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유엔총장과는 지금까지 7번 만나
⊙ 새마을운동 세계화가 연결고리… 내 진정성이 그에게 통했다
⊙ 경북도의 원자력 벨트 완성해 안보 수도로 만들고 싶다
⊙ 한일 독도 갈등도 경북도가 맡으면 쉽게 풀릴 수 있어
⊙ 구미시장 3연임-경북도지사 3연임한 유일한 행정인
⊙ 새마을운동 세계화가 연결고리… 내 진정성이 그에게 통했다
⊙ 경북도의 원자력 벨트 완성해 안보 수도로 만들고 싶다
⊙ 한일 독도 갈등도 경북도가 맡으면 쉽게 풀릴 수 있어
⊙ 구미시장 3연임-경북도지사 3연임한 유일한 행정인
- 김관용 지사는 힘이 넘쳤다. 아이디어는 더 철철 넘쳤다.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 근처 경북도청을 처음 구경했다. 한옥처럼 지어 높지 않은 대신 옆으로 넓어 ‘호화 청사’라는 구설에 올랐다는데 눈길을 끈 것은 요란한 치장보다 공중에 달린 초대형 황동 붓이었다. 길이가 10m가 넘는다고 했다. 붓이 매달린 벽 뒤에 일연(一然)선사의 얼굴과 그가 쓴 《삼국유사》 목각판이 보였다.
거의 훼손된 목각판을 전국의 일류 각수(刻手)들을 모아 복원시킨 것이다. 처음 찍은 《삼국유사》 인쇄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한다. 일연선사 옆에 ‘신라사 30권’ 발간이라는 안내문이 눈길을 끌었다. “삼국사-고려사-조선사는 있는데 왜 천 년 역사의 신라사는 없는가” 하는 반성에서 시작됐다는 신라사는 9월 완간된다.
“《삼국유사》 목각판 만들고 신라사 30권 곧 완간”
전국의 유명 사학자 130여 명을 모아 신라사를 쓸 정도니 경북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안목이 대단한 듯했다. 짐짓 칭찬했더니 이야기 보따리를 줄줄이 풀어놓았다. “학봉 김성일 선생과 서애 류성룡 선생의 ‘병호시비’를 해결한 것도 경북도청입니다. 수백 년 묵은 논쟁을 해결한 것이 큰 의미가 있지요.”
‘병호시비’란 1573년 안동 월곡면 도봉리에 호계서원을 세울 때 시작됐다. 퇴계 이황 선생의 양옆에 학봉과 서애 가운데 누구를 좌측에 배치할 것이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학봉의 의성 김씨와 서애의 풍산 류씨 간 세력 다툼으로 비화한 것이다. 원래 좌측에 모시는 인물이 더 서열이 높았기에 두 집안은 물러설 수 없었다.
처음엔 학봉을 좌측에, 서애를 우측에 모셨으나 200년 동안 자리싸움은 3번이나 재연됐다. 결국 퇴계는 도산(陶山)서원, 학봉은 임천서원, 서애는 병산서원으로 옮겨갔다. 모실 분을 잃은 호계서원은 사당 없이 강당만 남았다가 안동댐 건설에 수몰돼 임하면 임하리로 옮겨가게 됐다. 유림(儒林)의 고집은 가히 천하제일이다.
시작한 김에 경북도의 육상실크로드 프로젝트도 언급지 않을 수 없다. 옛 신라 수도 경주부터 중국-우즈베키스탄 등을 거쳐 터키 이스탄불까지를 주파하면서 경북도는 가는 곳마다 기념물을 남겼다. 다보탑 모형부터 기념비까지 세웠는데 ‘동북공정’을 시작한 중국에서 제동을 걸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슬기롭게 넘겼다고 한다.
내년에는 해상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베트남 호찌민까지 간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경제적 이득까지 창출했으니 지방자치단체치고는 야심이 대단하다. 이 모든 것이 김관용(金寬容·74) 경북도지사의 발상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우리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보기 드문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등학교 교사 지내다 행정고시 합격, 구미시장·경북도지사 각 3연임
일찍 아버지를 여읜 그의 여섯 형제를 먹여 살린 것은 어머니였다. 어렵게 구해온 양식으로 살아온 그는 낮에는 초등학교 교사, 밤에는 영남대학생으로 살다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구미·용산 세무서장을 지내다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뒤 1995년 첫 지자체장 선거에 출마, 구미시장과 경북도지사를 각각 세 번씩 지냈다.
