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인 이야기》 번역한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가. 7년 전 제주도로 귀향하며 장서 1만2천권
절반으로 줄여
⊙ “현재 한국 소설을 번역하는 방식 문제 있다,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에서 교훈 얻어야”
金碩禧
⊙ 63세.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同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중퇴.
⊙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이상의 날개》,
수필집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역자 후기 엮음 《번역가의 서재》 등 펴냄.
⊙ 《털없는 원숭이》 《시계 박물관》 《로마인 이야기》 《살아있는 역사》 《쥘 베른 걸작선》 등
200종 이상의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책 번역. 제1회 한국번역대상 수상
절반으로 줄여
⊙ “현재 한국 소설을 번역하는 방식 문제 있다,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에서 교훈 얻어야”
金碩禧
⊙ 63세.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同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중퇴.
⊙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이상의 날개》,
수필집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역자 후기 엮음 《번역가의 서재》 등 펴냄.
⊙ 《털없는 원숭이》 《시계 박물관》 《로마인 이야기》 《살아있는 역사》 《쥘 베른 걸작선》 등
200종 이상의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책 번역. 제1회 한국번역대상 수상
소년은 바다 너머를 꿈꿨다. 언덕에 오르면 장벽처럼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항구에 드나드는 배를 바라만 보던 소년은, 어느 날 발을 뗐다.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르리라’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소년에겐 그곳에 오를 티켓이 없었다.
출발도 전에 목덜미를 붙잡혀 배 밖으로 끌려나온 소년은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앞으로는 꿈속에서만 여행을 하겠어요.” 어른이 된 그는 평생 소설을 펴내며 책상 앞에 앉아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소설가 쥘 베른(Verne)의 이야기다.
아니, 쓰고 보니 번역가 김석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년 김석희의 꿈은 ‘마도로스(선원)’였다. 선장이 돼서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꿈은 꿈으로 끝났다. 현실의 벽은 파도보다 높았다. 어른이 된 소년은 책상을 마주 대하고 문장의 바다를 항해했다.
제주도로 귀향하며 장서 절반으로 줄여
한국 최고의 소설가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 최고의 번역가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는 크게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바로 김석희다. 1979년 처음 번역의 세계에 발을 디뎌 지금까지 250권가량의 책을 번역했다. 《털없는 원숭이》 《로마인 이야기》 《살아 있는 역사》(힐러리 클린턴 자서전) 등 제목만 들어도 ‘아’ 소리가 나오는 책들의 번역자가 바로 그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그는 ‘그동안 여러 번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또 할 말이 있을까’ 반문했다. 자신이 ‘이미 읽힌 책’이 아니냐는 얘기다. 책에는 베스트셀러가 있고, 스테디셀러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굳이 따져보자면 그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마침 쥘 베른 걸작선 13종의 번역작업이 끝난 참이었다. 2002년에 시작하여 중간에 출판사 사정으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 13년 만에 끝낸 과제였다. 오랜 숙제를 끝낸 이의 홀가분함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김씨는 고향 제주에서 살고 있다. 2009년 4월에 귀향했으니 꼭 7년이다. 그의 이층집은 애월 바다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온 곳에 자리하고 있다. 외지인의 집처럼 제법 세련된 외양을 하고 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보이는 집이다.
집 안에 들어서니 역시 한쪽 벽을 메우고 있는 책이 보였다. 왼쪽엔 김씨가 번역한 책이 단정하게 모여 있고 오른쪽에는 소설 전집이 꽂혀 있는 식이다. 책이 이것뿐인지 묻자, 손짓으로 2층을 가리킨다.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작업실에 들어서니 레일이 달린 2단 책장이 눈에 띈다. 묘한 분위기의 서가였다. 오래전에 출간된 구간 도서의 중간 중간 요즘 책들이 섞여 있다. 낡은 책등이 헌책방의 분위기를 내지만, 한권 한권 공을 들여 책을 꽂았다는 게 눈에 선하게 보이는 책장이라 잘 관리되는 도서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의 종류는 그야말로 다종다양했다. 인문서부터 전문서적, 소설, 시집 등 이채로웠다. 몇 권이나 되는 건지 묻자 ‘지금은 6000여권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천에 있는 42평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때는 집안 곳곳에 책이 쌓여 있었어요. 이방 저방 가리지 않고 바닥에 가득 쌓여 있는 식이었지요. 나중에 정리하며 보니 1만2000권 정도 되더군요. 제주도로 이사 오기 전에 정리를 했어요. 버리기도 하고 3000~4000권 정도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습니다.
인생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어요. 제주도 집에는 설치해 놓은 책장에 딱 맞는 만큼만 책을 들여놓자, 그렇게 결심했지요. 그렇게 줄였는데 이사 와서 보니 제주도 집에 만든 책장에 책을 다 넣고도 1000여 권이 제자리를 못 찾았어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애월도서관에 기증을 했어요. 젊을 때는 책 자체가 그저 소중했는데, 지금은 조금 거리를 두게 됐다고 할까요.
지금도 구입하는 책 외에 매년 200여권 정도 신간 도서가 들어옵니다. 1년에 200권은 내보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지요. 요즘도 2년에 한 번 정도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재산 가치가 있는 소유물로 생각한 적이 없어요.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명난 책은 과감히 정리합니다.”
좌초된 마도로스의 꿈
—책장의 책을 들춰보니 안이 깨끗합니다.
“저는 책에 줄을 긋거나 페이지를 접거나 하지 않아요. 깨끗하게 읽지요. 책에 대한 예의입니다. 독서 스타일로 보면 정독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훑어 읽지요. 시도 때도 없이 읽는 편입니다. 일종의 활자 중독증이라고 할까요. 화장실 들어갈 때도 자연스럽게 신문을 들고 들어갔으니까요. 제주에 내려와서 많이 바뀌었어요. 단독주택이라는 게 참 돌볼 게 많습니다. 집 주변을 정리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흘러요.”
책장에서 책을 한 권씩 들춰보는 기자에게, 김씨가 작업실에 딸려 있는 테라스 쪽을 가리키며 ‘나가 보라’고 재촉했다. 자그마한 테라스에서는 바다가 보였다. 그 풍경이 그의 자랑거리인 듯했다. “나무 데크 위에 놓인 가로로 긴 벤치에 누워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게 기쁨”이라고 그는 말했다.
소년 시절의 김석희에게 바다는 기쁨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바다는 저에게 장벽이었습니다. 섬을 벗어나고 싶었지요. 마도로스가 되려고 했습니다. 해양대에 진학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작은아버지가 6·25 때 납북되셨습니다. 연좌제가 버젓이 존재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배에 오르지 못한 소년이 택한 건 문학이었다.
“등하굣길 중간에 도립도서관이 있었어요. 고모부가 도서관장이셨습니다. 서고를 마음대로 드나들며 책을 꺼내 읽는 특권을 누렸지요. 그 시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게 기억납니다. 두 명의 살인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생각을 거듭한 끝에 깨달았지요. ‘아, 그것이 작가의 세계관인 것이구나’ 이 두 작품은 지금까지도 제 독서 이력에서 유일하게 서너 번 되풀이해 읽은 작품이에요. 작가의 길로 이끈 책이기도 합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라면 1개 안 사먹고 책 두 권 사는 식이었지요. 청계천변에 헌책방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책을 사서 읽은 다음에 바로 헌책방에 내놓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결혼할 당시 이미 1000권가량의 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아마 그거에 반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왜 이사를 자주 다녀야 돈을 번다고 하는 얘기가 있었잖아요. 저는 책이 너무 많아 이사를 세 번밖에 못했어요. 이사할 때마다 인부들에게 죄송해서 수십만 원씩 따로 수고비를 챙겨 드려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집으로 재산을 불리는 건 책 때문에 애당초 불가능했지요.”
