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센서가 사람을 감지해 수 초에서 수 분 동안 전깃불이 켜져 있다가 꺼지는 방식이었어요. 불을 켜려면 인위적으로 다시 몸을 움직여야 하지요. 전 세계가 그 이상의 기술진보를 이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있는 곳에 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가 증명한 셈이지요.”
⊙ 사람의 入室·退室·在室 시에 자동으로 전기 ON/OFF… 절전율 80%
⊙ IMF로 빚더미… 집 잃고 처가살이하다 아이디어 번뜩
⊙ 청와대와 관공서, 대학, 병원 등에 설치… 이제 해외시장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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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불, 누가 켜 놨어! 불 좀 꺼!”
집에서 엄마와 아내, 아이들에게 매일 듣는 잔소리다. 그런데도 자꾸 깜빡한다. 방이나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문을 나서는 순간 저절로 꺼지면 얼마나 좋을까.
조명 제어장치를 만드는 ㈜보탬의 김효구(金曉九·51) 대표는 이런 상상을 ‘스마트 스위치’를 개발해 현실화시킨 인물이다. 이 똑똑한 스위치는 절전율이 80%에 이른다고 한다. 구호로 절약을 외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없으면 전깃불이 저절로 꺼지니 전기료가 절감되고 전등도 그만큼 오래 쓸 수 있다.
지금까지 절전스위치는 특정 공간에서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사람의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으로 소등되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 불이 꺼져 곤란할 때가 많았다. 전깃불을 다시 켜려면 팔이나 몸동작을 크게 해야 한다. 그러나 김 대표가 고안한 절전스위치는 사람이 실내에 있는 동안엔 불이 절대 꺼지지 않는다.
기자는 똑똑한 스위치를 만든 김효구 대표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서구 탄방동의 한 교회(새비전교회)에 도착해 건물 안채로 돌아가니 작은 사무실이 나왔다.
김 대표는 특허 발명가이자 사업가, 그리고 목회자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남짓 되지만, 목사 안수는 지난 2010년 받았다고 한다. 이른바 ‘초보 양치기’인 셈이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에 거침없이 말하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눴지만 금방 시간이 흘렀다.
‘사람이 있는 곳에 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
사업도 때가 있는가 보다. 조명이나 전기업체야 부지기수지만, 보탬의 ‘절전’ 아이디어 상품은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맞춰 순풍을 탔다. 지난 2009년 무렵, 청와대에 절전스위치를 달았더니 당시 이 대통령이 화장실 안과 밖을 7차례나 오가며 손뼉을 치고 신기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미 7건의 국내 발명특허를 받았고 현재 미국과 일본·중국·유럽연합(EU) 등에 국제 발명특허를 받았거나 출원 중이다. 올해 매출액이 7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사업규모는 매년 배 이상 커지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의 말이다.
“이게 말입니다, 자동 소등(消燈)을 통한 에너지 절감은 기본이고요, 백열전구 평균 사용기간이 약 6개월~1년에서 2~3년으로 늘어나요. 또 다양한 전기 장비와 호환이 가능해 조명뿐 아니라 욕실 내 환기 팬, 냉난방, 콘센트 제어기술과도 결합할 수 있어요. 벌써 결합상품이 출시되고 있지요.
지금까지는 센서가 사람을 감지해 수 초에서 수 분 동안 전깃불이 켜져 있다가 꺼지는 방식이었어요. 불을 켜려면 인위적으로 다시 몸을 움직여야 하지요. 전 세계가 그 이상의 기술진보를 이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있는 곳에 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가 증명한 셈이지요.”
보탬의 절전스위치 기술은 단순하면서 명쾌하다. 출입구에다 입출(入出) 감지센서를 달아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를 세는 방식이다. ‘카운터 센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의 수(In Count)를 세고 자동으로 전등이 켜진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둘 문밖으로 나가면 센서(모션 감지기)가 뺄셈(Out Count)을 하는데, 그 수가 ‘0’일 때 자동 소등이 이뤄진다.
학교나 병원 같은 건물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 수 있다. 친구와 어깨동무하며 들어서면 ‘카운터 센서’가 오작동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실내에 ‘적외선 센서’인 모션감지기를 추가로 단다. 사람의 재실(在室) 여부를 재차 감지해 오작동을 최소화시키는 보조장치인 셈이다.
