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은 한국야구 111년史에 최고 타자
⊙ 최악의 그라운드 참사는 1990년 8월 26일 잠실구장 난동… 폭력관중 첫 실형
⊙ 빈볼은 야구라는 ‘가학적 운동’이 지닌 필요악의 촉수
洪崙杓
⊙ 63세. 동국대 철학과 졸업. 일본 게이오대 방문연구원 역임.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기자·체육부장, 인터넷 스포츠 신문 ‘OSSEN’ 대표 역임.
現 OSSEN 선임기자.
⊙ 1998년 이길용 체육기자상 수상. 저서로 《씨름》(이만기 共著) 《한국프로야구 난투사》가 있다.
⊙ 최악의 그라운드 참사는 1990년 8월 26일 잠실구장 난동… 폭력관중 첫 실형
⊙ 빈볼은 야구라는 ‘가학적 운동’이 지닌 필요악의 촉수
洪崙杓
⊙ 63세. 동국대 철학과 졸업. 일본 게이오대 방문연구원 역임.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기자·체육부장, 인터넷 스포츠 신문 ‘OSSEN’ 대표 역임.
現 OSSEN 선임기자.
⊙ 1998년 이길용 체육기자상 수상. 저서로 《씨름》(이만기 共著) 《한국프로야구 난투사》가 있다.
야구기자 홍윤표(洪崙杓·63)는 오랫동안 야구기사를 써 왔다. 1983년부터 《한국일보》 《일간스포츠》에서 야구기자로 20년간 일했고 2004년 인터넷 스포츠신문 ‘오센(OSSEN)’을 설립, 온라인 신문이란 미지(未知)의 세계를 개척했다.
매일 맹수들의 난장과 같은 초록의 구장(球場)을 지켜보고, 그날그날의 야구통계를 챙겨 보며, 그라운드를 호령한 선수·감독과 만나는 일이 야구기자의 업(業)이다. 눈 깜짝할 사이 33년차 경력이 됐다.
한국야구 역사를 더듬기 위해 전화를 돌렸다. 지난 6월 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먼저 6월 3일 국내 최초·최대의 통산 400개 홈런을 달성한 삼성 이승엽(李承燁) 얘기부터 꺼냈다.
“엄청난 기록입니다. 한일(韓日) 통산홈런 기록은 559개죠. 아마·프로를 합쳐 대개의 선수가 홈런 10개도 못 치고 은퇴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승엽은 한국야구 111년사를 통틀어 최고의 타자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한국야구 원년(元年)을 종전 1905년에서 1904년으로 1년 앞당긴 이가 홍윤표 기자다. 그는 일본인 오시마 가쓰타로가 1932년 펴낸 《조선야구사》를 발굴,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1904년 봄부터 황성기독청년(YMCA 前身)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쳤음’을 대한야구협회에 제시했다. 또 1930년 ‘일장기 말소사건’을 일으킨 《동아일보》 기자 이길용(李吉用)이 그해 4월 연재한 기사(‘한국야구 기원은 1904년’)도 찾아냈다.
“해방 전 조선 땅에 이영민(李榮敏)이라는 거물 강타자가 있었고, 해방 후에는 ‘아시아의 철인’이라고 불리는 아마 최고의 홈런왕 박현식(朴玄植)이 있었습니다. 박현식은 자신의 홈런 공을 거의 회수해 보관하다가 KBO(한국야구위원회)에 기증하고 돌아가셨죠.
1960~70년대는 김응룡(金應龍)과 박영길(朴永吉)이 좌우 거포였어요. 김응룡은 1963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수 홈런상을 받았고 1965~68년에 실업연맹전 홈런왕을 차지한 인물입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이만수·김봉연·김성한·장종훈·양준혁·이승엽·이대호·박병호가 거포 타자계보를 잇는데, 저는 이들 중에서도 최고 타자를 꼽으라면 이승엽을 꼽고 싶어요.”
한국 野球史 111년 최고 타자는 이승엽
한국 야구사에 이승엽이 홈런왕이 되기까지 그라운드 안팎에서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승엽을 둘러싸고 야만적인 폭력과 광기가 그라운드에서 목격됐다.
“이승엽은 1997년 32홈런 기록으로 역대 최연소 홈런왕이 됐어요. 당연히 이듬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수립의 기대가 컸죠. 이승엽은 1998년 8월 26일 홈런 2위 타이론 우즈(당시 두산·29개)보다 7개나 많은 36개를 치고 있었으니까요.
그 무렵 이승엽은 상대팀의 견제와 볼넷 남발로 페이스가 뚝 떨어졌어요. 그해 7월까지 12타석에 1개꼴로 홈런을 치더니 8월 들어서는 37타석에 1개꼴로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고의볼넷은 8.45타석에 1개꼴(7월 이전)에서 5.89타석에 1개꼴(8월)로 늘었죠.”
소동이 일어난 것은 8월 26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현대전(戰)이었다. 이승엽이 1992년 장종훈의 최다 홈런기록(41개)을 저만치 바라보고 있었던 때다. 상대팀인 현대는 재계(財界) 맞수답게 신경전이 치열했다.
“그날 8회말까지 현대는 삼성을 19- 4로 이기고 있었어요. 삼성의 패색이 짙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4번째 현대투수 안병원이 이승엽을 고의볼넷으로 걸렸어요. 그게 대구 팬들에게 불을 질렀습니다. 그라운드 안으로 물병과 깡통, 휴지 뭉치 따위를 가리지 않고 던졌으니까요.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그해 9월 2일자 《동아일보》 칼럼(‘제 살 깎는 스타 죽이기 이제 그만’)에 이렇게 썼어요. ‘이승엽이란 수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의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어 안타깝다’고요. 정정당당하지 못한 경기나 승부는 언제나 관중의 분노를 사기 마련입니다. 이 사건이 아주 좋은 본보기죠.”