잃어버린 10년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중퇴하셨지요.
“대학원 1학기를 마친 참이었는데 지도교수가 돌아가셨어요. 어쩐지 김이 새서 그길로 그만뒀지요. 사실 그전부터 이미 대학원 생활에 회의를 느낀 참이었습니다. 대학원을 간다는 건 교수에 뜻이 있다는 건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교수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에요. 일단 학문에 뜻이 없었어요. 게다가 말주변도 없어요. 교수라는 게 결국 말을 잘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대학원 중퇴한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대학원 중퇴 후 군대, 1979년에 제대한 그가 사회에 다시 정식으로 명함을 내밀게 된 건 1988년의 일이다. 그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같이 들어온 동기들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 이미 헤겔을 읽고 논하던 아이들이었으니까요. 그나마 소설이라면 조금 자신이 있더라고요. 대학교 2학년과 3학년 2년 연달아 대학문학상에 당선되기도 했고요.
신춘문예에 응모하는데,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예심에서 떨어지면 모르겠는데 최종심에서 떨어지니까 포기가 안 되는 겁니다. 같이 문학하던 친구들은 하나둘 문예지로 등단하는데, 저는 신춘문예만을 고집했어요.”
최종심에 올랐다 떨어지기를 6번, 신년호 신문 지면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했다.
문득 일본의 고승 구카이(空海)가 떠올랐다. 구카이는 진언종의 창시자로 우리나라로 치면 원효대사 같은 인물이다. 대학에 낙제해 떠돌던 그가 당나라를 방문하는 ‘견당사’ 일행에 끼여 당나라를 방문하기까지 꼭 10년의 공백이 있다.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그 10년간 구카이는 어떤 시간을 보낸 것일까. 일개 유학승으로 당나라에 도착한 그는 당대 지식인들에게 최고의 지식인으로 인정받아 밀교의 전수자가 되었다. 저널리스트 다치나바 다카시는 ‘10년이라는 수수께끼의 공백시대가 시간이 흘러 개화한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석희는 ‘공백시대’를 어떻게 보낸 걸까.
“여기저기 다녔지요. 한 번은 삼성출판사에 촉탁직으로 들어갔어요. 제3세대 문학이라는 주제로 한국문학을 골라 24권짜리 전집으로 편찬하는 기획이 있었습니다. 이걸 맡아서 했는데, 이게 시쳇말로 ‘대박’이 났어요. 그길로 정직원이 됐는데 얼마 안 가 윗사람과 싸우고 나왔습니다. 사회발전연구소라는 곳에도 있었어요.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도 그때 같이 일했지요. 계속 마음은 신춘문예에 가 있었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았으면 아마 술마시다가 폐인 됐을 거예요.”
—번역도 그 시절 시작했나요.
“1979년에 학생운동하다가 제적된 친구가 부탁해서 처음 번역을 맡아 했어요. 《아돌프》라는 소설이었지요. 본격적으로 저를 번역으로 이끈 책은 영국작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책입니다. 1982년에 처음 번역한 책인데 그때만 해도 영어 실력이 너무 짧았어요. 번역이 뭔지도 잘 모를 때였고요.
1997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게 됐어요. 다듬으려고 보니 다듬는 수준으로 안되겠더라고요. 다시 번역했습니다. 제가 소설가로 등단한 게 1988년이니 1997년이면 10년간 소설가와 번역가로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시점이었어요. 이 책을 다시 번역하면서 ‘이만한 작품을 써 낼 수 없다면 아예 글쓰기를 작파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시한 소설을 써 내느라 끙끙대느니 좋은 작품을 번역하는 편이 훨씬 뜻있는 작업이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이후 2004년에 열린책들로 출판권이 넘어가 다시 출판될 때 다시 한 번 개역 수준의 수정을 했어요. 도합 세 번이나 번역한 셈입니다.”
세계화 열풍 맞아 대박난 《로마인 이야기》
김씨의 번역은 불어, 영어, 일본어를 망라한다. 분야도 다양하다. 소설, 인문서적, 종교서적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김석희표 번역서를 일부러 고르는 것보다 김석희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을 피하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다.
—대중들이 기억하는 ‘김석희표 번역’의 대표작은 역시 《로마인 이야기》입니다.
“1995년의 일이지요. 어느 날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오라는 겁니다. 김언호 사장과는 책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동지 같은 관계예요. 가 보니 번역가 오정환, 정도영 선생이 나와 계셨어요. 김 사장이 일본에서 사 온 《로마인 이야기》 원서를 내밀었어요. ‘한국의 여러 출판사가 출판을 검토했다 퇴짜를 놨다던데 읽어 보고 이유가 뭔지 알려 달라’고 말하더군요.
일주일 후 네 명이 다시 모였어요. 번역자들의 결론은 ‘정말 좋은 책’이라는 거였습니다. 바로 출판을 결정했지요. 15년간 저술해 출판한 책이니 세 명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제가 《로마인 이야기》를 맡기로 했어요. 다른 선생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을 맡기로 했지요.
출판하자마자 ‘대박’이 났지요. 출판을 검토했던 다른 출판사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겠지요. 아마 일본인이면서 여성인 데다가 아마추어 역사가가 쓴 책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놓은 거라 생각합니다.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물의 기존 기술 방식을 바꾼 책입니다. 내용이 좋았지만 문체도 참 좋았어요. 여성 작가가 썼지만 힘이 있고요. 재미있게 읽게 하는 문체예요. 문체가 와 닿아야 내용이 와 닿습니다. 원문 자체가 읽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번역도 힘을 받지 못합니다. 문체는 사람이기도 해요. 시오노 나나미가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해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 정몽준 당시 축구협회 회장이 초대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이때 잠깐 스치듯이 만났는데, 만나 보니 느낌이 과연 번역할 때 문장에서 전달된 느낌과 같았어요.“
“《로마인 이야기》는 아내와의 공역”
—다른 나라의 고대사 해설이 ‘대박’이 난 이유가 뭘까요.
“시대 상황과 잘 맞았어요. 당시 우리나라엔 ‘세계화’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재계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진출 바람이 활발할 때였는데, 재계는 이 책을 현지화 정책의 교과서 격으로 읽어 내더군요. 저자 대신 와서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어요. 번역가가 무슨 강연이냐며 일절 거절했지요.
재계에서의 인기가 청소년층으로 옮겨가더군요. 마침 이윤기 선생이 번역한 《그리스 로마 신화》도 출간한 참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사를 청소년들이 읽기 시작한 거예요. 청소년들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를 마주 대하기 시작한 겁니다.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게 됐다고 할까요. 당시 한길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공모전을 열었어요. 부상이 이탈리아 현지 견학이었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읽게 하자는 의도에서 기획한 행사였어요.
《로마인 이야기》는 교양으로서의 역사 읽기의 길을 열어 줬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대중적인 역사책이 활발하게 발간되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9월 시오노 나나미가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었지요. 극우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요.
