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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된장 오마니’ 된 청국장 명인 서분례씨

“‘북조선엔 간이 없습네다’란 말 듣고 도와주자 결심”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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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전 세계 메이저 여행사 제치고 한-베트남 합작여행사 설립
⊙ 1977년 안성에 양로원 건립부지 5700평 매입 … 콩 농사로 양로원 자립기반 마련
⊙ 옹기항아리 1500개 … 토종 해콩과 천일염, 숨 쉬는 항아리로 재래식 된장 완성
⊙ 2007년 평양에 된장공장 준공 기여 … 북한측, ‘된장 오마니’로 부르며 자문 구해
  중부고속도로 일죽IC를 빠져나와 1km도 못 미쳐 된장공장이 하나 있다. 말이 된장공장이지 솟을대문하며 정원 가득한 송림, 봄이면 연못에 만발한 화초들을 보노라면 공장이 아니라 아흔아홉칸 대궐집이다. 공장 이름은 서일농원이다. 청국장 명인 서분례(徐粉禮·71)씨는 이 농장의 공장장이다.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나 안성과 인연을 맺은 지 40년째다. 그녀는 아침 6시면 밀짚모자에 수건을 목에 걸치고 장독대 시찰에 나선다. 초여름 햇살 아래 도열해 있는 옹기항아리 1500여 개와 마주치면 진시황이 된 느낌이란다. 그녀가 된장공장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1977년 봄이었다. 쌍계사 말사인 칠불암 방장 스님이 “당신은 이곳에서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리라”며 점지해 준 땅을 보지도 않고 구입했다. 중부고속도로 일죽IC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자갈밭 5700평(약 1만8842m²)이다. 대한일보에 근무했던 남편(최진수·73)과 함께 인바운드 여행사를 운영할 때라 형편은 좋았다.
 
  며칠 뒤 서울에서 두 시간 반 걸려 가 보니 사과랑 배나무 몇 그루만 덜렁 심겨 있는 척박한 땅이었다. ‘나처럼 치장하기 좋아하는 여자가 노후를 이 시골에서 보낸다고? 나중에 양로원이나 짓지 뭐’ 하는 심정으로 땅값을 치렀다고 한다.
 
  서분례씨는 1978년 아웃바운드 여행사인 태국-베트남 여운공사(TTB-VTB)를 설립했고, 때마침 운 좋게도 해외여행 자유화 붐이 일었다. 그녀는 베트남과 수교가 이뤄지기 전인 1987년부터 여행사 설립을 추진, 일본과 유럽 등의 경쟁사를 물리치고 한-베트남 합작여행사를 설립한 파워 우먼이었다.
 
 
  인절미 먹다 죽는 할아버지 보고 충격
 
1978년 아웃바운드 여행사 태국-베트남 여운공사(TTB-VTB)를 설립해 여행업계에서 여성파워를 과시하던 시절의 서분례씨(왼쪽 둘째).
  여행사를 운영하던 젊을 적, 양로원을 즐겨 찾곤 했다. 어릴 적 부친(서영식)이 감자를 넣은 보리밥을 앞에 두고 자식들 앞에서 “우리집엔 내일 아침 쌀이 있고, 이웃이 오늘 저녁을 굶는다면 이웃에게 쌀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게 들은 데다 이상하게도 노인들과 함께하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서분례는 수락산 양로원의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겨울이면 노인들의 낙상(落傷) 사고가 잇따르면서 삿포로, 후쿠오카, 오사카 등지의 일본 양로원 시설을 돌아보며 새로운 양로원 건립의 꿈을 키웠다. 경북 영덕 지품면 속칭 새락골에서 1남7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찬밥’ 신세였다. 아들을 기대했던 모친(최정순)은 또 딸이라는 말에 씻기지도 않은 채 윗목으로 밀어 놓았다. 너무나 서운하고 속상해 차라리 어린 목숨이 자신과 함께 숨을 거두기를 바랐다고 한다.
 
