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土建’으로 승부하는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 월간조선

서울 중구는 수도 서울의 심장부다. 언론·금융·유통·패션·관광 등의 중추기능이 모두 밀집한 곳이자 외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빅5(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고궁, 명동, 남산)가 모두 중구에 있다. 하루 유동인구는 350만명. 한때는 사대문(四大門) 안 ‘딸깍발이’로 불리던 선비와 서민들의 주거지였다. 어쩌면 아직도 남아 있는 진짜 서울의 민낯이 중구인지 모른다.

최창식(崔昌植) 서울 중구청장은 ‘토건(土建) 서울시장’(이명박·오세훈) 밑에서 서울시 뉴타운사업본부장, 건설안전본부장, 지하철건설본부장을 거쳐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했다. 그가 손댄 굵직한 사업을 꼽아보면 청계천 복원, 뉴타운사업,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버스 중앙차로 건설, 서울시청 광장과 광화문 광장 건립 등이다. 만만해 보이는 사업이 하나도 없다.

생각해 보면,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서울을 항구도시로 만들어 한강의 자연 생태성을 회복하려 했던 역발상 사업이었다. 잠실 선착장에서 배가 떠서 상하이(上海)와 칭다오(靑島)로 물길이 열리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지금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여기는 일거리가 많아요”

자원봉사자와 연탄배달을 하고 있는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기자는 4월 7일 서울 창경궁로에 위치한 중구청사를 찾았다. 최 청장이 건넨 손이 묵직하고 두껍게 느껴졌다. 얼굴은 몰라도 손에서 토건의 촉감이 났다.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웃으며) 여기는 일거리가 많아요.”

중구는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도시다. 강남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도, 허겁지겁 조성한 인공 녹지도 없다. 북악·종묘·남산을 따라 덕수궁, 남대문, 남산 팔각정 등의 문화재가 있고 마천루의 회사와 무역상사, 은행 본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구 시가지는 건축물의 규모가 작고 저층이며 토지이용 효율이 떨어지는 지역이 즐비하다.

“서울시에 도시환경 정비구역, 이른바 도심재개발 구역이 53개 구역, 474개 지구가 있는데 그중에서 중구에만 21개 구역, 163개 지구에 이릅니다. 서울시의 34.4%예요. 현재 사업이 완료됐거나 진행 중인 곳이 111곳이고 아직도 손을 못 댄 곳이 34곳에 이릅니다.”

“일거리가 많아 좋다”는 최 청장의 말에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워커홀릭인가요?

일에, 조금은, 미쳤느냐는 질문이다.

“다소 그런 평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다 따라와요.”

그는 이러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어제도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던데 중구가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2011년 4월 보궐선거로 들어와서 4년째 일하고 있는데, 제가 목표한 체감과는 다르지만 거리가 많이 깨끗해졌어요. 약수네거리가 남의 동네처럼 바뀌었고 간판이 싹 바뀌었어요. 환경이 개선돼 만족도가 높아졌어요.”

1洞1名所 사업으로 중구의 線과 色 바꿔

한 주민센터에서 경로잔치에 참석한 최창식 청장. 서울 중구는 토박이가 많고 노인 비율이 높다고 한다. 중구의 경로당 운영비 지원은 58만~67만원으로 서울 자치구 평균(43만원)보다 많다.

“제가 여기 와서 보니 패션1번지라는 명동의 간판 수준이 형편없어요. 그냥 하급(下級)이에요. 집중적으로 700개나 고쳤어요. 원할머니 보쌈이라는 체인점 있잖아요. 가게의 노란 간판이 10개나 붙은 걸 다 떼고 2개로 팍 줄였어요. 처음엔 반발을 했는데 ‘정신 산란한 간판 좀 제발 정비해 달라’는 게 중구 여론이라 설득했어요. 작년엔 동대문 패션타운을 정비했고 올해는 신당동 일대 간판을 고치려 합니다.”

오는 11월까지 서울 신당동 ‘떡볶이 거리’와 다산로, 청구동 일대의 퀴퀴한 간판들을 깔끔하게 정비할 예정이다. 시비 2억5000만원을 더해 총 사업비는 5억3000만원. 1개 점포당 최대 200만원을 지원하고 초과분은 점포주가 부담한다.