“그때 저에게도 의견을 묻는 전화가 많이 왔어요. 나는 번역만 했을 뿐, 내가 무슨 평가를 하냐고 답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래요. 시오노의 발언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 전에 봐야 할 게, 그 사람은 정치가나 사상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탈리아에서 살며 더군다나 고대사를 탐구하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에게 현실 문제에 대한 엄밀한 판단을 구하는 건 지나친 요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또 일본 사람들은, 일반인이건 지식인이건, 한일 관계나 역사에 대해 우리만큼 관심도 없고 이해도 그리 많지 않은 게 보통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시오노의 책을 좀 읽어주었다고 해서 그에게 우리 편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지요. ”
—《로마인 이야기》가 많이 팔렸으니 돈 좀 버셨겠습니다.
“러닝개런티로 계약하지 않고 매당 번역료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5권부터는 번역료가 곱절로 뛰더군요.”
— ‘번역공장’이라는 별칭까지 있습니다. 한달에 1권 꼴로 번역을 했나요.
“이제는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아내와의 협업이 없었다면 번역공장은 못 돌아갔을 겁니다. 특히 《로마인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제 스스로 ‘공역’이라고 얘기할 정도예요. 아내는 사회과학 도서 같은 논픽션을 좋아하고, 저는 문학을 좋아합니다. 쓰는 단어와 문장이 달라서 초기에는 고생을 좀 했어요.
결혼한 지 이제 40년이 됐는데, 40년 된 부부 중에 아마 저희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부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좀 게으른 편인데 아내가 있어 이만큼 일할 수 있었어요. 기댈 사람이 있는 거잖아요. 엄마, 아빠가 만날 집에 틀어박혀 책에 코를 묻고 번역을 하는 모습에 질렸는지 아들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어요.”
남편과 같은 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부인은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간 날에도 위층에서 작업에 열중이었다.
“노벨상 연연은 사대주의”
—어느 작가의 문체를 가장 좋아합니까.
“이청준 작가의 문장입니다. 지적이면서도 꾸며대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사상과 감정은 또 어떻습니까. 〈눈길〉을 읽고 눈물을 안 흘릴 수 있나요. 이문구 작가의 문장은 따스해서 좋아합니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요.
“역시 이청준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해마다 노벨문학상에 연연하는 것, 그게 사대근성 아닙니까. 그게 뭐라고 그러는 겁니까.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노벨문학상 하면, 고은 선생님이 종종 거론되는데, 저는 번역하는 사람이니 번역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고은 선생님의 시는 불교 사상을 배경으로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들을 번역한 건 가톨릭 신부입니다. 서양에 소개되는 것이니 신부가 하는 게 더 낫지 않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독일이나 프랑스가 사상의 차원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역사가 무려 200년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같은 작품이 어쩌다 나온 게 아니에요.
말이 나온 김에 번역 얘기를 해 볼게요. 우리 소설을 해외에 소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1만 단어 수준의 책을 2000~3000 단어 수준으로 바꿔 번역합니다. 성인이 읽는 소설인데 영어로 번역하면서 청소년 도서로 바꾸는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같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기존에는 한국인 번역자와 해당 언어 원어민이 짝을 이루어 번역하고 있는데,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번역의 전과정을 책임지고, 조금 더 완벽하게 번역하는 게 불가능한 방식입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이례적으로 성공했지요.
“거기서 시사점을 얻어야 합니다. 한 번역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작업했어요. 게다가 소설 자체를 현지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번역 기계처럼 단순하게 한국어를 영어로 옮겨놓는 방식으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국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단어나 대목을 만나면, 번역자가 신경숙 작가와 직접 논의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작가가 다시 쓰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독자 입장에서 이해의 폭이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번역된 한국 소설로는 최고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요. 예를 들면, 이청준 소설가의 작품이 이런 식으로 제대로 번역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습니다. 돌아가신 게 너무 아까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메세나’ 한다고 하지 않나요. 그림만 사지 말고, 이런 데에도 신경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작정하고 제대로 번역해 내놓으면 어떠냐는 말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노벨문학상에 해마다 목을 맨다? 한국 가요가 외국에서 인기를 얻고, 한국 드라마가 줄줄이 히트한다니 마치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번역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집이나 소설을 1년에 도대체 몇 권이나 구입합니까. 국내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문학이 해외에서 대접받겠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몇 년간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심사에 참여했습니다. 2010년에도 참여했지요. 2010년이 어떤 해입니까. 한일합방이 일어난 지 100년, 광주 5·18이 30주년이 되는 해예요. 그런데 소설이든 연구서든 분야를 막론하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본 책이 없었어요. 화가 났습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의무를 방기하는 게 아닌가. 80년 광주를 그렇게 뜯어먹고, 단물을 받아먹었으면 작가로서 고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단 한 권도 없더군요.”
—언젠가부터 한국 문학계는 무라카미 하루키로 대표되는 ‘사소설’적인 문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놀랐어요. 교보문고에서 과거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책을 저자별로 집계했더니 1위가 하루키 아니었습니까. 2위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3위에 비로소 한국 작가인 공지영씨가 등장하더군요. 그런데 독자를 탓하면 안 됩니다. 독자는 냉정하고 정확합니다. 재미있다고 판단해 읽는 겁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요즘 큰 출판사들도 힘들다고 합니다. 출판계는 과도기를 3년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독자들이 책을 할인가가 아닌 정가에 구입하는 습관이 드는 데 3년은 걸릴 거라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작은 출판사들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느냐예요. 전문서적이나 장르소설 같은 다양한 책을 내는 작은 규모의 출판사들이 무너질까 걱정됩니다.”
“고향과 거리를 둔 게 귀향 성공 비결”
화제를 귀향 얘기로 돌렸다. 귀향 생활에 대해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고향과 거리를 둔 게 귀향 성공 비결입니다. 내려오기 전에 심리적인 준비를 했어요. 제주도에는 ‘괜당문화’라는 게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친척들끼리 서로 돕는 문화예요. 육지랑은 많이 다릅니다. 집성촌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요. 참석해야 할 행사도 많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아요. 저는 스스로 원칙을 정했어요. 갈 수 있는 만큼만 간다. 처음에는 욕도 듣고 그랬는데 나중엔 ‘김석희는 원래 저렇다’고 굳어져서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고향은 제주시 쪽이지만 애월에 정착해 물리적인 거리를 유지한 것도 비결이겠지요.”
동네 이웃들과도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아버지도 이웃사촌 중 한 명이다.
—요즘에도 하루 8시간 일하고, 8시간 놀고, 8시간 자는 ‘888’ 습관을 유지하나요.
“제주 내려와서는 8시간 일하기가 힘든 것 같네요. 저는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 저녁 대여섯 시쯤 식사를 하지요. 한 끼 먹는 대신 제대로 차려 먹습니다. 국에 좋아하는 반찬을 곁들여 먹는 식으로요. 회사를 다니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고 집에서 작업하는 사람이라 가능한 거겠지요. 제 중년의 꿈이 식당 차리는 거였어요. 바닷가에 식당 차려 놓고 그날 그날의 신선한 재료로 요리해 주고, 맛 없으면 돈 안 받고….”
