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의 인간탐험] 바둑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조훈현(曺薰鉉) : 월간조선

1989년 9월 5일은 한국 바둑이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바뀐 날이다. 이날 이전까지 일본 바둑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메이저리그’였고 한국의 바둑은 중국에도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세계적인 바둑대회가 없던 시절인 1987년 타이베이의 재벌이면서 바둑 애호가였던 잉창치(應昌期·97년 작고)는 세계적인 바둑대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응씨배’가 그것이다. 총규모 116만 달러의 이 대회 우승자에게는 40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졌다. 40만 달러는 당시 환율로 3억2000만원이었다. 국내 최대 기전인 왕위전의 우승상금이 1600만원이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1988년 8월 개막한 이 대회에서 조훈현(曺薰鉉) 9단은 세계 바둑계의 예상을 깨고 결승에 올라 중국의 녜웨이핑(攝衛平) 9단과 대국을 벌였다. 2승2패 상태에서 마지막 대국이 벌어진 날이 1989년 9월 5일이다. 이날 마지막 대국에서 조 9단은 녜웨이핑 9단을 145수 만에 흑 불계승했다. 2014년 후반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생〉 원작만화에 소개된 기보가 이 마지막 대국의 기보다.

조 9단의 응씨배 우승은 전 국민의 기쁨이었다. 신문과 방송이 조 9단의 우승 소식을 대서특필한 것은 물론이고 바둑인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카퍼레이드까지 펼쳐졌다. 은관문화훈장까지 수훈한 조 9단에게는 이 대회 후 ‘바둑황제’라는 별칭이 주어졌다. 조 9단의 응씨배 우승 이후 한국은 이창호, 이세돌 등 걸출한 기사들을 배출하며 세계 바둑의 중심이 됐다. 조 9단도 그의 유일한 제자였던 이창호 9단에게 최고의 자리를 내주게 된 시기인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바둑의 정상에 있었다. 그 시기 한국 바둑의 정상은 곧 세계 바둑의 정상이나 진배없었다.

그랬던 그가 금년 4·13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의원 생활 두 달 남짓한 시간이 됐을 때 그를 만났다. 조 의원의 방은 1009호였는데 초선이라서 그런지 다른 의원들의 방과 달리 번잡하지 않았다. 조 의원은 말수가 적기로 유명하다.

정치를 직접 겪어 보니…

3월 새누리당에 입당한 조훈현 9단이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정치를 하려면 말을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말수는 늘었습니까.

“아직은요. 바둑 이야기라면 가능할 텐데 아무래도 정치는 처음이라서요. 처음에는 정치를 하나도 몰랐는데 조금씩 알아 가고 있습니다.”

— 정치인의 길을 잘 선택한 것 같습니까.

“일한 게 많지 않아서 뭐라고 하기가 좀 그렇네요. 다만 바깥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를 보던 것과 막상 안에 들어와서 보는 정치가 많이 다르네요.”

— 뭐가 다릅니까.

“저는 법안이나 이런 것들이 제안을 하면 하루아침에 통과하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웃음). 제가 무지했던 거죠. 그런데 보통 1년, 길게는 2년, 그 이상도 걸린다고 하더군요. 통과 안 되는 법안도 많다고 하고요.”

—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후회가 되나요.

“임기 4년 동안 제가 할 일을 다해야 하겠죠. 단 하나라도 제가 법안을 내면 마무리는 지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기왕 몸을 담갔으니까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정치 수준은 바둑으로 치자면 몇 단 혹은 몇 급으로 보입니까.

“아유, 아직은 제가 말씀을 드릴 수준이 안 되고요. 평가를 할 때도 보는 눈이 있어야 평가를 하는데 아직 두 달밖에 안 돼서 잘한다 못한다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조금은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당론과 개인의 입장이 다른 일이 생기면 어떡할 것 같습니까.

“나름의 내부 사정이 복잡한 것 같아요. 당 의견이 이렇다 그러면, 이건 아닌데 하더라도 찍어야 하는 그런 게 좀 보이긴 해요. 그런데 당의 의견을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 당 대표 선거에서는 누구를 밀어라 하는 등의 요청이 있습니까.

“그런 거는 아니고요. 가끔 제 생각과는 다를 때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생소하다고 할까요. 이를테면 상임위에서 보통 때는 사이 좋게 지내다가도 의견이 좀 다르면 막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물론 제가 처음 겪는 일들이라서 싸우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요.”

