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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출연작 100편 넘은 배우 이경영

‘내가 뭐 잘났다고…’ 하는 생각에 출연 거절 못 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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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배우는 조연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단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 연기하는 그 순간, 행복하지… 않다. 고통스럽다
⊙ 출연 영화가 100편이 넘으면서 한국 영화계는 ‘이경영 쿼터제’를 준수 중
⊙ 악한(惡漢)이 즐겨야지 주인공이 산다… 아무리 악한이라도 캐릭터 믿음 갖고 연기해야
  아침에 일어나는 새가 이경영(李慶榮·58)이란 말이 있다. 이경영처럼 일하고 정승처럼 써라, 소가 이경영처럼 일해야 한다는 말도 회자한다. 심지어 ‘충무로 노예’로도 불린다. 요즘엔 TV 예능(채널A 〈개밥주는남자 시즌2〉)으로까지 발을 넓혔다.
 
  출연 영화가 100편(비공식 집계 110편)이 넘으면서 한국 영화계는 ‘이경영 쿼터제’를 준수 중이란 말까지 나왔다. 얼핏 떠오르는 근작을 꼽으라면 무거운 톤의 보스로 존재감을 드러낸 영화 〈보스〉, 출세 지향적인 보도국장으로 분(扮)한 〈더테러라이브〉, 해고 노동자의 분노에다 막장가족의 애증까지 비벼 넣은 〈죽이러 갑니다〉, 경찰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된 철거민 ‘박재호 역’으로 부일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소수의견〉, 오랜만에 멜로에 도전한 〈관능의 법칙〉, 냉혹한 고문 기술자 ‘이두한 역’을 맡았던 〈남영동 1985〉까지 그의 필모그래프는 불가능을 모른다. 개봉을 앞둔 〈군함도〉와 〈물괴〉, 최근 개봉을 한 〈리얼〉, 아직 촬영 중인 〈자전차왕 엄복동〉까지 숨 가쁘다.
 
  감초 같은 단역은 물론 조연, 주연 가리지 않는다. 수년째 다작을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 미스터리. 도대체 그의 매력은 뭘까.
 
  한국의 남자배우들이 마초 기질의 말론 브랜도나 알파치노처럼 연기할 때 그는 존 큐잭이나 숀팬 같은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할까. 주연이 아닌데 주연 곁에 꼭 있어야 하는…. 악역도 이경영식(式) 악한은 지저분하지 않다.
 
  ‘돌싱’인 그는 집(경기도 고양 정발산동)과 촬영장, 집 앞 단골 족발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며 만개하는 절정의 50대 후반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족발집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 족발집을 운영한다는 얘기가 돈다.
 
  “무슨 소리인가. 그냥 단골일 뿐이다.”
 
  — 왜 그런 소문이 도나.
 
  “하도 자주 가서. 배우들, 제작자들과 함께 가고, 내게 출연을 부탁하러 오는 이들까지 이곳에서 만난다. 간혹 출연을 거절할 때도 있다. 그러면 ‘거절까지 했는데 저희하고는 족발 안 드시나요?’ 한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족발을 같이 먹다 보면 분위기가 긍정적(출연)으로 바뀐다. 하하하.
 
  1990년대 충무로에서 뛸 때 출연료를 받으면 장충동 족발을 자주 사 먹었다. 그 시절 추억이 떠올라 아무리 질려도 족발을 먹는다. 인터뷰 시간을 저녁에 잡았더라면 (김 기자도) 족발을 먹었을 텐데….”
 
  침샘이 갑자기 촉촉해진다.
 
 
  “대중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
 
출연작이 100편이 넘는 배우 이경영.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강인국으로 출연했다. 〈암살〉은 127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 ‘충무로 노예’의 비결은 뭔가.
 
  “본의 아니게 9년을 쉬다가 기회가 온 거다. 늦깎이 배우가 된 느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물론 1990년대 데뷔할 때도 다작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차이가 크다.”
 
  — 어떻게.
 
  “작품을 대하는 태도, 주변(현장 스태프, 연출, 배우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나이만큼 넓어졌다고 할까? 많이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쪽이다. 간혹 현장에서 내가 제일 연장자일 때도 있다.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내 나이가 도움이 되는 존재가 돼 버렸다.
 
