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이후 새누리당의 과제는 치유의 리더십
⊙ 박근혜 정부 성공시키는 게 과제
⊙ 경제살리기와 안보강화가 시대의 요청
⊙ 그래야 다음에도 보수정권 이어진다
⊙ 박근혜 정부 성공시키는 게 과제
⊙ 경제살리기와 안보강화가 시대의 요청
⊙ 그래야 다음에도 보수정권 이어진다
- 해양수산부 장관이 된 지 40일 만에 이주영 의원은 세월호 사태를 맞았다.
머리가 백발이 된 당시 이 장관이 팽목항에 서 있다.
4·13총선 후 새누리당의 관심은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다. 김무성 대표의 임기는 7월 13일까지지만 조기 퇴진을 선언했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고 즉각 사퇴한 것이다. 그는 조기 퇴진의 이유로 “공천파동에 대한 책임”을 내세웠지만 다른 복선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새누리당 당헌 제93조에 힌트가 숨어 있다. 93조 2항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는 상임고문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 선거일 1년6개월 전에 사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12월 19일인 차기 대선에서 1년6개월을 빼면 올해 6월 19일 자정까지이다.
그래서 정가(政街)에서 새누리당을 다가올 대선 때까지 이끌 진용, 그중에서도 대표가 누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단 새누리당에서 거론되는 후보는 2~3명 정도다.
친박계 최경환 의원의 한계
친박(親朴)계의 좌장인 최경환(崔慶煥) 의원이다. 하지만 그는 총선 전 벌어진 공천파동에서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입장이라는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원유철(元裕哲) 원내대표, 정병국 전 사무총장 등을 지목하는 이들도 있지만 무게감은 다소 떨어진다. 부산·경남·울산권에는 누가 있을까.
현재까지 ‘부·울·경’의 간판은 김무성 대표 외에 이주영(李柱榮·64·경남 창원) 의원과 정갑윤(鄭甲潤·65·울산)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은 총선에서 나란히 당선돼 5선 관록을 쌓았다. 김 대표를 제외하곤 최다다.
정가에선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지내고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이 의원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많다. 이 의원은 이런 질문에 “제 입으로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시대정신에 맞고 당의 요구가 있다면 소명(召命)을 거부하진 않겠다”고 했다. 조건부이긴 하지만 출마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정신은 경제살리기와 안보
— 시대정신이 뭡니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 총선 후 우리 새누리당이 해야 할 목표가 나옵니다. 첫째 어려운 경제살리기, 둘째 북한의 핵 위협과 테러의 공포로부터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이것들을 저는 시대정신이라고 봅니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경제를 살리려면 필수적인 법안들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노동개혁법·경제활성화법 같은 것들이지요. 북한 핵 위협과 테러의 공포는 튼튼한 안보를 말하는 거고요. 이 두 가지가 달성돼야 박근혜 정부는 성공하는 겁니다. 하나라도 실패하면 박근혜 정부는 실패하는 거지요. 박근혜 정부가 실패하면 차기 정권 재창출도 쉽지 않은데 세상에 정권을 잡지 않으려고 하는 정당이 어디 있습니까.”
— 당의 요구는요.
“지금은 분열을 막고 상처를 치유할때입니다. 화합과 치유를 통해서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워야 합니다.”
— 지금 이 시점에서 새누리당 대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끝까지 뒷받침하고 차기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지요. 앞서 말한 법안들은 그 일부분이고요. 차기 정권을 만들어 내려면 분열된 당을 통합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합니다. 새누리당의 외연을 넓히는 거지요.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도 야당보다 앞서 개발해야 하고요. 그게 무엇일까 숙고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시각’과 ‘국민의 시각’이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 왜 지금 새누리당 대표는 이주영이어야 합니까.
“저는 어느 특정 계파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 총선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결국 계파 갈등에서 나온 것인데 저는 그 부분에서 자유롭습니다. 제가 당장 대권에 욕심을 내지도 않으니 당을 중립적으로 관리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 이렇게 비교하긴 힘들지만 세월호 사태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지요. 세월호도 침몰했고 새누리당도 좌초하다 침몰 위기를 맞을 뻔하기도 했는데 어떤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까.
“(잠시 생각하다) 아무래도 세월호 때가 더 어려웠지요. 그때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 그때 그렇게 힘들었습니까.