요리 얘기가 나오니 김씨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제주도는 재료가 좋잖아요. 기존의 전통적인 요리법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약간의 변화만 줘도 새로워지고 맛있어집니다. 돔베고기라는 게 있어요. 돔베는 도마라는 의미인데, 저는 돔베고기를 요리할 때 목삼겹을 써요. 찜통에 부추를 깔고 돔베고기를 올려서 쪄 먹어요. 다 먹을 때까지 부추향도 나면서 맛있어요. 여름엔 콩국수도 직접 해 먹고 몇 년 전까진 작살로 문어도 직접 잡았어요. 가족들에게 문어죽도 끓여 주고, 안 그래도 요리에 관한 책도 써 볼 생각입니다.
—주량은 얼마나 됩니까.
“세다고 해야겠죠. 술을 마시면 항상 마지막에는 일행을 챙기고 있으니까요. 제주도에 오니 전반적으로 술을 많이 마십니다. 제주도는 돼지고기와 회가 좋은 지역 아닙니까. 두 가지는 ‘안주의 쌍두마차’잖아요.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술 마셔도 다음 날 머리가 맑아요. 파도가 철썩 부딪칠 때마다 오존이 생겨서 그런 것 아닌가 혼자 추측해 봅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세월이 길었는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4년 전부터 매일 108배를 하고 있어요. 쉽게 할 수 있는 전신운동으로 그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원래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번역을 하느라 밤에 깨어 있으면 담배를 물고 있지 않을 때가 거의 한순간도 없었어요. 하룻밤에 세 갑을 피웠으니까요. 재떨이로 항아리를 가져다 놔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4년 전에 담배를 끊었어요. 담배에게 말을 걸었어요. ‘그동안 고마웠다. 네가 없었으면 나는 글도 쓰지 못했을 거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잘 가라 친구여. 다음에 또 인연이 닿으면 뜨겁게 입 맞추자….’”
—2008년 글에서 ‘2018년에 번역가 은퇴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제 3년 남았습니다.
“계획을 바꿨어요. 변수가 몇 가지 생겼습니다. 그때 생각에는 10년 뒤면 눈도 가물가물해지고 건강도 안 좋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지금도 팔팔해요. 그리고 손자가 태어났어요. 이 녀석이 자라면서 읽을 좋은 책들을 번역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절한 텍스트를 골라 최선을 다해 번역하고 싶습니다.
조카딸이 어렸을 때 삼촌이 번역한 책이라며 책을 선물해 준 적이 있는데, 이 아이가 그 책을 달달 외웠다고 합디다. 손자는 더할 것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번역한 책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상상할 수 없겠지요.
벌써 시작했습니다. 비룡소 출판사와 홈즈 선집을 냈어요. 뤼팡 시리즈도 낼 예정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번역합니다. 청소년 대상은 어휘 수준을 잘 맞춰야 합니다. 사전을 거의 안 찾아봐도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번역하지요.
그 외에 세계문학 중에 번역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안 된 책들을 골라 번역하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그의 손자 ‘하진’이가 큰일을 해 냈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의 은퇴 시한이 70세로 연기됐으니 말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사회참여 할 것”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단골 횟집에 갔다. 싱싱한 자연산 광어회 한 점을 입에 넣으며 한마디 툭 던져 봤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가볍게 던진 질문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고는 의외의 답.
“다시 돌아간다면 사회참여를 할 겁니다.”
설명이 이어졌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인 70년대 초·중반은 학생운동사의 한가운데에 있는 시대입니다. 입학해 운동권 쪽을 흘깃 보니 그때 이미 전라도는 전라도끼리 경상도는 경상도끼리 무리가 나눠져 있더군요. 제주도 촌놈이 낄 자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맴돌았어요.
서울대 문리대 72학번 중 수감된 적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드뭅니다. 후에 동기들이 감방에 들어가 있던 기간을 합치면 200년이 넘는다고 했으니까요. 저는 감방에 가서 고초를 겪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데모에 나가기는 했지만 수감된 적은 없어요.
오랫동안 거기에 부채의식 같은 게 있었습니다. ‘나만 고생하지 않았다.’ 2004년에 동기 이해찬이 총리가 되고, 삼청동 공관에 동기들을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40여 명의 동기가 모였어요. 황지우도 왔고 김정환, 정동영…. 모여 앉아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여한이 없다’, 어떤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비로소 떳떳해졌습니다.”
김석희라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일순간에 바꾸게 하는 답이었다. 인터뷰를 하며 궁금하긴 했다. ‘멘토’라는 칭호를 불편해하고, 권위주의에 본능적인 염오(厭惡)를 표현하며, 평온한 어조로 번역계의 부조리를 과격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간서치의 딸깍발이 같은 고집에서 나오는 걸까, 일가를 이룬 장인의 의식적인 겸손함의 발로일까.
이제야 답을 알 것 같았다. 김석희라는 배의 맨 아래엔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평형수처럼 들어차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이 그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어느 쪽에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항해할 수 있게 해 준 건 아닐까 하는 추측.
신문을 뒤에서부터 읽되, 정치면이 나오기 전에 신문을 덮어 버린다는 그만의 신문 독법은 순수의 시절을 아프게 기리는 그만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집을 나설 때, 현관 옆 담에 놓여 있는 목걸이를 봤다. 자그마한 조개껍데기를 엮어 만든 거였다. 누가 만들어 놓은 걸 보고 예뻐서 얻어 왔단다. 그걸 보며 바다를 생각했다. 애월의 바닷바람을 탐욕스럽게 들이마셨다. 바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바람의 냄새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냄새라는 건, 결국 바다에서 육지로 옮겨진 것들의 냄새일 게다. 번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번역가가 건져 올린 것만 가지고, 우리는 이국의 문학을 냄새 맡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이 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세상의 실체로 알고 있었던 것들의 상당 부분은 고금의 작가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건져 낸 것들의 총합.
고향 바닷가에 닻을 내린 작가 김석희의 그물 안이 슬슬 궁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33년간 책상 앞에서 ‘꿈속의 여행’을 하는 동안, 세상의 온갖 사랑과 미움, 죄책감과 희망, 가벼움과 무거움이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갔을 것 같다. 그것들이 언젠가 조개 속 진주가 되어 올라오면 우리는 그저 책상에 앉아 그 빛을 감상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김씨는 소설가로 되돌아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본격적인 소설을 완성해 발표하기 전에 그 전에 써 두었던 단편을 모아 이 달에 출간한다”고 수줍게 털어놓는다. 일단 그 책으로 그물 안을 일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출발도 전에 목덜미를 붙잡혀 배 밖으로 끌려나온 소년은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앞으로는 꿈속에서만 여행을 하겠어요.” 어른이 된 그는 평생 소설을 펴내며 책상 앞에 앉아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소설가 쥘 베른(Verne)의 이야기다.
아니, 쓰고 보니 번역가 김석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년 김석희의 꿈은 ‘마도로스(선원)’였다. 선장이 돼서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꿈은 꿈으로 끝났다. 현실의 벽은 파도보다 높았다. 어른이 된 소년은 책상을 마주 대하고 문장의 바다를 항해했다.
