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列傳] 한 작품을 11년간 연속 공연한 李道慶 : 월간조선

이도경(李道慶·61).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 연극을 해서 집을 산 사람. 집뿐 아니고 소극장도 마련한 사람. 아직까지는 대한민국 신기록인, 한 작품 11년 연속공연의 당사자. 좀 더 정확하게 평가하자면, 이도경은 대한민국 배우 가운데 무대 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예술가다.

2003년 영화 <와일드카드>에서 룸살롱 주인 도상춘 역으로 출연했을 때 팬들은 경악했다. 단역(端役)이지만, 저렇게 임팩트를 강하게 줄 수 있는 배우가 있었다니. 도대체 어디 숨어 있다가 불현듯 나타난 것인가. 불현듯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는 아무리 늦춰 잡아도, 1990년대 초부터는 대학로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자랑하던 연극배우다.

경상북도 월성군 건천읍, 지금의 경주시 건천읍이 이도경의 고향이다. 신라(新羅) 천년(千年)의 향기가 그를 연극의 길로 안내했다면 과장이 될까.

“제가 경주중·고를 나왔는데 중학교 2학년 때 미술선생님이 경주신라문화제(慶州新羅文化祭) 담당자 가운데 한 분이셨어요. 가장행렬도 하고 공연도 하며, 행사가 많았지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분 따라다니면서 방학 때마다 저도 문화제를 준비했습니다. 담배 은박지로 가장행렬용 갑옷 만들고, 노끈으로 수염 만들어 주고…. 학생들이 포졸 엑스트라로 동원되면 저도 그 사이에 끼여서 행진도 했습니다. 경주 에밀레극단이 <화랑 관창>이라는 연극을 공연했는데, 여기 의상이랑 소품 담당도 그 선생님이셨거든요. 조수로 따라가서 일 거들어 드리는데, 와, 세상에 이런 것이 다 있나 싶은 겁니다. 무조건 좋았어요. 사실은, 그것이 연극이라는 것도 모르고 매일 연습을 참관했습니다. 공연도 매일 보고.”

경주고는 지역의 명문고였다. 고교입시가 엄존하던 시절이다. 만화가 이현세와 이현세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까치 역을 맡았던 연극인 조상구가 이도경의 동기동창생이다.

서울行 연극관람

—1953년생인데,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은 유랑극단이나 서커스공연 보러 다니던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요.

“그건 저희 세대의 문화였으니까요. 돈은 없고 구경은 하고 싶고…. 일단 동네 아이들을 인근 공터로 불러 모읍니다. 돌을 던져 전구를 깨는 조(組), 포장 들추고 다른 애들 입장 돕는 조, 먼저 입장해서 안에서 포장 잡아 주는 조, 이렇게 조를 짜서 예행연습(?)까지 하고 실전에 돌입하는 거죠. 문제는 텐트 안에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1차침투는 성공하는데 여기서 다들 걸려요. 혼나고, 벌서고, 그러다가 아는 아주머니 치마폭에 숨어서 몰래 들어가고….”

—조직적으로 일을 꾸민 거네요. 그 정도면 대단한 열정인데, 서커스 관람이 연극 입문에 영향을 끼쳤습니까.

“공연이라는 행위에 관심은 많았죠. 하지만 스스로 자각은 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할까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아, 이 길이 내 길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죠. 고등학교 때 서울에 연극을 보러 다니면서 꼭 이 일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교통망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경주역에서 청량리까지 13시간 걸리던 서울행 완행열차. 이도경은 자신이 애용하던 열차의 출발시각과 도착시각을 21시30분과 04시 정각으로 기억한다.

“서울엔 아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 청량리역에서 열두 시간을 기다리다 낮공연 시간에 맞춰 남산 드라마센터로 가는 거죠. 낮공연 보고 관객들 퇴장할 때 저는 화장실로 가서 숨어 있었습니다. 저녁공연 한 번 더 보려고. 표 한 장 사서 두 번 보는 거죠. 일 년에 서너 번은 이런 식으로. 서울행(行) 연극관람은 제 고교시절의, ‘내 마음 속의 축제’였습니다.”

그때 본 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한국식으로 번안한 안민수(安民洙) 연출의 <하멸태자>와 사육신(死六臣) 이야기를 다룬 오태석(吳泰錫) 작/연출의 <태(胎)>,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의 부조리극 <생일파티>, 브로드웨이의 소품 〈LUV〉 등이 생각난다.