도시의 선과 색채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개발은 최 청장이 오세훈 시장 때 이미 경험했다. 오 시장은 낡고 들쭉날쭉한 서울의 색채를 뜯어고치려고 부(副)시장급으로 서울시 디자인 총괄본부장직을 신설하고, 권영걸 서울미대 학장을 영입한 일도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75%가 서울 중구를 찾아요. 서울의 10대 관광명소 가운데 5개가 중구에 있고요. 고궁이 있고 성곽, 숭례문, 정동 근대 문화유산, 명동,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그리고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제가 1동(洞)1명소(名所) 사업을 추진 중인데요, 중구의 선과 색을 싹 다시 바꿔서 대중문화 관광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을지로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를 복원하고, 중림동에 천주교 성인 44인이 순교한 성지를 서소문 역사문화공원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주자동에 조선시대 활자주조와 인쇄를 담당했던 주자소 터에 인쇄정보 박물관도 만들까 해요.”

최 청장은 2011년 구청장에 당선된 직후 서울 중구 신당6동에 위치한 박정희 가옥 인근에 박정희 기념공원을 조성할 방침을 세웠다. 사업비는 300억원 규모. 야당과 인터넷 언론이 ‘박정희 우상화’라며 공격하자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반대의사를 표했었다. 심지어 “청장이 대통령에게 아부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신당동에 박정희 기념공원 조성 추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할 때까지 지냈던 중구 신당동 사저.

신당동 옛 사저는 박 전 대통령이 육군 1군 참모장이던 1958년 5월부터 국가재건회의 의장 공관으로 옮긴 1961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으로 2008년 10월 서울시 등록문화재 412호로 지정됐다.

“역사적 편견을 빼고 들여다보면 5·16이라는 사건이 한국사의 운명을 바꿨잖아요. 그것 때문에 춘궁기를 벗어났고 경제발전도 뒤따랐고요. 굳이 그런 역사적 장소를 숨길 필요가 없어요. 개방적이고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청장이 되고 보니, 방문객이 오는데 줄을 서서 기다려요. 그늘막도 없고 주차장도 없어요. 공원을 만들어놓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인근 구립 주차장을 활용하고 주변 집 몇 채를 더 사면 1100평짜리 공원 자리가 나오더라고요. 예산 300억원 가운데 52%는 녹지공원조성비, 42%는 주차장 설치에 쓰입니다. 논란이 된 박정희 전시시설엔 고작 6%만이 들어가요. 그 동네 사람들이 너도나도 좋다고 추진하는데 마치 예산 전부가 전시시설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도됐지 뭐예요. 또 〈나꼼수〉 등에서 박정희 동상까지 세워 우상화한다는, 없는 얘기까지 하고…. 며칠 계속 그런 기사가 나오자 대통령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박원순 시장도 시비 요청을 반려해 버렸어요.

안타까워요. 지금 동네주민들이 서명을 벌이고 모금도 한다고 뛰어다니고 있어요.”

―중구 민심의 특징은 뭔가요? 이 지역 사람들의 정서가 서울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하던데.

“여기는 토박이가 많아요. 서울의 심장부가 아닙니까. 1948년부터 국회의원 선거를 해서 10년 빼고 다 야당이 의석을 차지했어요. 여당은 박성범·나경원 의원밖에 없어요. 95년부터 시작된 구청장 선거도 여당 출신은 두 명(기간은 5년)밖에 없어요. 제가 여당 청장 중에서 제일 오래하고 있어요.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깊다고 할까요? 처음 당선됐을 때, 욕 엄청 얻어먹었어요. 구청 기능직을 안 뽑는다, 청소미화원부터 뽑아라, 누구 자리를 바꾸라는 등, 또 인사청탁은 왜 그리 많은지…. 심지어 재선 안 하고 싶으냐, 낙선운동 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 말 일체 귀담아 안 들었어요. 그냥 일만 했어요. 그랬더니 작년 선거 때는 욕을 안 해요. 할머니들이 ‘일은 잘하지 않아~’ 그 말씀만 하세요.

이북에서 오신 분이 많이 살고 사대문 안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 자부심 때문에 배타적이기도 하고 호남 사람도 많고 충청 사람도 제법 되고.”

청계천 복원 공사

최 청장은 서울시에 근무할 때 주로 토건 쪽 일을 도맡았는데 들여다보면 그 토건이 대개 교통과 관련돼 있다. 1985년 3월부터 서울시 도로국 도로계획과 계장과 과장으로 약 4년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1989년 11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서울 지하철건설본부 부장, 부본부장, 그리고 본부장으로 약 13년을 일했다.

