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년 李仁濟를 잘 모르는 영남에서 지지가 폭발적이었던 것은 변화에 대한 갈망 때문…
현재 호남의 ‘安哲秀 현상’도 마찬가지
⊙ 이념적 혼란에 빠진 민주당에 염증 느끼는 호남, 安哲秀가 파고들었다
⊙ 새누리는 15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정당의 정치적 역할 강화하고자 당권 도전
李仁濟
⊙ 66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 대전지법 판사, 노동부장관, 경기도지사, 13~14·16~19대 국회의원.
현재 호남의 ‘安哲秀 현상’도 마찬가지
⊙ 이념적 혼란에 빠진 민주당에 염증 느끼는 호남, 安哲秀가 파고들었다
⊙ 새누리는 15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정당의 정치적 역할 강화하고자 당권 도전
李仁濟
⊙ 66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 대전지법 판사, 노동부장관, 경기도지사, 13~14·16~19대 국회의원.
이인제 의원은 영욕(榮辱)의 정치인이다. 40대 중반에 노동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거쳐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 경선 후 탈당한 그는 1997년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492만여 표를 얻었다.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노무현 후보의 돌풍에 밀렸다. 이후 자민련과 국민중심당에 입당하는 등 정치적 유랑을 계속했다. 15년 동안 당적을 10번 바꿨다. 6선 의원인 그는 2012년 선진당과 새누리당의 통합으로 15년 만에 새누리당으로 돌아왔고, 현재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이인제 의원은 “정치적 고향에 운명적으로 돌아왔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40대에 경선에 불복하고 신당을 창당해 출마한 패기의 정치인은 어느새 60대 관록의 정치인이 돼 있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3세력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아무나 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 정치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지방선거가 끝나면 새누리당 대표직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 의원은 “돌아온 탕아라 불러도 좋다”며 “수십 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정당 구조를 바꿔놓고 싶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당 대표 출마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관료 중심 사회는 소통 안돼”
—15년 만에 돌아와 당 대표직에 도전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데, 주변의 반응은 어떤지요.
“당에 다시 돌아와 어떤 기여를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정당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은 정당을 기초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 아닙니까. 대통령은 정부의 수장인 동시에 여당의 수장입니다. 국가경영을 하는 동시에 정치집단과 일체가 돼서 정치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관료가 정해진 틀에서 국가경영을 할 때 정당은 변화를 예측하고 이슈를 선점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방향으로 법을 만드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입법과 예산의 주도권이 정부에 있습니다. 정부 관료 중심으로 정책을 만들어서는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아요. 이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당이 정치적인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지금은 정당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까.
“지금의 여당은 복잡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그동안 정당과 국회, 정치적 이슈는 사람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 하나로 시급한 정책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았죠. 그러나 정치인은 성직자가 아니고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겁니다. 정치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하기에 앞서 ‘두뇌’를 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은 국회의원들에게 정책적인 지원이 엄청나고, 독일은 정치 싱크탱크 예산이 매우 큽니다.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은 예산이 각 1000억원 정도 됩니다. 이들 정치재단은 국가 재정 지원을 받지만 각 정당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정치교육 및 세미나, 인재양성 등의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정치적 싱크탱크’가 정책을 뒷받침해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여의도연구소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여의도연구소 연간 예산이 100억원 정도입니다. 이 중 3분의 1을 정책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체계적인 연구는 하지 않아요. 국회 입법조사처도 기본적인 기능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슈나 어젠다를 개발하는 역할을 할 곳이 없어요.”
“감독 말 잘 듣는다고 감독 돕는 것 아니다”
—지금 당 대표를 준비하는 분들도 나름의 정당 선진화 비전이 있을 텐데요.
“현재 상태에서 당을 새롭게 만드는 정도라면 당 내부 인물도 상관없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 정권이 남은 임기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정당과 정부 관계의 틀을 새롭게 만들고 당 전체를 혁신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당 밖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당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당내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것도 큰 장점입니다.”
