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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危機)의 보수

김용갑 前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조국 현 민정수석에게 말한다

“문제되는 청와대 행정관 정도는 한칼에 자를 수 있어야 진정한 민정수석”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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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정수석의 역할은 민심과 여론 전달… 인사(人事)도 민심 전달의 한 방법
⊙ 반대 세력 있는 현장도 직접 찾아야
⊙ 내 소신은 “나라 살리는 게 우선”과 “직언(直言)”
⊙ “대통령 잘못 지적할 줄 모르면 민정수석 자격 없어”
⊙ 단순 보고와 직언의 차이는 분석과 대안 제시

金容甲
81세. 육사 17기 /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총무처 장관 역임.
15·16·17대 국회의원, 現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김용갑 전 민정수석은 “민정수석의 역할은 직언”이라고 얘기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내각 구성이 휘청거리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민정수석은 정부 고위 인사들에 대한 인사 검증의 책임을 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우병우 민정수석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불렸고 현재는 조국 민정수석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역대 민정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문재인 수석과 이호철 수석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인사권과 사정권을 다 쥐고 있는 민정수석은 언제부터 권력의 핵심이 됐으며 민정수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5공화국 시절인 1986~1988년 민정수석을 지냈던 김용갑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을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만났다.
 
  김용갑 고문은 ‘보수의 아이콘’이다. 1996년부터 2008년까지 3선(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가보안법 수정 반대, 한나라당의 보수성 강화를 주장했다. 2000년 국회에서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를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말했던 사건은 그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는 각계 원로들의 모임인 7인회(강창희·김기춘·김용갑·김용환·안병훈·최병렬·현경대)의 멤버로 알려졌다. 특히 김 고문은 대선 전 박 전 대통령에게 “민정수석 한 사람만 잘 써도 나라가 평안하다”며 “검찰 출신이 아닌 민정수석을 택하라”고 수차례 조언한 바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민정수석의 역할은 직언(直言)”이라고 강조했다.
 
  ― 육사,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출신인데 민정수석으로 발탁됐습니다.
 
  “1986년 일인데 모시고 있던 노신영 안기부장이 총리로 임명받은 후에 안기부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러 미국 버클리에 가 있었어요. 정권 초기부터 민정수석을 해왔던 이학봉 전 수석이 안기부 2차장으로 발령받으면서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통령이 기다린다기에 1년 만에 미국 생활을 접고 들어왔죠.”
 
  ― 민정수석이라는 자리가 낯설지 않았습니까.
 
  “어떤 역할인지 잘 알고 간 건 아니었습니다. 부하 직원들에게 전임자가 어떻게 했다는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저 나름대로의 민정수석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민정수석의 가장 큰 역할은 ‘직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 10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통일부 장관 업무보고 도중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일방적인 대북정책을 질타하고 있다.
  ― 현장을 뛰었던 민정수석으로 유명합니다.
 
  “민정비서실의 역할이 국민여론 동향을 파악하는 건데 청와대에만 있으니까 알 수가 있어야지요. 첫 3개월 정도는 수석회의에서 ‘특이사항 없습니다’만 반복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정계(政界)는 내각제와 직선제를 놓고 여야가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해외순방 간 사이에 야당이 대전공설운동장에 2만명을 운집, 직선제 개헌을 논의하는 행사가 있었거든요. 선글라스 끼고 행사장에 들어가서 참관했습니다. 그 후 순방에서 돌아온 대통령이 정국 구상을 위해 사흘간 수석회의도 안 하고 보고도 안 받겠다고 했는데, 딱 한 시간만 달라고 했어요. 민심을 설명했습니다. ‘땡전뉴스’ 없애자고 건의한 것도 이때였고, 전기환, 전경환씨 문제와 대통령 처가에 대한 소문도 이야기했습니다.”
 
  ― 반응이 어떻든가요.
 
  “처음엔 ‘당신이 거길(야당행사) 왜 갔어, 프락치(첩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잖아’라고 하더군요. 민심이 이대로 간다면 공권력으로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고, 계엄령까지 고려해야 할 상황이 된다고도 했습니다. 제 얘길 다 듣더니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며 고민이 풀렸다고 했습니다.”
 
  ―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렸죠.
 
