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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노장 액션스타 배우 조춘

“넌(율 브리너) 할리우드의 민머리, 난 아시아의 민머리”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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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연기경력 60년… 200여 편 영화에 출연. 대부분 얻어맞거나 죽는 악역
⊙ “감독들이 내 몸 보고 겨울에도 웃통을 홀딱 벗겨 찍으려 하니 미치죠”
⊙ 선한 역할 맡겨달라 영화감독에게 부탁하자 “그럼 조춘씨 역할은 누가 합니까”
⊙ ‘쌍라이트’ 혹은 ‘왕라이트’라는 별명… 1980년대 어린이 프로 〈뽀뽀뽀〉에 출연
⊙ 87kg, 169cm, 육식 끊고 매일 운동… “걱정한다고 해결되나요? 그냥 내 철학으로 살아요”
  “그 배지는 뭐예요”라고 물었다. 노란 양복 깃에 달린 배지가 유난히 커 보였기 때문이다.
 
  “국제격투기연맹 배지예요.”
 
  “정회원이세요?”라고 다시 물었다. 영화배우 조춘(曺椿·본명 曺昌成). 1935년생이니 올해 여든네 살. 하지만 얼굴엔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하다. 기자의 물음에 그는 피식 웃었다. 한심하다는 투의 웃음이었다.
 
  “아뇨, 내가 회장이에요. 이 나이에 회원은 아니죠.”
 
노란 양복 왼쪽 깃에 단 국제격투기연맹 배지. 배우 조춘은 국제격투기연맹 회장이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명함 두 장을 내밀었다. 하나는 국제격투기연맹 회장 명함, 다른 하나는 청목(靑牧)평화동지회 상임고문 명함이었다.
 
  “연세로 볼 때 회장에서 물러나실 나이셔서 여쭸는데…”라고 둘러댔으나 이미 늦었다. 조춘은 국제격투기연맹 회장, 세계프로태권도협회 고문이란 직함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무도인(武道人)이라기보다 액션 배우, 혹은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인물이다. 1958년 영화 〈군도〉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연기 인생 ‘환갑’을 맞았다.
 
  〈원한의 애꾸눈〉(1969), 〈용호대련〉(1974), 〈공초도사와 슈퍼 홍길동〉 (1988), 〈외계 번개용〉(1988), 〈할렐루야〉(1997), 〈어느 날 첫사랑이 쳐들어왔다〉(2014) 등 지금까지 2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나 대개 악한, 악당, 악역으로 나왔다. 정의의 편인 주인공에게 호되게 얻어맞거나 ‘큰 대(大)’자로 죽는 역이 대부분이었다.
 
  스스로 “작품 속 배역은 항상 악역이었고, 권선징악으로 죽는 역할을 감수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는 그런 ‘감초’ 같은 역할로 흥미와 재미를 불어넣었다. ‘감초 조춘’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1980년대 어린이 교육 프로 〈뽀뽀뽀〉에 출연할 당시의 조춘.
  대머리(한때는 콧수염까지 길렀다)를 하고 다녀서 ‘쌍라이트’ 혹은 ‘왕라이트’라는 별명으로 사랑을 받았고 영화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1989), 〈땡칠이와 쌍라이트〉(1990)로 어린이의 사랑까지 받았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뽀뽀뽀〉에 출연한 기억이 선명하다. 1~3대 ‘뽀미언니’ 왕영은·길은정·강석란 등과 함께 출연했다. 당시 그의 맞상대는 ‘뽀식이’ 이용식, ‘뽀병이’ 김병조였다.
 
  험상궂은 얼굴과 큰 덩치, 대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조춘은 84세 나이를 무색게 할 정도로 현역 배우다. “할리우드에 율 브리너가 있다면 아시아에는 조춘이 있다”며 스스로에게 마법을 건다. 누가 캐스팅을 의뢰하거나 말거나 조금씩 자라는 머리카락을 매일 자른다. 지난 3월 29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조춘 선생을 만났다.
 
  조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오니까 바쁘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어린이날에 내가 태권도 시범단을 끌고 보라매공원에 갑니다. 이 나이에 붕붕 뜨지는 못하고 시범단을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지금 4050세대가 〈뽀뽀뽀〉 세대들이거든요. 제가 〈뽀뽀뽀〉에 출연할 때 코흘리개들이 이제는 그 시절의 자기 같은 애들 손을 잡고 찾아와요. 〈뽀뽀뽀〉 추억이 있으니까, 저를 보고 박수를 많이 쳐요.”
 