그해(1998년) 이승엽은 홈런왕이 됐을까. 이승엽은 상대팀의 집중 견제로 결국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왕 타이틀을 내줬다. 우즈는 42개, 이승엽은 38개를 쳤다. 그러나 이승엽은 이듬해 1999년 54개의 홈런을 쏘며 1위로 다시 등극했다.
이승엽을 둘러싼 亂鬪史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에 도전하고 있던 2003년 9월 27일 부산 사직구장으로 되돌아가 보자. 그날 삼성-롯데가 맞붙은 사직구장은 시즌 최다 관중인 1만1723명이 들어찼다. 홈런볼을 잡기 위해 외야석은 잠자리채로 가득했다.
“그러나 팬들을 분노케 한 일이 그때 벌어졌어요. 이승엽을 고의볼넷으로 내보내 대결을 회피한 까닭이죠. 삼성이 4-2로 앞선 8회초 1사2루. 롯데 투수 가득염이 정면승부를 피해 이승엽을 고의볼넷으로 걸렸어요. 순간 이승엽의 56호 아시아 신기록을 보기 위해 모인 관중이 홈팀인 롯데를 비난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야유와 함께 오물과 쓰레기를 그라운드 안으로 던졌고 경기가 중단됐습니다. 심지어 불붙은 종이를 장내에 던지는 방화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홈팀 관중이 홈팀을 비난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죠. 당시 롯데 감독은 김용철이 대행을 맡고 있었죠.”
한 시간이 지나도록 경기가 지연됐으나 거센 소란은 심판들도 어쩔 수 없었다.
“롯데 김용철 감독이 장내 방송을 통해 ‘(이승엽을)걸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어요. ‘이승엽을 포볼로 내보내고 양준혁을 병살타로 유도하려는 작전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요. 감독이 자신의 작전을, 그것도 경기 중에, 성난 팬들에게 장내 마이크로 직접 설명한 일은 한국 야구사에 전무한 일입니다. 결국 1시간34분 만에 경기가 재개됐어요.”
이 일이 있고 한참 후에 김용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롯데 문동환 투수가 1999년 이승엽에게 43호 홈런을 맞은 뒤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이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리고 그 시즌을 마지막으로 김용철은 롯데 감독에서 물러났다.
“그 일이 있고 그해 10월 2일 롯데와의 대구경기에서 이승엽은 1루수 겸 4번 타자로 나서 끝내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했어요. 2회말 무사, 주자 없는 상태에서 볼 카운터 원스트라이크 원볼에서 롯데 투수 이정민이 던진 세 번째 137km 직구를 쳤던 것이죠.”
그리고 12년 뒤인 지난 6월 3일 포항구장서 열린 삼성-롯데 전에서 이승엽은 롯데 구승민의 2구를 당겨쳐 400호 홈런을 터뜨렸다. 이승엽의 홈런 기록의 고비마다 롯데가 등장하는 악연(?)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승엽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에서 8시즌을 뛰며 159개의 홈런을 더하면 홈런 수는 559개. 홈런 41개를 더하면 600개 홈런도 가능하다.
술이 빚어 낸 야구 막장
이야기를 돌려 한국 프로야구의 ‘난투사’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초창기 프로야구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았다. 술 취한 관중이 상대편 선수를 향해 돌이나 빈병을 던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심한 경우 구단 리무진 버스가 불탔고 응원단은 데모대로 변해 스크럼을 짜고 경찰과 맞섰다.
그런 극렬한 다툼은 사라졌지만 요즘도 술과 관련한 난동이 끊이질 않자, KBO는 올 시즌부터 야구장내 술 반입을 제한하고 나섰다.
홍 기자는 “1990년대만 해도 술병을 장내로 투척하는 사고가 잦았다. 승부 고비나 애매한 판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빈병 따위를 ‘시도 때도 없이’ 그라운드에 내던졌다”고 했다. 그는 1995년 8월 10일 1만5000명의 관중으로 들어찬 마산구장을 떠올렸다.
“제과업체 라이벌이던 해태와 롯데의 대결이었어요. 이강철이 완투한 해태가 롯데 타선을 꽁꽁 틀어막자 장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죠. 경기스코어는 4-0, 8회말이 끝날 무렵 왼쪽 외야 문을 밀치고 마산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하기 시작했어요.
술에 취한 관중이 웃통을 벗어젖히고 난간 가장자리에서 관중들에게 무어라 떠드는 모습과, 한 관중은 아예 그라운드로 내려와 취무(醉舞)를 추는 장면도 있었죠. 당시엔 빈병이나 돌, 오물을 그라운드에 내던지면 구단 직원들이 나와 줍는 일이 일상이었어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아니라 ‘돌과 빈병을 줍는 남자들’인 셈이죠.
심지어 롯데구단 버스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을 깨던 청소년들이 이를 말리던 구단 버스 기사를 집단 구타하는 불상사도 일어났어요.”
그는 ‘술’과 관련한 또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1986년 10월의 일이다. 그해 삼성은 세 번째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앞선 두 번의 한국시리즈에서 OB·롯데에 각각 발목이 잡혀 독이 오를 대로 올랐다고 할까? 그해 10월 19일 광주원정 1차전에서 삼성은 연장 11회 접전 끝에 3-4로 해태에 패하고 말았다. 삼성의 투수 진동한의 호투로 8회초 공격을 마쳤을 때만 해도 2-0으로 삼성이 앞서고 있었다. 홍 기자의 말이다.
