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원조 주사파(主思派) 김영환이 제기한 ‘보수 논쟁’ : 월간조선

1986년 주체사상의 사상적 교범인 《강철서신》을 통해, 주사파 이론을 소개했던 김영환(53)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이 새로운 이념논쟁을 시작했다.

1980년대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수령론’ ‘품성론’ 등 종북 세력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던 김 연구위원은 7월 발간된 《시대정신》 7·8월호에 ‘한국 보수주의의 정립이 시급하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격렬한 이념 논쟁을 벌이면서 뚜렷한 이념적 내용이 없다면 그냥 진흙탕 싸움에 그칠 뿐”이라며 “이제 보수주의 이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정립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의 글은 대체로 한국 보수에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 테고 정치인이 되기 전 30여 년 가까이 한국 사회의 자유주의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지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중략) 국가주의에 대한 적극성이 높은 사람도 매우 많다. 그 결과 균형과는 거리가 멀어져 점점 우려스러운 상황이 되고 있다.”

“진보를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생명과 행복을 보호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보수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보수주의는 끊임없이 변화와 진보를 추구해야 한다.”

1980년대 좌파 이념을 이끌었던 김 연구위원이 보수 논쟁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권 말이다. 대선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있다. 어찌 보면 논쟁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점일 수 있다.

새누리당 이념 지향성 없어

7월 중순 서울 광화문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김영환 연구위원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중중우”라고 이야기했다. “중도우파 가운데서도 중도에 속한다”는 의미였다. 우선 보수 ‘이념’보다 ‘현실’ 정치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 새누리당은 보수 정당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직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미래 지향적인 그런 이념이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아요. 새누리당은 이념 지향성이 거의 없어요.”

— 어떤 ‘이념의 깃발’을 들어야 보수라고 생각하나요.

“노동개혁과 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입니다. ‘자유주의’ 입장과 일맥상통합니다. 미래 지향적 시각으로 보아야 해요. 인공지능시대가 곧 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실업률이 급격하게 높아져요. 안 그래도 실업률이 높아지는데 노동시장 개혁하면 실업률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보수를 표방하는 측에서도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이죠. 실업률 증가는 피할 수 없는 것이죠. 일시적으로 위장할 수는 있겠죠.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공정성’입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나이, 세대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둘째로 북한 문제입니다. 북한의 핵, 인권, 정권을 인정할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인가, 명확히 해야 합니다.”

— ‘노동시장 유연화’는 소위 밥그릇 싸움이어서 결론을 못 내고 있습니다.

“60년대에 태어나면 평생 일자리를 가졌는데, 90년대에 태어나면 일할 곳을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공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능력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취업이 되어야죠. 공기업, 공무원 할 것 없이 영원히 일자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사회적 위화감이 위험수위입니다. 공무원과 비공무원, 정규직과 계약직 사이에서 생기는 위화감과 충돌을 줄이기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합니다.”

북한이 존속하면 위협은 영원

2012년 7월 20일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구금되었다 풀려나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김영환 연구위원.

— 북한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국정원의 대북공작에 투입되는 예산은 매우 적어요. 우리나라 GDP 중 0.1% 1조5000억원 정도만 대북공작에 투입해도 어마어마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100%라고는 못해도, 상당히 가능성이 높아요.”

— 북한 붕괴 전략으로 나가면, 북측에서 핵실험을 하는 등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건 감수해야 합니다. 북한이 존속하는 한 북의 위협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방법이 없어요. 북한은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닙니다. 이것은 보수만의 문제가 아니죠.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면 북한을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북한 체제에 어떤 미래 희망이 있나요.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숙청을 자행하는 나라인데, 이를 인정하는 것은 진보정당이 아니죠.”

— 북한 내부에서 변화가 오지는 않을까요.

“김정은의 경우 감춰진 치명적인 단점이 있을 수 있어요. 몸무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자신의 건강을 조절했으면 그 정도까지 늘어나지는 않았죠. 지금은 공포정치가 먹혀들어 가지만 숙청될 위기에 몰린 세력이 이판사판으로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있죠.”

— 곧 대선인데, ‘제대로 된 보수’는 누구입니까.