공연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가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예컨대 암전(暗轉) 중에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해 장치를 바꾸고 장면을 전환하는 순간, 최불암(崔佛岩)과 신구(申久)같이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이 드라마센터 인근 매점에서 간식을 ‘사 드시는 걸’ 먼발치에서 보고 ‘저분 <수사반장>에 나오는 분이다, 저분은 <야간비행>에 나오는 분이네’, 속으로 되뇌던 일도 이도경에겐 ‘서울의 추억’ 가운데 하나다.

아버지, 兄에게 “月 20만원씩 책임져라”

어린 시절 운동회에서의 이도경(앞).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년 시절의 사진이다.

3남3녀의 6남매 가운데 넷째로, 아들로선 막내. 평생 양돈업(養豚業)을 하던 부친에게 연극과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입시(入試)를 앞두고 소주 두어 잔을 마시고 부자(父子)면담을 신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알았다. 가서 최고가 돼라.”

부친은 장형(長兄)을 불러 별도의 지시를 내렸다.

“도선아, 도경이 서른 될 때까지 네가 월(月) 20만원씩 책임져라.”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어요. 호통치고 머리 쥐어박으실 줄 알았는데…. 감격이었죠. 아버님께서 젊었을 때 일본에 가서 노무자 생활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연극’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들어서 알고 계셨던 건 아닌지….”

서울에서 두 군데 시험을 봤다. 중앙 대 연극영화과는 낙방, 서울예대 영화과는 합격. 중앙대에선 ‘사투리 악센트와 의치(義齒)임이 확연한 앞니 네 개, 이마에 깊은 가로 주름’이 면접관들에게 영향을 끼친 듯했다. 웬 의치?

“경주에서 불량배들과 싸움이 붙었는데, 구두통으로 얻어맞았죠. ‘싼뿌라’라고, 당시에 가장 싼 보철물로 이를 해 넣었는데, 문제는 이게 노골적인 은색이거든요. 바로 티가 나는 거죠.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상관없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마에 가로주름이 선명했어요. 전부 콤플렉스였습니다. 제가 면접관이라도 안 뽑았을 겁니다.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잔뜩 주눅이 들어 있던 태도와 자세가 문제였던 거죠.

그래서 서울예대는 영화과로 원서를 넣었습니다.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 일도 할 생각이다, 뭐 그런 식으로 면접관들을 설득할 수 있잖아요. 중앙대에서 면접 보고 전략 수정을 한 거죠.”

치아는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빚을 내서 ‘리모델링’했다. 서울예대는 연극과(演劇科)로 전과해서 졸업했다. 박영규·최상훈·양희경이 대학 동기다. 예대 시절, 선구적 연극인 류치진(柳致眞·1905~1974) 선생의 아들인 류덕형(柳德馨) 학장으로부터 수업을 들었다. 용기를 내서 연구실로 찾아가 사정을 호소했다.

“연기는 하고 싶은데 외모가 이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끝까지 연기를 할 생각입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 같은 계통의 일을 소개해 주십시오.”

직접 연극용 색조화장품 만들어

이도경에게 扮裝의 길을 열어 준 류덕형 서울예대 학장.

류 학장이 물었다.

—조명은 어때? (류덕형 학장 본인이 대한민국 최고의 조명 전문가다.)

“그건 무대에 못 나가잖습니까.”

—그럼 의상은?

“전 바느질할 줄 모릅니다.”

—분장(扮裝)은?

“좋습니다.”

류학장의 소개로 교육방송 분장을 담당하던 김철민 선생을 찾아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분장 일로 생활이 되던가요. 신부화장 하나도 안 하고 오직 연극 관련 일만 한 거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먹고살 수는 있었습니다. 마흔 넘어서까지 연기는 적자(赤字)였고 수입은 다 분장으로 벌었지요. 1970년대 초반부터 전국에 아동극 붐이 불어서,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에서도 정책적으로 아동극, 학교연극을 밀어 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전국의 아동극 분장은 제가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학교연극반, 기존극단, 때로는 CF까지 담당했죠.