“그러니까 7회말 수비를 마치고 삼성 진동한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설 때 그를 째려보는 20대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고 해요. 그 청년의 손에 4홉들이 소주병이 들려 있었는데 진동한은 ‘설마 던지지는 않겠지’ 하고 방심했답니다. 진동한이 고개를 숙이며 더그아웃으로 내려서려는 찰나, 소주병이 날아와 진동한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광주의 삼성투수 술병 습격과 대구구장 난동
계속된 그의 말이다.
“진동한은 머리에 붕대를 감게 됐는데 그렇다고 투구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해요. 그러나 삼성 김영덕 감독은 무리해서 진동한을 등판시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 김시진을 대신 올려보냈어요. 그런데 그게 시리즈 흐름을 역전시킨 서곡(序曲)이 되어 버렸습니다. 김시진은 동점과 역전 결승점을 내줘 결국 삼성이 4-3으로 패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나마 광주 2차전에서 삼성이 2-1로 이겨 시리즈 1승1패인 상태에서 10월 22일 대구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3차전 대구구장 분위기는 경기 전부터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 빈병이 던져져 경기가 중단되기 일쑤였다. 이날 참사는 삼성이 해태에 5-6으로 지면서 시작됐다.
“관중 가운데 극도로 흥분한 2000여명이 경기가 끝난 밤 9시45분께부터 폭도로 돌변, 대구구장 밖에 세워 뒀던 해태 구단 버스를 에워쌌어요. 그리고 누군가 돌을 던져 앞 유리창이 깨졌고 뒤미처 불을 질렀어요.”
해태 선수단의 리무진 버스(전남5가 9405)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전소됐다. 홍 기자는 “방화 직후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바리케이드까지 친 과격 팬들의 저지로 접근조차 못했다”고 했다. 난동 관중들은 경찰과 대치, “진동한 선수 사고에 대해 사과하라! 타도 해태!”와 같은 구호를 불렀다. 결국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관중을 해산시켰다. 당시 이병철 삼성회장이 TV로 이 경기를 시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이 “불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직원들이 “한국시리즈는 KBO가 주관하는 것이니 삼성 책임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은 불탄 해태 리무진을 5000만원을 들여 수리해 주었다. 당시 리무진 새 차 값은 8000만~9000만원이었다.
“텃세 응원이 기승을 부렸던 1980~ 90년대, 어느 지역 가릴 것 없이 일부 관중들은 꼬투리만 잡히면 자신의 응원팀은 물론 상대팀 버스나 심지어 선수들에게도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어요. 지나간 시대의 서글픈 우리 얼굴입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번번이 해태에 지기만 하던 삼성은 2001년 해태 감독인 김응룡을 영입, 2002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현재 KIA가 해태구단을 인수, 2001년부터 KIA 타이거즈로 이름이 바뀌었다.
최악의 비극은 1990년 8월 잠실구장
홍 기자가 기억하는 최악의 그라운드 참사는 1990년 8월 26일 잠실구장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잠깐! 잠실구장 난동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야구 분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 이래 해태는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대업을 일구었다. 게다가 국보(國寶)급 투수라는 선동렬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 들어 해태는 맥을 못추고 있었다. 팬들의 기대와 달리 성적은 중하위권에 맴돌았다. 그나마 8월부터 치고 올라와 8월 25일 현재 47승3무41패로 4강권에 들어 있었다.
반면 1989년 만년 하위팀 MBC청룡을 인수해 백인천 감독을 영입한 뒤 팀 이름도 LG트윈스로 고쳤다. 그랬더니 성적이 쑥쑥 오르고 있었다. 8월 25일 현재 53승42패로 선두에 올라섰다. 홍 기자의 회고다.
“경기 시작은 오후 6시30분부터였으나 매표(오후 3시) 훨씬 전인 오전 11시께부터 매표구 앞에서 북새통을 이뤘어요. 그만큼 이 경기에 관심이 컸죠.”
참사는 8회초 해태가 공격을 시작하기 전, 밤 9시12분께 3루 측 해태 응원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면서 시작됐다.
“500여명의 해태 응원 관중들이 떼 지어 그라운드를 점거한 와중에, 1루 쪽 LG 응원 관중 한 명이 뛰어내려와 철제 의자로 해태 응원 관중의 머리를 내려친 것을 신호로 양쪽 관중이 서로 뒤엉켜 그라운드 안팎에서 패싸움이 벌어졌어요. 마치 전쟁터의 폐허를 방불케 했습니다. 3루 쪽 관중석 의자 등받이가 100여 개나 파손됐으니까요.”
그날 난동은 경기중단 36분이 지난 밤 9시46분께 무장경찰 3개 중대가 투입되면서 가까스로 수습됐다. 경기는 1시간7분간 중단됐다가 밤 10시19분에 속개돼 13-1로 LG가 이기고서야 끝났다.
“경기 후 해태 김응룡 감독은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해태 감독을 그만둬야 할까 보다’고 말했어요. ‘내 책임이 크다. 해태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이겨 줘야 하는데… 해태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니 부끄럽다’고 말했어요.”
관중 난동의 후폭풍은 거셌다. 당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경기장 폭력사태 근절을 내무부 장관에게 지시했고, 김기춘 검찰총장과 이종국 치안본부장이 나서서 현장 난동자들을 검거, 11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비록 선고공판에서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경기장 난동 관중에게 실형을 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KBO는 이듬해 1991년부터 각 구장에 지정좌석제를 도입하는 안을 내놓았어요. 이미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정착이 된 지정좌석제가 장내 질서유지나 혼잡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 것이죠. 그날 난동은 일본 신문이 ‘한국 프로야구 팬 500명이 폭동’이라는 제하로 크게 보도하는 등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빈볼로 선수 생명 끝나기도
—프로야구 초창기엔 그라운드 폭력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던 것 같아요.
