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첨한 오적은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전형
⊙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꼴값만 떨다가 대패했다”
⊙ “용비어천가만 난무한 당… 국민들도 좋아할 줄 아나?”
⊙ 선거 열흘 전부터 적신호 왔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해
⊙ 지금은 차기 대선 거론할 단계 아냐… 철저한 반성부터
⊙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꼴값만 떨다가 대패했다”
⊙ “용비어천가만 난무한 당… 국민들도 좋아할 줄 아나?”
⊙ 선거 열흘 전부터 적신호 왔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해
⊙ 지금은 차기 대선 거론할 단계 아냐… 철저한 반성부터
- 강서 지역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3선을 한 사람은 김성태 의원이 유일하다.
김성태(金聖泰·57) 의원의 바지에는 혁대가 없었다. 4·13총선 다음날인 14일 만났을 때 그는 “경황이 없어 바지만 걸치고 나왔다”고 했다. 그는 서울 강서을 지역구에서 진성준 더민주당 후보를 1만3000여 표 차로 이겼다. 강서 지역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3선을 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강서을 지역은 다른 곳보다 개표가 늦었다. 밤늦게까지 가슴 졸이며 개표를 지켜보던 그에게 기자는 13일 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새 됐다”는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다음날 “왜 이렇게 선거가 형편없는 결과를 낳았는지 말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 “오라”고 했다.
잔뜩 쉰 목소리로 그는 이번 선거를 이렇게 규정했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오만불손하게 치렀다. 대통령에게 아첨하고 비위만 맞췄다. 그게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고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당선 축하 전화였는데 그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국민들 무서워하지 않고 꼴값을 떤 선거였어요, 꼴값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만 줄곧 외쳐댔는데 국민들도 용비어천가를 좋아하는 줄 아는 모양이죠? 이번 선거를 망친 사람들이 다시 당의 전면(前面)에 나선다면 국민에게 반기(叛旗)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말처럼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를 했다. ‘1여(與) 다야(多野)’의 구도로 처음에는 180석 이야기가 나왔다가 예상 의석이 과반(過半)으로 줄어들더니 ‘그래도 1당은 지킬 것’이라는 선까지 주저앉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당으로 더불어민주당에도 밀린 것이다.
유승민 사태부터 징조 나타나
— 이번 선거는 새누리당 입장에서 지려야 질 수 없는 구도였다는데 결과는 영 딴판입니다.
“유승민 의원 사태 때부터 징조가 나타났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유 의원을) 배척할 때부터 국민들은 권력의 비정한 모습을 본 것입니다.”
— 상향식 공천 실패도 한몫했지요.
“당원들과 국민들을 두려워했다면 당연히 상향식 공천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이번 사태가 시작된 겁니다.”
— 일설에 선거 직전까지 새누리당 내부에는 150~155석을 획득할 것이라는 보고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건 실정(實情)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여의도연구소에서는 선거 10일 전부터 새누리당이 서울에서 9석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적신호가 켜진 상태였습니다. (총선 결과 새누리당은 서울에서 12개 의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 김 의원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습니까.
“느꼈지요. 시장의 싸늘한 분위기를. 저는 이 지역구에서만 세 번 선거를 치렀어요. 그런데 이번만큼 유권자들이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저를 외면한 것도 아니었어요. 표면적으론 잘 대해줬는데 속으로 ‘너희 오만한 새누리당 맛 좀 봐라’, 이렇게 벼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성숙해져서 이제는 얼굴에 좋다, 싫다는 표를 노골적으로 잘 안 냅니다.”
A를 거치지 않고는 공직 못해
— 단도직입적으로 누가 이번 선거를 망친 주범입니까.
“청와대 권력 주변에서 호가호위한 사람들이지요. 내가 설명은 하겠지만 실명(實名)을 쓰지는 마세요, 절대로. 첫 번째 A는 ‘그를 거치지 않고는 공직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세를 떨쳤습니다.”
나는 김 의원의 말을 듣고 친박(親朴), 아니 진박(眞朴)의 간판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한 인물을 떠올렸지만 김 의원은 “절대로 실명을 쓸 거면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정도만 설명해도 ‘공직 진출 결정권’을 가진 정치인을 능히 짐작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그분이 차기 당권에 도전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선거를 이렇게 망쳐놓고 나오면 안 되죠.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해야 돼요.”