“해수부 장관이 된 지 정확히 한 달 열흘 만에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처음에 현장에 내려갔을 때 ‘장관 놈’이라는 말을 예사로 들었어요. ‘바다에 던져 빠뜨려 죽여 버려라’는 말도 많이 나왔습니다. 제가 수습이 끝날 때까지 팽목항 현장을 지키겠다고 해도 믿는 유가족이 없었고요.”
— 그런데 조금씩 달라졌지요.
“국회에서 현안보고를 하라고 할 때였습니다. 여의도 국회에 가려면 며칠간 팽목항을 비워야 하는데 유가족들이 저를 옹호하고 나섰지요. 그분들은 ‘국회에 가면 혼만 나지 않느냐, 양당 원내대표들한테 우리가 해수부 장관을 부르지 말라고 얘기해 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 이 의원의 앞에는 왜 이런 일들이 많을까요. 세월호도 그렇고 새누리당의 상황도 그렇고. 혹시 팔자(八字)가 센 편입니까.
“위기는 기회와 동의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제가 앞서 얘기했듯 ‘이주영이가 당의 화합형 지도자로 가장 적합하다’는 소명이 오면 그 길이 비록 힘들고 고독하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요. 그게 당원으로서의 책무이기도 하고요.”
인재 잘 쓰는 게 계파갈등 없애는 유일한 방법
— 공천 때문에 친박과 비박이 갈라졌다가 선거 때 비빔밥을 먹으며 뭉치는 흉내를 내긴 했지만 앞으로 친박·비박이 뭉칠 가능성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 손가락질을 하잖아요. 검지손가락은 상대방을 가리키지만 밑의 세 손가락은 자기를 향하고 있습니다.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지요.”
— 말은 옳지만 계파 갈등이 사라질까요.
“저는 근본적으로 계파의 벽을 없애야 한다고 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특정 계파로 분류되지는 않았고요.”
— 계파 갈등을 없애는 비법이 있습니까.
“사람을 능력에 따라 쓰는 수밖에 없지요. 내 사람, 네 사람이 아닌,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면 단결하게 됩니다.”
—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되면 이번에 공천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분들의 복당(復黨)문제가 이슈로 될 텐데요.
“일시적으로 당을 떠났던 무소속 당선자에 대해서는 화합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논의하여 공감을 이루는 대로 언제든 함께할 수 있다는 포용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정책으로부터
— 앞서 말했듯 이 의원은 친박으로 분류되지 않는데도 박 대통령과 인연이 깊지요.
“2012년 4월 19대 의원에 당선된 뒤 12월 대선을 앞두고 8월에 박 대통령 경선(競選)캠프에 합류했습니다. 특보단장과 경선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선대위에선 대선기획단장을 지냈습니다. 대선기획단장이 할 일이 무척 많아요. 전략·조직·정책·홍보·인재영입을 총괄해야 하니까요.”
— 친박도 아닌데 그런 일을 맡긴 건 혹시 이 의원께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은박(隱朴) 아닙니까.
“그 전에 인연이 있었어요. 2011년 우리 당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박 대통령께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거고요. 당시만 해도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망할 거다, 100석도 못 얻을 거다 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실제 상황도 그랬고요. 박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으로 온 직후 제가 정책위의장으로 있었는데 모든 걸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감이 들었습니다.”
— 그때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민심에 다가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이슈를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반값등록금, 소외계층 사회보험 같은 정책들이 그때 나왔습니다. 대학가에서 신학기만 되면 등록금 비싸다는 불만이 해마다 재연됐잖아요. 소외계층의 사회보험도 사각지대였고. 당의 정강도 확 바꿔 놓았고요. 이렇게 민심에 다가가는 전략을 하나둘 실천하다 보니 분위기가 반전됐어요. 총선에서 과반 확보라는 예상도 못한 결과가 나왔고요.”
— 이렇게 보면 ‘선거의 여왕’도 참모가 똑똑해야 나올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전 평소 정치인이라면 슬로건보다 정책에 정통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러면 이번에 대표에 출마해도 박 대통령이 지원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그 얘긴 이르고요.”
처음으로 방청석을 향해 인사한 판사
— 원래 판사 출신이시지요. 판사들이 좀 고압적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높은 법대(法臺)에 앉아 피고인들을 굽어보고 있으면 건방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전 영국 킹스칼리지에 유학 갔을 때 영국 판사들을 보고 많이 반성했어요.”
— 어떻게요.
