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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70주년 | 특별인터뷰

盧在鳳 전 국무총리가 말하는 건국의 의미와 한국자유민주주의

“‘1919년 건국’ 주장은 전복(顚覆)을 위한 프로파간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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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건국은 영국혁명, 미국혁명, 프랑스혁명에 비견할 만한 정치혁명”
⊙ “‘낭만적 민족주의’는 전체주의로 이어져”
⊙ “현 상황은 ‘보수 對 진보’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對 전체주의’의 구도”
⊙ “지금 실질적으로 체제가 변하고 있다… 적폐청산은 숙청”
⊙ “대륙문명권으로 흡수된다면 더 이상 ‘자유’는 생각하기 어려워질 것”
⊙ “死活的 이익 사수하겠다는 의지 없는 나라는 核 가진 동맹국도 어쩔 수 없어”

盧在鳳
1936년 출생. 서울대 문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뉴욕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대통령정치담당특별보좌관, 대통령비서실장, 국무총리, 제14대 국회의원, 서울디지털대 총장 역임. 現 서울대 명예교수 / 저서 《시민민주주의》 《사상과 실천》 《한국민족주의》(편) 《정치학적 대화》(공저) 《한국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공저)
사진=조현호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다. 지난 4월에는 제주 4·3사건 70주년 기념식이, 5월에는 국회개원(開院) 7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하지만 오는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행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이미 여러 차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본다는 견해를 표명했기 때문이다(아마도 2019년에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기념행사를 거창하게 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해 일어난 봉기(?) 70주년도 기념하고, 국회 개원 70주년도 기념하면서, 건국 70주년은 기념하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했다고 주장하는 문 대통령 자신이 임시대통령 이승만(李承晩)·박은식(朴殷植)이나 주석 이동녕(李東寧) 김구(金九) 등은 제쳐놓고 1948년부터 기산(起算)해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라고 칭하는 것도 이상하다.
 
  원로 정치학자인 노재봉(盧在鳳·82) 전 국무총리를 만난 것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대한민국이 나아갈 바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시절 대통령특별보좌관, 대통령비서실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고, 제14대 국회의원도 지냈지만, 노 전 총리는 ‘정치학자’다. 2013년 1월부터는 일단의 제자들과 함께 매주 목요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만나 ‘정치학적 대화’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를 묶어낸 것이 2015년에 나온 《정치학적 대화》와 금년 4월에 나온 《한국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이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태 와중이던 작년 1월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학자들의 네트워크인 한국자유회의를 설립하고 ‘한국자유회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노 전 총리는 1948년 ‘건국혁명’으로 세워진 대한민국의 정당성(正當性·legitimacy)이 전체주의 세력의 도전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종(警鐘)을 울려 왔다.
 
 
  “1948년 건국 부정은 顚覆을 위한 프로파간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축전. 대한민국 건국은 민족사상 미증유의 새로운 나라를 세운 정치혁명이었다.
  — 총리께서는 한국자유회의 선언문을 통해 1948년 건국이야말로 ‘건국혁명’이라고 역설해 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촛불혁명’이라는 소리는 해도, 1948년 건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사상 유일한 혁명이었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혁명은 큰 사건에 대해 수사적(修辭的)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역사와 관련해서 얘기를 하자면 국가 위상과 체제가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대한민국은 건국 이전에 혁명적 사태를 겪었습니다. 19세기 말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중화(中華)질서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 그것입니다. 이후 조선은 형식적으로 독립국가가 되고 왕은 황제를 칭하게 됐습니다. 이건 하나의 혁명적 사태이지만 조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조선이 증발되어 버리고, 근대국가가 탄생합니다. 왕이나 황제가 아닌 국민이 주권자가 됩니다. 한반도 안에서 사는 인간은 전부 평등하다고 규정됩니다. 여기에 자유가 수반되고, 개인의 존재가 인정됩니다. 이건 한반도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입니다. 이게 바로 혁명입니다. 역사상 이것에 비견될 만한 혁명은 영국혁명, 프랑스혁명, 미국혁명 정도입니다.”
 
  —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은 대학교 1학년 학생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통치하고 있는 영토도, 통치 대상인 국민도, 국제적 승인도 없었는데, 그걸 어떻게 건국이라고 얘기합니까? 이건 상식입니다. 지금 정부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현 정부가 그렇게까지 무식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 다른 의도라면?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미국이라는 외세(外勢)의 힘에 의해 탄생한 반면, 임시정부는 외세의 간여 없이 자주적으로 탄생했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봅니다. 결국 반미(反美)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북한을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성립된 국가라고 봅니다.”
 