  다짐한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하고. 배우는 철들면 안 된다. 철들면 끝장이다. 평생의 꿈 중의 하나가 ‘철들지 않는 것’이다.”
 
  — 몇 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제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나.
 
  “글쎄… 촬영장에 있을 때 가장 깨어 있는 시간 같아 신나고 즐겁다. 오히려 현장 밖에선 에너지가 없다. 현장의 시간이 현실 같고, 일상의 시간이 비현실 같다. 나는 어디에 서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을 떨쳐버리고 잊지 못하면 다작하기가 힘들다. 빨리 비워내고 채워야 된다. (다작을 했지만) 넘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비워냈으니까….”
 
  — (출연)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인가.
 
  “마음이 약해서라기보다 ‘내가 뭐 잘났다고…’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언젠가 (안)성기 형님이 ‘작품 좀 살살해~’ 하셨다. 그 말에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그래도 내 의지대로 택한 작품이 한 해 1, 2편은 있어 (부족하다고 느끼는 작품과) 상호작용한다. 그러나 엄청난 경험의 시간은 어느 것도 대신하기 어렵다. 고스란히 내 자산이다.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벌써 출연작이 100편이 넘었다는 사실에….”
 
경기도 고양 일산 자택 부근에서 기자와 만난 이경영. 그는 집과 촬영장, 집 앞 단골 족발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며 다작배우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그에게 아픈 기억을 헤집고 싶지 않아 질문을 하진 않았다. 그는 2002년 불미스런 일로 기소되고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왜곡되고 비틀린 사실에 분노하고 항변하고 싶었겠지만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9년여 침묵의 시간을 보낸 뒤 충무로에 돌아왔고 그 공백을 메우려는 듯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겉보기는 생김새가 진지하고 생각이 아주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의외로 심플하다. 나는 지난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지금 보완해야지, 과거로 돌아가 보완할 수 없잖아. 앞으로의 시간이 중요하다.”
 
  — 롱런 비결은.
 
  “친한 후배 김민종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대중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고. 대중보다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 사람의 일이란 몰라서, 현장에 불성실했는데 대중의 선택을 받을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는 “긴 터널을 지난 후여서 새롭지 않은 것이 없고,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출연료가) 더욱이 빚 감당에 도움이 되고…”라고 했다.
 
  — 빚은 얼마나 갚았나.
 
  “지금은 어깨를 짓누를 정도는 아니다. 거의 갚았다. 빚을 경험한 이는 안다. 액수를 떠나 늘 덜미가 잡힌 느낌이다. 이자 준비가 안 됐을 때의 불안감… 이대로 영영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물론 최종 결정은 내가 했지만, 남이 싸질러놓은 똥을 마지막까지 다 치웠다.”
 
 
  악역, 어떻게 하면 더 나빠 보일지 고민해
 
영화 〈내부자들〉. 이경영은 정치인 장필우로 분(扮)했다(왼쪽).
영화 〈남영동 1985〉. 이경영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모델인 ‘이두한 역’을 맡았다.
  스크린에서 이경영이 분한 캐릭터는 한국 사회 중년 남성의 일그러진 모습과 닮아 있다. 〈내부자들〉의 장필우 역, 〈제보자〉의 이장환 역이 그렇다. 부패와 거짓과 타협하며 진실을 외면하는 악한들이다.
 
  “중년의 모습… 뭔가 이뤄낸 것 같은 기쁨의 시간보다 고통스런 시간이 많고,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으나 어느 곳에도 올곧게 뿌리 내리지 못한 세대… 그래서 절박하고 절망스럽고 욕심이 많아 보이는 자화상이 악한 캐릭터들이다.”
 
  — 그럼, 악역은 어떻게 연기하나.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연기한다. 아무리 악한이라도 캐릭터에 대한 믿음을 갖고 연기해야 한다. 이 사람도 이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하며….
 
  악한이 즐겨야지 주인공이 산다. 사실 주인공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가치보다 악역의 에너지가 더 많이 (영화에) 투영된다. 나는, 어떻게 하면 더 나빠 보일지 고민한다(웃음). 내게 악역 섭외가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 시대의 기성세대가 ‘썩 잘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또 우리 사회 기득권을 기본적으로 악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대중은 영화를 보며 불편한 진실과 만난다. ‘그들은 왜 안 나눠주지?’ ‘저 사람의 100만분의 1만 가져도 우린 행복할 텐데’ 하고 느낀다.”
 