“우리는 고시만 패스하면 스물 몇 살에도 판사가 됩니다. 저도 그랬고요. 세상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부족한 사람이 시험만 통과하면 판사가 되니 최근 나오는 잡음들은 구조적인 겁니다. 영국은 그렇지 않더군요. 영국은 변호사와 검사는 할 수 있지만 판사는 인품과 실력에 대한 평판을 충분히 듣고 난 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이 돼야 판사가 됩니다. 그리고 판사의 자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 뭡니까, 그게.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거지요. 법원까지 달려왔으면 얼마나 억울한 사연이 많았겠습니까. 그런 분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야지요. 요즘 중간에 피고인의 말을 끊거나 핀잔을 주는 사례가 많다는데, 충분히 하소연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록 패소하더라도 앙심을 품지 않고 승복하게 되지요.”
— 한 말 또 하고 하면서 진을 빼면 어떻게 합니까.
“같은 말이 지나치게 반복되면 ‘제가 다 알아듣겠습니다’라고 하면 보통 그칩니다. 그렇게 기회를 준 뒤 추상(秋霜)같은 엄정한 결론을 내려야지요.”
—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법관들의 태도는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오늘 대화 주제는 아니지만.
“우리 법원은 판사가 입장하면 ‘기립, 착석’이라고 하지요. 전 그걸 바꿨어요. 부장판사로 일할 때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모인 분들에게 먼저 고마움의 표시로 절을 했지요. 법원에서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제가 처음이었는지 화제가 됐고 나중에 법원의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
— 판사가 참 좋은 자리인데 왜 그만두고 이 험한 정치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겁니까.
“제가 원래 성격이 소극적이었어요. 학창시절에 특히 그랬는데 도덕재무장(MRA)이라는 단체에 가입한 이후 성격이 액티브하게 변했습니다. 아무래도 판사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요. 배당된 사건만 처리하게 되니까. 판사로서 일할 만큼 일하고 나니 내 소신대로 해 볼 수 있는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도덕재무장(Moral Rearmament) 운동은 약칭 MRA로 불린다. 원래 미국 루터파의 목사 부크맨(1878~1961)이 시작한 운동으로, 옥스퍼드 그룹 운동이라고 불린 학생 전도 운동이 전신이었다. 1938년 이후 사회변혁을 강조하면서 ‘도덕재무장’이라고 개칭하였는데 계급이나 국적을 초월한 화합을 주장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름 내가 바꿔 줬다
— 집안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아버지께서 말리셨지요. 부친은 마산상고를 나오셔서 평생 은행 일만 하신 분이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고 섭섭해하셨지요. 아내 역시 ‘판사 그대로 하지 무슨 정치냐’고 반대했고요.”
— 특이하게도 옛 꼬마민주당으로 출마하셨지요.
“거기엔 사연이 있어요. 전 부산지법에 판사로 있다가 사표를 내고 창원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습니다. 전관예우를 받으려면 당연히 부산에 사무실을 내야 했지요. 그때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상의를 했습니다. 3김 위주의 정치판을 갈아엎으려면 여야를 떠나 통합민주당으로 가야 한다고 의기투합했지요. 통합민주당에는 이철·노무현·제정구·유인태 의원 등이 있었습니다. 마침 홍 지사의 고려대 선배가 이기택 당시 총재에게 전화로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해 줬고요. 제가 먼저 입당하면 사흘 뒤 홍 지사가 따라오기로 했었지요. 자기는 서울 강남에 출마해 홍사덕 의원과 붙겠노라고.”
— 그런데 홍 지사가 ‘배신’하지 않았습니까, 여당으로 갔으니.
“하하하. 홍 지사가 사실 저와 친해요. 제가 이름도 바꿔 줬을 정도니까요.”
— 홍 지사의 이름을 바꿔 줬습니까.
“제가 아이들 이름 짓느라고 작명학을 조금 공부했습니다. 저는 당시 청주지법에서 형사단독 판사를 했고 홍 지사는 공판담당을 해 자주 만났는데 영 이름이 안좋은 거예요”
— 뭐가 안좋습니까.
“홍 지사의 본명이 홍판표였습니다. ‘ㅍ-ㅍ’이 겹치니 일단 발음하기도 힘들고 판(判)에 칼 도(刀) 자가 들어가잖아요. 획수도 그렇고 음양오행에도 안 맞고 해서 준(準)으로 바꾸라고 했지요.”
— 아무리 판사·검사지만 당시에는 이름 바꾸는 게 쉽지 않았지요.
