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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추리소설가 김내성 60주기

“김내성은 과학적이면서 문학적, 논리적이면서 비논리적이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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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록 홈즈에 맞먹는 한국인 명탐정 ‘유불란(劉不亂)’ 탄생
⊙ “김내성의 가정생활은 매우 비논리적이며 감성적”(아들 김세헌)
⊙ “평상을 펴놓고 원고지에 무언가를 쓰시던 모습 떠올라”
  한국 최초의 추리문학가 김내성(金來成·1909~1957)이 사망한 지 올해로 60주기가 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식민지 경성(京城)의 모습과 탐정 ‘유불란(劉不亂)’의 비상한 추리는 매혹적인 근대의 풍경이었다.
 
  명탐정 ‘유불란’은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모리스 르블랑이 창조한 괴도(怪盜) ‘아르센 뤼팽’과 동격의 신출귀몰한 캐릭터였다. 서양식 모자와 안경, 칠흑 같은 단장은 필수품이었고 동양인을 드러내는 ‘빛나는 검은 눈동자’의 소유자였다.
 
  또한 ‘유불란’이 풀어가는 수수께끼와 논리적 추론 내지 반전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소설작법은 이전의 한국문학이 체득하지 못한 방정식이었다. 김내성은 일본 와세다대 제2고등학원 문과와 독법학과(獨法學科·독일법을 가르치는 학과로 추정한다)에 진학하며 서구의 고전과 인문학을 배웠고 정식으로 1935년 일본 탐정문학 잡지 《프로필》을 통해 등단했다. 대표작으로 등단작인 〈타원형의 거울〉, 이듬해 《조선일보》에 연재한 단편 〈가상범인〉과 장편 〈마인〉이 있다.
 
  1939년 12월 단행본으로 나온 《마인》은 해방될 때까지 18판이 찍혔고 한국전쟁 직후에는 30판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김내성은 이후 추리보다는 대중소설로 방향을 틀었다. 암흑의 식민지 현실을 추리적 논리로 다루기가 불가능했던 탓일까.
 
  광복과 해방, 6·25를 겪으며 그는 추리적 요소를 소설에 담았으나 이전과 같은 본격 추리물을 쓰진 않았다. 대중소설 범주에 드는 《청춘극장》 《쌍무지개 뜨는 언덕》 《실락원의 별》 등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1949년부터 쓰기 시작한 《청춘극장》은 6·25 중에도 1만 부가 팔렸고, 전 5권짜리 한 질이 15만 질이나 판매됐다고 한다.
 
김내성은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다. 차녀 도혜와 차남 유헌, 3남 세헌과 함께.
  김내성은 아내 김영순(金永順· 1997년 작고) 사이에 3남2녀를 두었다. 장남(김자훈)은 돌 때 사망했다. 장녀 문혜(金文惠·81)와 차남 유헌(金有憲·72)은 현재 스웨덴에 살고 있다.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스웨덴에 정착한 차녀 도혜(金道惠·작고)는 1974년 뇌일혈로 사망했다.
 
  학창시절, 피아노를 전공한 장녀 김문혜는 경기여고 교사로 재직했었고 차녀 김도혜는 무용을 배웠다고 한다.
 
  3남 세헌(金世憲·68)은 카이스트 정보보호대학원(산업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했다. 명예교수로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한국정보보호학회와 한국경영과학회 회장,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 정보보호협의회 의장, 국가정보원 국가정보보안협의회 산학연 회장을 역임했다. 김세헌 교수의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가 여덟 살이었어요. 그 무렵 《경향신문》에 〈실락원의 별〉을 연재하고 계셨는데 진행상 3/4쯤 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당시 외부에서 원고 청탁이 엄청나게 밀려와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어요.”
 
 
  〈타원형의 거울〉은 억! 하고 놀라고, 다시 한 번 억! 하는 반전
 
김세헌 교수 가족들. 앞줄 왼쪽부터 첫째 딸 김경민, 염인혜, 김세헌, 아들 김현성. 뒷줄 왼쪽부터 첫째 사위 김찬영, 둘째 사위 김지완, 둘째 딸 김경은.
  김 교수는 “아버지는 과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이셨고, 논리적이면서 비논리적이었으며,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셨다”고 회고했다.
 
