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 비구(남자 승려) 대 비구니(여자 승려) 비율은 1대 1로 비슷
⊙ 제자 양성에 힘쓰는 한편 사찰음식 전문가로도 널리 알려져
⊙ 가을철마다 사찰음식축제 열어 1만여 방문객에게 만발공양
一 耘
⊙ 타이완 중화불학연구소 석사.
⊙ 불영사 주지, 전국비구니선문회 부회장, 조계종 제14, 15대 중앙종회 의원.
⊙ 저서: 《불영이 감춘 스님의 비밀 레시피》 《김치나무에 핀 행복》 《사찰음식이 좋다》 등.
⊙ 제자 양성에 힘쓰는 한편 사찰음식 전문가로도 널리 알려져
⊙ 가을철마다 사찰음식축제 열어 1만여 방문객에게 만발공양
一 耘
⊙ 타이완 중화불학연구소 석사.
⊙ 불영사 주지, 전국비구니선문회 부회장, 조계종 제14, 15대 중앙종회 의원.
⊙ 저서: 《불영이 감춘 스님의 비밀 레시피》 《김치나무에 핀 행복》 《사찰음식이 좋다》 등.
지난 10월 7일, 서울 광화문에서 승용차로 5시간가량 달려서 도착한 곳은 경북 울진군 서면에 있는 불영사(佛影寺).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비구니(여자 승려)의 도량이다.
바람은 분명 가을이었고 계절도 가을의 초입이었지만 해발 653m의 천축산에 자리 잡은 불영사 주변 곳곳에는 아직 여름의 흔적들을 애써 붙잡아두고 있는 곳이 많았다. 불영사 일주문에서 불영사 본채까지 불영계곡을 따라 10여 분 정도 걸어야 하는 숲길에는 때 이른 단풍객들이 언뜻언뜻 보였지만 아직 찾아오지 못한 단풍에 실망하는 눈빛들은 아니었다. 그만큼 계곡의 물과 바위와 그 주변의 송림(松林)들이 보기 좋았다.
본채에 도착했을 때 간밤에 울진 지방에 내린 비로 젖어 있는 땅 위에는 무수한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절 전체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었다. 10월 12일에 산사음악회와 함께 열리기 때문에 이 기사가 나가는 《월간조선》 11월호가 발행됐을 때는 과거형이 되어 있을 사찰음식축제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다. 불영사 측은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5번째인 사찰음식축제에 1만명분 이상의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회 때는 1000여 명, 3회 때는 5000여 명, 지난해에는 70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참석자들의 증가 추세를 감안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불영사의 점심 공양(供養)은 11시부터다. 정오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오후 불식(不食)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 일행이 현지에 도착한 시각은 11시20분. 우리는 공양간부터 찾았다. 오전에 울력(사찰의 승려들이 모두 함께 일을 하는 것)을 마치고 점심 공양을 한 듯 공양을 마치고 나오는 스님들의 목에는 수건이 둘러져 있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이곳에서 수행하는 비구니들은 누구든 하루 2시간의 울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종교는 다르지만 마치 기독교의 신약성경 데살로니카 후서에서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을 연상시킨다.
불영사의 주지인 심전(心田) 일운(一耘) 스님의 목에도 수건이 걸려 있었다. 일운 스님은 타이완(대만)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온 1991년부터 불영사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출가 않고 속세(俗世)에 있었으면 여장부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짐작게 하는 쾌활한 목소리의 일운 스님은 막 공양을 끝낸 후 기자 일행과 마주치자 편안하게 공양을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자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내 나이를 궁금해 하지 마세요”
아욱 수제비와 열무김치, 그리고 불영사의 스님들이 직접 가꾸고 다듬었다는 갖가지 나물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우리는 일운 스님과 마주 앉았다. 커다란 눈망울과 깨끗한 이마는 그의 세속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사전 취재를 하며 일운 스님의 나이나 고향 같은 것을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기자의 궁금증을 눈치챈 듯 일운 스님은 “부처님의 제자에게는 나이가 없으니 궁금해 하지 말라”며 웃었다. 사찰음식축제를 열게 된 동기를 묻자 그는 만발공양(萬鉢供養)이라는 단어부터 꺼냈다. 만발공양의 사전적 의미는 ‘절에서 밥을 발우(밥그릇)에 수북수북 담아서 많은 대중(大衆)에게 베푸는 공양’이다.
“우리 스님들은 항상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걸식(乞食)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날 하루만이라도 국민들에게 우리가 공양을 올리자는 뜻이 있어요. 천명이든 만명이든 만발공양을 하자는 거죠. 또 함께 사는 모든 사람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우리 사찰음식이 건강에 좋거든요. 정신적인 안정, 마음의 평화 그런 것들을 음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어요. 음식은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스님들의 수명이 일반인들보다 깁니까.
“언젠가 종교인들의 평균수명이 가장 길다는 조사결과도 나왔잖아요.”
2011년 원광대가 조사해서 발표한 직업별 평균수명에 따르면, 종교인이 82세로 가장 길었고 다음이 대학교수(79세) 등이었다.
—종교인들 가운데는 스님들의 평균연령이 가장 깁니까.
