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김영란法’이 표류하는 이유 : 월간조선

지난 3월 5일, 한국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 CEO(최고경영자) 50여 명이 한국프레스센터에 모였다.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이 주한 외국 경제인들에게 한국 정부의 반부패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정책간담회 자리였다.

이 자리에 모인 CEO들의 공통된 의견은 “한국 공직 문화가 외국과 다소 달라서 공직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주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정부의 반부패 정책이나 청렴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업무 관련된 공직자에 대한 청탁이나 부탁, 접대, 선물이나 식사 금액 범위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이성보 위원장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의 제안 취지와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에이미 잭슨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표는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과 해당 법의 차이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이성보 위원장은 먼저 법과 강령의 차이를 설명한 후 “공무원들에게 적용하는 행동강령은 대통령령으로 행정·사법부 모두 자체 행동강령을 갖고 있지만 국회는 유감스럽게도 행동강령을 갖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국회가 해당 법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영란법’, 2011년 국무회의에서 첫 제안

잊을 만하면 공직자에 대한 청탁과 뇌물사건이 터져 나오는 현실을 보면 공직자의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방지하는 법이 우리나라에 아직 없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공직 선거 후보자의 각종 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있지만 막상 공직자의 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없는 것이다.

2011년 1월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회(과거 고충처리위원회·행정심판위원회·부패방지위원회의 통합조직)의 수장이 된 이후 같은 해 6월 국무회의에서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을 제안하면서 우리나라에 없었던 이 법은 청렴의 상징처럼 여겨진 김영란 위원장의 이름을 따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게 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직무 관련자로부터 대가성 있는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 뇌물죄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김영란법에 따르면 모든 공직자는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든 금품을 수수할 수 없고, 징역이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대가 또는 향후 기대가 없는 금품을 이유 없이 제공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다. “박봉의 공직자에게 지나친 원칙”이라는 의견과 “강력한 원칙을 만들어야만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섰다.

약 3년 전 나온 이 법은 현재 어떻게 됐을까. 국민권익위원회가 초안을 만들고 2011년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한 이 법안은 부처 협의를 거쳐 2012년 8월 22일부터 40일간 입법예고됐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의원만 할 수 있는 법률안 제안은 한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실제로는 다수의 국무위원이 ‘김영란법’에 반대 의사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처 협의 과정에서도 몇몇 조항이 문제가 됐다.

당시 권익위 관계자의 얘기다.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대가성은 물론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단순히 공직자이기 때문에 금품수수에 대해 처벌받는다는 것이 원래 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에서는 ‘과잉금지 원칙’에 따라 단순 금품수수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또 언론인 등 ‘공무원이 아닌 유력 인사’들과 달리 공직자만 비합리적으로 차별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처벌 수위를 놓고 권익위와 법무부 사이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벌금이냐 과태료냐를 놓고 논의가 많았죠. 과태료로 결론 나는 듯하더니 이 사실이 일부 언론에 알려지고 ‘과태료 처분은 공직사회 부정부패를 경미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라는 여론이 일면서 논의는 또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법 제정은 엉뚱한 난관에 부딪혔다. 2012년 9월 김영란 위원장의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김영란 위원장이 선거운동에 나서기 위해 공직에서 물러난 것. 권익위가 한동안 박재영 부위원장 대행 체제로 가면서 ‘김영란법’으로 널리 알려졌던 이 법안은 흐지부지되는 것처럼 보였다.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정부제출안) 주요내용

1. 누구든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가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한 후에도 부정청탁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함.

2. 제3자의 이익을 위해서 부정청탁을 한 자 또는 제3자를 통해서 부정청탁을 한 직무 관련자 등에 대하여 과태료를 부과하고, 공직자가 부정청탁을 받고 그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

3.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그 지위·직책에서 유래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하여 금품 등을 받은 경우에는 대가관계가 없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해당 금품 등 가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상당하는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함.

4. 직무 관련자가 공직자의 4촌 이내의 친족인 경우 등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에 대해서는 해당 공직자가 제척되도록 하고, 직무 관련자 및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해당 공직자가 제척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소속 기관장에게 기피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함.

5. 고위 공직자가 임용되거나 취임한 때에는 임용 또는 취임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임용 또는 취임하기 전 3년 이내의 민간 부문에서의 업무활동 명세서를 소속 기관장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임용 또는 취임 전 이해관계가 있던 고객 등과는 2년간 이해관계 직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함.

6. 공직자가 직무 관련자에게 사적으로 노무 또는 조언·자문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행위, 외국의 정부·기관·법인·단체 등을 대리하는 행위, 공직자의 직무와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다른 직위에 취임하는 행위 등을 금지함.