  〈남영동 1985〉에서 이경영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모델인 ‘이두한 역’을 맡았다. 그는 ‘클레멘타인’을 휘파람으로 부르며 고춧가루 고문과 물고문을 하고 김종태(박원상 扮)에게 거짓 자백을 강요한다. 죽지 않고 까무러칠 만큼 고문하려 초시계를 재는 모습은 압권이다. 관객들은 러닝 타임 내내 불편하고 고통스런 폭력적 현실과 마주한다.
 
  “고문을 사실에 가깝게 그리다 보니 현장 스태프가 초긴장 상태였다. 고문을 당하는 박원상 배우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녹초가 됐다. 후유증이 오래갔다. 영화는 ‘컷’과 ‘분할’로 가려지겠지만 어쩌면 현실은 더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국 영화는 정치이념과 무관한가.
 
  “사람이 믿고 싶어하는 진실이 있다. 민주주의가 그렇지 않은가? 같은 시각만 존재하면 이상한 사회일 것이다. 상호 충돌하지만 다양한 시각이 존중받아야 한다. ‘저건 내 생각과 틀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건 내가 몰랐던 진실이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좌우로 나눠 싸우지 않았으면 한다. 영화는 문화다. 문화는 흐르게 둬야 한다. 흐르지 않고 가둬두면 발전할 수 없다.”
 
  — 배우가 무대에서 느끼는 기쁨이란.
 
  “공동의 목표점을 향해 갈 때, 서로 격려하고 토닥이며 함께 간다는 인식이 강해질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데 연기하는 그 순간은 행복하지… 않다. 고통스럽다. 어느 배우도 ‘내가 이렇게 연기를 잘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목표점을 향해 조금씩 전진한다. 그리고 감독이 ‘컷. 오케이’라고 할 때 ‘해냈구나’ 하는 기쁨을 느낀다. ‘자, 다시 한 번 갑시다’는 소리를 들으면 맥이 빠진다.”
 
  — 배우의 연기를 ‘내적 진실의 표현능력’으로 보기도 한다.
 
  “배우는 선한 역이든 아니든, 숙명적으로 다양한 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흡수를 통해 방출하려면 인격이 열려 있어야 한다. (인격이) 닫혀 있으면 흡수도 방출도 안 된다. 어쩌면… 배우에게 다중인격은 필수요소가 아닐까.”
 
  — 그런데 인기 배우의 인격이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다.
 
  “모르겠다. 배우는 끊임없이 판단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누구를 판단할 때 조심스럽다. 판단되는 속에 살다 보니,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못한다. 나는 그렇다. 나는 누군가에게 속을지라도 선의로 보려 한다.”
 
 
  Acting is Believing
 
  — 좋은 연기란.
 
  “‘액팅 이즈 빌리빙(Acting is Believing)’이란 말이 있다. 연기는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서로의 연기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서로가 빌리빙(믿음)한다는 의미다. 연기는 혼자 하지 않는다. 서로가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이 믿음이 바로 연기의 리액팅(상대 반응에 대한 연기)을 완성한다. 어쩌면 ‘믿는 것’과 ‘리액팅’은 같은 뜻이 아닐까.”
 
  이경영은 “완벽한 조화를 위해 상대 연기자를 보완해 주는” ‘보완색 연기론’을 강조한다. 배우 오현경 선생이 강조하는 ‘앙상블 연기’와 같은 맥락이다.
 
  “서로 공감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특별한 정서를 표출하거나 튀는 연기를 하면 서로 믿음이 깨진다. 굳이 표현하려 애쓰지 않고 관객이 느끼게 만드는 연기가 중요하다. 게리 쿠퍼가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기를 하나도 안 한다. 그런데 편집실에서 필름을 돌려 보면, 현장의 모든 움직임에 반응한다. 눈빛 하나까지.
 
