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대한민국 인프라 건설 외길 60년, 임광수 임광토건 명예회장 : 월간조선

임광수(林光洙・88) 임광토건 명예회장의 별명은 ‘집념의 컴도저’다. 그의 서울대 후학들이 붙여줬다. 맡은 일은 강력히 추진해 불도저 같고 기계공학도의 세심함에 아이디어가 번득이니 ‘컴퓨터 달린 불도저(Computerized Bulldozer)’라는 것이다.

1989년 9월 노태우(盧泰愚) 정부가 ‘경부고속철 노선의 충북 경유가 어렵다’며 대선공약을 번복하자 당시 충북협회장이었던 임 회장은 ‘집념의 컴도저’ 정신으로 KTX 청주 오송역 유치를 밀어붙였다.

그는 사비를 털어 프랑스와 일본 등 1년여간 치밀한 현장조사를 통해 경제성을 입증해 냈고, 마침내 정부는 노선 변경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6월 13일 이시종(李始鍾) 충북지사는 임 회장 등 당시 경부고속철 청주 오송역 유치의 숨은 공로자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청주시 KTX 오송역 광장에서 유치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8월 4일 서대문구 임광빌딩에서 만난 임 회장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중국 언론과 사드 관련 인터뷰를 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전직 통일부 장관을 조간신문에서 보니 우리 장래가 걱정된다”고 했다. 임 회장은 40대 때부터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2시간 30분 정도 요가와 철봉, 그리고 남산에서 워킹을 한다. 건강 유지 비결은 “밥심”이라고 말한다.

임 회장은 임광토건을 1957년부터 60년간 경영하면서 항만, 교량, 간척사업, 철도, 고속도로, 지하철, 고속철도 등 대한민국의 사회간접자본(인프라) 확충에 기여했다. 산업구조상 가장 긴요했던 항만 확충을 위해 박정희(朴正熙) 정부의 요청으로 1976년 사단법인 한국항만협회를 창설해 선진항만 기술도입에 힘썼다.

임 회장은 2011년 서울대총동창회장 시절 서울 마포의 옛 서울대 총동창회관 건물을 헐고 지상 19층, 지하 6층, 연면적 6500평 규모의 장학빌딩을 올렸고, 동창회 보유재산 1200억원 시대를 열었다. 그는 12년간 동창회장을 6차례나 연임하며 ‘서울대 폐지론’을 잠재웠고, 개학원년을 1946년에서 1895년으로 되찾았으며, 장학연구 지원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기계공학도가 토목전문가로 변신

임광수 회장은 40대 때부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요가와 철봉으로 몸을 관리한다. 임 회장이 기상 직후 집 문틀에 매단 철봉으로 대차를 하고 있다.

임 회장의 부친 임헌록(林憲祿) 선생은 일제강점기 충북에서 대한민국 건설업 면허 1호를 받았고, 건설회사 ‘임공무소(林工務所)’를 설립했다. 총독부 직원들 등쌀에 공사 수주가 힘겨웠던 부친은 아들이 토목을 전공하지 못하도록 말렸다. 임 회장은 “아버지는 왜놈들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살기보다 좀 더 대우가 나은 의사의 길을 가길 원하셨다”며 “어느 날 일본잡지에 난 ‘인생은 울면서 살아도, 웃으면서 살아도 60년’이라는 구절을 보고 의학-법학 대신 기계공학을 선택했다”고 했다.

임 회장은 대학 재학 중 서울시립 중앙도서관에 미국영어교습소인 ALI(American Language Institute)에 등록해 10개월간 영어를 익힌 덕분에 6・25사변 당시 2년간 미8군 사령부, 24공병단 통역관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1952년 대학을 졸업한 임 회장은 청주공고에서 2년 남짓 교사로 일하다 1954년 교통부 공전국(工電局) 기계과로 옮겼다. 그는 미 국무성 국제원조처(ICA)와 유엔한국재건단(UNKRA) 원조자금을 받는 철도공작창 기계 도입사업을 맡았고 디젤기관차 매뉴얼을 번역했다. 정부 파견 유학생으로 미국에서 6개월 연수코스를 마쳤다. 이때 경험이 평생의 자산이 됐다.

