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帝 통감부 경무국이 펴낸 <폭도>, 軍需 담당 김석영 등의 행적 통해 유인석의 연해주 활동
엿볼 수 있어
⊙ 日帝시대에 발간된 《의암집》에는 유인석의 연해주 행적 누락되었을 가능성 높아
鄭禹澤
⊙ 75세. 연세대 경제학과 졸. 인하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 경희대 대학원 사학과 졸(문학박사).
⊙ 서울은행 LA지점장, 세명대 교수·대학원장, 現 화서학회 고문, 한국유림총연합 부총재.
엿볼 수 있어
⊙ 日帝시대에 발간된 《의암집》에는 유인석의 연해주 행적 누락되었을 가능성 높아
鄭禹澤
⊙ 75세. 연세대 경제학과 졸. 인하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 경희대 대학원 사학과 졸(문학박사).
⊙ 서울은행 LA지점장, 세명대 교수·대학원장, 現 화서학회 고문, 한국유림총연합 부총재.
- 의암 유인석의 문집 《의암집》. 의암류인석유적지(www.ryuinseok.or.kr) 자료.
이 글은 일제시대의 자료라 할지라도 검증을 거쳐 연구자료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11월호 ‘연해주 의병장 연구 상(上)’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립운동자료》와 《의암집》을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했다. 지금까지 독립운동사를 연구했던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독립운동자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전혀 자료의 사실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소홀히 취급했다. 연해주 한국의병사(史) 연구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일제의 수사기관이 집요하게 한국 의병을 추적해 확보한 증거들은 되려 사실에 매우 가까운 정보라는 생각이다. 간혹 과장한 기록도 있다. 하지만 문집이나 종군일기 등에서 있을 수 있는 가감(加減)과 미화(美化)가 오히려 적을 때도 있다.
의병장 유인석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의암집》은 가장 중요하다. 그의 문집이기 때문이다. 실제 내용도 대부분 신뢰할 만하다. 그러나 문집을 간행할 때의 환경을 완전 배제해서는 곤란하다. 문집은 1915년 유인석 사후 2년 만인 1917년 일제가 지배한 만주 회인현에서 나왔다. 첫 간행본이 일제에 압수돼 불태워지는 역경을 겪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료 누락의 불가피성을 짐작할 만하다.
《의암집》에서 일제 수사기관이 유인석의 의병활동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기간은 연해주 의병의 창의(倡義)와 관련한 시기로 본다. 즉 ‘1908년 4~7월’에 이범윤 등이 연해주 의병의 창의를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안중근을 대장(隊長)으로 국내에 진공한 의병부대는 두만강을 건너 일제와 싸웠던 시기이다. 이 국내 진공이라는 의병 전략은 유인석의 ‘국외 의병 진지로서 연해주에 거점 확보’와 ‘국내 백두산 인근에 동남의 진지를 옮겨 전술적 이점을 얻기 위한 북계(北計)’가 중심이 되었다. 이 기간 전략의 주창자인 유인석의 행적이 고의와 강압에 의해 사라졌을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 또한 이번 연구의 목적이다.
《독립운동자료》의 사실성
《독립운동자료》의 〈의병편〉은 일제 조선통감부 경무국이 편집한 〈폭도(暴徒)에 관한 편책(編冊)〉을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실에 가깝다. 《독립운동자료》 서문은 “〈폭도에 관한 편책〉은 어떤 의병자료보다 방대하고 치밀하여 의병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의병과 전투를 한 일본인에 의한 일본 측의 자료라는 한계성을 감안해야 될 것으로 믿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필자는 의병장 유인석을 연구하는 데 활용한 《독립운동자료》가 사실의 기록임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다음은 1908년 8월 함경도 정보로서 일제 수사기관의 보고 내용이다. 지난호에 실었으나 글을 전개하기 위해 다시 옮겼다.
〈暴徒 巨魁 柳麟錫 及 李範允의 부하가 되어 其 財務官으로 目下 활동 중이라고 하는 金奭永이라는 자의 소식에 대하여 聞知한 要領은 左와 如하다.
一. 柳麟錫은 본년 四月頃 만주 길림성에 있어서 馬賊을 募集 中이던 바 同月 中 李範允을 海蔘威(해삼위·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방문 大擧할 約束을 結하고 길림성으로 돌아와 盛히 馬賊을 召集 당시 渠의 子弟급 部下이었던 약 五六千名의 다수에 달하고 항상 李範允과 교통하고 있었으나 본년 六月 下旬頃 李範允에 가려고 길림성을 출발하였다고 하나 其 後 渠의 소식은 불명이라고 한다.
一. 金奭永은 元 外部主事로… 海蔘威에 居住하고 金滿家가 되어 韓國有意의 士로서… 今回 李範允 等이 事를 擧하자 直時 李範允을 訪問(場所 不明) 他年의 宿望을 述하고 같이 事를 圖謀하고저 其 部下가 되어 財務官으로 武器의 買收 及 軍糧 等의 職에 當하고 또 自己에게 있었던 有志者라고 하는 輩 八九名도 같이 李의 部下가 되게 하고 海蔘威 及 北間島에서 크게 活動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자료의 사실 여부가 입증이 되면, 유인석이 1908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 건너가 이범윤과 만나 연해주 한국 의병의 창의계획을 결의한 사실이 확인된다. 《의암집》에서 유인석이 4월 6일경 출행했을 가능성과 《독립운동자료》의 5월 중 개천 경유, 《의암집》의 5월 말경 부평 도착을 참작한다면 창의계획 결의 시기는 4월 말경이 가능하다.
또 ‘항상 이범윤과 교통하고 있었으나’로 보아 상시 두 사람은 창의에 대하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교감을 가지고 있었음이 입증된다. 그 의미는 유인석이 이범윤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의할 것을 결의한 후 국내에 귀환하여 창의 준비 중임을 말한다. 그 후 창의를 위해 6월 말 다시 연해주에 가서 이범윤을 만났을 것이라는 근거이다. 이때에 즈음하여 연해주 의병을 창의하였다.
같은 시기에 발생한 사건들을 교차 검증
먼저 “유인석이 1908년 4월 길림성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건너가 이범윤을 만나 연해주 의병 창의계획에 동참한 사실이 있는가”의 검증이다. 같은 《독립운동자료》에 실린 안중근의 옥중 진술과 《의암집》의 한식날 밤에 통진을 떠나기 전 자작한 시구(詩句)의 내용이 같은가를 검증한다.
안중근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의거 직후 11월 27일 일제 헌병대가 공범자를 찾아내기 위한 신문(訊問)에서 진술한 유인석 관련 사항이다.
〈柳麟錫은 昨年 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다. 柳는 그때 十五歲가량의 男子를 데리고 있었다. 今日의 國家形勢에 대해 先生의 가르침을 받겠다고 말했더니 “어떻게든 愛國하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을 뿐 많이는 말하지 않았다.〉
아래 글은 뒤에 참고한 《의암집》의 유인석이 한식날 밤에 지은 시구이다.
“졸음에 겨운 작은 아들 그래도 곁을 지키는데”(渴睡小男猶守側).
먼저 같은 《독립운동자료》의 1908년 8월 일제 수사기관의 보고를 보면, 유인석이 4월 이범윤과 만나 창의계획에 합의했다.