— 4·13총선의 오적(五賊) 가운데 두 번째는?
“B입니다. 그를 둘러싸고는 ‘공기업 비상임 감사라도 하려면 반드시 그를 거쳐야 한다’는 말이 돌고 있는 거 잘 알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박 대통령 주변에서 마치 대통령을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겁니다.”
“공기업 비상임 감사라도 하려면 B를 거쳐야”
나는 김 의원의 말을 듣고 노회한 한 인물을 떠올렸다. 권력에 대한 끝없는 집착의 화신(化身), 그 역시 이번 선거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잘난 체한다’는 뜻의 호가호위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 이왕 오적을 꼽는 거 세 번째 당을 망친 인물은?
“C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의원들의 의견을 잘 취합해서 타협의 묘를 발휘해야 할 인물이 청와대 눈치나 보고 그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의 가슴 속 분노가 그의 눈에 보일 리 없었겠지요.”
나는 김 의원의 말을 듣고 박근혜 대통령을 자주 웃겼다는 한 인물이 생각났다. 아마 그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을지언정 국민들을 화나게 했으며 새누리당이 폭삭 망하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을 지금이나마 깨닫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 역시 이번에 국회에 재입성하게 됐다.
“D는 대통령만 즐겁게 하고 국민들은 불쾌하게 만들어”
— 네 번째는 누굽니까.
“D는 자신이 항상 대통령의 측근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벌벌 떠는 게 기분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진정으로 대통령과 당을 위하는 길이었을까요?”
김성태 의원은 D에 대해 평소부터 불신이 강했다. 한번은 자신이 서울시당위원장 시절 결정해야 할 일에 그가 ‘손길’을 뻗은 것을 알고 강력히 항의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김 의원에 따르면 D는 당보다는 자신의 정치를 앞세우는 인물로 해당(害黨)행위를 서슴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 마지막 한 명이 남았습니다.
“6·25 때 예를 들어볼까요? 당시 국민들이 더 무서워했던 것은 북한 인민군이 아니라 인민군이 들어오자 죽창을 들고 설친 부역자들이었습니다. E는 완장 찬 부역자나 마찬가지였어요. 우리 당 공천을 완전히 망쳐버렸잖아요.”
나는 김 의원의 말을 듣고 수도권 주변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을 자임한 한 인물과 공천파동의 주역인 또 다른 인물이 떠올랐다. 그때 다시 김 의원에게 축하 전화가 걸려왔는데 김 의원은 앞에 있는 기자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 높여 상대방에게 새누리당의 패인을 설명했다.
“국민을 무서워할 줄 모르고 우리만의 놀음에 빠져 불장난을 치다가 큰불을 내고만 격입니다. 뼈저린 자성과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당의 미래는 없어요.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는 말들 이 순간 이후부터는 정말 사라져야 합니다.” 전화를 끊은 김 의원은 또 다른 정치인 F를 거론했다.
“대통령에게 ‘누님’이라 하며 온갖 호사 누린 정권의 황태자도 선거 망친 주범”
— 오적에서 6적이 되면 곤란한데요.
“그 사람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대통령에게 ‘누님’이라고 호칭한다니. 그렇게 이 정권의 황태자(皇太子)처럼 온갖 호사는 다 누려놓고 당에는 폐만 끼쳤잖아요.”
—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망한 것은 공천 문제가 시발점이었습니다. 왜 공천의 칼날을 그렇게 휘두른 겁니까.
“BH(청와대)의 눈치를 본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소위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괜히 눈치를 보고 그런 결과를 만든 거지요.”
— 공천파동의 주역 가운데 한 분을 둘러싸고는 총선 후 무슨 자리를 보장받은 거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심하게 갈등을 일으킨 게 사실입니다.
“무슨 자리를 보장받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가 죽창 든 부역자처럼 행동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 항간에는 그분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말 잘 듣는 TK의원 몇십 명만 있으면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을 팔아 그런 말을 흘렸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게 급한데 어떻게 퇴임 후를 생각하겠어요. 측근이라고 자처하는 누군가가 자기들이 한 행동을 합리화시키려 만들어낸 말이겠지요.”
— 공천관리위원들을 뽑은 것은 누굽니까.
“당(黨)이지요.”
— 그럼 당은 왜 공천관리위원회에 휘둘렸습니까?