전후(戰後) 미국 무역회사 코사(COSA)가 그에게 한국지부 부지배인 자리를 제안했다. 코사에서 공작기계와 기계시설 도입에 분주하던 1957년 어느날, 임 회장 부친이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 임공무소를 떠맡으며 기계공학도는 토건 전문가로 변신했다.

임 회장은 1957년 사명을 임광토건으로 바꾸며 아버지가 1927년 5월 건설업종의 임공무소를 설립한 기록들을 정리했다.

“임공무소 시절 대표적인 토목공사 결과물을 보자면 1929년 11월에 준공한 전라남도 화순의 능주교입니다. 능주교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교량이에요. 능주교는 현재도 있는데 1983년 9월 임광토건이 신능주교를 바로 옆에 건설했어요. 아버지가 만든 다리 옆에 아들이 만든 다리를 놓은거죠.”

임 회장은 “아버지는 자존심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청주사범학교 부지조성 사업에 입찰했을 때, 실수로 10단위 숫자를 누락해 써내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습니다. 일본인 관리들이 개찰 전에 아버지를 불러 ‘혹시 실수로 금액을 적게 써낸 것이라면 기권으로 처리하겠다’고 했으나, ‘조센징 쇼가나이(조선인들은 어쩔 수 없군)’란 말이 듣기 싫어 손해를 감수했어요. 이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줄이야. 도쿄공대를 나온 일본 내무성 고위관료의 동생이 아버지를 눈여겨보고 총독부에 청주 무심천(無心川) 제방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주게 했죠. 그 덕에 아버지는 큰돈을 벌었습니다.”

임공무소는 1937년 무심천 제방공사(10km)와 수안보천 공사, 1939년 청주시 강내면의 미호천 교량공사, 1937년 청주-보은간 도로공사(55km) 등을 했고, 1956년 ‘남애항 방파제 재해복구공사’와 충남 서산의 ‘몽대포항 방파제 공사’ 등을 수주했다.

조국근대화의 기수 17인에 선정

임광수 회장의 부친 임헌록 선생이 1929년 전남 화순에 건설한 능주교의 준공 장면. 다리 우측에 소화 4년(1929년) 4월 1일 준공이라 적혀 있다.

— 토목공사엔 문외한이셨을 텐데, 회사를 어떻게 꾸려 나갔나요.

“토건업 자체가 중장비를 이용해 기계과를 나온 덕을 보았습니다. 당시 토건업체들이 중장비 수리비 과다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기계를 훤히 아는 데다 부속품 구입 리스트와 통계수치를 이용해 미리 사고가 날 만한 곳에 감사를 해 가면서 돈이 새는 것을 막았습니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시작했다. 항만, 철도, 도로,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 정부공사를 대대적으로 발주했는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건설회사가 많지 않았다. 임광토건은 1군(도급순위 50위 이내)의 중견 건설업체로 당시 도급순위가 20위권, 인프라 공사 부분은 10위권 내에 속해 모든 분야에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참여했다.

임 회장은 “항상 기업의 이윤보다는 애국심을 가지고 시공했기 때문에 큰 보람을 느꼈다”면서 “정부로부터 전국 최우수 시공업체라는 표창과 훈장도 여러 번 받았고 감사원의 부실시공 지적이나 사회의 물의를 일으킨 공사가 한 건도 없다는 점이 지금도 자랑스럽다”고 했다.

2014년 10월 한국엔지니어링 클럽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기술 영웅’들의 비사(秘史)를 정리해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The Heroes of ‘Quantum Jump’)》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임 회장을 조국 근대화의 기수 17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한국엔지니어링클럽은 박정희 대통령이 ‘기술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휘호와 함께 금일봉을 하사해 설립한 단체다.