“그땐 다반사였죠. 우리 사회에 그만큼 불만이 많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라운드 폭력은 억압된 사회심리 분출이 낳은 비극이 아닐까요? 단순한 사건사고가 아니라 시대상을 드러내는 슬픈 자화상이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관중 소동을 거의 볼 수 없지만 선수간 빈볼이나 위협구로 인한 난투극이 종종 일어나곤 하죠.”
홍 기자는 “빈볼은 야구라는 ‘가학적 운동’이 지닌 필요악의 촉수”라고 규정했다. “선수들 간의 충돌, 즉 빈볼에 의한 벤치 클리어링은 지극히 우발적이지만 빈볼로 인해 선수들 간 본능적인 분노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변하게 된다.
“우연한 빈볼은 없습니다. 투수는 분명히 의도를 가지고 던집니다. 빈볼이나 위협구는 머리 쪽이나 옆구리 겨냥해 던져지는데, 정말 위험한 것은 옆구리 쪽입니다. 옆구리 쪽으로 공이 날아오는 것을 피하다 허리에 공을 맞으면 선수생명이 끝납니다. 대표적 사례가 LG 박종훈입니다. 초대 신인왕(1982년) 출신인 박종훈 전 LG 감독은 1983~43년 타격 5~6위로 3할대 이상을 쳐낸 강타자였어요. 1985년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하며 당시 삼성 장효조와 리딩히터를 다투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해 7월 17일 MBC청룡과의 경기에서 박종훈은 옆구리를 겨냥하고 날아오는 공을 피하려다 허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엉덩이 바로 위쪽 요추를 얻어맞은 박종훈은 그로 인해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장효조(.373)에 밀려 타격 2위(.342)에 그쳤고 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내리막길을 걷다 1989년 선수생활을 접었다.
“박종훈 전 감독에게 물어보니 이 일이 있고 나서 ‘허리통증이 계속되고 체력이 떨어져 시즌 후반에 타격 집중이 안 되더라’는 겁니다. 빈볼은 투수가 혼자 판단해 던지는 법이 없어요. 누군가의 조직적인 지시, 그것이 감독이든 투수코치든, 또는 선배의 지시일 수도 있어요. 메이저리그도 빈볼은 철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집니다. 반드시 인과(因果)관계가 존재해요.”
—요즘 야구판은 어떤가요.
“글쎄요. 야구판에서 지켜야 할 예의가 실종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라운드가 엉망이 되고 있어요. 과거엔 큰 점수 차로 이긴 팀은 도루를 하지 않는다거나 투수교체를 안 하는 등의 야구 불문율이 존재했죠. 만약 크게 이긴 팀이 계속 지고 있는 팀을 자극하면 ‘시체에 매질한다’고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지켜지지 않으면 양팀 간 충돌로 번질 수 있죠.
요즘 야구는 비겁해졌습니다. 과거엔 정직하게 싸워 큰 싸움박질을 했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약아서 비겁해졌어요.”
부산과 대전의 가학적·지저분한 응원?
—각 지역별 응원문화가 궁금합니다.
“부산 팬들은 가학적 응원을 하기로 유명하죠. 홈팀, 원정팀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다그치고 닦달하는 식이죠. 그래서 파괴행위도 많이 일어났어요. 실망스런 경기를 한 선수를 불러다가 응원석에서 청문회를 열기도 합니다.
대구나 광주 팬들도 거칠어요. 어찌 보면 그런 열기가 한국야구를 발전시킬 수 있었지만 지역감정이란 삐뚤어진 애향심이 작용했음도 부인하기 어렵죠. 해태 팬들은 전국구 구단이라 불릴 정도로 전국 어디를 가도 열기가 대단했어요. 요즘은 그 열기가 한화이글스로 옮겨간 것 같아요. 김성근 감독 이후 한화에 대한 관심이 ‘전국구’로 불립니다.
그런데 초창기 대전구장의 응원문화도 대구·광주 못지않게 지저분했어요. 욕설이 난무하고 기자실 도난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났어요. 지금은 한화가 오랫동안 꼴찌를 하면서 참고 기다린 팬들을 ‘부처’에 빗대기도 하죠.”
—한화가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고 무엇이 달라졌나요.
“작년까지 한화가 지리멸렬했지만, 지금은 구단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덕분에 ‘구슬’을 잘 꿰맞추고 있어요. 무리가 엿보여, 시즌 중후반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 비관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에요. 귀가 솔깃하게 말을 곧잘 하지만 그 속엔 허위도 있다고 봐요. 굉장히 자기변호를 잘합니다. 때론 정치적이라 느껴져요. 보통 야구기자들은 경기 2~3 시간 전 더그아웃을 찾아가 감독의 경기구상을 들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김 감독은 더그아웃에 안 가고 감독방을 열어 놓고 기자들을 맞이합니다.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를 야단치기도 합니다.”
—다른 감독들도 인물평을 해 주세요.
“김인식 전 감독은 후덕하고 사람을 아우르는 힘이 있어요. 과감한 면도 있고, 전형적인 승부사라고 할까? 김영덕 전 감독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일본식 야구를 국내에 많이 도입한 인물입니다. 야구이론이나 전략은 탁월한데, 2루 주자 앞에 번트를 대 홈까지 불러들이는 작전도 구사할 정도죠. 전략가라는 측면에서 김성근 감독과 비교될 수 있으나 두 사람 사이가 무지 안 좋아요.