  — 소련이 설계하고 세워 준 북한을 그렇게 보는 것은 사실과 다르지요.
 
  “그런 주장은 결국 전복(顚覆)을 위한 프로파간다입니다. 대한민국은 외세에 의해 탄생했지만, 북한은 자주적으로 성립되었다는 식의 인식대로라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무엇이며, 대통령은 뭐가 됩니까? 정당성이 평양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정부에 얼마나 많이 들어가 있습니까? 그런 논리대로라면 북(北)의 체제에 남(南)이 흡수되는 방향으로 통일이 되어야 정당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70년은 전쟁상태의 연속”
 
  — 며칠 전이 6·25였는데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6·25는 우리 민족이 겪은 최대의 전란(戰亂)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행사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나갔던 미국을 누가 다시 불러들였습니까?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좌파들은 대한민국을 일제(日帝) 강점기에 이은 ‘제2의 강점기’로 보고 있습니다.”
 
  —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체제수호에 앞장서야 할 정치인·공무원·법조인·교사·군인들까지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이 결국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생각이 듭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 탄생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것이 냉전(冷戰)입니다. 국가가 생긴 초기에 혹독한 전쟁을 겪었습니다. 이후에도 평화상태로 들어가지 못하고 전쟁상태가 지속되어 왔습니다. 대한민국 70년은 전쟁 상태의 연속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이걸 의식하지 못해 왔습니다.
 
  전쟁상태하에서 권력은 기본권을 유보(留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입헌적 국가이성(立憲的 國家理性)이라고 합니다. 링컨은 미국을 유지하기 위해 남북전쟁을 결행하면서 200만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당시 링컨은 기본권을 유예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어떻게 했습니까?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일본계 미국인들을 집단수용소에 집어넣었습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못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국방력을 만들어야 했고, 경제건설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가 전쟁상태라는 것을 망각해 왔습니다. 이게 국민들이 여러 가지 착각을 하는 이유입니다.”
 
  노 전 총리는 “대한민국은 70년 동안 전쟁상태에 있으면서도 헌법이념을 깡그리 부정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 피란시대에도 지방자치선거를 했습니다. 정권이 바뀌어 왔지만 한 번도 대한민국 존립이유를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정권에 대한 저항도 그래서 가능했습니다.
 
  이런 걸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오히려 의식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역사바로세우기’ 같은 얘기를 하고…. 그러다가 국가의식이 사라지게 됐습니다.”
 
 
  의식혼란의 원인 ‘정치적 낭만주의’
 
  — 우리 국민들을 보면 ‘민족의식’은 높아도 ‘국가의식’은 희박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북한과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손들어 보라’고 하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치판단의 심각한 착각이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민족(民族)’이라는 단어는 과거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영국의 ‘네이션(nation)’, 독일의 ‘폴크(Volk)’라는 개념이 메이지(明治) 시대에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민족’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은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군사학문 등 많은 분야에서 유럽의 후발(後發) 강대국이던 독일을 벤치마킹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학도 미국의 것이 아니라 독일 블룬츨리 등의 ‘국가학(國家學)’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일본인들은 뭐라고 해석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단어와 만났습니다. 그것이 독일어 ‘폴크’였습니다. 이를 일본인들은 ‘족민(族民)’ 등 여러 가지 말로 번역해 보다가 결국 ‘민족’으로 번역하게 됩니다. 이것이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영국·프랑스와는 달리 ‘종족적’ 의미로 수용되었습니다. 그 근원이 독일의 ‘정치적 낭만주의(political romanticism)’입니다. 이 ‘정치적 낭만주의’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온갖 의식의 혼란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됐습니다.”
 
  —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게 무엇입니까.
 
  “원래 민족주의는 영국·프랑스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프랑스혁명 후 나폴레옹이 등장했을 때 독일 지식인들도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게 되면서 독일인들은 ‘이거 큰일났다’고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프랑스·서유럽적인 요소들을 맹공격하면서 이와 구별되는 독일의 독자성(獨自性)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프랑스·서유럽을 지나치게 이성적(理性的)·기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그에 맞서 감성적·유기체적(有機體的)인 것을 강조합니다.
 
