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침몰 있던 2010년부터 ‘북한과의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KPP) 시작
⊙ KPP 대상은 관료가 아닌 30~40대 초 김일성종합대, 인민경제대 등의 젊은 학자
⊙ ‘경제특구’ 다룬 학술회의 6개월 간격으로 2차례 평양에서 열어… 北 뜨거운 관심
⊙ “평양은 지금 리모델링 중… 건물들 짓고 여성은 세련, 휴대폰·노트북 휴대할 수 있어”
朴京愛
⊙ 59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조지아대 정치학 박사.
⊙ 美 프랭클린앤마셜대학 정치학과 교수, 북미 한국정치학회 회장 역임.
現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
⊙ 저서: 《변화하는 한반도 안보 동학(Korean Security Dynamics in Transition)》
《북한 외교정책의 새로운 도전(New Challenges of North Korean Foreign Policy)》 등.
⊙ KPP 대상은 관료가 아닌 30~40대 초 김일성종합대, 인민경제대 등의 젊은 학자
⊙ ‘경제특구’ 다룬 학술회의 6개월 간격으로 2차례 평양에서 열어… 北 뜨거운 관심
⊙ “평양은 지금 리모델링 중… 건물들 짓고 여성은 세련, 휴대폰·노트북 휴대할 수 있어”
朴京愛
⊙ 59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조지아대 정치학 박사.
⊙ 美 프랭클린앤마셜대학 정치학과 교수, 북미 한국정치학회 회장 역임.
現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
⊙ 저서: 《변화하는 한반도 안보 동학(Korean Security Dynamics in Transition)》
《북한 외교정책의 새로운 도전(New Challenges of North Korean Foreign Policy)》 등.
- 지난 5월 2일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경제특구 관련 학술 회의가 열렸다. 박 교수는 캐나다-북한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남북 교류사에서 몇 안 되는 화사(華奢)했던 순간은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순간이다.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현정화(玄靜和)-리분희 복식조가 세계를 제패한 순간은 두고두고 감동적인 순간으로 회자됐다. 2002년부터 세 차례 남한을 방문한 북한의 여성응원단은 방문 때마다 화제를 몰고 왔다. 가수 이효리(李孝利)와 만수대예술단원 조명애가 2005년 동반 출연했던 삼성전자 광고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문화나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여성은 없을까. 그러던 차에 박경애(朴京愛) 교수의 존재를 알게 됐다.
北-캐나다 수교 과정에 참여
박경애 교수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에서 정치학 교수와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 1995년 처음 평양을 방문한 이후 현재는 매년 한두 번씩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 첫 방문은 외교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지난 2001년 캐나다와 북한이 수교를 맺을 때, 캐나다 정부 인사들과 함께 막후에서 비정부 차원의 접촉 과정에 관여했다. 현재는 캐나다-북한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Canada-DPRK Knowledge Partnership Program·KPP)을 이끌며, 각종 경제 관련 국제회의를 평양에서 개최하는 등 학문 분야의 교류에 참여하고 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박 교수에게 전화를 통해 그동안 북한과 어떤 학문적 교류를 했는지와 최근 평양의 분위기, KPP의 진행상황 등에 대해 물었다.
—북한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공산주의 비교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썼어요. 중국과 북한의 정치발전을 비교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미국에서 교수를 할 때는 한국 국적이라 북한을 갈 수 없었지요. 세미나 같은 데서는 북한 학자들을 만나고 그랬지만요. 90년대 중반에 UBC에 교수로 왔습니다.
그때까지 캐나다와 북한 사이에는 공식외교 관계가 없었어요. 다만 트랙2 레벨에서 교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와 캐나다인 교수 2명이 1995년에 처음 북한을 방문한 후 여러 번 북한을 왔다갔다했어요. 비정부 차원에서 방문하면서 캐나다 정부에 브리핑도 하곤 했습니다.
1996년에는 북한 측에서 캐나다로 답방을 오기도 했어요. 1999년에는 캐나다 외무성 사람들과 함께 평양에 갔습니다. 그때 캐나다는 자유당 정부 시절이었어요. 외교관계 맺는 것을 심도 있게 논의했지요. 2000년에 양국 정부가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고, 2001년에 수교를 했습니다.”
—북한과의 지식교류프로그램, KPP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수교를 한 이후에는 특별히 제가 북한에 갈 일이 없었어요. 거기다가 2002년부터 북핵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잖아요. 그때부터 북한과 캐나다는 외교관계는 있지만 교류가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2010년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치적인 이유로 교류가 전혀 없는 상황이니, 비정치적 차원에서라도 교류하자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2010년 5월에 KPP에 대한 제안을 들고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마침 천안함 침몰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였어요. 캐나다 외무성은 저를 말렸어요. ‘북한 정부와 고위급에서의 접촉은 안 한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다.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 차원에서 도와줄 수 없다. 평양에 안 들어가면 좋겠다’는 얘기였어요. 그래도 별일 없으리란 생각에 그냥 평양에 들어갔습니다.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에 대한 협의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어요. 이듬해 1기가 캐나다에 와서 공부를 하고 돌아갔지요.”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도 人權’
—KPP는 어떻게 운영하는지요.