 
  “저는 작품마다 죽었지 산 경우는 없었어”
 
영화 〈땡칠이와 쌍라이트〉 포스터. 조춘(오른쪽)과 김유행.
  ― 데뷔는.
 
  “1958년 〈군도〉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60년입니다. 보통의 시간이 아니죠.
 
  원래 내 나이가 1935년생이에요. 나이가 80 넘었다고 사람들이 이빨 다 빠진 줄 알아요, 날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래서 인터넷에 1940년생으로 고쳤어요.
 
  저는 낭만적으로 살아요. 세상 돌아가는 것 적응해서 살려면 신경 써서는 안 돼요. 나는 다 버려요.”
 
  ― 지금까지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셨나요.
 
  “200편 이상이지요. 대부분 엑스트라만 했으니 다 기억할 순 없고. 일본말로 우케(うけ)라고, ‘받아주는’ 액션이 주특기입니다. 때리면 얻어맞는 역할을 나만큼 하는 배우가 없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감독들이 저를 찾는 이유가 그래요.
 
  물론 비중이 크진 않지만 긍지와 자부심으로 주어진 역할을 100% 소화하려 해요.”
 
  ― 주로 얻어맞거나 죽는 역할을 많이 하셨죠.
 
  “작품마다 죽었지 산 경우는 없었어요. 제 명(命)이 무지하게 길 것 같아요. 작품마다 다 죽었으니까.”
 
1990년작 영화 〈땡칠이와 쌍라이트〉에 출연한 조춘.
외계인의 함대에 맞서 싸우다 지구에 추락한 ‘쌍라이트’로 분(扮)했다.
  ― 죽는 모습도 연기잖아요.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죽어야 잘 죽나부터 연구하죠. 별의별 죽는 모습 다 해봤어요.
 
  뭐, 붕붕 날아가 장독대에 거꾸로 처박혀 죽는 것, 어항 속에 머리 처박혀 죽는 것, 다 해봤죠. 밋밋하게 죽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장독대에 처박혀 있으면 주인공이 쫓아와 냅다 발길질을 합니다. 독이 깨지고 물구나무 자세로 서 있는 제가 픽 쓰러지고…. 어항에 박힌 것도 재미를 주려고 입안에 금붕어를 무는 식으로 연기했어요. 다 고민해서 만든 거예요. 아무렇게나 연기한 게 아니에요.”
 
  ― 감독에게 주인공이나 선한 역할을 맡게 해달라고 조르지 그랬어요.
 
  “그랬죠. 그랬더니, 감독이 그래요. ‘그럼 조춘씨 역할은 누가 합니까.’ 난들 여배우 끌어안고 키스하고 싶지 않나요? 그런데 안 어울린다 말이에요. 내가 하면 닭살 돋는다는 거예요. 뭐, 여배우를 상대한다 해도 멜로가 아닌 겁탈하는 신, 그런데 겁탈도 못하고 주인공이 나타나 얻어터지는 역만 했으니까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내가 자칭 액션 스타인데 누가 써줘야 액션도 되는 것 아니냐고요. 나를 다 필요로 하니까….”
 
  ― 무술 연기도 다 각본대로 하는 거죠.
 
  “다 연기죠. 무술감독 후배들이 저더러는 선배님이 알아서 하라고 해요. 그러니 내가 직접 만들어서 해요. 내 몸이 타이트하잖아요. 짧은 다리, 짧은 몸으로 이단 옆차기를 아무리 해봤자 그림이 안 나와요. 그걸 아니까 제 체구에 어울리는 액션을 만듭니다. 이래 봬도 제가 1961년에 ‘미스터 코리아’에 2위까지 한 몸이니까요.”
 
  조춘은 “몸이 단단하니까 영화감독들이 옷을 벗겼다”고 했다.
 
  “감독들이 겨울에도 내 웃통을 홀딱 벗겨 찍으려 하니 미치죠. 배우들이 제일 힘든 게 뭔지 아세요? 겨울에 여름 장면 찍고, 여름에 겨울 장면 찍는 거예요. 미쳐요.”
 