“사유서에 ‘재수가 없어서 바꾸겠다’는 식으로 쓰면 절대 안 돼요. 제가 법원장님을 만나 사정했어요. ‘홍준표가 검사 주제에 건방지게 판 자를 쓰니 바꿔야겠다’고요. 물론 농담이었지만.”
— 만일 이름을 안 바꿨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앞날이 순탄치 않았겠지요.”
— 그런데 이름까지 바꿔 준 이 의원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으로 갔다는 말입니까.
“당시 홍 지사가 검사로 인기가 높아 3당에서 전부 영입하려고 했어요. 슬롯머신 사건으로 이름을 날렸고 박철언 전 장관, 이건개 전 검사장까지 구속시켜서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이 자자했지요.”
— 결국 첫 출마에서 낙선했지요.
“1996년의 15대 선거에선 낙선했지요. 당시 상대가 황낙주 전 의원이었어요. 16대에서는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붙어 당선됐는데 17대 때는 져서 1승1패였고요. 그런데 보궐선거가 마산갑에서 열려 지역구를 옮겨 당선됐습니다.”
한때 나도 당의 저격수
처음엔 조심스럽게 ‘대표 출마’에 대해 말하던 이 의원은 신이 났는지 무용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마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기자가 묻지 않자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문 기자, 과거에 내가 ‘저격수’였던 거 아십니까”라고 했다. 그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무슨 저격수를 했다는….
“‘이용호 게이트’도 시작이 접니다. 그 사람이 서울지검에 붙들려 갔는데 하루 만에 석방된 거예요. 검찰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1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는 겁니다. 알고 보니 흑막(黑幕)이 있었지요.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이 이씨의 회사에서 6개월간 근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 정현준 게이트도 이 의원이 터뜨리셨지요.
“2000년 10월 한국디지털라인(KDL) 사장 정현준씨와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씨 등이 수백억 원대의 금고 돈을 횡령하는 과정에서 정치인과 금융감독원, 검찰간부 등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 바로 정현준 게이트입니다. 시중에 KKK라는 이름이 떠돌아다녔어요. 당시 여권실세들의 이니셜이었습니다.”
— 그런 공로로 여의도연구원장 등을 지낸 겁니까.
“제가 이래 뵈도 추적은 잘해요. 경찰청 사직동팀장이 인도네시아로 도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엄호성 의원 등과 함께 제가 인도네시아로 갔어요. 가 보니 싱가포르로 달아났대요. 싱가포르로 가니 유나이티드 항공을 타고 미국 뉴욕의 JF케네디공항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거기서 붙잡았어야 하는데 누군가 빼돌려서 증발했지요. 그러다 한 달 후 LA에 있는 골프장 부근에 나타났다는 기사가 나와 다시 미국으로 갔고요.”
— 그 경찰관을 결국 국내로 송환했지요.
“미국 LA경찰에 문의해 보니 법원의 체포영장이 없으면 인터폴이 요청해도 범인을 송환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관례라고 하더군요. 결국 법무부에 요청해 미국 법원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송환했지요.”
— 듣고 보니 인상과는 달리 꽤 강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고 안 된다 싶으면 최강의 수단을 다 꺼냅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감세(減稅)정책이 부자(富者)들을 위한 거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잖아요.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무상급식 확대나 반값등록금이 시대의 대세라면 우리도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청와대의 임태희 비서실장이나 당시 정책실장과 많이 다투면서도 결국 관철시켰습니다.”
정책을 발표할 때는 반드시 재정추계 먼저 해야
— 하지만 정책에는 비용 문제가 따르지요.
“그래서 전 반드시 정책을 발표할 때 재정추계를 덧붙입니다.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털어 정책이랍시고 내놓으면 되겠습니까? 돈이 얼마나 들고 어떻게 재원을 마련해 국민들 부담 없이 좋은 정책을 펴내느냐는 게 정치인들의 임무지요. 야당엔 미안하지만 제가 만든 말이 있어요. ‘새누리당의 공약은 진심을 담은 약속, 민주당의 공약은 거짓을 담은 네이밍’이라고요. 약칭 ‘진품 거품’, 하하하!”
— 차기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이 이길 수 있습니까,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정당은, 누누이 말하지만 이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겁니다. 반드시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켜 다음에도 보수정권이 나오도록 해야지요.”
이주영 의원과의 대화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와 만난 장소는 마산수출자유지역 근처였다. 초대형 트레일러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가운데 바로 인접한 남해바다에서 봄답지 않은 열풍(熱風)이 불어 왔다. 아마 이렇게 뜨겁기에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불길이 여기서 댕겨졌을 것이다.