발자취를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제일 좋아한다”는 말이 허언(虛言)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에게 “박정희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걸어오셔서 따님인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웃기만 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 일본 육사에 진학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관용 지사는 새누리당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한 명이지만 대권후보군에 그를 포함시킨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그의 초청으로 하회마을을 찾고 내친김에 경북도청사를 찾았다. “그가 분권형 개헌이 이뤄진다면 차기 정권에서 실세형 총리를 노린다”는 소문의 실체가 한 자락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지은 신청사에 매일 관광객 몰려”
6월 7일 오전 10시 반 마주앉았을 때 그는 신청사 자랑부터 했다. “주말이면 3000명, 평일에도 2000명이 구경 옵니다. 신청사가 문화유산이 된 겁니다.” 이것은 ‘호화 청사’ 논란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서울의 요란한 구청 청사에 비하면 그리 호화롭지 않다”고 했더니 그제야 짐을 던 듯 환하게 웃음 지었다.
제주지사 인터뷰 때처럼 경북도 공무원들도 끈덕지게 사전 질문지를 요청했다. 왜 질문을 먼저 보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보내지 않았는데 지사 대변인은 예상 질문을 만들었다. 지사는 공무원들이 뽑아놓은 ‘답안지’를 기자가 보냈다고 여겼는지 대화 도중 충실하게 반영했다. 그것도 그들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 민선시장 3번, 민선도지사 3번을 지낸 분이 우리 역사에 없지요.
“전 한번도 외도(外道)를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선산군수가 되고 싶었는데….”
— 고향이 옛 선산군 고아면이지요.
“선산군수(지금의 구미시)가 그리 멋있게 보였어요. 낮에는 교편을 잡고 밤에 공부하다가 고시가 된 후 줄곧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목민관으로 21년을 보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현장에 문제가 있다면 답도 현장에 있다’는 거지요. 이것은 주권재민(主權在民)과는 약간 개념이 다른 거예요. ‘백성이 하늘 같다’는 말은 정말 맞습니다.”
— 그동안 정치권으로 진출할 기회도 있었을 텐데요.
“국회로 갈 수도 있었지요. 전 남아 있겠다고 했어요.”
지방자치라는 민주의 열차는 멈출 수 없다
— 첫 지방자치선거가 1995년 치러진 뒤 2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지방자치제도의 출범은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투쟁에 의해 쟁취한 것이 아니라 몇몇 정치지도자의 결정에 의해 도입됐습니다. 그래서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측면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지방재정 문제입니다. 출발이 그렇다고 해서 지방자치라는 민주의 열차(列車)가 멈출 수는 없어요. 우리 ‘자치 열차’가 xy축 어디에 와 있는지 냉정하게 진단해 볼 시점입니다. 그런 진단을 한 후 어디로 가느냐를 결정해야지요.”
— 김 지사께서 말씀하셨듯 지방자치제도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시각도 많습니다.
“일례로 자식이 다섯 명 있다고 칩시다. 잘사는 아이, 못사는 아이, 사고치는 아이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전부 스톱시켜서 이혼시켜야 합니까? 우여곡절은 있지만 자치 열차를 멈출 수는 없지요.”
—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현장을 총지휘한 사람은 뉴욕 소방서장이었습니다. 우리로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게 맞는 겁니다. 그렇게 되려면 결국 사람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어요. 교육하고 훈련도 시켜야 하고요.”
— 앞서 지방재정을 말하셨는데.
“중앙정부가 권한을 지금보다 더 과감히 이양해야 합니다. 대신 감독을 강화하면 되지요. 요지는 책임을 묻되 문(門-지방재정)은 열어주라는 것입니다. 제가 도지사를 해보니 조직 하나 마음대로 만들 수가 없어요. 전부 승인을 받아야 하지요. 지방자치라는 게 내 삶을 내가 결정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중앙에서 일일이 개입합니다.”
지방자치 발전 위해서라도 개헌 필요
— 구체적으로 사례를 든다면?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중앙정부가 취득세를 감면했습니다. 감면한 비용으로 인한 부족분을 교부 지원하지요. 금액은 같아 보이지만 이건 엄밀한 지방자치단체의 고유한 권한을 침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양도세는 안 내립니까? 물론 지방자치단체도 불필요한 행사를 줄이고 책임도 져야겠지요. 하지만 원칙적으로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권한을 빼앗아가선 안 됩니다. 전 그래서 개헌이 돼야 한다고 봐요.”
— 개헌이라니요.
“지금 모든 갈등은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역별 갈등, 이념 갈등, 계층 갈등, 세대별 갈등, 빈부(貧富) 갈등…. 갈등이 현장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해법도 현장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예를 들고 싶어요. 그는 영화배우 출신답게 모든 공직자에게 배역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역할을 맡기니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졌지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은 바로 통치의 근본 아닙니까? 그게 바로 균형이지요.”