—97년처럼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는 것 아닙니까. 당내 친박·친이를 제외한 비주류가 이인제를 지지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당내 역학관계에는 솔직히 관심이 없어요. 내가 제시하는 비전에 동의하는 당원들이 있다면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겠지요.”
—지금 대통령과 통하는 분이 당권을 잡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고, 그 반대라는 의견도 있는데.
“생각해 보세요. 대통령 말을 잘 듣는다고 일을 잘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축구에서도 공 잘 차는 선수가 감독에 도움되는 좋은 선수지 감독 말만 잘 듣는다고 감독 도와주는 건 아니거든요. 당이 정치역량을 갖추고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돕는 겁니다.”
이인제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왈가왈부가 적지 않다. 당 대표뿐만 아니라 국회의장설, 지방선거 충남도지사설도 나돌고 있다. 그는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언론에선 당 대표 또는 국회의장 후보로도 언급하곤 하는데요.
“당 대표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회의장은 아닙니다. 현재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권위나 실권이 없는 자리입니다. 오래 하신 분이 명예직으로 해야지 내가 갈 곳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내 정치 과정이 워낙 험난했고 내가 의회 수장이 된다는 것은 여야가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의장직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 후회되는 일이 있는지요.
“일단 한번 결정하고 나면 후회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등산할 때도 어느 길을 가더라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 완벽한 길은 없잖아요. 중간에 역경을 만나도 헤쳐나가면 그뿐입니다.”
“경선 불복은 민심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대중 후보도 이인제를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YS가 이인제 후보 측에 200억원을 지원했다는 언론의 허위보도 때문에 1위였던 지지율이 절반 이하로 추락하는 경험을 했죠. 지금도 자신있게 말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1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일한 사람이나 당시 출입기자라면 다 압니다.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그렇게 고생을 했겠습니까.”
—영남 지역에서는 이인제 열풍이 대단했는데요.
“부산·경남에서는 한때 지지도가 65%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부산·경남 사람들이 이인제에 대해 뭘 알고 지지를 했겠습니까. 사실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한 계층은 일반 서민들입니다. 지진이나 태풍이 다가올 때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도 작은 생명체들이잖아요. 국민이 무언가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고 지역주민들의 성격 특성상 열화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지요.”
—명분이 어떻든 간에 경선 불복은 여전히 어두운 과거로 남아 있습니다.
“경선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졌다면, 경선이 국민의 뜻과 같은 뜻을 나타냈으면 제가 왜 탈당을 했겠습니까. 지금은 온라인이나 인터넷, SNS 등으로 모든 것이 오픈되는 때이지만 그때만 해도 당심과 민심은 달랐어요. 민심을 무시할 수 없더군요.”
—2002년에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초반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다가 노무현 돌풍으로 그만두셨죠.
“얼마 전 박지원 의원이 종편TV에 나와서 그 당시 정치공작에 대해 고백을 하시더군요. 그 정도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권력의 핵심들이 어마어마한 정치공작을 통해서 저를 좌절시켰습니다.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여론 공작이 벌어졌다는 건데 사실 그들에게 저에 대한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온건 보수를 표방하는 제가 후보로 나서기엔 당시 여당(민주당)의 정체성이 문제였죠.”
安哲秀 신당, 정책과 인물 다 부족
그는 현 야당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좌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 정권의 인기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국민정서상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좌-우를 가르는 유럽식이 아니라, 온건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좌-우가 나뉘는 미국식이 바람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좌-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가 부족합니다. 보수파에 반대되는 개혁파 정당 역시 온건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게 국민 정서상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온건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좌파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국민을 끌어들이기 어려운 이념적인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호남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안철수당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민주당의 이념적 혼란 때문입니다.”
—안철수 신당이 가능성이 있을까요.
“안철수 현상은 그야말로 ‘현상’입니다. 기존의 정당들이 현대적 정당으로 진화하고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고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것이죠. 그러나 선거에서 지지를 받아내려면 현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책이 제대로 마련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이 마련돼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은 그 두 가지가 모두 부족해요.”