  조밭을 매던 할머니가 맨발로 뛰어 들어와 어머니에게 지랑(간장의 경북 방언)을 물에 타 먹이고, 갓난아기 서분례를 씻기는 바람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렇게 혹독하게 태어나서일까. 그녀는 생존본능이 남달리 강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대구 이모댁에 머물며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야간 국제복장학원에서 재단을 배워 재단사로 취직했다. 가난한 집안을 돌본다는 생각에 늑막염이 걸릴 정도로 가위질을 해댔다.
 
  한국 최초의 패션디자이너 노라 노(본명 노명자)가 귀국해 명동에 자리를 잡는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해 앙드레 김이 다니는 국제복장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다. 명동 의상실에 근무하다 공군 파일럿 출신의 고종사촌 오라버니의 소개로 당시 대한일보 기자였던 최진수를 만났다. 남편은 언론 통폐합으로 신문사를 그만두고 ‘연방여행사’를 차렸으나, 당시 24개 국내 인바운드 여행사 중 꼴찌를 다툴 정도로 경영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회사 일을 돕고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면서 활로가 트이기 시작했다.
 
  1983년 설날이었다.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여행사 직원들과 함께 수락산 기슭에 있는 서울시립양로원을 찾았다.
 
  “그날 우리가 해 간 인절미를 꾸역꾸역 드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노인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동료 할아버지들은 울지 않고 ‘죽을라면 내일 죽지 왜 오늘 죽어서 우리를 놀지도 못하게 하누 …’ 하고 원망을 해요.” 공명심으로 시작한 봉사가 죄책감으로 변했다.
 
  서분례는 여행사를 남편에게 맡기고 그날로 매니큐어를 지우고 장신구를 다 떼고 안성의 자갈밭으로 들어갔다. 물 한 번 묻혀 본 적 없는 손으로 호미를 쥐고 고무신을 신고 땅을 골랐다. 섬진강댐 건설로 수몰된 전라도 임실 수몰 지구에 가서 물에 빠져 죽을 소나무들을 그러모아 농원에 심었다. 남편이 여행사로 번 돈을 자갈밭에 퍼붓기 시작했다.
 
  여자라고 무시하는 인부들이 섭섭하게 해 배밭에 앉아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처음 시작한 농사가 콩 농사였다. 농민들은 부르는 대로 땅값을 현찰로 쳐서 사 주는 서분례에게 앞다투어 땅문서를 들고 왔다. 처음 구입한 자갈밭 5700평은 금세 3만평이 됐다.
 
 
  우리끼리 메주나 쒀 먹자
 
서분례씨는 국내 최초로 2015년 정부로부터 전통식품명인(대한민국 청국장 명인 제62호)으로 선정됐다.
  자갈밭에 콩을 심었더니 첫해인 1993년에 소출이 다섯 가마였다. 내다 팔려다 보니 콩값이 형편없었다. 자갈밭에 가마솥 두 개를 걸어 놓고 메주를 쑤었다. “아이고, 그냥 우리끼리 메주나 쒀 먹자 했죠.”
 
  지리산 뱀사골 인월요업의 옹기장(甕器匠) 강태수 선생이 빚은 옹기 30개에 된장을 담갔다가 지인들에게 나눠 줬다. 그런데 그 된장 맛이 기가 막힌 거였다. 그래서 시작한 게 본격적인 된장 만들기, 지금의 된장공장이다. “친정엄마 된장보다 맛있다”는 친구들 덕담에 이듬해에는 재배를 늘려 열 가마를 수확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된장값이라며 10만원짜리 수표를 보낸 것이다.
 
  ‘된장 팔면 내가 지원하는 양로원에 수입이 생겨 운영을 할 수 있겠다.’ 서분례는 그리 생각했다고 한다. 시립양로원에 수용된 노인 한 명당 하루 식비가 1000원이 배정되던 시절이었다. 다섯 가마가 열 가마가 되고, 100가마가 되던 1997년, 양로원 터 한쪽에 비닐하우스 만들고 ‘서일농원’이라는 이름까지 지었다. 이후 친환경농법으로 120여 가마를 수확하고 있고, 안성 인근에서 1000가마를 수매한다.
 