한국항만협회 창설해 초대회장에 취임

임광토건이 1983년 9월 부친이 건설한 구능주교 좌측에 새로 건설한 신능주교.

임 회장은 1976년 정부의 요청으로 사단법인 한국항만협회를 창설, 초대 회장에 취임해 15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우리가 무역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낙후된 항만을 선진화해야 하는 게 급선무이고 부족한 시설자금을 외국 차관으로 도입해야 했기에 1976년 그 역할을 맡을 정부기관으로 해운항만청(현 해양수산부)을 교통부(현 건설교통부) 외청(外廳)으로 출범시켰습니다. 이를 민간에서 지원하기 위해 항만협회의 창립이 필요했습니다.”

그해 11월 중순 초대 항만청장으로 취임한 강창성(姜昌成) 장군(보안사령관 역임)은 임 회장을 불러 “선진국 항만을 시찰해 보니 항만 관계인의 모임인 항만협회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영어가 유창해 해외 활동이 가능한 임 사장이 조직을 만들어 발족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임 회장은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Jubail) 상수도 공사를 막 시작한 시점이어서 고사했으나, 강 청장이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바람에 1976년 12월 말 초대 한국항만협회장을 맡았다.

임 회장은 15년간 협회장을 맡으면서 1983년 세계 유명 항만국가들이 회원으로 있는 국제항만협회의 총회를 호주 브리즈번을 누르고 서울로 유치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임 회장은 “우물 안 개구리로는 안 되겠다 싶어 1977년 4월 국제항만협회(IAPH) 단체회원으로 가입했었다”며 “1983년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연두순시 때 1987년 열리는 제15차 국제항만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해 유치를 추진했다”고 했다. 그는 “1987년 4월, 79개국 대표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큰 규모의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며 “그 행사가 대한민국 국력을 과시하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고 했다.

국내 최대 인천항 석탄부두 건설

한국은 1977년 4월 국제항만협회(IAPH)에 단체회원으로 가입했다. 사진은 1981년 5월 23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국제항만협회 창립 25주년 기념총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 일행. 가운데가 임광수 회장이다.

임 회장은 국가 고도성장기의 인프라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 그중 하나가 항만공사다. 임광토건이 처음으로 항만공사에 참여한 것은 1956년 당시 해운항만청의 전신인 해무청이 발주한 ‘남애항 방파제 재해복구 공사’와 충남 서산의 ‘몽대포항 방파제 공사’였다. 1959년에는 해무청이 발주한 ‘인천항 호안 축조공사’를 하면서 ‘인천항 연안부두 축조공사’, ‘인천항 석탄부두 건설공사’ 등을 잇달아 시공했다.

임 회장은 “우리가 인천항만 공사에 참여할 때만 해도 부산항 외엔 이렇다 할 항만이 없었고 항만공사도 어항공사 보수, 방파제 공사 등이 전부였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는 제2의 항만으로 인천을 지정해 주요 항만 인프라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라고 했다.

인천항 석탄부두는 1980년 8월에 착공해 8년간의 대역사 끝에 1988년 11월에 준공했다. 이 공사는 5만t급 및 10만t급 석탄운반 전용선이 동시에 접안 가능한 시설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석탄부두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석탄전용 부두였다. 이 부두는 전자동시스템으로 시간당 2000t의 처리능력을 갖췄고, 자동 하역설비와 컨베이어벨트로 저탄장까지 자동 운송돼 시간당 1500t을 상차(上車)하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한다.

임광토건은 인천항 석탄부두 건설에 이어 1995년 9월 인천을 기점으로 제주와 중국을 오가는 ‘인천항 국제여객부두 및 카페리 부두 축조공사’라는 초대형 해상터미널 공사를 준공했고 1998년 12월 ‘인천항 국제여객부두 증설공사’를 마칠 때까지 임광토건의 인천항 항만 건설은 계속됐다.