제주도로 귀향하며 장서 절반으로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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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월에 있는 김석희씨의 집. 300평 대지 위에 지은 2층집이다. |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그는 ‘그동안 여러 번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또 할 말이 있을까’ 반문했다. 자신이 ‘이미 읽힌 책’이 아니냐는 얘기다. 책에는 베스트셀러가 있고, 스테디셀러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굳이 따져보자면 그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마침 쥘 베른 걸작선 13종의 번역작업이 끝난 참이었다. 2002년에 시작하여 중간에 출판사 사정으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 13년 만에 끝낸 과제였다. 오랜 숙제를 끝낸 이의 홀가분함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김씨는 고향 제주에서 살고 있다. 2009년 4월에 귀향했으니 꼭 7년이다. 그의 이층집은 애월 바다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온 곳에 자리하고 있다. 외지인의 집처럼 제법 세련된 외양을 하고 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보이는 집이다.
집 안에 들어서니 역시 한쪽 벽을 메우고 있는 책이 보였다. 왼쪽엔 김씨가 번역한 책이 단정하게 모여 있고 오른쪽에는 소설 전집이 꽂혀 있는 식이다. 책이 이것뿐인지 묻자, 손짓으로 2층을 가리킨다.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작업실에 들어서니 레일이 달린 2단 책장이 눈에 띈다. 묘한 분위기의 서가였다. 오래전에 출간된 구간 도서의 중간 중간 요즘 책들이 섞여 있다. 낡은 책등이 헌책방의 분위기를 내지만, 한권 한권 공을 들여 책을 꽂았다는 게 눈에 선하게 보이는 책장이라 잘 관리되는 도서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의 종류는 그야말로 다종다양했다. 인문서부터 전문서적, 소설, 시집 등 이채로웠다. 몇 권이나 되는 건지 묻자 ‘지금은 6000여권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천에 있는 42평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때는 집안 곳곳에 책이 쌓여 있었어요. 이방 저방 가리지 않고 바닥에 가득 쌓여 있는 식이었지요. 나중에 정리하며 보니 1만2000권 정도 되더군요. 제주도로 이사 오기 전에 정리를 했어요. 버리기도 하고 3000~4000권 정도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습니다.
인생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어요. 제주도 집에는 설치해 놓은 책장에 딱 맞는 만큼만 책을 들여놓자, 그렇게 결심했지요. 그렇게 줄였는데 이사 와서 보니 제주도 집에 만든 책장에 책을 다 넣고도 1000여 권이 제자리를 못 찾았어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애월도서관에 기증을 했어요. 젊을 때는 책 자체가 그저 소중했는데, 지금은 조금 거리를 두게 됐다고 할까요.
지금도 구입하는 책 외에 매년 200여권 정도 신간 도서가 들어옵니다. 1년에 200권은 내보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지요. 요즘도 2년에 한 번 정도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재산 가치가 있는 소유물로 생각한 적이 없어요.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명난 책은 과감히 정리합니다.”
좌초된 마도로스의 꿈
—책장의 책을 들춰보니 안이 깨끗합니다.
“저는 책에 줄을 긋거나 페이지를 접거나 하지 않아요. 깨끗하게 읽지요. 책에 대한 예의입니다. 독서 스타일로 보면 정독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훑어 읽지요. 시도 때도 없이 읽는 편입니다. 일종의 활자 중독증이라고 할까요. 화장실 들어갈 때도 자연스럽게 신문을 들고 들어갔으니까요. 제주에 내려와서 많이 바뀌었어요. 단독주택이라는 게 참 돌볼 게 많습니다. 집 주변을 정리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흘러요.”
책장에서 책을 한 권씩 들춰보는 기자에게, 김씨가 작업실에 딸려 있는 테라스 쪽을 가리키며 ‘나가 보라’고 재촉했다. 자그마한 테라스에서는 바다가 보였다. 그 풍경이 그의 자랑거리인 듯했다. “나무 데크 위에 놓인 가로로 긴 벤치에 누워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게 기쁨”이라고 그는 말했다.
소년 시절의 김석희에게 바다는 기쁨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바다는 저에게 장벽이었습니다. 섬을 벗어나고 싶었지요. 마도로스가 되려고 했습니다. 해양대에 진학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작은아버지가 6·25 때 납북되셨습니다. 연좌제가 버젓이 존재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배에 오르지 못한 소년이 택한 건 문학이었다.
“등하굣길 중간에 도립도서관이 있었어요. 고모부가 도서관장이셨습니다. 서고를 마음대로 드나들며 책을 꺼내 읽는 특권을 누렸지요. 그 시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게 기억납니다. 두 명의 살인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생각을 거듭한 끝에 깨달았지요. ‘아, 그것이 작가의 세계관인 것이구나’ 이 두 작품은 지금까지도 제 독서 이력에서 유일하게 서너 번 되풀이해 읽은 작품이에요. 작가의 길로 이끈 책이기도 합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라면 1개 안 사먹고 책 두 권 사는 식이었지요. 청계천변에 헌책방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책을 사서 읽은 다음에 바로 헌책방에 내놓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결혼할 당시 이미 1000권가량의 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아마 그거에 반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왜 이사를 자주 다녀야 돈을 번다고 하는 얘기가 있었잖아요. 저는 책이 너무 많아 이사를 세 번밖에 못했어요. 이사할 때마다 인부들에게 죄송해서 수십만 원씩 따로 수고비를 챙겨 드려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집으로 재산을 불리는 건 책 때문에 애당초 불가능했지요.”
잃어버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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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이 다한 책을 정기적으로 솎아내서인지, 번역가 김석희의 서가는 잘 관리된 도서관의 그것처럼 가지런했다. |
“대학원 1학기를 마친 참이었는데 지도교수가 돌아가셨어요. 어쩐지 김이 새서 그길로 그만뒀지요. 사실 그전부터 이미 대학원 생활에 회의를 느낀 참이었습니다. 대학원을 간다는 건 교수에 뜻이 있다는 건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교수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에요. 일단 학문에 뜻이 없었어요. 게다가 말주변도 없어요. 교수라는 게 결국 말을 잘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대학원 중퇴한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대학원 중퇴 후 군대, 1979년에 제대한 그가 사회에 다시 정식으로 명함을 내밀게 된 건 1988년의 일이다. 그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같이 들어온 동기들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 이미 헤겔을 읽고 논하던 아이들이었으니까요. 그나마 소설이라면 조금 자신이 있더라고요. 대학교 2학년과 3학년 2년 연달아 대학문학상에 당선되기도 했고요.
신춘문예에 응모하는데,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예심에서 떨어지면 모르겠는데 최종심에서 떨어지니까 포기가 안 되는 겁니다. 같이 문학하던 친구들은 하나둘 문예지로 등단하는데, 저는 신춘문예만을 고집했어요.”
최종심에 올랐다 떨어지기를 6번, 신년호 신문 지면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했다.
문득 일본의 고승 구카이(空海)가 떠올랐다. 구카이는 진언종의 창시자로 우리나라로 치면 원효대사 같은 인물이다. 대학에 낙제해 떠돌던 그가 당나라를 방문하는 ‘견당사’ 일행에 끼여 당나라를 방문하기까지 꼭 10년의 공백이 있다.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그 10년간 구카이는 어떤 시간을 보낸 것일까. 일개 유학승으로 당나라에 도착한 그는 당대 지식인들에게 최고의 지식인으로 인정받아 밀교의 전수자가 되었다. 저널리스트 다치나바 다카시는 ‘10년이라는 수수께끼의 공백시대가 시간이 흘러 개화한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석희는 ‘공백시대’를 어떻게 보낸 걸까.