이 기록과 비교할 때 1909년 11월 안중근의 진술에서 유인석을 만난 때가 1908년 봄이라고 말한 것은 ‘1908년 4월 창의계획’ 때와 일치한다. 두 《독립운동자료》에서 같은 때로 볼 수 있는 ‘4월과 봄’에 유인석과 이범윤이 만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의암집》에서도 유인석이 4월 6일 북행길에 올랐다는 가정에서 연해주 도착은 4월 말경으로 추정된다.
또 《독립운동자료》의 안중근 진술 내용 중 “15세가량의 남자를 데리고 온 유인석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았다”는 부분이 있다. 이 진술의 유인석과 《의암집》에 실려 있는 소남을 동반하고 길을 떠난 유인석과는 ‘15세가량 남자’와 ‘소남’을 같은 동자로 볼 때 동일인 유인석이다. ‘4월과 봄’ ‘15세 남자와 소남’ ‘4월과 4월 6일 북행’으로 《독립운동자료》와 《의암집》의 내용에서 유인석이 나타난 때와 동자를 동반한 조건이 일치한다.
다시 말하면, 자료를 교차 검증한 내용에서 1908년 4월에 회동한 시기가 같고, 유인석이 같은 동자를 동반했다는 조건이 일치한다면 그가 1908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을 만나 창의계획을 결의했다는 일제 수사기관의 보고는 충분히 신빙성 있는 사실 자료이다.
다음, “유인석은 1908년 6월 말 이범윤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라는 기록에 대한 분석이다. 즉 유인석이 연해주 의병을 창의하는 6월 말경 이범윤을 만난 것은 창의계획의 두 주역으로서 창의를 위해 만난 일 외에는 다른 상상이 필요 없을 것이므로 이에 대한 사실 검증이 중요하다. 6월 말경 연해주 의병이 창의하고 7월 초 안중근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두만강을 건너 대일항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하는 다음 자료를 살펴본다.
같은 《독립운동자료》의 내용이다. 1909년 12월 6일 안중근이 ‘제9회 신문’에서 진술한 것이다.
〈내가 義兵으로서 實戰에 從事한 것은 昨年 陰 六月 五日頃 시치노의 嚴仁燮(시치노는 燃秋에서 아지미 방면으로 四十韓里에 있다)이 村에서 元 李範允의 부장이었던 전 경무관 全濟益을 대장으로 하고 嚴仁燮은 좌군영장 나는 우군영장이 되어 의병 五十餘명을 이끌고 시치노를 출발하여 경흥부 혼쯔코를(두만강 해안)로 출병하여 동 방면에 교통으로 온 日兵 四名을 저격하여 이를 죽인 것은 무릇 七·八日頃이다.〉
‘작년 음 6월 5일’은 양력으로 1908년 7월 3일이다. 7월 3일에 두만강을 건넜다면 창의가 6월 말경이라는 추정은 옳은 관점이다. 늦어도 7월 1~2일인데 출병의 준비 과정으로 보아 6월 말경이 더 근접한 창의시기로 여겨진다.
《안중근 자서전》의 기록에서도 연해주 의병은 6월에 국내로 진공했다.
〈그때 金斗星과 李範允 등이 모두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 사람들은 전일에 이미 總督과 大將으로 피임된 이들이요. 나는 參謀中將의 직책으로 피선되었다. 우리는 의병과 군기 등을 비밀히 수송하여 豆滿江 근처에서 모인 다음 큰일을 모의하였다. … 그때 여러 장교들을 거느리고 부대를 나누어 출발하여 두만강을 건너니 때는 6월이었다.〉
두만강을 건넌 1908년 6월이 음력이면 양력 7월이다. 위 《독립운동자료》의 안중근 진술과 같다. 그의 자서전은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천주교 신자로서 자신의 일생을 가식 없이 정리한 것으로 대체로 거짓이 없다는 평가다.
의주경찰서장이 조선통감부의 장관대리 앞으로 보고한 자료 1908년 7월 22~25일자 《통감부문서》 5의 〈폭도 건-기밀통발 제940호〉 등을 다시 살펴본다. 보고 일자를 참작할 때 유인석의 활동시기는 7월 중순으로 짐작된다. 이때 유인석이 평안북도에서 모병을 지휘했다면 연해주 의병 창의 후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6월 말경 창의를 간접적으로 확인해 주는 자료이다.
그 후의 이동경로를 《의암집》을 통해 살펴본다. 이렇게 보면 유인석의 이동경로가 ‘6월 말경 연해주 의병 창의 참여-7월 중순 평북 초산·창성·의주에서 모병 활동-7월 말경(음력 6월 말경) 황해도 평산의 신재봉 조문-7월 말~8월 초경 서울 입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1908년 6월 말경 유인석이 연해주 의병의 창의에 직접 참여한 것을 암시한 ‘헌기 제432호’ 기록의 사실성이 입증된다.
발생 시기가 다른 사건들의 비교 검증
다음은 1908년 12월 일제 헌병대 개천분견소의 정보이다.
〈車炳律은 8월 20일경 柳麟錫을 從하여 玄熙述 吉鳳珠와 共히 京城을 출발하여 元山으로 赴하였을 時 柳麟錫으로부터 명령을 受하고 헤어졌던바 아직 賊徒의 모집 군자금 징집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크게 부끄러워 其時 赴치 못하였던 것이다.…
車炳律의 言에 據하면 柳麟錫은 露國 水晶 개척지에서 부하 3,000명을 모집하고 기중 충청도 약 800명 강원도 600명 함경도 1,600명이 빈번히 교련을 하고 있다. 此 사실은 車炳律이 받은 서면에 기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柳麟錫의 부하 金錫永(수정에 있다)은 露國人 某와 가만히 통하여 目下 총 3,000 탄약 1挺에 대하여 300발 급 露의 군복 200개를 노국으로부터 매입을 하고 착착 준비에 노력하고 있다.
我 헌병에게 체포당한 것은 실로 柳麟錫에게 不忠하였음과 또 대망을 누설하지 아니치 못하기에 至하였음은 割腹 외에 없다고 탄식하고 있었다.〉
이 내용은 1908년 8월 것과 비교할 때 4개월 뒤의 기록이다. 유인석의 문인이며 부하 의병인 차병률(車炳律)은 유인석의 명령에 따라 평남 개천에서 모병과 모금 활동 중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그가 일제의 고문에 굴복하여 연해주 의병의 상황을 토설한 듯하다. 이 토설을 유인석에 불충한 비겁자의 행위로 자책하여 할복할 뜻까지 가진 것으로 보아 유인석을 통하여 서면으로 알게 된 연해주 의병의 실상임이 확실하다.
이 내용 중 “유인석의 부하 김석영은 노국인 모와 가만히 통하여 목하 총 3,000 탄약 1정에 대하여 300발 급 노의 군복 200개를 노국으로부터 매입을 하고 착착 준비에 노력하고 있다”는 부분을 검토한다. 이 글의 김석영(金奭永, 金錫永은 동일인)은 4개월 전 자료에서도 “무기의 매수 급 군량 등의 직에 당하고”라고 하여 동일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다. 김석영과 일면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에 간 일이 없는 차병률의 토설이 4개월 전 일제 수사기관이 입수한 정보와 같다.
