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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얀마 30년 韓商’ 유선하 스카이아시아 대표

“미얀마는 ‘제2의 한국’ 만들 수 있는 나라… 2020년 총선 때 ‘수치 정부’ 재집권해야 발전 가능”

글 : 신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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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오롱상사 해외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미얀마 법인장 역임… 2015년 韓人 최초 미얀마 불교 성지 ‘짜익티오’ 케이블카 사업 수주
⊙ 1990년대 미얀마 군부 최고 지도자 ‘뭐 필요하냐’는 말에 ‘미얀마 공부부터 하겠다’고 승부수… 異邦人 경계하는 군사정권 신임 얻어
⊙ “미얀마가 가장 싫어하는 한국 특유의 ‘갑질’ 문화 근절돼야… ‘도와줄게’ 말하지 말고, ‘동참할게’ 손을 내밀어야”
⊙ “45년 동안 매해 ‘300통’ 손편지로 인맥관리… ‘眞心 바쳐 人心 얻듯’ 외국도 그 나라 역사·문화부터 이해하는 게 중요”

유선하
1948년 경북 안동 출생. 고려대 영문학 학사, 서울신학대 선교학 석사 / 전 코오롱상사 올림픽 홍보부장, 아르헨티나 지사장, 미얀마 법인장. 전 주식회사 에쎈 사장, 여수 포마주식회사 회장. 현 미얀마 스카이아시아 대표
유선하 스카이아시아 대표가 미얀마 당국으로부터 받은 투자 허가권을 내보이며 말하고 있다.
  미얀마 양곤에서 만난 한 교민은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인프라 건설’을 꼽았다. 도로·항만·병원·수도·전기 등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 시설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2015년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주도의 민간정부가 출범한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사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민간정부의 개방 정책으로 인한 최저임금 인상, 교통난, 집값·물가 상승 등으로 더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말까지 했다. 또 다른 한 교민은 행정 서비스에 불만을 표했다. 경험이 부족한 민간 공무원들이 행정을 맡아서 민원 처리가 더디게 느껴진다고 했다. 군부정권하에서 상명하복 구조로 빠르게 진행됐던 행정이 그리울 정도라고 했다. 이들은 미얀마 정부가 군부와의 연정(聯政)이나마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은 갖췄지만, 앞으로 ‘문제는 경제’라고 했다.
 
  그런 미얀마를 보석처럼 여기는 이가 있다. 기회의 땅이라고 외치는 남자가 있다. 열악한 사업 환경을 ‘블루오션’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인 입장에서 정말 미얀마는 아까운 나라입니다. 제가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였고, 지금도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는 나라입니다. 지금이라도 한국이 미얀마가 발전할 수 있는 ‘근본 동력’을 쥐게 된다면, 그 땅에 ‘제2의 한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하자원을 엄청나게 보유한 나라이고, 한국과의 유대관계만 잘 이뤄지면 다소 미비한 투자제도와 법률 시스템도 다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는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30년 전부터 ‘상사(商社)맨’으로 미얀마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군부와의 배짱 좋은 담판으로 사업을 성공시키고, 각계 인사들과 신뢰를 쌓아 이제는 어엿한 한 기업의 회장이 됐다. 한인 최초로 미얀마 불교 성지 ‘짜익티오’에 케이블카를 운영하고 있는 유선하(70) 스카이아시아 대표의 이야기다.
 
 
  “손만 대면 다 돈이 될 것 같았다”
 
유선하 대표는 미얀마에서 케이블카 사업을 승인받기 위해 “1000장 가까운 사업 서류를 준비하고 소관부처마다 돌아다니면서 사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194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유 대표는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오롱상사에 취직했다. 타고난 도전정신과 적응력으로 베트남·아르헨티나·유고슬라비아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영업했다. 회사의 전폭적 신임을 받아 88올림픽 홍보부장과 아르헨티나 지사까지 지냈다. 올림픽 홍보부장을 맡을 당시 유 대표는 특유의 흡인력과 유대감으로 인맥을 넓혀 공산권 국가의 올림픽 참가까지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1992년 미얀마에 첫발을 내디딘 후 이듬해 미얀마지부 법인장을 맡으며 현지에 적응했다.
 