 
  조농선·조농옥·조금앵 등 유명한 국악인 가족
 
국악인 집안에서 자란 조춘은 각종 행사에 초청받아 노래를 부르곤 한다.
지난 2013년 8월 인천 연안부두 문화공연 모습이다.
  요즘 그는 가끔 ‘행사’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 주로 트로트를 부른다. 웬만한 가수 인기를 능가한다. 그런데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나는 가수가 아니다. 영화배우”라고 말한다. 조춘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절대적인 모양이다.
 
  ― 굳이 가수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배우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그래요. 원 태생이 영화배우니까. 저는 항상 긍지를 가지고 있어요, 영화배우에 대해.”
 
  그는 이 대목에서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9남매 중에 막내입니다. 누님 다섯 분이 지금은 다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지만 과거 여성국극단 활동으로 유명하셨던 분들이세요. 첫째 누님이 조농선, 둘째가 조농옥, 셋째가 조농월, 넷째가 조금앵, 얼마 전 타계하신 막내 누님이 조점례세요. 모두 국악도, 창도 하신 연극인이셨어요. 첫째 조농선, 둘째 조농옥은 명창 반열에 오른 분이셨고, 셋째 조농월은 병신춤으로 유명한 공옥진의 스승이셨죠. 넷째 조금앵은 남원 여성국극의 최후 명인으로 추앙받던 분이셨어요.
 
  제가 누님들 덕에 연예계에 들어왔는데 누님 얼굴에 먹칠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 그래서 노래를 잘하시는군요.
 
  “누님들이 창극 계통에 있었으니까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나도 모르게 옥타브가 올라가더라고요. 집안은 못 속이는구나 싶죠. 흔히 노래방에 가면 사람들이 전부 모니터(가사) 보느라 바쁘지만 난 안 봐요. 옛 노래만큼은 한 자(字)도 안 틀려요. 제가 누구보다 머리는 좋아요.”
 
  조춘은 머리만 좋은 게 아니었다.
 
  “지금도 아이디어가 많아요. 길 가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 차 세워놓고 메모한 다음 집에 와서 작품 구상을 해요. 액션이나 코믹한 장면, CF 장면도 수첩에 빼곡히 적어 놨어요.”
 
  그는 CF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옛 쌍용자동차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기억나세요? 강가에 차 세워놓고 내가 투망을 쳐요. 삼각팬티 바람으로. 그리고 잡은 물고기를 그물째로 차 트렁크에 넣는 거예요. 멋있지 않나요?
 
  서주우유 광고도 기억나요. 그때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있었는데 제가 아이디어를 냈죠. 첫 신(scene)이 축구장 신인데 비쩍 마른 애가 나옵니다. 그 애가 반칙을 해서 프리킥을 받게 돼요. 선수들이 골대 앞에 병풍처럼 섰는데 그 아이만 작은 거야. 공격수가 그 아이 머리 위로 공을 차서 골을 넣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음 신이 뭐냐면, 감독인 나는 조그만 우유를 빨대로 마시고 있고, 비쩍 마른 애는 1리터짜리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는 신이에요. 그 광고가 대박이 났다고 들었어요.”
 
  ― 혹시 생각해 둔 광고 아이디어 없나요.
 
  “있지. 새우깡 광고를 생각해 봤는데, 비행기에서 ‘뽀식이’ 이용식이 걸어 나오고 내가 뒤를 밟지요. 마치 코미디 액션이 벌어질 것 같은 긴박감을 줍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이용식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하고, 내가 다가가 이용식의 귀에다 ‘새우깡 내놔’라고 합니다. 이용식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면서 007 가방에서 새우깡이 와르르 쏟아지는 거죠. 어때요?”
 
  기자는 “새우깡 회사에서 전화 올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넸다.
 
 
  KBS 〈용의 눈물〉과 SBS 〈형제의 강〉
 
  조춘은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 무사로 출연했다. 최고 시청률이 49%까지 치솟았고 1997년 KBS 연기대상 각 부문을 〈용의 눈물〉 출연자들이 모두 가져갔다. 단역이었던 조춘은 물론 상을 받진 못했다.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 출연했는데 한번은 김재형 PD가 “조형, 조형” 하고 날 부르더니, “아, 조형 역시 카리스마가 있어서 이번에 시청률 부쩍 올라가 버렸다”고 그래요. “감독님의 연출기법이 좋아서 그렇죠” 했더니 “아냐, 조춘씨 그 장면 보려고, 시청률이 올랐다”는 거예요.
 