차병률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토설한 유인석을 통하여 받았다는 서면의 기재는 그의 고뇌하는 정황으로 보아 당시 연해주 의병진의 기밀자료로 보인다. 1908년 12월의 내용과 4개월 전인 8월 것의 중요 사항이 일치한다는 것은 《독립운동자료》가 사실인데 실수로 유출되었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1908년 8월의 정보를 사실의 자료로 보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정보 내용을 분석한 사실성 추리
‘김석영이라는 자의 소식에 대하여 문지한 요령’이란 말은 ‘김석영이 말한 것을 전해 듣고 알게 된 정보’라는 의미이다. 직접 김석영을 통해 들은 것이 아니라 그가 말했다는 내용이 제3자를 통해 일제 수사기관에 전해진 정보다. 기록된 사건이나 내용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분석해 볼 때 이 글이 사실인 연해주 의병진의 내부문서로서 김석영이 누군가에게 발설한 것이 일제 수사기관에 입수되었다는 추리가 가능하다.
비록 가정이지만 이 내부 계획이 김석영이 맡은 직책의 특성상 러시아 무기구입 과정에서 러시아 무기상에게 전해지고 다시 일제 수사기관에 입수되었을 가능성이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전 직후이므로 러시아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동병상련으로 우호적이었다. 무기매매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논의될 여러 사항 중 구입무기의 종류, 목적·용도와 필요시기, 구매량과 가격, 인도와 대금 지불조건 등은 필수적이다.
특히 합법적이 아닌 패전 러시아군과의 위험한 무기거래는 쌍방의 신뢰를 필요로 하며 최소한의 내부사정 대화는 필연적이다. 일제는 승전국의 입장에서 러시아 측에 외교적 회유와 강압에 의한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쉽게 김석영이 발설한 연해주 의병진의 내부계획을 주요 정보로 취득할 수 있다. ‘김석영이란 자의 소식에 대하여 문지한 요령’이란 글이 내포하고 있는 뜻에 부합하며, 김석영이 거짓 정보를 만들어 유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래에서 설명한다. 더구나 일제에 회유당하여 사실 정보를 발설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자료들 간의 교차 검증으로 유인석이 1908년 4월 말경 지린성을 경유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이범윤을 만나 연해주 의병 창의 결의의 사실을 밝혔다. 또 같은 해 6월 말 유인석이 연해주에 건너가 이범윤 등과 함께 한국 의병을 창의한 사실이 역시 복수 자료의 검증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적에게 노출되어 위해당할 것을 알면서 의병장들의 창의 활동을 고의적으로 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김석영이 실수로 내부계획을 유출했다는 정황이 판단되며, 따라서 이 글은 사실인 연해주 의병진의 내부 비밀계획일 것이므로 자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당시 김석영이 맡고 있는 연해주 의병진에서의 직책인 무기구입과 군량조달의 군수와 병참, 이에 따른 재무 업무에 대해 살펴본다. 의병진에서 김석영이 맡은 일은 신임받는 핵심 장병만이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무다. 일제에 가장 먼저 제거대상으로 표적이 될 업무를 맡고 있는 당사자가 무기구매와 군량조달을 맡았다고 말하여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독립운동자료》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 중요 업무를 최소한 4개월 이상 수행하고 있었다. 여러 정황을 참작할 때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의병 내부의 사실인 기밀이 유출되어 일제의 정보가 되었다는 근거이다.
김석영은 연해주 의병 창의계획을 듣고 창의의 주역인 이범윤을 직접 찾아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국가에 헌신할 뜻을 맹세하고 그의 부하가 되었다. 더구나 함께 창의한 창의대장 유인석은 그의 스승 박문일(朴文一)과 화서 이항로(李恒老·1792~1868) 문하에서 학문을 사사한 같은 문인이다. 따라서 김석영은 스승이나 다름없는 유인석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 또 동지 8~9인을 이범윤에게 소개하여 의병진에 가입시켰다. 그들은 당시에도 이범윤의 부하로서 블라디보스토크나 북간도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스승과 같은 유인석이나 몸을 자청하여 의탁한 이범윤, 또 의병의 현직에서 활약 중인 8~9명 동지들, 특히 무기매입과 군량조달의 책임자로서 연해주 의병에서 일제 수사기관이 꺼리는 가장 위험한 직책을 가진 김석영 자신의 안위를 위한다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이와 같이 거짓 정보를 조작하여 고의로 유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기록은 사실의 기밀이 실수에 의해 유출된 기록임이 확실하다.
《의암집》의 연해주 의병 자료 누락 가능성 검증
위에서 표본으로 삼은 《독립운동자료》 내용 ‘1908년 8월 함경도 정보(헌기 제432호)’의 경우 사실성이 있는 자료라는 근거를 여러 방법으로 확인하였다. 이와 같이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신뢰하는 《독립운동자료》의 유인석에 관련한 기록을 《의암집》에서 발견할 수 없다면, 분명히 《의암집》에는 기록하기 어려웠던 어떤 사정으로 누락시켰거나 삭제당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1908년 4~7월이 포함된 《의암집》을 보자. 이 부분도 편의를 위하여 다시 한 번 옮긴다.
〈戊申 先生六十七歲 正月 與諸陣別紙… 言東南諸陣 宜往西北 定根據於白頭山附近 茂山 三水甲山等地 連結淸俄舊境… 哭尹陽燮 二月 移留富平鵲村 後移通津 四月復還富平 五月還入京城 哭申在鳳 七月 發入俄地 留海蔘港…〉
이 기록에서 유인석이 행적을 숨기기 위해 기록을 자제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몇 부분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해석은 그가 연해주 의병 창의에 관련하였다고 가정하는 이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의암집》이 유인석의 사후 2년에 문인들이 그의 글을 모아 적지와 다름없는 만주 회인현에서 편집했다면 당연히 사실을 숨기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문인들이 자료 수습 과정에서 빠진 자료를 실수로 간과했거나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일제가 꺼리는 자료를 누락시킬 수 있다.
위 문장을 해석하면, 유인석은 “동남의 의병진은 마땅히 서북쪽으로 가서 백두산 부근 무산·삼수·갑산 등지에 근거지를 정하고, 청나라·러시아와 연계하라고 별지(別紙)를 여러 의병진에 보냈다”이다. 그리고 윤양섭(尹陽燮)을 문상한 후 부평·통진·부평·서울을 몇 달간 전전한 후 신재봉을 조문, 음력 7월 러시아로 떠나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인 4~7월 사이에 연해주 한국 의병진에는 중요한 여러 사건이 일어났다. 의병 창의에 관한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으며, 국내 진공을 감행하여 승패를 거듭하였다. 그렇다면 이 계획의 창안자인 유인석이 대응한 이와 같이 소극적인 의병 활동에 대해 어떤 의구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의암집》에 연해주 의병 창의 과정의 상당한 부분이 실종되었을 가능성을 아래 두 기록을 참고하여 우선 유추해석 해본다.