“우리의 불행은 공천관리위원장에게 당 대표가 휘둘렸다는 겁니다. 당 대표가 꺾이고 공천관리위원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게 오늘날 이런 결과를 낳은 겁니다. 그 양반이 아주 대패(大敗)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거지요.”
“김무성 전 대표 압박하려 측근인 나와 김학용 의원 볼모 잡아”
— 김 의원 자신도 거의 막판에야 공천을 받았습니다.
“저와 김학용 의원이 김무성 전 대표의 측근이라고 ‘볼모’로 잡은 겁니다. ‘우리 공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네 측근인 김성태와 김학용이를 쳐버리겠다’는 협박이었지요. 김학용 의원과 저는 수도권(경기도 안성)과 서울에서 당선에 가장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는데도 그렇게 당했어요.”
— 마치 조폭 같았겠네요.
“저는 이번에 선거를 치르면서 새누리당이 민주 정당이길 포기했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독단적이었습니까,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 그렇다면 선거기간 중에 지원도 별로 받지 못했겠네요.
“지원은 무슨 지원입니까?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철저하게 각자도생(各自圖生)했어요. 혼자 살아남는 것 외에 중앙당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 이번 선거기간 중 새누리당이 보였던 가장 치사한 장면 하나를 꼽자면 뭘 들 수 있습니까.
“존영(尊影) 사건이죠.”
“존영 사건으로 100만 표 날아가”
— ‘존영 사건’이라면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분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떼라고 한 사건 말이지요?
“치사한 ××들(이날 처음으로 김 의원의 입에서 나온 욕설이었다.) 존영이 뭡니까, 존영이. 대통령 사진이지. 그게 바로 새누리당이 민주주의 정당이 아니고 용비어천가가 난무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 그 일로 어느 정도 표가 날아갔다고 봅니까.
“저는 100만 표 이상이 날아갔다고 봐요. 지금 생각해도 낯뜨겁지 않습니까. 아니 당을 떠났다고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람에게 대통령 사진을 떼라고 요구하다니. 할 말을 잃을 정도예요.”
— 김무성 대표는 총선 다음날 사퇴 의사를 표했습니다.
“김 전 대표가 개표날 쓰러져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했어요. 저는 개표가 늦게 시작돼 과정을 볼 새도 없이 김학용 의원과 함께 김 전 대표를 보러 갔어요. 셋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숨만 쉬었지요.”
— 당을 이렇게까지 만든 이들이 밉지 않았습니까.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하겠습니까. 셋 다 참담한 표정으로 탄식만 했지요.”
“오세훈 전 시장은 종로에 나오지 말았어야”
— 새누리당은 참패했을 뿐 아니라 유력 대권 후보들까지 날아가는 손실을 봤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입니다.
“오 시장은 종로에 나오지 말았어야 해요. 아이들 무상급식 문제로 벌어진 찬반투표에서 져 서울시장에서 물러났잖아요. 그랬다면 더 험지(險地)를 택해 진인사대천명 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여론조사에 앞선 것처럼 보였지만 종로에 출마한 게 국민들 눈에는 ‘손쉽게 정치기반을 마련하려 한다’는 쪽으로 인식됐습니다. 물론 위로부터 무언(無言)의 지지가 있었지만요.”
—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김부겸 더민주당 후보에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진 것도 이변 가운데 하나입니다.
“김문수 전 지사는 경기도지사를 지냈으면 당연히 경기도 관내에서 새누리당이 약한 곳을 골라 출마했어야 합니다. 자신은 TK의 맹주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모르지만 쉬운 곳(대구)을 택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입니다. 그분은 지난번에도 그랬어요.”
— 언제 말입니까?
“지난번 서울 동작을 보궐선거 때 당에서 얼마나 김문수 지사에게 출마를 권유했습니까. 당연히 그때 출마해서 심판을 받았어야지요. 그런데 동작을을 극구 피하고 결국 대구로 내려가 택시 운전대를 잡았잖아요.”
“복당 원하면 다 받아들여야”
— 원내 2당이 된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당선된 의원들의 복당(復黨) 문제가 발등의 불 같은데요.
“저는 총선에서 살아 돌아와 복당 신청을 하는 의원들은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하면 국민들은 ‘새누리당이 저렇게 참패를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하고 생각할 겁니다. 인위적인 선택을 해선 안 되지요.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호영-안상수-강길부-유승민 의원 전부.”