도구도 팔았어요. 일본말로 ‘도랑’이라고 하죠, 연극용 색조화장품. 돌아가신 원로배우 고설봉(高雪峰·1913~2001) 선생님한테 바셀린, 식용색소, 향수 등을 섞어 제조하는 방법을 배워서 판매를 하기도 했습니다. 생사(生絲) 실크는 전매청에서 관리하는 품목이라 시장에선 구할 길이 없는데, 이게 분장용 수염 만드는 데 최상의 재료거든요. 공장에 찾아가 못 쓰는 폐사(廢絲)를 얻어다 제작 판매했습니다. 사실은 수염 만드는 데는 폐사가 더 좋았습니다. 구불구불하고….”

분장 일은 1993년까지 계속했다. 무주구천동에서 여배우 12명을 데려다 캘린더를 찍는 프로젝트. 이도경은 의상과 분장 책임자였다. 열두 명의 여배우 동선(動線)을 따라 새벽안개 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데 ‘필’이 왔다. ‘이제 분장 일을 그만둘 때로구나.’ 돌아오는 기차, 영동선 차창으로 분장도구를 투척하고 ‘분장의 세계’와 이별했다.

보병 2사단 판문점 근무로 병역을 마치고, 학교를 졸업한 뒤 친구 최상훈을 따라 입단한 곳이 길명일(吉明一) 대표가 꾸려 가던 극단 작업(作業)이다. 주로 번역극을 공연했는데, 무언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길거리에 나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절실한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에 더빙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래서 찾아간 곳이 서울예대 선배 이길재(李吉宰·1951~2008)의 소개로 들어간 마당 세실극장이다.

세실극장. 영국대사관과 성공회성당 사이에 자리한 280석의 아담한 공간. 대학로 문예회관이 완공되면서, 태평로 연극인회관으로 쓰이던 이 공간의 운영 주체가 사라졌다.

성공회는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쓰고 싶어했다. 극단 민예의 기획자였던 이영윤(李永潤·73)이 “극장은 극장으로 사용할 때 가장 빛이 난다”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이영윤은 극단 마당을 결성하고, 같은 건물 지하에 레스토랑 ‘마당’을 열어 운영비를 마련한다는 플랜을 세운 뒤 1979년 겨울에 <별주부전>으로 창단공연의 막을 올렸다. 극단이 자체 극장을 소유하고 연중무휴(年中無休)로 공연을 올린 일은 한국 연극사상 이때가 처음이다.

五無연극

“오전엔 다음 작품 연습을 하고 오후, 저녁엔 하루 2회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연극계 일각에서는 마당 세실극장을 ‘연극공장’이라며 다소 낮춰 보시는 분들도 없지 않았는데,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연기자에겐 무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축구선수도 훈련 많이 하고 경기도 많이 해야 실력이 늘 것 아닙니까. 원 없이 연극하던 시절입니다.”

<우자 알버트> <님의 침묵> <이수일과 심순애> <봉이 김선달> <쥐덫> <사주팔자 고칩시다> 등이 이도경이 생각하는 마당 세실극장의 대표작이다. 이도경은 그곳에서 5년 동안 ‘수련’했다. 이인철·최정우·김갑수, ‘맹구’로 널리 알려진 개그맨 이창훈, 대학로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는 김순영 등이 이 당시에 함께 활동하던 동료 선후배다.

1985년, 이도경은 ‘연기에 흠뻑 빠지고 눈을 뜨게 하는’ 작품을 만난다. 이영윤 고문이 아이디어를 낸 <장터에 난리났네>(1984)다.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물건을 파는 연극이다. 대본·의상·조명·분장·연출 없이 5무(五無) 공연을 해 보자 그러시는데, 경상도 말로 ‘야, 이거 마구리다, 엄청나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로구나’ 딱 감이 오는 겁니다. 스태프들이 물건 판매대에 바퀴를 달아야 무대 위에서 이동이 쉽지 않겠냐고 하니까 ‘꾸미지 마라. 무대에 올라오지 말아야 할 물건들로 무대를 채우자. 드럼통, 부러진 간판, 지푸라기 주워다가 매일 물 뿌리며 공연하고.’ 전 이 아이디어에 100% 찬성했습니다. 너무 자유롭게 나가는 연극이라 못 견디고 하차한 배우들도 있었을 정도로 당시로선 고정관념을 깨는 공연이었죠.”

당시 《조선일보》가 이영윤과 인터뷰를 했다. “‘이런 것도 연극이냐?’ 고 묻는다면 ‘그럼 어떤 것이 연극이냐?’고 되묻겠다”는 그의 한마디가 이 작품의 파격성과 개방성을 웅변한다.