  “아르헨티나 지사까지 마치고 본사에서 의류 총괄 기획부장으로 발령받아 일했습니다. 그러다 1992년도에 다시 해외 개척 업무를 맡았어요. 세계로 빨리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미얀마에 딱 내렸는데, 이건 정말 손만 대면 다 돈이 될 것 같았어요. ‘내가 투쟁을 하든, 인생을 바치든 뭔가 해야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듬해 4월 8일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오려는데 처음에는 수리가 안 돼요. 회사에서 ‘너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하면서 안 놔 주다가, ‘그러면 어디 소원대로 한 번 해 봐라’ 하고 밀어 주더군요. (웃음) 그래서 6개월 뒤에 정식 코오롱 (미얀마) 법인을 차렸습니다. 그게 바로 주식회사 ‘코오롱미얀마’입니다. 그때만 해도 미얀마에 있던 기존 법인이 대우그룹뿐이었고, 진출해 온 게 코오롱하고 효성이 전부였어요. 삼성도 몇 년 있다가 ‘미얀마 체크해 봐라’ 해서 온 거고. 그런 단계였어요. 그때 제가 ‘미얀마에서 코오롱 사장 하겠습니다’ 한 거죠.”
 
  유 대표의 친화력은 미얀마 군부정권 치하에서도 통했다. 유엔(UN)에 있던 지인을 통해 군부와 매끄럽게 관계를 맺었다. 최고권력자와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코오롱상사의 사업 발전 구상에 관한 브리핑 기회까지 얻었다. 군부는 신임의 표시로 당시 유망했던 비료·시멘트 공장 운영권과 제약공장 사업권을 쥐여줬다. 유 대표는 “보통의 신뢰가 아니라, 장관들이 ‘너밖에 믿을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며 “그때는 미얀마가 영국식 시스템을 도입해 외국인이 큰 사업을 맡으려면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100% 신뢰를 받고 통과한 건 나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5월인가. 어느 비오는 날 밤 군인들이 나를 찾아 집으로 온 거예요. ‘미스터 유가 누구냐. 위원장(당시 군부 최고지도자)실로 와서 하고 싶은 얘기 하라’고 하더군요. 회의실로 들어갔더니 별 5개 달린 위원장이 상석에 앉아 있고 그 옆으로 장관들이 배석해 있었어요. 위원장이 ‘하고 싶은 얘기 하라’고 해서 내친김에 코오롱 사업 브리핑을 했죠. 끝나니까 실력자가 느닷없이 ‘이제 뭘 도와줄까?’ 이러는 거예요. 제가 ‘각하, 저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지금 모든 걸 걸고 미얀마 역사·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미얀마를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서 기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이랬더니 박수치고 난리가 났죠. 그 다음 날부터 전 장관들이랑 미팅을 했어요. 두 달 동안이나.”
 
 
  높은 선진국 진입장벽, 미얀마 소중함 일깨워
 
  유 대표는 “나라부터 이해하겠다”는 진정성으로 이방인을 경계하던 군부의 쇠심장까지 녹여 냈다. 2001년도까지 코오롱 의류사업 운영은 물론, 전선 등 기반시설 부속품도 납품했다. 한 세기가 저물자 그는 코오롱 법인장을 그만두고 아시아나항공 미얀마지부를 운영하다 귀국해 휴식기를 보낸다. 지인의 가로등 회사에 적(籍)을 두고, 설악산 벚꽃길에 가로등 설치를 성공시켜 운치 있는 명소로 거듭나게 했다.
 