백인천 전 감독은 매우 곧은 사람이고 지저분한 소리, 구차한 소리를 전혀 입 밖에 안 내는 사람입니다. 트러블은 많았지만 백인천 야구를 ‘혼(魂)의 야구’라고 표현할 만큼 집념이 대단한 분이죠.
김재박 전 감독은 ‘야구판의 야시(여우)’라고 하는데 현대감독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4차례나 우승했어요. 좋은 선수들로 ‘구슬을 잘 꿸 줄’ 아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구슬’이 없으면 죽을 쒀요. LG감독으로 빛을 못 봤잖아요.
류중일 감독(삼성)은 머리 회전이 좋은 것 같아요.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고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잘 배치하는 것 같아요. 삼성에 있던 배영수·권혁이 올해 한화로 갔어요. 소문엔 삼성 내부에서 융화가 안 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구단측이 구태여 안 잡은 것이죠. 어쨌든 류 감독은 그런 개성 강한 선수들을 다잡아 한국시리즈와 페넌트레이스 4연패를 일궜으니 대단하죠.”⊙
매일 맹수들의 난장과 같은 초록의 구장(球場)을 지켜보고, 그날그날의 야구통계를 챙겨 보며, 그라운드를 호령한 선수·감독과 만나는 일이 야구기자의 업(業)이다. 눈 깜짝할 사이 33년차 경력이 됐다.
한국야구 역사를 더듬기 위해 전화를 돌렸다. 지난 6월 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먼저 6월 3일 국내 최초·최대의 통산 400개 홈런을 달성한 삼성 이승엽(李承燁) 얘기부터 꺼냈다.
“엄청난 기록입니다. 한일(韓日) 통산홈런 기록은 559개죠. 아마·프로를 합쳐 대개의 선수가 홈런 10개도 못 치고 은퇴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승엽은 한국야구 111년사를 통틀어 최고의 타자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한국야구 원년(元年)을 종전 1905년에서 1904년으로 1년 앞당긴 이가 홍윤표 기자다. 그는 일본인 오시마 가쓰타로가 1932년 펴낸 《조선야구사》를 발굴,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1904년 봄부터 황성기독청년(YMCA 前身)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쳤음’을 대한야구협회에 제시했다. 또 1930년 ‘일장기 말소사건’을 일으킨 《동아일보》 기자 이길용(李吉用)이 그해 4월 연재한 기사(‘한국야구 기원은 1904년’)도 찾아냈다.
“해방 전 조선 땅에 이영민(李榮敏)이라는 거물 강타자가 있었고, 해방 후에는 ‘아시아의 철인’이라고 불리는 아마 최고의 홈런왕 박현식(朴玄植)이 있었습니다. 박현식은 자신의 홈런 공을 거의 회수해 보관하다가 KBO(한국야구위원회)에 기증하고 돌아가셨죠.
1960~70년대는 김응룡(金應龍)과 박영길(朴永吉)이 좌우 거포였어요. 김응룡은 1963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수 홈런상을 받았고 1965~68년에 실업연맹전 홈런왕을 차지한 인물입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이만수·김봉연·김성한·장종훈·양준혁·이승엽·이대호·박병호가 거포 타자계보를 잇는데, 저는 이들 중에서도 최고 타자를 꼽으라면 이승엽을 꼽고 싶어요.”
한국 野球史 111년 최고 타자는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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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년 무렵 야구하는 황성기독청년(YMCA 前身) 회원 모습. 출처: 일본인 오시마 가쓰타 저서 《조선야구사》. |
“이승엽은 1997년 32홈런 기록으로 역대 최연소 홈런왕이 됐어요. 당연히 이듬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수립의 기대가 컸죠. 이승엽은 1998년 8월 26일 홈런 2위 타이론 우즈(당시 두산·29개)보다 7개나 많은 36개를 치고 있었으니까요.
그 무렵 이승엽은 상대팀의 견제와 볼넷 남발로 페이스가 뚝 떨어졌어요. 그해 7월까지 12타석에 1개꼴로 홈런을 치더니 8월 들어서는 37타석에 1개꼴로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고의볼넷은 8.45타석에 1개꼴(7월 이전)에서 5.89타석에 1개꼴(8월)로 늘었죠.”
소동이 일어난 것은 8월 26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현대전(戰)이었다. 이승엽이 1992년 장종훈의 최다 홈런기록(41개)을 저만치 바라보고 있었던 때다. 상대팀인 현대는 재계(財界) 맞수답게 신경전이 치열했다.
“그날 8회말까지 현대는 삼성을 19- 4로 이기고 있었어요. 삼성의 패색이 짙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4번째 현대투수 안병원이 이승엽을 고의볼넷으로 걸렸어요. 그게 대구 팬들에게 불을 질렀습니다. 그라운드 안으로 물병과 깡통, 휴지 뭉치 따위를 가리지 않고 던졌으니까요.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그해 9월 2일자 《동아일보》 칼럼(‘제 살 깎는 스타 죽이기 이제 그만’)에 이렇게 썼어요. ‘이승엽이란 수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의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어 안타깝다’고요. 정정당당하지 못한 경기나 승부는 언제나 관중의 분노를 사기 마련입니다. 이 사건이 아주 좋은 본보기죠.”
그해(1998년) 이승엽은 홈런왕이 됐을까. 이승엽은 상대팀의 집중 견제로 결국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왕 타이틀을 내줬다. 우즈는 42개, 이승엽은 38개를 쳤다. 그러나 이승엽은 이듬해 1999년 54개의 홈런을 쏘며 1위로 다시 등극했다.