임 회장은 “당시 건설업계는 항만공사에서 지역 연고권을 관례로 인정하는 시기여서 부산항은 현대・삼성・대우가 지역연고권을 가졌다”면서 “임광토건이 인천항 항만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정부는 임광토건을 항만전문 건설업체로 인정해 1987년 2월 ‘부산항 3단계 개발사업’에 대우・삼성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도록 했을 정도”라고 했다.

임광토건의 역사에 기록할 만한 항만공사는 동해시의 ‘북평항 시멘트・석탄부두 건설공사’다. 북평항은 시멘트가 주 수출 품목이던 시절, 그 자체가 국가적으로 긴요한 인프라였고 상당한 난공사였다. 임 회장은 “당시 항만 계류시설 공사를 할 때 파도가 높고 작업선의 접안계류장이 없어 묵호항(현 동해항)에서 오가면서 공사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착공 6년 만인 1980년 6월 완공했다”고 했다. 임 회장은 “지금도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종로3가와 합정동 등을 지날 때면 예전 공사하던 생각이 나곤 한다”고 했다.

석연치 않은 KTX 오송역 제외 결정

2016년 6월 13일 오송역 유치기념비 제막식에서 이시종 충북지사(중앙 오른쪽), 이동호 전 충북지사(중앙 왼쪽), 임광수 전 재경충북협회장(이동호 지사 옆)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비 제막을 하고 있다.

1991년 KTX 청주 오송역(五松驛) 유치 당시 충북협회장으로 막후에서 유치를 선도했던 임 회장은 “26년 전인 1990년 1월경 경부고속철 청주권 통과가 어려울 것 같다는 민태구(閔泰求) 충북지사의 전화에 화들짝 놀랐던 일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당시 민태구 지사는 “요즘 흘러나오는 소식들을 볼 때 충북권 통과가 어렵다고 한다”면서 “충북협회(도민회) 회장(임광수 회장)을 충북출신 국회의원과 같이 유치위원회의 고문으로 모시고자 하니 유치를 도와달라”고 했다.

“1990년 철도청이 경부고속철 노선을 발표했는데, 천안~대전 구간의 문제가 노출됐습니다. 경부선이 충북권을 쏙 빼놓고 지나가는 겁니다. 경부고속철 충북 구간 통과는 대통령 선거 공약사항이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충북도민을 대표해 김창근(金昌槿) 교통부장관을 항의 방문했으나, 배석한 김하경(金夏經) 철도청장이 ‘대통령 재가를 받아 확정한 노선을 변경하는 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된다’며 거부했습니다.”

김하경 청장은 “충북 도민이 주장하는 오송역을 통과하려면 그곳은 산악지대라 긴 터널을 건설해야 하므로 공사비가 많이 드는 난공사지역이고 정부가 결정한 조치원 서쪽 5km 지점은 평야지대라 공사비도 적게 들기 때문에 국가 만년대계(萬年大計) 차원에서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 청장은 노태우 대통령, 서동권(徐東權) 안기부장과 경북고 동기로, 특히 서 부장과는 대구에서 하숙도 같이 한 고려대 동기생이었다. 임 회장의 설명이다.

“임광토건의 철도청 출신 상무를 불러 고속철의 노선결정 과정을 조사해보고 참으로 놀랐습니다. 대외비였던 노선결정은 기술적 타당성 조사를 거친 것이 아니었어요. 김하경 청장 고향인 경주를 통과시키다 보니 부산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천안에서 대전까지 일직선으로 노선을 결정했고 그곳이 조치원 서쪽 5km 지점이 되었다는 것이었어요.”

임 회장은 철도청 출신 상무를 동반해 1990년 3월 초 청주 오송지역과 철도청이 결정한 조치원 서쪽 5km 지역을 현지답사했다. 두 사람은 철도청장이 2월 16일 교통부장관 앞에서 발표한 지역 현황과 정반대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산악지대라 얘기했던 오송지역은 평야였고 평야지대라던 조치원 서쪽 5km 지점은 산악지대였던 것이다. 임 회장은 “청장이 현지답사도 하지 않고 대통령 공약사업인 고속철의 노선결정을 이렇게 거짓 설명을 한데 대해 분노했다”고 했다.