“저는 스님들의 수명이 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운 스님은 《불영이 감춘 스님의 레시피》, 《김치나무에 핀 행복》 등 사찰음식 관련 서적을 냈고, 이번 사찰음식축제에 맞춰 《사찰음식이 좋다》는 책을 냈다.
—사찰음식에는 파, 마늘, 부추, 달래 등 오신채(五辛菜)를 넣지 않는데도 점심 공양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속세에서는 아주 중요한 양념들인데 그걸 넣지 않고도 맛을 내는 비결이 있습니까.
“오신채를 넣지 않고도 맛을 내는 것은 물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토질이 작용하는 거라고 봐요. 음식은 양념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맛이 있는 게 아니에요. 열무김치를 예로 들더라도 열무에는 본래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질 등의 다양한 영양이 있는데도 일반인들은 거기에 양념 범벅을 하죠. 열무 그 본래의 순수한 맛을 잃게 되는 거예요. 아름다운 여인도 화장을 이상하게 해서 그 아름다움을 스스로 가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순수할수록 그 음식도 더 맛있는 거예요. 우리는 간장, 된장도 우리가 담가서 사용하는데 아주 순박하죠.”
—다른 사찰음식과 불영사 음식의 차이도 있습니까.
“있죠. 지난 6월에 봉은사에서 열렸던 사찰음식대축제에서 경연이 있었는데 우리가 대상을 받았어요. 음식이 화려하지 않으면서 순박하게 고유의 맛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평가였죠. 그렇다고 모양이 천박하지도 않고요. 우리 불영사 음식은 한마디로 순박한 음식입니다.”
—요즘 사찰전문 음식점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직접 가본 곳은 있습니까.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요즘 사찰음식은 너무 화려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불영사 음식은 1400년 동안 내려온 불영사만의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술을 마신 까닭
—사찰음식에 오신채를 못 넣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그러셨어요. 오신채를 생(날것)으로 먹으면 분노심과 진심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고 익혀서 먹으면 음심(淫心)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요. 그래서 수행자들은 화기(火氣)를 막고 음기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못 먹게 한 거죠.”
—술이나 고기는 왜 못 먹게 합니까.
“술은 정신을 잃게 하고 온갖 추한 말과 행동이 나오게 하죠. 술과 담배 이런 것은 자기 이성을 잃게 해요. 이성을 잃게 하는 것은 수행에 방해가 되니까 못하게 하는 거죠. 육식 금지는 생명을 존중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거고요. 파리나 모기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품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못 먹게 하는 거죠. 단 너무너무 아파서 고기가 아니면 그 병이 낫지 않을 때는 그것을 먹게 했죠. 약으로 먹는 거죠.”
—재가불자(在家佛子)는 개고기만 먹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뇨. 고기는 다 먹으면 안 됩니다. 금생만 살고 말 거면 오만짓 다 해도 되겠죠. 하지만 생명이라는 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잘못된 행위가 내일의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어떻게 지금 잘못된 행위를 할 수 있겠어요. 불교에서 주장하는 게 선(善)을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악을 금지하라는 거예요. 모든 악을 그치라고 하셨죠. 악을 그치고 난 후에 선을 행하라는 거예요. 사람이 선을 여러 가지 행하면 악은 한두 가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원효대사는 술도 먹고 다 하지 않았습니까.
“원효대사님은 환속(還俗)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상관이 없었겠죠. 게다가 원효대사의 경지는 술을 먹되 술이 아니었고 고기를 먹되 오히려 그 고기를 살리는 경지였다고 하잖아요.”
—불영사는 지금도 공양주보살(절에서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두지 않고 있나요?
“네, 우리 스님들이 다 하죠. 신도들은 스님들을 도와서 봉사를 하는 거고요.”
—이번 사찰음식축제 때 1만명분에 달하는 음식을 스님들이 다 준비하는 겁니까.
“그럼요. 우리 스님들이 거의 다 하죠. 그렇게 해야 하고요.”
—음식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다섯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어요. 공기, 물, 빛, 음식, 사람이 그 다섯 가지죠. 이 다섯 가지 가운데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음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몸이 아플 때 ‘뭘 먹어야 낫지?’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음식은 생명과도 직결돼 있는 거예요. 모든 음식이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의 공과 은혜가 스며 있어요.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는 마음가짐과 방법도 아주 중요하죠.”
—음식을 먹는 방법요?
“골고루 먹고 과식을 피하라는 것은 음식을 먹는 방법 중 상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우리 불영사에서는 1년 내내 아침에는 흰죽을 먹고 점심에는 밥, 저녁에는 약식이라고 해서 아주 간단하게 먹습니다. 저녁은 과일즙으로 대신하기도 하죠. 부처님께서는 아침에는 죽식, 점심은 딱딱한 음식, 저녁은 과일즙 등을 먹게 했어요. 세 끼 중 아침이 가장 중요한데 아침은 뇌가 활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가볍게 소식을 하게 했죠.”
17세에 出家
일운 스님의 이야기는 음식과 세상과 절 이야기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야기였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부처님 말씀(불법·佛法)이었다. 그는 어떻게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있었다. 이 여학생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삶일까를 고민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삶이 훌륭한 삶이라는 결론을 얻은 이 소녀는 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시절 그 소녀가 생각한 어려운 사람들이란 앞을 못 보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수학을 곧잘 했던 소녀는 방학이면 농아학교로 달려가서 농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복지사와 관련된 책들도 읽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면서 봉사활동도 했다.