“여기저기 다녔지요. 한 번은 삼성출판사에 촉탁직으로 들어갔어요. 제3세대 문학이라는 주제로 한국문학을 골라 24권짜리 전집으로 편찬하는 기획이 있었습니다. 이걸 맡아서 했는데, 이게 시쳇말로 ‘대박’이 났어요. 그길로 정직원이 됐는데 얼마 안 가 윗사람과 싸우고 나왔습니다. 사회발전연구소라는 곳에도 있었어요.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도 그때 같이 일했지요. 계속 마음은 신춘문예에 가 있었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았으면 아마 술마시다가 폐인 됐을 거예요.”
—번역도 그 시절 시작했나요.
“1979년에 학생운동하다가 제적된 친구가 부탁해서 처음 번역을 맡아 했어요. 《아돌프》라는 소설이었지요. 본격적으로 저를 번역으로 이끈 책은 영국작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책입니다. 1982년에 처음 번역한 책인데 그때만 해도 영어 실력이 너무 짧았어요. 번역이 뭔지도 잘 모를 때였고요.
1997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게 됐어요. 다듬으려고 보니 다듬는 수준으로 안되겠더라고요. 다시 번역했습니다. 제가 소설가로 등단한 게 1988년이니 1997년이면 10년간 소설가와 번역가로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시점이었어요. 이 책을 다시 번역하면서 ‘이만한 작품을 써 낼 수 없다면 아예 글쓰기를 작파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시한 소설을 써 내느라 끙끙대느니 좋은 작품을 번역하는 편이 훨씬 뜻있는 작업이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이후 2004년에 열린책들로 출판권이 넘어가 다시 출판될 때 다시 한 번 개역 수준의 수정을 했어요. 도합 세 번이나 번역한 셈입니다.”
세계화 열풍 맞아 대박난 《로마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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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 |
—대중들이 기억하는 ‘김석희표 번역’의 대표작은 역시 《로마인 이야기》입니다.
“1995년의 일이지요. 어느 날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오라는 겁니다. 김언호 사장과는 책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동지 같은 관계예요. 가 보니 번역가 오정환, 정도영 선생이 나와 계셨어요. 김 사장이 일본에서 사 온 《로마인 이야기》 원서를 내밀었어요. ‘한국의 여러 출판사가 출판을 검토했다 퇴짜를 놨다던데 읽어 보고 이유가 뭔지 알려 달라’고 말하더군요.
일주일 후 네 명이 다시 모였어요. 번역자들의 결론은 ‘정말 좋은 책’이라는 거였습니다. 바로 출판을 결정했지요. 15년간 저술해 출판한 책이니 세 명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제가 《로마인 이야기》를 맡기로 했어요. 다른 선생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을 맡기로 했지요.
출판하자마자 ‘대박’이 났지요. 출판을 검토했던 다른 출판사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겠지요. 아마 일본인이면서 여성인 데다가 아마추어 역사가가 쓴 책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놓은 거라 생각합니다.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물의 기존 기술 방식을 바꾼 책입니다. 내용이 좋았지만 문체도 참 좋았어요. 여성 작가가 썼지만 힘이 있고요. 재미있게 읽게 하는 문체예요. 문체가 와 닿아야 내용이 와 닿습니다. 원문 자체가 읽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번역도 힘을 받지 못합니다. 문체는 사람이기도 해요. 시오노 나나미가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해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 정몽준 당시 축구협회 회장이 초대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이때 잠깐 스치듯이 만났는데, 만나 보니 느낌이 과연 번역할 때 문장에서 전달된 느낌과 같았어요.“
“《로마인 이야기》는 아내와의 공역”
—다른 나라의 고대사 해설이 ‘대박’이 난 이유가 뭘까요.
“시대 상황과 잘 맞았어요. 당시 우리나라엔 ‘세계화’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재계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진출 바람이 활발할 때였는데, 재계는 이 책을 현지화 정책의 교과서 격으로 읽어 내더군요. 저자 대신 와서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어요. 번역가가 무슨 강연이냐며 일절 거절했지요.
재계에서의 인기가 청소년층으로 옮겨가더군요. 마침 이윤기 선생이 번역한 《그리스 로마 신화》도 출간한 참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사를 청소년들이 읽기 시작한 거예요. 청소년들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를 마주 대하기 시작한 겁니다.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게 됐다고 할까요. 당시 한길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공모전을 열었어요. 부상이 이탈리아 현지 견학이었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읽게 하자는 의도에서 기획한 행사였어요.
《로마인 이야기》는 교양으로서의 역사 읽기의 길을 열어 줬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대중적인 역사책이 활발하게 발간되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9월 시오노 나나미가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었지요. 극우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요.
“그때 저에게도 의견을 묻는 전화가 많이 왔어요. 나는 번역만 했을 뿐, 내가 무슨 평가를 하냐고 답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래요. 시오노의 발언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 전에 봐야 할 게, 그 사람은 정치가나 사상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탈리아에서 살며 더군다나 고대사를 탐구하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에게 현실 문제에 대한 엄밀한 판단을 구하는 건 지나친 요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또 일본 사람들은, 일반인이건 지식인이건, 한일 관계나 역사에 대해 우리만큼 관심도 없고 이해도 그리 많지 않은 게 보통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시오노의 책을 좀 읽어주었다고 해서 그에게 우리 편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지요. ”
—《로마인 이야기》가 많이 팔렸으니 돈 좀 버셨겠습니다.
“러닝개런티로 계약하지 않고 매당 번역료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5권부터는 번역료가 곱절로 뛰더군요.”
— ‘번역공장’이라는 별칭까지 있습니다. 한달에 1권 꼴로 번역을 했나요.
“이제는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아내와의 협업이 없었다면 번역공장은 못 돌아갔을 겁니다. 특히 《로마인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제 스스로 ‘공역’이라고 얘기할 정도예요. 아내는 사회과학 도서 같은 논픽션을 좋아하고, 저는 문학을 좋아합니다. 쓰는 단어와 문장이 달라서 초기에는 고생을 좀 했어요.
결혼한 지 이제 40년이 됐는데, 40년 된 부부 중에 아마 저희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부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좀 게으른 편인데 아내가 있어 이만큼 일할 수 있었어요. 기댈 사람이 있는 거잖아요. 엄마, 아빠가 만날 집에 틀어박혀 책에 코를 묻고 번역을 하는 모습에 질렸는지 아들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어요.”
남편과 같은 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부인은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간 날에도 위층에서 작업에 열중이었다.
“노벨상 연연은 사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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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는 “작업실 테라스에 있는 벤치에 누워 하늘과 바다를 보는게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
“이청준 작가의 문장입니다. 지적이면서도 꾸며대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사상과 감정은 또 어떻습니까. 〈눈길〉을 읽고 눈물을 안 흘릴 수 있나요. 이문구 작가의 문장은 따스해서 좋아합니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요.
“역시 이청준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해마다 노벨문학상에 연연하는 것, 그게 사대근성 아닙니까. 그게 뭐라고 그러는 겁니까.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노벨문학상 하면, 고은 선생님이 종종 거론되는데, 저는 번역하는 사람이니 번역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고은 선생님의 시는 불교 사상을 배경으로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들을 번역한 건 가톨릭 신부입니다. 서양에 소개되는 것이니 신부가 하는 게 더 낫지 않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독일이나 프랑스가 사상의 차원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역사가 무려 200년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같은 작품이 어쩌다 나온 게 아니에요.