기본적인 약속만으로 연극 진행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즉흥극처럼 진행한 건가요.

“아주 기본적인 약속만 하고 가는 겁니다. 재래시장을 재(再)개발하려는 데 맞서 상인들이 끝까지 남아 장사를 한다는….

약속을 하면 할수록 흐름이 꼬였어요. 그래서 아예 배우들이 알아서 다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거죠. 전체적으로는 흥겨운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관객이 금방 알아차리더군요. 예비군 훈련 다녀온 날은 그 복장 그대로,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거의 매번 즉흥연기와 대사로 공연하는 거죠. ‘오늘은 내가 여기서 몇 분 책임진다’ 그러면 그 쪽을 밀어 주고….

‘배우가 무대에서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다니….’ 저에게는 하루하루가 희열이었습니다. 폼잡고 멋지게 가는 것도 좋지만, 조금은 구겨진 채로, 너덜거리는 채로 쉬운 얘기를 들려주는 연극도 필요한 것 아닐까, 뭐 그런 종류의 갈증을 해소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도경의 역할은 양돈업자였다. 돼지고기 파동으로 고기값이 kg당 500원까지 폭락했던 시절이다. 그가 ‘양돈업자 역할’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자 군말없이 오케이(OK) 사인이 나왔다. 그는 양돈업자인 부친으로부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무대에서 재현했다. “내가 그래가 돼지들을 모아 놓고 선언했심더. 내는 더 이상 니들을 멕이고 기를 여유가 엄따. 미안타. 그카고 돼지들을 다 방목했심더”가 그가 만든 대사였다.

—무대 위에서 실제 물건을 팔았잖습니까. 저도 <뮤지컬 님의 침묵> 대본책자를 구입한 기억이 납니다만…. 얼마나 파셨죠. 수익은 괜찮았는지요.

“공연 마무리를 관객들과 함께 하는 거죠. ‘물건 사고 싶은 분들 다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광고하고 무대 자체를 정말 장터로 만드는 겁니다. 이거 《월간조선》 인터뷰죠? 당시에 이영윤 고문 친구 분이 《월간조선》에 근무 중이셔서, 과월호(過月號)를 가져다가 싼값에 팔기도 했습니다. 연탄도 팔고, 여름에 가죽잠바 겨울에 남방셔츠, 백화점 떨이 물건을 떼다가 팔았고, 가수 이재성씨가 자작곡 <기타 하나 동전 한 닢>을 부른 뒤 자기 음반을 팔기도 했습니다. 사인해서….

참, 무대 위에서 연탄도 팔았어요. 신기한 건 그 물건들이 다 날개돋친 듯 팔리더라는 거죠.”

<장터에 난리났네>는 이도경에게 개인적인 경사를 가져다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당시 세실극장은 나름대로 고정팬이 생겨서 박카스며 이런저런 선물들을 분장실로 갖다주시는 분들이 더러 계셨어요. 제 아내도 고3 때부터 고정관객이었죠. <장터에 난리났네> 초연 땐 대학생.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고 귀가했습니다. 59번 좌석버스. 저는 당시 명일동 누님 집에 살고 있었고 처가도 그 근처였거든요. 처음엔 저보고 아저씨라고 그랬어요. 저희가 띠 동갑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이 친구가 ‘지나치게 자주’ 극장에 나타나는 겁니다. ‘저 잡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런 결정적 발언도 하고. 감을 잡기는 했는데, 저한텐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공연에 어머니를 모시고 오겠다는 겁니다.”

아내와의 만남

—그날따라 무대 위에서 사고가 터졌다고 들었습니다.

“중간에 객석의 관객을 무대 위로 모셔다가 간단한 춤도 시키고 물건도 팔고 그러는 장면이 있는데…. 건장한 남학생이 딱 손 들고 올라오는데 벌써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여요. 과도하게 긴장한 거죠.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1회용 샴푸를 객석으로 던지면서 비명을 지르고 객석은 술렁거리고…. 어떻게든 상황을 정리해야 하니 ‘내가 뭘 잘못했나요? 뭘 어떻게 할까요?’라고 즉석대사를 치는데 주먹이 날아오더군요. 맞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분위기 수습하고 공연 이어 가고…. 분장실에 가 보니 절 때린 사람이 무릎 꿇고 빌고 있었습니다. 원광대 연극반 학생인데, 그 날이 네 번째 관극(觀劇)이었답니다. ‘오늘은 내가 무대에 오르겠다’고 미리 다짐하고 연습까지 몇 번 하고 와서는 긴장감을 못 이기고 폭주한 거죠.”