〈金起漢이 柳麟錫이 지은 《宇宙問答》 《尼峯稿小抄》를 천진에 있을 때 800질을 인쇄했는데 일본경찰이 조사하여 압수당하였다. 겨울에 白三圭·金起漢·李賢初가 다시 暖泉山에서 인쇄하여 선생이 돌아가신 뒤 김기한이 중국에 가서 배포하였다.〉
《우주문답(宇宙問答)》은 중국의 성현을 높여서 이것으로 천하 만대의 책략으로 삼고자 한 유인석의 사상을 실었다. 《니봉고소초(尼峯稿小抄)》는 중화의 글을 편집한 책이다. 두 책 모두에 ‘존중화 양이적(尊中華 攘夷狄)’의 화이사상(華夷思想)이 담겨 있다. 일제를 이적(夷狄)으로 본 유인석의 사상을 담은 이 책들을 일제가 허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은 《의암집》이 어렵게 간행된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문인이 비로소 遺集을 간행하였다. 장례를 지낼 때 李直愼·白三圭가 朴炳疆·金斗運의 의견에 따라 동문들과 상의하기를, “선생이 도의를 강론하고 의리를 밝힌 글들이 각지에 흩어져 있는데 이것을 수습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인쇄하여 널리 배포하는 것은 아직 겨를이 없으나, 우리 스승의 자리가 비어서 가르침을 받을 곳이 없고, 또 험난한 세상에 단권의 책으로는 보전하여 지킬 수 없는 염려가 있으니, 활자로 약간의 책을 인쇄하여 나누어 보관하여 강론하고 가슴에 담는 자료로 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정사년(1917) 1월에 요동에 간행소를 설치하여 7월에 일을 마쳤다. …문집이 완간되자 왜적이 그 일을 알고 이듬해 1월에 갑자기 보관한 곳으로 와서 40여 질을 압수해 가서 불에 태웠다.〉
초간을 일제 수사기관에 압수당해 불태워져 없어진 후 재간이 이루어졌을 상황을 상정할 때 일제의 검열 통과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또 《의암집》 간행의 취지를 적은 위 내용을 참작할 때 유인석이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글이 아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글을 수습한 정황이 보인다. 반드시 초간에 실린 내용에 가감이 따랐을 것이고, 당시 왜적에 맞서 싸운 연해주 의병의 활동을 삭제해야 검열을 피하여 발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발상이다.
오히려 흩어진 자료의 수습 과정에서 연해주 한국 의병의 창의 과정을 모두 제외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일제의 규찰을 피해 문집 간행과 원활한 배포를 위해서이다. 문인의 입장에서는 스승의 가르침과 유지를 세상에 반드시 전해야 하는 간절한 사명감이 위 글에 보인다. 다음, 유인석을 따라온 문인·가족과 지인은 물론 현지 동포들에게 위해(危害) 요소를 기재하기는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다. 자료가 실종되었을 것이라고 가상하는 부분이 창의를 계획했던 4~5월과 창의하여 국내 진공 작전으로 왜적과 교전한 6~7월이다.
먼저 ‘2월조’에서 4월 6일 유인석이 통진을 떠나 여정에 올랐을 가능성을 밝혔다. 즉 4월 6일에서 5월 말경까지의 두 달 가까운 일정이 삭제되었을 가능성이다. 하룻길 거리인 통진~부평을 두 달 걸렸다면 당연히 의구심이 간다. 다시 음력 4월에 부평에 돌아왔다가 음력 5월 서울에 입성하였다. 이 뜻은 4월 말쯤 부평에 귀환했다가 5월 초 바로 서울로 출발했다는 뜻이다. 부평~서울은 거리가 하룻길도 안 되는 일정이다.
유인석이 통진을 떠난 시기에 대해 《의암집》의 참조할 만한 기록은 통진에서 4월 5일 한식날 밤에 지은 시구에서 찾을 수 있다. 시구에 나타난 뜻으로 짐작하건대 4월 6일에 통진을 출발하여 지린성으로 향한 것으로 추리가 가능하다. 아래 한시를 보자.
〈戊申寒食夜 通津旅舍作 무신(1908) 한식 밤에 통진 여사에서 짓다.
今年寒食通津客 금년 한식에 통진의 나그네로
此夜孤燈小酒盃 이 밤 외로운 등불에 조촐하게 술잔을 비우네
屯如艱我居貞地 고달픈 고난의 이 몸 북쪽 땅에 살러 간다네
溺矣須誰濟世才 몰락한 땅 진정 누가 이 나라를 구할 인재인가
重險水能尋海去 겹겹이 험하여도 물은 잘도 바다 길을 찾아가고
特高山可擎天來 우뚝 솟은 산은 진실로 하늘을 받칠 수가 있다네
渴睡小男猶守側 졸음에 겨운 작은 아들 그래도 곁을 지키는데
解言此理永悠哉 이 이치를 풀어 말하자니 길어 아득하구나.>
유인석은 통진에서 변모(邊某)의 집에 머물렀는데 북행의 장도에 오르기 위해 거처를 여사(旅舍)로 옮긴 것 같다. 위 시에서 여관에 머물렀다면 여러 명의 동행자와 함께 북쪽으로 떠날 준비를 위해 숙박 장소를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사에서 짓다’ ‘한식에 통진의 나그네’ ‘고난의 이 몸 북쪽 땅에 살러 간다네’ ‘진정 누가 이 나라를 구할 인재인가’ 등 시구의 내용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북쪽인 연해주로 떠나기 전 지은 시가 확실하다.
특히 3~6구에서 유인석의 북행이 확연히 드러난다. 3구에서 고난이 가로막더라도 북행하여 창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4구에서 그 이유가 창의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자문자답했다. 5구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이 흘러 반드시 바다에 이른다는 자연의 순리에 비유하여 천리는 정성에 따라 부합한다는 확신을 보였다. 6구에서 높은 산이 되어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모습처럼 의병투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 시를 통진 나루터 근처의 여관에 유숙하면서 지은 것으로 본다면, 이는 반드시 먼 뱃길을 떠나기 전에 그의 회포를 기술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출행 바로 전날에 기록한 한시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행일자는 4월 6일로 추정된다. 또 마지막 구에서 이 이치란 ‘5~6구’를 말하는 것이며, 유인석 자신이 반드시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이 경우 그 이치를 소남에게 풀어서 말해주려 노력한 정황으로 보아 소남은 분명 차자 유해동(유제춘)을 지칭한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음력 4월에 부평에 돌아오고, 바로 음력 5월에 서울에 입성한 것으로 《의암집》에 기록되어 있다. 부평~서울이 하룻길 거리이지만 부평의 윤모(尹某) 집에 유숙하여 부평에서 바로 서울에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음력 4월 도착과 5월 입경으로 보아 부평에 도착은 4월 말경(양력 5월 말경)이며, 따라서 서울 입성은 음력 5월 초로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유인석은 양력 4월 6일경 통진을 떠나 두 달 후쯤인 5월 말경 부평에 다시 돌아왔다. ‘3~4구’가 북지에 출행과 명분을 내포하며, 북지는 연해주 의병진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의암집》에서 유인석의 행적이 빠져 있다고 생각되는 4~5월 두 달 동안 《독립운동자료》에는 3~4번에 이르는 유인석의 연해주 의병과 관련한 기록이 발견된다. 연해주 의병 창의를 위해 유인석이 4월 말경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이범윤과 결의했다는 기록과 이를 뒷받침하는 안중근의 증언이 근거이다. 또 유인석이 평남 개천에 들러 창의와 의병 참여의 당위성을 홍보한 5월의 글이 증거이다. 두 달 동안에 연해주 의병 창의계획 결의에 참여했으며, 《독립운동자료》에 있는 이 기록들이 《의암집》에 누락되었다는 확신이 간다.