7. 공직자,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존비속 등이 직무 관련자로부터 금전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행위, 직무 관련자와 물품·용역·공사 등의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 등을 하려는 경우에는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소속 기관장은 해당 행위가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그 행위의 중지를 요청하거나 공직자를 직무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함.

8. 공개경쟁 채용시험 절차에 의하여 채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위 공직자, 인사업무 담당자 또는 산하기관에 대하여 감독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의 가족은 고위 공직자 등이 소속된 공공기관 또는 그 산하기관에 채용될 수 없도록 함.

대통령 지시로 국회 제출됐으나 알맹이는 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4년 업무보고회에서 국민권익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7월 ‘김영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 ‘김영란법’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2013년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직자 부정부패 해소 대책 마련을 당부, 부정청탁 금지 및 사익추구와 관련된 법 제정을 독려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논의돼 왔던 권익위의 법안을 최종 확정해 8월 5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제안자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을 국회에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김영란 위원장이 애초 제안한 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2011년 김영란 위원장이 제안했던 안은 대가성, 직무 관련성 등 모든 상황과 상관없이 무조건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금품 5배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권익위 측은 “대가성 없이 공직자를 후원한 사람도 언젠가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런 생각을 법이 판단할 수 없고 대가성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 어려우니 아예 금전거래 자체를 불법화하자는 것이 원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가 제안한 안은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 관련 금품을 받은 공직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며,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는 받은 돈의 2~5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 골자다.

애초 ‘김영란안’에 거부감을 가졌던 관료들이 물을 탄 것이 ‘정홍원안’이다. 언론과 시민들이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쏟아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장은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미래의 반대급부를 예상하거나 약속을 하고 금품을 제공하는 것이 관행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러나 공직자들은 “대가성이 없는 금품에 징역과 벌금 등 실형을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며, 공직사회의 위축이 우려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 이유로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의 금품수수 시 실형 아닌 과태료’로 후퇴한 ‘정홍원안’마저도 4개월 동안 국회 해당(정무)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했다. 그 사이 새로운 야당 법안이 나왔다. 같은 해 10월 28일 김기식 의원 등 야당의원 13인이 제안한 ‘공직수행의 투명성 보장과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법안’은 기존의 정부안에 ‘공직사회의 투명성 보장’을 강화하고, 처벌수위는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처벌을 할 수 있도록 원래의 ‘김영란안’에 가깝게 만든 안이다.

야당안은 현행 행정고시 선발 시스템이 선후배 관계 집단을 양성하며, 퇴직 공직자가 비교적 손쉽게 현직 공직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부 소속의 현직 공직자가 퇴직 공직자와 어떤 방법으로든 접촉하는 경우 ‘무조건’ 기관장에게 신고해 투명하게 관리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대표 발의자인 김기식 의원은 “퇴직 공직자가 사실상의 로비스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조항을 이용해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만큼 기존 법안에서 이를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제안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공직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법률은 적극적인 여야 합의하에 신속하게 제정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야, 12월 정무위에 ‘조용히’ 상정

한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청탁으로 의심되는 문자를 누군가와 주고받다가 카메라에 포착됐다.

‘김영란법’의 정부안과 야당안은 12월 6일 열린 320회 임시국회 정무위원회 제10차 회의에서 위원회에 상정됐다. 이후 12월 10일 열린 제11차 회의는 두 안을 소위원회로 넘겼다.

두 번의 회의에 상정한 법률안은 총 145건. 제안한 의원들은 회의석상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새 법안에 대한 설명에 나섰지만, 이 법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두 번의 회의에 배석한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한마디도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국회 회의록을 샅샅이 뒤진 결과 이 법을 언급한 일은 딱 한 번 있었다. 2014년 2월 24일 열린 322회 임시국회 정무위 제5차 회의에서였다. 국민권익위 업무현황 보고가 있었던 날이다. 이날의 회의록 내용이다.

<-(새누리) 김종훈 의원: 청탁에 부정한 청탁이 있고 부정하지 않은 청탁이 있습니까?

-권익위원장 이성보: 그렇게 저희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김종훈 의원: 부정하지 않은 깨끗한 청탁은 어떤 청탁입니까?

-권익위원장 이성보: 법에 어긋나지 않는, 어떤 적정한 행정을 어그러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뜻을 전달한다든지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김종훈 의원: 법령의 위반이나 직권의 남용 정도가 아닌 청탁은 부정하지 않다고 보는 겁니까?

-권익위원장 이성보: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김종훈 의원: 이 법의 집행에 있어서 상당히 공직사회가 위축이 되거나 또는 예상치 않은 그런 혼란이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까?

-권익위원장 이성보: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렇게 딱 한 차례 외에는 3월 현재까지 아무도 국회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정무위 간사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이에 대해 “정무위 전문위원 검토의견에 따르면 여야 안의 핵심 내용이 다르고 규율범위와 제재방식 등에 대해 이해관계자들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여 이해관계자들 및 전문가들로부터 종합적인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처리하지 않겠다’는 쪽에 가깝다.