— 김무성 전 대표가 사퇴했으니 다음 관심은 차기 당권을 누가 잡느냐가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뛰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친박 쪽이 돼선 절대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나 용비어천가만 줄곧 외쳐댄 간신(奸臣)들은요.”
—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 후보 예비군 가운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물론 김무성 전 대표까지 내상(內傷)을 크게 입었습니다. 어떤 인물로 차기 대선에 대처해야 한다고 봅니까.
“지금은 차기 권력을 논할 때가 아닙니다. 뼈저린 자성과 분골쇄신, 다시 뛰겠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드리고 저희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게 급선무입니다. 땀흘린 농부가 힘써 일궈낸 과실(果實), 그런 것을 국민들에게 드리는 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무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나 무슨 유명인을 데려온다는 말부터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김성태 의원은 사우디아라비아 기능공 출신이다. 한양건설에 다닐 때 트레일러를 모는 기술자로 사우디에 가 세계 최대의 대학이라는 ‘이맘대학’ 건설에 참여했었다. 그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뒤 열사(熱砂)의 땅으로 가 목숨 걸고 번 돈을 송금했고 아내가 그걸 모아 집을 샀다고 한다. 기자와는 김 의원이 한국노총 사무총장으로 일할 때 만났다. 기자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지금의 서울 여의도 우체국 옆에 한국노총 건물을 재건축할 때였다.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과 몇몇 간부가 정부가 지원한 돈 가운데 일부를 빼먹었다. 그중엔 장기 도주한 사람도 있었다. 노총에서 핵심적인 사무총장 자리에 있던 그는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연루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시 정계에 진출했다. 당시 위원장이 이번에 ‘더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게 된 이용득(李龍得)씨다. 당시 이씨는 정동영 대통령 후보 쪽에 섰다. 그가 경남 쌍계사에서 정 후보와 하룻밤을 같이하며 ‘형님 동생’ 했다는 소문이 곧장 이명박 진영으로 들어갔다.
분노한 이명박 후보는 노동계의 힘을 얻기 위해 김성태 의원을 택했고 김 의원은 그 이후 줄곧 친이계로 분류됐다. 이번 20대 선거에서 그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당선 안정권에 분류됐음에도 불구하고 당으로부터 홀대를 받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 의원이 ‘여당 의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서울 강서을에서 3선 한데는 아내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아내는 핸드백에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몇 벌씩 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서을구에 복지관만 10곳이 넘기 때문에 그녀는 ‘의원 부인’이 아닌 ‘도우미 아줌마’처럼 일손을 도와왔다.
김 의원의 아내가 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에 눈물을 터뜨린 적이 있다. “엄마한테는 왜 이렇게 짬밥 냄새가 나느냐”고 한 것이다. 김 의원 부인은 이 말에 “나도 남들처럼 화장품 바르고 멋도 내보고 싶은데 내가 이러지 않으면 너희 아빠가 어떻게 되겠느냐. 너희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걸 몰라주느냐”고 했다. 기자는 4년 전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랬던 김 의원의 아내는 이번 선거기간에도 평소처럼 복지관을 돌며 힘없는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을 수발했고 그의 아들은 학업을 1년6개월이나 중단한 채 아버지를 도왔으며 직장에 다니는 딸도 연차휴가를 내고 주말마다 봉사에 나섰다. 김성태의 3선 뒤엔 이렇게 가족의 희생이 있었다.