다음, ‘5월 서울에 다시 돌아오고… 신재봉을 조문’에서 음력 5월 서울에 왔던 유인석은 음력 7월 이전 황해도 평산의 신재봉 연고지를 방문하여 조문하였다. 언제 유인석이 서울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6월 말경 연해주 의병 창의에 참석했다면 6월 초 출발이 합리적이며 약 2개월이다. 신재봉은 1907년 9월 12일 순국했음으로 9개월 후 조문이다. 그 의미는 그의 여정 중 평산을 방문한 것임으로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노정이 상정된다. 6월 초~7월 말로 추정되는 약 두 달의 《독립운동자료》 기록이 일정에서 삭제되었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이는 평산의 신재봉 조문이 음력 6월 말이라는 관점에서이다.
1908년 6~7월 두 달 동안 유인석의 의문 나는 행적의 추적이다. 그 기간 《독립운동자료》에 6월 말 유인석이 연해주 의병 창의에 참여한 것으로 추측되는 기록으로 보아 직접 연해주에 갔다는 증거이다. 7월 중순 초산·창성·의주에서 유인석의 모병 활동이 세 부분의 《통감부문서》에 기록된 것은 이 근거를 확실히 입증해 준다. 그 외 유인석의 활동과 관련된 기록들이 《독립운동자료》에 실려 있는데 7월 중·하순 지린성의 유인석 휘하에 이은찬 등 국내 의병장들과 병졸들이 모이려 한다는 정보 내용도 연해주 의병에서 유인석의 활약을 뒷받침한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유인석의 두 달에 걸친 의병 창의 과정이 자의든 타의든 《의암집》에 누락되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일제의 수사기관이 집요하게 한국 의병을 추적해 확보한 증거들은 되려 사실에 매우 가까운 정보라는 생각이다. 간혹 과장한 기록도 있다. 하지만 문집이나 종군일기 등에서 있을 수 있는 가감(加減)과 미화(美化)가 오히려 적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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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 유인석 선생. |
《의암집》에서 일제 수사기관이 유인석의 의병활동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기간은 연해주 의병의 창의(倡義)와 관련한 시기로 본다. 즉 ‘1908년 4~7월’에 이범윤 등이 연해주 의병의 창의를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안중근을 대장(隊長)으로 국내에 진공한 의병부대는 두만강을 건너 일제와 싸웠던 시기이다. 이 국내 진공이라는 의병 전략은 유인석의 ‘국외 의병 진지로서 연해주에 거점 확보’와 ‘국내 백두산 인근에 동남의 진지를 옮겨 전술적 이점을 얻기 위한 북계(北計)’가 중심이 되었다. 이 기간 전략의 주창자인 유인석의 행적이 고의와 강압에 의해 사라졌을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 또한 이번 연구의 목적이다.
《독립운동자료》의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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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년 충남 목천 지역으로 보낸 유인석의 의병 궐기 촉구 격문. 의암류인석유적지(www.ryuinseok.or.kr) 자료. |
필자는 의병장 유인석을 연구하는 데 활용한 《독립운동자료》가 사실의 기록임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다음은 1908년 8월 함경도 정보로서 일제 수사기관의 보고 내용이다. 지난호에 실었으나 글을 전개하기 위해 다시 옮겼다.
〈暴徒 巨魁 柳麟錫 及 李範允의 부하가 되어 其 財務官으로 目下 활동 중이라고 하는 金奭永이라는 자의 소식에 대하여 聞知한 要領은 左와 如하다.
一. 柳麟錫은 본년 四月頃 만주 길림성에 있어서 馬賊을 募集 中이던 바 同月 中 李範允을 海蔘威(해삼위·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방문 大擧할 約束을 結하고 길림성으로 돌아와 盛히 馬賊을 召集 당시 渠의 子弟급 部下이었던 약 五六千名의 다수에 달하고 항상 李範允과 교통하고 있었으나 본년 六月 下旬頃 李範允에 가려고 길림성을 출발하였다고 하나 其 後 渠의 소식은 불명이라고 한다.
一. 金奭永은 元 外部主事로… 海蔘威에 居住하고 金滿家가 되어 韓國有意의 士로서… 今回 李範允 等이 事를 擧하자 直時 李範允을 訪問(場所 不明) 他年의 宿望을 述하고 같이 事를 圖謀하고저 其 部下가 되어 財務官으로 武器의 買收 及 軍糧 等의 職에 當하고 또 自己에게 있었던 有志者라고 하는 輩 八九名도 같이 李의 部下가 되게 하고 海蔘威 及 北間島에서 크게 活動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자료의 사실 여부가 입증이 되면, 유인석이 1908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 건너가 이범윤과 만나 연해주 한국 의병의 창의계획을 결의한 사실이 확인된다. 《의암집》에서 유인석이 4월 6일경 출행했을 가능성과 《독립운동자료》의 5월 중 개천 경유, 《의암집》의 5월 말경 부평 도착을 참작한다면 창의계획 결의 시기는 4월 말경이 가능하다.
또 ‘항상 이범윤과 교통하고 있었으나’로 보아 상시 두 사람은 창의에 대하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교감을 가지고 있었음이 입증된다. 그 의미는 유인석이 이범윤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의할 것을 결의한 후 국내에 귀환하여 창의 준비 중임을 말한다. 그 후 창의를 위해 6월 말 다시 연해주에 가서 이범윤을 만났을 것이라는 근거이다. 이때에 즈음하여 연해주 의병을 창의하였다.
같은 시기에 발생한 사건들을 교차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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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석이 사용했던 지도. 의암류인석유적지(www.ryuinseok.or.kr) 자료. |
안중근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의거 직후 11월 27일 일제 헌병대가 공범자를 찾아내기 위한 신문(訊問)에서 진술한 유인석 관련 사항이다.
〈柳麟錫은 昨年 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다. 柳는 그때 十五歲가량의 男子를 데리고 있었다. 今日의 國家形勢에 대해 先生의 가르침을 받겠다고 말했더니 “어떻게든 愛國하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을 뿐 많이는 말하지 않았다.〉
아래 글은 뒤에 참고한 《의암집》의 유인석이 한식날 밤에 지은 시구이다.
“졸음에 겨운 작은 아들 그래도 곁을 지키는데”(渴睡小男猶守側).
먼저 같은 《독립운동자료》의 1908년 8월 일제 수사기관의 보고를 보면, 유인석이 4월 이범윤과 만나 창의계획에 합의했다.
이 기록과 비교할 때 1909년 11월 안중근의 진술에서 유인석을 만난 때가 1908년 봄이라고 말한 것은 ‘1908년 4월 창의계획’ 때와 일치한다. 두 《독립운동자료》에서 같은 때로 볼 수 있는 ‘4월과 봄’에 유인석과 이범윤이 만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의암집》에서도 유인석이 4월 6일 북행길에 올랐다는 가정에서 연해주 도착은 4월 말경으로 추정된다.
또 《독립운동자료》의 안중근 진술 내용 중 “15세가량의 남자를 데리고 온 유인석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았다”는 부분이 있다. 이 진술의 유인석과 《의암집》에 실려 있는 소남을 동반하고 길을 떠난 유인석과는 ‘15세가량 남자’와 ‘소남’을 같은 동자로 볼 때 동일인 유인석이다. ‘4월과 봄’ ‘15세 남자와 소남’ ‘4월과 4월 6일 북행’으로 《독립운동자료》와 《의암집》의 내용에서 유인석이 나타난 때와 동자를 동반한 조건이 일치한다.
