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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

65장면으로 본 박근혜 대통령의 65년(1952~)

“공주(公主)에서 폐주(廢主) 될 위기에… 그래도 종북(從北)은 막았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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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에 이어 ‘18’ 수의 징크스 못 벗어
⊙ 6·25전쟁 중 대구에서 출생… 이름의 ‘근’자는 ‘조국’ 상징
⊙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갖은 고생… 5·16 후 청와대 입성
⊙ 가장 좋아한 소설 주인공은 《삼국지》 속 조자룡… 스스로 ‘첫사랑’이라 여겨
⊙ 교수 꿈꾸며 떠난 프랑스 유학, 어머니 죽음으로 인생 바뀌어
⊙ 스물두 살의 퍼스트레이디에 접근한 최태민… 불행의 시작
⊙ 아버지의 죽음과 측근들의 배신으로 시작된 18년의 암흑기
⊙ 박정희·김재규·전두환·노태우도 해결 못 한 최씨 일가의 마수(魔手)
⊙ 1997년 정계 데뷔 후 전승(全勝) 거둔 ‘선거의 여왕’
⊙ 최씨 일가, 대통령의 눈 귀 막아 불통(不通) 이미지, 결국 국민의 분노 사
⊙ 숱한 경고에도 최씨 일가 국정농단 방치한 미스터리
⊙ 통진당 해산·한미연합사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국정교과서 등 종북 세력에 대한 최후의 방파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12월 9일 정지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12월 3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및 무소속 의원 171명이 공동 발의해 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탄핵안은 9일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34명, 반대 56명, 기권 2명, 무효 7명으로 가결 처리됐다.
박 대통령은 18년간의 은둔을 끝내고 1997년 정치를 시작한 이후 18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게 살해되면서 18년 만에 권좌에서 내려온 것과 공교롭게도 정확히 일치한다. 《월간조선》은 박근혜 대통령이 살아온 65년을 전기(傳奇) 형식으로 정리해 본다.
  1. 탄생
 
  박근혜 대통령은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5번지에서 출생했다. 전날 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산통(産痛)을 느꼈을 때 함께 살던 동생 육예수와 장모 이경령 여사는 집에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파(産婆)를 부른 뒤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아내의 손을 잡고 곁을 지켰다. 새벽에 박정희 대통령의 두 번째 딸(첫딸은 박재옥) 박근혜가 태어났다.
 
 
  2. 이름
 
  박근혜라는 이름은 박정희가 직접 지은 것이었다. 옥편을 뒤져 무궁화 근(槿)자를 넣었는데 ‘근’은 조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딸의 성장 과정을 담아두려고 사진을 많이 찍었으며, 점심때에는 일부러 집에 들러 근혜를 목욕시켜 주기도 했다.
 
 
  3. 배다른 언니 박재옥
 
  박정희 대통령이 첫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딸 박재옥은 박근혜가 태어났을 때 비로소 아버지가 재혼했음을 알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북도 선산군 상모동에서 구미여중을 다닐 때였다. 박재옥은 집안 어른들로부터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로부터 오래전부터 ‘아버지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재옥은 아버지에게 원망 섞인 편지를 많이 썼다.
 
  〈아버지, 제게는 부모님이 모두 계시는데 저는 왜 이렇게 남의 집에 얹혀살아야 합니까. 사촌 오빠가 저까지 데리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귀찮고 성가시겠어요. 저는 또 얼마나 미안한지 아세요? 오빠도 고생스럽고 저도 힘들고요.…〉
 
  이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니 열심히 살아라’라는 요지의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4. 잦은 이사
 
1962년 5월 서울 장충동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박정희 의장과 가족.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육영수 여사, 박정희 의장,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어린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이사를 자주 다녔다. 아버지가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 처음 내 집을 마련한 것은 1956년 4월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근혜 대통령은 첫돌을 광주광역시 동명동 셋방에서 맞았다. 1953년 여름에 서울 종로구 동숭동으로 올라왔지만, 1954년 10월 다시 광주광역시로 내려가 1955년 7월 박정희가 사단장이 되기 전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195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원도 인제에 있는 5사단 사단장으로 옮겼을 때 서울에 남아 있던 가족은 가장 비참한 시절을 보냈다.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할 때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한 가족은 일단 옥천으로 갔고 박정희 대통령의 당번병인 박환영과 운전병 이타관은 이삿짐을 기차에 싣고 청량리역에 내렸다. 수화물 창고에 짐을 넣어두고 일주일이나 기다렸는데 아무 연락도 없었다.
 
