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점검] 李相洙 전 노동부 장관이 밝히는 ‘노무현 대선자금’ 모금 : 월간조선

일요일과 어린이날 사이의 샌드위치 평일인 5월 4일 오전 무작정 서울 서초동에 있는 법무법인 우성을 찾았다. 공동 대표변호사로 있는 이상수(李相洙) 전 노동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를 찾은 이유는 고(故) 성완종(成完鍾)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캠프의 요구로 3억원의 선거자금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는 4월 29일 자 《조선일보》 보도 때문이었다.

이 전 장관은 2002년 당시 노무현 캠프에서 자금을 마련하는 후원회장과, 모인 돈으로 캠프 살림을 책임지는 총무본부장직을 역임했다.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이른 오전부터 기다렸지만 이 전 장관은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직원에게 문의하니 아침 일찍부터 외부 일정이 있다고 했다. 이틀 뒤인 6일 오전에도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보니 이 전 장관은 부재중이었다. 이 전 장관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 공문을 보내 달라고 했다.

기자는 4·29 재·보선 전패로 인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위기, 성 전 회장의 자살이 몰고온 대선자금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7일 오후 이 전 장관이 전화를 걸어 왔다. 인터뷰에 선선히 응했다. 8일 법무법인 우성에서 이 전 장관과 마주했다. 그는 미소를 띠며 “대선자금에 대해 질문할 건가 보지요?”라고 물었다. 2002년 대선 때 대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는 이 전 장관이기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웠다.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묻고 싶다”고 하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솔직히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2002년 成完鍾 대선자금에 관한 기억

정치인 출신의 이재정 통일부 장관(中),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左),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2007년 2월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얘기하고 있다.

—《조선일보》 보도를 보니,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 유세연수본부장이었던 이재정(李在禎) 경기도교육감 측이 말한 바로는 총무본부장이었던 이 전 장관이 이 교육감에게 ‘대아건설에 2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라’고 요청했고, 이에 이 교육감이 성 전 회장에게 이 전 장관의 뜻을 전하자 성 전 회장이 요구보다 1억원이 많은 3억원을 캠프의 대선자금으로 전달했다고 하던데요. 당시 상황을 기억하십니까.

“2002년 9월 18일 노무현 후보 선대위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그때 대표가 한화갑 전 의원이었는데 자금을 지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돈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답변이 없었습니다. 노 후보가 대통령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지요. 선대위가 출범했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우선 저와 정대철 선배가 개인 돈을 내서 초기 자금을 썼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각자 1000만원 정도씩 낸 것 같은데 ‘코끼리 비스킷’이죠. 그래서 제가 후원회장을 뽑아서 그분께 자금을 부탁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맡겠다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맡았지요. 어떻게 후원금을 모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작년(2001년) 우리당(민주당)의 후원금 내역을 살펴봤는데 100억이 좀 넘더라고요. 그래서 ‘잘됐다. 작년에 우리당에 후원금을 낸 기업, 또는 인물에게 후원금을 걷으면 그것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곧장 선대본부장 회의를 열어서 본부장들에게 후원금 내역서를 공개한 뒤 각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데를 꼽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재정 선배가 자신이 한화와 대아그룹을 맡겠다고 했고, 제가 그렇게 하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유세본부장이었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한화와 대아그룹에서는 본인이 직접 대선자금을 받아 오겠다고 했다는 이야기죠.

“제가 선대본부장 회의를 열어 후원금 내역서를 공개하면서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니 각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을 맡아서 후원금을 거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이재정 선배가 ‘내가 한화와 친하다. 한화를 하겠다. 대아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내가 ‘그럼 그 두 곳은 선배님이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재정 교육감이 대아건설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요.

“그것은 아닌 것 같고요. 이재정 선배가 충청도 출신이니까, (대아그룹도) 맡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이 교육감은 충북 진천 출신이고 성 전 회장은 충남 서산 출신이다.

이 교육감은 4월 29일 오전 라디오 프로그램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 “(2002년) 당시 충청도 기업 가운데 어느 기업을 선택하든가 해서 자금을 좀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이상수 총무본부장이 내게 했고, 그래서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성완종 회장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아건설로부터 2억원을 받아 오라고 이 교육감에게 요구했다고 하는데 실제 금액을 특정했습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금액을 특정합니까.”