“지하철 5호선 건설 공구 중에서 한강을 바닥면 아래로 통과하는 마포역과 여의나루역 사이의 구간을 건설할 때 가장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한강과 같은 큰 강의 강바닥 아래로 낮게 터널을 뚫은 것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거든요.”

그가 청계천 복원을 맡기까지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다. 2001년 미국 미네소타대 교통센터에 객원연구원으로 머물고 있을 때였다. 그해 7월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복원본부장으로 그를 내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귀국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다른 사람이 맡게 됐다. 허탈했다.

“서울시장 선거캠프 참모들이 공무원에게 맡기면 절대로 사업이 안 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맡게 됐다는 겁니다. 캠프 참모들의 논공행상과 공무원에 대한 폄하가 씁쓸했지요. 저는 객원연구원으로 떠나기 전의 보직인 지하철건설본부장으로 다시 발령을 받았고, 2003년 1월 서울시 건설안전본부장으로 보직이 바뀌었습니다.”

내심 속이 상했다. 그러나 청계천복원 설계가 끝나자 건설안전본부가 복원 공사를 맡기로 결정이 났다. 연애도 해본 사람이 잘하고, 일도 해본 사람이 잘하는 법이다.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엄청난 교통량을 처리하는 청계고가도로의 기능을 보강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어요. 율곡로, 종로, 을지로, 퇴계로 등 4개의 동서간선도로가 있는데, 동대문 동쪽에서는 천호대로와 왕산로 2개뿐이라 기능이 일반도로의 두 배가 넘는 청계고가도로까지 감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어요.”

“노무현 정부, 청계천 복원에 비협조적”

최창식 본부장은 고심 끝에 자동차 전용도로인 ‘두무개길’을 대체도로로 서둘러 개통키로 결정했다. 두무개길은 용산구 서빙고동 반포대교 북단에서 동빙고동, 보광동, 한남동을 거쳐 금호동4가 용비교 북단에 이르는 가로로, 길이 4.36km 너비 15~30m, 4~6차선 도로를 말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국무총리실, 건설교통부 등 중앙정부에서는 청계천복원공사에 비협조적이었어요. 서울경찰청은 노점상 단체의 조직적인 불법 방해를 제지해 달라는 서울시의 협조 요청을 부안방사성폐기물처리장 때문에 치안 인력이 부족하다며 거절했어요. 예정대로 공사 착수가 어렵게 되자 이명박 시장은 경찰 도움없이 시 자력으로 노점상에 대처하면서 착공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공무원 중에 청계천 복원이 어렵다고 한 이들도 많았다면서요?

“저도 처음엔 어렵다고 했어요. 원칙적으로 청계천을 복원하려면 평화시장을 다 들어내야 합니다.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논의를 하면서 부분 복원으로 방법을 찾았어요. 다 허물지 않고.

그런 식으로 4~5개월 고비를 넘어섰더니 다음부터 MB가 제게 터치를 안 해요.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묻지도 않고, 보고하면 다 들어주셨어요. 지적당한 일도 없었어요. 내가 프로니까.

MB는 자기가 건설사 사장을 해서 대단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가 더 잘 알지. 몇 가지 신뢰를 주니 편하더라고요.

한 예가 이거예요. 청계천고가(高架) 5.6km를 철거하는 데 3개월 만에 철거하도록 돼 있어요. ‘(내가) 이렇게 해놨어’ 하시며 공기를 줄였다는 겁니다. 제가 맡고 나서 보니까, 어떻게 공사구간을 쪼개느냐에 따라 공정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여러 파트로 나눠 일을 시켰어요. ‘건설사는 3개사지만 한 건설사를 3팀으로 한 팀당 300~400m 단위로 일을 나눠라.’ 이래서 했더니 60일 만에 (고가를) 다 들어냈어요.

삼일빌딩 앞 광교사거리에 있는 삼일고가도로(삼일빌딩~남산 1호터널)가 제일 높았는데 60일 되던 날, 새벽에 싹 내렸어요. 날만 새면 고가가 하나씩 사라지니 주민 데모도 하나 둘 사라졌고요. 만약 3~4개월, 6개월 철거한다고 끙끙댔다면 주민들이 안 도와줬을 거예요.”