  태조 이성계가 아들 이방원이 미워서 옥새를 가지고 고향인 함흥에 가버리잖아요. 이방원이 아버지를 서울로 데려오려고 함흥에 차사(差使·파견인)를 보낸다고 해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있는데, 이 차사를 보는 즉시 이성계가 죽여 버리잖아요. 그런데 바로 안 죽고 ‘전하…’ 어쩌고 하는데 내가 철퇴로 때려죽이려는 찰나, ‘내일 이 시간에…’라는 자막이 흘러나오고 극이 끝납니다. 그다음에 시청률이 오를 수밖에요. 당시 제 배역은 (이방원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조사의(趙思義·?~1402)의 부하장수였어요.
 
  사실 시청률 0.1% 올리는 것도 힘들잖아요. 그런데 3~4%인가 6%인가, 떠버렸어요. 당시만 해도 정부에서 검열이 심할 때였는데 저더러 너무 악랄하게 죽이지 말라는 압력이 들어왔어요.
 
  이미 대본을 보고 어떻게 죽일까 머릿속에 계획을 짜놨었거든요. 철퇴로 머리통부터 때리면 금방 죽으니까, 어깻죽지부터 자근자근 때려서 마지막에 골통을 부수는 계획을 다 세웠는데 그게 한두 번 칼 쓰는 신으로 바뀐 겁니다. 아쉽지요.”
 
  조춘은 SBS 드라마 〈형제의 강〉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SBS 수목드라마 〈형제의 강〉은 1996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방영된 54부작이다. 탤런트 김주승, 박상민, 염정아, 임상아, 박근형이 출연해 당시 큰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회 시청률이 전국 38.4%를 기록하고 방영 내내 1위 자리를 유지했다”고 한다.
 
  “제가 30대 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 염정아의 기둥서방 역할을 했잖아요. 그 역 때문에 욕을 무지하게 얻어먹었지만 시청률이 확 올랐거든요. 처음 염정아가 밀양 약국집 딸로 나오는데 서울역에 왔다가 건달에게 잡혀 사창가로 팔려갑니다.
 
  내가 출소 후 염정아를 만나는데 나를 보자마자 ‘영원히 교도소에서 썩지’ 그래요. 다음 내 대사가 ‘야, 그래도 감방에서 네 생각밖에 안 나더라’였어요. 그날 시청자들이 배꼽을 잡았습니다. 그러곤 ‘다시 안 찾아올 테니 돈 내놔’라고 염정아를 협박, 200만원을 갈취합니다. 처음엔 단역으로 한 번 출연키로 했는데 재미가 있으니 여러 차례 염정아 주변을 돌며 돈을 빼앗죠.
 
  그럴 때마다 주인공 박상민과 액션 대결을 합니다. 한번은 내가 붕 떠서 박상민을 덮치는 신을 찍는데, 내가 덮치면 상민이가 내 가슴팍을 발로 차는 액션을 짜놨어요. 연습할 때는 제대로 하더니 큐 사인이 떨어지니까 가슴팍이 아닌 얼굴을 차는 거예요. 그때 촬영장이 모래밭이어서 모래가 잔뜩 묻은 구두로 발길질을 하니 얼굴이 모래에 쓸려버린 거예요. 피가 얼마나 많이 났던지….”
 
 
  매일 아침마다 민머리 손질
 
머리를 깎기 전의 모습이다. 조춘은 1973년 영화 〈홍의장군〉에 출연하며 머리를 깎았다. 이후 민머리를 고수했다.
  ― 민머리 손질은 어떻게 하세요.
 
  “매일 깎아요. 지금도 깎고 나온 거예요. 저녁만 되면 삐쭉삐쭉 올라오기 시작해요. 요즘 질레트(면도기)라고, 날이 여러 개 박힌 것 있잖아요. 그거 나와서 편해졌어요. 지금은 뭐, 비누칠하고 10분이면 완성돼요. 48년 동안 깎았으니 이골이 났죠.”
 
  ― 48년이라면….
 
  “1973년에 〈홍의장군〉이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 시절, ‘김두한 영화’에 일본 오야붕으로 나온 배수천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대머리예요. 그런데 옆 머리를 길러 그걸로 깻잎처럼 마빡을 덮어 버렸어요. 거기다 왜장 갑옷을 입고 투구로 (머리를) 틀어막으니까 완전 일본 사무라이가 되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이두형 감독에게 ‘(내가) 백구를 치겠다’고 했죠. 이 감독이야, 자기 영화 빛내겠다는 데 마다할 수 있나요. 원래 제 머리가 말총머리라서 가발을 쓰면 머리가 붕 떠버려요. 그래서 깎아버렸죠. 처음 깎을 때는 수원에 있는 어느 절에서 깎았어요. 주지 스님이 ‘이 좋은 머리카락을 왜 깎느냐’고 하셨죠.
 