“정치인들 가운데 누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아직은 빠릅니다. 세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첫째, 미래 지향적이어야 하고, 둘째 지나치게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셋째 북한·통일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 ‘창당’ 등 정치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닌가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몇 년 전부터 새누리당으로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면)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강해졌고요. 정치인들을 만나고 있는데, 정책이나 비전에 공감이 되면 도와줄 생각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장경제 미흡

김영환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버지죠. 박정희 대통령은 강력한 정부, 정부 주도 정책 등을 펼쳤죠. 명령경제입니다. 명령으로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구미공단을 만들었죠. 이것은 시장경제가 아닙니다. 이제 세상이 변해서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죠.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으로 권한을 위임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없어요. 정부 내에서 자율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데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있어요. 보수 정권임에도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 박근혜 정부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한번에 모든 것을 싹 바꾸려는 시도가 있어요. 그래야 국민들이 볼 때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역사 교과서 문제가 그래요. 정부 주도로 개입해서 바꾸려고 하면 절대로 되지 않는 것인데, 그걸 근본적으로 바꿔버리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조금씩 한 발 한 발 나가면서 의미 있는 진보를 해나가는 것이 보수죠. 노무현 정권 시절 언론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했죠. 이룬 것이 뭐가 있나요. 무리하게 하면 안 되는 것이죠. 교과서 문제의 경우 역사교사, 대학교수들이 반대합니다. 시대 자체가 교육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교과서 국정화는 없던 것이 될 거예요.”

—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와 크게 상관이 없었어요. 후대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보수’해야 할 가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은 보수의 아이콘이 되었죠.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사회 규모가 커졌습니다. 기업, 정부, 사회단체 모두 자율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보수주의에 부합합니다. 행정 관료들의 경우 자율성이 전혀 없고,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주도적으로 정책을 집행하지 않죠. 대통령이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죠. 인사를 자율적으로 하도록 해야 하는데 시시콜콜 간섭하니 문제죠. 사회가 변하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해요.”

현실적 보수 기준은 이승만·박정희 평가

2012년 7월 25일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중국에 강제 구금됐다 석방된 김영환 연구위원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엄격한 기준은 없어요. 인터넷에서 말이 많은 사람들의 기준법으로 보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하면 보수고, 비판하면 진보죠. 보수의 경우 자유주의, 국가주의 성향 등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리더십과 장악력으로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집중해 성공했습니다. 사회의 안정적인 발전, 점진적인 변화 이런 것을 추구하지 않고 강력하고 빠른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능률과 실질을 추구했죠. 박 전 대통령이 보수주의 정책을 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죠. 박 전 대통령이 볼 때, 모든 것이 개혁의 대상이었습니다.”

— 진보 세력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요.

“주사파의 영향이라고 봐요. 아이러니하게도 주체사상을 열심히 공부한 주사파가 별로 없어요. 철학이다 보니까 어렵고 공부를 해도 뭐가 뭔지 모르니까요. 반면에 역사 공부는 재미도 있고 비판할 거리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역사 공부를 많이 했어요. 주체사상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니까 역사 논쟁으로 끌고 간 것으로 봐요.”

— 한국 보수 세력의 ‘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지난 30~40년간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죠. 신생독립국 중에 경제적인 발전과 정치 근대화를 이룩한 국가는 거의 없죠. 정치적 발전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고요. 이것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부정하거나 훼손하려는 세력에 반감을 느끼는 것이죠. 이러한 반감이 보수 세력을 이끄는 동력입니다.”

— 진보 세력의 ‘동력’은 무엇인가요.

“1970년대 중반부터 지식인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크게 영향을 미쳤어요. 운동권 외곽에 있더라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유대감이 있었어요. 대학 때는 체계적으로 사상 공부를 했지만, 사회에 나간 이후에는 내용은 다 잊어버렸죠. 그러나 과거에 습득한 논리적 뼈대가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법조계, 언론계 등으로 진출했죠.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죠.”

‘극단적 우파’ 우려 수준

— 국가주의가 확산되는 배경은 무엇인가요.

“박근혜 대통령도 국가주의 성향이 약간 있어요. ‘반 좌파’ 성향이 강화된 결과죠. 좌파 세력이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다 보니,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게 되었죠. 생각이 간단하고 명료한데, 박정희 정권 시절에 국가 관념을 교육을 통해 많이 심어 놓았어요. ‘국가’라는 가치를 보호·지향해야 할 가치로 본 것이죠.”

— ‘극단적 우파’를 어떻게 봅니까.

“정치인, 관료, 군 지휘관 등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극단적 우파가 없어요. 그래서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죠.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인터넷상에서 볼 때 많아요. 우리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을 한국 밖으로 내쫓으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국의 진보 좌파 세력은 옛날에 비해 많이 줄었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다 보니까 정치권에서 중진급으로 성장하고 언론, 법조계에서 고위직을 차지해 영향력 있는 지위를 차지했죠. 여기에 반감이 있는 것이죠. 그러다가 이석기 통진당 사태 등을 통해 폭발적으로 몇 배 증폭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