— 발전이 꼭 균형정책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할 때 포항-구미-울산-여수를 불균형 성장시킨 사례가 있어요. 미국의 실리콘 밸리도 불균형 성장의 사례고요. 정답은 결국 균형입니다. 균형감각이 사라지면 불만과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지요.”
“개헌은 프랑스 헌법식으로”
— 분권형 개헌이 왜 바람직하다고 봅니까.
“저는 중앙과 지방이 권한을 배분하는 차원에서 분권형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이를테면 자치조직권 같은 걸 주는 거죠. 전 분권형 개헌도 이왕 한다면 프랑스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방자치가 강화된다고 나라가 발전할까요.
“의외로 지방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경북에 우리 원자력 발전소의 대부분이 들어와 있습니다. 바다와 접해 있고 지반이 바위로 이뤄져 단단한 곳이 여기뿐이거든요. 원전(原電)이 집중돼 있으면 당연히 연구기관이 내려와서 R&D까지 이뤄져야 합니다. 그걸 운영하기 위한 인력양성기관으로 마이스터고도 설립돼야 하고요. 그게 바로 원자력 클러스터(Cluster)입니다. 이 모든 것이 완비돼야 ‘스마트 원자로’를 개발하고 수출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고 있습니다.”
— 다른 지역은 원전의 ‘원’자만 나와도 기겁을 하는데요.
“전 원자력 연구단지가 오기만 한다면 50만 평에서 100만 평의 부지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은 핵 확산방지회의도 열고 IAEA 회의도 여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핵 문제도 전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는 거지요. 원전뿐 아니라 독도 문제도 비슷해요.”
— 독도 문제라니요.
“지금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니 일본과의 독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입도(入島)센터 같은 것을 경북도에서 관리한다면 훨씬 부드럽게 갈등을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자력의 일생을 모두 경북에서
— 경북에 원전이 많지요. 경주 월성·신월성, 울진뿐 아니라 영덕에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전 원자력의 일생이란 말을 즐겨 인용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크고 아프다 죽는 것처럼 원전의 설계(한국전력기술) 생산(한국수력원자력) 무덤(방사능폐기물장)은 있는데 원자력해체센터만 아직 없습니다. 이것도 경북에 생겨야지요. 환경단체들의 반대가 있기는 하지만 원자력의 일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경북에 들어오는 게 맞습니다.”
— 반대가 심하진 않습니까.
“영덕의 경우 이해를 구하는 부분이 있지만 동해안 원자력 벨트라는 측면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경북은 신라의 천 년 수도 경주에서 볼 수 있듯 문화의 수도일 뿐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의 수도이기도 합니다. 그런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더 지원을 많이 해야 하는데 중앙부처들은 삭감만 하려고 하지요.”
— 앞서 언급했던 육상실크로드 프로젝트도 그 일환입니까.
“77명의 대학생을 모아 처음 시작했는데 육상실크로드 지역에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아무 문제 없었는데 중국만 ‘노(No)’라고 해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우리를 ‘속국(屬國)’으로 보는 동북공정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정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였지요. 그래도 장안에 당당히 들어가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 모형까지 세우고 왔습니다. 돈도 많이 들었어요. 중국산 석재로 했으면 저렴했을 텐데 그럴 순 없다 싶어 신라 장인과 신라의 돌로 2년이나 걸려 제작했습니다.”
— 문화에 원래 조예가 깊습니까.
“신라사를 집필하는 데 5년간 136명의 학자가 참여했습니다. 9월쯤 발간되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유수의 도서관에 영문판을 다 보낼 겁니다. 신라사라고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어떤 분은 ‘신라사는 쇠의 발전사’라고도 제게 충고했습니다.”
— 신라사가 쇠의 발전사라니요?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아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원동력은 우수한 무기를 생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쇠와 관련된 시설은 지금으로 치면 안보시설이기에 흔적이 없었어요. 포스코에 연락해서 최고 전문가를 모시고 쇠와 관련된 부분도 파헤쳤습니다.”
— 《삼국유사》 목각판은 어려움이 많았겠지요.
“거의 훼손된 것을 복원하느라 전국의 유명 각수를 수배해 도감(都鑑)까지 만들었습니다. 사실 거의 완벽한 판본을 가진 분이 있어요. 그런데 몇백억을 부르는 거예요. 사정사정해서 입수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랑할 게 많은데….”
— 해보십시오.
“경북에 종가(宗家)가 몇 개나 있는지 아십니까?”
경북의 종가 241개는 한국의 자산
— 몇 개나 됩니까.