마산 근처에서 진해(鎭海)로 발길을 돌리자 막 지기 시작한 벚꽃의 꽃잎들이 비처럼 날렸다. 내가 지금 만나고 나온 이 정치인이 꾸는 꿈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당 대표 이후에는 무엇을 향해 달릴 계획이냐는 질문을 하지 못한 게 떠올랐다. 그런 상념(想念)이 훅 불어온 벚꽃 폭풍에 날아갔다.⊙
새누리당 당헌 제93조에 힌트가 숨어 있다. 93조 2항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는 상임고문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 선거일 1년6개월 전에 사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12월 19일인 차기 대선에서 1년6개월을 빼면 올해 6월 19일 자정까지이다.
그래서 정가(政街)에서 새누리당을 다가올 대선 때까지 이끌 진용, 그중에서도 대표가 누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단 새누리당에서 거론되는 후보는 2~3명 정도다.
친박계 최경환 의원의 한계
친박(親朴)계의 좌장인 최경환(崔慶煥) 의원이다. 하지만 그는 총선 전 벌어진 공천파동에서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입장이라는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원유철(元裕哲) 원내대표, 정병국 전 사무총장 등을 지목하는 이들도 있지만 무게감은 다소 떨어진다. 부산·경남·울산권에는 누가 있을까.
현재까지 ‘부·울·경’의 간판은 김무성 대표 외에 이주영(李柱榮·64·경남 창원) 의원과 정갑윤(鄭甲潤·65·울산)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은 총선에서 나란히 당선돼 5선 관록을 쌓았다. 김 대표를 제외하곤 최다다.
정가에선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지내고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이 의원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많다. 이 의원은 이런 질문에 “제 입으로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시대정신에 맞고 당의 요구가 있다면 소명(召命)을 거부하진 않겠다”고 했다. 조건부이긴 하지만 출마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정신은 경제살리기와 안보
— 시대정신이 뭡니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 총선 후 우리 새누리당이 해야 할 목표가 나옵니다. 첫째 어려운 경제살리기, 둘째 북한의 핵 위협과 테러의 공포로부터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이것들을 저는 시대정신이라고 봅니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경제를 살리려면 필수적인 법안들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노동개혁법·경제활성화법 같은 것들이지요. 북한 핵 위협과 테러의 공포는 튼튼한 안보를 말하는 거고요. 이 두 가지가 달성돼야 박근혜 정부는 성공하는 겁니다. 하나라도 실패하면 박근혜 정부는 실패하는 거지요. 박근혜 정부가 실패하면 차기 정권 재창출도 쉽지 않은데 세상에 정권을 잡지 않으려고 하는 정당이 어디 있습니까.”
— 당의 요구는요.
“지금은 분열을 막고 상처를 치유할때입니다. 화합과 치유를 통해서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워야 합니다.”
— 지금 이 시점에서 새누리당 대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끝까지 뒷받침하고 차기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지요. 앞서 말한 법안들은 그 일부분이고요. 차기 정권을 만들어 내려면 분열된 당을 통합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합니다. 새누리당의 외연을 넓히는 거지요.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도 야당보다 앞서 개발해야 하고요. 그게 무엇일까 숙고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시각’과 ‘국민의 시각’이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 왜 지금 새누리당 대표는 이주영이어야 합니까.
“저는 어느 특정 계파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 총선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결국 계파 갈등에서 나온 것인데 저는 그 부분에서 자유롭습니다. 제가 당장 대권에 욕심을 내지도 않으니 당을 중립적으로 관리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 이렇게 비교하긴 힘들지만 세월호 사태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지요. 세월호도 침몰했고 새누리당도 좌초하다 침몰 위기를 맞을 뻔하기도 했는데 어떤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까.
“(잠시 생각하다) 아무래도 세월호 때가 더 어려웠지요. 그때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 그때 그렇게 힘들었습니까.
“해수부 장관이 된 지 정확히 한 달 열흘 만에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처음에 현장에 내려갔을 때 ‘장관 놈’이라는 말을 예사로 들었어요. ‘바다에 던져 빠뜨려 죽여 버려라’는 말도 많이 나왔습니다. 제가 수습이 끝날 때까지 팽목항 현장을 지키겠다고 해도 믿는 유가족이 없었고요.”
— 그런데 조금씩 달라졌지요.