  작품이 끝나고 촬영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요. 다시 기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좀 (머리카락이) 자랄 만하면 작품이 들어오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온 거예요.”
 
  ― 옛날에는 민머리에 콧수염까지 기르지 않으셨나요.
 
  “한번은 일본 야쿠자 역을 맡았는데 야쿠자는 모두 콧수염을 길러요. 그런데 콧수염이 남들에게 불쾌감을 주잖아요. 머리까지 없는데… 선입견이 안 좋죠. 그래서 기르다가 깎아버렸어요.”
 
  ― 몸무게, 키는.
 
  “87kg, 169cm. 키가 젊었을 때는 170cm였는데 줄었어요.
 
  ― 헬스장엘 매일 가시나요.
 
  “매일 가요. 제가 육고기를 잘 안 먹어요. 그래서 이렇게 젊어 보여요. 술·담배도 다 끊었죠. 한번 안 한다고 하면 안 해요. 1980년대 말 담배 한 보루를 앉은 자리에서 다 피우고 이후로 담배를 끊었어요.”
 
  그는 “배우 커크 더글러스와 율 브리너를 좋아한다”고 했다.
 
  “커크 더글러스를 좋아했어요. 자세히 보면 얼굴이 저랑 비슷해요. 흉내를 많이 냈죠. 머리를 깎고서는 무지하게 율 브리너를 좋아했어요. ‘네가 할리우드의 민머리라면 난 아시아의 민머리’라고 스스로 말했죠.
 
  젊은 시절, 감독들이 내게 출연 부탁과 함께 원하는 게 ‘백구를 쳐달라’는 겁니다. 그걸(백구) 하면 영화가 빛이 난다면서요.”
 
  ― 젊음의 비결은? 고민이나 걱정은 어떻게 푸나요.
 
  “아니, 걱정을 한다고 해결되면 사서라도 걱정을 하지요. 신경 쓴다고 됩니까. 아니, 된다면 머리 처박고라도 하죠. 안 되는 걸 갖고 신경만 쓰면 뭐해요. 욕심을 버려야 해요. 그냥 내 철학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잔인하고 소름 끼칠 정도의 악당 연기를 하고 싶어”
 
몇 해 전 니트 의류 광고에 출연한 조춘의 모습이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조춘은 1951년 1·4후퇴 때 서울에 정착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기계체조를 했고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등을 합쳐 27단이 넘었다. 학창시절 ‘종로 김두한’의 행동대원을 했다고 한다. “그 시절, 주먹들 중에 지금 대장 노릇 하는 친구도 후배도 있지만 정의로 했던 거지 양아치, 건달은 아니었다. 협객(俠客) 소리 들어가며 주먹을 썼다”고 했다.
 
  “학창시절, 축구면 축구, 배구면 배구, 심지어 아메리칸 풋볼까지 했으니까요. 운동에선 천부적 재질이 있었어요. 운동부에 스카우트돼 중고교 시절 학교 5~6곳을 옮겨 다녔어요.”
 
  ― 누님들이 다 연극인이셨으면 부모님은 뭘 하셨어요.
 
  “예술 집안과는 거리가 멀어요. 옛날에 돈 좀 있고 방귀 깨나 뀐다고 하면 대부분 한량이었는데, 우리 아버지가 한량이셨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와세다대를 다니실 정도로 머리가 깨어 있던 분이셨어요. 아버지는 3형제 중 둘째셨는데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양조장을 할 만큼 부자셨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일본에서 공부하신 분이니 공산주의가 뭔지를 아셨기에 재산을 다 처분하고 1·4후퇴 때 남한에 내려온 거죠. 큰아버지는 배로 해주에서 목포로 내려와 구례 곡성에 정착했어요. 세 집안이 다 피란을 와 지금 이북에 가족이 없어요.
 
  아버지는 서울로 내려와 부자들만 산다는 낙원동에 집을 샀어요. 경운동 24번지…, 그곳은 돈 없는 사람은 못 들어가던 곳이에요. 교동초등 45회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내려와 다시 초등학교엘 다녔으니 학교에서 오야붕 노릇 할 수밖에요.”
 