“241개입니다. 종손, 종부들의 삶과 복식과 제례를 종합하면 그게 바로 우리 옛 모습이 되는 겁니다. 저는 그분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종가포럼을 만들었어요. 문중별로 문양(文樣)도 새로 만들어드리고요. 고향 자랑 같지만 경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산실입니다. 전국에서 독립운동 유공자가 제일 많은 곳이 안동입니다. 선비정신이 충실했던 이곳에서 나라를 잃은 시기, 독립운동가가 제일 많이 나온 것만 봐도 알 겁니다. 문 기자, 식민근대화론이라는 말 아시죠.”
— 영국 역사학자 토인비가 한 말 아닌가요.
“식민근대화론은 식민지 시대에 건설한 철도·교량 등으로 인해 식민지가 근대화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토인비는 이런 말을 했어요. 식민사관은 1세기를 간다고. 세계 식민지사를 봐도 일본처럼 철저하고 지독한 나라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은 물자와 자원만 빼앗았을 뿐 창씨개명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혼(魂)까지 빼앗으려 했지요. 그 식민근대화론 때문에 어떤 외국학자들은 우리를 ‘16세기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런 점에 비추어보면 화랑정신·선비정신·호국정신이 살아 있는 경북은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6·25 때만 봐도 그렇지요.”
— 경북이 무너지지 않아 대한민국이 결국 회복할 수 있었지요.
“왜관·장사·안강처럼 격전지가 많았습니다. 전 그래서 경북을 외국인에게 소개할 때 ‘이것은 코리아(That is Korea)’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곳에 당연히 평화벨트가 들어서야지요. 원자력 발전소의 평화벨트, 독도의 평화벨트.”
— 안동에 경북도 신청사가 들어선 것은 그런 점을 고려한 겁니까.
“청사 후보지가 많았는데 경북과 관련이 없는 인사들에게 선정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곳을 꼽는 거예요. 공교롭게도 안동이 북위 36도 선입니다. 행정수도가 있는 세종시와 나란히 있어 저는 ‘허리 경제권’이라 부르지요.”
— 이렇게 열심히 일하셨는데 2018년 임기가 끝난 후엔 뭘 하실 생각입니까.
“야전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반은 정치인이고 반은 행정인인 셈이지요.”
반기문 총장과 모두 7번 만나 새마을운동이 매개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안동 하회마을에 이어 신청사까지 방문한 게 큰 화제가 됐습니다.
“반 총장과는 지금까지 모두 7차례 만났습니다. 새마을운동이 계기가 됐어요. 새마을운동을 어떤 이들은 과거 회귀라고 하는데 당치 않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지원을 해 자립하고 자활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지요. 지금까지 400여 명의 새마을지도자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했어요. 그들을 만나러 사막을 6~7시간 넘게 차로 가로질러 달려간 적도 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전 그랬습니다. ‘너희가 진정한 애국자’라고.”
— 효과가 있었습니까.
“르완다의 경우 쌀 수확량이 새마을지도자들이 간 이후 6배 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게 유엔에서 지원해 준 부분이 커요. 제가 새마을재단을 만들자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새마을운동은 아파트 지을 때 모델 하우스 같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자동으로 해체되는.”
— 반 총장은 어떤 분이던가요.
“정확하고 성실한 분이지요. 새마을운동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세계의 빈곤을 해결하는 데 이용해 보자고 했더니 쾌히 수락했습니다. 제 진정성이 그분에게도 통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주에서 유엔 콘퍼런스가 열리고 안동 하회마을을 찾고 신청사까지 오셨다고 봅니다.”
— 만일 분권형 개헌이 되면 반 총장이 대통령을 맡고 김 지사께서 실무형 총리를 맡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직은 그런 말을 할 입장이 아니지요. 분권형 개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제 소신이지만요.”
— 광주에서 열린 5·18 공식 행사에 지사로는 처음 참석한 것이 정치적인 행동이었나요.
“제가 다산 목민대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개인 상금이 1억원이었는데 전액 김대중 평화재단에 기증했지요. 문경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릴 때는 이희호 여사를 방문하기도 했어요. 북한이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석하도록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요. 성사는 안 됐지만요. 전 동서갈등이니 지역갈등이니 하는 것이 다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린이들은 그런 것 몰라요. 우리 시대에 그런 불필요한 갈등들을 없앨 수 있다면 5·18 공식 행사뿐 아니라 어디도 가야지요.”
일부러 명당자리 도의회에 양보
— 혹시 차기 대권 후보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섭섭하진 않습니까.
“저는 야전에서 살아왔으니까요.”
—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영락없는 정치인 화법 같습니다.