“국회에서 현안보고를 하라고 할 때였습니다. 여의도 국회에 가려면 며칠간 팽목항을 비워야 하는데 유가족들이 저를 옹호하고 나섰지요. 그분들은 ‘국회에 가면 혼만 나지 않느냐, 양당 원내대표들한테 우리가 해수부 장관을 부르지 말라고 얘기해 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 이 의원의 앞에는 왜 이런 일들이 많을까요. 세월호도 그렇고 새누리당의 상황도 그렇고. 혹시 팔자(八字)가 센 편입니까.
“위기는 기회와 동의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제가 앞서 얘기했듯 ‘이주영이가 당의 화합형 지도자로 가장 적합하다’는 소명이 오면 그 길이 비록 힘들고 고독하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요. 그게 당원으로서의 책무이기도 하고요.”
인재 잘 쓰는 게 계파갈등 없애는 유일한 방법
— 공천 때문에 친박과 비박이 갈라졌다가 선거 때 비빔밥을 먹으며 뭉치는 흉내를 내긴 했지만 앞으로 친박·비박이 뭉칠 가능성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 손가락질을 하잖아요. 검지손가락은 상대방을 가리키지만 밑의 세 손가락은 자기를 향하고 있습니다.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지요.”
— 말은 옳지만 계파 갈등이 사라질까요.
“저는 근본적으로 계파의 벽을 없애야 한다고 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특정 계파로 분류되지는 않았고요.”
— 계파 갈등을 없애는 비법이 있습니까.
“사람을 능력에 따라 쓰는 수밖에 없지요. 내 사람, 네 사람이 아닌,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면 단결하게 됩니다.”
—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되면 이번에 공천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분들의 복당(復黨)문제가 이슈로 될 텐데요.
“일시적으로 당을 떠났던 무소속 당선자에 대해서는 화합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논의하여 공감을 이루는 대로 언제든 함께할 수 있다는 포용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정책으로부터
— 앞서 말했듯 이 의원은 친박으로 분류되지 않는데도 박 대통령과 인연이 깊지요.
“2012년 4월 19대 의원에 당선된 뒤 12월 대선을 앞두고 8월에 박 대통령 경선(競選)캠프에 합류했습니다. 특보단장과 경선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선대위에선 대선기획단장을 지냈습니다. 대선기획단장이 할 일이 무척 많아요. 전략·조직·정책·홍보·인재영입을 총괄해야 하니까요.”
— 친박도 아닌데 그런 일을 맡긴 건 혹시 이 의원께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은박(隱朴) 아닙니까.
“그 전에 인연이 있었어요. 2011년 우리 당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박 대통령께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거고요. 당시만 해도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망할 거다, 100석도 못 얻을 거다 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실제 상황도 그랬고요. 박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으로 온 직후 제가 정책위의장으로 있었는데 모든 걸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감이 들었습니다.”
— 그때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민심에 다가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이슈를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반값등록금, 소외계층 사회보험 같은 정책들이 그때 나왔습니다. 대학가에서 신학기만 되면 등록금 비싸다는 불만이 해마다 재연됐잖아요. 소외계층의 사회보험도 사각지대였고. 당의 정강도 확 바꿔 놓았고요. 이렇게 민심에 다가가는 전략을 하나둘 실천하다 보니 분위기가 반전됐어요. 총선에서 과반 확보라는 예상도 못한 결과가 나왔고요.”
— 이렇게 보면 ‘선거의 여왕’도 참모가 똑똑해야 나올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전 평소 정치인이라면 슬로건보다 정책에 정통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러면 이번에 대표에 출마해도 박 대통령이 지원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그 얘긴 이르고요.”
처음으로 방청석을 향해 인사한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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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영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 입안에 기여했다. |
“그렇지요.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높은 법대(法臺)에 앉아 피고인들을 굽어보고 있으면 건방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전 영국 킹스칼리지에 유학 갔을 때 영국 판사들을 보고 많이 반성했어요.”
— 어떻게요.
“우리는 고시만 패스하면 스물 몇 살에도 판사가 됩니다. 저도 그랬고요. 세상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부족한 사람이 시험만 통과하면 판사가 되니 최근 나오는 잡음들은 구조적인 겁니다. 영국은 그렇지 않더군요. 영국은 변호사와 검사는 할 수 있지만 판사는 인품과 실력에 대한 평판을 충분히 듣고 난 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이 돼야 판사가 됩니다. 그리고 판사의 자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있어요.”