  2007년에는 캐나다로 건너가 5년 동안 본격적으로 해외 인맥을 넓혔다. 호주·뉴질랜드·콜롬비아 등 세계 일주를 하며 신사업을 구상했다. ‘앞으로 해외 사업이 녹록지 않겠다’는 충격도 받았다. 유 대표는 선진국 시장을 관찰하던 당시를 “(외국인이 사업을 펼칠 만한 기회의) 구멍이 없었다. 캄캄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선진국마다 이미 시장구도가 조직화돼 있고 인종차별 같은 배타성도 강했기 때문이었다. 유 대표는 산지 연결, 철로 사업 등 인프라를 활용한 사업을 구상했기 때문에 더 큰 장벽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되돌아온 곳이 ‘제2의 고향’ 미안마였다. 2012년이었다. “세상 공부 끝내고 돌아와 보니 내 인맥들이 장관도 되고, 지자체에 나가서 주지사도 됐더라고요. 그동안 인맥 관리를 잘해 놔서 (재적응에) 도움이 됐죠.”
 
  유 대표가 미얀마에 돌아와 눈을 돌린 사업 아이템은 ‘케이블카’였다. 그는 이미 한국에서 케이블카 사업으로 성공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출발이 쉬웠다. 유 대표는 2012년 여수엑스포 개최를 앞둔 시기, 해상 위로 ‘돌산’(섬)과 ‘자산’(육지)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구상했다. 관련 지식은 없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코오롱 지사에 연락했다. 케이블카가 많은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는 지역이라서 전문가도 있을 것 같았다. 직원은 그에게 세계 업계 1위의 케이블카 사업장인 프랑스 회사 ‘포마’(POMA) 관계자를 연결시켜 줬다. 유 대표가 여수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만나길 원하자, 관계자는 ‘꿈 깨고 접으라’며 비웃었다.
 
  평가절하에 오기가 생겼다. 케이블카 공부에 매진, 당시 여수시 고위공무원과 도시공사 사장을 연이어 만나 사업을 추진했다. 그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건너가 포마 측과 담판을 지었다. 사업 인허가가 났다. 모든 자재는 프랑스에서 가져오되, 설치는 직접 하는 일종의 ‘중간 수주’ 개념이었다. 프랑스 당국도 애초에는 ‘민간인이 국유산업 같은 케이블카 설치를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의심했다. 유 대표가 케이블카 공장을 직접 보여주고, 현지 한국 대사(大使)도 거듭 설득한 끝에 원조 프랑스까지 믿게 됐다.
 
 
  불교 성지에 ‘케이블카 도전’
 
한인 최초 미얀마 불교 성지 ‘짜익티오’에 설치된 유선하 대표의 케이블카.
  유 대표가 돌아올 당시 미얀마는 ‘떼인 세인’ 대통령이 이끌고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에 뿌리를 둔 군부 출신이었지만 집권기 동안 시장경제 도입, 개방정책 추진으로 국민의 신임을 얻었다. 그의 집권 기간은 2015년 아웅산 수치 민간정부 출범 직전의 ‘유사민간정부’ 로 불리기도 한다. 떼인 세인 대통령은 2011년부터 경제개발에 돌입한다. 정부는 불교 성지이자 대표적 관광지인 짜익티오를 새롭게 단장하고자 했다. 유 대표의 케이블카 건설 방향과 일치했다. 매년 300만명 이상의 순례객이 다녀가는 짜익티오는 해발 1102m 정상에 위치한 ‘황금바위’로 유명하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있는 황금바위 꼭대기 의 7m 높이 불탑이 장관을 이룬다. 관광객들이 짜익티오에 가려면 트럭을 개조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협곡을 올라가야 했다. 유 대표의 케이블카가 접근성을 높인 셈이다.
 