강서을 지역구는 전통적으로 야세(野勢)가 강한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때 이곳에서 야당 후보에게 7.3%를 졌고,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은 박 시장에게 이곳에서 14%를 졌다. 그런 곳에서 기적처럼 생환해 온 비결을 묻자 김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8년 동안 의원을 하면서 단 한번도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끼리 해외여행 한번 다녀온 적도 없고요. 골목을 돌며 지역구민들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막걸리를 마시며 그분들의 애환과 이곳에 필요한 것이 뭔지를 듣는 일에만 집중했어요.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이 말을 하고 있을 즈음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본의 아니게 듣고 있자니 당선자 가운데 한 명이 분명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당선 사례(謝禮)를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상의차 김성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 같았다. 김 의원은 “하지 마, 하지 마”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할 텐데 우리 당의 상황이 웃는 모습을 보일 처지가 아니다. 유세차를 타고 다녀야 할 텐데 그것도 좋지 않은 효과를 낼 것 같다”고 했다. 반대편 수화기에서 “그렇다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인사하는 건 어떠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의원은 “그 정도는 괜찮을 거 같다”며 “대신 아침에는 다니지 말고 오후에 다니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김 의원과 통화한 이는 이번 선거에서 친박들에게 곤욕을 치른 당선자들을 모으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똑 부러진 음성의 여성이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새누리당은 당분간 심한 내홍(內訌)에 휩싸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강서을 지역은 다른 곳보다 개표가 늦었다. 밤늦게까지 가슴 졸이며 개표를 지켜보던 그에게 기자는 13일 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새 됐다”는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다음날 “왜 이렇게 선거가 형편없는 결과를 낳았는지 말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 “오라”고 했다.
잔뜩 쉰 목소리로 그는 이번 선거를 이렇게 규정했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오만불손하게 치렀다. 대통령에게 아첨하고 비위만 맞췄다. 그게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고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당선 축하 전화였는데 그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국민들 무서워하지 않고 꼴값을 떤 선거였어요, 꼴값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만 줄곧 외쳐댔는데 국민들도 용비어천가를 좋아하는 줄 아는 모양이죠? 이번 선거를 망친 사람들이 다시 당의 전면(前面)에 나선다면 국민에게 반기(叛旗)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말처럼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를 했다. ‘1여(與) 다야(多野)’의 구도로 처음에는 180석 이야기가 나왔다가 예상 의석이 과반(過半)으로 줄어들더니 ‘그래도 1당은 지킬 것’이라는 선까지 주저앉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당으로 더불어민주당에도 밀린 것이다.
유승민 사태부터 징조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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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3일 오후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한 후 대리인을 통해 선관위에 탈당증명서를 제출했다. |
“유승민 의원 사태 때부터 징조가 나타났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유 의원을) 배척할 때부터 국민들은 권력의 비정한 모습을 본 것입니다.”
— 상향식 공천 실패도 한몫했지요.
“당원들과 국민들을 두려워했다면 당연히 상향식 공천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이번 사태가 시작된 겁니다.”
— 일설에 선거 직전까지 새누리당 내부에는 150~155석을 획득할 것이라는 보고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건 실정(實情)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여의도연구소에서는 선거 10일 전부터 새누리당이 서울에서 9석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적신호가 켜진 상태였습니다. (총선 결과 새누리당은 서울에서 12개 의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 김 의원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습니까.
“느꼈지요. 시장의 싸늘한 분위기를. 저는 이 지역구에서만 세 번 선거를 치렀어요. 그런데 이번만큼 유권자들이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저를 외면한 것도 아니었어요. 표면적으론 잘 대해줬는데 속으로 ‘너희 오만한 새누리당 맛 좀 봐라’, 이렇게 벼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성숙해져서 이제는 얼굴에 좋다, 싫다는 표를 노골적으로 잘 안 냅니다.”
A를 거치지 않고는 공직 못해
— 단도직입적으로 누가 이번 선거를 망친 주범입니까.
“청와대 권력 주변에서 호가호위한 사람들이지요. 내가 설명은 하겠지만 실명(實名)을 쓰지는 마세요, 절대로. 첫 번째 A는 ‘그를 거치지 않고는 공직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세를 떨쳤습니다.”
나는 김 의원의 말을 듣고 친박(親朴), 아니 진박(眞朴)의 간판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한 인물을 떠올렸지만 김 의원은 “절대로 실명을 쓸 거면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정도만 설명해도 ‘공직 진출 결정권’을 가진 정치인을 능히 짐작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그분이 차기 당권에 도전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선거를 이렇게 망쳐놓고 나오면 안 되죠.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해야 돼요.”
— 4·13총선의 오적(五賊) 가운데 두 번째는?
“B입니다. 그를 둘러싸고는 ‘공기업 비상임 감사라도 하려면 반드시 그를 거쳐야 한다’는 말이 돌고 있는 거 잘 알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박 대통령 주변에서 마치 대통령을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겁니다.”
“공기업 비상임 감사라도 하려면 B를 거쳐야”
나는 김 의원의 말을 듣고 노회한 한 인물을 떠올렸다. 권력에 대한 끝없는 집착의 화신(化身), 그 역시 이번 선거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잘난 체한다’는 뜻의 호가호위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 이왕 오적을 꼽는 거 세 번째 당을 망친 인물은?