— 뭡니까, 그게.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거지요. 법원까지 달려왔으면 얼마나 억울한 사연이 많았겠습니까. 그런 분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야지요. 요즘 중간에 피고인의 말을 끊거나 핀잔을 주는 사례가 많다는데, 충분히 하소연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록 패소하더라도 앙심을 품지 않고 승복하게 되지요.”
— 한 말 또 하고 하면서 진을 빼면 어떻게 합니까.
“같은 말이 지나치게 반복되면 ‘제가 다 알아듣겠습니다’라고 하면 보통 그칩니다. 그렇게 기회를 준 뒤 추상(秋霜)같은 엄정한 결론을 내려야지요.”
—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법관들의 태도는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오늘 대화 주제는 아니지만.
“우리 법원은 판사가 입장하면 ‘기립, 착석’이라고 하지요. 전 그걸 바꿨어요. 부장판사로 일할 때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모인 분들에게 먼저 고마움의 표시로 절을 했지요. 법원에서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제가 처음이었는지 화제가 됐고 나중에 법원의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
— 판사가 참 좋은 자리인데 왜 그만두고 이 험한 정치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겁니까.
“제가 원래 성격이 소극적이었어요. 학창시절에 특히 그랬는데 도덕재무장(MRA)이라는 단체에 가입한 이후 성격이 액티브하게 변했습니다. 아무래도 판사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요. 배당된 사건만 처리하게 되니까. 판사로서 일할 만큼 일하고 나니 내 소신대로 해 볼 수 있는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도덕재무장(Moral Rearmament) 운동은 약칭 MRA로 불린다. 원래 미국 루터파의 목사 부크맨(1878~1961)이 시작한 운동으로, 옥스퍼드 그룹 운동이라고 불린 학생 전도 운동이 전신이었다. 1938년 이후 사회변혁을 강조하면서 ‘도덕재무장’이라고 개칭하였는데 계급이나 국적을 초월한 화합을 주장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름 내가 바꿔 줬다
— 집안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아버지께서 말리셨지요. 부친은 마산상고를 나오셔서 평생 은행 일만 하신 분이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고 섭섭해하셨지요. 아내 역시 ‘판사 그대로 하지 무슨 정치냐’고 반대했고요.”
— 특이하게도 옛 꼬마민주당으로 출마하셨지요.
“거기엔 사연이 있어요. 전 부산지법에 판사로 있다가 사표를 내고 창원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습니다. 전관예우를 받으려면 당연히 부산에 사무실을 내야 했지요. 그때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상의를 했습니다. 3김 위주의 정치판을 갈아엎으려면 여야를 떠나 통합민주당으로 가야 한다고 의기투합했지요. 통합민주당에는 이철·노무현·제정구·유인태 의원 등이 있었습니다. 마침 홍 지사의 고려대 선배가 이기택 당시 총재에게 전화로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해 줬고요. 제가 먼저 입당하면 사흘 뒤 홍 지사가 따라오기로 했었지요. 자기는 서울 강남에 출마해 홍사덕 의원과 붙겠노라고.”
— 그런데 홍 지사가 ‘배신’하지 않았습니까, 여당으로 갔으니.
“하하하. 홍 지사가 사실 저와 친해요. 제가 이름도 바꿔 줬을 정도니까요.”
— 홍 지사의 이름을 바꿔 줬습니까.
“제가 아이들 이름 짓느라고 작명학을 조금 공부했습니다. 저는 당시 청주지법에서 형사단독 판사를 했고 홍 지사는 공판담당을 해 자주 만났는데 영 이름이 안좋은 거예요”
— 뭐가 안좋습니까.
“홍 지사의 본명이 홍판표였습니다. ‘ㅍ-ㅍ’이 겹치니 일단 발음하기도 힘들고 판(判)에 칼 도(刀) 자가 들어가잖아요. 획수도 그렇고 음양오행에도 안 맞고 해서 준(準)으로 바꾸라고 했지요.”
— 아무리 판사·검사지만 당시에는 이름 바꾸는 게 쉽지 않았지요.
“사유서에 ‘재수가 없어서 바꾸겠다’는 식으로 쓰면 절대 안 돼요. 제가 법원장님을 만나 사정했어요. ‘홍준표가 검사 주제에 건방지게 판 자를 쓰니 바꿔야겠다’고요. 물론 농담이었지만.”
— 만일 이름을 안 바꿨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앞날이 순탄치 않았겠지요.”
— 그런데 이름까지 바꿔 준 이 의원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으로 갔다는 말입니까.