임 회장은 사비를 털어 프랑스와 일본 등을 방문, 1년여간 치밀한 현장조사를 통해 경제성을 입증해 냈다. 임 회장은 교분이 있는 일본 항만협회장에게 부탁해 일본 신칸센(新幹線) 설계 책임자를 소개받아 철도담당 상무를 데리고 도쿄에 가서 설계・시공・운영에 대한 세부 사항을 조사해 돌아왔다. 그는 그 결과물을 들고 외국 기술용역단(벡텔사)과 단독으로 접촉했다.

임 회장은 청주 오송역 방향은 평야지대로 정부안에 비해 노선이 3.4km 길어지지만 터널공사비가 줄어들어 오히려 340여억원의 공사비 절감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10km에 가까운 터널구간을 제외시켜 고속운행 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했다.

또한 노선변경을 위해서는 외부의 정치적 노력이 있더라도 내부에서 전문가들의 대안 제시(오송역으로 노선변경)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임 회장은 설계용역 책임자인 벡텔사의 기술책임자에게 고속철도 정부 합동회의(청와대, 경제기획원, 상공부, 건설부, 교통부, 철도청, 고속전철기획단)에서 대안을 제시토록 설득했다. 그 결과 1991년 6월 중순, 정부 합동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고 예상대로 벡텔사의 대안(청주 오송역 설치) 제시에 대해 철도청이 반발했다. 벡텔사는 “대형사고에 대비한 건의이니 채택여부는 정부가 결정하라”고 함으로써 철도청의 처지가 곤란해졌으나 이 대안제시가 오송역 유치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청와대 경제수석과의 담판

2012년 10월 20일 서울시 마포구에 지상 19층 지하 6층 규모로 건립한 서울대 장학빌딩 준공식에서 서울대와 총동창회 관계자들이 축하케이크를 자르고 있다(사진 위). 2층 명예의 전당 ‘베리타스홀’에서 홍성대 부회장(상산고교 이사장), 손일근 상임부회장(가천대 석좌교수), 강신호 고문(동아제약 회장), 임광수 회장이 제막식을 하고 있다(아래).

1991년 7월 13일 이동호 지사가 “청와대 경제수석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최고의 참모진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께서 그 참모진의 건의를 받아 결정한 고속철도의 노선을 1년여가 지난 지금에 와서 변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반대한다”면서 “경제수석을 설득할 분은 이춘구(李春九) 전 민자당 대표밖에 없으니 이춘구 대표를 만나 부탁해 달라”고 임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7월 18일 조계사 부근 한정식집에서 임 회장, 이춘구 의원, 경제수석, 안필준(安弼濬) 보사부장관 등 4인이 만났다.

임 회장이 고속철도 노선변경 당위성을 설명하자, 경제수석은 대통령 재가 후 1년이 지났고 용지매수가 시작됐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춘구 의원은 “임 회장으로부터 오송역의 타당성 설명을 들었다”며 “노 대통령의 선거 공약임에도 철도청장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니 바로잡아 달라”고 설득했고, 경제수석은 동의했다.

“1991년 7월 말 노태우 대통령이 청남대로 여름 휴가를 왔습니다. 8월 2일 아침 11시에 이동호 지사가 제가 만들어 준 차트로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경부고속철도가 청주권을 배제할 경우 100만명의 승객을 놓치게 된다’고 보고했고, 대통령은 ‘그렇다면 청주권 정차로 생기는 시간지체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이 지사가 ‘노선변경으로 3.4km의 노선연장과 청주역 정차로 5분 정도 늦어지는 속도는 격역 간 정차운행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그렇군!’하며 무릎을 쳤답니다.”