  먼저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가 언어를 통해 독일의 독자성을 발견하려 합니다. 이어 자연적인 것을 찾다 보니 민화(民話)를 발견하고, 영웅 찾기를 하게 되고, 감성적·서정적인 것들을 찾다 보니 독일에서 음악이 발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들을 ‘낭만주의’라고 합니다.”
 
  — 그런 문화적 낭만주의가 어떻게 정치와 연결되게 됩니까.
 
  “프랑스의 볼테르는 ‘중세(中世)는 암흑시대’라고 했지만, 낭만주의 시대 독일 지식인들은 중세 사회를 ‘가장 자연적이었던 세계’로 보았습니다. 그럼 가장 자연적인 인간공동체는 무엇이냐? 그것이 ‘폴크’였습니다. 독일인들은 이 자연적인 세계에서는 자연적인 영웅이 왕(王)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자연적인 영웅인 왕이 모든 사람을 위하고, 모든 사람은 왕을 위하는 것이 자연적인 세계이며, 이는 (프랑스가 말하는) 공화정(共和政)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이것이 ‘정치적 낭만주의’입니다.”
 
 
  한국 민족주의와 독일의 낭만적 민족주의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은 조선의 민중영웅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노재봉 전 총리는 “‘폴크’는 유기체적 집단이다 보니 여기서는 개인의 독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에서는 그 주체가 개인이지만, 1848년 프랑크푸르트헌법(1848년 혁명 이후 통일독일 건립을 목적으로 프랑크푸르트에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제정한 인권선언)에서는 그 주체가 ‘폴크’가 된다”고 말했다.
 
  — 독일의 ‘정치적 낭만주의’가 오늘날 한국인들의 의식 혼란의 원인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독일의 대표적인 낭만적 민족주의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독일의 문화적·정치적 낭만주의는 일본을 거쳐 식민지 시대 조선으로 흘러들어 옵니다. 헤르더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에서도 조선어학회가 조선말을 정리합니다. 기생방에서 놀던 춤이 ‘예술’이 됩니다. 정인보(鄭寅普)는 ‘얼’을, 최남선(崔南善)은 조선민족의 독자성을 강조합니다. 신채호(申采浩)는 조선상고사를 탐구합니다. 이런 것들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 역사적 기능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민중의 영웅도 찾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홍명희(洪命憙)의 임꺽정이고, 후에 와서는 황석영(黃晳暎)의 장길산입니다. 그러다 보니 민중의, 민중으로부터, 민중을 위한, 민중의 영웅이 없을 수 없겠지요. 그것이 김일성(金日成)이라는 상징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낭만주의라는 개념을 만든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민족(Volk)’은 ‘모든 사회 성원이 하나의 개체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 개념은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표현으로 오늘날 북한 헌법에 명문화됩니다.
 
  한편 독일의 ‘폴크’는 러시아로 들어가서는 ‘나로드(narod)’가 됩니다. 러시아 학생들이 농민들 속으로 들어갔던 것을 본받아 식민지 시대 조선에서도 ‘브나로드운동’이 일어나죠. 이게 1980년대에는 ‘농활(農活)’이 되는 것입니다.”
 
  노 전 총리는 “일제시대에 일본 유학을 하거나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전체’를 강조하는 ‘정치적 낭만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채호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던 것은 독일 민족주의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의 〈독일민족에게 고함〉의 조선판이었습니다. 피히테의 이 글은 해방 후 국어교과서에 실리는데, 이는 독일 유학생 출신인 안호상(安浩相) 문교부 장관의 영향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초대(初代) 문교부 장관이었던 그가 1990년대에 김일성이 만든 단군릉을 참배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2007년 11월 방북시 단군릉을 찾은 김장수 당시 국방부 장관 일행. 김일성이 조성한 단군릉은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유용한 선전물이다.
  노재봉 전 총리는 “이러한 흐름에서 유일하게 예외적인 존재가 이승만(李承晩)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이승만은 프랑스혁명과 미국 건국이념에 발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조선이 왜 나라를 잃었느냐에 대해 국제정치적 의식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국제정치적 조건이 안 되면 그런 조건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 이승만이 입장이었습니다.”
 
  — 외교독립론이 그래서 나온 것이군요.
 
  “이승만은 국제정치적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테러나 암살로 독립을 이룰 수는 없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두고두고 시빗거리가 된 ‘위임통치론’도 그래서 나온 것인데, 신채호 같은 이들은 그게 이해가 안 되었겠죠.”
 