“C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의원들의 의견을 잘 취합해서 타협의 묘를 발휘해야 할 인물이 청와대 눈치나 보고 그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의 가슴 속 분노가 그의 눈에 보일 리 없었겠지요.”
나는 김 의원의 말을 듣고 박근혜 대통령을 자주 웃겼다는 한 인물이 생각났다. 아마 그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을지언정 국민들을 화나게 했으며 새누리당이 폭삭 망하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을 지금이나마 깨닫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 역시 이번에 국회에 재입성하게 됐다.
“D는 대통령만 즐겁게 하고 국민들은 불쾌하게 만들어”
— 네 번째는 누굽니까.
“D는 자신이 항상 대통령의 측근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벌벌 떠는 게 기분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진정으로 대통령과 당을 위하는 길이었을까요?”
김성태 의원은 D에 대해 평소부터 불신이 강했다. 한번은 자신이 서울시당위원장 시절 결정해야 할 일에 그가 ‘손길’을 뻗은 것을 알고 강력히 항의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김 의원에 따르면 D는 당보다는 자신의 정치를 앞세우는 인물로 해당(害黨)행위를 서슴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 마지막 한 명이 남았습니다.
“6·25 때 예를 들어볼까요? 당시 국민들이 더 무서워했던 것은 북한 인민군이 아니라 인민군이 들어오자 죽창을 들고 설친 부역자들이었습니다. E는 완장 찬 부역자나 마찬가지였어요. 우리 당 공천을 완전히 망쳐버렸잖아요.”
나는 김 의원의 말을 듣고 수도권 주변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을 자임한 한 인물과 공천파동의 주역인 또 다른 인물이 떠올랐다. 그때 다시 김 의원에게 축하 전화가 걸려왔는데 김 의원은 앞에 있는 기자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 높여 상대방에게 새누리당의 패인을 설명했다.
“국민을 무서워할 줄 모르고 우리만의 놀음에 빠져 불장난을 치다가 큰불을 내고만 격입니다. 뼈저린 자성과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당의 미래는 없어요.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는 말들 이 순간 이후부터는 정말 사라져야 합니다.” 전화를 끊은 김 의원은 또 다른 정치인 F를 거론했다.
“대통령에게 ‘누님’이라 하며 온갖 호사 누린 정권의 황태자도 선거 망친 주범”
— 오적에서 6적이 되면 곤란한데요.
“그 사람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대통령에게 ‘누님’이라고 호칭한다니. 그렇게 이 정권의 황태자(皇太子)처럼 온갖 호사는 다 누려놓고 당에는 폐만 끼쳤잖아요.”
—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망한 것은 공천 문제가 시발점이었습니다. 왜 공천의 칼날을 그렇게 휘두른 겁니까.
“BH(청와대)의 눈치를 본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소위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괜히 눈치를 보고 그런 결과를 만든 거지요.”
— 공천파동의 주역 가운데 한 분을 둘러싸고는 총선 후 무슨 자리를 보장받은 거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심하게 갈등을 일으킨 게 사실입니다.
“무슨 자리를 보장받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가 죽창 든 부역자처럼 행동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 항간에는 그분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말 잘 듣는 TK의원 몇십 명만 있으면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을 팔아 그런 말을 흘렸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게 급한데 어떻게 퇴임 후를 생각하겠어요. 측근이라고 자처하는 누군가가 자기들이 한 행동을 합리화시키려 만들어낸 말이겠지요.”
— 공천관리위원들을 뽑은 것은 누굽니까.
“당(黨)이지요.”
— 그럼 당은 왜 공천관리위원회에 휘둘렸습니까?
“우리의 불행은 공천관리위원장에게 당 대표가 휘둘렸다는 겁니다. 당 대표가 꺾이고 공천관리위원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게 오늘날 이런 결과를 낳은 겁니다. 그 양반이 아주 대패(大敗)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거지요.”
“김무성 전 대표 압박하려 측근인 나와 김학용 의원 볼모 잡아”
— 김 의원 자신도 거의 막판에야 공천을 받았습니다.
