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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sider

18년간 호랑이 쫓은 임순남(林淳男) 한국호랑이보호협회 회장

“독립군의 심정으로 민족정신 살릴 호랑이 반드시 찾겠다”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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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감독에서 ‘호랑이 추적자’로 변신… 18년간 호랑이 찾는 데 전 재산 바쳐
⊙ “‘시베리아호랑이’는 틀린 이름… ‘고려범’이라 불러야”
⊙ “강원도 화천, 경북 김천, 부산 기장 등 전국 각지에서 야생 호랑이 흔적 발견”
⊙ “일본,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신 없애려 호랑이 학살… 고려범 보호·복원 앞장서라!”
임순남 한국호랑이보호협회 회장은 지난 18년 동안 남한 야생 호랑이를 추적했다.
  4월 1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원당역 인근의 야산 중턱. 이곳엔 18년 동안 남한의 야생 호랑이를 찾아다닌 사람의 본거지인 소위 ‘타이거 캠프’가 자리하고 있다. 크고 작은 군용 텐트 세 동과 온갖 장비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국방색 컨테이너로 이뤄진 타이거 캠프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호랑이 추적자’가 텐트에서 나와 객을 맞았다. 그는 사전 약속이 없었는데도 미리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기자를 텐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호랑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와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다. 2009년 겨울, “남한에 야생 호랑이가 산다”고 주장하는 ‘호랑이 추적자’를 만나 원당역 부근에서 자정 무렵까지 술을 마시며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취한 그는 자신을 ‘거짓말쟁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는 세상에 분노를 내뿜었다.
 
  시간이 흐르자 근처에서 일을 마친 그의 아내가 ‘호랑이 추적자’를 데리러 왔다. 비틀거리면서도 호랑이 얘기만 하며 귀가하는 그의 뒷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이 사람의 ‘호랑이 추적기’는 끝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8년여가 흘렀다. 지난 3월, ‘호랑이 추적자’를 떠올렸다. 호랑이를 소재로 한 영화 〈대호〉를 뒤늦게 보고 난 직후였다. 근황이 궁금해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예상과 달리 그는 아직도 호랑이를 쫓고 있었다.
 
  ‘호랑이 추적자’의 이름은 ‘임순남’, 영문명은 ‘타이거 림’이다. 한국 호랑이를 뜻하는 ‘고려범’을 줄인 ‘고범’이 그의 ‘호’다. (사)한국호랑이보호협회 회장인 그는 18년 동안 전 재산을 쏟아부어 야생 호랑이를 쫓고 있다.
 
  한반도엔 야생 호랑이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1996년 2월 환경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사무국에 ‘남한에 야생 호랑이는 없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남한에 호랑이는 없다”고 못 박은 셈이다. 그런데도 ‘호랑이 추적자’는 왜 계속 호랑이에 집착하는 것일까.
 
 
  1995년 야생 호랑이와의 첫 만남
 
임순남 회장의 본거지 ‘타이거 캠프’. 이곳엔 군용 텐트 3동과 각종 장비를 보관하는 대형 컨테이너 박스, 호랑이 추적에 쓰는 방탄차가 있다.
  ‘호랑이 추적자’의 본업은 ‘촬영’이었다. 1980년 군 제대 후 문화공보부 산하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촬영기사로 일했다. 4년간 ‘대한뉴스’와 같은 국정홍보 영상 등을 찍다가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그는 주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1995년엔 〈신년특집 KBS 일요스페셜〉을 통해 임 회장이 1년 동안 찍은 ‘북한산 사계’가 전파를 탔다. 그가 호랑이와 인연을 맺은 건 그 직후다.
 