 
  전체주의의 논리
 
독일 나치당의 전당대회 포스터. ‘한 민족(Ein Volk) 한 국가(Ein Reich) 한 지도자(Ein Füehrer)’라는 구호가 전체주의의 특질을 잘 보여준다.
  — 앞에서 계속 나왔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말은 전체주의의 대표적 구호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의 정치적 낭만주의는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혁명기 로베스피에르의 자코뱅주의와 연결됩니다. 혁명으로 봉건주의를 무너뜨린 프랑스에서는 국민을 주권자(主權者)라고 선언했습니다.
 
  국민을 주권자로 설정할 때, 그 기본조건은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평등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국민이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 것인가? 모든 개개인이 주권자로 등장한다면 정치질서는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질서 있는 주권행사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그 하나가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것이었습니다. 정치공동체에 하나 이상의 주권자가 있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국민을 하나로 묶어 주권자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럴 경우 국민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존재를 초월해 하나의 집단적 개체로 설정되는 것입니다. 국민을 하나의 유기체 또는 몸으로 만드는 것이죠. 이 점에서 자코뱅주의는 독일 낭만주의와 통합니다.
 
  그 하나 속에 개개인은 전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부품과 같은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집단적 개체를 대표한다는 존재에 의해 모두가 통제되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에서 체제에서 어긋나는 개인이란 존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숙청(肅淸)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여기서 ‘어긋난다’는 것의 의미는 개인의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평등은 실현되기는 하지만 자유는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사생활(私生活)은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런 국민주권의 현실태(現實態)를 전체주의(全體主義)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좌우가 없습니다. 공산주의도, 나치즘이나 파시즘도 이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 북한의 주체사상(主體思想)과도 논리구성이 흡사하네요.
 
  “자코뱅주의는 마르크스주의로 연결됩니다. 프랑스인권선언은 원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라고 하는데, 청년 마르크스는 인간과 시민을 양분하는 데서 소외(疎外)가 나온다고 주장하면서 이의 극복을 주장합니다.
 
  이것이 굴절되어 김일성주체사상으로 표현되고,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말이 북한 헌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건 북한에게는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북한이 자기들에게는 인권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철학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代議制
 
  노 전 총리는 “이런 집단주의, 전체주의에 반대되는 철학이 바로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개인의 평등에 더하여 자유를 인정한다는 데서 전체주의와 차이가 있습니다. 평등한 개개인들은 각자 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존재들로 인정됩니다. 그런 상이(相異)한 의견들을 보유한 개개인은 모두가 주권행사에 참여할 당연한 권리를 갖습니다. 여기서 주권자인 국민은 ‘상징(象徵)으로서의 국민’이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평등과 자유가 보장되는 방식으로 주권행사를 할 수 있나? 그것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복수(複數)의 집단을 이루고 이들이 서로 경합(競合)하는 가운데 주권자 개개인의 의사가 표출되게 함으로써 정치적 자유를 통한 주권행사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의제(代議制), 대표제(代表制)입니다. 이런 사상에 근거한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 대의제는 자유민주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말씀이군요.
 
  “흔히 이른바 직접민주주의, 국민주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물리적·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편의적 차선책(次善策)으로 대의제 또는 대표제를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 문재인 정권은 개헌안에서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들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이미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헌법 개정안을 보면 ‘자유’를 빼겠다고 하고…. 지금 보면 전체주의적인 논리에 말려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북한에 정당성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정부 TF팀의 장(長)이 되고,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부인했던 통합진보당을 변호했던 사람이 대법관 후보로 제청되고….”
 
  — 남과 북은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라는 서로 다른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4·27 판문점선언을 보면 ‘우리 민족끼리’ 식의 낭만적 민족주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체제는 사회 형태로 얘기하는 것이지 경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살고 있으니 북한을 지원해 주면 저쪽이 변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착각입니다. 북한은 우리와 정당성의 근거가 다르고 전체주의 혁명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는 체제입니다.”
 
 
  “‘보수 對 진보’는 언론이 만든 착각”
 
  — 총리님의 글들을 읽어 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대립구도를 ‘보수 대(對) 진보’나 ‘좌우대립’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로 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원래 보수주의는 영국에서 출발하는데, 그 기원은 인신(人身)보호영장 등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를 논의하려면 우리는 조선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치체제를 놓고 보면 자유민주주의는 ‘진보’이지 ‘보수’가 아닙니다.
 