“저와 김학용 의원이 김무성 전 대표의 측근이라고 ‘볼모’로 잡은 겁니다. ‘우리 공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네 측근인 김성태와 김학용이를 쳐버리겠다’는 협박이었지요. 김학용 의원과 저는 수도권(경기도 안성)과 서울에서 당선에 가장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는데도 그렇게 당했어요.”
— 마치 조폭 같았겠네요.
“저는 이번에 선거를 치르면서 새누리당이 민주 정당이길 포기했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독단적이었습니까,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 그렇다면 선거기간 중에 지원도 별로 받지 못했겠네요.
“지원은 무슨 지원입니까?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철저하게 각자도생(各自圖生)했어요. 혼자 살아남는 것 외에 중앙당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 이번 선거기간 중 새누리당이 보였던 가장 치사한 장면 하나를 꼽자면 뭘 들 수 있습니까.
“존영(尊影) 사건이죠.”
“존영 사건으로 100만 표 날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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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태 의원은 존영 사건으로 “100만 표 이상이 날아갔다”고 말했다. |
“치사한 ××들(이날 처음으로 김 의원의 입에서 나온 욕설이었다.) 존영이 뭡니까, 존영이. 대통령 사진이지. 그게 바로 새누리당이 민주주의 정당이 아니고 용비어천가가 난무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 그 일로 어느 정도 표가 날아갔다고 봅니까.
“저는 100만 표 이상이 날아갔다고 봐요. 지금 생각해도 낯뜨겁지 않습니까. 아니 당을 떠났다고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람에게 대통령 사진을 떼라고 요구하다니. 할 말을 잃을 정도예요.”
— 김무성 대표는 총선 다음날 사퇴 의사를 표했습니다.
“김 전 대표가 개표날 쓰러져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했어요. 저는 개표가 늦게 시작돼 과정을 볼 새도 없이 김학용 의원과 함께 김 전 대표를 보러 갔어요. 셋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숨만 쉬었지요.”
— 당을 이렇게까지 만든 이들이 밉지 않았습니까.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하겠습니까. 셋 다 참담한 표정으로 탄식만 했지요.”
“오세훈 전 시장은 종로에 나오지 말았어야”
— 새누리당은 참패했을 뿐 아니라 유력 대권 후보들까지 날아가는 손실을 봤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입니다.
“오 시장은 종로에 나오지 말았어야 해요. 아이들 무상급식 문제로 벌어진 찬반투표에서 져 서울시장에서 물러났잖아요. 그랬다면 더 험지(險地)를 택해 진인사대천명 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여론조사에 앞선 것처럼 보였지만 종로에 출마한 게 국민들 눈에는 ‘손쉽게 정치기반을 마련하려 한다’는 쪽으로 인식됐습니다. 물론 위로부터 무언(無言)의 지지가 있었지만요.”
—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김부겸 더민주당 후보에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진 것도 이변 가운데 하나입니다.
“김문수 전 지사는 경기도지사를 지냈으면 당연히 경기도 관내에서 새누리당이 약한 곳을 골라 출마했어야 합니다. 자신은 TK의 맹주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모르지만 쉬운 곳(대구)을 택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입니다. 그분은 지난번에도 그랬어요.”
— 언제 말입니까?
“지난번 서울 동작을 보궐선거 때 당에서 얼마나 김문수 지사에게 출마를 권유했습니까. 당연히 그때 출마해서 심판을 받았어야지요. 그런데 동작을을 극구 피하고 결국 대구로 내려가 택시 운전대를 잡았잖아요.”
“복당 원하면 다 받아들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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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던 2007년 12월 14일 BBK특검법안과 검사 탄핵안 상정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 |
“저는 총선에서 살아 돌아와 복당 신청을 하는 의원들은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하면 국민들은 ‘새누리당이 저렇게 참패를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하고 생각할 겁니다. 인위적인 선택을 해선 안 되지요.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호영-안상수-강길부-유승민 의원 전부.”
— 김무성 전 대표가 사퇴했으니 다음 관심은 차기 당권을 누가 잡느냐가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뛰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친박 쪽이 돼선 절대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나 용비어천가만 줄곧 외쳐댄 간신(奸臣)들은요.”
—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 후보 예비군 가운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물론 김무성 전 대표까지 내상(內傷)을 크게 입었습니다. 어떤 인물로 차기 대선에 대처해야 한다고 봅니까.