임순남 회장의 본업은 ‘촬영’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 시절 〈북한산 사계〉 〈추적 한국 호랑이〉 〈안전지대 딸란섬〉 〈호랑이가 사라진다〉 등을 만들었다. 사진=임순남
  “‘북한산 사계’ 방영 이후 《KBS》 PD가 ‘러시아에 가서 호랑이를 찍으면 재밌겠다’고 흘리듯 얘기했습니다. 당시엔 국내에 호랑이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없었습니다. 야생 호랑이를 찍기만 하면 ‘한 건’ 하는 거였죠. 호랑이 공부를 조금 한 뒤 10일 일정으로 러시아 연해주에 갔습니다.”
 
  당시 임 회장은 러시아 현지에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지역연구소 실장 드미트리 피크노프 박사, 호랑이 생포 전문가 블라디미르 크로글로브와 함께 다녔지만, 야생 호랑이를 마주치진 못했다.
 
  임 회장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팀이 찍으려고 동물보호구역에 잡아 놓은 야생 호랑이를 찍었다. 철조망 안으로 개를 한 마리 넣었더니 곧바로 호랑이가 달려와 채 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임 회장은 “호랑이가 나타났을 때 멍하니 쳐다보는 것 말고는 다른 걸 할 수 없었다. 야생 호랑이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한마디로 기가 팍 죽었었다”고 말했다.
 
 
  일제, ‘해수구제’ 명목으로 한반도 호랑이 씨 말려
 
앞발과 어깨 근육이 발달한 ‘고려범’은 전 세계 호랑이 중 가장 덩치가 크다. 성체 수컷의 평균 전장은 3m, 몸무게는 200~300kg이다. 사진=임순남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호랑이의 매력에 사로잡힌 그는 이후 4년 동안 러시아 연해주를 오가며 피크노프 박사에게서 ‘호랑이 생태’를 공부했다.
 
  — 우리 호랑이의 특징은 뭡니까.
 
  “‘고려범’은 전 세계 호랑이 중 가장 덩치가 큽니다. 앞발과 어깨 근육이 발달해 마주쳤을 때 위압감이 크죠. 몸무게는 200~300kg 나갑니다. 성체 수컷의 전장은 3m 이상입니다. 암컷은 좀 작아요. 한반도 서식 호랑이는 연해주나 만주에 사는 호랑이보다 상대적으로 몸이 작고, 다리 길이가 짧습니다.
 
  — 동북아 지역에 사는 호랑이를 ‘시베리아호랑이’라고 합니다. ‘고려범’과 ‘시베리아호랑이’는 다른 종인가요.
 
  “산이 많은 한반도 자연환경에 맞춰 성장하다 보니 모습이 약간 바뀐 거지, 유전적으로는 같습니다. 러시아의 호랑이 전문가 피크노프 박사는 연해주 서식 호랑이들이 북한에서 넘어온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동북아 일대에 서식하는 호랑이는 전부 ‘고려범’이란 얘기입니다.”
 
  — ‘고려범’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가 ‘시베리아호랑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틀린 이름입니다. 시베리아엔 호랑이가 살지 않아요. 연해주와 그 부근에만 살고 있어요. 여기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고토입니다. 중국에서도 동북지방에 산다고 해서 ‘동북호’라고 부르는데요. 여기는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 고려가 자리 잡았던 한반도는 아직 우리 영토이고요. 그러니까 동북아의 호랑이는 전부 ‘고려’의 영역에 사는 ‘고려범’입니다. 우리 민족의 동물이란 얘기예요.”
 
  임 회장의 말처럼 과거 우리 땅엔 호랑이가 넘쳐났다. 7000년 전 선사시대의 대표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에 호랑이 그림이 있다. 건국신화인 ‘단군 신화’를 포함해 여러 설화에 호랑이가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엔 600건 이상의 호랑이 관련 기록이 있다.
 