“인제 와서 나한테 ‘똥박’ 씌우느냐고”

최 청장의 ‘토건’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만들 때도, 완공 60일 남기고 내게 일이 넘어왔어요. 거긴 네거리도 아닌 팔거리 아닙니까. 교통이 얼마나 복잡한 곳이야. 그걸 60일 만에 끝내라는 겁니다. 5월 1일 어린이 백일장을 서울광장에서 한대요. 솔직히 화를 냈어요. 인제 와서 나한테 ‘똥박’ 씌우느냐고. 게다가 개장 한 달 전에 분수대를 만들어보자는 겁니다. 딱 맡자마자 제가 그랬어요. ‘절대 공기가 부족하다’고요. 그래도 할 수 있나요? 매일 오전 7시에 건설업체 사장하고 광화문 환구단 앞에 컨테이너 하나 갖다놓고 만났어요. 거기서 의사결정을 딱딱 해줬습니다. 우선 시청 광장 잔디가 활착(活着)하려면 30일 이상이 걸려요. 잔디 심는 일이 제일 우선이더군요. 그런데 잔디 심으려면 우선 교통부터 막아야 합니다. 차 막다가 사고나면 큰일 나니까, 고심고심 하다가 삼일절을 ‘차 없는 날’로 정하고 교통체계를 싹 바꿨습니다.

한참 뚝딱뚝딱하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시장실이 청사 3층에 있는데 청사에서 내려다보니 퍼런 게 깔려 있단 말이에요. MB가 뭔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저게 뭐냐’ 그러더라고요. ‘뭐? 잔디를? 벌써 심었어’라고 하기에 ‘활착하려면 한 달 이상 걸려 일찍 심었다’고 했어요. ‘그래?’ 하더니, 그다음부터 진짜 잔소리 안 해. 하하하.

그러다가 며칠 있다가 ‘그것 말이야. 분수를 한번 하지’ 그래요. 완공 한 달 앞두고 말입니다. 원래 분수대 공사는 최소 3~4개월이 걸려요. 갑자기 전화를 받았는데, 순간적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했지요.”

당시 최창식 건설안전본부장은 국내에서 제일 분수 잘 만드는 업체 사장 몇 명을 불렀다. 분수에 들어가는 노즐은 국내 생산이 불가능한 품목. 독일제가 제일 좋은데 절차에 맞게 수입하려면 송장(送狀) 만드는 데만 보통 3~4개월이 걸렸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좋다! 해보자. 제일 먼저 분수 앉힐 자리부터 찾았어요. 지하시설 구조물을 분석해 보니 가로세로 10m가 딱 나와. 수경시설은 뭐가 나쁘냐 하면 1년에 6개월은 못 써요. 추우니까 흉물이 되는 거야. 평상시는 보도로 비 올 때는 배수로가 되게 해야 했어요. 또 안 쓸 때 캡을 씌워놓으면 아무도 분수대인지 모르게.

국내 분수업체에다 서둘러 독일 가서 노즐을 사오라고 시키고, 그 사이 분수대 밑에 물탱크를 만들고, 기계실・설비실을 한 달 만에 다 만들었어요.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몇 달 걸리는 겁니다. 보통 시험가동을 일주일 정도 하는데 저는 개장 닷새 남겨두고 테스트를 했어요. 그리고 5월 1일 가동을 했죠.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고 행복한 표정이어서 기뻤어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지. 아무튼 MB하고 이런 식으로 일을 한 거예요. 어찌 보면, 모시기 편했어요.”

―MB와 손발이 잘 맞았던 모양이네요.

“그렇죠. 제가 MB보다 ‘반(半)걸음’만 앞서가면 되는 거야. 그럼 아무 소리 못해요. 하하, 당연하지. 시장은 여러 일을 하지만 나는 맡은 바 일만 하는데 치이면 안 되지.”

―한발을 앞서면 심기를 거슬릴 수 있으니 딱 반발만 앞선다는 건가요?

“하하하.”

―업무 스타일이 오세훈 시장은 MB와 많이 차이가 나죠?

“그럼요. 이명박 시장은 공무원 앉혀놓고 그냥 싸움을 붙여. 그리고 다 들은 다음 자기가 딱딱 정해줘요. 어떻게 보면 그게 장점이야. 오세훈 시장도 공무원 집단에서 얘기하는 것 듣고 하니까….