“지금은 차기 권력을 논할 때가 아닙니다. 뼈저린 자성과 분골쇄신, 다시 뛰겠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드리고 저희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게 급선무입니다. 땀흘린 농부가 힘써 일궈낸 과실(果實), 그런 것을 국민들에게 드리는 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무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나 무슨 유명인을 데려온다는 말부터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김성태 의원은 사우디아라비아 기능공 출신이다. 한양건설에 다닐 때 트레일러를 모는 기술자로 사우디에 가 세계 최대의 대학이라는 ‘이맘대학’ 건설에 참여했었다. 그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뒤 열사(熱砂)의 땅으로 가 목숨 걸고 번 돈을 송금했고 아내가 그걸 모아 집을 샀다고 한다. 기자와는 김 의원이 한국노총 사무총장으로 일할 때 만났다. 기자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지금의 서울 여의도 우체국 옆에 한국노총 건물을 재건축할 때였다.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과 몇몇 간부가 정부가 지원한 돈 가운데 일부를 빼먹었다. 그중엔 장기 도주한 사람도 있었다. 노총에서 핵심적인 사무총장 자리에 있던 그는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연루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시 정계에 진출했다. 당시 위원장이 이번에 ‘더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게 된 이용득(李龍得)씨다. 당시 이씨는 정동영 대통령 후보 쪽에 섰다. 그가 경남 쌍계사에서 정 후보와 하룻밤을 같이하며 ‘형님 동생’ 했다는 소문이 곧장 이명박 진영으로 들어갔다.
분노한 이명박 후보는 노동계의 힘을 얻기 위해 김성태 의원을 택했고 김 의원은 그 이후 줄곧 친이계로 분류됐다. 이번 20대 선거에서 그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당선 안정권에 분류됐음에도 불구하고 당으로부터 홀대를 받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 의원이 ‘여당 의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서울 강서을에서 3선 한데는 아내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아내는 핸드백에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몇 벌씩 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서을구에 복지관만 10곳이 넘기 때문에 그녀는 ‘의원 부인’이 아닌 ‘도우미 아줌마’처럼 일손을 도와왔다.
김 의원의 아내가 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에 눈물을 터뜨린 적이 있다. “엄마한테는 왜 이렇게 짬밥 냄새가 나느냐”고 한 것이다. 김 의원 부인은 이 말에 “나도 남들처럼 화장품 바르고 멋도 내보고 싶은데 내가 이러지 않으면 너희 아빠가 어떻게 되겠느냐. 너희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걸 몰라주느냐”고 했다. 기자는 4년 전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랬던 김 의원의 아내는 이번 선거기간에도 평소처럼 복지관을 돌며 힘없는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을 수발했고 그의 아들은 학업을 1년6개월이나 중단한 채 아버지를 도왔으며 직장에 다니는 딸도 연차휴가를 내고 주말마다 봉사에 나섰다. 김성태의 3선 뒤엔 이렇게 가족의 희생이 있었다.
강서을 지역구는 전통적으로 야세(野勢)가 강한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때 이곳에서 야당 후보에게 7.3%를 졌고,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은 박 시장에게 이곳에서 14%를 졌다. 그런 곳에서 기적처럼 생환해 온 비결을 묻자 김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8년 동안 의원을 하면서 단 한번도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끼리 해외여행 한번 다녀온 적도 없고요. 골목을 돌며 지역구민들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막걸리를 마시며 그분들의 애환과 이곳에 필요한 것이 뭔지를 듣는 일에만 집중했어요.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이 말을 하고 있을 즈음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본의 아니게 듣고 있자니 당선자 가운데 한 명이 분명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당선 사례(謝禮)를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상의차 김성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 같았다. 김 의원은 “하지 마, 하지 마”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할 텐데 우리 당의 상황이 웃는 모습을 보일 처지가 아니다. 유세차를 타고 다녀야 할 텐데 그것도 좋지 않은 효과를 낼 것 같다”고 했다. 반대편 수화기에서 “그렇다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인사하는 건 어떠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의원은 “그 정도는 괜찮을 거 같다”며 “대신 아침에는 다니지 말고 오후에 다니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김 의원과 통화한 이는 이번 선거에서 친박들에게 곤욕을 치른 당선자들을 모으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똑 부러진 음성의 여성이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새누리당은 당분간 심한 내홍(內訌)에 휩싸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