“저는 평생 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골프를 안 쳐요. 구미시장 할 때 구미공단 근로자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골프 칠 수 있을 만큼 생활이 나아질 때까지 시장 당신도 골프를 치지 말라’고. 엉겁결에 응낙했는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김관용 지사를 혹자는 팔십 근처까지 도지사를 하려 욕심을 부린다고 비난하지만 막상 만나본 그는 활력이 넘치는 50대 후반처럼 보였다. 부하 직원들은 “함께 운동을 할 때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건강한 몸이 있기 때문인지 점심식사를 포함해 세 시간 가까이 대화하면서 그의 끊이지 않는 화제에 감탄했다.
안동의 경북도 신청사 뒷산이 검무산(劒舞山)이다. 해발 287m로 백두대간 자락인 이 산에는 옛날 장수들이 검술을 익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청사 부지 가운데 제일 명당이 도의회 자리라고 한다. 김 지사는 일부러 명당자리를 피해 비켜앉았다고 한다. 그게 무슨 의도였는지 내년 연말이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거의 훼손된 목각판을 전국의 일류 각수(刻手)들을 모아 복원시킨 것이다. 처음 찍은 《삼국유사》 인쇄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한다. 일연선사 옆에 ‘신라사 30권’ 발간이라는 안내문이 눈길을 끌었다. “삼국사-고려사-조선사는 있는데 왜 천 년 역사의 신라사는 없는가” 하는 반성에서 시작됐다는 신라사는 9월 완간된다.
“《삼국유사》 목각판 만들고 신라사 30권 곧 완간”
전국의 유명 사학자 130여 명을 모아 신라사를 쓸 정도니 경북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안목이 대단한 듯했다. 짐짓 칭찬했더니 이야기 보따리를 줄줄이 풀어놓았다. “학봉 김성일 선생과 서애 류성룡 선생의 ‘병호시비’를 해결한 것도 경북도청입니다. 수백 년 묵은 논쟁을 해결한 것이 큰 의미가 있지요.”
‘병호시비’란 1573년 안동 월곡면 도봉리에 호계서원을 세울 때 시작됐다. 퇴계 이황 선생의 양옆에 학봉과 서애 가운데 누구를 좌측에 배치할 것이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학봉의 의성 김씨와 서애의 풍산 류씨 간 세력 다툼으로 비화한 것이다. 원래 좌측에 모시는 인물이 더 서열이 높았기에 두 집안은 물러설 수 없었다.
처음엔 학봉을 좌측에, 서애를 우측에 모셨으나 200년 동안 자리싸움은 3번이나 재연됐다. 결국 퇴계는 도산(陶山)서원, 학봉은 임천서원, 서애는 병산서원으로 옮겨갔다. 모실 분을 잃은 호계서원은 사당 없이 강당만 남았다가 안동댐 건설에 수몰돼 임하면 임하리로 옮겨가게 됐다. 유림(儒林)의 고집은 가히 천하제일이다.
시작한 김에 경북도의 육상실크로드 프로젝트도 언급지 않을 수 없다. 옛 신라 수도 경주부터 중국-우즈베키스탄 등을 거쳐 터키 이스탄불까지를 주파하면서 경북도는 가는 곳마다 기념물을 남겼다. 다보탑 모형부터 기념비까지 세웠는데 ‘동북공정’을 시작한 중국에서 제동을 걸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슬기롭게 넘겼다고 한다.
내년에는 해상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베트남 호찌민까지 간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경제적 이득까지 창출했으니 지방자치단체치고는 야심이 대단하다. 이 모든 것이 김관용(金寬容·74) 경북도지사의 발상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우리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보기 드문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등학교 교사 지내다 행정고시 합격, 구미시장·경북도지사 각 3연임
일찍 아버지를 여읜 그의 여섯 형제를 먹여 살린 것은 어머니였다. 어렵게 구해온 양식으로 살아온 그는 낮에는 초등학교 교사, 밤에는 영남대학생으로 살다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구미·용산 세무서장을 지내다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뒤 1995년 첫 지자체장 선거에 출마, 구미시장과 경북도지사를 각각 세 번씩 지냈다.
발자취를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제일 좋아한다”는 말이 허언(虛言)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에게 “박정희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걸어오셔서 따님인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웃기만 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 일본 육사에 진학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관용 지사는 새누리당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한 명이지만 대권후보군에 그를 포함시킨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그의 초청으로 하회마을을 찾고 내친김에 경북도청사를 찾았다. “그가 분권형 개헌이 이뤄진다면 차기 정권에서 실세형 총리를 노린다”는 소문의 실체가 한 자락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지은 신청사에 매일 관광객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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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신청사는 관광지처럼 변했다. 하루 2000명, 주말 3000명 넘게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김 지사가 안내하고 있다. |
제주지사 인터뷰 때처럼 경북도 공무원들도 끈덕지게 사전 질문지를 요청했다. 왜 질문을 먼저 보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보내지 않았는데 지사 대변인은 예상 질문을 만들었다. 지사는 공무원들이 뽑아놓은 ‘답안지’를 기자가 보냈다고 여겼는지 대화 도중 충실하게 반영했다. 그것도 그들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 민선시장 3번, 민선도지사 3번을 지낸 분이 우리 역사에 없지요.