  언론이 만든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보수 대 진보, 좌우, 여야(與野)로 나누는 것은 정당성의 뿌리가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정당성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 좌파세력은 이승만·박정희(朴正熙) 시대를 두고 ‘파시즘’이라고 표현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70년 동안 전쟁 상황서 전복세력과 대결해 왔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맹점(盲點)은 전복세력이 자유를 전복하기 위해 자유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해서 적이 침략하는 것을 관용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군대가 없어도 됩니까? 이건 환상적인 이야기입니다.”
 
  — 그러면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물론 혁명적으로 건국을 한 후 시행착오도 오점(汚點)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완벽한 정치체제가 어디 있습니까?
 
  흔히 ‘민주화 30년’이라고 하는데 이것처럼 잘못된 얘기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만드는 건국 혁명으로부터 민주주의는 시작됐습니다. 남녀불문하고 투표권을 줬고, 토지개혁을 했는데, 그건 민주화가 아닙니까? 이후 단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탄핵사태 핵심은 체제문제에 대한 정치대립”
 
작년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단순한 탄핵이 아니라 ‘체제탄핵’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체주의라고 하면 얼른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체주의는 히틀러나 스탈린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지식인들의 책임이 큽니다. 서구에서는 잊혔던 전체주의라고 하는 개념을 되살린 것이 68사태 이후 앙리 레비, 앙드레 글뤽스만 같은 좌파였습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에 나타난 인권문제 등 소련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왔지만, 전체주의 비판 같은 점은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 구미에 맞는 내용, 즉 혁명을 정당화(justification)하는 데 필요한 것들만 받아들였습니다. 권력욕으로 움직이는 것이죠.”
 
  — 탄핵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점점 전체주의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탄핵사태의 핵심은 체제문제를 두고 벌어진 정치대립에 있었던 것이지, 한 여인의 이른바 ‘국정농단’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당초 촛불집회는 백남기씨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시위를 벌여 공권력을 무력화(無力化)시키고 체제를 약화시키기 위해 조직된 것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뜻밖의 ‘국정농단’ 의혹이 터지면서 그들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대통령을 정조준하면서 체제 타도의 지름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한 수단은 ‘도덕적 증오’였습니다. 촛불집회를 증오집회로 만들어 체제를 뒤흔드는 탄핵을 벌인 것입니다. 탄핵은 ‘대통령이 잘했다, 잘못했다’와는 상관없는, 전복세력에 의한 ‘체제탄핵’이었습니다.”
 
 
  “작년 大選은 체제선택의 선거”
 
노재봉 전 총리는 2013년부터 일단의 제자들과 함께 ‘정치학적 대화’를 진행해 왔다. 왼쪽부터 서명구 박사,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노 전 총리.
  — 단적으로 문재인 정권을 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자기들은 전체주의라고는 말하지 않을 겁니다. 민족주의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얘기해 온 것처럼 그 민족주의라고 하는 게 ‘낭만적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면….”
 
  — 그 낭만적 민족주의는 전체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
 
  “실질적으로 체제가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탄핵사태 후 작년 대선(大選)을 앞두고 나는 ‘다음 선거는 지금까지 있었던 선거와 달리 체제 선택의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걸 봐요. 시민사회는 공론이 이루어지는 장(場)입니다.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 여론(輿論)이 형성되고 공론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지금 언론이 모두 다 장악되어 버리지 않았어요? 사법부(司法府)야말로 시민사회를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인데 그마저 이상하게 변하고 있고….”
 
  — 서초동 법원 앞 사거리에는 ‘민중이 대법원장을 선출하자’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더군요. 사법평의회인지 사법행정위원회인지 하는 걸 만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놀랄 일이 아닙니다. 교육정책이고, 원자력 발전이고 공론화(公論化)한다고 하잖아요? 그게 서양에서 말하는 이른바 숙의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deliberative democracy)라는 거죠.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말을 쓰지 않았습니까?”
 
  — 그렇죠.
 
  “그게 뭔 줄 알고 쓰는지 모르고 쓰는지…. 나는 모르고 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숙의민주주의라는 것은 대의제 아래서 국가적인 문제가 대표들의 사적(私的) 이익 때문에 희생되는 일을 막는 등 대의제를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를 국민, 혹은 민중이 결정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문재인 대통령을 어떻게 봅니까.
 