  “보수가 바로 서는 일은 국가 존망과 직결되는 일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습니다. 과거 한나라당이 보수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원희룡, 남경필 같은 소장파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 딴엔 새 정치라고 하겠지만 당이 더 이상 우측으로 가서는 안 된다, 좌측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원내총무가 김덕룡이고 부총무가 남경필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국보법과 관련해서 원내 발언 기회에서 자꾸 내 이름을 빼는 거예요. 항의해서 결국 발언 기회를 얻긴 했는데 어떻게 보수 내에서도 국보법을 지켜내려 하지 않고 이럴 수가 있는지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본회의장에서 발언을 하다 쓰러졌다니까요.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겠죠. 하지만 안보를 제외한 문제는 다 균형감각이 있었고 야당과 건설적인 토론도 많이 했었어요. 야당 의원들도 국가보안법 빼고는 다 존경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야당 시절 한나라당의 김용갑 의원. 김용갑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조언자 모임인 ‘7인회’의 일원으로 알려졌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인회’로 불리고 있습니다.
 
  “7인회라는 건 언론이 만든 얘기일 뿐이죠. 가끔 모여서 박근혜 후보에게 조언하고 싶은 얘기를 한 것뿐이지 전혀 영향력이 있는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 의원 시절 당내 유력 대선주자가 이명박-박근혜 두 명이었는데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명박 후보는 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고 박근혜 후보는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직접 만난 건 이명박 후보가 먼저였죠. 민정수석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이었는데 내 육사 시절 친구를 통해서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갔고, 왜 왔는지 궁금했는데 생각해 보니 정주영 회장이 만나보라고 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중에 대선 출마를 도와달라고 찾아왔는데 의정활동도 같이하고 그래서인지 내가 자기편이 돼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관계보다 내가 스스로 결정한 후보를 돕고 싶다, 나는 박근혜를 지지하겠다 라고 말했죠. 그땐 박 전 대통령이 강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박 전 대통령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 못했습니까.
 
  “우리가 봤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놀랍고 안타까울 뿐이죠. 한 번 놀랐던 적은 있어요. 박근혜 대표 시절에 보니 국가보안법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지 않더라고요. 언론 인터뷰를 하는데 국가보안법 명칭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당장 전화를 했어요. 법 이름을 바꾸는 건 이 법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더니 잘 몰랐다고 하는 겁니다. 그때 약간 불안함은 느꼈는데 워낙 선거도 잘 치르고 본인의 철학이나 고집도 있다고 생각해서 믿었죠. 본인 성격이 깔끔하고 친인척이 별로 없으니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떠났습니다.
 
  “2008년 1월입니다. 보수 정권이 탄생했으니 보수와 안보를 지키는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만두기로 한 겁니다. 원래 3선만 하면 그만두기로 했어요. 솔직히 한나라당 후보로 영남 지역에서 선거를 해보니 너무 쉬운 거예요.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정수석의 역할은
 
김용갑 전 수석은 6·29선언의 실질적인 조언자다. 2005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김용갑 민정수석(왼쪽)이 전두환 대통령(오른쪽)에게 6·29선언을 조언하고 있다.
  그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해 “대통령이 국정을 공직자도 아닌 비선(최순실)과 의논한 것을 파악을 못 했건 알고도 못 막았건 민정수석의 직무 유기”라며 “대통령에게 복종만 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한 만큼 진작에 잘랐어야 했다”고 말했다. 조국 현 민정수석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하긴 이르지만 대통령에게 제대로 직언을 하지 못하면 정권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만큼 민정수석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민정수석 시절 직언을 많이 했는데, 최근에는 ‘할 말은 하는 민정수석’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 들어가면 분위기가 다르고 공기가 달라요. 대통령이 하는 일에 반기를 들기 어려운 분위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인사도 대통령이 어떤 마음을 먹으면 거기에 누구도 반대를 하기 힘들어요. 또 반대로 참모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있습니다. 똑바른 시선을 가진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안 되는 게 문제죠.”
 
  ― 민정수석과 총무처 장관 시절 당시 인사를 잘 한 것으로 평가받는데, 인사의 비법이 있습니까.
 
  “사심(私心)이 없으면 돼요. 민정수석을 하면 이다음에 내가 다른 일은 안 하겠다, 어떤 자리로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사심 없는 인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자꾸 흔들리는 거죠.”
 