“북한의 경제, 경영, 무역, 금융 분야 전공교수들 중 매년 6명을 선발합니다. 그 교수들이 UBC에 와서 6개월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갑니다. 7월에 와서 12월에 돌아가요. 6명이 한꺼번에 와서 6개월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간다는 얘기인데, 북미에서는 유일무이한 프로그램입니다.
연수를 온 교수들은 UBC에 개설된 가을학기 학부와 대학원 강의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스스로 시간표를 짭니다. 거시경제나 미시경제, 조직경영 등을 많이 듣지요. 학기 중에 토론토를 방문해 법률회사나 은행, 보험회사를 견학하고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보는 기회도 제공 중입니다.”
—참여 교수는 어떤 기준으로 뽑나요.
“일단 저희 쪽에서는 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학문적 업적이 높고 앞으로 자기 분야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을 원한다고 기준을 정했습니다. 30대나 40대 초반 정도의 교수들이지요. 캐나다에서 배운 것을 북한에 돌아가서 오랫동안 가르쳐야 하잖아요. 영어도 당연히 선발 기준 중 하나고요. 지금까지는 북한에서도 명문대에 속하는 곳의 교수들이 주로 왔습니다. 김일성종합대, 인민경제대, 원산경제대, 평양외대에서 왔어요.
사실 관료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이나 열흘씩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은 전에도 여러 번 있었어요. 하지만 관료는 어떤 지식을 보고 들으면 본인 차원에서 끝나잖아요. 제가 교류의 대상을 학자로 정한 이유도 그겁니다. 학자는 자신의 지식을 전수하지 않습니까. 매년 6명밖에 안 되지만, 교수들을 데려오면 몇 배의 효과가 있잖아요.”
—UBC에서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북한과 UBC 양측 모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주요 대학의 교수를 6명이나 한꺼번에 해외로 내보내는 것이고, 캐나다 입장에서는 적대국 아닙니까. 그렇지만 교육기관으로서 다른 교육기관과 학술 교류를 하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KPP는 정치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학술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학술적인 교류를 통해 언젠가는 양국관계가 좋아진다면 보람이 있는 것이지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몇 가지 생각한 게 있습니다. 지식에 대한 접근성, 교육에 대한 권리, 이런 게 바로 ‘인권’ 아닐까요?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잖아요.”
—UBC가 왜 이런 프로그램을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나요?
“캐나다 신문에 KPP에 대한 기사가 났을 때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왜 UBC가 그런 프로그램을 하느냐’는 내용이었지요. 학교 측이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저에게 물었어요.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어디에서 태어난 누구라도 교육을 받을 권리를 제공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교육자들은 변화를 향해가는 다리(agent)가 될 수 있어요. 지식은 소프트 파워지요.
사실 KPP를 시작하고 처음 2년 정도는 거의 인터뷰 자체를 안 했어요. 이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도 크게 공개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지난해 10월에 평양에서 연 국제회의가 《노동신문》, 조선중앙TV, 《평양타임스》 등 북한의 신문·방송 매체들과 평양 주재 AP통신, 신화통신, 도쿄통신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크게 보도가 됐어요. 그러면서 알려졌지요.”
‘큰누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北교수들
—다녀간 북한 교수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돌아갈 때쯤에 제가 종강 인터뷰를 합니다. 여기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 건지 계획을 묻지요. 이런 말들을 하더라고요. ‘여기에 와서 보니까 강의 중에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더라. 학생들이 주도하는 그룹 프로젝트 등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게임 이론 등 여러 이론을 흥미있게 공부했다’ 등등요.
제가 매년 4~5월 평양에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점검을 해요. 지난 5월에도 들어가서 만났습니다. 가서 보니 UBC에서 배운 걸 잘 활용하고 있더라고요. 김일성대 같은 경우는 무역경제학과를 국제경제학과로 바꿨어요. 새로운 강의도 개설했고요. 인민경제대는 개발학과라는 학과를 신설했어요. 새로운 강의 과정에 KPP 졸업생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교수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 연구자료를 굉장히 많이 가져가요. 다녀간 뒤 책을 5권이나 쓴 교수도 있어요. 승진한 사람들도 있고요. 또 이 사람들이 북한 정권에 학자로서 정책 자문을 할 수 있는 위치에도 있잖아요.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이 목표로 했던 강의, 연구, 정책 자문, 이 세 가지 부문에서의 기대 효과가 모두 순조롭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6개월 동안 함께 지내다 가면 정도 많이 들 것 같습니다.