다시 말하면, 자료를 교차 검증한 내용에서 1908년 4월에 회동한 시기가 같고, 유인석이 같은 동자를 동반했다는 조건이 일치한다면 그가 1908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을 만나 창의계획을 결의했다는 일제 수사기관의 보고는 충분히 신빙성 있는 사실 자료이다.
다음, “유인석은 1908년 6월 말 이범윤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라는 기록에 대한 분석이다. 즉 유인석이 연해주 의병을 창의하는 6월 말경 이범윤을 만난 것은 창의계획의 두 주역으로서 창의를 위해 만난 일 외에는 다른 상상이 필요 없을 것이므로 이에 대한 사실 검증이 중요하다. 6월 말경 연해주 의병이 창의하고 7월 초 안중근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두만강을 건너 대일항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하는 다음 자료를 살펴본다.
같은 《독립운동자료》의 내용이다. 1909년 12월 6일 안중근이 ‘제9회 신문’에서 진술한 것이다.
〈내가 義兵으로서 實戰에 從事한 것은 昨年 陰 六月 五日頃 시치노의 嚴仁燮(시치노는 燃秋에서 아지미 방면으로 四十韓里에 있다)이 村에서 元 李範允의 부장이었던 전 경무관 全濟益을 대장으로 하고 嚴仁燮은 좌군영장 나는 우군영장이 되어 의병 五十餘명을 이끌고 시치노를 출발하여 경흥부 혼쯔코를(두만강 해안)로 출병하여 동 방면에 교통으로 온 日兵 四名을 저격하여 이를 죽인 것은 무릇 七·八日頃이다.〉
‘작년 음 6월 5일’은 양력으로 1908년 7월 3일이다. 7월 3일에 두만강을 건넜다면 창의가 6월 말경이라는 추정은 옳은 관점이다. 늦어도 7월 1~2일인데 출병의 준비 과정으로 보아 6월 말경이 더 근접한 창의시기로 여겨진다.
《안중근 자서전》의 기록에서도 연해주 의병은 6월에 국내로 진공했다.
〈그때 金斗星과 李範允 등이 모두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 사람들은 전일에 이미 總督과 大將으로 피임된 이들이요. 나는 參謀中將의 직책으로 피선되었다. 우리는 의병과 군기 등을 비밀히 수송하여 豆滿江 근처에서 모인 다음 큰일을 모의하였다. … 그때 여러 장교들을 거느리고 부대를 나누어 출발하여 두만강을 건너니 때는 6월이었다.〉
두만강을 건넌 1908년 6월이 음력이면 양력 7월이다. 위 《독립운동자료》의 안중근 진술과 같다. 그의 자서전은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천주교 신자로서 자신의 일생을 가식 없이 정리한 것으로 대체로 거짓이 없다는 평가다.
의주경찰서장이 조선통감부의 장관대리 앞으로 보고한 자료 1908년 7월 22~25일자 《통감부문서》 5의 〈폭도 건-기밀통발 제940호〉 등을 다시 살펴본다. 보고 일자를 참작할 때 유인석의 활동시기는 7월 중순으로 짐작된다. 이때 유인석이 평안북도에서 모병을 지휘했다면 연해주 의병 창의 후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6월 말경 창의를 간접적으로 확인해 주는 자료이다.
그 후의 이동경로를 《의암집》을 통해 살펴본다. 이렇게 보면 유인석의 이동경로가 ‘6월 말경 연해주 의병 창의 참여-7월 중순 평북 초산·창성·의주에서 모병 활동-7월 말경(음력 6월 말경) 황해도 평산의 신재봉 조문-7월 말~8월 초경 서울 입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1908년 6월 말경 유인석이 연해주 의병의 창의에 직접 참여한 것을 암시한 ‘헌기 제432호’ 기록의 사실성이 입증된다.
발생 시기가 다른 사건들의 비교 검증
다음은 1908년 12월 일제 헌병대 개천분견소의 정보이다.
〈車炳律은 8월 20일경 柳麟錫을 從하여 玄熙述 吉鳳珠와 共히 京城을 출발하여 元山으로 赴하였을 時 柳麟錫으로부터 명령을 受하고 헤어졌던바 아직 賊徒의 모집 군자금 징집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크게 부끄러워 其時 赴치 못하였던 것이다.…
車炳律의 言에 據하면 柳麟錫은 露國 水晶 개척지에서 부하 3,000명을 모집하고 기중 충청도 약 800명 강원도 600명 함경도 1,600명이 빈번히 교련을 하고 있다. 此 사실은 車炳律이 받은 서면에 기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柳麟錫의 부하 金錫永(수정에 있다)은 露國人 某와 가만히 통하여 目下 총 3,000 탄약 1挺에 대하여 300발 급 露의 군복 200개를 노국으로부터 매입을 하고 착착 준비에 노력하고 있다.
我 헌병에게 체포당한 것은 실로 柳麟錫에게 不忠하였음과 또 대망을 누설하지 아니치 못하기에 至하였음은 割腹 외에 없다고 탄식하고 있었다.〉
이 내용은 1908년 8월 것과 비교할 때 4개월 뒤의 기록이다. 유인석의 문인이며 부하 의병인 차병률(車炳律)은 유인석의 명령에 따라 평남 개천에서 모병과 모금 활동 중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그가 일제의 고문에 굴복하여 연해주 의병의 상황을 토설한 듯하다. 이 토설을 유인석에 불충한 비겁자의 행위로 자책하여 할복할 뜻까지 가진 것으로 보아 유인석을 통하여 서면으로 알게 된 연해주 의병의 실상임이 확실하다.
이 내용 중 “유인석의 부하 김석영은 노국인 모와 가만히 통하여 목하 총 3,000 탄약 1정에 대하여 300발 급 노의 군복 200개를 노국으로부터 매입을 하고 착착 준비에 노력하고 있다”는 부분을 검토한다. 이 글의 김석영(金奭永, 金錫永은 동일인)은 4개월 전 자료에서도 “무기의 매수 급 군량 등의 직에 당하고”라고 하여 동일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다. 김석영과 일면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에 간 일이 없는 차병률의 토설이 4개월 전 일제 수사기관이 입수한 정보와 같다.
차병률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토설한 유인석을 통하여 받았다는 서면의 기재는 그의 고뇌하는 정황으로 보아 당시 연해주 의병진의 기밀자료로 보인다. 1908년 12월의 내용과 4개월 전인 8월 것의 중요 사항이 일치한다는 것은 《독립운동자료》가 사실인데 실수로 유출되었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1908년 8월의 정보를 사실의 자료로 보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정보 내용을 분석한 사실성 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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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의병들이 사용했던 무기들. 의암류인석유적지(www.ryuinseok.or.kr) 자료. |
비록 가정이지만 이 내부 계획이 김석영이 맡은 직책의 특성상 러시아 무기구입 과정에서 러시아 무기상에게 전해지고 다시 일제 수사기관에 입수되었을 가능성이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전 직후이므로 러시아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동병상련으로 우호적이었다. 무기매매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논의될 여러 사항 중 구입무기의 종류, 목적·용도와 필요시기, 구매량과 가격, 인도와 대금 지불조건 등은 필수적이다.