  “당신은 가정적이셨지만 추리소설을 읽어 보면, 대단히 논리적인 머리를 지니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 제가 과학자가 된 것도 아버지에게 영향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소설은 아니지만 저 역시 논문을 많이 쓰고 신문, 잡지에 기고도 많이 했는데 아버지의 추리소설식 논리 전개를 자주 사용했어요. 그러나 저는 아버지처럼 소설 쓰는 능력은 없었어요.”
 
  아들은 아버지가 걷던 ‘문학의 길’ 대신 또 다른 세상인 ‘과학의 길’을 걸었다. 김 명예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도미(渡美),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물리학 석사, 경영정보공학 석·박사)을 졸업하고 1982년부터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민간 부문에서 정보보호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설파한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정보화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던 시절이었다. 민간에서 정보보안이나 암호법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던 5공 시절, 《경영과 컴퓨터》지(1987년)에 기고한 5편의 정보보호 논문은 용기 있는 발표였다. 1989년에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저서와 연구보고서를 발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과 그 피해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09년 7·7 디도스 사건, 2011년 3·4 디도스 사건과 농협 해킹 사건, 같은 해 현대캐피탈 사건 등 최근까지도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향을 자문해 왔다. 또한 경영과학회 출신 석·박사를 100여 명 배출하는 등 경영과학 분야에서도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 과학자의 눈으로 김내성의 작품을 평가한다면.
 
  “아버지 작품을 읽으면서 구성의 웅대함과 치밀함에 놀랍니다.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의 논리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그런 구성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특히 초창기에 발표한 몇 편의 추리 단편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이 아닌 분은 결코 쓸 수 없는 작품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이 그런가요.
 
  “아버지 작품을 찾아 읽으며 나름 연구한 적이 있어요. 1935년작 〈타원형의 거울〉은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전형이랄 수 있는 작품이죠. 똑똑한 독자 내지 지식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짜였는데 한 번 억! 하고 놀란 뒤 소설이 끝날 무렵 또 한 번 억! 하는 반전이 나타납니다. 일본 추리문학계조차 〈타원형의 거울〉은 지금까지 높이 평가하죠.”
 
  〈타원형의 거울〉은 일본어로 쓰였으나 1938년 한국어로 개작해 발표할 때는 제목이 〈살인 예술가〉로 바뀌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평양 대동강변에 위치한 중견소설가 모현철의 집 안방에서 아내 도영이 교살된 채 발견된다. 용의(容疑) 선상에는 남편 모현철과 유광영, 중국인 노비 청엽과 그의 딸 계옥이 오른다. 유광영은 죽은 도영의 옛 애인이자 모현철의 문하생. 유광영이 범인으로 지목되지만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다. 이후 모현철은 자살을 의미하는 편지를 남긴 채 사라진다.
 
  유광영은 경성의 탐정소설 전문잡지 《괴인》의 현상공모에 자신의 경험담을 써 응모한다. 도영이 죽기 전 자신과 다툰 것이 바로 모현철에 의한 연극적 트릭이었단 사실을 담았다. 당선작으로 뽑힌 유광영은 그러나, 《괴인》의 편집장 왕용몽이 모현철이란 사실을 알게 돼 놀라지만 이내 사건의 전말을 경찰에 신고한다.
 
  김 교수의 말이다.
 
  “일본어로 쓴 〈타원형의 거울〉 같은 작품은 진정한 천재가 아니면 못 쓸 작품입니다. 그런데 일반 가정사에서 아버지는 머리가 안 돌아가셨어요. 돈 관리를 귀찮아하셨고 어머니에게 맡기셨으니까요. 어머니는 함경도 원산의 명문인 누씨(樓氏)여고와 중앙대 전신인 서울 중앙보육학교를 나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수리 개념에 약했지만 어머니는 수학을 잘하셨어요. 저는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수학을 잘했으니까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충실한 부인이자 친구, 동업자
 
김내성은 작품을 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내 김영순과 장기를 두었다.
  — 가정에서 김내성은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지의 가정생활은 매우 비논리적이며 감성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비가 오면 감기가 들까 봐, 지난밤 꿈자리가 나쁘다고 학교에 보내지 말라고 하셨죠.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어서 초등학교 1학년 출석률이 절반을 조금 넘을 정도였어요. 또 밤늦게까지 시험 공부하는 누님과 형님을 애석하게 생각해 일찍 자도록 야단치는 모습도 떠오릅니다.”
 