  지금은 호랑이 씨가 말랐다. 2013년 1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남한 야생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는 담비”라고 발표했다. 몸무게가 3kg에 불과한 족제비과 동물이 예전 호랑이의 자리를 꿰차고 있단 얘기다. 북한의 경우엔 백두산, 자강도 용림군 와갈봉, 강원도 고산군 추애산 일대를 ‘호랑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실제 이 지역에 호랑이가 사는지, 개체 수는 얼마인지 불분명하다. 반면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 지방엔 약 550마리(추정치)의 호랑이가 산다. 요약하면 우리가 ‘시베리아호랑이’를 ‘고려범’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한 상황이란 얘기다.
 
  이 땅에서 호랑이의 흔적을 없앤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913년부터 조선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해로운 맹수를 없애겠다며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경찰과 헌병, 포수와 몰이꾼들을 동원해 호랑이 사냥을 펼쳤다. 그 결과 공식적으로 호랑이 98마리를 잡아 죽였다. 실제로는 수백 마리를 포살했다는 게 통설이다.
 
  일제의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 이후 남한 지역에선 호랑이가 자취를 감췄다. 1924년 2월 1일 자 《매일신보》가 전한 강원도 횡성에서의 호랑이 포획 소식이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40년 이후엔 북한 지역에서조차 호랑이를 잡았다는 기록이 없다.
 
 
  평화의 댐에서 너비 9.5cm 암컷 호랑이 발자국 발견
 
1998년 2월, 임순남 회장이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부근에서 발견한 호랑이 발자국(좌, 사진=임순남 )과 석고 본(우). 줄자로 측정한 석고 본의 너비는 약 9.5cm다.
  임순남 회장이 처음 찍은 호랑이 다큐멘터리가 1995년 2월 26일 〈KBS 일요스페셜〉에서 ‘추적 한국 호랑이’란 이름으로 방영된 이후 여기저기서 “야생 호랑이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임 회장은 ‘우리나라에 야생 호랑이가 있느냐’며 이를 외면했다.
 
  임 회장이 호랑이 추적에 인생을 걸게 된 건 1998년 2월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부근에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을 발견한 이후다.
 
  “‘추적 한국 호랑이’가 나간 다음 저는 북극 달런 섬에 가서 철새 서식지를 찍었습니다. 그때 동행한 조류학자가 ‘강원도 화천에 호랑이가 있다는데 가 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냥 흘려들었어요. 1997년 11월 《KBS》 기자가 같은 소리를 하면서 호랑이 발자국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속는 셈치고 화천군 평화의 댐으로 가서 3개월 동안 호랑이를 찾아다녔습니다.”
 
  — 어떤 방식으로 호랑이를 추적했습니까.
 
  “밥 먹고 하는 일이란 게 매일 산에 올라 능선을 가로질러 가면서 호랑이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석 달 동안 산을 타니까 10kg이나 빠졌습니다.”
 
  — 좋은 성과가 있었나요.
 
  “1998년 2월, 눈 위에 일렬로 찍힌 동물 발자국을 찾았습니다. 고양잇과 동물의 경우 뒷발이 앞발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일자로 발자국이 남거든요. 그게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인데, 크기가 상당히 컸어요. 볼 너비가 9.5cm였어요. 평화의 댐에 가기 전 제보 받은 발자국과 똑같은 크기였어요. 표범 발의 볼 너비가 대략 7cm입니다. 9cm 이상이면 호랑이로 분류하는데 9.5cm이니까 아직 덜 자란 수컷이거나 다 큰 암컷이라고 추정한 겁니다.”
 
 
  “발자국, 영역 표시, 사냥 흔적 등 호랑이 서식 증거 많아”
 
2009년 러시아 연해주 방문 당시 철창 안의 호랑이와 마주한 임순남 회장. 그는 1995년 〈추적 한국 호랑이〉 촬영 이후 4년 동안 러시아를 오가며 현지 호랑이 전문가 드미트리 피크노프 박사에게 ‘호랑이 생태’를 배웠다.
사진=임순남
  임 회장은 텐트 옆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 한참만에 당시 발견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 석고 본을 들고 나왔다. 석고 본은 ‘9.5cm’로 들을 때와 달리 매우 크게 느껴졌다. 진짜 호랑이의 흔적처럼 보였다.
 