  “월남공화국(남베트남)이 패망했을 때 환희를 느끼고 쌍수를 들었다는 사람 아닙니까? 죽은 신영복(申榮福) 교수를 위대한 사상가라고 하고…. 현 정권 사람들이 모든 곳에 ‘더불어’를 붙이잖아요? 그게 신영복 교수 전문용어입니다. ‘더불어’라는 게 쉽고 좋은 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헌법개정안, 누가 만들었나?”
 
  —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일본은 납치자들을 위해 그렇게 애쓰고, 미국도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들을 구출해 가잖아요? 인권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치품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헌법에 총론(總論) 다음에 기본권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식인은 인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국민 보호도 못하는 게 국가입니까?”
 
  — 연초에 정부가 발표한 개헌안에서 기본권의 주체를 ‘사람’으로 규정하고, 헌법 전문(前文)에서 ‘자유’가 빠진 것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전문적으로 머리 쓰는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여간 선전선동에 능한 사람이 아니면 그런 식으로 못해요. 민정수석비서관이 나와서 세 번에 걸쳐 발표했는데, 이게 민정수석이 발표할 문제입니까?
 
  도대체 헌법개정안이라는 걸 내놓으면서 누가 만들었는지 밝히지 않고 있어요. 어떤 인간들이 만들었는지 알아야 논의도 하고 질문도 할 거 아닙니까? 국민들은 그걸 알 권리가 있어요. 그걸 밝히지 않고 이상한 얘기들을 하니 그 밑에 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난 70년간 민주주의는 그렇게 목놓아 외쳤으면서도 자유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무지하고 무감각하게 됐을까요.
 
  “독재다 뭐다 하지만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개인생활에는 손을 안 댔어요. 70년간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자유라는 것은 당연하게 생활화됐습니다. 자유의 사상적 기초를 따지고 들어야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야말로 그것이 문제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 총리님의 글에도 나와 있듯이 대의제는 투표에 의해 임기가 제한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현 정권 사람들은 보수 궤멸, 30년 집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통령 특활비를 가지고 감옥에 보내고 보훈처장이 전임자를 고발하는 것을 보면, 이 정권 사람들은 정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못되면 작년 대선이 자유민주주의에 따르는 마지막 선거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여러 가지 위험을 다 놓고 볼 수밖에 없는 지금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적폐(積弊)청산’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숙청(肅淸)’입니다, 숙청!
 
  ‘재벌개혁’도 그래요. 새로운 사회에 맞춰 개혁해 나가야 할 필요도 있고, 재벌들이 개혁해야 할 점도 많지만, 기업 죽이기 식으로 나가는 것은 문제입니다.”
 
  — 문재인 정권은 박정희·전두환 정권보다 더 권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비판적 지식인 세력이나 재야(在野)·운동권 세력이 정권을 견제했지만, 지금은 그런 세력이 없습니다. 붕괴한 자유민주 진영을 재건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나로서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의 전략은 첫 번째가 합법투쟁, 두 번째가 비(非)합법투쟁, 세 번째가 폭력투쟁입니다. 그런데 합법의 옷을 입혀 가지고 일을 하니까 전부 꼼짝을 못하고 있어요. 탄핵부터 그렇잖아요? 합법의 옷을 입히기 위해 스캔들을 자꾸 만들고, 파렴치범으로 몰고, 사사로운 문제까지 파헤치고…. 이게 과거와 다른 점입니다.”
 
 
  “1민족 1국가는 예외적인 경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를 내세우는 북한은 이미 대한민국과는 거리가 먼 전체주의 체제이다.
  — 결국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낭만적 민주주의’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민족끼리’ ‘조국은 하나다’ 식의 사고방식을 깨기 힘들다는 게 고민입니다.
 
  “사실 1민족 1국가는 역사적으로 보면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독일에서도 아까 얘기했던 18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 이래 독일 민족이 한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됐고, 범(汎)게르만주의도 나왔어요. 히틀러는 실제로 게르만 민족을 하나로 묶으려고 했고…. 하지만 결국 그동안 별도로 살아온 곳(오스트리아)은 오늘날 다른 나라가 되었잖아요?
 
  남북이 문화적으로 비슷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두 개의 국가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국가 대 국가’로 통일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 현 정권이 하는 걸 보면 결국 ‘낮은 단계의 연방제’니 ‘연합제’니 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습니다.
 
  “사실 저쪽 체제가 우리 체제와 비슷하게 되면 굳이 통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자체가 통일이니까요.
 