“당시 홍 지사가 검사로 인기가 높아 3당에서 전부 영입하려고 했어요. 슬롯머신 사건으로 이름을 날렸고 박철언 전 장관, 이건개 전 검사장까지 구속시켜서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이 자자했지요.”
— 결국 첫 출마에서 낙선했지요.
“1996년의 15대 선거에선 낙선했지요. 당시 상대가 황낙주 전 의원이었어요. 16대에서는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붙어 당선됐는데 17대 때는 져서 1승1패였고요. 그런데 보궐선거가 마산갑에서 열려 지역구를 옮겨 당선됐습니다.”
한때 나도 당의 저격수
처음엔 조심스럽게 ‘대표 출마’에 대해 말하던 이 의원은 신이 났는지 무용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마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기자가 묻지 않자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문 기자, 과거에 내가 ‘저격수’였던 거 아십니까”라고 했다. 그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무슨 저격수를 했다는….
“‘이용호 게이트’도 시작이 접니다. 그 사람이 서울지검에 붙들려 갔는데 하루 만에 석방된 거예요. 검찰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1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는 겁니다. 알고 보니 흑막(黑幕)이 있었지요.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이 이씨의 회사에서 6개월간 근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 정현준 게이트도 이 의원이 터뜨리셨지요.
“2000년 10월 한국디지털라인(KDL) 사장 정현준씨와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씨 등이 수백억 원대의 금고 돈을 횡령하는 과정에서 정치인과 금융감독원, 검찰간부 등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 바로 정현준 게이트입니다. 시중에 KKK라는 이름이 떠돌아다녔어요. 당시 여권실세들의 이니셜이었습니다.”
— 그런 공로로 여의도연구원장 등을 지낸 겁니까.
“제가 이래 뵈도 추적은 잘해요. 경찰청 사직동팀장이 인도네시아로 도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엄호성 의원 등과 함께 제가 인도네시아로 갔어요. 가 보니 싱가포르로 달아났대요. 싱가포르로 가니 유나이티드 항공을 타고 미국 뉴욕의 JF케네디공항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거기서 붙잡았어야 하는데 누군가 빼돌려서 증발했지요. 그러다 한 달 후 LA에 있는 골프장 부근에 나타났다는 기사가 나와 다시 미국으로 갔고요.”
— 그 경찰관을 결국 국내로 송환했지요.
“미국 LA경찰에 문의해 보니 법원의 체포영장이 없으면 인터폴이 요청해도 범인을 송환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관례라고 하더군요. 결국 법무부에 요청해 미국 법원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송환했지요.”
— 듣고 보니 인상과는 달리 꽤 강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고 안 된다 싶으면 최강의 수단을 다 꺼냅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감세(減稅)정책이 부자(富者)들을 위한 거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잖아요.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무상급식 확대나 반값등록금이 시대의 대세라면 우리도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청와대의 임태희 비서실장이나 당시 정책실장과 많이 다투면서도 결국 관철시켰습니다.”
정책을 발표할 때는 반드시 재정추계 먼저 해야
— 하지만 정책에는 비용 문제가 따르지요.
“그래서 전 반드시 정책을 발표할 때 재정추계를 덧붙입니다.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털어 정책이랍시고 내놓으면 되겠습니까? 돈이 얼마나 들고 어떻게 재원을 마련해 국민들 부담 없이 좋은 정책을 펴내느냐는 게 정치인들의 임무지요. 야당엔 미안하지만 제가 만든 말이 있어요. ‘새누리당의 공약은 진심을 담은 약속, 민주당의 공약은 거짓을 담은 네이밍’이라고요. 약칭 ‘진품 거품’, 하하하!”
— 차기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이 이길 수 있습니까,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정당은, 누누이 말하지만 이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겁니다. 반드시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켜 다음에도 보수정권이 나오도록 해야지요.”
이주영 의원과의 대화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와 만난 장소는 마산수출자유지역 근처였다. 초대형 트레일러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가운데 바로 인접한 남해바다에서 봄답지 않은 열풍(熱風)이 불어 왔다. 아마 이렇게 뜨겁기에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불길이 여기서 댕겨졌을 것이다.
마산 근처에서 진해(鎭海)로 발길을 돌리자 막 지기 시작한 벚꽃의 꽃잎들이 비처럼 날렸다. 내가 지금 만나고 나온 이 정치인이 꾸는 꿈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당 대표 이후에는 무엇을 향해 달릴 계획이냐는 질문을 하지 못한 게 떠올랐다. 그런 상념(想念)이 훅 불어온 벚꽃 폭풍에 날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