  —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호랑이를 봤다는 제보를 듣고 현장 조사를 해서 호랑이 흔적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 주로 어디에 호랑이가 나타났습니까.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근처에서 암컷 호랑이와 새끼의 발자국을 발견했고요. 양구에선 한 주민이 잃어버린 소의 두개골을 발견했는데 콧등 부분에 호랑이 이빨 자국이 있었습니다. 원주시 호저면에선 파출소장을 비롯한 경찰 4명이 호랑이를 봤습니다. 이런 얘기는 너무 많으니까 일일이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 소는 대형 유기견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냥한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개와 호랑이는 이빨 자국이 다릅니다. 러시아의 호랑이 생포 전문가 크로글로브가 그때 함께 조사를 했는데, 그도 분명 호랑이 이빨 자국이라고 했습니다.”
 
  — 강원도 외에 다른 지역의 호랑이 목격담은 없습니까.
 
  “부산 기장의 경우엔 어미와 새끼가 장난치는 걸 봤다는 목격담을 듣고 가서 새끼 호랑이 발자국을 확인했습니다. 경북 김천 황학산에선 호랑이를 본 개가 미쳐서 방 안으로 뛰어들어와 뱅뱅 돌더니 며칠 안 가 죽었다는 거예요. 거기 주민들은 ‘여기선 개가 살 수 없다. 조금만 자라도 어느샌가 사라진다’고들 했어요. 주변을 조사해 보니 호랑이가 영역 표시를 하려고 나무를 긁은 흔적, 소변을 본 흔적이 있었습니다.”
 
  — 남한에 야생 호랑이가 있다면, 그 수는 얼마나 될까요.
 
  “10마리 정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근거가 뭐죠.
 
  “암컷과 새끼 흔적을 발견했는데, 새끼가 있다는 건 짝짓기를 한 수컷이 있다는 걸 의미하잖아요. 수컷은 항상 짝짓기 기회만을 노리기 때문에 암컷 근처를 배회합니다. 발견한 흔적들과 목격담을 종합해 보면 대략 10마리라고 추정할 수 있는 거죠.”
 
  — 10마리나 있는데 왜 지금껏 호랑이를 찍지 못했습니까.
 
  “피크노프 박사는 40년 동안 호랑이를 쫓아다니면서 생태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 양반이 호랑이를 목격한 건 먼발치서 뒤꽁무니만 10회가량 본 게 전부입니다. 중국 훈춘엔 야생 호랑이가 30여 마리 있거든요.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훈춘의 호랑이를 한 번 찍어 보자고 해서 모이고 카메라를 150대나 동원했는데 2년 만에 겨우 한 마리를 찍었습니다. 호랑이를 카메라에 담는 게 그만큼 어렵습니다.”
 
 
  남한 서식 야생 호랑이 찾기 위해 생업 포기
 
  1998년 2월, 임순남 회장이 평화의 댐 근처에서 발견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과 관련해 《KBS》는 “남한에서 호랑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산림청은 같은 해 3월 23일부터 3일 동안 ‘진상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평화의 댐 주변에서 호랑이 서식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호랑이 발자국이라는 흔적도 다른 짐승 발자국의 눈이 녹아 확대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는 학교 연구실이나 사무실에 있는 게 아닙니다. 산에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산에 가서 호랑이 조사한 적 있습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없다’는 소리만 반복하는 거예요. 제가 평화의 댐 근처에서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했잖아요. 그건 그 인근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왜 멀쩡하게 있는 걸 없다고 합니까? 제가 나중에 국제세미나에 갔을 때 참석한 북한 사람들도 평화의 댐과 맞닿은 휴전선 이북 어은산에서 호랑이를 봤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고 했습니다.”
 