특히 합법적이 아닌 패전 러시아군과의 위험한 무기거래는 쌍방의 신뢰를 필요로 하며 최소한의 내부사정 대화는 필연적이다. 일제는 승전국의 입장에서 러시아 측에 외교적 회유와 강압에 의한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쉽게 김석영이 발설한 연해주 의병진의 내부계획을 주요 정보로 취득할 수 있다. ‘김석영이란 자의 소식에 대하여 문지한 요령’이란 글이 내포하고 있는 뜻에 부합하며, 김석영이 거짓 정보를 만들어 유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래에서 설명한다. 더구나 일제에 회유당하여 사실 정보를 발설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자료들 간의 교차 검증으로 유인석이 1908년 4월 말경 지린성을 경유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이범윤을 만나 연해주 의병 창의 결의의 사실을 밝혔다. 또 같은 해 6월 말 유인석이 연해주에 건너가 이범윤 등과 함께 한국 의병을 창의한 사실이 역시 복수 자료의 검증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적에게 노출되어 위해당할 것을 알면서 의병장들의 창의 활동을 고의적으로 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김석영이 실수로 내부계획을 유출했다는 정황이 판단되며, 따라서 이 글은 사실인 연해주 의병진의 내부 비밀계획일 것이므로 자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당시 김석영이 맡고 있는 연해주 의병진에서의 직책인 무기구입과 군량조달의 군수와 병참, 이에 따른 재무 업무에 대해 살펴본다. 의병진에서 김석영이 맡은 일은 신임받는 핵심 장병만이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무다. 일제에 가장 먼저 제거대상으로 표적이 될 업무를 맡고 있는 당사자가 무기구매와 군량조달을 맡았다고 말하여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독립운동자료》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 중요 업무를 최소한 4개월 이상 수행하고 있었다. 여러 정황을 참작할 때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의병 내부의 사실인 기밀이 유출되어 일제의 정보가 되었다는 근거이다.
김석영은 연해주 의병 창의계획을 듣고 창의의 주역인 이범윤을 직접 찾아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국가에 헌신할 뜻을 맹세하고 그의 부하가 되었다. 더구나 함께 창의한 창의대장 유인석은 그의 스승 박문일(朴文一)과 화서 이항로(李恒老·1792~1868) 문하에서 학문을 사사한 같은 문인이다. 따라서 김석영은 스승이나 다름없는 유인석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 또 동지 8~9인을 이범윤에게 소개하여 의병진에 가입시켰다. 그들은 당시에도 이범윤의 부하로서 블라디보스토크나 북간도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스승과 같은 유인석이나 몸을 자청하여 의탁한 이범윤, 또 의병의 현직에서 활약 중인 8~9명 동지들, 특히 무기매입과 군량조달의 책임자로서 연해주 의병에서 일제 수사기관이 꺼리는 가장 위험한 직책을 가진 김석영 자신의 안위를 위한다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이와 같이 거짓 정보를 조작하여 고의로 유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기록은 사실의 기밀이 실수에 의해 유출된 기록임이 확실하다.
《의암집》의 연해주 의병 자료 누락 가능성 검증
위에서 표본으로 삼은 《독립운동자료》 내용 ‘1908년 8월 함경도 정보(헌기 제432호)’의 경우 사실성이 있는 자료라는 근거를 여러 방법으로 확인하였다. 이와 같이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신뢰하는 《독립운동자료》의 유인석에 관련한 기록을 《의암집》에서 발견할 수 없다면, 분명히 《의암집》에는 기록하기 어려웠던 어떤 사정으로 누락시켰거나 삭제당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1908년 4~7월이 포함된 《의암집》을 보자. 이 부분도 편의를 위하여 다시 한 번 옮긴다.
〈戊申 先生六十七歲 正月 與諸陣別紙… 言東南諸陣 宜往西北 定根據於白頭山附近 茂山 三水甲山等地 連結淸俄舊境… 哭尹陽燮 二月 移留富平鵲村 後移通津 四月復還富平 五月還入京城 哭申在鳳 七月 發入俄地 留海蔘港…〉
이 기록에서 유인석이 행적을 숨기기 위해 기록을 자제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몇 부분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해석은 그가 연해주 의병 창의에 관련하였다고 가정하는 이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의암집》이 유인석의 사후 2년에 문인들이 그의 글을 모아 적지와 다름없는 만주 회인현에서 편집했다면 당연히 사실을 숨기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문인들이 자료 수습 과정에서 빠진 자료를 실수로 간과했거나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일제가 꺼리는 자료를 누락시킬 수 있다.
위 문장을 해석하면, 유인석은 “동남의 의병진은 마땅히 서북쪽으로 가서 백두산 부근 무산·삼수·갑산 등지에 근거지를 정하고, 청나라·러시아와 연계하라고 별지(別紙)를 여러 의병진에 보냈다”이다. 그리고 윤양섭(尹陽燮)을 문상한 후 부평·통진·부평·서울을 몇 달간 전전한 후 신재봉을 조문, 음력 7월 러시아로 떠나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인 4~7월 사이에 연해주 한국 의병진에는 중요한 여러 사건이 일어났다. 의병 창의에 관한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으며, 국내 진공을 감행하여 승패를 거듭하였다. 그렇다면 이 계획의 창안자인 유인석이 대응한 이와 같이 소극적인 의병 활동에 대해 어떤 의구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의암집》에 연해주 의병 창의 과정의 상당한 부분이 실종되었을 가능성을 아래 두 기록을 참고하여 우선 유추해석 해본다.
〈金起漢이 柳麟錫이 지은 《宇宙問答》 《尼峯稿小抄》를 천진에 있을 때 800질을 인쇄했는데 일본경찰이 조사하여 압수당하였다. 겨울에 白三圭·金起漢·李賢初가 다시 暖泉山에서 인쇄하여 선생이 돌아가신 뒤 김기한이 중국에 가서 배포하였다.〉
《우주문답(宇宙問答)》은 중국의 성현을 높여서 이것으로 천하 만대의 책략으로 삼고자 한 유인석의 사상을 실었다. 《니봉고소초(尼峯稿小抄)》는 중화의 글을 편집한 책이다. 두 책 모두에 ‘존중화 양이적(尊中華 攘夷狄)’의 화이사상(華夷思想)이 담겨 있다. 일제를 이적(夷狄)으로 본 유인석의 사상을 담은 이 책들을 일제가 허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은 《의암집》이 어렵게 간행된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문인이 비로소 遺集을 간행하였다. 장례를 지낼 때 李直愼·白三圭가 朴炳疆·金斗運의 의견에 따라 동문들과 상의하기를, “선생이 도의를 강론하고 의리를 밝힌 글들이 각지에 흩어져 있는데 이것을 수습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인쇄하여 널리 배포하는 것은 아직 겨를이 없으나, 우리 스승의 자리가 비어서 가르침을 받을 곳이 없고, 또 험난한 세상에 단권의 책으로는 보전하여 지킬 수 없는 염려가 있으니, 활자로 약간의 책을 인쇄하여 나누어 보관하여 강론하고 가슴에 담는 자료로 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정사년(1917) 1월에 요동에 간행소를 설치하여 7월에 일을 마쳤다. …문집이 완간되자 왜적이 그 일을 알고 이듬해 1월에 갑자기 보관한 곳으로 와서 40여 질을 압수해 가서 불에 태웠다.〉
초간을 일제 수사기관에 압수당해 불태워져 없어진 후 재간이 이루어졌을 상황을 상정할 때 일제의 검열 통과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또 《의암집》 간행의 취지를 적은 위 내용을 참작할 때 유인석이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글이 아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글을 수습한 정황이 보인다. 반드시 초간에 실린 내용에 가감이 따랐을 것이고, 당시 왜적에 맞서 싸운 연해주 의병의 활동을 삭제해야 검열을 피하여 발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발상이다.