“전 한번도 외도(外道)를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선산군수가 되고 싶었는데….”
— 고향이 옛 선산군 고아면이지요.
“선산군수(지금의 구미시)가 그리 멋있게 보였어요. 낮에는 교편을 잡고 밤에 공부하다가 고시가 된 후 줄곧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목민관으로 21년을 보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현장에 문제가 있다면 답도 현장에 있다’는 거지요. 이것은 주권재민(主權在民)과는 약간 개념이 다른 거예요. ‘백성이 하늘 같다’는 말은 정말 맞습니다.”
— 그동안 정치권으로 진출할 기회도 있었을 텐데요.
“국회로 갈 수도 있었지요. 전 남아 있겠다고 했어요.”
지방자치라는 민주의 열차는 멈출 수 없다
— 첫 지방자치선거가 1995년 치러진 뒤 2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지방자치제도의 출범은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투쟁에 의해 쟁취한 것이 아니라 몇몇 정치지도자의 결정에 의해 도입됐습니다. 그래서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측면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지방재정 문제입니다. 출발이 그렇다고 해서 지방자치라는 민주의 열차(列車)가 멈출 수는 없어요. 우리 ‘자치 열차’가 xy축 어디에 와 있는지 냉정하게 진단해 볼 시점입니다. 그런 진단을 한 후 어디로 가느냐를 결정해야지요.”
— 김 지사께서 말씀하셨듯 지방자치제도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시각도 많습니다.
“일례로 자식이 다섯 명 있다고 칩시다. 잘사는 아이, 못사는 아이, 사고치는 아이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전부 스톱시켜서 이혼시켜야 합니까? 우여곡절은 있지만 자치 열차를 멈출 수는 없지요.”
—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현장을 총지휘한 사람은 뉴욕 소방서장이었습니다. 우리로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게 맞는 겁니다. 그렇게 되려면 결국 사람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어요. 교육하고 훈련도 시켜야 하고요.”
— 앞서 지방재정을 말하셨는데.
“중앙정부가 권한을 지금보다 더 과감히 이양해야 합니다. 대신 감독을 강화하면 되지요. 요지는 책임을 묻되 문(門-지방재정)은 열어주라는 것입니다. 제가 도지사를 해보니 조직 하나 마음대로 만들 수가 없어요. 전부 승인을 받아야 하지요. 지방자치라는 게 내 삶을 내가 결정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중앙에서 일일이 개입합니다.”
지방자치 발전 위해서라도 개헌 필요
— 구체적으로 사례를 든다면?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중앙정부가 취득세를 감면했습니다. 감면한 비용으로 인한 부족분을 교부 지원하지요. 금액은 같아 보이지만 이건 엄밀한 지방자치단체의 고유한 권한을 침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양도세는 안 내립니까? 물론 지방자치단체도 불필요한 행사를 줄이고 책임도 져야겠지요. 하지만 원칙적으로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권한을 빼앗아가선 안 됩니다. 전 그래서 개헌이 돼야 한다고 봐요.”
— 개헌이라니요.
“지금 모든 갈등은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역별 갈등, 이념 갈등, 계층 갈등, 세대별 갈등, 빈부(貧富) 갈등…. 갈등이 현장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해법도 현장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예를 들고 싶어요. 그는 영화배우 출신답게 모든 공직자에게 배역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역할을 맡기니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졌지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은 바로 통치의 근본 아닙니까? 그게 바로 균형이지요.”
— 발전이 꼭 균형정책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할 때 포항-구미-울산-여수를 불균형 성장시킨 사례가 있어요. 미국의 실리콘 밸리도 불균형 성장의 사례고요. 정답은 결국 균형입니다. 균형감각이 사라지면 불만과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지요.”
“개헌은 프랑스 헌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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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1월 20일 세네갈 딸바훌레 마을에서 농기계를 시연하고 있는 김관용 도지사. |
“저는 중앙과 지방이 권한을 배분하는 차원에서 분권형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이를테면 자치조직권 같은 걸 주는 거죠. 전 분권형 개헌도 이왕 한다면 프랑스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방자치가 강화된다고 나라가 발전할까요.
“의외로 지방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경북에 우리 원자력 발전소의 대부분이 들어와 있습니다. 바다와 접해 있고 지반이 바위로 이뤄져 단단한 곳이 여기뿐이거든요. 원전(原電)이 집중돼 있으면 당연히 연구기관이 내려와서 R&D까지 이뤄져야 합니다. 그걸 운영하기 위한 인력양성기관으로 마이스터고도 설립돼야 하고요. 그게 바로 원자력 클러스터(Cluster)입니다. 이 모든 것이 완비돼야 ‘스마트 원자로’를 개발하고 수출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고 있습니다.”