하루는 복지사를 꿈꾸던 소녀를 선생님이 찾았다. 불교 신자였던 그 선생님은 평소 많은 프린트물을 나눠주곤 했다. 그날 선생님이 부른 이유는 그 프린트물을 분류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거였다. 프린트물을 보던 소녀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글귀를 만나게 된다. 그 프린트는 일체유심조에 관한 법문이었다. 인생의 주인도 우주의 주인도 마음인데 그 마음을 알지 못하면 어떤 인생도 허무하다는 설명에 충격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머릿속에 자리한 그 문구를 잡고 하루종일 고민했다. 선생님을 찾아갔다. “마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답했다. “스님이 되면 된다”고. 절 근처에 가본 적도 스님을 만나본 적도 없던 소녀는 “스님이 되려면 어느 절에 가야 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선생님은 비구니 도량인 청도 운문사를 가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사흘 동안 고민했다. 운문사로 찾아가서 스님이 돼 이 ‘마음공부’란 것을 해야 하나, 복지사가 돼야 하나?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결정을 했다. ‘먼저 나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다. 나 자신을 알고 난 후에 장애인들을 도와도 늦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소녀의 그날 등굣길은 입산(入山) 길로 바뀌었다. 물론 교복도 승복으로 바뀌었고. 그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지금의 일운 스님이다.
—출가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생전 처음 찾아가는 절이었지만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어요. 인연이었는지 기대감만 생기더군요.”
—절에서는 등굣길에 입산한 여학생을 반겨주던가요.
“스님들이 한 70여 분 계셨는데 모두 천사같이 온화한 모습이었어요. 스님께 출가하러 왔고 일체유심조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왔다고 하니까 그냥 한 번 있어보라고 하더군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출가를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까.
“단 한 번도 없어요. 단 1분 1초도 없어요.”
—보통 출가를 하고 나면 가족들이 찾아오던데요.
“부모님들이 제가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오셨죠.”
—만났습니까. 피했습니까.
“안 만난 것도 아니고, 만난 것도 아니고.”
—그건 무슨 뜻입니까.
“보통 부모님들이 찾아오면 결심이 흔들릴까 봐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들이 찾아왔을 때도 제가 행자로서 평소에 하던 일을 그대로 했습니다. 마당도 쓸고 땔감도 해오고 그랬죠.”
—부모님 얼굴을 봤다는 말씀입니까.
“봤죠. 제게 부모님은 사찰을 찾아온 방문객 또는 신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부모님들이 변해버린 제 모습에 오히려 질려버렸죠. 부모님은 당시 종교가 없었는데 제 모습을 보고 돌아가서는 ‘도대체 불교가 어떻기에 17년간 고이 키워온 딸을 저렇게 변화시킨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에 불교 공부를 하셨다고 해요. 지금은 불자로서 열심히 생활하고 계시죠.”
—세속 기준으로 보면 참 독합니다.
“세속 기준으로 보면 독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부처님 사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가족이죠. 모든 사람이 내 부모고 형제죠. 부처님께서는 ‘마음은 누구나 고하귀천(高下貴賤) 없이 평등한 성품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평등하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일 뿐이죠. 제가 부모님 안 보려고 도망갔으면 그게 더 독한 것 아닌가요(웃음).”
묘엄, 청담 부녀 이야기
일운 스님의 스승은 묘엄(妙嚴) 스님이다. 2011년에 입적한 묘엄 스님은 뛰어난 율사(律師)이자 대강백(大講白)으로 한국불교 비구니계의 큰 어른이었다. 묘엄 스님은 1959년 공주 동학사에서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학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71년 수원 봉녕사에 정착한 후 봉녕사를 비구니 승가 교육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속세에서는 조계종 2대 종정을 지낸 청담(淸潭·1902~1971) 스님의 친딸이며,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라는 사실로 더 유명했다.
청담 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회 의장,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지내면서 불교 정화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불교 대중화에 기여한 불교계의 큰 스님으로 평가받고 있다.
—묘엄 스님은 어떻게 스승으로 모시게 됐습니까.
“제가 운문사로 출가했을 때 스님이 그때 초대 강사로 계셨어요. 운문사 주지는 묘전 스님이었고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곳에 계신 많은 스님이 저를 상좌로 삼고 싶어했대요. 그때는 전기도 안 들어와서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저녁마다 스님들 아궁이에 불도 지피고 스님들 심부름을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묘엄 스님이 저를 부르더니 ‘너는 출가해도 되겠다. 삭발해 주겠다’며 저를 불러서 상좌로 삼으신 거죠.”
—어떤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상좌가 된 후 일운이라는 법명을 스님으로부터 받았어요. 스님은 훌륭한 강사가 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경(經)을 밝게 알고 후학들에게 밝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고 당부하셨죠. 훗날 스님께 전강(傳講)을 받았는데 스님께서 제게 심전(心田)이라는 호도 주셨죠.”
—묘엄 스님께서 속세의 부친인 청담 스님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나요?
