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민-최우석의 유쾌한 직설 ⑩ 權寧世 전 駐中대사 : 월간조선

‘외교(外交)의 절반은 의전(儀典)’이란 표현이 있다. 그렇다. 외교는 의전이다. 의전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한다. 어떻게 대접하고 대접받느냐는 양국의 관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이런 점에서 지난 9월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항일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례적으로 대우한 것은 의미가 있다. 박 대통령이 한중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을 특별 대접했다고 흥분할 일은 아니다.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전승절 행사에 참가한 것은 엄청난 외교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나라나 국제 외교의 기본은 자국의 이익(National Interest)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라 사이의 외교는 냉엄하다. 전승절 행사 전날인 2일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합의한 내용과 관련해 우리 입장에서 얻은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한중 정상회담 언론 보도문에는 ‘중국 측은 장래에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했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통일의 주체는 남북을 아우르는 ‘한민족’이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중국이 (한반도) 정세 긴장을 초래하는 그 어떤 행위에도 반대한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방점이 찍혔다고 해석하고 싶겠지만, 문면만으로 보면 남북한 모두에 보내는 메시지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해 왔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한국을 택했다. 한국과 중국은 동반자’라는 분위기가 흐른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각각 한중 정상에 오른 이후 총 여섯 차례 회담한 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과연 중국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도 대한민국을 상호 의존도가 높은 이웃으로 서로 존중하고 예우할 만한 관계로 여길까. 서울 여의도에서 권영세(權寧世) 전 주중(駐中) 대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한중 정상회담 성과 상당”

권영세 전 주중대사는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가 크다고 평가했다. 지난 9월 2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시기였던 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권 전 대사의 이야기다.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야당에서도 정상회담에 대해 ‘북핵 해결의 현실적인 방안 모색을 기대한다’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까. 여야에서 동시에 좋은 소리가 나오기 쉽지 않은 게 이런 점만 봐도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합의한 내용에 대해 우리 입장에서 얻은 것이 없다는 평가가 있던데요.

“정상회담 후 발표한 언론 보도문 10개 항 중 ‘중국이 (한반도) 정세 긴장을 초래하는 그 어떤 행위에도 반대한다’는 항목에 ‘북한의 도발’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을 지적한 것 같은데요. 저는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반대한다’는 취지를 분명히 밝혔다고 봅니다. 또 실제 언론 보도문에는 없었지만, 박 대통령이 귀국하는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9월 4일)에서 북의 도발 억제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중국측과) 아주 긴밀하게 소통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은 참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중국과 ‘통일 대화’를 활성화해 나가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겠지만 통일의 당사자는 어느 누구도 아닌 북한 아닌가요.

“전문가 사이에서 왜 통일 문제를 남북이 논의해야지 중국과 하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이런 주장은 지나치게 감성적인 민족주의적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 남북한만 합의하면 우리는 통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남북 관계는 좋은데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통일을 방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통일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미국이야 우리와 오랜 우방이고 우리의 통일을 지지해 왔기 때문에 통일을 막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한중관계가 이렇게 가까워진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입니다. 중국은 북한과 혈맹관계에 있다시피 한 나라 아닙니까.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남북통일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받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중국과 통일논의를 시작했는데 ‘통일의 당사자는 북한인데 왜 중국과 논의하느냐’는 지적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전용기 내 기자간담회 발언이 성급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북한을 의식해 비밀에 부쳤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저는 공개하기를 잘했다고 봅니다. 북한에 본인들의 전통 우방인 중국이 남한과 통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면 굉장한 압박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는 압박은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불량국가로 남아 있으니까 중국도 고개를 돌리려 한다. 그러니 개혁 및 개방의 길로 나와라’ 하는 압박이지요.”

—야당 쪽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을 너무 성급히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께서 내 임기 5년 내에 통일에 대해 구체적인 성과를 내려 한다는 비판인데요. 이는 틀린 지적이라고 봅니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동안 남북교류의 기초를 튼튼히 하겠다’는 것이지, ‘임기 내 무조건 남북 정상회담을 갖겠다’는 등의 판단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저의 견해입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너무 큰 목표를 세워 놓고 자신의 임기 5년 내에 다 만들어 내겠다고 하다 보면 말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숨을 짧게 가져가면 안 됩니다. 길게 봐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박 대통령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은 남북통일을 원할까요. 중국 학자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일’이라는 단어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중국이 진정 남북통일을 원하는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분이 많습니다. 양국이 통일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만큼 중국도 (남북 통일에 대해)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으로 믿습니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 일본에 욕 비슷한 말 한 적도”

권 전 주중대사는 오는 10월 한미 정상회담 때 한미동맹을 재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14년 4월 25일 박근혜 대통령과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지난 2014년 7월 3일 시 주석은 이같이 이야기했다.