  ― 학창시절, 배우 기질이 있었나요.
 
  “그럼요, 학창시절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고 장소팔·고춘자의 만담 흉내도 곧잘 내곤 했죠. 소풍 가서 장기자랑도 하고 ‘엉터리 아나운서’라는 타이틀로 친구들 배꼽을 잡게 만들었어요.”
 
  조춘은 연예활동 외에도 활발히 봉사활동을 해왔다. 1995년 대한민국 국민장 연예인 봉사상을 받았을 정도다. 봉사단체나 장애인단체에서 그의 선행이 유명하다고 한다. 법무부 산하 ‘한국갱생보호공단’에서 홍보대사를 맡아 출소자들의 복귀를 돕는 갱생보호사업도 열심이다.
 
  “후배들이 도와달라는데, 연예인이라 해서 돈만 밝힐 수 없어 도와줍니다. 어려울 때 찾아가는 게 정상이에요. 잘나갈 때는 안 찾아도 됩니다.”
 
  ― 어떤 계기로 봉사활동에 나서시게 됐나요.
 
  “1960년대 혁명세력(5·16세력을 의미)이 (주먹들을) 잡는다고 하니까, 유명 국악인이시던 누님들의 명예를 실추시켜선 안 된다는 생각에 봉사활동을 지금껏 해왔던 겁니다. 군부대 위문, 교도소 위문, 경로잔치, 전국 안 돌아다닌 곳이 없어요. 경우에 따라 교통비만 받고도 갔어요.”
 
  ― 배우는 누구나 주연을 꿈꾸기 마련인데 아쉬운 생각은 안 드세요.
 
  “지금껏 주인공 역할을 한 작품이 없어요. 누구든 정의의 편에 서고 싶지요. 하지만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고 빛나게 하는 악당 역할도 주인공이라 생각하면서 연기합니다. 악당 역할도 기억 남게끔 연기해야죠. 그저 흘러가는 연기로 묻히고 싶지 않아요.
 
  정말 잔인하고 소름 끼칠 정도의 악당 연기를 하고 싶어요. 객석에서 아이고, 하고 탄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연기를 하고 싶죠. 인정사정없이 기관단총으로 수백 발을 맞히는 역할도 하고 싶어요. 실감 나게 하고 싶습니다. 주인공에게 얻어맞아 죽어도, 진짜 기억에 남는 죽음을 보여주고 싶어요.”
 
  ― 아직도 연기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아, 많죠…. 연기라는 게 끝도 한도 없어요. 아직도 연기를 한 다음에는 후회가 돼요. 그걸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하고. 그런 아쉬움을 항시 느껴요.”
 
  조춘은 “3년 전만 해도 좋은 기회가 있었으나 아쉽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지고 있는 보석상이 자신의 보석을 알리는 홍보영상을 찍으러 중국에 왔었는데, 그곳에서 한국인 영화감독을 만났어요. 그 감독이 내 후배예요.
 
  제가 후배 감독에게 아이디어를 냈죠. 〈왕과 나〉의 율 브리너처럼 연기하면 어떻겠냐고요. 율 브리너가 쓰던 의상, 깃털 지휘봉까지 준비해서 율 브리너 걸음걸이로 걷는 겁니다. 잘생기진 못했지만 연기로 하면 되니까… 눈썹도 그리면 되고….
 
  내가 구상한 콘티(대본)가 이래요. 중국 쓰촨성 큰 광장에 각국에서 뽑힌 미녀가 길게 줄지어진 길로 (내가) 마차를 타고 달려가다가 중간쯤에 섭니다. 끝까지 가면 재미가 없단 말이에요. 그때부터 율 브리너의 워킹을 하는 겁니다. 미녀 사이를 걸어가는 장면인데…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다 받아요. 마지막 장면은 최고의 미인에게 가장 값비싼 보석을 목에 걸어주는 신입니다. 또 미인의 허리를 붙잡고 키스를 하는 것으로….
 
  그게 됐으면 어마어마하게 이슈가 됐을 겁니다.”
 
  ― 보석 홍보라는 게 사기성 있는 것 아닙니까.
 
  “(보석업자를)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또 오겠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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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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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5-02)     수정   삭제 찬성 : 63   반대 : 69
나 어렸을때 쌍라이트 봐서 아는데 그때 너무너무 재미있게 본게 엊그제인뎅!!!!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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