—2001년 민주당 후원금 내역서에 대아그룹이 확실히 있었나요.

“네, 대아도 있더라고요. 2000년 후원금 내역서에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때 각각 후원금으로 얼마를 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대아건설로부터 3억원을 받았는데 영수증 처리를 했나요.

“제 기억에 2억은 하고 1억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억원은 왜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정까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대아건설이 3억 이외에 후원금을 더 내지는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후원금 총액은 3억원입니다. 이는 검찰 수사에서도 밝혀진 사안입니다.”

지난 2004년 이 교육감의 유죄 판결문을 보면 ‘(이재정 본부장이) 대아그룹 성완종 회장에게 3억원의 정치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던 사실 등이 인정된다’고 나온다.

성 전 회장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캠프에도 선거자금을 전달했다.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중수부장이었던 안대희(安大熙) 전 대법관은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브리핑에서 “대아건설이 여·야에 수십억 원을 지원했다”고 했다.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캠프에 3억을 지원한 것이 전부라면 한나라당에는 최소 10억원 이상을 지원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중수부는 상대적으로 자금 규모가 작은 점 등을 감안해 성 전 회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대선자금 수사팀은 불법 정치자금 규모가 비교적 작은 기업인을 선처했고, 거액의 대선자금을 전달한 대기업의 총수들도 기소유예 처분 했었다.

“선대본부장급 6~7명 줄 닿는 기업에 자금 요청”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2월 10일 청와대에서 이상수 노동부 장관에게 임명장 수여 후 악수하고 있다.

—선대본부장 회의에서 후원금 내역서를 보고 할당을 했다면, 다른 본부장 급도 자신과 가깝거나, 말이 통할 수 있는 기업에 후원금을 요청했겠네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분이 (기업에 후원금 요청을)맡아서 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였으니까요. 이런 활동은 잘못이 아닙니다. 영수증 처리를 하면 문제가 없으니까요.”

당시 정치자금법을 살펴보니 기업의 경우 대상에 관계없이 정치자금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금품의 한도는 1년에 2억5000만원이었다. 따라서 2억5000만원 이상을 후원한 법인은 개인 명의로 후원금을 ‘쪼개기’하는 편법을 동원해 정치자금 제한 규정을 교묘히 피해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A란 기업이 2억원을 후원하고 나서 A 기업의 여러 임직원 명의로 또다시 수억 원을 후원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캠프에 제공한 후원금 3억원 중 2억원만 영수증 처리한 것도 어차피 ‘연간 후원액수 초과’인 만큼 ‘쪼개기’를 한 것이 아닌가 보인다.

이 교육감은 4월 29일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영수증 처리를 할 수 없는 돈과 관련한 질문에 “기업에서 정치자금으로 낼 수 있는 일정한 정도의 한도가 있는데 그 한도를 넘어섰던 것”이라며 “그런데 그것은 기업의 문제이지 우리(노 후보 캠프)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본부장급들이 후원금 모집에 나섰다고 했는데 몇 분이 모금하러 다녔습니까.

“대략 6~7명이 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캠프 본부장단은 다음과 같다.

▲정책선거특별본부 임채정 ▲미디어선거특별본부 김한길 ▲인터넷선거특별본부 허운나 ▲총무본부 이상수 ▲기획본부 이해찬 ▲조직본부 이호웅 ▲홍보본부 김경재 ▲유세본부 이재정 ▲정치개혁추진위원회 신기남 ▲국가비전21위원회 정세균.

—누가 가장 많은 후원금을 모아 왔습니까.

“10년이 넘은 일입니다.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고요. 다만 김원기 선배께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줬나요.

“만약 제가 후원금 문제로 ‘○○그룹 부사장을 만나고 왔다’고 이야기하면, ‘그래 나도 한번 챙겨 볼게’ 이런 식으로 신경 써 주신 것이지요.”