“오류가 1% 이내입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기술적 오류를 점검하고 계속 개선하고 있어요. 그 덕분에 청와대와 정부 주요기관, 관공서에 많이 공급됐고, 국무총리실에서 ‘에너지절약 시스템’으로 추천되는 상품이 되었지요. 물론 ‘고효율 에너지 기자재’ 인증과 ‘조달청 우수제품’에 포함되기도 했고요. 이제 단독주택은 물론 모든 건축물에 보탬의 절전스위치가 사용될 날이 멀지 않았어요.”
김 대표는 “서울대 연구진이 ‘공대(工大) 신양 학술정보관’에 우리 제품과 태양광 발전을 비교해 전력에너지 사용량을 조사한 일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에서 실험을 했어요. 한 공대 건물 화장실에 절전스위치를 설치했더니 월평균 78.3%(설치 전 전기사용량 126.72kWh→설치 후 27.46kWh)의 전기를 절감할 수 있고, 설치에 따른 손익분기점도 2년3개월이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 건물의 월평균 전기요금이 400만원을 넘었는데 절전스위치로 바꾸면서 약 93만6000원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반면,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을 경우 월평균 1만3500kWh 전력을 생산할 수 있지만 비싼 설치비용을 감안, 손익분기점이 15년이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 제품이 훨씬 이득이지요.”
서울대는 아예 보탬 제품을 2000여 개나 샀다.
“서울대에서 관심을 보이기에 찾아갔더니 우리 제품에 대한 의심을 그래도 못 버리더군요. 서울대 인문관을 비롯해 여러 곳에 달아 6개월간 모의 테스트 후에 인정을 해요. 서울대에 2000개 넘게 팔았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IMF로 망해 처가살이할 때 아이디어 떠올라
—어떻게 이 아이디어를 냈나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이렇게 말했다.
“IMF(국제통화기금) 때 사업이 망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겨 다녔어요. 빚을 못 갚으니 그들에게 끌려다니고, 구타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한번은 어머니에게 찾아가 방바닥에 칼을 꽂고 웃통을 벗어 던지며 ‘여기가 내 집’이라 우기기도 했어요. 정말 괴로웠습니다. ‘잡히면 죽는다. 안 잡히도록 도망 잘 다녀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의 서늘한 느낌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아요. 결국 야반도주로 충남 공주의 어느 폐가에 숨어 지내는데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는 바람에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처가살이를 하게 됐어요.”
김효구 대표는 젊은 시절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 보았다고 한다. 고생 끝에 큰 돈을 벌면서 대전 유성 근처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그러나 IMF 6개월 전부터 기울기 시작해 많은 은행채무와 고금리 사채를 끌어다 쓰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좁은 처가(28평형 아파트)에 두 가족이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장인·장모의 눈치도 눈치지만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 사용이 가장 껄끄러운 문제였다고 한다.
“매번 부딪히는 것이 화장실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일이었어요. 한번은 화장실 불이 켜져 있기에 한참을 밖에서 기다려도 답이 없어 노크해 보았어요. 반응이 없었어요. 아무도 없는데 불이 켜져 있었던 거예요. 문득, 사람의 유무에 따라 실내등이 저절로 점멸(點滅)하게 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로 어려운 기술이 아닌데 왜 시중에 그런 장치가 없을까 하고 말이죠.”
시장조사를 꼼꼼히 해 보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 세계의 모든 화장실은 수동으로 사람이 직접 켜고 끄는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어떤 세상입니까. 인간이 달나라에 갔다 오는 세상에 스위치는 원시(原始) 방식을 쓰고 있다니요. 만약 이것이 개발된다면 화장실 스위치의 혁명이 일어날 것 같았어요.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우개를 단 연필’처럼 대박 아이디어라 확신했지요.”
나홀로 연구는 쉽지 않았다. 사채업자를 피해 다녀야 했고, 일(화장품 유통)에 쫓겨 연구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관련 정보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2000년 여름이었는데, 어느 업체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화장실 센서를 연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코엑스에서 전시회를 한다기에 찾아갔다.