—처가 식구들 보는 데서 신고식 제대로 한 거네요. 예비사위에 대한 장모님 평가는 어땠나요.

“제 처를 보고 그러더랍니다. ‘어디 가서 밥 굶길 사람 아니다.’ 전 그때까지도 처가 식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전혀 몰랐어요.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를 한다는 생각도 안했습니다. 그냥 저 혼자 좋아했고, 저쪽도 나한테 호감이 없지 않구나 하는 정도였지. 결혼상대가 아니라 열성팬으로 생각했다니까요.”

이 아가씨는 다음 날 공연을 또 보러 왔다. 공연이 끝나고 “아저씨, 저희 집 대문 좀 고쳐 주세요”라는 부탁을 했다. 월요일은 공연이 없는 날이고 집도 가깝고 하니 별 생각 없이 연장 챙겨 들고 나선 길. 살짝 기울어진 대문을 수리하고 나자 그날 처음 뵌 장인이 입을 열었다.

“자꾸 이렇게 만나지 말고 아예 날을 잡으면 어떤가. 딸이 좋다니 나도 좋네.”

‘처제가 모델인 미녀 집안의 둘째가 왜 이렇게 나한테 적극적이지?’ 이도경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와중에도 ‘이거, 뭐 문제가 있어서 서두르는 결혼 아냐?’라는 의심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도경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장녀 이나운(25)은 모 대학 연극영화과를 중퇴하고 현장에서 연극 일을 배우겠다고 선언했다. 명문대 진학 가능 성적을 내던 아들 이규민(20)은 기숙학원 재수 후 “영화감독이 하고 싶다. 배우도 하고. 그런 걸 배우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고백했다. 이 인터뷰 닷새 전에 벌어진 돌발상황이다.

“제 아버지 심정을 떠올리며 저도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말린다고 말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도경은 1987년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마당 세실극장의 대표이자 상임연출이던 김상렬(金相烈)을 따라 극단 <신시>의 창단멤버로 둥지를 옮긴다. 신시에선 <등신과 머저리> <우린 나발을 불었다> 등의 작품을 공연했다. 후자는 이도경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던 작품이다.

비디오가게로 생계 해결

“김상렬 선생님은 저한텐 신(神) 같은 존재입니다. 그분이 하시는 농담까지도 다 메모하고 공부했을 만큼 존경했지요. 그분과 연극연습을 하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평소엔 대사의 토씨 하나 바꾸는 것도 불허하던 분이 ‘이 역할에 어울리는 대사를 한번 네가 만들어 오라’고 그러시더군요. 집에 와서 울었습니다. 특혜였고 인정이었으니까.”

1990년대 초, 김상렬이 극단 가교와 악극(樂劇)운동을 펼칠 때 이도경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나선다. 악극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노래 실력이 없어서 도무지 악극을 함께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탓이다. 본가에서 결혼비용으로 지원한 금액이 1000만원. 결혼식 비용으로 500만원을 쓰고 나머지로 전세방을 얻었다. 생활의 방편으로 선택한 직업이 비디오가게다.

“연기훈련을 위해서 일단 영화를 많이 봐야 되겠다고 다짐했죠. 암사동에 십자성(十字星) 마을이라고, 파월(派越)용사 집단촌이 있어요. 거기 두 평 반짜리 가게를 얻어서 내부공사 제가 다 하고 가게 뒤에다 단칸방 만들고 몇 년 살았습니다. 처음엔 돈이 없어서 물건도 많이 못 갖다 놓고. 개업 전날 휠체어 탄 상이용사들이 가게로 몰려오셔서 실내에다 소변보고, ‘우리 동네가 어디라고 포르노 장사를 하느냐’고 항의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비디오가게라면 그런 장사를 하는 것으로 인식하시던 분들이 더러 계셨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설득불가(說得不可)죠. 동네 인심 얻는 데 1~2년 걸렸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동네 골목길 다 청소하고, 길거리 토사물 치우고 재떨이 비우고….나중엔 어르신들이 저희 가게를 동네 사랑방처럼 활용하셨어요. 이분들, 나중에 제 연극도 보러 오시고, 지금도 경조사 때 왕래하며 지냅니다.”