오히려 흩어진 자료의 수습 과정에서 연해주 한국 의병의 창의 과정을 모두 제외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일제의 규찰을 피해 문집 간행과 원활한 배포를 위해서이다. 문인의 입장에서는 스승의 가르침과 유지를 세상에 반드시 전해야 하는 간절한 사명감이 위 글에 보인다. 다음, 유인석을 따라온 문인·가족과 지인은 물론 현지 동포들에게 위해(危害) 요소를 기재하기는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다. 자료가 실종되었을 것이라고 가상하는 부분이 창의를 계획했던 4~5월과 창의하여 국내 진공 작전으로 왜적과 교전한 6~7월이다.
먼저 ‘2월조’에서 4월 6일 유인석이 통진을 떠나 여정에 올랐을 가능성을 밝혔다. 즉 4월 6일에서 5월 말경까지의 두 달 가까운 일정이 삭제되었을 가능성이다. 하룻길 거리인 통진~부평을 두 달 걸렸다면 당연히 의구심이 간다. 다시 음력 4월에 부평에 돌아왔다가 음력 5월 서울에 입성하였다. 이 뜻은 4월 말쯤 부평에 귀환했다가 5월 초 바로 서울로 출발했다는 뜻이다. 부평~서울은 거리가 하룻길도 안 되는 일정이다.
유인석이 통진을 떠난 시기에 대해 《의암집》의 참조할 만한 기록은 통진에서 4월 5일 한식날 밤에 지은 시구에서 찾을 수 있다. 시구에 나타난 뜻으로 짐작하건대 4월 6일에 통진을 출발하여 지린성으로 향한 것으로 추리가 가능하다. 아래 한시를 보자.
〈戊申寒食夜 通津旅舍作 무신(1908) 한식 밤에 통진 여사에서 짓다.
今年寒食通津客 금년 한식에 통진의 나그네로
此夜孤燈小酒盃 이 밤 외로운 등불에 조촐하게 술잔을 비우네
屯如艱我居貞地 고달픈 고난의 이 몸 북쪽 땅에 살러 간다네
溺矣須誰濟世才 몰락한 땅 진정 누가 이 나라를 구할 인재인가
重險水能尋海去 겹겹이 험하여도 물은 잘도 바다 길을 찾아가고
特高山可擎天來 우뚝 솟은 산은 진실로 하늘을 받칠 수가 있다네
渴睡小男猶守側 졸음에 겨운 작은 아들 그래도 곁을 지키는데
解言此理永悠哉 이 이치를 풀어 말하자니 길어 아득하구나.>
유인석은 통진에서 변모(邊某)의 집에 머물렀는데 북행의 장도에 오르기 위해 거처를 여사(旅舍)로 옮긴 것 같다. 위 시에서 여관에 머물렀다면 여러 명의 동행자와 함께 북쪽으로 떠날 준비를 위해 숙박 장소를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사에서 짓다’ ‘한식에 통진의 나그네’ ‘고난의 이 몸 북쪽 땅에 살러 간다네’ ‘진정 누가 이 나라를 구할 인재인가’ 등 시구의 내용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북쪽인 연해주로 떠나기 전 지은 시가 확실하다.
특히 3~6구에서 유인석의 북행이 확연히 드러난다. 3구에서 고난이 가로막더라도 북행하여 창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4구에서 그 이유가 창의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자문자답했다. 5구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이 흘러 반드시 바다에 이른다는 자연의 순리에 비유하여 천리는 정성에 따라 부합한다는 확신을 보였다. 6구에서 높은 산이 되어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모습처럼 의병투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 시를 통진 나루터 근처의 여관에 유숙하면서 지은 것으로 본다면, 이는 반드시 먼 뱃길을 떠나기 전에 그의 회포를 기술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출행 바로 전날에 기록한 한시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행일자는 4월 6일로 추정된다. 또 마지막 구에서 이 이치란 ‘5~6구’를 말하는 것이며, 유인석 자신이 반드시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이 경우 그 이치를 소남에게 풀어서 말해주려 노력한 정황으로 보아 소남은 분명 차자 유해동(유제춘)을 지칭한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음력 4월에 부평에 돌아오고, 바로 음력 5월에 서울에 입성한 것으로 《의암집》에 기록되어 있다. 부평~서울이 하룻길 거리이지만 부평의 윤모(尹某) 집에 유숙하여 부평에서 바로 서울에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음력 4월 도착과 5월 입경으로 보아 부평에 도착은 4월 말경(양력 5월 말경)이며, 따라서 서울 입성은 음력 5월 초로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유인석은 양력 4월 6일경 통진을 떠나 두 달 후쯤인 5월 말경 부평에 다시 돌아왔다. ‘3~4구’가 북지에 출행과 명분을 내포하며, 북지는 연해주 의병진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의암집》에서 유인석의 행적이 빠져 있다고 생각되는 4~5월 두 달 동안 《독립운동자료》에는 3~4번에 이르는 유인석의 연해주 의병과 관련한 기록이 발견된다. 연해주 의병 창의를 위해 유인석이 4월 말경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이범윤과 결의했다는 기록과 이를 뒷받침하는 안중근의 증언이 근거이다. 또 유인석이 평남 개천에 들러 창의와 의병 참여의 당위성을 홍보한 5월의 글이 증거이다. 두 달 동안에 연해주 의병 창의계획 결의에 참여했으며, 《독립운동자료》에 있는 이 기록들이 《의암집》에 누락되었다는 확신이 간다.
다음, ‘5월 서울에 다시 돌아오고… 신재봉을 조문’에서 음력 5월 서울에 왔던 유인석은 음력 7월 이전 황해도 평산의 신재봉 연고지를 방문하여 조문하였다. 언제 유인석이 서울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6월 말경 연해주 의병 창의에 참석했다면 6월 초 출발이 합리적이며 약 2개월이다. 신재봉은 1907년 9월 12일 순국했음으로 9개월 후 조문이다. 그 의미는 그의 여정 중 평산을 방문한 것임으로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노정이 상정된다. 6월 초~7월 말로 추정되는 약 두 달의 《독립운동자료》 기록이 일정에서 삭제되었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이는 평산의 신재봉 조문이 음력 6월 말이라는 관점에서이다.
1908년 6~7월 두 달 동안 유인석의 의문 나는 행적의 추적이다. 그 기간 《독립운동자료》에 6월 말 유인석이 연해주 의병 창의에 참여한 것으로 추측되는 기록으로 보아 직접 연해주에 갔다는 증거이다. 7월 중순 초산·창성·의주에서 유인석의 모병 활동이 세 부분의 《통감부문서》에 기록된 것은 이 근거를 확실히 입증해 준다. 그 외 유인석의 활동과 관련된 기록들이 《독립운동자료》에 실려 있는데 7월 중·하순 지린성의 유인석 휘하에 이은찬 등 국내 의병장들과 병졸들이 모이려 한다는 정보 내용도 연해주 의병에서 유인석의 활약을 뒷받침한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유인석의 두 달에 걸친 의병 창의 과정이 자의든 타의든 《의암집》에 누락되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