  나에겐 여전히 숙제다. 아직 뭔지 모르겠다. 평론가들이 내 연기를 ‘무채색 연기’라고 한다.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모호성…. 평자(評者)들조차 내 연기의 답을 못 찾은 모양이다. 폴 뉴먼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이제 연기가 뭔지 알 것 같다’고 한 말이 정답이 아닐까.”
 
  — 자신의 발성에 만족하나.
 
  “만족하는 배우가 어딨나. 일상 언어에 가깝게 말해야 상대와 조화가 깨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사투리를 쓰면 안 어울린다. 경상도, 전라도 방언에 익숙한 배우들은 2개 국어를 쓰는 것 같다. 배우 김윤석은 충청도가 고향인데 부산에서 성장해서인지 사투리 구사력이 뛰어나다. 부럽다.”
 
  — 배우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가까운 이들에게 ‘버텨라’ ‘견뎌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온다. 버티지 않으면 기회 자체가 오지 않는다. 생활고, 재능의 부족, 어떤 다른 욕망 때문에 힘들 수 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한때 이경영은 안성기, 박중훈과 함께 1990년대 남자배우의 한 축을 떠안았었다.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충무로 배우들이 모두 퇴장한 상태다. 강수연, 심혜진 같은 배우의 얼굴도 떠오른다.
 
  — 1990년대 함께했던 그 많은 배우는 어디로 갔나. 못 버텨서 사라졌나.
 
  “나만 남았다. 외롭기도 하고 미안하다. 그땐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설경구, 송광호가 막 등장할 무렵이다. 얼굴이 아닌 연기력이 배우의 기본이던 시절이다. 언젠가 문성근 형하고 만나 이런 말을 했다. ‘형, 이탈리아 문예 부흥기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듯, 우리도 메디치 역할을 조금은 했지 않았수?’라고.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영화 시장구조도 너무 빠르게 변했고….”
 
  — 잊힌 배우들을 다시 볼 수 없을까.
 
  “사실 〈조연배우들〉이란 예능프로를 기획 중이다. 내용은 심플하다. 조연배우의 일상과 삶을 이야기한다. 한때 주연이었다 해도 평생 주연이 될 수 없다. 모든 배우는 조연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단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혹여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조연이 있다면 그 사연이나 열정을 들어보는 것이다. 감독이나 연출자가 생각하는 배우론, 톱 배우의 조연배우에 대한 응원 영상을 곁들이면 어떨까.”
 
 
  한양대 연극영화과 85학번 ‘불가사의’ 2가지
 
데뷔 5년 차 때인 1992년 영화 〈하얀전쟁〉에서 이경영은 전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변진수 일병’으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1960년생인 이경영은 충북 충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충남대 경상학부에 입학(1980년)했지만 그만두고 군 제대 후 한양대 연극영화과 85학번으로 입학한다. 개그우먼 박미선, 영화 〈파이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을 연출한 송해성 감독이 입학 동기다. 설경구는 1년 후배.
 
  연영과 85학번 사이에 지금도 불가사의로 남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배우 지망생이던 박미선이 개그우먼이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경영이 배우가 된 것이다. 그는 학교에서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인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군 제대 후 입학했으니 내 얼굴이 스무 살의 앳된 얼굴이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엔 배우 할 생각이 없었고 실존철학에 빠져 있었다(웃음). 회색이어서 운동권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다. 당시 연영과는 인문대에 속해 있었는데 영문과 다음으로 입학성적이 높았다. 박미선은 당시 끼가 없었다. 너무 순박해 아무것도 모르는… 속으로 이 친구는 연극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경구와는 단짝이었다. 둘은 아웃사이더로 통하는 게 있었다. 경구가 군에 갈 때 미선이와 내가 용산역까지 따라간 기억이 난다.”
 
  — 어떻게 데뷔했나.
 
  “영화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김영빈 감독이 임권택 감독님 밑에서 연출을 배울 때다. 1987년 무렵, 하루는 박미선이 내게 ‘영빈이 오빠에게 단역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부탁해라’고 압력을 주었다. 그래서 김 감독을 찾아갔다. 그때 〈연산일기〉를 찍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임 감독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감독님이 날 이렇게 쳐다보시더니 ‘중종 역’을 맡기셨다. 촬영 전 ‘너는 반정(反正)으로 왕이 됐지만 두려움이 많다’는 점에 유의하라셨다. 그런데 덧붙이시길 ‘이놈, 눈이 묘하네’ 그러셨다. 그 인연으로 2년 뒤인 1989년 임 감독님의 영화 〈아다다〉로 정식 데뷔했다.”
 