금호, 종로 금은방에서 세탁한 수표 건네

—2002년 대선 당시 한화, 금호아시아나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7억원을 모금한 혐의로 추징금 없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이 자금은 왜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은 것입니까. 기업에서 정치자금으로 낼 수 있는 일정한 정도를 넘어섰었나요.

“솔직히 저야 끊어 주고 싶었는데 기업 쪽에서 영수증 처리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만 해도)우리가 선거에서 질 가능성이 컸습니다. 우리를 도왔다는 근거를 안 남기려 한 것 같습니다. 그쪽(기업)에서 계속 부탁하니까 영수증 처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수증 처리 하지 않은 자금은 어떻게 받았습니까.

“금호는 제가 직접 받았습니다. 헌 수표 3억원과 채권 3억원 등 총 6억원을 받았습니다. 100만원짜리 30장을 봉투에 넣어서 주더군요. 이것밖에 못 줘서 미안하다고 하면서요. 나중에 검찰 수사를 받으며 알게 됐는데, 헌 수표는 금호가 종로의 금은방을 통해 세탁한 것이더라고요. 한화 10억원은 이재정 선배를 통해 무기명 채권(국민주택 채권)으로 받았습니다. 현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모처에서 당시 고위 간부를 만나 후원금을 요구했고, 그가 그룹에 들어가 상의한 지 며칠 뒤에 연락을 줬습니다. 10억을 지원하겠다고요. 10억 중 6억6000만원을 계열사 임원 명의로 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 줬습니다.”

—처음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한화와 금호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셨는데요.

“검찰 수사 도중에 한번은 노무현 대통령이 양심선언을 하면 어떠냐고 물으시더군요. 그 의견이 참 괜찮았는데 제가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 못하신 겁니까.

“기업이 영수증 끊지 말라고 부탁한 탓에 검찰에서 부인(否認)만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약속했는데 터트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노 대통령의 양심선언 제의 받고 혹시나 해서 금호 쪽에 물었어요.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한화 건이라도 증언할까 했는데 그건 이재정 선배가 말렸습니다. 본인이 책임질 테니 말하지 말라고요. 그래서 의리를 지켰는데. 참 우스운 게 뭔지 아십니까.”

—무엇입니까.

“저는 침묵하고 있었는데 기업이 검찰에 줬다고 진술한 겁니다. 검찰이 다른 곳을 옥죄니 기업이 불더군요.”

—검찰이 기업의 다른 사안을 걸고 넘어지니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는 겁니까.

“한화 쪽은 잘 모르겠는데 금호는 검찰이 다른 건으로 압박해서 할 수 없이 불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그쪽 본부장이 제 친구였거든요.”

—이재정 교육감에게 좀 서운했겠습니다. 한화만이라도 처음부터 자백했으면 정상참작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재정 선배가 참 억울할 겁니다. 본인이 한화 쪽 자금을 모아 온다고 해서 약속을 지켜 해 왔는데…. 사실 제가 이 선배 보호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이 선배가 (수사선상에서)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내가 구속되느냐 마느냐’의 상황에서 짐을 지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대기업에 자금은 어떻게 요청하나요.

“전화를 걸어서 사장, 본부장급에 사정을 설명한 뒤 모처에서 만나 자세한 사안을 논의합니다. 기업 내부에서 회의를 거쳐 캠프 측에 연락을 줍니다. 얼마를 후원하겠다고요. 그럼 대개 실무자를 보내 후원금을 받아 오라고 합니다.”

—후원금을 요청하면 기업에서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 합니까.

“우리가 질 것을 확신해서였을까요? 삼성은 안 그랬어요. 삼성 쪽을 맡은 분이 일이 잘 안 풀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삼성 후원금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선거가 가까워지니까 우리 쪽에 연락 와서 후원금을 낸다고 하더군요. 그러라고 했더니 10억원을 주더라고요.”

—삼성은 대선자금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安熙正) 현 충남도지사에게 30억원을 전달했는데요. 다른 자금이지요.

“우리가 받은 것은 10억원입니다. 그쪽이 한 일은 제가 모릅니다. 항간에 삼성이 별도로 보좌진 그룹과 직거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대선 직후 盧에게 대선자금 내역서 준 것으로 기억

2004년 1월 28일 자 《경향신문》은 이 전 장관이 대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에게 1억원 이상 대선자금을 후원한 기업 및 후원액이 적힌 내역서를 줬다고 이 전 장관의 발언을 근거로 보도했다.

