  ― 그 혁명의 끝에는 어떤 체제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양성이 보장되고, 견제와 균형, 권력분산이 제도화되어 있는 체제가 아니라, 그걸 초월하는 권력의 통합, 획일화, 전체화된 체제겠지요.”
 
  ― 저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 권위주의 체제와는 질적으로 아주 다른, 우리가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전체주의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아직 전체주의화라고 단정하지는 맙시다. ‘직접민주주의를 내건 광장과 군중의 결합, 주로 광장의 군중을 백(back)으로 삼은 특정 이념 그룹의 획일화 기도, 그 기도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선동정치가 진행 중이다’라는 정도로만 해두죠. 문제는 대중이 억지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일부 대중은 거기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더 무서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자체를 지우려고 하는 것 아니냐’ 싶어”
 
  ―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때는 하도 법으로, 군사재판으로, 계엄령으로 때리고, 형사와 기관원이 따라붙고 하니까 질식할 것 같았지만, 1948년 8월 15일에 세워진 대한민국이 망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과도기적으로 상당 기간 유보(留保)는 됐을망정, 당시 집권자들이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어요.”
 
  ― 정말 유신 시절에도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원천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유를 유보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까.
 
  “했죠. 다만 자유가 유보되는 기간이 너무 길고, 탄압이 너무 심하다 싶어서 암담하기는 했지만, 우리 체제가 사회주의나 히틀러식 전체주의로 가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야, 이거 1948년 8월 15일에 세운 대한민국 자체를 지우려고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1919년에 대한민국을 세웠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렇고….”
 
  ― 유신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그래도 야당·언론·지식인·재야 시민사회의 저항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권은 유신정권이나 전두환 정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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