“출국할 때 정말 섭섭해요. 참가한 교수들이 다 저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니까 저에게 큰누님이라고 합니다. 공항에서 그냥 들어가지 못하고 몇 발자국 떼다가 뒤돌아서 손 흔들고, 다시 가다가 뒤돌아서 큰누님! 하고 부르기도 해요. 이듬해 봄에 제가 평양에 가서 졸업생들을 만나면 정말 반가워해요.
기수별로 그룹을 지어 만나는데, 작년 12월에 귀국한 3기생들과 지난 5월에 만났어요. 근처 산으로 같이 피크닉을 갔습니다. ‘누님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시라’면서 부인들이 며칠 전부터 잠 안 자고 연구해서 준비한 요리들을 가지고 나왔어요. 정성이 깃든 음식들이더라고요. 내부 인트라넷에서 요리법을 검색해서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왔다고 하는데 감동받았어요.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요즘엔 어떤 책을 구상하고 있는지, 어떤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지요. 참 뿌듯했어요.”
‘北에 경제특구를 학회의 주제로 제시’
박 교수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5월, 평양에서 열린 국제회의를 실질적으로 조직했다. ‘경제특구’를 주제로 한 회의였다.
—경제특구를 주제로 정한 이유가 있는지요.
“지난해 10월에 열린 국제회의를 위해 2012년 말부터 준비를 했어요. 주제를 고민하면서 저희 쪽에서 먼저 제안을 했어요. ‘북한과 비슷한 조건의 나라들이 대부분 특구를 통해 경제발전을 했으니까, 경제특구를 회의 주제로 해보는 게 어떻겠나’하는 제안이었지요. 10월에 회의가 열리고 한 달 후에 북한에서 13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해 발표했어요.
10월 회의에는 제가 초청한 외국의 경제특구 전문가 13명이 참석했습니다. 북한 측에서는 정부관료들과 특구 관련 학자, 전문가들이 80명가량 참석했고요. 경제특구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과 함께 주로 외국의 특구 관련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경제특구를 관리, 운영하는 방법, 경제특구와 투자 등 여러 주제를 다뤘지요. 회의가 크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북한 측에서 후속 회의를 열자고 제안을 해왔어요. 6개월 간격으로 2개의 국제회의를 연다는 게 쉽진 않았지만, 지난 5월 초에 회의를 다시 개최했습니다.”
—10월 회의에서 ‘이 나라의 개발 형태가 북한에 가장 적합하다’는 식의 결론이 나왔나요?
“아니요. 국제학술회의의 목적이 각 나라의 실패와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는 게 목적이었지, 일방적으로 어떤 형태가 맞다고 제시하기 위한 회의가 아니었어요. 중국, 미얀마,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의 국가의 케이스를 분석해서 발표했습니다. 이걸 취합해 어떻게 특구 개발 전략을 꾸려나갈지는 북한에 달린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어느 나라의 모델이 가장 북한에 적합하다고 봅니까.
“일단 저는 특구 전문가는 아닙니다. 다만, 정치·사회적인 조건으로 보자면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보다는 베트남, 중국, 미얀마에서 배울 게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선에 150여 개 외국 기업 진출
—5월에는 주로 어떤 주제를 논의했습니까.
“5월 회의에는 북한의 경제특구 자체에 초점을 두자고 결정하고, 회의 전에 외국 전문가들과 함께 특구를 직접 둘러봤어요. 중국에서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간 다음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식으로 특구를 돌아봤지요. 나진에서부터 원산에 이르기까지 엿새 동안 6군데를 가봤습니다. 북한이 전국에 걸쳐 있는 여러 개의 경제특구를 외국 전문가들에게 보여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특구 지정을 11월에 발표했으니 6개월 후에 방문한 건데, 청사진을 만드는 중이었어요. 아직 땅만 구획해 놓은 단계였습니다. 물론 기존의 특구인 나선특구는 다르지요. 제가 이번에 나선에 가보고 놀랐어요. 외국 기업이 150여 개나 들어와 있다고 하더라고요. 중국, 러시아 기업뿐 아니라 태국, 일본, 이탈리아, 호주에서 온 기업들이 있었어요.”
—함께 방문한 외국 전문가들은 특구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던가요.
“특구를 13개 지정한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지정했다는 지적이 나왔어요. 한꺼번에 개발하려 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지요. 여기에 대해 북한 측은 ‘우리가 각 도마다 특구를 지정한 것은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다’라고 답했습니다. 나선이나 황금평, 위화도 특구는 중앙 차원에서 관리하는 특구지만, 이번에 지정한 특구는 지방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특구거든요. 각 특구를 보면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투자계획도 13개의 특구를 다 합쳐 약 16억 달러가량 예상하고 있고요.”
—엿새 동안 북한 곳곳을 돌아다녔다고요.