— 상임위에서 싸워 봤습니까.

“초선인 저는 싸울 힘도 없어요. 다투는 모습들이 저로서는 생소할 뿐이죠. 뉴스에서 나오는 거는 봤지만 막상 직접 들어와서 보니까 아직은 낯선 거죠. 살펴보면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둑은 바둑판에서 조용히 한 수만 갖다 놓으면 되는데, 여기서는 말로 이겨야 하니까요.”

정치인·경제인들의 바둑 스타일

— 친박으로 분류되고 있죠?

“원유철 의원께서 저를 이 길로 끌어들였으니까 그렇게들 분류하죠. 원래 개인적으로는 무파지만요. 하지만 신경은 안 씁니다.”

— 어릴 때부터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겁니까.

“아니에요. 이렇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 직접 느끼기에 정치가 쉬운가요, 바둑이 쉬운가요.

“주변 정치인 분들이 농담 삼아 이런 말씀들을 해 주시더군요. 정치가 훨씬 더 어렵다고. 실제로 겪어 보니 저에게는 그런 것 같습니다.”

— 정치 입문 전 바둑 때문에 정치인들과 교류가 있었죠?

“많았어요. 이인제 전 의원, 원유철 대표도 계시지만 국회 바둑 최고수로 알려진 김기선 의원 등도 있고요. 알고 지낸 지 20년 넘은 분들이 꽤 있어요.”

— 그 가운데 원유철 의원이 제일 가까웠던 거네요.

“글쎄요. 그걸 가깝다 멀다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고요. 원 의원께서는 우리 바둑계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 바둑계에 있으면서 만난 정치인들을 볼 때 그분들이 두는 바둑 스타일과 정치 스타일이 많이 닮아 있습니까.

“구분하기가 좀 어려운데요. 공통점이 있다면 그분들은 싸움 바둑이 많았습니다.”

— 정치인들이 싸움 바둑을 좋아하면 전투적인 기풍의 조 의원과 잘 맞았겠네요.

“저는 싸움 바둑이 아닙니다.”

— 그래도 별명이 전신(戰神) 아닙니까.

“제가 발빠르게 움직이는 스타일로 두니까 그렇게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싸움 바둑은 아니에요.”

— 원유철 의원의 기풍은 어떤가요.

“싸움 바둑이기는 한데 약간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할까요. 그런 스타일이고요. 바둑에서는 이인제 의원이 완전 싸움꾼이죠.”

— 유인태 전 의원도 바둑을 즐기는 걸로 아는데요.

“그분도 싸움 바둑이에요. 이인제 의원과 유인태 의원이 대국을 하면 바둑판이 완전히 피로 얼룩집니다. 이리 죽고 저리 죽고 하면서요. 그런데 바둑 돌을 놓으면 두 분이 그렇게 친할 수가 없어요.”

— 그럼 전·현직 의원 중 두 분이 싸움 바둑을 가장 즐기시는 분들인가요.

“네. 제가 접한 부분에서는 그렇죠.”

— 바둑을 두면서 경제계 인사들과도 교류할 기회가 많았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을 꼽는다면.

“김우중 회장이죠.”

—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은요.

“정 회장님은 바둑을 안 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김우중 회장은 바둑을 둘 때 공격적이지 않았나요.

“굉장히 빠르게 두셨어요. 엄청난 속기였죠. 명예 8단쯤으로 기억하는데 실제는 아마 2~3단쯤 됐을 겁니다.”

— 수비적인 바둑을 두는 기업인 중 생각나는 분은?

“허동수 회장님이 수비쪽이 강하셨어요. 흑을 잡든 백을 잡든.”

바둑 기보 저작권법 제정 나서

1996년 6월 27일 서울 롯데호텔 사파이어룸서 열린 제1회 LG배 세계기왕전 2회전 대국서 조훈현 9단(오른쪽)이 조치훈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제안하고 싶었던 법률이 바둑 기보 저작권이라면서요.

“네. 현재 발의를 준비 중입니다. 지금 바둑계에서는 기보 저작권법하고 바둑 진흥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 그래서 상임위를 교육문화체육관광위로 선택한 것이군요.

“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교육문화체육관광위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국회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 바둑이 스포츠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있었는데요.