— 다른 지역은 원전의 ‘원’자만 나와도 기겁을 하는데요.
“전 원자력 연구단지가 오기만 한다면 50만 평에서 100만 평의 부지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은 핵 확산방지회의도 열고 IAEA 회의도 여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핵 문제도 전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는 거지요. 원전뿐 아니라 독도 문제도 비슷해요.”
— 독도 문제라니요.
“지금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니 일본과의 독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입도(入島)센터 같은 것을 경북도에서 관리한다면 훨씬 부드럽게 갈등을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자력의 일생을 모두 경북에서
— 경북에 원전이 많지요. 경주 월성·신월성, 울진뿐 아니라 영덕에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전 원자력의 일생이란 말을 즐겨 인용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크고 아프다 죽는 것처럼 원전의 설계(한국전력기술) 생산(한국수력원자력) 무덤(방사능폐기물장)은 있는데 원자력해체센터만 아직 없습니다. 이것도 경북에 생겨야지요. 환경단체들의 반대가 있기는 하지만 원자력의 일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경북에 들어오는 게 맞습니다.”
— 반대가 심하진 않습니까.
“영덕의 경우 이해를 구하는 부분이 있지만 동해안 원자력 벨트라는 측면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경북은 신라의 천 년 수도 경주에서 볼 수 있듯 문화의 수도일 뿐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의 수도이기도 합니다. 그런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더 지원을 많이 해야 하는데 중앙부처들은 삭감만 하려고 하지요.”
— 앞서 언급했던 육상실크로드 프로젝트도 그 일환입니까.
“77명의 대학생을 모아 처음 시작했는데 육상실크로드 지역에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아무 문제 없었는데 중국만 ‘노(No)’라고 해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우리를 ‘속국(屬國)’으로 보는 동북공정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정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였지요. 그래도 장안에 당당히 들어가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 모형까지 세우고 왔습니다. 돈도 많이 들었어요. 중국산 석재로 했으면 저렴했을 텐데 그럴 순 없다 싶어 신라 장인과 신라의 돌로 2년이나 걸려 제작했습니다.”
— 문화에 원래 조예가 깊습니까.
“신라사를 집필하는 데 5년간 136명의 학자가 참여했습니다. 9월쯤 발간되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유수의 도서관에 영문판을 다 보낼 겁니다. 신라사라고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어떤 분은 ‘신라사는 쇠의 발전사’라고도 제게 충고했습니다.”
— 신라사가 쇠의 발전사라니요?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아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원동력은 우수한 무기를 생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쇠와 관련된 시설은 지금으로 치면 안보시설이기에 흔적이 없었어요. 포스코에 연락해서 최고 전문가를 모시고 쇠와 관련된 부분도 파헤쳤습니다.”
— 《삼국유사》 목각판은 어려움이 많았겠지요.
“거의 훼손된 것을 복원하느라 전국의 유명 각수를 수배해 도감(都鑑)까지 만들었습니다. 사실 거의 완벽한 판본을 가진 분이 있어요. 그런데 몇백억을 부르는 거예요. 사정사정해서 입수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랑할 게 많은데….”
— 해보십시오.
“경북에 종가(宗家)가 몇 개나 있는지 아십니까?”
경북의 종가 241개는 한국의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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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15일 호계서원 복설 추진 확약식에 참석한 문중대표(퇴계·학봉·서애·대산종손)와 도내 유림단체 대표 등이 서원 복설 추진을 약속하고 있다. |
“241개입니다. 종손, 종부들의 삶과 복식과 제례를 종합하면 그게 바로 우리 옛 모습이 되는 겁니다. 저는 그분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종가포럼을 만들었어요. 문중별로 문양(文樣)도 새로 만들어드리고요. 고향 자랑 같지만 경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산실입니다. 전국에서 독립운동 유공자가 제일 많은 곳이 안동입니다. 선비정신이 충실했던 이곳에서 나라를 잃은 시기, 독립운동가가 제일 많이 나온 것만 봐도 알 겁니다. 문 기자, 식민근대화론이라는 말 아시죠.”
— 영국 역사학자 토인비가 한 말 아닌가요.