이만희와의 만남

<불 좀 꺼주세요> <용 띠 위에 개 띠> 등을 함께 작업한 극작가 이만희.

전 재산 500만원이 비디오가게 2년 만에 7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도경은 이 돈으로 연극을 한 편 제작하기로 한다.

“마당 세실극장에서 처음 만난 최정우는 결혼도 비슷한 날짜에 하고 신혼여행도 두 커플이 같이 갔을 만큼 친한 사이인데, 이 친구가 일제시대 소록도 이야기를 다룬 <문디>라는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분장을 맡아 달라길래 그러마 했지요.”

이 작품의 극작가 이만희(60)를 그때 처음 만났다.

“이만희는 1979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당시 대원외고 윤리교사였습니다.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이 사람은 천재다’라는 감이 바로 오더군요. 일단 대사가 차지고, 이야기를 풀어 가는 솜씨가 절묘했거든요. 연배도 비슷하고, 연극 한 편 같이 만들어 보자고 바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 관객들이 좋아할까,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 갈까, 최정우랑 매일 셋이 만나서 몇 시간씩 작품 구상을 했는데, 어느 날 이만희가 ‘분신들이 등장하는 연극을 해 보자’고 제의했다. 주요 공략대상은 중년층으로 잡았다. 그때부터 일사천리(一瀉千里). 아예 배역을 미리 정해서 배우들의 개성과 특징을 반영하며 대사를 썼다. 그렇게 이도경·최정우·이만희가 200만원씩 투자해서 600만원의 자본금으로 막을 올린 작품이 대학로의 전설이 된 <불 좀 꺼주세요>(1992)다.

“처음부터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서너 달간 손익분기점을 살짝 넘는 정도였는데 제가 일인다역(一人多役) 하는 것이 화제가 돼서 KBS <쟈니윤 쇼>에 출연했거든요. 그날부터 45일간 90회 공연 연속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그 뒤로도 점유율 95%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고. 다른 작품 관람료가 4000~6000원 할 때 저희는 1만원씩 받았어요. 초대권, 할인권 하나도 안 뿌리고.”

연극으로 먹고살 가능성 발견

<불 좀 꺼주세요>에서 떡집 아저씨 역으로 扮한 이도경.

3년6개월 공연에 누적관객 20만명이 <불 좀 꺼주세요>의 성적표다. 재공연을 거듭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같은 배우들이 한 극장에서 한 달 이상 공연하는 일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신문들이 사회면 톱기사로 <불 좀 꺼주세요> 이야기를 했고, 한 화장품 회사의 제안으로 공연 시작 전에 배우가 나와서 실연광고(實演廣告)를 하기도 했다. 미국 공연도 두 차례 했다. 로스앤젤레스(LA) 교포들을 상대로 첫 공연 한 달, 두 번째 공연 25일의 장기흥행. 연극계가 열광한 까닭은 하나 더 있다. 대규모 투자가 필수인 뮤지컬 말고도, 연극만으로 생계를 해결할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여배우 개런티 지급하고, 각종 운영비 다 제하고, 제작자로 200만원 내고 지분(持分) 참여한 정재진(丁在鎭) 극장장 지분 계산해 드리고, 순(純)수익금 가지고 이만희, 최정우, 제가 각각 배당받은 금액이 1억2000만원입니다.”

—수익금은 어떻게 썼습니까.

“일단 전세 끼고, 송파에 1억5000만원짜리 집을 샀습니다. 나중에 집값이 꽤 올라서 가계에 크게 보탬이 됐습니다. 일부 금액은 다음 작품 제작비로 사용했습니다. <불 좀 꺼주세요>가 3년이 넘어 가니까 객석의 열기가 예전만 못하더군요. 볼 사람은 다 봤다는 생각도 들고, 실제로 티켓 판매금액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연극에 대한 중년의 수요를 확인했으니 새 작품을 공급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용 띠 위에 개 띠>

총 14년간 공연한 연극 <용 띠 위에 개 띠>는 이도경 부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다시 이만희, 최정우와 머리를 맞대고 기획회의를 한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부부 간의 내기’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자는 것. 각자 부부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이도경 부부의 이야기를 ‘채택’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1952년생 용띠 만화가 나용두와 1958년생 잡지사 기자 지견숙이 결혼, 출산, 결별, 재결합을 거치며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용 띠 위에 개 띠>(1997)다. 처음 9개월 동안은 적자. 더블캐스팅이었던 최정우가 사정이 생겨 하차하면서 공연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 찾아왔다.