“많죠. 청담 스님이 열반하기 한 달 전에 묘엄 스님이 계신 수원 봉녕사에 오셨어요. 저도 묘엄 스님을 따라서 그곳에 있었고요. 청담 스님이 국수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밀가루를 반죽해서 국수를 만들어 공양을 드렸죠. 참 맛있게 드시고 우리에게는 수행을 열심히 하고 계율을 잘 지켜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하셨어요. 속세의 따님인 묘엄 스님에게도 여러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는 제가 어려서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다녀가시고 한 달 후에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묘엄 스님도 그랬고요. 제가 청담 스님을 뵌 게 그때가 마지막이었는데 묘엄 스님도 그때가 마지막이 된 거죠.”
—묘엄 스님과 청담 스님 간에 부녀간의 애틋함 같은 속세의 인연이 느껴지던가요?
“그런 거는 아니었어요. 물론 청담 스님에 대한 속마음을 제가 잘 알 수는 없지만 저희 묘엄 스님도 굉장히 대범한 분이었거든요. 청담 스님을 당신의 스승인 성철 스님처럼 큰스님으로서 존경했던 것 같아요. 두 분을 대하는 게 똑같았거든요.”
—성철 스님도 자주 뵈었습니까.
“네, 여러 차례 뵈었죠. 성철 스님께서 아무도 안 만나겠다고 했을 때도 저희가 찾아가면 언제든지 만나주시곤 했어요. 아주 임의롭게 우리를 대하셨죠.”
한국 불교와 타이완 불교의 차이
—스님께서는 화두(話頭)를 없을 무(無) 자(字)로 삼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행자 생활을 할 때 우연히 도화집(道話集)을 봤는데 거기에 화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 가운데서 무 자를 화두로 삼았죠.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이 화두를 붙들기도 했고, 산에서 땔감을 만들 때도 풀을 뽑을 때도 채소밭에서 일할 때도 밥을 지을 때도 보리타작을 할 때도 그 화두를 들고 하니까 너무 즐거워서 힘이 열 배는 솟는 것 같았어요. 아마 스님들이 제가 힘도 세고 일도 열심히 하니까 서로 상좌로 삼으려 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행자 생활하던 시절에 지은 복이 끝까지 가는구나 싶기도 해요. 복은 지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깨달음은 얻었습니까.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 이런 얘기를 제가 감히 할 수는 없죠. 다만 부처님 법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말씀은 할 수 있겠네요. 분명히 부처님의 법은 있습니다.”
—타이완으로 유학을 다녀왔는데 한국 불교와 타이완 불교의 가장 큰 차이는 뭡니까.
“우리 불교는 선(禪)을 중시하다 보니까 율(律)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스님들 중에는 오신채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 분들도 있지만 타이완 불교에서는 스님은 물론이고 재가불자들까지도 육식을 철저히 금하면서 계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율을 더 지킬 필요가 있고 타이완 불교도 우리의 선을 더 강조했으면 합니다. 제가 유학 초기에 배가 고파서 빵집에 들어가서 빵을 달라고 하니까 주인이 ‘스님이 드실 겁니까’ 하고 묻더군요. 그렇다니까 ‘여기는 동물성 기름이 들어간 빵이라 안 된다’며 직접 식물성 기름으로 빵을 만드는 가게로 저를 안내해 주더군요. 그 정도로 엄격하게 율을 지키는 게 그곳 불교입니다.”
—최근에 불교계가 도박 문제 등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속상한 일이죠. 하지만 우주가 몸살을 앓고 나면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듯이 우리 불교도 그런 상황이라고 봐요. 그런 일들을 저지른 분들은 불교계 전체로 볼 때 한 점 점에 불과합니다. 다 지나갈 거고 조선시대 500년 동안 배불(排佛) 정책 속에서도 견뎌왔듯이 17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불교의 전통은 잘 이어질 것입니다.”
종회에 비구니 의원 늘려야
일운 스님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이다. 중앙종회를 간단히 설명하면 조계종에서 국회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종회 의원은 80명이다.
—종회 의원 중 비구(남자 승려) 스님은 70명인데 비구니 스님은 10명인 것은 양성평등 사회에서 너무 차이가 큰 것 아닙니까.
“문제가 있죠. 현재 포교, 교육 등 각종 분야에서 우리 비구니 스님들의 활동이 비구 스님들에 비해 저조한 것도 아닌데 종단이 비구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문제가 있죠. 전체 출가대중 숫자를 봐도 그렇고요.”
—조계종의 경우 비구니 스님과 비구 스님의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
“1만2000여 명의 스님들이 있는데 비구와 비구니 스님이 각각 6000여 명씩이라고 보면 됩니다. 5대 5인 셈이죠.”
—비구니 스님 비율이 그렇게 높습니까.
“과거에는 더 많았습니다. 근래에 비구니 스님이 줄면서 같은 비율이 된 거죠. 제가 종회에서 우리 비구니 의원들의 숫자를 35명쯤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가 난리가 난 적 있었죠.”