  300가마의 콩으로 10개의 가마솥에 메주를 쑤어 500여 개의 장독에 숙성시킨다. 좋은 콩을 골라 무쇠솥에 장작불로 메주를 쑤고 혀끝으로 장맛을 조율했다. 뜨거운 여름날 장독대에서 일을 하다 목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고생을 했지만, 해가 가면서 먹어 본 사람들의 칭찬에 그저 흥만 난다고 한다. 콩은 메주로 변하고 메주는 된장으로 변해 항아리에서 3년 동안 산 뒤에야 사람들 입으로 들어간다. 서씨 말마따나 된장이 아니라 ‘금장(金醬)’이다.
 
  서분례는 전래의 된장을 만들기 위해 전국을 돌며 된장 간장을 맛봤고, 고서(古書)라는 고서는 다 훑었다.
 
  — 된장 제조법은 누구에게 배우신 건가요.
 
  “어릴 적 고향 새락골 장독대가 내 놀이터였어요. 풀 베고 돌아오신 아버지가 정지(부엌) 물항아리에서 찬물 한 바가지를 퍼 그곳에 지랑(간장)을 타서 벌컥벌컥 들이켜는 모습도 보았고요. 어머니의 장 담그는 심부름을 하다가 어깨너머로 익혔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문헌을 공부해 보탰습니다. 요즘은 시대에 맞는 된장을 만들기 위해 5~6년에 걸쳐 여러 가지 실험을 했어요. 2000년 무렵에야 시장에 내놓을 만한 된장을 만든 거죠.”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까닭
 
서분례 명인은 오랜 연구 끝에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맛과 영양이 뛰어난 청국장을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고, 경기도 지역명품(G마크)으로 선정됐다.
  ‘서분례표’ 된장은 재래식 제조법을 고집하고 있다. 된장의 맛은 콩과 물, 소금과 항아리가 결정한다. 여기서 만든 된장은 주변에서 재배한 토종 해콩으로 메주를 쑤고 지하 150m에서 솟아나는 청정수와 천일염을 2년 이상 재워 간수를 뺀 깨끗한 소금으로 간을 맞춰 숨 쉬는 항아리에서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서분례는 좋은 천일염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염전을 뒤졌고, 황토와 잿물로 만들어 숨 쉬는 전통 항아리를 사용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집한 100년 된 토종 옹기들은 장독대의 어르신 격이다.
 
  —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까닭은요.
 
  “메주를 만든 시기가 다르고, 소금물의 농도와 물맛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 좋은 콩과 소금을 가려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군요.
 
  “콩은 콩눈 가에 주름이 없이 단단하며 빛깔이 좋은 해콩만을 써야 합니다. 소금은 1년 중 햇볕이 가장 좋은 5~6월에 거치한 천일염을 창고에 저장했다가 간수를 뺀 후 물에 한번 씻어 볶아서 장맛을 냅니다. 장을 담글 염수(鹽水)는 장 담그기 사흘전 150m 지하암반에서 나오는 암반수 10말에 소금 3말(30% 비율)을 풀어 이물질을 제거한 염수라야 합니다. 이때 날계란을 띄워 동전크기만큼 달걀이 보이면 17도의 적정 염도란 뜻입니다.”
 
  — 자, 그럼 장을 담가 볼까요.
 
  “장은 음력 1월과 2월에 담가요. 깨끗이 씻어 말린 항아리에 메주를 70% 정도 켜켜이 넣습니다. 그리고 염수를 가득 채운 후 대나무를 얼기설기 걸쳐 메주가 뜨지 않도록 해야죠. 잡균과 잡귀를 막고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기 위해 붉은고추, 대추, 깨, 윗소금을 듬성듬성 띄우고 살균용으로 벌겋게 달군 참숯불을 넣고 그 열과 연기가 식기 전에 뚜껑을 닫아야 합니다. 나흘째부터 좋은 날씨에만 이른 새벽에 뚜껑을 열어 맑은 공기를 쏘이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받게 해야 합니다. 저녁엔 뚜껑을 닫아 줘야 하고요.”
 