이승엽을 둘러싼 亂鬪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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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6월 3일 포항 롯데전에서 국내 최초로 통산 400홈런 대기록을 달성했다. |
“그러나 팬들을 분노케 한 일이 그때 벌어졌어요. 이승엽을 고의볼넷으로 내보내 대결을 회피한 까닭이죠. 삼성이 4-2로 앞선 8회초 1사2루. 롯데 투수 가득염이 정면승부를 피해 이승엽을 고의볼넷으로 걸렸어요. 순간 이승엽의 56호 아시아 신기록을 보기 위해 모인 관중이 홈팀인 롯데를 비난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야유와 함께 오물과 쓰레기를 그라운드 안으로 던졌고 경기가 중단됐습니다. 심지어 불붙은 종이를 장내에 던지는 방화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홈팀 관중이 홈팀을 비난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죠. 당시 롯데 감독은 김용철이 대행을 맡고 있었죠.”
한 시간이 지나도록 경기가 지연됐으나 거센 소란은 심판들도 어쩔 수 없었다.
“롯데 김용철 감독이 장내 방송을 통해 ‘(이승엽을)걸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어요. ‘이승엽을 포볼로 내보내고 양준혁을 병살타로 유도하려는 작전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요. 감독이 자신의 작전을, 그것도 경기 중에, 성난 팬들에게 장내 마이크로 직접 설명한 일은 한국 야구사에 전무한 일입니다. 결국 1시간34분 만에 경기가 재개됐어요.”
이 일이 있고 한참 후에 김용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롯데 문동환 투수가 1999년 이승엽에게 43호 홈런을 맞은 뒤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이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리고 그 시즌을 마지막으로 김용철은 롯데 감독에서 물러났다.
“그 일이 있고 그해 10월 2일 롯데와의 대구경기에서 이승엽은 1루수 겸 4번 타자로 나서 끝내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했어요. 2회말 무사, 주자 없는 상태에서 볼 카운터 원스트라이크 원볼에서 롯데 투수 이정민이 던진 세 번째 137km 직구를 쳤던 것이죠.”
그리고 12년 뒤인 지난 6월 3일 포항구장서 열린 삼성-롯데 전에서 이승엽은 롯데 구승민의 2구를 당겨쳐 400호 홈런을 터뜨렸다. 이승엽의 홈런 기록의 고비마다 롯데가 등장하는 악연(?)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승엽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에서 8시즌을 뛰며 159개의 홈런을 더하면 홈런 수는 559개. 홈런 41개를 더하면 600개 홈런도 가능하다.
술이 빚어 낸 야구 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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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기자 시절의 홍윤표(오른쪽). 왼쪽이 《조선일보》 이홍 기자. |
그런 극렬한 다툼은 사라졌지만 요즘도 술과 관련한 난동이 끊이질 않자, KBO는 올 시즌부터 야구장내 술 반입을 제한하고 나섰다.
홍 기자는 “1990년대만 해도 술병을 장내로 투척하는 사고가 잦았다. 승부 고비나 애매한 판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빈병 따위를 ‘시도 때도 없이’ 그라운드에 내던졌다”고 했다. 그는 1995년 8월 10일 1만5000명의 관중으로 들어찬 마산구장을 떠올렸다.
“제과업체 라이벌이던 해태와 롯데의 대결이었어요. 이강철이 완투한 해태가 롯데 타선을 꽁꽁 틀어막자 장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죠. 경기스코어는 4-0, 8회말이 끝날 무렵 왼쪽 외야 문을 밀치고 마산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하기 시작했어요.
술에 취한 관중이 웃통을 벗어젖히고 난간 가장자리에서 관중들에게 무어라 떠드는 모습과, 한 관중은 아예 그라운드로 내려와 취무(醉舞)를 추는 장면도 있었죠. 당시엔 빈병이나 돌, 오물을 그라운드에 내던지면 구단 직원들이 나와 줍는 일이 일상이었어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아니라 ‘돌과 빈병을 줍는 남자들’인 셈이죠.
심지어 롯데구단 버스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을 깨던 청소년들이 이를 말리던 구단 버스 기사를 집단 구타하는 불상사도 일어났어요.”
그는 ‘술’과 관련한 또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1986년 10월의 일이다. 그해 삼성은 세 번째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앞선 두 번의 한국시리즈에서 OB·롯데에 각각 발목이 잡혀 독이 오를 대로 올랐다고 할까? 그해 10월 19일 광주원정 1차전에서 삼성은 연장 11회 접전 끝에 3-4로 해태에 패하고 말았다. 삼성의 투수 진동한의 호투로 8회초 공격을 마쳤을 때만 해도 2-0으로 삼성이 앞서고 있었다. 홍 기자의 말이다.
“그러니까 7회말 수비를 마치고 삼성 진동한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설 때 그를 째려보는 20대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고 해요. 그 청년의 손에 4홉들이 소주병이 들려 있었는데 진동한은 ‘설마 던지지는 않겠지’ 하고 방심했답니다. 진동한이 고개를 숙이며 더그아웃으로 내려서려는 찰나, 소주병이 날아와 진동한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광주의 삼성투수 술병 습격과 대구구장 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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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한국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취재 중인 홍윤표 기자(右 3번째). 김인식 감독(右 2번째)과 김성한(가운데), 천보성(왼쪽 끝) 선수가 보인다. |
“진동한은 머리에 붕대를 감게 됐는데 그렇다고 투구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해요. 그러나 삼성 김영덕 감독은 무리해서 진동한을 등판시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 김시진을 대신 올려보냈어요. 그런데 그게 시리즈 흐름을 역전시킨 서곡(序曲)이 되어 버렸습니다. 김시진은 동점과 역전 결승점을 내줘 결국 삼성이 4-3으로 패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나마 광주 2차전에서 삼성이 2-1로 이겨 시리즈 1승1패인 상태에서 10월 22일 대구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3차전 대구구장 분위기는 경기 전부터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 빈병이 던져져 경기가 중단되기 일쑤였다. 이날 참사는 삼성이 해태에 5-6으로 지면서 시작됐다.