—종회에 재가불자 같은 사부대중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사부대중도 참여해야죠. 부처님께서도 스님들은 수행하는 데 전념하고 불법을 바깥에서 보호하는 것은 재가불자들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종단이 너무 비구 중심으로 치우치다 보니까 말썽도 많고 문제도 많은 거예요. 비구와 비구니의 균형이 잡히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봐요. 이제는 여성 대통령도 나온 시대잖아요?”
—불교계에서는 스님을 차세대 지도자로 꼽던데 언젠가 총무원장에 도전할 생각은 없습니까.
“전혀 없어요.”
—그럼 언젠가는 여성 총무원장이 나올 거라고 봅니까.
“그럼요. 지금의 총무원장 스님도 10년 이후가 되면 모든 것이 많이 변해 있을 거라고 말씀하세요. 불법의 본질 빼고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죠.”
일운 스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어떤 분들은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라고 하던데요.
“반박해 달라는 거죠? 몰라서 그러는 걸 어쩝니까. 점 하나 깊이의 철학과 불교의 심오한 깊이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요. 하하.”
일운 스님의 웃음소리가 그가 손님을 맞는 응향각(凝香閣)을 쩌렁 울렸다. 그건 여자의 소리도, 남자의 소리도 아니었다. 사자후(獅子吼)였다.⊙
바람은 분명 가을이었고 계절도 가을의 초입이었지만 해발 653m의 천축산에 자리 잡은 불영사 주변 곳곳에는 아직 여름의 흔적들을 애써 붙잡아두고 있는 곳이 많았다. 불영사 일주문에서 불영사 본채까지 불영계곡을 따라 10여 분 정도 걸어야 하는 숲길에는 때 이른 단풍객들이 언뜻언뜻 보였지만 아직 찾아오지 못한 단풍에 실망하는 눈빛들은 아니었다. 그만큼 계곡의 물과 바위와 그 주변의 송림(松林)들이 보기 좋았다.
본채에 도착했을 때 간밤에 울진 지방에 내린 비로 젖어 있는 땅 위에는 무수한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절 전체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었다. 10월 12일에 산사음악회와 함께 열리기 때문에 이 기사가 나가는 《월간조선》 11월호가 발행됐을 때는 과거형이 되어 있을 사찰음식축제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다. 불영사 측은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5번째인 사찰음식축제에 1만명분 이상의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회 때는 1000여 명, 3회 때는 5000여 명, 지난해에는 70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참석자들의 증가 추세를 감안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불영사의 점심 공양(供養)은 11시부터다. 정오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오후 불식(不食)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 일행이 현지에 도착한 시각은 11시20분. 우리는 공양간부터 찾았다. 오전에 울력(사찰의 승려들이 모두 함께 일을 하는 것)을 마치고 점심 공양을 한 듯 공양을 마치고 나오는 스님들의 목에는 수건이 둘러져 있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이곳에서 수행하는 비구니들은 누구든 하루 2시간의 울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종교는 다르지만 마치 기독교의 신약성경 데살로니카 후서에서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을 연상시킨다.
불영사의 주지인 심전(心田) 일운(一耘) 스님의 목에도 수건이 걸려 있었다. 일운 스님은 타이완(대만)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온 1991년부터 불영사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출가 않고 속세(俗世)에 있었으면 여장부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짐작게 하는 쾌활한 목소리의 일운 스님은 막 공양을 끝낸 후 기자 일행과 마주치자 편안하게 공양을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자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내 나이를 궁금해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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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영사는 비구니의 도량이다. 왼쪽 대웅보전은 보물 제1201호다. 오른쪽 불영지는 부처님의 모습이 비치는 연못이라고 한다. |
“우리 스님들은 항상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걸식(乞食)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날 하루만이라도 국민들에게 우리가 공양을 올리자는 뜻이 있어요. 천명이든 만명이든 만발공양을 하자는 거죠. 또 함께 사는 모든 사람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우리 사찰음식이 건강에 좋거든요. 정신적인 안정, 마음의 평화 그런 것들을 음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어요. 음식은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스님들의 수명이 일반인들보다 깁니까.
“언젠가 종교인들의 평균수명이 가장 길다는 조사결과도 나왔잖아요.”
2011년 원광대가 조사해서 발표한 직업별 평균수명에 따르면, 종교인이 82세로 가장 길었고 다음이 대학교수(79세) 등이었다.
—종교인들 가운데는 스님들의 평균연령이 가장 깁니까.
“저는 스님들의 수명이 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운 스님은 《불영이 감춘 스님의 레시피》, 《김치나무에 핀 행복》 등 사찰음식 관련 서적을 냈고, 이번 사찰음식축제에 맞춰 《사찰음식이 좋다》는 책을 냈다.
—사찰음식에는 파, 마늘, 부추, 달래 등 오신채(五辛菜)를 넣지 않는데도 점심 공양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속세에서는 아주 중요한 양념들인데 그걸 넣지 않고도 맛을 내는 비결이 있습니까.
“오신채를 넣지 않고도 맛을 내는 것은 물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토질이 작용하는 거라고 봐요. 음식은 양념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맛이 있는 게 아니에요. 열무김치를 예로 들더라도 열무에는 본래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질 등의 다양한 영양이 있는데도 일반인들은 거기에 양념 범벅을 하죠. 열무 그 본래의 순수한 맛을 잃게 되는 거예요. 아름다운 여인도 화장을 이상하게 해서 그 아름다움을 스스로 가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순수할수록 그 음식도 더 맛있는 거예요. 우리는 간장, 된장도 우리가 담가서 사용하는데 아주 순박하죠.”