“중국에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는 말이 있고 한국에도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중·한 양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이고 좋은 친구다. 중국은 중·한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시 주석의 이야기처럼 중국은 실제 대한민국을 상호 의존도가 높은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실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우선 잘 알려졌듯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사이는 좋습니다. 두 분이 각각 한중 정상에 오른 이후 총 여섯 번의 정상회담을 가진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지요. 중국 내 일반국민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내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좋은 편입니다.”

—현재 분위기가 좋다고 하셨는데, 과거에는 얼마나 안 좋았습니까.

“제가 대사관에서 일하면서 중국 당국자에게 들었는데 MB(이명박) 정부 때만 하더라도 우리 외교부와 중국 외교부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국제조사단이 천안함 피격사건은 북한 어뢰에 의해 일어났다는 결론을 발표했음에도 중국은 북한 입장을 들어 줬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들 때문에 굉장히 불편했었던 것 같더군요.”

실제 2008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규정했던 중국은 천안함 침몰 이후 내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중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2010년 6월 중순 한미가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이후 서해(西海)에서 대(對)잠수함 작전을 포함한 합동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중국은 “우리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거나 그 틈을 이용해 도적질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2013년 5월부터 주중 대사로 활동했는데 취임 직후 한중 관계는 어땠습니까.

“아주 좋았습니다.”

—지난 2014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바다에서 발생한 불법 조업 중국 선장 총격 사망 사고 때도 별일 없었나요. 당시 중국 외교부에서 한반도 업무를 담당하는 류젠차오(劉建超) 부장 조리가 항의했다고 하던데요.

“원래 이런 일이 발생하면 소위 초치(招致)라고, 상대방 대사를 불러서 혼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저를 긴급약견(緊急約見)했습니다. ‘약견’이 중국 외교부가 중국 주재 타국 외교관을 외교부로 부르거나 별도의 장소에서 만나 항의 등을 표시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초치보다는 강도가 낮습니다. 이때 한중관계가 전 정부 때보다는 좋은 트랙 위에 올라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우리 해경이 공개한 66초짜리 동영상을 보면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인 선장 등은 검문검색을 위해 올라탔던 우리 해경 특수기동대 대원의 머리를 갈고리와 손전등, 깨진 플라스틱 조각 등으로 가격했다. 결국 해경은 자위권 차원에서 공포탄 3발과 실탄 7발을 발사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인 선장이 사망했다.

—표현만 부드럽게 한 것 아닐까요.

“중국 외교의 특징이 굉장히 거칠고 솔직합니다. 그러니까 표현만 부드럽게 할 수 없지요.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양제츠(楊潔篪)가 중국 외교부장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가 2010년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 경주를 방문했는데 회담 중에 일본 측과 마찰이 좀 있었나 봐요. 그때 양제츠가 매우 거칠게 이야기했다고 하더군요. 원래 외교하는 사람은 외교 용어로 항의하는데 양제츠는 ‘욕’에 가까운 말을 퍼부은 것이죠.”

—2013년 중국이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면서 우리나라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을 때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당시에는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양국 간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중국이 서해에도 방공식별구역을 추가로 선포할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스러운 보도가 많았지만, 지금까지는 사실이 아닌 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잘 해결된 것이죠.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불편했던 한중관계가 박근혜 정부 와서 좋아진 것은 아무래도 두 지도자 간 개인적인 친분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그렇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인연은 2005년 7월에 시작됐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했던 시 주석을 흔쾌히 만났다. 저장(浙江)성 당서기였던 시 주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새마을운동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고, 대화는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박 대통령도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표명하는 시 주석에게 호감을 가졌다. 이후 둘은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 오고 있다.

—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한 시각이 바뀐 시점이 정확히 언제입니까. 박 대통령 취임 직후입니까.

“아무래도 2013년 6월 열린 첫 번째 정상회담 이후 바뀐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중국에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거든요. 제가 중국 대사로 있을 때 웨이보(중국 SNS) 글의 흐름을 보고 여론을 파악했는데 과거에는 정말 우리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에 등재한 강릉 단오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웨이보에 ‘단오가 어째서 너희 것이냐’ ‘단오가 너희 유산이면 공자도 너희 조상이라고 해라’는 글이 넘쳐났죠. 그런데 첫 번째 정상회담 이후 기류가 변하더군요. 정상회담 직후인 2013년 7월 6일 아시아나항공 보잉 777-200 여객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 앞 방파제에 충돌하는 사고를 내 중국인 10대 3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했지 않습니까. 그때 놀라서 웨이보 기류를 파악해 봤는데 과거보다 비아냥거림이 굉장히 줄었더라고요. 선장 사망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잘 지낼 때는 문제 없지만 국가란 언제든 이해가 충돌할 수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힘든 결정을 할 경우 중국이 우리의 속마음을 헤아려 줄까요.