  양쪽 체제가 같다고 하더라도 꼭 통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2차 대전 이후 연방제 실험이 여러 곳에서 있었는데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다른 조건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던 사람들을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문화적 뿌리를 가진 같은 종족이라고 연방으로 묶었지만 잘 안 됐어요.”
 
  — 그런 얘기를 하면 ‘반(反)통일분자’라는 소리가 나올 텐데요.
 
  “바로 나오겠지요.”
 
 
  美北정상회담, 어떻게 볼 것인가
 
‘정치학적 대화’에서 토론한 결과들을 정리한 《정치학적 대화》(2015), 《한국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2018년).
  — 싱가포르 미북(美北)정상회담을 두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당했다’는 주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내기 시작한 것’이라면서 트럼프의 전략적 식견을 높이 평가하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최근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미국이 미북정상회담을 싱가포르에서 한 것도 서(西)태평양·인도양 쪽 연계국가들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그랜드 디자인을 갖고 미북정상회담을 한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것이지요.”
 
  —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하는 수준에서 북한과 적당히 타협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현상타파세력(현재의 국제질서를 뒤바꾸려는 세력)으로 보면서 이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런 중국의 유일한 동맹국이 핵을 가지고 국제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얘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리버리하게 장사꾼 식으로 흥정하면 미국의 위신(prestige)은 다 깨져 버리고 핵 확산은 막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럼 일본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그런 바보짓을 할까요?”
 
  —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이후 한미동맹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수순으로 가는 것 아닐까요.
 
  “미국은 평택의 미군기지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태평양사령관을 지낸 거물인 해리 해리스 제독을 주한 미국대사로 보낸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미국은 최근 대만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는데,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대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지금이 戰作權 환수 얘기할 때인가?”
 
  — 한미동맹의 훼손은 단순히 안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자유와 번영을 보장해 주었던 해양문명권에서 전체주의적인 대륙문명권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국민들이 그런 문명사적 충격에 부닥치게 되면 각성할 수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대륙문명권으로 흡수된다면 더 이상 ‘자유’는 생각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은 반드시 지켜 내겠다는 국민들의 의지입니다. 국민들이 사활적 이익을 사수(死守)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나라는 핵을 가진 동맹국도 어쩔 수 없습니다. 월남공화국(남베트남)도 그래서 패망했잖아요? 반면에 이스라엘을 보세요. 그 국민들의 생존에 대한 의지는 누구도 못 꺾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시아대륙의 끝에 붙어서 유일하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 온 나라입니다. 우리가 단결해서 그 방향으로 나가면 그 영향력은 엄청나게 클 수 있습니다. 그 결의를 다져야 하는데,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지금이 전작권(戰作權) 환수를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까?”
 
  —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 주십시오.
 
  “이미 다 했는데 뭘…. 굳이 얘기한다면 1948년 건국혁명이 영국혁명, 프랑스혁명, 미국혁명에 비견할 만한 커다란 정치혁명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꼭 써 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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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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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승대    (2018-08-10)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2
본 기사와 같은 내용이 좀 더 확산되어 읽혀지고 이해되어야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의견이 확고해 질 것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해될 수 있는 좀 더 평이하고 간단한 논리의 정립과 확산이 필요하다.
  건구기    (2018-07-23)     수정   삭제 찬성 : 3   반대 : 2
그리고 당시 임시정부는 하나만이 아니라 곳곳에 있었다. 임시정부를 기준으로 삼으려면 통일된 기준부터 정립해야 할 것이다. 임시정부를 건국이라 떠드는 사람들은 무식한데 권력만 가진 측면도 있다. 조자룡이 헌칼 휘두르듯...
  ilwul    (2018-07-20)     수정   삭제 찬성 : 39   반대 : 2
쓰레기들이 다 해먹지 못하도록 현인들이 나서야 한다. 각계의 원로들도 친일파니 뭐니 저놈들의 야바위에 쫄지 말고 과감히 아니 뻔뻔스럽게 나서야 한다. 저놈들의 후안무치를 괴멸시키기 위해서는 이쪽도 후안무치를 각오해야 한다. 물고기를 잡으려는 자는 옷에 물 묻히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김규정    (2018-07-20)     수정   삭제 찬성 : 72   반대 : 4
건국이라함은 영토가 있고 국민이 있고 주권이 있어야 건국이지 , 1919년에는 나라가 존재를 하고 영토가 있고 주권이 있었던가요 ,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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