  “2500년이 넘은 미얀마의 랜드마크죠. 미얀마 사람이라면 평생 3번 이상은 가 봐야 화목·건강·재물이 온다고 합니다. 시험 때만 되면 부모들이 전부 와서 불공을 드릴 정돕니다. 그런 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했으니 난리도 아니었죠. 2014년 주지사에게 ‘이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너 혹시 미쳤느냐, 잘 알면서 왜 그러냐’ 했으니까요. (웃음) 주지사를 겨우 설득해서 1000장 가까운 사업 서류를 준비하고 소관부처마다 돌아다니면서 사인을 받았어요. 이듬해 정월 인허가가 납니다. 마치 졸업장 주고받듯이 자리를 마련하더군요. 장차관 다 보는 앞에서 에너지부 장관에게 ‘인허가장’을 받았습니다. 그때 미얀마 정부에서 ‘이 사실이 1년 반 안에 (외국으로) 새어 나가면 사업은 없다’고 해서 비밀리에 진행을 했죠. 그런데 이게 어떻게 보도를 타고 흘러나가더군요. 우리나라 국정원이랑 현지 대사관에서 ‘도대체 누가 이런 과감한 사업에 성공했냐’면서 저를 찾았습니다. 모두들 믿지 못한 거죠. 현지 한국 영사(領事)도 의심을 해서 인허가장을 들고 투자위원회에 가서 확인했습니다. ‘수주가 맞다’고 하니까 뒤집어졌죠. 그때 제일 먼저 취재하러 온 게 바로 《조선일보》였습니다.”
 
  기술 수준으로는 그해 착공이 가능했지만 투자금 조달이 문제였다. 투자자들의 과도한 지분 요구로 자금 융통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10개월이면 끝날 공사가 작년 12월 15일에야 준공됐다. 유 대표는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미얀마가 제일 싫어하는 게 ‘갑질’”이라며 “해외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게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도와줄게’라고 말하면서 다가가는 게 아니라, ‘동참할게’라고 하면서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케이블카 사업 성공으로 현재 타국에서도 투자 요청이 온 상태다.
 
 
  “민주주의를 소리 지르는 데모로만 인식하는 게 문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의 자택 정문. 유선하 대표는 “수치가 (2020년 총선에서) 정권을 못 잡으면 다시 정국은 갑갑해질 것이다. 군부가 단독으로 정권을 잡지는 못해도, 군부와 연합한 세력이 집권하면 여전히 부패는 심해지고 발전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수치 정부 출범 이후 도입된 민주주의와 관련 “이번에 (미얀마 정치) 공부를 좀 했다”며 “과도기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최근 5년 동안 거의 민주화됐다”고 말했다. “민주화는 민주화인데, 소위 ‘질서 없는 민주화’가 됐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를 소리 지르는 데모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론도 아예 통제가 없다고 볼 순 없지만 기자들은 거짓말 안 합니다.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아웅산 수치를 비판하는 기사도 씁니다. 언론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깨끗한 편입니다.”
 
  유 대표는 2020년 총선에 수치 정부의 성패가 달렸다고 봤다. 그는 “그때도 수치가 이기면 미얀마는 굉장히 발전하고 선진국 수준의 민주화를 이룰 거라고 확신한다”며 “수치가 정권을 못 잡으면 다시 정국은 갑갑해질 것이다. 군부가 단독으로 정권을 잡지는 못해도, 군부와 연합한 세력이 집권하면 여전히 부패는 심해지고 발전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자신의 사업 성공 비결을 ‘진심을 다하는 인맥관리’라고 말했다. 10년 넘게 해외를 돌아다니다 미얀마를 다시 찾았을 때, 기반을 잡고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지인들 덕분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타인을 어떻게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저는 절대로 컴퓨터·이메일로 안부 서신을 보내지 않습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1974년 9월 28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잉크가 나오는 만년필로 영문 필기체를 씁니다. 연말 되면 (편지를) 한 300통 보내요. 내가 다 직접 쓰고 그림도 그립니다. 인맥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굉장히 바빠야 돼요. 사람들마다 생일도 챙겨서 축하도 해줘야 하지,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어떤 게 갈 것이다’라는 말도 전해 줘야죠. 우리 아들에게도 꼭 당부하고 있어요. ‘내 것을 먼저 줘라, 내 것 안 주면 남도 절대 안 준다’ ‘내 것을 줬는데 남이 뺏어 먹으면 두 번 다시 보지 마라, 나쁜 사람 하나 걸러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 한 명 더 관리해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내가 진심을 안 주는 데 누가 마음을 열겠습니까. 미얀마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해외로 가면서 그 나라 역사·문화 공부를 빨리 안 해요. 문화를 모르고 비즈니스에 접근하면 백전백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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