“물론 외교라는 것이 어떠한 사안 하나로 인해 사이가 확 나빠지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한중이 좋은 분위기를 이어 갈 것입니다. 이럴 때 두 나라가 더욱 강한 신뢰를 쌓아 나가야겠지요. 국가 간 관계도 친구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친교(親交)가 얕으면 작은 갈등에도 금방 깨지는 반면, 깊으면 대판 싸워도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행동하지 않습니까. 지금 좋은 분위기를 발판으로 두 나라도 견해차가 생겼을 때 제대로 관리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국익에 따라 판단”

권 전 주중대사는 “중국 고위층은 김정은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씀인데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빅2인 미국·중국과 경제·안보적으로 제일 많이 얽혀 있는 나라입니다. 미·중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이슈들이 등장할 때 어떤 선택을 해 나가느냐가 우리의 명운을 가를 수밖에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깊은 친교(親交)를 쌓을 수 있겠습니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국익에 따라 판단을 하지 무조건 미국 편에, 무조건 중국 편에 서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중국도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중국이 굴기(崛起)해 나가는 데 있어서 대한민국은 굉장히 중요한 나라입니다. 중국이 조그마한 나라라고 ‘대한민국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아니냐’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5대 교역국 중 하나입니다.”

—미국 정계와 전문가 그룹, 언론 등에선 한국이 점차 미·일 동맹보다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傾斜論)’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국 경사론이 미국 내 다수의 견해냐, 아니면 일부의 목소리냐입니다. 제가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린(2015년 9월 4일 자)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 조너선 폴락(Jonathan D. Pollack)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폴락 연구원이 한미관계에 대해 ‘성숙한(mature) 관계’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성숙한 관계이긴 하지만 미국이 오해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때문에 한미동맹을 재강화해서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해 가면서 중국의 손을 들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한다’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의 10월 방미가 굉장히 중요하지요.”

—한창 시끄럽다가 최근 잠잠해진 외교 이슈가 미국의 고(高)고도 미사일 방어망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국 배치 문제입니다. 친미(親美)파는 “사드가 미국보다 우리 국익에 도움되니 반드시 들여와야 한다”고 하지만 친중(親中)파는 “중국이 결사반대하는데 안 될 일”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무엇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고 결정해야겠지요. 다만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는 아직 공식적으로 논의를 시작한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 한반도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이유를 물으면, 미국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한국에서 배치를 주장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중국의 주장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본인들이 사드배치를 원하지 않으면 북한이 한국을 위협하지 못하게 확실하게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북(北)의 핵미사일에 직면해 있는 우리 입장에서 사드가 방어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들여와야 하겠지요. 이럴 경우에는 중국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면 안 되죠. 그런데 아직 사드배치는 공론화한 사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미·중 양국의 국익이 대립할 경우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중의 관계는 과거 냉전 당시의 대립(Confrontation)이라기보다는 경쟁(Competition)관계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밀접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글로벌 이슈에서 협력하는 사이입니다. 물론 중국의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경제적·안보적 갈등이 있을 것이고 우리도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올 것입니다. 두 나라 모두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경제력 세계 10위권의 중견국인 우리는 국익에 따라 결정을 내리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에 대해 그게 미국이든 중국이든 당당하게 설명하면 됩니다.”

—우리가 미·중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우리는 미·중관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때 두 나라 사이가 개선되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중재자, 균형자가 되기에 국가 규모가 작긴 하지만 충분히 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 문제를 비롯한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이 미·중관계를 어떻게 중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 북한 정권 멸망 후 영토 문제를 놓고 서로 대립하는 입장을 가질 수 있는데, 한국이 미·중 간의 견해차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른쪽 끝자리에서 열병식 지켜본 최룡해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북한 최룡해가 참석했다. /cctv 유튜브 캡처

박 대통령은 시 주석 오른편 푸틴 대통령 다음 자리에 서서 전승 행사와 열병식을 지켜봤다. 김정은 대신 참석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첫째 줄 오른쪽 끝자리였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중국 열병식 당시 김일성은 천안문 성루에 올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바로 옆에서 열병식을 봤다. 북·중은 60년 넘게 서로를 혈맹(血盟)으로 불러 온 사이이고, 한중은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 지 23년밖에 안 됐다. 단순히 이 장면만 보면 “북의 최룡해가 냉대받았다. 중국이 우리 편으로 돌아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과연 중국이 북한보다 한국을 더 중요하게 인식할까.