  당시 사단 헌병부장이 나서 노량진 역전에 부엌도 없는 문간방 두 개를 구해줬다. 솥을 걸 데도 없어 풍로로 겨우 음식을 만들어 먹을 정도의 곳이었다. 집이 좁아 들여놓지 못한 짐은 청량리 부근에 살던 김종필 당시 중령의 집 처마 밑에 갖다놓았다. 당번병과 운전병 두 사람이 판자와 거적을 가지고 부엌을 만든 뒤에야 옥천으로 연락해 육영수 여사와 가족들이 올라왔다.
 
  육영수 여사의 어머니 이경령씨는 노량진 문간방 시절이 가장 비참했다고 회고했다.
 
  “방엔 불도 들이지 못하고 방바닥에서 물이 줄줄 나서…. 그때 군인들이 비옷으로 쓰던 장옷을 방바닥에 깔면 축축하게 누기가 차서 도무지 앉지도 눕지도 못하여 밤이나 낮이나 서성거리고, 밥이라고는 풍로에다가 해서 끼니라고 때우고, 그때 참말로 고생을 말없이 하고요, 손녀딸 근혜는 아파서 울고요….”
 
  육영수 여사의 동생 육예수씨는 광주로 내려가기 전 서울 고사북동에 살 때를 비참하다고 기억했다.
 
  “말이 장성 집이지 최하층 빈민생활이었습니다. 장작 마련할 돈도 없었어요. 그때 우리가 지내던 방은 ‘뼈가 얼던 방’이었습니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를 어떻게 견뎠는지…. 그때 그 시절은 평생 잊히지 않습니다.”
 
 
  5. 억양
 
  박근혜 대통령의 억양에서는 잦은 이사 때문인지 경상도 사투리보다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인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영향을 받아 충청도 사투리가 살짝 섞여 있다.
 
 
  6. 5·16 전야(前夜)
 
  박정희 대통령이 거사를 위해 신당동 집을 나서던 1961년 5월 15일 밤 10시쯤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가 있던 방으로 갔다. 육 여사는 남편이 장태화·김종필·이낙선과 함께 밖으로 나서려고 하자 “저 보세요”라고 불렀다. 육 여사는 남편을 부를 때 항상 “여보세요”라고 하지 않고 “저 보세요”라고 했다.
 
  “근혜 숙제 좀 봐주시고 나가세요.” 박정희는 서슴없이 “어, 그러지” 하고 아내를 따라갔다. 박정희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생 근혜를 굽어보고 윗목 외할머니 곁에서 잠들어 있는 근령·지만에게 눈길을 주고는 나왔다. 장태화가 “무슨 숙제입니까” 하고 물었다.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
 
  박근혜 대통령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아버님께서 들어오셔서 저를 한번 보고 나가신 것은 기억나는데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요. 어머님께서는 집안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그날은 집안이 평소와 다르게 긴장되어 있었으나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어머님께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변을 정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7. 장충초등학교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1958년 3월 서울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생활기록부가 공개돼 있는데 특이한 점이 있다. 1학년 때는 ‘특정 아동들과만 노는 습관이 있음’, 3학년 때는 ‘자존심이 강한 어린이’, 4학년 때는 ‘약간 냉정한 감이 흐르는 편’이라고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6년 내내 성적이 우수하고 침착하고 겸손하다는 평가가 적혀 있다. 초등학교 시절 ‘행동발달 상황’ 평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친절·예의, 사회성, 자율성, 근로성, 준법성, 협동성, 정직성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최우수인 ‘가’를 받았다. 다만 ‘명랑성’ 부문은 3학년을 제외한 나머지 학년 전부에서 ‘나’를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삼국지》를 탐독했는데 등장인물 가운데 조자룡(趙子龍)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돌이켜보건대 나의 첫사랑은 조자룡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삼국지》 못지않게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한 것은 ‘전투 이야기가 나오는 역사소설’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읽을 때마다 설렘과 흥분에 사로잡혀 도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독서 취향을 눈치챈 아버지가 “좀 어려울 거 같지만, 근혜가 좋아할 것 같다”며 권한 책이 바로 앞서 말한 《삼국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5·16을 일으킨 아버지가 2년 뒤인 1963년 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박근혜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큰 영애(令愛)’로 불리게 됐다. 영애 시절 박근혜의 퍼스낼리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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