말이 나온 김에 번역 얘기를 해 볼게요. 우리 소설을 해외에 소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1만 단어 수준의 책을 2000~3000 단어 수준으로 바꿔 번역합니다. 성인이 읽는 소설인데 영어로 번역하면서 청소년 도서로 바꾸는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같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기존에는 한국인 번역자와 해당 언어 원어민이 짝을 이루어 번역하고 있는데,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번역의 전과정을 책임지고, 조금 더 완벽하게 번역하는 게 불가능한 방식입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이례적으로 성공했지요.
“거기서 시사점을 얻어야 합니다. 한 번역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작업했어요. 게다가 소설 자체를 현지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번역 기계처럼 단순하게 한국어를 영어로 옮겨놓는 방식으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국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단어나 대목을 만나면, 번역자가 신경숙 작가와 직접 논의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작가가 다시 쓰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독자 입장에서 이해의 폭이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번역된 한국 소설로는 최고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요. 예를 들면, 이청준 소설가의 작품이 이런 식으로 제대로 번역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습니다. 돌아가신 게 너무 아까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메세나’ 한다고 하지 않나요. 그림만 사지 말고, 이런 데에도 신경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작정하고 제대로 번역해 내놓으면 어떠냐는 말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노벨문학상에 해마다 목을 맨다? 한국 가요가 외국에서 인기를 얻고, 한국 드라마가 줄줄이 히트한다니 마치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번역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집이나 소설을 1년에 도대체 몇 권이나 구입합니까. 국내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문학이 해외에서 대접받겠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몇 년간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심사에 참여했습니다. 2010년에도 참여했지요. 2010년이 어떤 해입니까. 한일합방이 일어난 지 100년, 광주 5·18이 30주년이 되는 해예요. 그런데 소설이든 연구서든 분야를 막론하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본 책이 없었어요. 화가 났습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의무를 방기하는 게 아닌가. 80년 광주를 그렇게 뜯어먹고, 단물을 받아먹었으면 작가로서 고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단 한 권도 없더군요.”
—언젠가부터 한국 문학계는 무라카미 하루키로 대표되는 ‘사소설’적인 문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놀랐어요. 교보문고에서 과거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책을 저자별로 집계했더니 1위가 하루키 아니었습니까. 2위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3위에 비로소 한국 작가인 공지영씨가 등장하더군요. 그런데 독자를 탓하면 안 됩니다. 독자는 냉정하고 정확합니다. 재미있다고 판단해 읽는 겁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요즘 큰 출판사들도 힘들다고 합니다. 출판계는 과도기를 3년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독자들이 책을 할인가가 아닌 정가에 구입하는 습관이 드는 데 3년은 걸릴 거라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작은 출판사들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느냐예요. 전문서적이나 장르소설 같은 다양한 책을 내는 작은 규모의 출판사들이 무너질까 걱정됩니다.”
“고향과 거리를 둔 게 귀향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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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번역할 때 영어 사전이 아닌 인터넷 사전을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
“고향과 거리를 둔 게 귀향 성공 비결입니다. 내려오기 전에 심리적인 준비를 했어요. 제주도에는 ‘괜당문화’라는 게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친척들끼리 서로 돕는 문화예요. 육지랑은 많이 다릅니다. 집성촌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요. 참석해야 할 행사도 많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아요. 저는 스스로 원칙을 정했어요. 갈 수 있는 만큼만 간다. 처음에는 욕도 듣고 그랬는데 나중엔 ‘김석희는 원래 저렇다’고 굳어져서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고향은 제주시 쪽이지만 애월에 정착해 물리적인 거리를 유지한 것도 비결이겠지요.”
동네 이웃들과도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아버지도 이웃사촌 중 한 명이다.
—요즘에도 하루 8시간 일하고, 8시간 놀고, 8시간 자는 ‘888’ 습관을 유지하나요.
“제주 내려와서는 8시간 일하기가 힘든 것 같네요. 저는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 저녁 대여섯 시쯤 식사를 하지요. 한 끼 먹는 대신 제대로 차려 먹습니다. 국에 좋아하는 반찬을 곁들여 먹는 식으로요. 회사를 다니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고 집에서 작업하는 사람이라 가능한 거겠지요. 제 중년의 꿈이 식당 차리는 거였어요. 바닷가에 식당 차려 놓고 그날 그날의 신선한 재료로 요리해 주고, 맛 없으면 돈 안 받고….”
요리 얘기가 나오니 김씨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제주도는 재료가 좋잖아요. 기존의 전통적인 요리법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약간의 변화만 줘도 새로워지고 맛있어집니다. 돔베고기라는 게 있어요. 돔베는 도마라는 의미인데, 저는 돔베고기를 요리할 때 목삼겹을 써요. 찜통에 부추를 깔고 돔베고기를 올려서 쪄 먹어요. 다 먹을 때까지 부추향도 나면서 맛있어요. 여름엔 콩국수도 직접 해 먹고 몇 년 전까진 작살로 문어도 직접 잡았어요. 가족들에게 문어죽도 끓여 주고, 안 그래도 요리에 관한 책도 써 볼 생각입니다.
—주량은 얼마나 됩니까.
“세다고 해야겠죠. 술을 마시면 항상 마지막에는 일행을 챙기고 있으니까요. 제주도에 오니 전반적으로 술을 많이 마십니다. 제주도는 돼지고기와 회가 좋은 지역 아닙니까. 두 가지는 ‘안주의 쌍두마차’잖아요.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술 마셔도 다음 날 머리가 맑아요. 파도가 철썩 부딪칠 때마다 오존이 생겨서 그런 것 아닌가 혼자 추측해 봅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세월이 길었는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4년 전부터 매일 108배를 하고 있어요. 쉽게 할 수 있는 전신운동으로 그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원래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번역을 하느라 밤에 깨어 있으면 담배를 물고 있지 않을 때가 거의 한순간도 없었어요. 하룻밤에 세 갑을 피웠으니까요. 재떨이로 항아리를 가져다 놔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4년 전에 담배를 끊었어요. 담배에게 말을 걸었어요. ‘그동안 고마웠다. 네가 없었으면 나는 글도 쓰지 못했을 거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잘 가라 친구여. 다음에 또 인연이 닿으면 뜨겁게 입 맞추자….’”
—2008년 글에서 ‘2018년에 번역가 은퇴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제 3년 남았습니다.
“계획을 바꿨어요. 변수가 몇 가지 생겼습니다. 그때 생각에는 10년 뒤면 눈도 가물가물해지고 건강도 안 좋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지금도 팔팔해요. 그리고 손자가 태어났어요. 이 녀석이 자라면서 읽을 좋은 책들을 번역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절한 텍스트를 골라 최선을 다해 번역하고 싶습니다.
조카딸이 어렸을 때 삼촌이 번역한 책이라며 책을 선물해 준 적이 있는데, 이 아이가 그 책을 달달 외웠다고 합디다. 손자는 더할 것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번역한 책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상상할 수 없겠지요.
벌써 시작했습니다. 비룡소 출판사와 홈즈 선집을 냈어요. 뤼팡 시리즈도 낼 예정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번역합니다. 청소년 대상은 어휘 수준을 잘 맞춰야 합니다. 사전을 거의 안 찾아봐도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번역하지요.