이에 대해 권 전 대사는 “중국의 국익에 북한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현 북·중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 북·중관계가 북한체제 수립 이후 최악이라고 하셨는데요.

“과거에도 북·중관계가 계속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김일성이 중국이나 소련 사이에서 나름 줄타기 외교를 하며 애를 태웠죠. 그때 중국이 굉장히 기분나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시 굴곡보다 더 심한 듯 보입니다.”

—북·중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국가 간 관계가 원만하려면 지도자 사이의 관계부터 좋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중국의 고위 지도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김정은에 대해 전혀 모르겠다’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당연히 관계가 좋을 수 없지요. 제가 주중 대사로 있을 때도 북한과 중국이 의미 있는 교류를 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국 입장에서 김정은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이 어린 사람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겠네요.

“경륜이 많다고 생각하진 않죠. 중국의 지도자들은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하는데 김정은은 갑자기 등장한 인물 아닙니까. 북한에서는 나이 어린 김정은을 천재라고 선전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중국 입장에서는 김정은을 깊은 얘기를 할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중국 고위 지도층이 김정은을 잘 알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김정은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이 2013년 3월 5일로 예정된 국가주석 취임을 기다리고 있던 그해 2월 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김정은이 본인들과 정상적인 교류나 대화를 할 상대가 맞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강한 게 현 중국 분위기입니다.”

—‘중국통’이었던 장성택 처형도 북·중관계에 악영향을 미쳤지요.

“장성택 숙청 발표를 우리 국정원에서 처음으로 했습니다. 장성택 숙청에 대해 중국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겠지만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장성택 숙청 이후 중국 고위 간부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성택을 처형한 북한 지도자와 체제를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북·중관계를 이어 나가야 할지 고민스럽다’고요.”

—전문가들은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김정은 정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북·중관계가 최악인 만큼 중국에 ‘대북압박’ 등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북한이 더욱 무모한 태도로 나간다면 압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석유를 끊는다든지 하는 강력한 대북압박도 가능할까요.

“숨을 조금 길게 가져야 합니다. 중국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동북아의 안보 밸런스가 무너지고, 북한 난민이 대거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몰릴 것입니다. 북한의 핵은 테러리스트들한테 흘러들어 갈 것이고요.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속 시원한 결정을 해 주길 원하지만…. 희망적인 사실은 북한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黨, 청와대에 할 말은 해야”

권 전 주중대사는 2012년 10월 12일 박근혜 선대위 상황실장이었다.

권 전 대사는 내년 총선 출마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 그는 새누리당 영등포을 당협위원장이다. 권 전 대사는 영등포을에서 2002년부터 내리 3선을 했지만 2012년 총선 때 새정치연합 신경민(辛京珉) 의원에게 패하고 국회를 떠난 바 있다.

—19대 총선에서 왜 패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좀 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께서 만족하실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원인입니다. 원외에 있으면서 느낀 게 많습니다. 이번에는 잘해 볼 생각입니다.”

—20대 총선에서도 신경민 의원과 맞붙을 텐데요.

“이번 선거는 신경민 의원과의 대결이 아니라, 영등포 주민들이 저 권영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이 맞느냐, 아니냐에 대한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구를 돌아보니까 (분위기가) 괜찮더라고요. 요즘 중국이 이슈니까, 중국 가서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궁금해하시고요.(웃음)”

—20대 총선에서 승리하면 수도권 4선이 되네요.

“정치권에서 수도권 4선은 희귀종이지요. 수도권의 경우는 전국의 축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서울은요. 균형 잡힌 생각을 할 수 있지요. 만약 국회에 재입성한다면 당에서 큰일을 나름 해 보고 싶습니다.”

—큰일이라면 당대표, 원내대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김칫국부터 마실 수 없네요.”

—오픈프라이머리 이야기도 나오는데 공천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열심히 해야지요. 다만 오픈프라이머리의 경우 현역의원 혹은 당협위원장에게 유리합니다.”

—여야 합의로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십니까.

“궁극적으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은 옳다고 보는데, 아무래도 여야가 동시에 같은 날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20대 총선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과거 인터뷰에서 “여당의 경우 당·청관계가 매끄럽지 못할 경우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총선은 지금 전망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7개월 남았지만, 그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지금 당·청관계는 전반적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당이 조금 더 적극적이니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눈치 안 보고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죠. 민심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당이 청와대, 정부보다 강점이 있지 않습니까. 지역구를 직접 돌아다니니까요. 당이 현장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전달해 줘야 합니다.”

—청와대는 당이 목소릴 높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말씀 잘 들어 주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