  — 왜 그러셨을까요.
 
  “나중 어머니 말씀이 그랬어요. ‘큰형이 일찍 폐렴으로 죽었는데 그때 비가 많이 왔나 봐요. 그 아픈 기억 때문에 비가 오거나 일기가 좋지 않을 때 행여 감기에 걸릴까 봐 등교를 말렸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아버지가 뇌일혈로 돌아가셨는데 고혈압에 나쁜 콜레스테롤, 담배를 모두 하셨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기름진 음식과 술, 담배를 좋아하셨다”고 했다.
 
  “주량은 맥주 댓 병 정도, 담배는 하루에 한두 갑 정도셨어요. 아버지가 생전에 계실 때 우리는 돈암동(동선동 4가 234번지) 한옥에서 살았어요. 안방이 있고 마루, 건넌방, 아랫방이 있는데 아버지는 건넌방에서 작업을 하셨죠. 항상 평상을 펴놓고 원고지에 무언가를 쓰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셨나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정해 둔 다섯 살 연상의 여자와 조혼을 하셨지만 8년 만에 헤어지고 동향인 어머니를 만나셨어요. 일곱 살 연하인 어머니는 충실한 부인이자 친구였으며 동업자였어요. 아버지가 집필 도중 쉬실 때에는 항상 같이 장기를 두시곤 하셨죠. 외출하실 때도 같이 다니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내외가 자녀들 몰래 사교춤을 배운 일도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생 두 딸에게 들켜 사교춤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김 교수의 말이다.
 
  “두 분은 대화를 자주 하셨어요. 담배연기 자욱한 건넌방에서 마지막 작품인 《실락원의 별》에 대해 얘기하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으로 《실락원의 별》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강석운’과 ‘고영림’의 마지막 행로를 묻는 편지가 많았어요.”
 
 
  21세기에 김내성 소설이 읽히는 이유
 
김내성 사후 1주기 때 가족 친지와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3번째가 부인 김영순 여사. 그 옆의 아이가 아들 김세헌 교수다.
  — 21세기에도 김내성의 소설이 읽히는 이유는.
 
  “아버지의 글은 소설이지만 논리가 정연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논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1905년에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논문에 전 세계가 지금도 열광하는 이유는 그 논문의 논리입니다.
 
  수천 년이 지나도 논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타원형의 거울〉과 〈마인〉은 추리소설이 가져야 하는 전형적인 반전을 뛰어나게 포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러한 뛰어난 반전은 천재적인 발상 없이는 만들 수 없어요. 현재의 독자들이 이 두 작품을 읽어 보면 추리소설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에 나오는 반전은 독자들을 매료하고 있습니다. 저는 〈타원형의 거울〉과 〈마인〉에 나오는 반전이 크리스티 작품의 반전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현재의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김내성의 후손들은 그의 예술혼이 흐르고 있을까.
 
  김내성의 장녀 문혜는 결혼해 1남2녀를 낳았다. 아들이 스톡홀름대 경영학 교수라고 한다. 차녀 도혜는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딸은 미술을 전공했고 아들은 경영학을 전공했다.
 
  3남인 김 교수는 아내 염인혜(廉仁惠)씨 사이에 1남2녀를 두었다. 큰딸은 변호사, 둘째 딸은 약사다. 아들은 서울대 의대를 나와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다. 아내 염인혜씨는 시모를 정성껏 부양해 다니던 교회에서 효부상을 받았다고 한다.
 
  — ‘김내성 전집’을 발간할 계획은 없나요.
 
  “그런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그런 작업을 하기보다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지원을 통해 정부 사업으로 추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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