권익위 곽진영 부패방지부위원장은 “2013년 부패인식도 조사를 보면 공무원의 4.0%만이 공무원이 부패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반해 국민의 경우 54%가 공무원이 부패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곽 부위원장의 이야기다.

“입법예고 이후 모호한 부분들을 정비하고 위헌 논란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등 관계부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정부안입니다. 1년여에 걸쳐 충분히 보완했다고 생각했고 지난해 말 처리되지 못하면서 올해 2월 임시국회에서는 꼭 처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습니다. 법률 하나가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공직사회의 비정상적 관행을 정상화시키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일단 법률이라도 제정해야 할 텐데 진전이 없어요.”

정부와 여야, 처리 의지 없다는 것이 문제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민고충처리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장 민감한 사항인 ‘직무 관련성 없는 관계의 금품수수 시 처벌 문제’는 여야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논의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이준한 교수는 “여야 공동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는 암묵적 담합 행위가 국회에서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부정청탁방지법은 특별감찰관제 도입과 함께 공직자 비리를 척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는 사안인데, 계속 미룬다는 것은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박균성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법이 몇 년째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과태료냐 벌금이냐의 문제를 따지기보다는 신속한 입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대가성·직무 관련성 없는 금품수수에 대해 형사처벌이냐 과태료냐 하는 것이 여야 안의 다른 점인데,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형사처벌을 하려면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 증거에 의한 입증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과태료 부과는 그런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신속하게 제재를 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법도 중요하지만 공직자 부패를 막기 위해 신속하게 입법해 적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여야 모두 그럴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법이 신속하게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가운데 논의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물론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공개적으로 이 법의 논의에 나서서 처벌을 완화하자는 의견을 내는 것은 여론을 등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모르쇠 하는 사이 어디선가 부정한 청탁과 금품수수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과 공무원들, 그들은 ‘돈을 받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삼척동자도 다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인터뷰] ‘김영란법’ 제안한 김영란 前 국민권익위원장

“선한 공직자를 보호하려는 법이다”

2011년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이른바 ‘김영란법’을 제안하자 사람들은 앞에서 환영하고 칭찬했지만 뒤에서는 ‘여자고 판사라서 세상물정 모른다’는 말이 돌았다. ‘앞에서는 모두 환영하지만 뒤에서는 모두 반대하는 법’이라는 말도 떠돌았다.

“이런저런 청탁에 관계를 들이미는 청탁, 심지어 목숨 걸고 하는 청탁도 받아봤어요. 네트워크가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도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어땠겠어요. 법적인 제도를 만들면 공직자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 없는 금품에 칼날을 들이댄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는 연줄·안면·관계 있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진국은 금품이 오가더라도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딱히 관련성이 없어도 밥 사고 술 사고 용돈 주고 ‘스폰서’의 관계를 갖게 되면 나중에 일이 터질 경우 어떻게 되겠어요. 다들 그런 걸 기대하고 금품이 오가는 게 우리나라의 형편입니다. 이를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죠.”

“‘여자라서 저런 법 만든다’는 말 많이 들어”

공직자 등 일부의 비판도 인식하고 있었다. “위원장이 여자라서 저런 법 만든다는 말 많이 들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놓는 법이라는 말도 들어봤어요. 하지만 그걸 막지 못하면 부패를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입장은 분명합니다.

악당을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고, 선한 사람이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공무원한테 청탁 잘못하면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명문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공무원에게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법적인 명분을 주는 겁니다.

제가 만난 공직자들은 청탁받기도 힘들고 ‘공무원들 다 썩었다’는 얘기 더 이상 듣기 싫다며 빨리 법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해요.”

‘100만원 수수에 실형’은 지나치다는 의견에도 그는 반박했다. “원래 100만원 이하는 과태료, 100만원 이상이면 무조건 실형으로 가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법무부에서 심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과태료는 빼고 100만원 이상만 처벌하는 걸로 고쳤죠. 아직 100만원이 큰돈이라는 입장은 똑같아요. 누가 아무 이유 없이 100만원을 주겠어요.”

2012년 말 권익위를 떠난 김영란 전 위원장은 그동안의 활동 관련 이야기를 모아 2013년 8월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쌤앤파커스)라는 책을 펴냈다. 현재 서강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최근 야권 신당의 영입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고사했다. 정치는 물론 더 이상 공직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변호사 개업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권익위원장을 그만둔 상태에서 법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다소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여전히 공직자 부패방지법은 김영란법으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면서 전화를 해 ‘내 임기 중에 (김영란법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현 대통령은 과연 이 법을 제정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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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이 표류하는 이유

국회 정무위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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