  산림청 발표를 접한 임 회장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생업을 내팽개치고, 호랑이를 쫓는 데만 전념했다. 그의 관심은 남한에 사는 야생 호랑이를 카메라에 담는 것뿐이다.
 
  — 촬영 일과 호랑이 추적을 병행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호랑이를 추적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 당장 수입이 없는데 무슨 돈으로 호랑이를 찾아다닙니까. 벌어 놓은 돈이 많았던 모양이죠.
 
  “아니요. 다큐멘터리 찍으면서 모아 둔 거, 부모님이 물려주신 거, 하여간 가진 건 다 팔았습니다.”
 
  — 뭘 팔았습니까.
 
  “집도 팔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도 팔았습니다.”
 
 
  “처자 지지 덕분에 ‘호랑이 추적’ 계속해”
 
  — 호랑이 찾겠다고 집을 팔면 가족들은 어디서 삽니까.
 
  “구파발에서 지축동 전셋집으로, 다시 서삼릉 전셋집으로 갔다가 지금은 이 옆에 삼송동 임대아파트에 삽니다. 1남 3녀를 뒀는데, 딸들은 다 결혼해서 따로 살고, 집사람하고 막내인 아들만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먹고 자고요.”
 
  — 생계는 누가 책임졌습니까.
 
  “집사람은 마트에서 일하고, 애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면서 각자 벌어 썼습니다.”
 
  — 18년 동안 한 푼도 안 벌었습니까.
 
  “계속 쓰기만 했죠.”
 
  — 자식들이 많이 원망했겠네요.
 
  “애들이 ‘왜 돈을 안 벌어 오느냐’ 하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봤어요. 그래서 호랑이고 뭐고 다 관두려고 했었죠.”
 
  — 왜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마음을 정리하려고 처음으로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한 화천군 산속에 가서 호랑이한테 ‘인연을 끊자’고 얘기했습니다. 산을 내려와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거는 순간 전화가 왔습니다. 유엔이 주최하는 ‘두만강개발 국제환경워크숍’에 초청할 테니까 와서 호랑이 얘기를 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아, 그래도 외국에선 알아주는구나’란 마음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유엔 워크숍에 갔다 오고 나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비롯해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의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찾아와 저를 인터뷰했습니다. 외신들이 계속 찾아오는 모습을 본 애들이 ‘도대체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 거냐’라면서 인터넷을 뒤졌던 모양입니다. 그 뒤론 자기들은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면서 ‘아빠는 하던 일 계속해’라고 하더군요.”
 
  — 부인이 헤어지자고 하진 않던가요.
 
  “집사람은 ‘당신같이 일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는 건 못 참는다.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고, 한번 해 봐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호랑이 찾는 건 뜻있는 일… 돈 쓴 것 아깝지 않다”
 
고양잇과 동물 중 호랑이(좌측부터)의 발 너비는 9cm 이상, 표범은 7cm, 삵은 4~5cm, 고양이의 경우엔 3cm에 불과하다. 사진=임순남
  — 지금까지 호랑이를 추적하면서 쓴 돈이 얼마입니까.
 
  “한 15억원 정도 될 것 같은데요.”
 
  — 구파발 집은 얼마에 팔았습니까.
 
  “3억원쯤으로 기억합니다.”
 
  — 물려받은 유산은요.
 
  “….”
 
  — 집 팔고, 땅 판 돈을 어디에 다 썼습니까.
 
  “장비 사는 데 돈 많이 썼죠. 산에 설치하는 카메라 1대 가격이 100만원인데, 밀렵꾼이나 등산객들이 뜯어간 것만 30여 대입니다. 영상을 제대로 보려고 1억원을 주고 방송국 중계차에 달린 전파 송출기도 2대 샀습니다.”
 
  — 방탄차를 타고 다닌다면서요.
 