1500여 개의 크고 작은 항아리에는 몇 년간 숙성시킨 된장과 고추장이 담겨 있어 대형 된장공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순수한 황토와 천연잿물만으로 만들어 중금속이 없는 숨쉬는 항아리로 유명하다.
  — 일조량이 중요하겠지요?
 
  “볕 쬐기와 통풍을 제대로 하고 항아리를 자주 닦아 주어야 숨을 쉴 수 있어 장맛이 좋아집니다. 자연통풍과 햇볕으로 증발, 소독, 발효가 이뤄지는 거죠. 이렇게 정월장의 경우 약 70~80일, 2월장의 경우 60~70일이 걸립니다.”
 
  — 어머니들은 메주를 건지고 난 후 간장물을 달여서 다시 독에 붓던데요.
 
  “장 가르기라고 해요. 메주를 건지고 이때 남은 물은 간장이 되는데, 간장은 달이지 않고 직사광선을 쪼여야 짜지 않고 간장 특유의 빛깔과 맛이 나죠. 3개월간은 거품이 일어 이 거품을 수시로 제거해야 합니다. 간장에서 분리한 된장은 여름 내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에 가을에 메주콩을 삶은 물로 봄에 담근 된장에 부어 섞어야 3개월 후에 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해가 묵어야 제 맛이 납니다.”
 
  —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는 비법은?
 
  “찌개나 국에 된장을 넣고 끓일 때에는 재료를 먼저 넣고 충분히 조리가 된 후 된장을 넣고 살짝 데치는 기분으로 가열해야 된장 고유의 산뜻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영양상태도 고스란히 살아 있게 됩니다.”
 
  — 옛 어른들이 ‘망하는 집안은 장맛도 쓰다’고 했죠?
 
  “집안이 망해서 장맛이 쓴 것이 아니라, 집안에 우환이 있어 장독을 관리하지 못한 거예요. 장독은 매일 뚜껑을 열어 햇볕을 쪼이고, 독이 숨 쉬도록 닦아 줘야 하니까요.”
 
 
  IMF사태 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메주는 해콩으로 쑤어 띄워야 하는데 서씨의 농장에서 경작한 양질의 콩으로 만든다. 깨끗이 씻은 콩을 가마솥에 넣어 장작불로 1시간 삶은 다음 2시간 반쯤 뜸을 들이고 다시 1시간 이상 식힌 후 절구에 넣어 으깨어 메주를 만든다. 서씨는 콩 150가마 정도만 메주로 만들고, 나머지는 청국장으로 제조해 판매한다.
  1996년 《행복이 가득한 집》에 서분례 이야기가 크게 나갔다. 이후 밥술깨나 먹는다는 집에서는 안성을 찾아가 밥 먹고 된장 사서 오는 게 유행이 됐다. 순식간에 신문·방송이 이틀이 멀다 하고 서분례를 찾아왔고, 어느 틈에 그녀의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다시 끼워져 있었다. 한복 차려 입고 얼굴에 분칠하고 장독 속으로 머리를 처박는 장면도 연출했다.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자 초심(初心)을 망각한 것이다. 결국 이듬해 말 IMF 사태가 터졌다.
 
  농장에 이식한 낙락장송들은 뿌리를 내린 지 한참이지만 서분례는 뿌리가 뽑히다시피 했다. 사람들은 수퍼마켓에서 양조 장(醬)을 샀고, 재래 장은 500개가 넘는 항아리 속에서 10년 이상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서분례가 콩 삶은 물로 된장항아리에 수분보충을 해 주지 않았더라면 전부 폐기처분됐을 것이다.
 