  ― 인사에 비선 실세가 끼어드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그런데 적어도 내가 있을 때는 강하게 나가서 그런 일이 없었어요. 총무처 장관 시절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공기업 인사를 다 마무리하고 대통령 결재까지 받았는데, 민정수석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모 공기업 사장 내정자인 A씨가 건강이 안 좋은 것 같다는 겁니다. 본인한테 직접 확인할 만한 사안이 아니어서 그 사람과 함께 일했던 고위 공직자 두 명한테 인사 얘긴 안 하고 A씨 요즘 건강 괜찮냐고 물어봤지요. 그랬더니 멀쩡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대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민정수석이 또 전화 와서 A씨는 안 되겠다며 B씨를 추천하길래 누가 그런 얘길 하는 거냐고 캐물었더니 대통령 인척 C씨가 대통령한테 압력을 넣은 거였어요. 그 후 대통령이 전화 왔길래 ‘각하, 인사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결재를 하기 전까지는 바뀔 수도 있지만 최종 결정까지 만전을 기해야 하고, 결정한 후에는 번복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인척이든 영부인이든 사람을 쉽게 추천하면 안 된다고 얘기했어요. 또 대통령에게 꼭 생각하는 인사가 있다면 미리 말해 달라고, 그래야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했더니 대통령이 수긍했습니다. 이때부터 인사 검증 시스템이 갖춰지기 시작했고 인사 검증에 건강문제까지 포함시키게 됐습니다.”
 
 
  인사에 책임을 져야 진정한 민정수석
 
   김 고문은 “검찰 출신이 민정수석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상명하복에 길든 검사는 민정수석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며 “검사는 태생적으로 상사에게 쓴소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민정수석을 잘 쓰라고 수차례 조언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엔 가끔 통화를 했습니다. 내가 한 가장 중요한 조언은 민정수석을 잘 쓰라는 거였어요. 직언을 할 수 있는 민정수석 한 사람만 있어도 국정운영을 잘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민심을 잘 듣고 정무적 판단을 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는 사람이 민정수석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민정수석 할 때는 이른바 좌파 세력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균형을 갖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다 듣고 분석 후 대안을 마련해서 대통령한테 얘기해 줘야 합니다.”
 
  ― 대통령이 된 후에는 통화를 못 했다고요.
 
  “대통령 되고 나서는 원래 전화를 쓸 수 없고, 3인방(안봉근, 정호성, 이재만) 중 한 명의 전화를 겨우 알게 돼서 전화했더니 반응이 차갑더군요. 그래서 더 이상의 조언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고 연락을 포기했습니다.”
 
  ― 현재 민정수석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자면 여성비하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청와대 행정관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과감하게 자르겠다고 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문제 있다고 하는데 왜 자르지 못합니까. 대통령이 못 자르겠다면 민정수석인 내가 나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 행정관 한 명 때문에 그러는 건 어찌 보면 좀 과격해 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장관이든 행정관이든 문제가 아니죠. 민정의 역할은 대통령의 좋은 통치를 지원하는 겁니다. 주변에 문제 되는 사람이나 사안이 있으면 배제해야 돼요. 민정수석은 어차피 평생 직업도 아닌데 왜 그 자리를 걸지 못합니까. 내 목을 걸고 직언을 해야 합니다.”⊙
 
민정수석이란
 
  민정(民政)은 국민을 살피는 역할이라는 뜻으로, 민정수석실은 민정, 공직기강, 법무, 민원의 세부 조직을 둔다. 민정수석은 여론이나 민심 등을 통해 국민의 뜻을 살피고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으며 법률문제를 보좌하고, 대국민 민원 업무를 행한다. 또 고위 공직자의 인사 검증, 직무 관찰, 대통령 친인척 감찰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인사 검증 권한을 기반으로 검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5대 사정기관(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감사원)을 총괄하여 이 기관들이 생산하는 정보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다.
 
  특히 공직자 감찰 및 사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 2000년 공직자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이후 공직인사 검증이 중요한 업무가 되고 있다. 감찰과 사정기관 조율 등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수사경험과 검찰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검사가 주로 민정수석직을 맡게 됐다. 2000년 이후 재직한 민정수석 19명(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두 차례 민정수석을 역임해 인물 숫자로는 18명) 중 73.7%(14명)가 검찰 출신, 변호사 출신이 15.8%(3명/문재인 2회, 전해철 1회), 비법조인 출신이 10.5%(2명/조국, 이호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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