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의 詩] 정연홍 : 월간조선

변죽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그릇이나 세간 등의 가장자리’를 말한다. 정지용 시인은 자신의 작품 ‘바다2’에서 변죽이라는 단어를 맛깔스럽게 사용했다.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면 나는 변죽의 삶, 늦깎이의 삶을 살고 있다.

시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또한 그 어떤 단어나 상상력도 변주해 낼 수 있다. 시가 추구하는 정신은 진실과 사랑이다. 시의 기원은 노래이며 현대인에게는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다. 시는 예술의 가장 높은 반열에 해당한다.

첫 시집을 2014년 초 발간했다. 시인에게 있어 첫 시집은 살아온 방향을 엿볼 수 있으므로 의미가 있다. 살아온 환경은 자아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목수·미장이·농부 세 가지 일을 하셨다. 일이 있을 땐 막노동을, 없을 땐 농사를 지으셨다. 형편이 어려울 땐 머슴살이도 하셨다.

시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이다. 나는 반항아였다.

아버지가 넘어지셨다
경지정리가 끝나지 않은 돌밭
숨겨진 돌부리의 이빨에 허리 잘린 보습날
검붉은 녹물이 수두두 떨어진다
머리를 처박고 쓰러져 버린 경운기
아버지의 어깨에
봄바람이 머물러 있다
돌기를 멈추어 버린 심장
플라이휠이 마지막 회전을 꿈꾼
흔적이 논바닥에 각인되어 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기계소를
일으키려 애쓰시지만 숨을 놓아 버린
문명의 가축은 깨어날 줄 모른다
손짓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착한 소를 닮아 있다

-‘쟁기질은 멈추지 않는다’ 전문.

시집 《세상을 박음질하다》.

공고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거들 때였다.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동화를 투고했다. 동화가 당선됐다. 19세 때였다. 글 쓰는 재주는 있었다. 하지만 글은 재주만으로 되지 않았다. 사상과 철학과 경험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군 제대 후 울산에 일자리를 잡았다. 올해로 25년째 같은 공장에 근무하고 있다. 90년대에 공장 안은 늘 최루탄 가스로 자욱했다. 1987년 노동자 투쟁 후 노동자의 목소리는 커졌고, 사회를 향한 비판의 강도도 커졌다. 1991년 공장 안에는 복면을 한 동료들이 회사의 정문을 점거하고 돌멩이를 회사 밖 전경을 향해 던졌다. 노조위원장이 구속되고 많은 동료가 해고되었다. 나도 복면을 하고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나는 늘 비겁했다.

뱃가죽처럼 홀쭉하다
낫을 품고 있구나
만월이 되어 웃을 때까지
얼마나 오래
외로운 저 철탑에 걸려 있어야 하나

-‘비정규직·초승달’ 전문.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면 나는 변죽의 삶, 늦깎이의 삶을 살고 있다.

서른셋에 야간대에 진학했다. 늘 배움에 목말랐다.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동생뻘 되는 학우들과 공부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는 다시 동료들을 뒤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2005년도에는 문예지를 통해 시로 등단해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렸다. 공장은 변해 있었다. 전투적이고 열정적이던 운동판은 매뉴얼적이고 시스템화돼 있었다.

대공장 노동자의 삶의 질도 많이 높아졌다. 사회적 파급력도 대단했고 힘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노동자는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또한 비(非)정규직이라는 굴레는 개인의 삶을 철저히 옭아매고 있다. 많은 노동자가 온몸으로 저항했고, 더 버티지 못하고 목숨까지 던지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현실은 냉정하고 차갑다.

철탑 위 집은 위태롭다
까치 두 마리 비닐 천막으로 집을 지었다
‌철기둥 위로 일만 오천 볼트 특고압이 윙윙거리고
땅에서는 날아오를 수 없어
철탑에 집을 지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다 같은 새인데
‌하늘 한 번 날지 못하는 새보다 못한 사람인데
하늘을 날아 올라 새가 되어야만
새가 있다는 것을 안다
부지런히 집을 짓는 새들
희망이 부활할 때까지 알을 품는 새들

-‘철탑에 집을 지은 새’ 부분.

아버지는 가셨다. 평생 노동자로 사시다가 간암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는 시인에게 있어 평생 치열하게 다뤄야 할 주제이다. 현실을 단절시키는 죽음은 두려운 존재이다. 현실이 힘든 사람은 스스로 현실을 단절시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남보다 오래 현실을 지속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죽음은 더 두려운 존재이다.