“사실 9개월 연속 공연도 대단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전 여기서 막을 내린다는 것이 아무래도 아쉽더라고요. 이 작품이 물건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기획을 다시 했지요. 더블캐스팅이 안 되면 나 혼자 간다. 상대역 여배우도 두 명 번갈아 출연하던 걸 하나로 줄이자. 자체 공연장을 마련하고 극장에서 밥을 해 먹으면서 견뎌 보자. 일단 그렇게 손익분기점을 확 낮춰 놓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보는 거다.”

대학로 극장에서 다시 1년을 공연하니 한두 달 지나 입소문이 퍼지면서 관객이 늘어났다. 그 수익금으로 <은행나무 소극장>을 인수한 후, <이랑씨어터>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자기 소극장을 갖는 건 모든 연극인들의 꿈이다. 이도경은 멤버들의 이름을 한지(韓紙)에 적어 경건한 마음으로 무대 바닥에 묻어 놓았다. 일터이자 책상이며 안방이기도 한 ‘내 무대, 내 판’이 생긴 것이니까.

이도경은 다른 계산도 했다. 대관료(貸館料)를 줄이고 출연배우가 적으면 고정비용이 줄어든다. 해 오던 공연이니 무대디자인, 포스터디자인도 직접해서 모든 투입비용을 낮춘다. 극장을 마련했으니 이제는 절실한 마음에서라도 장기공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랑’은 이만희의 작명이다. 밭고랑, 이랑의 이랑이기도 하고 ‘이씨 성을 가진 남성연극인’의 ‘이랑’이기도 하다. <용 띠 위에 개 띠>는 10년 간 2623회 공연에 27만명이 관람했고, 1년6개월 휴식을 거쳐 2008년 8월 재공연에 돌입한 뒤 2012년 8월에 막을 내렸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나요.

“여고생이 편지를 보내 왔어요. ‘이 연극 너무 아름다워요. 우리 엄마 아빠가 결혼식을 못하고 사십니다. 연극 보고 관객들을 하객(賀客) 삼아 결혼식 올려 드리고 싶은데 가능할는지요.’

당장 연락해서 작전을 짰습니다. 여고생은 부모님을 몰래 모시고 오고, 단 할머니도 오시는데 미리 알고 계시고. 공연 끝나고 제가 여고생 사연을 소개한 뒤 ‘오늘 결혼식 있습니다. 바쁘신 분은 가셔도 좋습니다.’

그랬는데 정말 그날 관객들이 단 한 분도 안 가셨어요. 단상 정리하고 케이크 준비한 뒤에 ‘신랑 입장!’을 외쳤는데, 남편 분이 우느라고 못 나오세요. 할머니는 너무 좋아서 웃으면서 박수치고 덩실덩실 춤추시고, 아내 분은 호탕하게 웃고. 두 분이 쌀가게를 하셨던가, 아무튼 손마디가 투박하시더라고요.

관객들이 뽀뽀하라고 난리를 부려서 두 분이 눈물 콧물 바람으로 무대 위에서 뽀뽀도 하셨습니다.”

“연극 해서 돈 벌면 왜 안 되나?”

—그 세월 동안 매일 공연한다는 건 체력도 체력이지만,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죠. 중간에 탈진으로 쓰러져 일주일 공연을 쉰 적도 있습니다. 자주 관극을 하던 한의사 한 분이 주치의를 자청해서 섬세하게 관리해 주신 덕에 버틸 수 있었지요. 매일매일 운동하고 숙면 취하고…. 생활을 관리하지 않으면 공연을 할 수 없으니까 도리가 없는 거죠.

전 연극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후배 연극인들에게. 우리 연극계엔 연극해서 돈 벌면 경원시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연극해서 돈을 벌면 왜 안 되는 겁니까? 돈이 있어야 다음 작품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배고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도 아닙니다.

배가 고파야 좋은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건, 제 생각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저녁마다 술 마시고 자신을 방기(放棄)하고…. 헝그리정신으로 연극을 하는 건 바람직한 태도지만, 정말로 배가 고파선 곤란하다는 뜻이죠.”