“매일 저녁 다른 도시에서 잠을 잤지요. 가는 데마다 인민위원회에서 경제특구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계획을 설명하고, 우리 일행과 토론도 했어요. 논이나 밭 한가운데 서서 설명을 듣기도 했지요. 식사 때마다 정성껏 대접을 해주었는데, 외국 전문가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에 가서는 칠보산에서 나온 송이버섯도 먹어봤고.
남포항 부근에 있는 용강온천에 갔을 때는 제가 ‘조개불고기’ 얘기를 꺼냈어요. 그게 정말 맛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거든요. 그랬더니 남포항에 가서 조개를 사갖고 와서 구워주더라고요. 조개 위에 휘발유를 끼얹은 다음 불을 붙였어요. 그걸 보더니 외국인들이 안 먹는다고 손을 흔들더라고요. 맛만 조금 보라고 줬더니, 다 먹어치웠어요. 정말 맛있더라고요.”
마식령 스키장 콘도는 캐나다 휘슬러와 같은 느낌
—차를 타고 계속 이동해서 피곤하지는 않았는지.
“외국 전문가들이 ‘아리랑’ 같은 노래 몇 구절을 배워서 수시로 흥얼거렸어요. 굉장히 피곤할 수 있는 여정이었는데, 외국인들의 흥얼거림에 재밌기도 하고 즐겁게 다녔어요. 접대하는 여성 직원들도 참 아름다웠어요. 외국 학자들이 우리 말로 ‘아름답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말을 배워서 여성들뿐 아니라 남자들한테도 하고 다녀서 다들 웃기도 했지요.”
사실 단기간의 빠른 경제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국가는 대한민국이다. ‘새마을운동’은 지방 발전 전략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박 교수에게 ‘한국의 경제 개발 노하우야말로 북한에 긴요한 것이 아닌지’ 물었다. 박 교수의 답이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외국 전문가들만 회의에 참석했지만 사실 한국의 전문가들이 노하우가 많잖아요? 정치적으로 분위기가 좋아지고 관계가 개선되면 한국의 전문가들도 같이 가서 교류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아가 경제협력도 하고, 투자도 하고… 지금의 정치 상황으로는 좀 어렵지만요.”
—최근 평양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2010년부터 매년 적어도 한두 차례는 평양을 방문합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외관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건설 붐인 것 같아요. 갈 때마다 새로 지은 건물들이 있어요.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을 위한 살림집도 최근에 생겼는데, 내부가 잘 꾸며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방도 5개에 가구도 다 갖춰져 있고요. 안에는 못 들어가 보고 지나가면서 건물 외관을 보고 ‘아 저 건물은 참 멋있네 어떤 건물일까’ 했는데 교원 살림집이었어요.
최근에 세운 건물로 옥류아동병원, 유선종양연구소, 메아리사격장, 금릉운동관 같은 건물이 있어요. 마식령 스키장도 문을 열었지요. 이번에 마식령 스키장 내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캐나다에 있는 휘슬러 스키장에 가면 콘도가 많거든요. 딱 그 콘도에 묵는 느낌이었어요.
스키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면 대화봉 레스토랑이 있어요. 늦봄이라 눈이 없어서인지 관광객은 없었지요. 레스토랑에서 본 경치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가 5월 1일 노동절이라 직원들이 체육대회와 노래자랑을 하기도 했는데 외국 학자들이 거기에 껴서 같이 어울리기도 했어요. 나중에 외국 학자들이 우리 말로 ‘조국! 통일!’ 이러고 다니기에 어디서 배웠나 했더니, 체육대회 때 2인3각 달리기를 하면서 그 말을 배웠더라고요.”
—평양 길거리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진 않았나요.
“멋쟁이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유행을 따르는 여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에요. 옛날에는 못 느꼈는데 요즘엔 평양 시내에서 거리를 걷다가 뒤를 돌아서 보게 될 만큼 옷을 잘 입은 여성들이 있더라고요. 청진의 호텔에서도 프런트 안내원이 옷을 참 잘 입은 거예요. ‘옷이 정말 예쁘네요. 어디서 샀어요?’ 물었더니, 북한에서 샀다고 하더군요. 화장이며 머리 모양이며 세련된 여성들이 참 많았어요.
장마당에 가봤어요. 윗도리 괜찮은 게 있으면 하나 살까 하고 둘러보는데 재킷이 한 벌에 50~60달러쯤 하더라고요. 싸지 않지요.”
인터넷 사용도 가능
—또 다른 변화는요.
“옛날에는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 휴대전화를 공항에 맡겨야 했어요. 요즘엔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휴대할 수 있어요. 현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제는 휴대폰 칩만 사서 바꾸면 국제전화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평양에도 인터넷 되는 곳이 있어요. 이번에 가서 이메일 체크를 하기도 했어요. 해외 호텔 나가면 시간당 얼마를 내면 와이파이(Wifi·무선데이터전송시스템)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잖아요? 똑같아요. 돈을 내면 인터넷 이용권을 살 수 있어요.”