“관중 가운데 극도로 흥분한 2000여명이 경기가 끝난 밤 9시45분께부터 폭도로 돌변, 대구구장 밖에 세워 뒀던 해태 구단 버스를 에워쌌어요. 그리고 누군가 돌을 던져 앞 유리창이 깨졌고 뒤미처 불을 질렀어요.”
해태 선수단의 리무진 버스(전남5가 9405)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전소됐다. 홍 기자는 “방화 직후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바리케이드까지 친 과격 팬들의 저지로 접근조차 못했다”고 했다. 난동 관중들은 경찰과 대치, “진동한 선수 사고에 대해 사과하라! 타도 해태!”와 같은 구호를 불렀다. 결국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관중을 해산시켰다. 당시 이병철 삼성회장이 TV로 이 경기를 시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이 “불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직원들이 “한국시리즈는 KBO가 주관하는 것이니 삼성 책임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은 불탄 해태 리무진을 5000만원을 들여 수리해 주었다. 당시 리무진 새 차 값은 8000만~9000만원이었다.
“텃세 응원이 기승을 부렸던 1980~ 90년대, 어느 지역 가릴 것 없이 일부 관중들은 꼬투리만 잡히면 자신의 응원팀은 물론 상대팀 버스나 심지어 선수들에게도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어요. 지나간 시대의 서글픈 우리 얼굴입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번번이 해태에 지기만 하던 삼성은 2001년 해태 감독인 김응룡을 영입, 2002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현재 KIA가 해태구단을 인수, 2001년부터 KIA 타이거즈로 이름이 바뀌었다.
최악의 비극은 1990년 8월 잠실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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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최악의 야구장 난투극으로 기록될 1990년 8월 26일 밤의 잠실구장. |
여기서 잠깐! 잠실구장 난동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야구 분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 이래 해태는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대업을 일구었다. 게다가 국보(國寶)급 투수라는 선동렬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 들어 해태는 맥을 못추고 있었다. 팬들의 기대와 달리 성적은 중하위권에 맴돌았다. 그나마 8월부터 치고 올라와 8월 25일 현재 47승3무41패로 4강권에 들어 있었다.
반면 1989년 만년 하위팀 MBC청룡을 인수해 백인천 감독을 영입한 뒤 팀 이름도 LG트윈스로 고쳤다. 그랬더니 성적이 쑥쑥 오르고 있었다. 8월 25일 현재 53승42패로 선두에 올라섰다. 홍 기자의 회고다.
“경기 시작은 오후 6시30분부터였으나 매표(오후 3시) 훨씬 전인 오전 11시께부터 매표구 앞에서 북새통을 이뤘어요. 그만큼 이 경기에 관심이 컸죠.”
참사는 8회초 해태가 공격을 시작하기 전, 밤 9시12분께 3루 측 해태 응원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면서 시작됐다.
“500여명의 해태 응원 관중들이 떼 지어 그라운드를 점거한 와중에, 1루 쪽 LG 응원 관중 한 명이 뛰어내려와 철제 의자로 해태 응원 관중의 머리를 내려친 것을 신호로 양쪽 관중이 서로 뒤엉켜 그라운드 안팎에서 패싸움이 벌어졌어요. 마치 전쟁터의 폐허를 방불케 했습니다. 3루 쪽 관중석 의자 등받이가 100여 개나 파손됐으니까요.”
그날 난동은 경기중단 36분이 지난 밤 9시46분께 무장경찰 3개 중대가 투입되면서 가까스로 수습됐다. 경기는 1시간7분간 중단됐다가 밤 10시19분에 속개돼 13-1로 LG가 이기고서야 끝났다.
“경기 후 해태 김응룡 감독은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해태 감독을 그만둬야 할까 보다’고 말했어요. ‘내 책임이 크다. 해태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이겨 줘야 하는데… 해태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니 부끄럽다’고 말했어요.”
관중 난동의 후폭풍은 거셌다. 당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경기장 폭력사태 근절을 내무부 장관에게 지시했고, 김기춘 검찰총장과 이종국 치안본부장이 나서서 현장 난동자들을 검거, 11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비록 선고공판에서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경기장 난동 관중에게 실형을 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KBO는 이듬해 1991년부터 각 구장에 지정좌석제를 도입하는 안을 내놓았어요. 이미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정착이 된 지정좌석제가 장내 질서유지나 혼잡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 것이죠. 그날 난동은 일본 신문이 ‘한국 프로야구 팬 500명이 폭동’이라는 제하로 크게 보도하는 등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빈볼로 선수 생명 끝나기도
—프로야구 초창기엔 그라운드 폭력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던 것 같아요.
“그땐 다반사였죠. 우리 사회에 그만큼 불만이 많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라운드 폭력은 억압된 사회심리 분출이 낳은 비극이 아닐까요? 단순한 사건사고가 아니라 시대상을 드러내는 슬픈 자화상이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관중 소동을 거의 볼 수 없지만 선수간 빈볼이나 위협구로 인한 난투극이 종종 일어나곤 하죠.”
홍 기자는 “빈볼은 야구라는 ‘가학적 운동’이 지닌 필요악의 촉수”라고 규정했다. “선수들 간의 충돌, 즉 빈볼에 의한 벤치 클리어링은 지극히 우발적이지만 빈볼로 인해 선수들 간 본능적인 분노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변하게 된다.