“예전에는 문화·예술로 분류됐는데 10여 년 전부터 바둑을 스포츠화하자는 운동이 벌어졌죠. 저는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시대 흐름에 좇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바둑은 올림픽 종목도 아니잖습니까.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는 종목으로 들어갔는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못 들어갔죠. 올림픽 종목이 되도록 애를 쓰고 있는데 한·중·일(韓中日) 동양 쪽만 강하다 보니까 세계적으로는 좀 힘든 상태죠. 지금은 아마추어 대회를 하면 유럽, 미국 등 60~70개 나라에서 출전합니다.”

— 바둑을 스포츠라고 보면 바둑에서 기보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은 축구나 배구 등의 시합도 저작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운동장에서 뛰는 시합을 보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시합 장면을 상업적으로 팔면 저작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 바둑 기보도 상업적으로 이용될 때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을 막는 건 아니고 상업적일 때 적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 예를 들면 〈미생〉에 썼던 기보 같은 경우가 저작권에 해당한다는 거죠?

“네. 물론 〈미생〉의 경우는 한국기원과 얘기가 된 부분이기 때문에 문제될 거는 없습니다만.”

— 〈미생〉의 기보 게재는 조 의원의 허락을 받은 겁니까.

“제가 한국기원에 소속돼 있으니까 문제될 거는 없습니다. 만약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게재했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런 문제들을 법제화하자는 게 제 입법취지입니다.”

— 우리 바둑기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화제였습니다. 알파고가 이기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절망했습니다. 설마설마하던 것이 현실화한 건데 그동안 인공지능 로봇의 바둑대회가 있어 왔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보면서 언젠가는 인간이 지겠지 하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 알파고에는 조 의원이 그동안 둔 바둑 기보도 상당히 입력이 돼 있었겠죠.

“그렇다고 봐야죠.”

— 이러다가 인간이 하는 바둑이 사라지는 거 아닙니까.

“(웃음). 바둑을 두는 데 어떤 기계가 강하냐 하는 거는 나오겠죠. 하지만 그거는 어느 기계의 성능이 더 좋은가 하는 대결일 뿐이고 인간끼리의 대결은 이어지겠죠.”

내 아내가 바둑 10단인 이유

인터뷰 중 조 의원과 마주앉은 탁자 밑으로 바둑판이 보였다.

— 의원실에서 바둑을 가끔 둡니까.

“아직은 둔 적이 없습니다. 그냥 예비로 놔둔 겁니다.”

— 보좌관이나 직원들이 한 수 가르쳐 달라고는 안 합니까.

“어려워서인지 아직 그런 직원은 없습니다.”

— 너무 권위적인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제가 프로다 보니까 프로로서 가르쳐줄 게 없는 겁니다.”

— 집에서 부인하고도 바둑 안 둡니까.

“제 아내는 바둑을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저보다 높은 10단입니다.”

— 왜 부인은 10단인가요.

“저한테 훈수를 두잖아요. ‘오늘 왜 졌어’ 하고요.”

— 오목도 안 둡니까.

“오목에도 급이 있어요.”

— 프로 바둑기사들은 오목도 잘 둡니까.

“그럼요. 바둑판 위에서 바둑알로 하는 거는 다 잘하지요. 맨날 붙들고 있다시피 하니까요.”

— 한·중·일 3국의 바둑 기풍은 어떻게 다릅니까.

“일본은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성이 강합니다. 한국은 싸우는 쪽이고 중국은 대륙풍이랄까, 옛날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대륙적인 기질이 있어서 많이 넓게 천천히 봅니다. 그래서 장고(長考)파들이 많습니다.”

— 그럼 중국 바둑 기사들은 초읽기에 몰리는 경우가 많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그게 승부와는 큰 상관은 없어요. 우리는 빨리 승부를 보려고 하지만 중국은 천천히 나중에 가서 승부를 보려고 하는 특징이 있죠.”

— 일본의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게 뭡니까.

“한마디로 배운 대로 둔다는 거죠. 정석대로 바둑을 둡니다.”

— 변칙적인 기풍에 약하겠네요.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일본 기사들은 하지 말라고 배우면 그 틀에서 못 벗어나요. 그걸 지키려고 하다가 역전당하곤 하죠. 미세한 차이인데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 함께 일본에서 바둑 공부를 했던 조치훈 9단과 1980년에 대결을 해서 진 후 치사량인 소주 2잔을 마셨다는데 사실인가요.