올해까지 24명의 북한 교수가 UBC 대학을 방문했다. KPP사업의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박 교수에게 물었다.
“사실 어려움이 있습니다. KPP사업을 위한 기금 조성을 외부에서 하고 있거든요. 언제까지 이 프로그램을 계속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앞으로는 다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남자 교수들만 왔어요. 여자 교수도 포함시키고 싶고, 지금까지 경제경영 전공의 교수들만 방문했는데 다른 전공으로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싶습니다. KPP프로그램 졸업생을 중심으로 세미나, 워크숍을 다양하게 진행하는 것도 목표고요.”
—통일은 대박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했을 때 북측에서는 반발하는 반응을 보였지요. 왜 동의 안 하는지 물었더니 이렇게 얘기합디다. ‘통일은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 후 해야 하는 건데, 드레스덴은 남한이 마음대로, 게다가 흡수통일을 한 독일에 가서 하지 않았느냐. 통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과 한마디 얘기도 없이 다른 나라에 가서 발표하면서 잘해 보자고 하면 과연 신뢰가 가겠는가.’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일이 되면 대박이겠지요. 흡수통일을 얘기하면 저쪽에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득 궁금해졌다. 문화나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여성은 없을까. 그러던 차에 박경애(朴京愛) 교수의 존재를 알게 됐다.
北-캐나다 수교 과정에 참여
박경애 교수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에서 정치학 교수와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 1995년 처음 평양을 방문한 이후 현재는 매년 한두 번씩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 첫 방문은 외교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지난 2001년 캐나다와 북한이 수교를 맺을 때, 캐나다 정부 인사들과 함께 막후에서 비정부 차원의 접촉 과정에 관여했다. 현재는 캐나다-북한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Canada-DPRK Knowledge Partnership Program·KPP)을 이끌며, 각종 경제 관련 국제회의를 평양에서 개최하는 등 학문 분야의 교류에 참여하고 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박 교수에게 전화를 통해 그동안 북한과 어떤 학문적 교류를 했는지와 최근 평양의 분위기, KPP의 진행상황 등에 대해 물었다.
—북한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공산주의 비교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썼어요. 중국과 북한의 정치발전을 비교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미국에서 교수를 할 때는 한국 국적이라 북한을 갈 수 없었지요. 세미나 같은 데서는 북한 학자들을 만나고 그랬지만요. 90년대 중반에 UBC에 교수로 왔습니다.
그때까지 캐나다와 북한 사이에는 공식외교 관계가 없었어요. 다만 트랙2 레벨에서 교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와 캐나다인 교수 2명이 1995년에 처음 북한을 방문한 후 여러 번 북한을 왔다갔다했어요. 비정부 차원에서 방문하면서 캐나다 정부에 브리핑도 하곤 했습니다.
1996년에는 북한 측에서 캐나다로 답방을 오기도 했어요. 1999년에는 캐나다 외무성 사람들과 함께 평양에 갔습니다. 그때 캐나다는 자유당 정부 시절이었어요. 외교관계 맺는 것을 심도 있게 논의했지요. 2000년에 양국 정부가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고, 2001년에 수교를 했습니다.”
—북한과의 지식교류프로그램, KPP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수교를 한 이후에는 특별히 제가 북한에 갈 일이 없었어요. 거기다가 2002년부터 북핵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잖아요. 그때부터 북한과 캐나다는 외교관계는 있지만 교류가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2010년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치적인 이유로 교류가 전혀 없는 상황이니, 비정치적 차원에서라도 교류하자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2010년 5월에 KPP에 대한 제안을 들고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마침 천안함 침몰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였어요. 캐나다 외무성은 저를 말렸어요. ‘북한 정부와 고위급에서의 접촉은 안 한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다.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 차원에서 도와줄 수 없다. 평양에 안 들어가면 좋겠다’는 얘기였어요. 그래도 별일 없으리란 생각에 그냥 평양에 들어갔습니다.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에 대한 협의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어요. 이듬해 1기가 캐나다에 와서 공부를 하고 돌아갔지요.”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도 人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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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 개회식을 하는 조선경제개발협회 리석철 부위원장. |
“북한의 경제, 경영, 무역, 금융 분야 전공교수들 중 매년 6명을 선발합니다. 그 교수들이 UBC에 와서 6개월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갑니다. 7월에 와서 12월에 돌아가요. 6명이 한꺼번에 와서 6개월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간다는 얘기인데, 북미에서는 유일무이한 프로그램입니다.
연수를 온 교수들은 UBC에 개설된 가을학기 학부와 대학원 강의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스스로 시간표를 짭니다. 거시경제나 미시경제, 조직경영 등을 많이 듣지요. 학기 중에 토론토를 방문해 법률회사나 은행, 보험회사를 견학하고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보는 기회도 제공 중입니다.”
—참여 교수는 어떤 기준으로 뽑나요.