지금 박원순 시장은 그게 안 된다는구만. 공무원들이 의사결정의 주축이 되게 해야 해요. 수십 년 노하우가 있는 공무원을 제쳐놓으면 일이 안 될 수밖에 없어요. 오 시장도 공약이 많았어요.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도 엄청나게 어려운 거예요. 광화문 광장도 굉장히 어렵고, 한강르네상스, 정말 만만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아라뱃길 무산 아쉬워”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는 꽃을 못 피웠는데, 아쉬운가요?

“당연하죠. 2조원 들여 아라뱃길 만들었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죠. 거기 땅을 다 파놓고 방치돼 있는 거야. 원래 고려 때부터 운하한다고 하고, 조선에서도 운하를 시도했다가 암벽 때문에 포기했는데 강화도 뱃길에 풍랑사고가 많았대요. 노 대통령 때 수자원공사가 연구용역을 하니까, 타당성이 매우 좋게 나왔어요. 게다가 서울 구간의 이용가치가 용역에서 빠져 있어요. 이용은 도시에서 이뤄지는 거야. 서울에서 이뤄지면 수익이 높아질 것은 당연합니다. 따질 것도 없이 아주 좋은 사업이구나, 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꼭지를 못 따요. 노 대통령도 결심을 못 해요.

남북협의만 되면 5000t급 여객선이 여의도에서 출항해도 문제가 없다고 봤어요.

한강이 그동안에는 밖에서 바라보는 강이었지만 이제는 강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항구도시로 만들자는 것이 한강르네상스의 기본 방침이었습니다. 서울을 수변도시로 아름답게 만들고 물로 도시활동을 끌어들이자는 것이 핵심인데, 강 둔치를 잘 정비했고 새빛둥둥섬도 그래서 만들었던 것이고. 접근성을 좋게 하려고 한강대로에 버스정류장을 세우고, 엘리베이터 타고 강으로 내려갈 수 있게 만들었어요.

생태공간도 많이 만들었어요. 강서에도 있고 여의도 샛강, 암사동에도 만들고. 지금까지 한강변은 도시의 변두리였잖아요. 외국의 경우 문화예술 활동이 강변에 집중됩니다. 배가 안 다니면 강변에 활동이 없어. 집중이 안 되니까.

그래서 우리도 한강에 문화예술 활동을 끌어들이려 했는데, 어쨌든 상당 부분 사업이 추진됐지만 박 시장이 오고 난 다음에는 중단이 됐지요. 그것도 오 시장의 큰 업적 중 하나라고 봅니다.”

―아쉬운가요?

“아쉽죠. 2조원 들여서 만든 아라뱃길을…. 여의도에서 배만 띄우면 되는 거야. 돈 들어가는 것도 이제 없어. 이제 서울 시민들이, 골프 다음에 수상레저라고 하잖아요. 요트 터미널을 잠실 밑에까지 둘 수 있잖아요. (오 시장 때) 여의도에 요트 터미널 업체를 정했는데 망했잖아요. 공모 당선됐는데 아깝지….”

“서울의 미래는 강북에 있다”

600년 이상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의 고궁들은 관광 서울로 집약된다. 최창식 청장이 성곽길을 둘러보고 있다.

―강남북 격차가 해마다 심화되고 있어요. 강북이 살고, 서울 중구가 사는 길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서울시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강남개발 담당 사무관’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거기서 6년을 일했어요. 강남은 나름대로 새로운 도시로서 경쟁력이 있지만 앞으로 미래는 강북이, 특히 도심의 경쟁력이 더 높아진다고 봐요.

강남은 코엑스 앞에 한전부지 빼고는 거의 채워져 있잖아요. 강북의 을지로 3~6가는 그냥 비워져 있어요. 옛날 낙후된 상태 그대로 있어요. 그걸 어떻게 개발하느냐는 견해 차이가 있지만 현상적으로 둘 수는 없어요. 오히려 강북 도심은 인프라가 잘 깔려 있어요. 지하철 노선의 접근성이 좋고 상하수도 잘 돼 있고 경관도 좋죠. 녹지 접근, 역사자원도 좋아서 잠재력이 높다고 봅니다. 강남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을 강북에 채워주면 가능하다고 생각이 돼요. 미래는 강북에 있어요. 억지로 때려 부셔서 고층빌딩을 올릴 필요는 없다고 봐요. 중구가 어떻게 가닥을 잡느냐가 다른 강북 지역에 참고가 될 거야. 이젠 구(舊) 시가지를 명동처럼 활성화시키자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을지로, 퇴계로 같은 구 시가지가 다 건축법에 안 맞아 아예 규제를 풀어 명동처럼 활성화시킬 겁니다. 규제를 많이 풀긴 했는데 일부 못 푼 것은 법 개정을 해서라도….”