당시 청와대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은 “(개별 기업이나 그 기업이 낸 액수에 대해) 보고받은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에게 전달한 A4용지 서류에는 검찰이 불법 대선자금으로 규정한 한화(10억원)와 금호(6억원)를 포함해 1억원 이상 후원기업 전체의 명단과 액수가 들어 있다”고 하셨는데요.

“대선 끝나고 보고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기억이 정확지는 않지만 이런 기업, 이런 사람이 이렇게 냈다는 보고서를 가져갔습니다. 내역서를 (노 대통령에게)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명단에 대아건설 성완종 회장의 이름이 담겼습니까.

“1억원 이상 후원기업 명단을 적었으니 담겼을 겁니다.”

—노 대통령은 대선 때 불법 정치자금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를 하려 할 때, 했으면 하는 눈치였거든요. 저랑 정대철 선배 등을 불러서 수사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기에 ‘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은 불법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과거 대선과 당시 상대방과 비교하면 대선자금 규모가 아주 작지 않았습니까.”

2002년 노무현 선대위가 쓴 비용은 400억 정도

—검찰 조사 결과 한나라당은 823억, 민주당은 113억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솔직히 액수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당시 검찰이 편파수사를 한 것 아닙니까. 살아 있는 권력을 어떻게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검찰은 저희의 불법을 찾아내려 애썼습니다. 오히려 한나라당을 봐주는 수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에서 드러나지 않은 한나라당의 불법 정치자금이 더 있는데도 봐줬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기업 핵심 관계자로부터 한나라당에 제공한 대선자금을 축소해서 진술했는데 그냥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액수가 작다 보니 정말 꼼꼼하게 수사했습니다. 제가 법조인입니다. 분위기를 잘 알지요.”

최병렬(崔秉烈)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자서전에서 “검찰 관련 인사로부터 ‘검찰에서 드러나지 않은 것들도 숱하게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불법 자금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허탈했다”고 쓴 바 있다.

—사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통상 주는 쪽의 일방적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검찰이 여·야에 대해 같은 강도로 수사하더라도 공여자(供與者) 측의 태도 여하에 따라 결과는 극히 대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기업이 저희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말하면서도 한나라당에 제공한 돈은 줄여서 이야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상 당선 가능성이 큰 쪽엔 대박을 노리고 큰 액수를 건네고, 당선 가능성이 낮은 쪽엔 보험(保險)을 드는 기분으로 작은 액수를 건네는 것이 대선자금의 기초 상식입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해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선거가 끝나고 선거 전의 잘못된 판단을 만회하기 위해서 추가로 당선 축하금을 캠프 쪽에 전달하지는 않았나요.

“그런 적 없습니다.”

불법 대선자금 병폐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 권력 줄여야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대선자금 공개 등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불법 대선자금이 7배나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한나라당은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돈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원래 후보 경선 때도 돈이 많이 들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이야 경선 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누가 돈을 주겠습니까. 경선 때 대세론은 ‘이인제 의원’ 아니었습니까.”

후보 경선 때 많은 자금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지지자들을 태우고 온 버스비, 수천 명의 밥값, 최소한의 수고비까지 꼽아 보면 연설회마다 수억 원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대선을 치르면서 총 얼마를 사용했습니까.

“400억원 정도 됩니다.”

16대 대선 직후 민주당은 선거관리위원회에 274억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다. 한나라당 신고액은 224억원이었다. 모두 축소 신고한 셈이다.