“나는 소주 한 잔만 마셔도 갑니다. 소주를 마셨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속이 상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저는 조치훈 9단과 바둑을 두게 되는 과정에 더 속상했던 기억이 나요. 조 9단은 당시 일본 최고였죠. 저도 당시 무척 바빴는데 하루 건너씩 바둑을 두게 돼 있었어요. 그런데 1일, 3일, 5일은 다른 대국이 예정돼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인 2일과 4일에 조 9단과 바둑을 두라는 거예요. 저는 매일 두게 된 셈이죠. 바둑은 마라톤과 같아요. 저한테 이 마라톤 저 마라톤 다 뛰라고 하는 거니까 화가 났죠. 게다가 대국료도 문제였어요.”

— 조치훈 9단에게 대국료가 더 많이 책정돼 있었나 보죠.

“그랬죠. 저로서는 자존심이 상해서 같은 금액을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같은 액수를 준다는 거예요.”

— 어쨌든 자존심은 회복했네요.

“아니었어요. 저한테는 100만원을 주었는데 조치훈 9단한테는 100만엔을 주었어요. 100만이라는 숫자만 같은 거였죠.”

바둑인 최초의 카퍼레이드

제1회 응창기배 세계프로바둑대회에서 우승하고 1989년 9월 6일 입국한 조훈현 9단. 이날 바둑인 최초로 조 9단의 승리를 축하하는 카퍼레이드가 벌어졌다.

— 응씨배 우승 후 벌어진 카퍼레이드가 바둑인에 대해서는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이죠?

“마지막 대국이 싱가포르에서 벌어졌는데 김포공항에 도착하니까 갑자기 오픈카를 타라고 해서 탔죠.”

— 응씨배 우승으로 은관문화훈장을 받게 됐을 때 조남철 9단이 먼저 받아야 한다고 사양을 했었다면서요.

“네. 우리 바둑계에 끼친 공로를 생각해서라도 저보다는 선배인 조남철 9단이 먼저 받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사양했던 건데 결국은 같이 받았어요.”

— 녜웨이핑 9단과는 그 뒤에도 대국할 기회가 많았겠네요.

“많이 만났죠.”

— 누가 더 많이 이겼습니까.

“제가요.”

— 녜웨이핑 9단이 조 의원보다 어리지 않나요.

“동갑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고바야시 9단, 중국에서는 녜웨이핑 9단, 한국에서는 제가 주름잡을 때였죠.”

— 한국인 중 최고의 바둑 고수는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그때그때 다르죠. 다들 전성기가 다르니까.”

— 세계를 통틀어 조 의원의 윗세대에서는요.

“저는 중국의 오청원 9단이 바둑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는데 바둑에 대한 모든 생각을 180도 바꿔 놓은 분이에요. ‘영원한 기성’이라고 불리지요.”

— 국내 바둑계에서 최고 싸움꾼은 누구입니까.

“펀치력이라고 할까요. 힘이 센 공격은 유창혁 9단이라고 봅니다.”

— 이세돌 9단 아닌가요.

“이 9단은 감각이 특이한 것이지 싸움꾼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 감각이 특이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요.

“보는 눈이 다르다고 할까요. 무언가를 봤을 때 그걸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람이 있지만 뒤집어서 그리는 사람이 있고, 조각을 내서 그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는 눈이 남달라요. 그대로 그리지 않죠. 뒤집거나 쪼개거나 하죠.”

— 창의적이라는 건가요.

“좋게 말해서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죠.”

— 상대적으로 조 의원의 유일한 제자인 이창호 9단은 정석에 가까운 바둑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 이창호 9단은 어떤 제자였습니까.

“정말 노력파였어요. 학교에 다녀와서 저녁을 먹고 나면 이창호 방에서는 ‘탁’ ‘탁’ 하는 바둑돌 놓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밤 12시, 1시까지 그랬죠.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방에 들어가 보면 한 손에는 기보책을 들고 바둑판 앞에서 잠들어 있곤 했죠.”

— 그 제자에게 1990년대 중반 바둑계의 왕좌 자리를 완전히 내줬는데요.

“바둑은 언제 둬도 져서 기분 좋을 리 없죠. 승부니까요. 그나마 제자한테 지는 게 남한테 지는 것보다는 나았다고 할 수 있겠죠.”

이세돌과 대국을 했다면 해볼 만했을 것

조훈현 의원이 서울 평창동 자택 앞마당에서 부인 정미화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창호 9단을 가르치면서 언젠가 지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까.