다랭이 마을에 밥무덤이 있다

손바닥만한 논뙈기, 식구들 배불리
먹게 해달라고 해마다
밥무덤에 하얀 쌀밥을 묻는다
무덤이 넙죽 밥을 받아 먹는다

나도 나에게 매일 밥을 올린다
솥무덤에서 지은 밥
숟가락무덤으로 퍼서
나에게 먹인다
내가 무덤이다
무덤이 밥을 먹고 자란다

구멍 속으로 들어간 양식들
다시 세상에 뿌려진다
날 닮은 인간, 얄팍한 지식
내가 싼 똥
다 무덤에서 나왔다

오늘도 집무덤으로 퇴근한다

-‘밥무덤’ 전문.

고향 하동에서 손자들과 함께한 생전의 아버지.

지금 살고 있는 시간 자체가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사람의 몸에는 몇억 광년 떨어진 별의 물질과 같은 것이 있다. 빅뱅이 이뤄진 47억 년 전 우주 폭발로 지구가 만들어졌고, 미생물과 식물에서 시작된 생명체는 물고기와 포유류를 거쳐 인간이 되었다. 식물과 육식동물도 그 뿌리가 같다. 같은 유전자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의 뿌리가 같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우주의 지배자가 아니라 아주 작은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우주 속의 작은 소멸과 생성이다.

인간의 기원은 물고기로 추정한다. 물고기의 기원은 미생물이고, 미생물의 기원은 물이다. 인간은 문명을 발달시켰고 기계를 만들어 지구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고작 100여 년 전의 일이다. 인간은 그동안 수십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지구를 망쳐놓았다. 화석연료는 바닥났고 대체연료가 없으면 도시의 문명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아마존 밀림은 반 이상이 없어졌고, 양쯔강 싼샤댐은 지구의 자전까지 변화를 주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되어 곳곳에서 이상징후가 감지되었다. 인간은 불나방처럼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충돌과 폭발과 질병으로 많은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신의 선택을 받겠다고
우주 속으로 모르스 부호를 송출한다
사람들이 뒤적거리는 저것은
디지털 성경

이제 세상은 사이비 교인들의 것
언제 어디서건 신과 접선되어
지금 여기서 가공할 파워로
내가 테러! 당할 수 있다

조심하라,
워키토키를 품속에 숨기고 있는 자
모두 한통속이다

지구는 광신도의 세상이다

-‘디지털성경’ 부분.

우주적 상상력을 시에 담고 싶어 공부하고 자료를 모았다. 우주의 탄생과 기원, 지구의 탄생과 미래에 대해 지식을 쌓았다. 지구별이 속한 태양계 같은 은하가 우주에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한천공.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속에는 지금도 별이 소멸과 탄생을 거듭하고 있다. 인간의 죽음은 소중한 것이지만 우주 속에서 보면 탄생과 소멸의 되풀이일 뿐이다. 오늘 내가 본 별빛이 이미 몇억 년 전에 죽은 별빛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빛의 속도로 수억 년 달려도 갈 수 없는 곳에
사람을 닮지 않은 외계인이 살고 있을까
집채만 한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은하계 그 어디
어제 죽은 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
내 몸의 일부는 떨어지는 별의 잔해물,
육체의 입자는 별과 함께 생을 시작했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은 숨겨진
유전자의 본성
언젠가 문드러질 살은
다시 우주로 날아갈 것이다

-‘별의 소멸’ 부분.

늘 긍정적 삶을 살고 있는 시각장애우 친구 손병걸 시인.

시각장애우 손병걸 시인을 알게 된 건 10년 전이다. 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1급 시각장애인. 그는 늘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때 나는 사는 것이 참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멀쩡한 사지(四肢)를 가진 내가 조금 힘들다고 현실을 자책하고 있었다. 인생의 주체는 자신이며, 개척자도 자신이다. 현실과 당당하게 맞서지 않는다면 생의 주인이 될 수 없다. 현실은 누구에게나 만만하지 않다. 시 ‘촉지도’는 그렇게 쓰였다. 점자 안내판 촉지도는 장애우의 상징이다.