―아직 집수리도 마음대로 못 한다면서요.

“옛날에는 재개발지구로 지정되면 건물을 아예 못 짓게 했어요. 고치지도 못해요. 철거할 거 왜 짓냐고. 그런데 발상을 바꾸면 되는 거야. 요즘은요, 물자라는 것이 낭비가 될 수가 없어요. 물자를 투입해서 더 많은 수익을 얻으면 낭비가 아니란 말이야. 10억원을 들여 20억을 벌면 낭비가 아닌 거죠. 그러니까 그런 것은 규제하지 말자는 겁니다. 대신 재개발 지역에 10층 건물을 지어선 안 되죠. 4층 이하는 몰라도. 집수리도 할 수 있게 하고, 건폐율도 완화하고….”

호텔 29개 허가
올해 말까지 22개 더 허가

서울 중구는 계속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도심 공동화(空洞化) 현상 때문이다. 1975년 28만5000명이던 중구 인구는 1999년 6월에 12만명까지 줄었다. 현재는 14만여 명 수준. 인구를 유인(誘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핵심은 일자리와 교육이다.

“우리 중구청의 일자리 주선으로 호텔, 대형 매장, 중소기업 등 민간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구민이 지난 3년 가까이 5000여 명에 이릅니다. 공공 일자리 1만여 개를 포함하면 1만60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어요.”

중구청은 최근 ‘2015년 일자리 창출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올해 75개 사업에서 8078명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먼저 청년층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통한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

미용뷰티산업의 활성화에 따라 사단법인 한국미용직업교육협회와 연계해 전문인력을 키워내고, 한국의류업종살리기운동본부와 함께 동대문 패션산업에 맞는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리스트를 양성해 취업과 이어지게 한다는 계획이다.

“민선 5기 구청장에 취임한 후 7340실 규모의 29개 호텔을 허가해서 지금까지 27개 호텔에 약 240명의 일자리를 마련했어요. 앞으로 올해 말까지 22개 호텔이 더 들어서 15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요. 저는 중구에 대형 상가나 호텔이 들어서면 우리 중구 구민을 직원으로 우선 채용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MOU도 체결해요. 대신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도 다 풀어준다고 약속합니다.

그랬더니 스카이파크 호텔을 비롯해 명동 나인트리, 더 그랜드, 렉스호텔, 뉴서울호텔, 클릭호텔 등에서 생겨난 233개 일자리 중 118개 자리가 우리 중구민들에게 돌아갔어요.”

일자리·교육으로 空洞化 극복

일자리가 생긴다고 반드시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다. 교육여건을 갖춰야 정착해서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 배우고 가르칠 환경이 안 되면 강남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최 청장은 “2011년 9월 공모를 통해 선발된 대경중, 금호여중, 장충고를 대상으로 명문학교 시범 육성사업을 벌였다”며 “학교 수준에 맞는 수준별, 맞춤별 학습 시스템을 도입하고 자율학습 프로그램을 다양화시켰다”고 했다.

그 결과 3개 시범학교 모두 방과 후 학교 수업 학생 중 2과목 이상 성적이 오른 학생이 90% 이상 됐다고 한다. 학부모 만족도도 96%까지 올랐고 장충고의 경우 사교육비가 8억원가량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학업 분위기는 중구 전체로 확산됐다고 한다.

최 청장은 “서울 중구가 문화자산이 많으나 매우 낙후되고 정비되지 않아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제가 안에 들어와 살펴보니 상당한 경제·문화·사회 기능이 강남으로 이전됐음에도 아직 서울의 중심지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세요. 을지로변, 퇴계로변, 충무로변 등은 전국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되어 있지만 더 이상 부정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앞으로 중구가 강남보다 더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의 보고(寶庫)입니다. 교육만 받쳐주면 사람들이 정주할 겁니다.

가득 찬 그릇은 더 이상 담을 수가 없어요. 비어 있는 도심은 미래 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죠. 서울 중구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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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土建’으로 승부하는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MB보다 ‘半걸음’만 앞서가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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