  “야행성인 호랑이를 촬영하려면 밤에 잠복해야 하는데, 야생동물이 공격하거나 엽사들이 오판해서 총을 쏠 수 있으니까 위험하잖아요. 잠자는 것도 불편하고요. 그래서 은행에서 현금 수송용으로 쓰던 미제 방탄차를 10년 전에 샀습니다. 저것도 몇천만 원 줬어요.”
 
  — 이것저것 다 합쳐도 15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데요.
 
  “사람이 움직이는 데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갑니다. 혼자서는 산에 설치한 카메라를 다 관리하고,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으니까 보조 격으로 한 사람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 사람 인건비, 식비, 기름값 합하면 하루에 보통 20만~30만원은 깨집니다.”
 
  — 1년 내내 그렇게 한 건 아니잖습니까.
 
  “지금은 돈이 부족해서 자주 못 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랑이 출몰 지역에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죠.”
 
  — 유산을 탕진한 데 대해 죄책감은 없습니까.
 
  “술 마시고, 도박하면서 흥청망청거렸다면 ‘나쁜 놈’ 소리를 들어도 싸지만 그건 아니잖아요? 뜻있는 일을 하는 데 썼으니까 후회하지 않습니다.”
 
  — 호랑이를 찾는 게 그렇게 뜻있는 일입니까.
 
  “세계의 힘 있는 나라는 전부 대표 동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호랑이죠.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호랑이가 분명 이 땅에 살고 있는데 ‘무조건 없다’고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호랑이를 찾아 호랑이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매년 3·1절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호랑이 학살’ 문책
 
  — ‘호랑이 정신’이 뭔가요.
 
  “우리 민족성과 같습니다. 인내와 끈기, 강인함입니다. 호랑이는 잘 움직이질 않습니다. 보름 동안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나면 일격에 잡습니다. 그렇게 힘이 세고, 잘생긴 동물인데도 자기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죠. 으스대지 않아요.”
 
  — 꼭 야생 호랑이가 있어야만 ‘호랑이 정신’을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이 나라엔 구심점이 필요한데, 사람을 내세워서는 흩어지기만 하지 뭉칠 수 없어요. 만약 야생 호랑이를 찾으면 거기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러면 그 호랑이가 이 나라의 ‘구심점’이 되는 거예요. 일본이 우리 민족의 구심점을 없애고, ‘호랑이 정신’을 말살하려고 호랑이를 잡아 죽인 겁니다.”
 
  — 일본이 호랑이를 사냥한 게 식민통치를 위한 심리전이라는 겁니까.
 
  “독립군들이 일본인에게 ‘하이, 하이’ 하면서 살면 편했을 텐데, 왜 목숨을 바쳤겠어요. 다 ‘호랑이’ 같은 우리 민족정신 때문에 그런 겁니다.”
 
  — 독립군과 같은 심정으로 호랑이를 찾고 있습니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에 비하면 호랑이 찾느라 돈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하지만 마음만은 그렇습니다.”
 
  — 매년 3·1절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던데요. 언제부터 한 겁니까.
 
  “2003년부터입니다. 이번 3·1절에도 했습니다.”
 
  — 과거 일본의 ‘호랑이 학살’에 대해 항의하는 건가요.
 
  “그것도 있고요. ‘고려범’이 멸종 위기를 맞은 데는 일본의 책임이 크니까 보호·복원에 앞장서라는 의미로 하는 겁니다.”
 
  — 호랑이를 추적한 지 18년이 지났습니다. 정말 남한에 호랑이가 있다면, 언제쯤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요.
 
  “요즘엔 장비 분실, 경비 문제 때문에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는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스마트폰으로 상시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용할 생각인데, 문제는 카메라 배터리입니다. 차 배터리는 무거워서 산에 들고 가지 못하니까 오토바이 배터리를 카메라에 연결하는데, 이게 5일밖에 안 갑니다. 배터리 교체 주기를 길게 하는 방법만 개발하면 1년 안에 야생 호랑이를 찍어서 공개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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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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