“일단 저희 쪽에서는 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학문적 업적이 높고 앞으로 자기 분야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을 원한다고 기준을 정했습니다. 30대나 40대 초반 정도의 교수들이지요. 캐나다에서 배운 것을 북한에 돌아가서 오랫동안 가르쳐야 하잖아요. 영어도 당연히 선발 기준 중 하나고요. 지금까지는 북한에서도 명문대에 속하는 곳의 교수들이 주로 왔습니다. 김일성종합대, 인민경제대, 원산경제대, 평양외대에서 왔어요.
사실 관료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이나 열흘씩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은 전에도 여러 번 있었어요. 하지만 관료는 어떤 지식을 보고 들으면 본인 차원에서 끝나잖아요. 제가 교류의 대상을 학자로 정한 이유도 그겁니다. 학자는 자신의 지식을 전수하지 않습니까. 매년 6명밖에 안 되지만, 교수들을 데려오면 몇 배의 효과가 있잖아요.”
—UBC에서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북한과 UBC 양측 모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주요 대학의 교수를 6명이나 한꺼번에 해외로 내보내는 것이고, 캐나다 입장에서는 적대국 아닙니까. 그렇지만 교육기관으로서 다른 교육기관과 학술 교류를 하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KPP는 정치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학술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학술적인 교류를 통해 언젠가는 양국관계가 좋아진다면 보람이 있는 것이지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몇 가지 생각한 게 있습니다. 지식에 대한 접근성, 교육에 대한 권리, 이런 게 바로 ‘인권’ 아닐까요?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잖아요.”
—UBC가 왜 이런 프로그램을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나요?
“캐나다 신문에 KPP에 대한 기사가 났을 때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왜 UBC가 그런 프로그램을 하느냐’는 내용이었지요. 학교 측이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저에게 물었어요.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어디에서 태어난 누구라도 교육을 받을 권리를 제공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교육자들은 변화를 향해가는 다리(agent)가 될 수 있어요. 지식은 소프트 파워지요.
사실 KPP를 시작하고 처음 2년 정도는 거의 인터뷰 자체를 안 했어요. 이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도 크게 공개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지난해 10월에 평양에서 연 국제회의가 《노동신문》, 조선중앙TV, 《평양타임스》 등 북한의 신문·방송 매체들과 평양 주재 AP통신, 신화통신, 도쿄통신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크게 보도가 됐어요. 그러면서 알려졌지요.”
‘큰누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北교수들
—다녀간 북한 교수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돌아갈 때쯤에 제가 종강 인터뷰를 합니다. 여기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 건지 계획을 묻지요. 이런 말들을 하더라고요. ‘여기에 와서 보니까 강의 중에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더라. 학생들이 주도하는 그룹 프로젝트 등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게임 이론 등 여러 이론을 흥미있게 공부했다’ 등등요.
제가 매년 4~5월 평양에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점검을 해요. 지난 5월에도 들어가서 만났습니다. 가서 보니 UBC에서 배운 걸 잘 활용하고 있더라고요. 김일성대 같은 경우는 무역경제학과를 국제경제학과로 바꿨어요. 새로운 강의도 개설했고요. 인민경제대는 개발학과라는 학과를 신설했어요. 새로운 강의 과정에 KPP 졸업생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교수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 연구자료를 굉장히 많이 가져가요. 다녀간 뒤 책을 5권이나 쓴 교수도 있어요. 승진한 사람들도 있고요. 또 이 사람들이 북한 정권에 학자로서 정책 자문을 할 수 있는 위치에도 있잖아요. 지식교류협력프로그램이 목표로 했던 강의, 연구, 정책 자문, 이 세 가지 부문에서의 기대 효과가 모두 순조롭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6개월 동안 함께 지내다 가면 정도 많이 들 것 같습니다.
“출국할 때 정말 섭섭해요. 참가한 교수들이 다 저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니까 저에게 큰누님이라고 합니다. 공항에서 그냥 들어가지 못하고 몇 발자국 떼다가 뒤돌아서 손 흔들고, 다시 가다가 뒤돌아서 큰누님! 하고 부르기도 해요. 이듬해 봄에 제가 평양에 가서 졸업생들을 만나면 정말 반가워해요.
기수별로 그룹을 지어 만나는데, 작년 12월에 귀국한 3기생들과 지난 5월에 만났어요. 근처 산으로 같이 피크닉을 갔습니다. ‘누님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시라’면서 부인들이 며칠 전부터 잠 안 자고 연구해서 준비한 요리들을 가지고 나왔어요. 정성이 깃든 음식들이더라고요. 내부 인트라넷에서 요리법을 검색해서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왔다고 하는데 감동받았어요.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요즘엔 어떤 책을 구상하고 있는지, 어떤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지요. 참 뿌듯했어요.”
‘北에 경제특구를 학회의 주제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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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지정된 북한의 경제특구 중 신평 경제특구를 방문한 외국의 특구 전문가들. |
—경제특구를 주제로 정한 이유가 있는지요.