어둠에게 처음 갇혔을 때
혼자였다 예고 없이
세상은 나를 빼앗아 가버렸다
쇠창살보다 두꺼운 검은 적막은
나를 절망케 했다
햇빛을 잃어버린 날들은
춥고 무서웠다
죽음보다 깊은 무력감이
나를 찔렀다
세상에는
점(點)으로 된 길이 있다
손가락 끝으로 보는 촉각의 길

-‘촉지도2’ 부분.

문득 뒤돌아보니, 나는 이 시대의 정점(頂點)에 살고 있다. 일제 치하와 6·25를 겪었던 불행했던 아버지 세대. 그분들의 노력으로 이뤄낸 아직은 불안정한 현실. 그 혜택을 받음과 동시에 군부 독재 시절을 고스란히 체험한 내 또래 세대.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속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세대. 요즘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변죽의 삶이자 영원한 늦깎이의 삶이다.⊙

詩人이 만난 詩人

“나는 합리적 左派”

⊙ ‌돈과 편안함보다 작품을 위해 生産職으로 다시 자리 옮겨
⊙ “나의 작품을 노동詩로 분류하는 것은 詩를 잘못 이해하는 것”
⊙ “시인은 詩로써 말하는 사람”

“사무직을 내려놓고 다시 현장 생산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정연홍 시인은 세계 굴지의 자동차 기업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다. 4만6000여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다. 대의원과 상근 집행부를 역임한 노조(勞組)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최근 결정한 것은 ‘현장 생산직’으로의 전직(轉職)이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승진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글 쓰기에는 현장 쪽이 더 나을 듯”해서 힘들게 결정했다고 한다.

노동자 정연홍의 장래를 승진이 아니라 시(詩)에 걸었다는 말인데, 수천만 원의 연봉보다 수십만 원도 안 되는 원고료의 가치를 깨달은 시인다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정연홍 시인은 그렇게 본인의 제1 정체성을 시에서 찾았고, 시와 함께 시의 미래를 향해 간단없이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막일과 농사지으며 자식 교육에 힘쓴 아버지

정연홍 시인.

정연홍 시인은 통영에서 태어나 하동에서 자라고 울산에서 직장 생활하며 부산 기장에서 살고 있다. 울산과 기장에서의 생활은 그가 스스로 선택했지만, 통영과 하동은 그렇지 않다. 지리산 자락 하동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은 목수나 미장공 같은 막노동을 해서라도 생계를 잇고자 통영으로 이사를 했고, 거기서 정연홍 시인을 낳았다.

부친의 통영 생활은 힘든 노동 속에서도 호시절이었다고 한다. 제법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작스런 집안의 큰 우환(憂患)으로 끝내 통영 생활을 접고 하동으로 다시 옮겨야 했다. 정연홍 시인은 통영을 동경했지만 현실은 지리산 밑 오지(奧地)에서의 생활이었다. 이것이 형제 4남매 가운데 정연홍 시인만 통영에서 태어난 짧은 내력이다.

“저는 아버지께 야단맞은 기억이 없습니다. 농번기 그 바쁠 때에도 일을 거의 안 시키셨습니다.”

이 땅의 많은 부모가 그랬듯, 그의 부친도 ‘당신이 못 한 공부, 자식들이 잘 해주길 바라셨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어느 날 막걸리를 불쾌하게 드신 아버지가 망치와 톱 같은 막일 장비를 자전거에 싣고 집에 들어오실 때, 그 자전거 바퀴살 소리에서 삶의 무게를 느꼈다고. 지금도 가끔 그 바퀴살 소리는 환청처럼 들린다고.

하동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청년 정연홍은 진주기계공고(工高)로 진학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려고 했지만 작은형이 말렸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위로 두 형이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무리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산업 역군 양성을 위해 설립한 진주기계공고 역시 명문이긴 했지만 청년 정연홍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고 취미도 없는 공부를 하려니 계속 겉돌기만 했다.

불일치와 방황

그런데 어린 정연홍은 초등학교 도서관의 책이란 책은 거의 다 읽을 정도의 문사(文士)적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때 읽었던 《쿠오바디스》《노인과 바다》《갈매기의 꿈》과 같은 작품의 몇몇 대목을 지금도 기억해 낸다. 글도 제법 잘 써서 백일장에 나가면 상을 타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아예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졌다고 한다.