  안성은 20년 넘게 자갈밭 고르던 서분례에게 이런저런 법규를 내세워 앞을 가로막곤 했다. 농장 안에 길을 내려면 농지 불법전용이라고 했고, 대문을 넓히려 해도 다른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서분례는 문득 자기의 새빨간 손톱을 보고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리라’던 젊을 적 큰스님 말뜻을 깨달았다. 손톱을 다시 깎고 장독 속에 머리를 박았다.
 
  IMF 사태가 잊힐 무렵 안성댁 서분례의 농장에 다시 손님들이 나타났다. 피폐해진 가장들의 심신을 추스르려는 여자들, 그 가족들이 안성으로 와서 된장을 사 갔다. 1999년 경기도는 그녀를 신지식인(전통장 제조부문)과 경기으뜸이로 선정했고, 충북대와 중앙대, 그리고 연세대는 그녀를 전통장 제조기법 강사로 모셨다.
 
  소문이 소문을 불러 옹기항아리 출신지만큼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2000년 겨울에는 일죽IC에서 농장까지 2km 도로가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들로 인해 주차장이 돼 버린 적도 있다. 탤런트 강부자는 KBS ‘체험 삶의 현장’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서분례와 함께 삶은 콩을 퍼 메주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신성한’ 장독대에 마구 올라가 기념촬영을 하는 통에 ‘금줄’도 쳐 놓을 정도였다.
 
2012년 2월 19일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는 장 담그기 철을 맞아 전통 ‘장 담그기 장인’인 서일농원의 서분례 원장을 초청해 재래메주와 신안 비금도 천일염 등의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장 담그기 시연’을 했다.
  온 가족이 전세버스를 타고 와서 장 담그기를 배워 갔다. 송림과 원두막, 산책로, 장승이 농원에 그득하다. 얼마 전엔 큰 연못을 파고, 카페까지 만들었다. 메주만 쑤던 농원이 이제는 김치, 식초, 고추장, 장아찌 등 발효식품에 관한 모든 것을 생산하게 됐다. 사람들은 비싼 가격 탓에 망설이다가도 이곳 식당에서 찌개 맛을 보고는 지갑을 열어 몇 박스씩 사 갔다.
 
  서분례씨는 “우리의 재래 장류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한국인의 체질을 완성하고 정서를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며 “특히 가마솥에 콩을 삶아 메주를 정성스레 빚던 옛 여성들의 부드러운 손길과 따끈한 아랫목에서 띄우던 메주 특유의 냄새가 기성세대에게 향수 어린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2006년 5월 30일, 서분례씨는 당시 안성시 이민희 체육팀장과 함께 휴전선을 넘어 개성으로 갔다. 안성시와 함께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가 평양 룡성구역에 짓는 장류공장의 설비를 지원할 때였다. 장류공장이란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드는 공장이다.
 
  북한은 장류공장을 짓고 싶어했다. 지원사업의 주체는 안성시였다. 안성시는 장류 제조를 위한 현대화한 기계와 전기 승압장치 등을 지원했고, 북한은 공장건물과 노동력을 대기로 했다. 서분례씨는 안성시로부터 북한의 장류공장이 정상가동될 수 있도록 제품에 대한 기술자문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성사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분례씨는 “원래 안성시는 북측에 간장·고추장 등 장류공장을 지어 주고 북측은 안성시가 주최하는 ‘정구대회’에 선수를 파견하기로 했으나, 여의치 않아 남사당풍물단 공연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라고 했다.
 
  서분례씨는 “처음엔 이북사람들이 된장을 만들어 이남에 팔려는 줄 알았다”며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주민들이 된장과 간장을 담가 먹고 사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남포에서 된장공장을 지었다는 북측 ‘된장박사’가 내 경력을 묻기에 북한도 된장 제조 기술이 상당할 줄 았았었다”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된장 특허를 받은 것을 비롯해 장류 관련 자료를 잔뜩 챙겨 커다란 백에 담아 들고 북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된장 오마니’
 