“식민근대화론은 식민지 시대에 건설한 철도·교량 등으로 인해 식민지가 근대화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토인비는 이런 말을 했어요. 식민사관은 1세기를 간다고. 세계 식민지사를 봐도 일본처럼 철저하고 지독한 나라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은 물자와 자원만 빼앗았을 뿐 창씨개명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혼(魂)까지 빼앗으려 했지요. 그 식민근대화론 때문에 어떤 외국학자들은 우리를 ‘16세기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런 점에 비추어보면 화랑정신·선비정신·호국정신이 살아 있는 경북은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6·25 때만 봐도 그렇지요.”
— 경북이 무너지지 않아 대한민국이 결국 회복할 수 있었지요.
“왜관·장사·안강처럼 격전지가 많았습니다. 전 그래서 경북을 외국인에게 소개할 때 ‘이것은 코리아(That is Korea)’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곳에 당연히 평화벨트가 들어서야지요. 원자력 발전소의 평화벨트, 독도의 평화벨트.”
— 안동에 경북도 신청사가 들어선 것은 그런 점을 고려한 겁니까.
“청사 후보지가 많았는데 경북과 관련이 없는 인사들에게 선정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곳을 꼽는 거예요. 공교롭게도 안동이 북위 36도 선입니다. 행정수도가 있는 세종시와 나란히 있어 저는 ‘허리 경제권’이라 부르지요.”
— 이렇게 열심히 일하셨는데 2018년 임기가 끝난 후엔 뭘 하실 생각입니까.
“야전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반은 정치인이고 반은 행정인인 셈이지요.”
반기문 총장과 모두 7번 만나 새마을운동이 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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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29일 하회마을 학록정사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을 관람 중인 반기문 총장 부부와 김관용 도지사 부부. |
“반 총장과는 지금까지 모두 7차례 만났습니다. 새마을운동이 계기가 됐어요. 새마을운동을 어떤 이들은 과거 회귀라고 하는데 당치 않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지원을 해 자립하고 자활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지요. 지금까지 400여 명의 새마을지도자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했어요. 그들을 만나러 사막을 6~7시간 넘게 차로 가로질러 달려간 적도 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전 그랬습니다. ‘너희가 진정한 애국자’라고.”
— 효과가 있었습니까.
“르완다의 경우 쌀 수확량이 새마을지도자들이 간 이후 6배 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게 유엔에서 지원해 준 부분이 커요. 제가 새마을재단을 만들자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새마을운동은 아파트 지을 때 모델 하우스 같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자동으로 해체되는.”
— 반 총장은 어떤 분이던가요.
“정확하고 성실한 분이지요. 새마을운동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세계의 빈곤을 해결하는 데 이용해 보자고 했더니 쾌히 수락했습니다. 제 진정성이 그분에게도 통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주에서 유엔 콘퍼런스가 열리고 안동 하회마을을 찾고 신청사까지 오셨다고 봅니다.”
— 만일 분권형 개헌이 되면 반 총장이 대통령을 맡고 김 지사께서 실무형 총리를 맡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직은 그런 말을 할 입장이 아니지요. 분권형 개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제 소신이지만요.”
— 광주에서 열린 5·18 공식 행사에 지사로는 처음 참석한 것이 정치적인 행동이었나요.
“제가 다산 목민대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개인 상금이 1억원이었는데 전액 김대중 평화재단에 기증했지요. 문경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릴 때는 이희호 여사를 방문하기도 했어요. 북한이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석하도록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요. 성사는 안 됐지만요. 전 동서갈등이니 지역갈등이니 하는 것이 다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린이들은 그런 것 몰라요. 우리 시대에 그런 불필요한 갈등들을 없앨 수 있다면 5·18 공식 행사뿐 아니라 어디도 가야지요.”
일부러 명당자리 도의회에 양보
— 혹시 차기 대권 후보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섭섭하진 않습니까.
“저는 야전에서 살아왔으니까요.”
—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영락없는 정치인 화법 같습니다.
“저는 평생 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골프를 안 쳐요. 구미시장 할 때 구미공단 근로자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골프 칠 수 있을 만큼 생활이 나아질 때까지 시장 당신도 골프를 치지 말라’고. 엉겁결에 응낙했는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김관용 지사를 혹자는 팔십 근처까지 도지사를 하려 욕심을 부린다고 비난하지만 막상 만나본 그는 활력이 넘치는 50대 후반처럼 보였다. 부하 직원들은 “함께 운동을 할 때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건강한 몸이 있기 때문인지 점심식사를 포함해 세 시간 가까이 대화하면서 그의 끊이지 않는 화제에 감탄했다.
안동의 경북도 신청사 뒷산이 검무산(劒舞山)이다. 해발 287m로 백두대간 자락인 이 산에는 옛날 장수들이 검술을 익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청사 부지 가운데 제일 명당이 도의회 자리라고 한다. 김 지사는 일부러 명당자리를 피해 비켜앉았다고 한다. 그게 무슨 의도였는지 내년 연말이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