대선자금 관련한 질문을 계속하자 이 전 장관은 “불법 대선자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런 병폐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안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니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터지는 것은 우리나라 선거제도가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니 대선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게임으로 치러지기 마련입니다. ‘올인’ 성격이다 보니 대선캠프는 자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기업들은 돈을 밀어주는 것이지요. 만약 개헌을 통해 이원집정부제로 가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대통령의 비중이 작아진다면 어떨까요. 지금보다 돈을 덜 쓰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법 대선자금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요. 물론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는 정부의 힘이 약해지는 만큼 통일을 앞둔 우리나라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를 보십시오. 내각제하에서 집권을 16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에 이바지했지요. 내각제 총리도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당의 지지를 받으면 오히려 안정적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갈 때가 됐습니다.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이회창 총재는 다음 대선만을 위해 뛰었습니다. 국민도 없고, 선거에 유리한 것만 하더란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된다 한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습니까. 정말 이 제왕적 대통령제는 개헌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후배 운동권 국회의원들에게 열정 찾아볼 수 없어

이상수 전 장관은 서울에서 세 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6년 서울 중랑갑에서 당선된 후 부인과 함께 지역구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

이 전 장관은 고려대 법대 3학년 때 3선개헌 반대 전국비상학생총회장으로 활동하다가 강제 징집됐으며, 1980년대 재야운동권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그는 판사 시절인 1982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인 ‘횃불회·아람회’ 사건(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유혈진압 관련 유인물 배포 혐의로, 박해전씨 등을 포함한 6명이 체포된 사건-법원은 2009년 재심 판결을 통해 관련자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 관련자의 영장을 기각한 뒤 법복을 벗었다.

이후 그는 1985년 한국노동상담소를 개설하고, 다음해인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주임변호사를 맡았으며, 1987년 최루탄에 맞아 숨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인권활동에 주력해 왔다. 같은 해 국민운동본부에서 각각 민권위원장과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직선제 개헌투쟁을 이끌었다.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즈음이다.

1988년 재야 영입 케이스로 평민당에 입당해 3선(13·15·16대) 국회의원과 제22대 노동부 장관(노무현 정부 2006.1~2008.2.4)을 역임했다. 그는 야권의 운동권 386, 486 출신의 정치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마침 인터뷰를 한 이날 486 운동권 출신의 강경파 정청래(鄭淸來)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2위로 당선)은 최고위원 회의에서 4·29 전패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 전원 사퇴를 주장한 주승용(朱昇鎔) 최고위원(1위로 당선)에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이에 주 최고위원은 “공개 석상에서 정말 치욕적이다. 저는 사퇴한다. 지도부도 사퇴해야 한다”고 말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러자 여성 운동권 그룹의 맏언니로 불리는 유승희(兪承希) 최고위원은 “어제 경로당에서 인절미에 김칫국을 먹으며 노래 한 소절 불러 드리고 왔다”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봄날은 간다’의 한 소절을 불러 빈축을 샀다.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았습니까.

“몰랐습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인 것 같네요.”

—정치하는 운동권 후배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지금 후배들은 솔직히 이념적으로도 투철하지 않다고 봅니다. 정말 민주화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투철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현실 정치를 하다 보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운동권으로 활동할 때의 생생한 정열과 열정 같은 것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일각에서 ‘그들이 반성해야 당이 새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성을 할까요.

“환골탈태하기 쉽지 않겠지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을 보면 진흙탕 속의 미꾸라지들이 갑자기 뛰어든 천정배라는 메기에 놀라서 막 움직이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단지 메기가 들어오니까 돌아다닌다는 것이죠. 정말 개혁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두 자기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 자기를 내던질 인물이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있습니까.”

야당, 주도해야 할 어젠다부터 선점해야

이상수 전 장관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대권행보에만 몰두하면 안된다고 했다. 지난 2007년 7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양극화민생대책위원위촉장수여식에 참석한 이 전 장관이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새정치민주연합이 살아날 방법은 없나요.

“문재인 대표가 당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요. 주역(周易) 제1장에 견군룡 무수 길(見群龍无首吉)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 용을 보되, 머리가 없으면 길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문 대표가 당을 살리고, 본인도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자신을 내세우고 대권 행보에만 골몰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선배로서 친정인 새정치민주연합에 충고할 이야기는 없습니까.

“야당은 중요한 문제를 이슈화해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이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뭐만 터지면 거기에만 매달려서 반사이익을 얻으려 합니다. 제가 제일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입장과 대안을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야당은 주도해야 할 어젠다, 소위 복지 문제라든지 경제 민주화 문제라든지 등의 의제들을 선점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