“安哲秀 의원은 단일화를 너무 쉽게 생각”
—신당을 창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역정당이나 재벌정당이 아닌 인물 중심 제3당이라는 의미에서 안철수 의원과 흔히 비교되는데요.
“사실 지금의 정치현황은 1997년 내가 국민신당을 창당할 때보다는 여건이 매우 좋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지역주의가 심했고 보수, 진보의 이념 대결이 강했어요. 그때는 제3의 공간이 매우 협소했고 일반 대중은 새 정치를 갈망했지만 그런 여론이 힘을 쓰기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다르죠. 지역주의와 이념대결이 많이 완화됐습니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여론몰이나 자금확보도 조금은 쉬워졌습니다.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면 제3당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봐요.”
—야권 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대한 의견은요.
“작년에 안철수 의원이 ‘나로 단일화를 했으면 대선에 이겼을 것’이라고 하는 걸 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까. 정책이니 비전이니 하는 건 없고 오로지 당선 가능성만 보고 단일화를 언급한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참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1997년에 이회창 후보와 내가 단일화를 해서 내가 출마했으면 어땠을지, 김대중 후보와는 상상할 수 없는 차이로 이겼을 것이라고 말하면 누가 그런 말을 듣고 있겠습니까. 안철수 의원은 후보 단일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게다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라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정치인들이 단일화를 지나치게 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선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잘못된 관행으로 원칙도 없고 철학도 없는 거죠.”
“安哲秀는 여론조사 1위 한 적 없어”
—이 의원의 492만 표는 지금 봐도 엄청난 숫자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3자 구도 여론조사에서는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습니다. 단일화 전제 여론조사에서 근소하게 이긴 적은 있었지만요. 제가 안철수 현상이라는 게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미 3자 대결에서 1등을 했었던 후보입니다. 그래도 안 되는 게 선거죠. 200억 수수설 한마디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나는 게 정치입니다. 지금 여당 서울시장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누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부상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후보가 될 겁니다.”
—한 지역에서의 인기로 전국적인 정당이 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겠죠.
“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한 이유가 뭐였겠어요. 모든 당원이 ‘지역주의에 기반한 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동의했습니다. 이제 지역기반 정당이 새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향후 제3정당이 성공한다면 전제조건은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정책과 인물, 두 가지입니다. 지금까지의 신당은 모두 그 두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신당이 정책을 위한 싱크탱크를 마련한다면 좋겠지만 아직 한국 정치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여당이 선도적으로 정책 싱크탱크를 만들고 정당을 혁신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정당정치를 만드는 것이 제 현재 상황에서의 바람입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이인제 의원은 “정치적 고향에 운명적으로 돌아왔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40대에 경선에 불복하고 신당을 창당해 출마한 패기의 정치인은 어느새 60대 관록의 정치인이 돼 있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3세력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아무나 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 정치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지방선거가 끝나면 새누리당 대표직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 의원은 “돌아온 탕아라 불러도 좋다”며 “수십 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정당 구조를 바꿔놓고 싶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당 대표 출마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관료 중심 사회는 소통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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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한 이인제 의원(맨 오른쪽). 이 의원은 지방선거 후 열릴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출마할 계획이다. |
“당에 다시 돌아와 어떤 기여를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정당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은 정당을 기초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 아닙니까. 대통령은 정부의 수장인 동시에 여당의 수장입니다. 국가경영을 하는 동시에 정치집단과 일체가 돼서 정치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관료가 정해진 틀에서 국가경영을 할 때 정당은 변화를 예측하고 이슈를 선점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방향으로 법을 만드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입법과 예산의 주도권이 정부에 있습니다. 정부 관료 중심으로 정책을 만들어서는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아요. 이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당이 정치적인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지금은 정당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까.