—다른 사찰음식과 불영사 음식의 차이도 있습니까.
“있죠. 지난 6월에 봉은사에서 열렸던 사찰음식대축제에서 경연이 있었는데 우리가 대상을 받았어요. 음식이 화려하지 않으면서 순박하게 고유의 맛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평가였죠. 그렇다고 모양이 천박하지도 않고요. 우리 불영사 음식은 한마디로 순박한 음식입니다.”
—요즘 사찰전문 음식점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직접 가본 곳은 있습니까.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요즘 사찰음식은 너무 화려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불영사 음식은 1400년 동안 내려온 불영사만의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술을 마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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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이 있는 장독대를 둘러보는 일운 스님의 모습이다. |
“부처님께서 그러셨어요. 오신채를 생(날것)으로 먹으면 분노심과 진심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고 익혀서 먹으면 음심(淫心)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요. 그래서 수행자들은 화기(火氣)를 막고 음기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못 먹게 한 거죠.”
—술이나 고기는 왜 못 먹게 합니까.
“술은 정신을 잃게 하고 온갖 추한 말과 행동이 나오게 하죠. 술과 담배 이런 것은 자기 이성을 잃게 해요. 이성을 잃게 하는 것은 수행에 방해가 되니까 못하게 하는 거죠. 육식 금지는 생명을 존중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거고요. 파리나 모기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품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못 먹게 하는 거죠. 단 너무너무 아파서 고기가 아니면 그 병이 낫지 않을 때는 그것을 먹게 했죠. 약으로 먹는 거죠.”
—재가불자(在家佛子)는 개고기만 먹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뇨. 고기는 다 먹으면 안 됩니다. 금생만 살고 말 거면 오만짓 다 해도 되겠죠. 하지만 생명이라는 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잘못된 행위가 내일의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어떻게 지금 잘못된 행위를 할 수 있겠어요. 불교에서 주장하는 게 선(善)을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악을 금지하라는 거예요. 모든 악을 그치라고 하셨죠. 악을 그치고 난 후에 선을 행하라는 거예요. 사람이 선을 여러 가지 행하면 악은 한두 가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원효대사는 술도 먹고 다 하지 않았습니까.
“원효대사님은 환속(還俗)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상관이 없었겠죠. 게다가 원효대사의 경지는 술을 먹되 술이 아니었고 고기를 먹되 오히려 그 고기를 살리는 경지였다고 하잖아요.”
—불영사는 지금도 공양주보살(절에서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두지 않고 있나요?
“네, 우리 스님들이 다 하죠. 신도들은 스님들을 도와서 봉사를 하는 거고요.”
—이번 사찰음식축제 때 1만명분에 달하는 음식을 스님들이 다 준비하는 겁니까.
“그럼요. 우리 스님들이 거의 다 하죠. 그렇게 해야 하고요.”
—음식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다섯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어요. 공기, 물, 빛, 음식, 사람이 그 다섯 가지죠. 이 다섯 가지 가운데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음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몸이 아플 때 ‘뭘 먹어야 낫지?’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음식은 생명과도 직결돼 있는 거예요. 모든 음식이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의 공과 은혜가 스며 있어요.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는 마음가짐과 방법도 아주 중요하죠.”
—음식을 먹는 방법요?
“골고루 먹고 과식을 피하라는 것은 음식을 먹는 방법 중 상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우리 불영사에서는 1년 내내 아침에는 흰죽을 먹고 점심에는 밥, 저녁에는 약식이라고 해서 아주 간단하게 먹습니다. 저녁은 과일즙으로 대신하기도 하죠. 부처님께서는 아침에는 죽식, 점심은 딱딱한 음식, 저녁은 과일즙 등을 먹게 했어요. 세 끼 중 아침이 가장 중요한데 아침은 뇌가 활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가볍게 소식을 하게 했죠.”
17세에 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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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영사는 절에서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공양주보살이 없다는 것도 특색이다. 주지에서 행자까지 모두 공양주보살 역할을 한다. |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있었다. 이 여학생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삶일까를 고민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삶이 훌륭한 삶이라는 결론을 얻은 이 소녀는 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시절 그 소녀가 생각한 어려운 사람들이란 앞을 못 보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수학을 곧잘 했던 소녀는 방학이면 농아학교로 달려가서 농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복지사와 관련된 책들도 읽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면서 봉사활동도 했다.