그는 마당놀이나 뮤지컬, 악극이 아니라 정극(正劇)으로 집과 극장을 구입한 특별한 경우다. 대화를 이어 가는 도중에, 작품성·문학성·흥행성·연극성을 고루 갖춘 작품으로 성공을 일궈 냈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제 꿈은, 평생 연극을 한 번도 안 보신 분들을 극장으로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 문화생활’이 연극 관객의 주류였으니까. 관객층을 중년까지 확장하면, 그분들이 연극에 맛을 들이고 번역극이나 부조리극(不條理劇)이나 더 다른 연극의 세계로 건너가실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것이 연극의 저변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영화 <와일드카드>로 주목 받아

—평생 연극 한 편도 안 보신 분 중엔 아버님도 포함되나요.

“저희 아버지는 제 연극을 단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양돈 일을 하셨거든요. 서울에 못 오셨어요. 그러다 대구 백화점에서 <불 좀 꺼주세요>를 공연할 때 제가 큰형한테 부탁했습니다. ‘집에서 가까우니까, 아버지 모시고 와 달라’고. 처음엔 오신 줄 몰랐는데, 아버지 기침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날따라 공연이 정말 좋았습니다. 잔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게 끝난 공연이었죠.

분장실로 아버지가 찾아오셨는데, ‘내 자리가 에어컨 바로 밑이 돼서 얼마나 기침이 나는지, 아주 방해됐을끼야’ 그러시는 겁니다. 얼마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공연이 저희 아버지가 관람한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영화 <와일드카드>에서 이도경은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받았다.

“이따금 영화 단역 제의가 왔는데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나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어서…. 그러다가 이만희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딱 제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출연했죠.

그 작품이 화제를 모으면서 시나리오가 수십 편씩 들어왔는데, 다 고사했습니다. 연극만으로 생활이 가능한데, 스케줄을 빼 가면서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용 띠 위에 개 띠> 종연(終演) 후 다시 영화랑 텔레비전 일을 시작했습니다. 배우가 캐릭터에 꼭 맞는 역만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고, 50대 배우는 주인공보다는 도와주는 역이 많으니 제 성격에도 맞고….”

이도경은 <퍼펙트게임>에서 롯데 자이언츠 성기영 감독 역을 맡았고, 드라마 <구가의 서>와 <더 킹 투 하츠>에 출연했다. 현재는 <신의 한 수>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사극 <협녀> <역린(逆鱗)> 등 네 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 중이다.

“좋은 배우는 ‘안 미운 사람’”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와서, 평범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좋은 배우란 어떤 존재인가요.

“안 미운 사람이죠. 관객한테, 연출가한테 그리고 동료 배우들한테. 연기를 잘해도 미운 배우가 있고, 연기는 일류가 아니어도 안 미운 배우가 있습니다.”

—이도경에게 연극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의 전부. 연극을 빼 버리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까요.”

이도경의 다음 목표는 1~2년 안에 좋은 작품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체력이 예전만 못하니 장기공연은 무리일 것이고, 석 달 하고 쉬고 다시 석 달 하고 쉬는 패턴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는 한국 연극의 미래를 다음과 같이 심사숙고(深思熟考)했다.

“몇 년 전에 비하면 대학로에 연극관객이 확실히 줄었습니다. 유동인구는 늘었지만. 관객들이 심각하고, 가르치려 들고, 어려운 작품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쉽고 즐거운 공연만 겨우 관객을 모으는 것이 현실인데….

지금 전국에 연극영화과가 80개 이상이죠? 그 졸업생들, 다 귀하고 아까운 자원인데, 이걸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죠. 어쨌거나 연극판은 이 가운데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상위 0.1%만 살아남는 정직하고 치열한 시장이니까, 그 정직함에 기대서 승부를 걸면 뭐가 나와도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작품성과 연극성과 문학성과 흥행성의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를 찾아내는 그의 재능은 어쩌면 현대사회 속에서 예술가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응전(應戰)태세는 아닐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도경의 응전, 다음 행보가 그래서 궁금해졌다.

“가능하다면, 이만희 작가의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이만희 작가가 선물한 작품 <돼지와 오토바이>를 언젠가는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마음의 빚’도 청산해야 하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이도경은 쾌활한 웃음과 유쾌한 손짓을 남기고, 남양주 쵤영소를 향해 차를 몰고 떠나갔다. 공연장에서 그를 다시 만날 날이 멀지 않았기를 희망하면서, 필자 역시 씩씩한 손짓으로 배우를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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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품을 11년간 연속 공연한 李道慶

“연극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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