“처음에는 안 했죠. 그런데 이창호가 13살, 14살 되던 무렵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 조 의원의 최전성기 때와 이창호의 최전성기 때 둘이서 맞붙었다면 누가 이겼을 것 같습니까.

“제가 졌으니까 할 말은 없죠.”

— 그래도 조 의원이 졌을 때는 이창호 9단은 최전성기였고 조 의원은 하락기 아니었습니까.

“그럴지라도 제가 정상에 있을 때 이창호에게 진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 프로 기사들끼리는 사적인 대국을 안 합니까.

“재미로 하는 경우가 있죠. 차 내기나 점심 내기 같은 거요. 하지만 많이 하지는 않아요.”

— 재미로 하는 대국에서 진다면?

“속된 말로 열 받죠. 지고 나면 상대방을 못 가게 붙잡죠. 그렇게 차 내기로 시작해서 밥 내기가 되고 나중에는 술 내기로 되기도 하죠.”

— 전성기 시절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최전성기였다면 두어 볼 만했을 것 같습니다. 이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 조 의원이 직접 둔 대국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기보가 나온 바둑은 어느 대국입니까.

“최고의 기보는 딱히 생각이 나질 않아요. 사건이 있는 대국은 생각이 나지만, 기보란 것이 나 혼자 잘 둔다고 최고의 기보가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 싸움의 신(戰神)이라는 별명은 마음에 듭니까.

“정말 치열하게 싸우면서 바둑을 두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 10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바둑을 배우러 갔는데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어렸잖아요. 비행기를 태워 준다니까 그 맛에 갔어요. 요즘 기준으로 하면 우주선 태워 준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아마 배를 타고 가라고 했으면 안 갔을 겁니다.”

— 1962년 9살 때의 입단이 국내 최연소 기록인데 아직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바둑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보면 될 겁니다. 제가 바둑을 시작할 때는 그만큼 벽이 얇았죠. 지금은 바둑을 빨리 배운다고 해도 벽이 일단 그때보다 높으니까요.”

— 본인의 최전성기는 몇 살 때였습니까.

“아마 30살 때부터 45살까지가 아닐까요.”

— 국회의원을 그만두면 다시 프로 바둑기사로 돌아가는 겁니까.

“당연하죠. 물론 은퇴했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아직 은퇴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국내 바둑 랭킹에서 빠졌지만 그 직전까지 랭킹 100위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 국내 프로 바둑기사가 몇 명인데요.

“320명입니다.”

— 프로 바둑기사는 보통 몇 살에 최정점에 이릅니까.

“지금은 많이 빨라졌어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일 겁니다. 30대만 넘어가도 조로 현상이 오는지 별로 성적을 못 내더군요. 옛날에는 20대 초반부터 시작해 30대 초반까지, 심지어는 40대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죠. 바둑에는 아직 대기만성이라는 게 없습니다.”

비행기 태워 준다는 말에 선뜻 일본행

— 대부분의 유명 바둑인들이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않는데 중간에 바둑을 접는 분들은 어떻게 생활을 합니까.

“그래서 프로에 입문하지 못하면 힘들게 삽니다. 일자리도 별로 없고요. 기원이나 이런 데서 사범을 하는 게 고작인데 많이들 어렵게 살죠.”

— 프로 바둑기사만 되면 먹고는 살 만합니까.

“그것도 그렇질 않아요. 연간 1000만원을 못 버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20~30명을 제외하고는 다 힘들게 삽니다.”

— 보통 바둑을 두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인가요.

“두뇌활동이 활발해진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둑을 두면 사람이 안정적으로, 차분해집니다. 바둑 첫 수부터 끝날 때까지 속기로 둬도 최소한 10분에서 30분은 걸립니다. 그동안 앉아 있어야 하니까 차분해지죠. 감정이 안정되어야 바둑도 둘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인성이나 감정의 조절 등 눈에는 안 보이지만 상당히 장점이 많다고 봅니다.”

— 집에서 아내를 도와 요리를 하는 적은 있습니까.

“전혀요. 할 줄도 모르지만 아내가 못하게 합니다. 도와준답시고 사고만 치니까요.”

— 그럼 라면도 직접 안 끓여 먹습니까.

“네. 한번은 라면을 끓이는데 1시간이 걸리더군요. 주방을 모르니까 냄비 찾느라 시간 보내고, 라면 어디에 두었는지 시간 보내고 등등 1시간이 걸려서 그때부터는 그마저 포기하고 삽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