그 외에 세계문학 중에 번역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안 된 책들을 골라 번역하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그의 손자 ‘하진’이가 큰일을 해 냈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의 은퇴 시한이 70세로 연기됐으니 말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사회참여 할 것”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단골 횟집에 갔다. 싱싱한 자연산 광어회 한 점을 입에 넣으며 한마디 툭 던져 봤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가볍게 던진 질문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고는 의외의 답.
“다시 돌아간다면 사회참여를 할 겁니다.”
설명이 이어졌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인 70년대 초·중반은 학생운동사의 한가운데에 있는 시대입니다. 입학해 운동권 쪽을 흘깃 보니 그때 이미 전라도는 전라도끼리 경상도는 경상도끼리 무리가 나눠져 있더군요. 제주도 촌놈이 낄 자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맴돌았어요.
서울대 문리대 72학번 중 수감된 적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드뭅니다. 후에 동기들이 감방에 들어가 있던 기간을 합치면 200년이 넘는다고 했으니까요. 저는 감방에 가서 고초를 겪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데모에 나가기는 했지만 수감된 적은 없어요.
오랫동안 거기에 부채의식 같은 게 있었습니다. ‘나만 고생하지 않았다.’ 2004년에 동기 이해찬이 총리가 되고, 삼청동 공관에 동기들을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40여 명의 동기가 모였어요. 황지우도 왔고 김정환, 정동영…. 모여 앉아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여한이 없다’, 어떤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비로소 떳떳해졌습니다.”
김석희라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일순간에 바꾸게 하는 답이었다. 인터뷰를 하며 궁금하긴 했다. ‘멘토’라는 칭호를 불편해하고, 권위주의에 본능적인 염오(厭惡)를 표현하며, 평온한 어조로 번역계의 부조리를 과격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간서치의 딸깍발이 같은 고집에서 나오는 걸까, 일가를 이룬 장인의 의식적인 겸손함의 발로일까.
이제야 답을 알 것 같았다. 김석희라는 배의 맨 아래엔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평형수처럼 들어차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이 그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어느 쪽에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항해할 수 있게 해 준 건 아닐까 하는 추측.
신문을 뒤에서부터 읽되, 정치면이 나오기 전에 신문을 덮어 버린다는 그만의 신문 독법은 순수의 시절을 아프게 기리는 그만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집을 나설 때, 현관 옆 담에 놓여 있는 목걸이를 봤다. 자그마한 조개껍데기를 엮어 만든 거였다. 누가 만들어 놓은 걸 보고 예뻐서 얻어 왔단다. 그걸 보며 바다를 생각했다. 애월의 바닷바람을 탐욕스럽게 들이마셨다. 바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바람의 냄새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냄새라는 건, 결국 바다에서 육지로 옮겨진 것들의 냄새일 게다. 번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번역가가 건져 올린 것만 가지고, 우리는 이국의 문학을 냄새 맡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이 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세상의 실체로 알고 있었던 것들의 상당 부분은 고금의 작가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건져 낸 것들의 총합.
고향 바닷가에 닻을 내린 작가 김석희의 그물 안이 슬슬 궁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33년간 책상 앞에서 ‘꿈속의 여행’을 하는 동안, 세상의 온갖 사랑과 미움, 죄책감과 희망, 가벼움과 무거움이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갔을 것 같다. 그것들이 언젠가 조개 속 진주가 되어 올라오면 우리는 그저 책상에 앉아 그 빛을 감상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김씨는 소설가로 되돌아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본격적인 소설을 완성해 발표하기 전에 그 전에 써 두었던 단편을 모아 이 달에 출간한다”고 수줍게 털어놓는다. 일단 그 책으로 그물 안을 일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비딕 허먼 멜밀/ 작가정신 김석희씨는 가장 번역하기 어려웠던 책으로 ‘모비딕’을 꼽았다. 번역하는 데 꼬박 여섯 달이 걸렸단다. 비유와 상징, 축약과 도치와 비문(非文)이 섞인 ‘문체의 박물관’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명상이 가득한 작품이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스/ 열린책들 전후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 김석희를 본격적인 번역의 길로 이끈 책이다. 시대의 위선과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자유에 대한 정열이 고갈되어 버린 20세기를 그려 냈다. 기구를 타고 5주간 쥘 베른/ 열림원 쥘 베른의 첫 장편소설.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인 새뮤얼 퍼거슨 박사가 친구인 딕 케네디와 함께 유럽인의 발길이 닿아 본 적이 없는 아프리카 중앙부를 탐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럽의 형성 크리스토퍼 도슨/ 한길사 가톨릭 사학자인 저자가 4세기에서 11세기까지의 유럽 문명을 살펴보며, 유럽이 하나의 통합체로 형성되는 배경과 그 과정을 추적한 책. 나의 특별한 동물 친구들 제럴드 더럴/ 우리학교 동물학자이자 야생동물 보호가인 저자가 그리스의 코르푸 섬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책이다. 모멸감 김찬호/ 문학과지성사 ‘모멸감’은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조명하며 한국인의 삶과 사고 구조를 분석했다. 그리스 사상과 아랍 문명 디미트리 구타스/ 정영목/ 글항아리 8~10세기, 아랍의 압바스 왕조 통치했던 시기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그리스어를 아라비아어로 번역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아랍 문명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이 운동의 사회적·정치적·이념적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역사적·문헌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정조와 불량 선비 강이천 배승종/ 푸른역사 당대의 불량선비 강이천과 그의 재주를 아끼면서도 못마땅하게 여긴 국왕 정조가 벌인 문화적 지배권력을 둘러싼 싸움을 통해 18세기 조선사회를 재구성했다. 대화 리영희/ 한길사 리영희 인생의 회고록이자 자서전을 대화 형식으로 서술했다. 개인사적 내용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질문자와의 비판적 토론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서해문집 옛말 가운데 600여 개를 선정해 그 뜻과 어원을 자세하게 풀어 썼다. 소설이나 수필, 기사문에서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예문을 들어 설명했다. 한밤의 아이들 살만 루시디/ 김진준/ 문학동네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하는 순간 1001명의 아이들은 초자연적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이들 중 0시 정각에 태어나 가장 뛰어난 초자연적 능력을 지니게 된 살림 시나이의 서른 해를 그린 책이다.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민음사 남아메리카의 운명을 부엔디가 가문의 몰락을 통해 은유적으로 그렸다. 때로는 허구의 이야기가 사실의 기록보다 현실을 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이다. 아메리칸 버티고 베르나르 앙리 레비/ 김병욱/ 황금부엉이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미국 탐사기. 2005년 미국의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지가 토크빌 탄생 200주년을 맞아 추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토크빌의 자취를 좇아 미국을 탐사했다. 신의 산으로 떠난 여행 피터 매티슨/ 이한중/ 갈라파고스 탐험가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눈표범을 찾아 히말라야를 찾았다. 여정을 통해 저자는 ‘빛’을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모든 소유욕을 버리는 것이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만난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김영사 〈이기적 유전자〉를 쓰기도 한 저자는 신이 없음을 주장하면서, 오히려 신을 믿음으로써 벌어진 참혹한 전쟁과 기아, 빈곤 문제를 열거한다. 과학과 종교, 철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창조론의 이론적 모순과 잘못된 믿음이 가져온 결과를 역사적으로 고찰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