“우연한 빈볼은 없습니다. 투수는 분명히 의도를 가지고 던집니다. 빈볼이나 위협구는 머리 쪽이나 옆구리 겨냥해 던져지는데, 정말 위험한 것은 옆구리 쪽입니다. 옆구리 쪽으로 공이 날아오는 것을 피하다 허리에 공을 맞으면 선수생명이 끝납니다. 대표적 사례가 LG 박종훈입니다. 초대 신인왕(1982년) 출신인 박종훈 전 LG 감독은 1983~43년 타격 5~6위로 3할대 이상을 쳐낸 강타자였어요. 1985년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하며 당시 삼성 장효조와 리딩히터를 다투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해 7월 17일 MBC청룡과의 경기에서 박종훈은 옆구리를 겨냥하고 날아오는 공을 피하려다 허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엉덩이 바로 위쪽 요추를 얻어맞은 박종훈은 그로 인해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장효조(.373)에 밀려 타격 2위(.342)에 그쳤고 그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내리막길을 걷다 1989년 선수생활을 접었다.
“박종훈 전 감독에게 물어보니 이 일이 있고 나서 ‘허리통증이 계속되고 체력이 떨어져 시즌 후반에 타격 집중이 안 되더라’는 겁니다. 빈볼은 투수가 혼자 판단해 던지는 법이 없어요. 누군가의 조직적인 지시, 그것이 감독이든 투수코치든, 또는 선배의 지시일 수도 있어요. 메이저리그도 빈볼은 철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집니다. 반드시 인과(因果)관계가 존재해요.”
—요즘 야구판은 어떤가요.
“글쎄요. 야구판에서 지켜야 할 예의가 실종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라운드가 엉망이 되고 있어요. 과거엔 큰 점수 차로 이긴 팀은 도루를 하지 않는다거나 투수교체를 안 하는 등의 야구 불문율이 존재했죠. 만약 크게 이긴 팀이 계속 지고 있는 팀을 자극하면 ‘시체에 매질한다’고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지켜지지 않으면 양팀 간 충돌로 번질 수 있죠.
요즘 야구는 비겁해졌습니다. 과거엔 정직하게 싸워 큰 싸움박질을 했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약아서 비겁해졌어요.”
부산과 대전의 가학적·지저분한 응원?
—각 지역별 응원문화가 궁금합니다.
“부산 팬들은 가학적 응원을 하기로 유명하죠. 홈팀, 원정팀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다그치고 닦달하는 식이죠. 그래서 파괴행위도 많이 일어났어요. 실망스런 경기를 한 선수를 불러다가 응원석에서 청문회를 열기도 합니다.
대구나 광주 팬들도 거칠어요. 어찌 보면 그런 열기가 한국야구를 발전시킬 수 있었지만 지역감정이란 삐뚤어진 애향심이 작용했음도 부인하기 어렵죠. 해태 팬들은 전국구 구단이라 불릴 정도로 전국 어디를 가도 열기가 대단했어요. 요즘은 그 열기가 한화이글스로 옮겨간 것 같아요. 김성근 감독 이후 한화에 대한 관심이 ‘전국구’로 불립니다.
그런데 초창기 대전구장의 응원문화도 대구·광주 못지않게 지저분했어요. 욕설이 난무하고 기자실 도난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났어요. 지금은 한화가 오랫동안 꼴찌를 하면서 참고 기다린 팬들을 ‘부처’에 빗대기도 하죠.”
—한화가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고 무엇이 달라졌나요.
“작년까지 한화가 지리멸렬했지만, 지금은 구단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덕분에 ‘구슬’을 잘 꿰맞추고 있어요. 무리가 엿보여, 시즌 중후반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 비관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에요. 귀가 솔깃하게 말을 곧잘 하지만 그 속엔 허위도 있다고 봐요. 굉장히 자기변호를 잘합니다. 때론 정치적이라 느껴져요. 보통 야구기자들은 경기 2~3 시간 전 더그아웃을 찾아가 감독의 경기구상을 들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김 감독은 더그아웃에 안 가고 감독방을 열어 놓고 기자들을 맞이합니다.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를 야단치기도 합니다.”
—다른 감독들도 인물평을 해 주세요.
“김인식 전 감독은 후덕하고 사람을 아우르는 힘이 있어요. 과감한 면도 있고, 전형적인 승부사라고 할까? 김영덕 전 감독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일본식 야구를 국내에 많이 도입한 인물입니다. 야구이론이나 전략은 탁월한데, 2루 주자 앞에 번트를 대 홈까지 불러들이는 작전도 구사할 정도죠. 전략가라는 측면에서 김성근 감독과 비교될 수 있으나 두 사람 사이가 무지 안 좋아요.
백인천 전 감독은 매우 곧은 사람이고 지저분한 소리, 구차한 소리를 전혀 입 밖에 안 내는 사람입니다. 트러블은 많았지만 백인천 야구를 ‘혼(魂)의 야구’라고 표현할 만큼 집념이 대단한 분이죠.
김재박 전 감독은 ‘야구판의 야시(여우)’라고 하는데 현대감독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4차례나 우승했어요. 좋은 선수들로 ‘구슬을 잘 꿸 줄’ 아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구슬’이 없으면 죽을 쒀요. LG감독으로 빛을 못 봤잖아요.
류중일 감독(삼성)은 머리 회전이 좋은 것 같아요.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고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잘 배치하는 것 같아요. 삼성에 있던 배영수·권혁이 올해 한화로 갔어요. 소문엔 삼성 내부에서 융화가 안 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구단측이 구태여 안 잡은 것이죠. 어쨌든 류 감독은 그런 개성 강한 선수들을 다잡아 한국시리즈와 페넌트레이스 4연패를 일궜으니 대단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