“지난해 10월에 열린 국제회의를 위해 2012년 말부터 준비를 했어요. 주제를 고민하면서 저희 쪽에서 먼저 제안을 했어요. ‘북한과 비슷한 조건의 나라들이 대부분 특구를 통해 경제발전을 했으니까, 경제특구를 회의 주제로 해보는 게 어떻겠나’하는 제안이었지요. 10월에 회의가 열리고 한 달 후에 북한에서 13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해 발표했어요.
10월 회의에는 제가 초청한 외국의 경제특구 전문가 13명이 참석했습니다. 북한 측에서는 정부관료들과 특구 관련 학자, 전문가들이 80명가량 참석했고요. 경제특구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과 함께 주로 외국의 특구 관련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경제특구를 관리, 운영하는 방법, 경제특구와 투자 등 여러 주제를 다뤘지요. 회의가 크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북한 측에서 후속 회의를 열자고 제안을 해왔어요. 6개월 간격으로 2개의 국제회의를 연다는 게 쉽진 않았지만, 지난 5월 초에 회의를 다시 개최했습니다.”
—10월 회의에서 ‘이 나라의 개발 형태가 북한에 가장 적합하다’는 식의 결론이 나왔나요?
“아니요. 국제학술회의의 목적이 각 나라의 실패와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는 게 목적이었지, 일방적으로 어떤 형태가 맞다고 제시하기 위한 회의가 아니었어요. 중국, 미얀마,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의 국가의 케이스를 분석해서 발표했습니다. 이걸 취합해 어떻게 특구 개발 전략을 꾸려나갈지는 북한에 달린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어느 나라의 모델이 가장 북한에 적합하다고 봅니까.
“일단 저는 특구 전문가는 아닙니다. 다만, 정치·사회적인 조건으로 보자면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보다는 베트남, 중국, 미얀마에서 배울 게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선에 150여 개 외국 기업 진출
—5월에는 주로 어떤 주제를 논의했습니까.
“5월 회의에는 북한의 경제특구 자체에 초점을 두자고 결정하고, 회의 전에 외국 전문가들과 함께 특구를 직접 둘러봤어요. 중국에서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간 다음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식으로 특구를 돌아봤지요. 나진에서부터 원산에 이르기까지 엿새 동안 6군데를 가봤습니다. 북한이 전국에 걸쳐 있는 여러 개의 경제특구를 외국 전문가들에게 보여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특구 지정을 11월에 발표했으니 6개월 후에 방문한 건데, 청사진을 만드는 중이었어요. 아직 땅만 구획해 놓은 단계였습니다. 물론 기존의 특구인 나선특구는 다르지요. 제가 이번에 나선에 가보고 놀랐어요. 외국 기업이 150여 개나 들어와 있다고 하더라고요. 중국, 러시아 기업뿐 아니라 태국, 일본, 이탈리아, 호주에서 온 기업들이 있었어요.”
—함께 방문한 외국 전문가들은 특구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던가요.
“특구를 13개 지정한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지정했다는 지적이 나왔어요. 한꺼번에 개발하려 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지요. 여기에 대해 북한 측은 ‘우리가 각 도마다 특구를 지정한 것은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다’라고 답했습니다. 나선이나 황금평, 위화도 특구는 중앙 차원에서 관리하는 특구지만, 이번에 지정한 특구는 지방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특구거든요. 각 특구를 보면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투자계획도 13개의 특구를 다 합쳐 약 16억 달러가량 예상하고 있고요.”
—엿새 동안 북한 곳곳을 돌아다녔다고요.
“매일 저녁 다른 도시에서 잠을 잤지요. 가는 데마다 인민위원회에서 경제특구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계획을 설명하고, 우리 일행과 토론도 했어요. 논이나 밭 한가운데 서서 설명을 듣기도 했지요. 식사 때마다 정성껏 대접을 해주었는데, 외국 전문가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에 가서는 칠보산에서 나온 송이버섯도 먹어봤고.
남포항 부근에 있는 용강온천에 갔을 때는 제가 ‘조개불고기’ 얘기를 꺼냈어요. 그게 정말 맛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거든요. 그랬더니 남포항에 가서 조개를 사갖고 와서 구워주더라고요. 조개 위에 휘발유를 끼얹은 다음 불을 붙였어요. 그걸 보더니 외국인들이 안 먹는다고 손을 흔들더라고요. 맛만 조금 보라고 줬더니, 다 먹어치웠어요. 정말 맛있더라고요.”
마식령 스키장 콘도는 캐나다 휘슬러와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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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개장한 북한의 마식령 스키장과 마식령 스키장 내의 호텔. |
“외국 전문가들이 ‘아리랑’ 같은 노래 몇 구절을 배워서 수시로 흥얼거렸어요. 굉장히 피곤할 수 있는 여정이었는데, 외국인들의 흥얼거림에 재밌기도 하고 즐겁게 다녔어요. 접대하는 여성 직원들도 참 아름다웠어요. 외국 학자들이 우리 말로 ‘아름답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말을 배워서 여성들뿐 아니라 남자들한테도 하고 다녀서 다들 웃기도 했지요.”