하루는 복지사를 꿈꾸던 소녀를 선생님이 찾았다. 불교 신자였던 그 선생님은 평소 많은 프린트물을 나눠주곤 했다. 그날 선생님이 부른 이유는 그 프린트물을 분류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거였다. 프린트물을 보던 소녀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글귀를 만나게 된다. 그 프린트는 일체유심조에 관한 법문이었다. 인생의 주인도 우주의 주인도 마음인데 그 마음을 알지 못하면 어떤 인생도 허무하다는 설명에 충격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머릿속에 자리한 그 문구를 잡고 하루종일 고민했다. 선생님을 찾아갔다. “마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답했다. “스님이 되면 된다”고. 절 근처에 가본 적도 스님을 만나본 적도 없던 소녀는 “스님이 되려면 어느 절에 가야 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선생님은 비구니 도량인 청도 운문사를 가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사흘 동안 고민했다. 운문사로 찾아가서 스님이 돼 이 ‘마음공부’란 것을 해야 하나, 복지사가 돼야 하나?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결정을 했다. ‘먼저 나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다. 나 자신을 알고 난 후에 장애인들을 도와도 늦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소녀의 그날 등굣길은 입산(入山) 길로 바뀌었다. 물론 교복도 승복으로 바뀌었고. 그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지금의 일운 스님이다.
—출가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생전 처음 찾아가는 절이었지만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어요. 인연이었는지 기대감만 생기더군요.”
—절에서는 등굣길에 입산한 여학생을 반겨주던가요.
“스님들이 한 70여 분 계셨는데 모두 천사같이 온화한 모습이었어요. 스님께 출가하러 왔고 일체유심조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왔다고 하니까 그냥 한 번 있어보라고 하더군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출가를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까.
“단 한 번도 없어요. 단 1분 1초도 없어요.”
—보통 출가를 하고 나면 가족들이 찾아오던데요.
“부모님들이 제가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오셨죠.”
—만났습니까. 피했습니까.
“안 만난 것도 아니고, 만난 것도 아니고.”
—그건 무슨 뜻입니까.
“보통 부모님들이 찾아오면 결심이 흔들릴까 봐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들이 찾아왔을 때도 제가 행자로서 평소에 하던 일을 그대로 했습니다. 마당도 쓸고 땔감도 해오고 그랬죠.”
—부모님 얼굴을 봤다는 말씀입니까.
“봤죠. 제게 부모님은 사찰을 찾아온 방문객 또는 신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부모님들이 변해버린 제 모습에 오히려 질려버렸죠. 부모님은 당시 종교가 없었는데 제 모습을 보고 돌아가서는 ‘도대체 불교가 어떻기에 17년간 고이 키워온 딸을 저렇게 변화시킨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에 불교 공부를 하셨다고 해요. 지금은 불자로서 열심히 생활하고 계시죠.”
—세속 기준으로 보면 참 독합니다.
“세속 기준으로 보면 독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부처님 사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가족이죠. 모든 사람이 내 부모고 형제죠. 부처님께서는 ‘마음은 누구나 고하귀천(高下貴賤) 없이 평등한 성품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평등하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일 뿐이죠. 제가 부모님 안 보려고 도망갔으면 그게 더 독한 것 아닌가요(웃음).”
묘엄, 청담 부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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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영사는 문중에 상관없이 노스님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일운 스님과 함께 미소짓고 있는 노스님들. |
속세에서는 조계종 2대 종정을 지낸 청담(淸潭·1902~1971) 스님의 친딸이며,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라는 사실로 더 유명했다.
청담 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회 의장,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지내면서 불교 정화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불교 대중화에 기여한 불교계의 큰 스님으로 평가받고 있다.
—묘엄 스님은 어떻게 스승으로 모시게 됐습니까.
“제가 운문사로 출가했을 때 스님이 그때 초대 강사로 계셨어요. 운문사 주지는 묘전 스님이었고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곳에 계신 많은 스님이 저를 상좌로 삼고 싶어했대요. 그때는 전기도 안 들어와서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저녁마다 스님들 아궁이에 불도 지피고 스님들 심부름을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묘엄 스님이 저를 부르더니 ‘너는 출가해도 되겠다. 삭발해 주겠다’며 저를 불러서 상좌로 삼으신 거죠.”
—어떤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상좌가 된 후 일운이라는 법명을 스님으로부터 받았어요. 스님은 훌륭한 강사가 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경(經)을 밝게 알고 후학들에게 밝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고 당부하셨죠. 훗날 스님께 전강(傳講)을 받았는데 스님께서 제게 심전(心田)이라는 호도 주셨죠.”
—묘엄 스님께서 속세의 부친인 청담 스님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나요?
“많죠. 청담 스님이 열반하기 한 달 전에 묘엄 스님이 계신 수원 봉녕사에 오셨어요. 저도 묘엄 스님을 따라서 그곳에 있었고요. 청담 스님이 국수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밀가루를 반죽해서 국수를 만들어 공양을 드렸죠. 참 맛있게 드시고 우리에게는 수행을 열심히 하고 계율을 잘 지켜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하셨어요. 속세의 따님인 묘엄 스님에게도 여러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는 제가 어려서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다녀가시고 한 달 후에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묘엄 스님도 그랬고요. 제가 청담 스님을 뵌 게 그때가 마지막이었는데 묘엄 스님도 그때가 마지막이 된 거죠.”
—묘엄 스님과 청담 스님 간에 부녀간의 애틋함 같은 속세의 인연이 느껴지던가요?
“그런 거는 아니었어요. 물론 청담 스님에 대한 속마음을 제가 잘 알 수는 없지만 저희 묘엄 스님도 굉장히 대범한 분이었거든요. 청담 스님을 당신의 스승인 성철 스님처럼 큰스님으로서 존경했던 것 같아요. 두 분을 대하는 게 똑같았거든요.”