  — 스스로 배우로 인정할 만한 작품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아닐까. 비슷한 시기 〈구로아리랑〉을 찍을 때, 답답함이 컸다. 역할의 문제라기보다 스스로 연기를 감당할 상황이 못 됐던 것 같다. 〈비 오는…〉은 카메라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 했던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촬영감독이 배우들을 꼼짝달싹 못 하게 했다. ‘아이 참. 움직이지 말라니까. 답답하네’라고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안에서 할 수 있었을 텐데 연기를 담을 그릇이 못 돼 혼자 답답했던 거다.
 
  그런데 한 살 차이인 곽재용 감독이 그런 나를 받아줬다. 촬영감독이 불평을 해도 나를 지지했다.”
 
  — 월남전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하얀전쟁〉의 ‘변진수 일병’이 실제 이경영의 성격과 닮았다고 하던데…. 당시의 연기는 어땠나.
 
  “그럴지도…. 상처받기 쉬운, 그 상처의 기억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점에서 나와 많이 닮았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비우는 작업에 익숙하지만 그땐 뭘 담아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 비울 게 없던 데뷔 초기였다.
 
  오래전, 어느 감독님이 안성기 선배와 나의 연기를 비교하는 〈이 시대 배우론〉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안성기는 철저히 준비하는 배우다. 1에서 95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이경영은 -60에서 +60까지 변화가 무쌍하다. 이 두 배우를 섞어 놓은 연기를 기대하는 건 욕심일까?’라고 썼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자기 상황과 유사한 작품에 감정 이입이 많아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강인국 역을 맡은 이경영.
  — 이경영도 연기가 어렵나.
 
  “그렇다. 연기는 휘발성이 강하다. (필름으로) 남기는 하지만 연기를 하고서 ‘오케이’라는 사인이 떨어지는 순간, 과거가 돼 버린다. 연기란 매 순간이 현재 진행형이니까.
 
  그래서 배우들은 우울증을 자주 겪는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출연한 외국 배우들은 죄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 극중 현실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드니까. 한국 배우들은 그냥 끙끙 앓고 살아간다.
 
  나 역시 소주잔을 기울이며 수다로 풀지만 우울증이 주기로 온다. 근원을 모르겠다. 스스로 끊임없이 하찮은 존재 같아서…. 그러나 우울증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극복하고 나면 내 심장으로 새로운 공기가 들어와 쾌감을 느낀다. 이런 변태 같으니… 하하하.”
 
  — 20대와 30대의 이경영은 눈빛 연기가 일품이었다. 당시 신문을 보니 ‘물에서 갓 건져 올린 눈’이라고 썼더라.
 
  “이거 영업비밀인데… 나는 배우 하기 딱 좋은 0.3 내지 0.4의 시력이다. 액팅을 멀리서도 보이게 하려 애쓴다. 그런데 시신경이 약해 눈물이 잦다. 오른쪽 눈이 그렇다. 카메라 라이트에 금방 촉촉해진다. 본의 아니게 눈물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배우는 기본적으로 사연이 많다. 자기 상황과 유사한 작품에 감정 이입이 많을 수밖에. 멜로 연기를 할 때 그렇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첫사랑이 생각나고, 내가 아프게 했던 이가 생각나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상처 주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든다.”
 
  — 여자 복이 없다고 생각하나.
 
  “좋은 여자들을 다 놓쳤다. 내 복이다. 평생에 두 여자가 있다. 그중 첫사랑이 있다. 내 이기심이 그녀를 떠나보냈다. 그 시절의 그런 느낌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 누구랑 멜로 연기를 하고 싶나.
 
  “톱 여배우와는 다 해봤는데 김희애씨랑 못 해봤다. 카톡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데 심장이 떨리더라.”
 
  —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잊히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비록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를, 내 연기를 추억하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감으로 살다 보면 배우 인생도 좀 더 (올)바른 쪽으로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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