2007년 9월 남측 기술자들이 평양 룡성구역에 위치한 장류공장 기계를 설비 중인 모습(왼쪽). 사진=겨레하나
서분례 원장이 방북기간중 정방산 성불사를 찾았다. 성불사는 황해북도 사리원에 있는 사찰로, 신라말 도선이 창건한 고찰이다(오른쪽). 사진=이민희 전 안성시 체육팀장
  북측과 처음으로 마주한 서분례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점심식사 시간에 서분례씨가 고추장 항아리를 풀어 놓자 북한측 인사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서씨가 “나는 안성 시골의 된장을 담그는 아지매고, 한 핏줄을 타고난 동포로서 여러분들을 돕고 싶다”며 “여러분들이 된장공장을 만들어 된장을 남한에 팔 것인지, 북한 주민이 먹을 것인지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때 된장박사가 “우리 인민은 간(장류를 의미)이 없습네다”라며 “인민이 간이 없어 중국에서 갖다 먹는 실정이니 배급을 위해 공장을 지어 달라”고 말했다. 순간 서순례씨는 ‘우린 식당에서 버리는 음식도 태산 같고 너도나도 다이어트를 하느라 난리인데 …’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코끝이 찡했다고 한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된장, 고추장, 간장의 제조 노하우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남조선에도 저런 여성 선생님이 계셨냐”라며 좀 전까지 빳빳하던 자세를 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추장과 매실식초를 맛본 그들은 “매실식초도 만들어 달라” “고추장도 만들어 달라”고 매달렸다. 또 “북한에는 장독도 사라졌으니 고위간부용 장독대를 5000평 규모로 만들어 전통장을 만들어 달라”고도 요청했다.
 
  평양 룡성구역에 자리 잡은 장류공장은 연면적 760평(2520m²)이며 깔끔한 2층건물 구조였다고 한다. 장류공장의 생산설비는 남측 설비공장에서 제작해 북측으로 옮겼다. 서씨는 “2007년 11월 21일 준공식 땐 이동희 안성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방북단과 함께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평양으로 갔다”며 “순안비행장에 환영 나온 장류공장 관계자들은 나를 끌어안고 ‘된장 오마니 오셨습네다’를 외치는 바람에 부끄러웠다”고 했다.
 
  서분례는 준공식 직전 공장을 방문해 콩을 삶는 과정, 발효과정을 체크해 주었다. “염도가 낮으면 오래 보관을 못한다” “수분이 너무 많으면 된장이 안 된다” 등을 지적하자, 공장 관계자들이 열심히 메모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장류공장은 연간 고추장·된장을 각각 100톤씩 생산하는 규모로 지었다”며 “된장 제조과정을 점검해 주느라 준공식엔 참석하지 못했으나 북측 공장 관계자들과 함께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1kg들이로 된장을 포장하는 것을 확인하고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서분례씨는 “장류공장 준공 이후 다시 그 공장에 갈 기회가 없었다”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연이은 대남도발로 대북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지금 룡성의 장류공장은 부품조달이나 포장재 부족으로 멈춰 섰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양로원 건립의 꿈
 
3만평 규모의 서일농원에는 150가마 분량의 콩으로 만든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최근 된장은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돼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분례는 벽초 홍명희가 《임꺽정》의 무대로 상정했던 절 칠장사를 가끔 찾는다. 궁예가 이곳에서 무예를 닦았다는 절이기도 하고, 어사 박문수가 꿈속에서 시제를 받아 장원급제를 했다는 절이기도 하다. 서분례는 칠장사에 가서 기도를 했다. 부자가 되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양로원 만들게 해 달라고.
 
  그녀는 “‘힘들게 해 봐야 물량도 많이 안 나오는 된장 팔아서 무슨 돈 되겠어요”라며 “그저 좋아서 하는 게지요”라며 웃는다. 서분례 원장이 3만평으로 늘어난 농장 뒤 6000평 부지에 최고 시설을 갖춘 무료양로원을 세우는 날은 언제일까. 그녀의 43년 전의 소박한 꿈은 서일농장의 1500개의 장독대의 된장처럼 ‘숙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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