“지금의 여당은 복잡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그동안 정당과 국회, 정치적 이슈는 사람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 하나로 시급한 정책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았죠. 그러나 정치인은 성직자가 아니고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겁니다. 정치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하기에 앞서 ‘두뇌’를 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은 국회의원들에게 정책적인 지원이 엄청나고, 독일은 정치 싱크탱크 예산이 매우 큽니다.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은 예산이 각 1000억원 정도 됩니다. 이들 정치재단은 국가 재정 지원을 받지만 각 정당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정치교육 및 세미나, 인재양성 등의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정치적 싱크탱크’가 정책을 뒷받침해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여의도연구소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여의도연구소 연간 예산이 100억원 정도입니다. 이 중 3분의 1을 정책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체계적인 연구는 하지 않아요. 국회 입법조사처도 기본적인 기능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슈나 어젠다를 개발하는 역할을 할 곳이 없어요.”
“감독 말 잘 듣는다고 감독 돕는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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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선후보 합동토론회에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왼쪽)가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이회창 후보와 손을 맞잡고 있다. 이인제 후보는 이 선거에서 492만여 표를 획득했다. |
“현재 상태에서 당을 새롭게 만드는 정도라면 당 내부 인물도 상관없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 정권이 남은 임기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정당과 정부 관계의 틀을 새롭게 만들고 당 전체를 혁신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당 밖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당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당내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것도 큰 장점입니다.”
—97년처럼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는 것 아닙니까. 당내 친박·친이를 제외한 비주류가 이인제를 지지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당내 역학관계에는 솔직히 관심이 없어요. 내가 제시하는 비전에 동의하는 당원들이 있다면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겠지요.”
—지금 대통령과 통하는 분이 당권을 잡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고, 그 반대라는 의견도 있는데.
“생각해 보세요. 대통령 말을 잘 듣는다고 일을 잘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축구에서도 공 잘 차는 선수가 감독에 도움되는 좋은 선수지 감독 말만 잘 듣는다고 감독 도와주는 건 아니거든요. 당이 정치역량을 갖추고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돕는 겁니다.”
이인제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왈가왈부가 적지 않다. 당 대표뿐만 아니라 국회의장설, 지방선거 충남도지사설도 나돌고 있다. 그는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언론에선 당 대표 또는 국회의장 후보로도 언급하곤 하는데요.
“당 대표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회의장은 아닙니다. 현재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권위나 실권이 없는 자리입니다. 오래 하신 분이 명예직으로 해야지 내가 갈 곳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내 정치 과정이 워낙 험난했고 내가 의회 수장이 된다는 것은 여야가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의장직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 후회되는 일이 있는지요.
“일단 한번 결정하고 나면 후회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등산할 때도 어느 길을 가더라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 완벽한 길은 없잖아요. 중간에 역경을 만나도 헤쳐나가면 그뿐입니다.”
“경선 불복은 민심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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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제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
“YS가 이인제 후보 측에 200억원을 지원했다는 언론의 허위보도 때문에 1위였던 지지율이 절반 이하로 추락하는 경험을 했죠. 지금도 자신있게 말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1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일한 사람이나 당시 출입기자라면 다 압니다.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그렇게 고생을 했겠습니까.”
—영남 지역에서는 이인제 열풍이 대단했는데요.
“부산·경남에서는 한때 지지도가 65%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부산·경남 사람들이 이인제에 대해 뭘 알고 지지를 했겠습니까. 사실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한 계층은 일반 서민들입니다. 지진이나 태풍이 다가올 때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도 작은 생명체들이잖아요. 국민이 무언가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고 지역주민들의 성격 특성상 열화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지요.”
—명분이 어떻든 간에 경선 불복은 여전히 어두운 과거로 남아 있습니다.
“경선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졌다면, 경선이 국민의 뜻과 같은 뜻을 나타냈으면 제가 왜 탈당을 했겠습니까. 지금은 온라인이나 인터넷, SNS 등으로 모든 것이 오픈되는 때이지만 그때만 해도 당심과 민심은 달랐어요. 민심을 무시할 수 없더군요.”