—성철 스님도 자주 뵈었습니까.
“네, 여러 차례 뵈었죠. 성철 스님께서 아무도 안 만나겠다고 했을 때도 저희가 찾아가면 언제든지 만나주시곤 했어요. 아주 임의롭게 우리를 대하셨죠.”
한국 불교와 타이완 불교의 차이
—스님께서는 화두(話頭)를 없을 무(無) 자(字)로 삼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행자 생활을 할 때 우연히 도화집(道話集)을 봤는데 거기에 화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 가운데서 무 자를 화두로 삼았죠.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이 화두를 붙들기도 했고, 산에서 땔감을 만들 때도 풀을 뽑을 때도 채소밭에서 일할 때도 밥을 지을 때도 보리타작을 할 때도 그 화두를 들고 하니까 너무 즐거워서 힘이 열 배는 솟는 것 같았어요. 아마 스님들이 제가 힘도 세고 일도 열심히 하니까 서로 상좌로 삼으려 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행자 생활하던 시절에 지은 복이 끝까지 가는구나 싶기도 해요. 복은 지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깨달음은 얻었습니까.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 이런 얘기를 제가 감히 할 수는 없죠. 다만 부처님 법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말씀은 할 수 있겠네요. 분명히 부처님의 법은 있습니다.”
—타이완으로 유학을 다녀왔는데 한국 불교와 타이완 불교의 가장 큰 차이는 뭡니까.
“우리 불교는 선(禪)을 중시하다 보니까 율(律)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스님들 중에는 오신채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 분들도 있지만 타이완 불교에서는 스님은 물론이고 재가불자들까지도 육식을 철저히 금하면서 계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율을 더 지킬 필요가 있고 타이완 불교도 우리의 선을 더 강조했으면 합니다. 제가 유학 초기에 배가 고파서 빵집에 들어가서 빵을 달라고 하니까 주인이 ‘스님이 드실 겁니까’ 하고 묻더군요. 그렇다니까 ‘여기는 동물성 기름이 들어간 빵이라 안 된다’며 직접 식물성 기름으로 빵을 만드는 가게로 저를 안내해 주더군요. 그 정도로 엄격하게 율을 지키는 게 그곳 불교입니다.”
—최근에 불교계가 도박 문제 등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속상한 일이죠. 하지만 우주가 몸살을 앓고 나면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듯이 우리 불교도 그런 상황이라고 봐요. 그런 일들을 저지른 분들은 불교계 전체로 볼 때 한 점 점에 불과합니다. 다 지나갈 거고 조선시대 500년 동안 배불(排佛) 정책 속에서도 견뎌왔듯이 17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불교의 전통은 잘 이어질 것입니다.”
종회에 비구니 의원 늘려야
일운 스님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이다. 중앙종회를 간단히 설명하면 조계종에서 국회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종회 의원은 80명이다.
—종회 의원 중 비구(남자 승려) 스님은 70명인데 비구니 스님은 10명인 것은 양성평등 사회에서 너무 차이가 큰 것 아닙니까.
“문제가 있죠. 현재 포교, 교육 등 각종 분야에서 우리 비구니 스님들의 활동이 비구 스님들에 비해 저조한 것도 아닌데 종단이 비구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문제가 있죠. 전체 출가대중 숫자를 봐도 그렇고요.”
—조계종의 경우 비구니 스님과 비구 스님의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
“1만2000여 명의 스님들이 있는데 비구와 비구니 스님이 각각 6000여 명씩이라고 보면 됩니다. 5대 5인 셈이죠.”
—비구니 스님 비율이 그렇게 높습니까.
“과거에는 더 많았습니다. 근래에 비구니 스님이 줄면서 같은 비율이 된 거죠. 제가 종회에서 우리 비구니 의원들의 숫자를 35명쯤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가 난리가 난 적 있었죠.”
—종회에 재가불자 같은 사부대중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사부대중도 참여해야죠. 부처님께서도 스님들은 수행하는 데 전념하고 불법을 바깥에서 보호하는 것은 재가불자들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종단이 너무 비구 중심으로 치우치다 보니까 말썽도 많고 문제도 많은 거예요. 비구와 비구니의 균형이 잡히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봐요. 이제는 여성 대통령도 나온 시대잖아요?”
—불교계에서는 스님을 차세대 지도자로 꼽던데 언젠가 총무원장에 도전할 생각은 없습니까.
“전혀 없어요.”
—그럼 언젠가는 여성 총무원장이 나올 거라고 봅니까.
“그럼요. 지금의 총무원장 스님도 10년 이후가 되면 모든 것이 많이 변해 있을 거라고 말씀하세요. 불법의 본질 빼고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죠.”
일운 스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어떤 분들은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라고 하던데요.
“반박해 달라는 거죠? 몰라서 그러는 걸 어쩝니까. 점 하나 깊이의 철학과 불교의 심오한 깊이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요. 하하.”
일운 스님의 웃음소리가 그가 손님을 맞는 응향각(凝香閣)을 쩌렁 울렸다. 그건 여자의 소리도, 남자의 소리도 아니었다. 사자후(獅子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