사실 단기간의 빠른 경제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국가는 대한민국이다. ‘새마을운동’은 지방 발전 전략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박 교수에게 ‘한국의 경제 개발 노하우야말로 북한에 긴요한 것이 아닌지’ 물었다. 박 교수의 답이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외국 전문가들만 회의에 참석했지만 사실 한국의 전문가들이 노하우가 많잖아요? 정치적으로 분위기가 좋아지고 관계가 개선되면 한국의 전문가들도 같이 가서 교류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아가 경제협력도 하고, 투자도 하고… 지금의 정치 상황으로는 좀 어렵지만요.”
—최근 평양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2010년부터 매년 적어도 한두 차례는 평양을 방문합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외관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건설 붐인 것 같아요. 갈 때마다 새로 지은 건물들이 있어요.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을 위한 살림집도 최근에 생겼는데, 내부가 잘 꾸며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방도 5개에 가구도 다 갖춰져 있고요. 안에는 못 들어가 보고 지나가면서 건물 외관을 보고 ‘아 저 건물은 참 멋있네 어떤 건물일까’ 했는데 교원 살림집이었어요.
최근에 세운 건물로 옥류아동병원, 유선종양연구소, 메아리사격장, 금릉운동관 같은 건물이 있어요. 마식령 스키장도 문을 열었지요. 이번에 마식령 스키장 내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캐나다에 있는 휘슬러 스키장에 가면 콘도가 많거든요. 딱 그 콘도에 묵는 느낌이었어요.
스키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면 대화봉 레스토랑이 있어요. 늦봄이라 눈이 없어서인지 관광객은 없었지요. 레스토랑에서 본 경치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가 5월 1일 노동절이라 직원들이 체육대회와 노래자랑을 하기도 했는데 외국 학자들이 거기에 껴서 같이 어울리기도 했어요. 나중에 외국 학자들이 우리 말로 ‘조국! 통일!’ 이러고 다니기에 어디서 배웠나 했더니, 체육대회 때 2인3각 달리기를 하면서 그 말을 배웠더라고요.”
—평양 길거리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진 않았나요.
“멋쟁이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유행을 따르는 여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에요. 옛날에는 못 느꼈는데 요즘엔 평양 시내에서 거리를 걷다가 뒤를 돌아서 보게 될 만큼 옷을 잘 입은 여성들이 있더라고요. 청진의 호텔에서도 프런트 안내원이 옷을 참 잘 입은 거예요. ‘옷이 정말 예쁘네요. 어디서 샀어요?’ 물었더니, 북한에서 샀다고 하더군요. 화장이며 머리 모양이며 세련된 여성들이 참 많았어요.
장마당에 가봤어요. 윗도리 괜찮은 게 있으면 하나 살까 하고 둘러보는데 재킷이 한 벌에 50~60달러쯤 하더라고요. 싸지 않지요.”
인터넷 사용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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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에 촬영한 대동강변의 평양 시민들. |
“옛날에는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 휴대전화를 공항에 맡겨야 했어요. 요즘엔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휴대할 수 있어요. 현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제는 휴대폰 칩만 사서 바꾸면 국제전화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평양에도 인터넷 되는 곳이 있어요. 이번에 가서 이메일 체크를 하기도 했어요. 해외 호텔 나가면 시간당 얼마를 내면 와이파이(Wifi·무선데이터전송시스템)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잖아요? 똑같아요. 돈을 내면 인터넷 이용권을 살 수 있어요.”
올해까지 24명의 북한 교수가 UBC 대학을 방문했다. KPP사업의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박 교수에게 물었다.
“사실 어려움이 있습니다. KPP사업을 위한 기금 조성을 외부에서 하고 있거든요. 언제까지 이 프로그램을 계속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앞으로는 다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남자 교수들만 왔어요. 여자 교수도 포함시키고 싶고, 지금까지 경제경영 전공의 교수들만 방문했는데 다른 전공으로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싶습니다. KPP프로그램 졸업생을 중심으로 세미나, 워크숍을 다양하게 진행하는 것도 목표고요.”
—통일은 대박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했을 때 북측에서는 반발하는 반응을 보였지요. 왜 동의 안 하는지 물었더니 이렇게 얘기합디다. ‘통일은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 후 해야 하는 건데, 드레스덴은 남한이 마음대로, 게다가 흡수통일을 한 독일에 가서 하지 않았느냐. 통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과 한마디 얘기도 없이 다른 나라에 가서 발표하면서 잘해 보자고 하면 과연 신뢰가 가겠는가.’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일이 되면 대박이겠지요. 흡수통일을 얘기하면 저쪽에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