—2002년에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초반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다가 노무현 돌풍으로 그만두셨죠.
“얼마 전 박지원 의원이 종편TV에 나와서 그 당시 정치공작에 대해 고백을 하시더군요. 그 정도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권력의 핵심들이 어마어마한 정치공작을 통해서 저를 좌절시켰습니다.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여론 공작이 벌어졌다는 건데 사실 그들에게 저에 대한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온건 보수를 표방하는 제가 후보로 나서기엔 당시 여당(민주당)의 정체성이 문제였죠.”
安哲秀 신당, 정책과 인물 다 부족
그는 현 야당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좌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 정권의 인기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국민정서상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좌-우를 가르는 유럽식이 아니라, 온건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좌-우가 나뉘는 미국식이 바람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좌-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가 부족합니다. 보수파에 반대되는 개혁파 정당 역시 온건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게 국민 정서상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온건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좌파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국민을 끌어들이기 어려운 이념적인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호남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안철수당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민주당의 이념적 혼란 때문입니다.”
—안철수 신당이 가능성이 있을까요.
“안철수 현상은 그야말로 ‘현상’입니다. 기존의 정당들이 현대적 정당으로 진화하고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고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것이죠. 그러나 선거에서 지지를 받아내려면 현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책이 제대로 마련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이 마련돼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은 그 두 가지가 모두 부족해요.”
“安哲秀 의원은 단일화를 너무 쉽게 생각”
—신당을 창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역정당이나 재벌정당이 아닌 인물 중심 제3당이라는 의미에서 안철수 의원과 흔히 비교되는데요.
“사실 지금의 정치현황은 1997년 내가 국민신당을 창당할 때보다는 여건이 매우 좋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지역주의가 심했고 보수, 진보의 이념 대결이 강했어요. 그때는 제3의 공간이 매우 협소했고 일반 대중은 새 정치를 갈망했지만 그런 여론이 힘을 쓰기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다르죠. 지역주의와 이념대결이 많이 완화됐습니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여론몰이나 자금확보도 조금은 쉬워졌습니다.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면 제3당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봐요.”
—야권 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대한 의견은요.
“작년에 안철수 의원이 ‘나로 단일화를 했으면 대선에 이겼을 것’이라고 하는 걸 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까. 정책이니 비전이니 하는 건 없고 오로지 당선 가능성만 보고 단일화를 언급한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참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1997년에 이회창 후보와 내가 단일화를 해서 내가 출마했으면 어땠을지, 김대중 후보와는 상상할 수 없는 차이로 이겼을 것이라고 말하면 누가 그런 말을 듣고 있겠습니까. 안철수 의원은 후보 단일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게다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라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정치인들이 단일화를 지나치게 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선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잘못된 관행으로 원칙도 없고 철학도 없는 거죠.”
“安哲秀는 여론조사 1위 한 적 없어”
—이 의원의 492만 표는 지금 봐도 엄청난 숫자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3자 구도 여론조사에서는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습니다. 단일화 전제 여론조사에서 근소하게 이긴 적은 있었지만요. 제가 안철수 현상이라는 게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미 3자 대결에서 1등을 했었던 후보입니다. 그래도 안 되는 게 선거죠. 200억 수수설 한마디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나는 게 정치입니다. 지금 여당 서울시장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누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부상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후보가 될 겁니다.”
—한 지역에서의 인기로 전국적인 정당이 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겠죠.
“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한 이유가 뭐였겠어요. 모든 당원이 ‘지역주의에 기반한 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동의했습니다. 이제 지역기반 정당이 새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향후 제3정당이 성공한다면 전제조건은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정책과 인물, 두 가지입니다. 지금까지의 신당은 모두 그 두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신당이 정책을 위한 싱크탱크를 마련한다면 좋겠지만 아직 한국 정치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여당이 선도적으로 정책 싱크탱크를 만들고 정당을 혁신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정당정치를 만드는 것이 제 현재 상황에서의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