정연홍의 청년기는 적성에 맞지 않는 학업을 해야 하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저항하고 방황한 시기였다. 고교 졸업 후 진주 상평공단 중소기업에서 1년가량 근무했다. 군대(수방사)에 입대하기 직전인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동화를 응모했다.

시는 떨어졌지만 동화는 당선됐다. 생전 처음으로 쓴 작품이 신춘문예 당선작이 된 것이다. 산업화로 인해 병들어가는 농촌을 밤마다 도깨비가 나타나 청소한다는 내용의 ‘꼬마 도깨비와 반딧불’이란 작품이었다. 집필 시기로 따지고 보면 환경문학이나 생태주의 문학의 선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심사위원 정진채 선생도 당시 심사평에서 소재와 전개에 특색이 있어 뽑았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때 도서관 책을 열심히 읽은 것, 진주 ‘종로서점’에서 몇 시간씩 서서 책을 읽은 것, 《한국일보》에 연재되던 김훈 기자의 문학기행 기사를 모두 찾아 읽은 것 외엔 특별한 문학적 사숙(私淑)도 없이 약관 스무 살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다. 선배 문인(文人)의 지도를 받은 것도 아니고, 문학적 교류도 없는 처지에 당선되었으니 그야말로 타고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이듬해에 곧바로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동화작가로서 당선 초기에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못했으나, 군 제대 후부터 2005년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까지는 꾸준히 동화 작품을 썼고 발표도 했다.

정연홍의 문학 여정(旅程)에서 특이한 점은 《부산일보》 당선으로부터 2005년 《시와시학》 신춘문예 당선까지 17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사는 데 바빴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식 키우는 삶, 그 속에서 시만 생각하고 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시집을 사 보고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대학원까지 마치는 동안 정연홍의 시 곁에는 언제나 생계와 생업이라는 떨칠 수 없는 짐이 있었다.

무작정 울산행, 그리고 현대차 입사

시인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현대자동차 노조 대의원 활동을 했고, 2012년부터 2년 동안은 노조 전임자(교육부장)로 활동했다. 그는 “아직도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부족하고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군(軍)을 제대한 뒤 1991년, 그래도 타 지역보다는 취업 기회가 많았던 울산으로 갔다. 외삼촌이 살고 있었으니 완전 무연고(無緣故) 도시는 아니었다.

다행히 바로 그해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처음 1년 정도는 특장차 조립 라인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했으나 사내 사무직 공모에 응시해 곧바로 사무직으로 전직했다. 사내 신문 편집 일이었는데 신춘문예 당선자라는 이력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5년가량 그 일을 한 뒤 장비 관리나 수리 등 일반 업무를 17년 정도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생산직으로 전직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다.

생산 라인에는 1년밖에 안 있었으나 언제나 노동자 편에서 생각하고 노동자답게 행동하려 했다. 파업에도 참여했고, 마르크스의 이론도 공부했고, 서울에서 열린 전국 규모의 노동자 대회에도 나갔다.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대의원 활동을 했고, 2012년부터 2년 동안은 노조 전임자(교육부장)로 활동했다. 지금은 평조합원으로서 현업에 복귀해 자재 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보는 이의 처지에 따라 현대차 노조를 ‘귀족노조’로 치부하기도 하고, 한국 노동운동의 ‘마지막 보루’라 부르기도 한다.

현대차 노조가 한번 파업할 때마다 인근 소상인들은 막대한 영업 손실을 입고, 하청업체들도 업무 중단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하청업체 근로자들도 임금에 손실을 입는다. 지역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며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만 하면 먹고살 만한 노조원들이 파업까지 불사하며 임금 인상과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정연홍 시인은 “‘귀족노조’란 말은 오해다. 현대차 노조가 과감하게 싸워오지 않았다면 노동자의 처우는 이만큼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한국 노동자들은 노동 강도에 비해 OECD 평균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처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현대차 노조가 한국 노동자 전체를 위해 선도투쟁을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파업을 하면 무노동 무임금 적용을 받습니다. 노사 협상이 잘 진행돼 성과에 맞는 보상이 이뤄지면 파업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피해를 감수하고 파업을 결행하는 것은 현대차 노조라도 나서야 하기 때문이지요.”

올해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임금인상률을 낮추거나 파업을 자제하는 등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현대차 노조는 ‘무대뽀 전투주의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물론 모자란 점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노조 활동의 맏형 격으로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지역적인 부분도 필요합니다.”