1991년 9월 19일 정부는 노선변경을 발표했다. 이러한 노력은 2005년 6월 청주 오송역이 호남고속철 기점역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임 회장은 “간이역에 불과했던 오송역이 오늘날 연간 이용객 500만명, 전국 46개 KTX역 중 상위 9위를 차지하는 국내 유일의 KTX 본역으로 성장했다”며 “청주 오송역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중국 횡단철도를 타고 세계로 뻗어 가는 시발역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동창회장은 부업이 아닌 ‘본업’

2007년 5월 17일 미주동창회 평의원회의에서 임광수 회장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제9회 관악대상(영광부문)을 시상했다.

2013년 12월 서울대 후배들은 6차례나 연임하며 12년간 동창회를 이끌고 퇴임하는 임 회장에게 《집념의 컴도저》를 출간해 헌정했다. 학교 일에 관심이 적고 후배들을 위한 지원에도 인색하다는 뜻으로 서울대 출신들을 ‘모래알’이라고 불렀으나 임 회장이 총동창회장을 맡은 후로 ‘시멘트 결속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임광수 회장은 2002년부터 서울대총동창회장으로 12년간 재임하며 2011년 10월 시가 1000억원 규모의 서울대동창회관(장학빌딩)을 건립했다. 장학빌딩은 지상 19층, 지하 6층, 연면적 6500평의 철골철근콘크리트구조 건물이다. 임대료가 연간 53억원(관리비 13억원 포함)으로 모교 재학생 후배들에게 25억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15억원은 학교발전기금으로 내놓는다.

임 회장은 2005년 10월 16일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제27회 홈커밍데이 겸 서울대 가족 친목 등산대회에서 장학빌딩 건립기금 300억원 모금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모금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불과 1년여 만에 300억원의 모금 목표를 초과달성하게 됐다.

임 회장이 동창회관 건립기금으로 50억을 내놓자, 10억원 이상 기부자들이 18명이나 나타났다. 금세 기부금은 목표액 300억원을 넘어 400억원이 걷혔다. 그 비결은 기부자가 좀 더 많은 장학금을 ‘자기 이름’으로 주게 하자는 임 회장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장학금은 기부금으로 지은 장학빌딩 임대료로 지급하는데, 총동창회가 시중은행보다 높은 6%의 이율을 보장하고 있다. 예컨대 5000만원 기부자라면 매년 기부금의 6% 수준인 300만원 정도를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임 회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광풍처럼 불어닥친 서울대 폐지론도 잠재웠다.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서울대 폐지론’이 나오기 시작하다가 2004년 3월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가 국립대 공동학위제와 무시험 대입 전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교육혁신위는 서울대로 대표되는 일류대를 ‘가진 자’ 혹은 ‘기득권층’으로 규정했다.

“총동창회는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대응했습니다. 일간신문이나 동창회보에 관악언론인회 회원과 동문들의 칼럼과 세계적 석학과의 대담 등을 게재함으로써 ‘서울대 폐지론’을 잠재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인호(李仁浩) 전 러시아대사는 ‘공산국가에도 명문대학이 존재한다’는 논리를 펼쳤고 이후 ‘서울대 폐지론’은 소리없이 사라지게 됐습니다.”

임 회장은 지독한 자린고비다. 사적인 식사 땐 절대 비싼 메뉴를 고르지 않고, 커피숍에서는 쿠폰을 꺼내 도장을 받는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의 크기를 따지지 않는다. 임 회장은 서울에 300여 명 수용의 충북학사를 사비로 건축해 충북도에 기증했으며, 이곳을 거쳐간 학생만 3500여 명, 국가고시 합격생을 100여 명이나 배출했다. 임 회장은 “젊은이들은 면학에 열중해 명분을 중시하는 올곧은 선비의 기개를 닦아야 한다”면서 “사회를 정화(淨化)하고 국가의 기강을 세우려면 무엇보다 지식인의 도덕적 원기(元氣)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