전투성만 아니라 감성 있는 詩도 써야

그는 박노해의 시를 읽었고 거기서 상당히 강렬한 전투성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도 애독하고 있는 백무산의 시에서도 전투성과 혁명성 같은 걸 느꼈다. 실제로 이들 두 시인은 사회 혁명을 시도한 사람들이었고, 그 역시 이들의 전투성·혁명성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고 세상도 많이 변했으며 새로운 방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연홍 시인은 감성 있는 시를 쓸 수 있도록 고민을 더 깊이 한다고 했다.

“백무산 시인은 《진보신문》을 발간하는 등 여전히 활동도 하고 작품을 계속 쓰고 있는데, 박노해 시인은 이른바 진보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란 평을 들을 정도로 많은 부침을 겪었습니다.”

대표적인 노동자 시인인 이들에 대해 정연홍 시인은 “그분들의 현재 모습 또한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한번 전투적이었다고 해서 평생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변화’는 자유이고 존중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인은 스스로를 ‘합리적 좌파’로 칭했다. 그가 좌파인 점은 노조 활동을 통해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명확하고 단련된 의지를 갖고 있다는 뜻에서 그렇겠지만, 그가 합리적인 점은 그것을 단체나 조직의 압력으로 구속하지 않고 자유의 관점에서 폭넓게 수용할 줄 안다는 데서 오는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시 세계를 노동시의 범주에 넣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부당함을 강하게 주창한다. 시를 하나의 특정한 틀에 가두어놓고 보려는 태도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이기도 하고, 그간 꾸준히 천착해 온 그의 다양한 관심을 ‘거두절미’해 버리는 데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지방詩人, 한국시의 또 다른 변방

서울 지하철 한 역사에 적혀 있는 시인의 시 ‘오어사(吾魚寺)’.

공고 졸업, 군 제대 그리고 취업. 그는 삶을 좇은 쉼없는 와중에도 학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춘해대학 전산과를 거쳐 경희사이버대 문창과에서 공부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왕복 약 200km를 왕래하며 동아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쳤다. 그 사이 《시와시학》을 통해 시인 문패도 달았다.

하지만 그는 울산에 사는 ‘지방시인’이었고, 그와 그의 작품을 향한 세간의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시를 대하는 자세와 열정만큼은 여느 시인을 능가하면 했지 뒤지지 않지만, 문단과 시단을 기웃거릴 수 없는 그에게 세상은 결코 많은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변방은 물리적인 게 아니라 확실히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이다.

적어도 시에 대해서는 과묵할 정도로 말씀이 없는 동아대 강은교 선생은, 바로 그 무게감으로 정연홍 시인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2002년부터 만난 ‘시산맥’의 문정영 시인과 ‘시산맥’ 영남지회 회원들과의 십수 년에 걸친 깊이 있는 대화, 울산의 ‘겨울숲’ 동인들과의 소통, 경희사이버대에서 만난 ‘청연회’ 회원들과의 교류, 경주대 문창과 손진은 선생과의 조우 등이 없었다면 시인 정연홍의 외로움과 고독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변방의 ‘지방시인’에게도 시적 도반(道伴)은 분명히 있었다. 또한 이들이야말로 오늘의 한국시를 저변에서부터 가꾸고 키우는 소중한 농부일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와 여행 통해 시적 靈感 얻어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다큐멘터리를 즐겨 시청한다. 생명과 우주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며 시적 소재가 될 만한 것과 만난다. ‘고비에서 새끼를 낳다’ ‘별의 소멸’ 같은 작품이 그 사례다. 간접 체험도 좋은 시적 소재가 된다는 것을 그 역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또 여건이 될 때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국내외를 여행한다. 특히, 늘 글 쓰고 공부하는 것밖에 모르는 남편을 많이 답답해했을 아내와의 여행은 가정생활에서나 문학에서나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좋은 시집 내는 것’을 그의 시적 목표라고 말했다. 그것을 위해 지금도 철학 서적을 뒤적이고, 보들레르와 랭보와 하이네를 읽는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좋은 시집 두 권쯤 내는 게 목표’인 정연홍 시인에게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시인은 시로써 말하는 사람입니다.”⊙

〈글 김재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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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詩

정연홍

변죽의 삶, 늦깎이의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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