“코엑스 전시홀에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어요. 제품 설명서 한 장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도우미 아가씨가 시연(試演)을 하는데,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등이 켜지고 나오면 꺼지는 겁니다. 기가 막혔어요. 저는 풀이 죽어 대전으로 내려왔어요. 제 아이디어를 남들이 먼저 현실화시킨 겁니다.”
그는 그동안 노력해 온 연구를 모두 접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코엑스에서 봤던 그 제품이 여전히 출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알루미늄 합금을 이용해 만든 ‘온도 센서’가 자주 오류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센서가 사람의 체온을 감지해 전등을 끄고 켜는데, 사계절의 온도변화, 화장실 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 화장실 샤워 시 온도변화 등에 따른 센서 오작동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저는 다시 용기를 얻어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했어요. 그러나 온도 센서를 가지고 응용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았으나 쉽지 않았어요. 당시 경북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제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져 공동연구를 진행했어요. 1년쯤 하다 역시 실패하고 말았어요.”
콜럼버스의 ‘계란 세우기’에 버금?
1998년부터 시작한 연구는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실패를 거듭하며 관련 자료를 쓰레기통에 처넣고, 쓰던 컴퓨터까지 버린 적도 있었다. 2001년 어느 날, ‘카운팅(counting·수를 세는)’ 개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출입문 한쪽에 ‘카운터 센서’를 달아 사람이 들어오는 수대로 ‘인 카운트’를 하고, 나가면 ‘아웃 카운트’를 하며, 사람이 모두 빠져나가 ‘0’이 되면 자동으로 소등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런 생각을 정리해 서울 청계천을 찾아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만났어요. 80만원을 줬더니 1주일 만에 프로그램을 짜 왔더라고요. 그때부터 컴퓨터 기술자를 고용해 상가 한쪽을 빌려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숫자를 셀 수 있는 신소재 센서 소자도 찾아야 했다. 2003년 무렵, 완성품이 만들어졌다.
“카이스트 박사를 찾아가 시연을 했더니 무릎을 탁 치며 좋다고 난리였어요.”
대전 배재대 창업보육센터에서 가장 우수한 창업육성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참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느껴졌어요. 교수님들이 ‘콜럼버스의 계란 세우기’에 비유하기도 했거든요. 이제 세상 돈이 다 내게로 모여드는 것 같았어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여했는데 ‘예상대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큰 기업들과 미팅이 마련됐고 거래계약도 성사됐어요. 중국에서 최고의 음식도 먹어 보았고 최고의 대접도 받았습니다.”
아직 신용불량자 신분이어서 장인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4년 무렵이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팸플릿도 제작하여 어떻게 영업할 것인지를 구상하니 잠이 오질 않았어요. 회사 이름을 뭣으로 정할까 고민하다가 하늘에서 ‘보탬’이란 단어가 제게 날아와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자람을 채운다’는 뜻의 ‘보태다’의 명사형 ‘보탬’ 말이에요. 남들에게 물으니, 몇몇은 핀잔을 줘요. ‘하이테크’다 뭐다, 첨단의 상표도 많은데 보탬이 뭐냐고요. 그래서 다른 이름을 찾는데, 지인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와 ‘아직 그 이름, 안 잃어버렸지요?’ 그러는 겁니다. 안 잃어버리다니…. 그 말을 듣고 자신감이 생겼고 상표등록까지 일사천리로 해 버렸어요.”
이희범 산자부장관, 갑자기 수첩을 패대기치며…
세상일이란 쉬운 게 없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닥친다. 보통의 여느 사람들은 대개 시련 앞에 좌절하거나 타협하고 만다.
김 대표가 사업자등록을 내고 ‘전기용품 안전인증서’ 발급을 신청했더니 뜻밖에도 “자체 공장이 있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장이 없어 안전인증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벤처를 육성한다면서 공장이 있어야 한다니….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어요. 이튿날 산업기술시험원을 찾아가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당시 산업자원부 이희범(李熙範) 장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어렵게 기술을 개발해 특허권까지 받았는데 신용불량자라 돈도 못 빌리고, 공장이 없어 안전인증도 못 받아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말이죠. 얼마 뒤 장관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당장 정부과천청사로 달려갔지요. 장관 앞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했습니다. 장관이 열심히 무언가를 메모하다가 갑자기 수첩을 패대기치며 ‘(공무원을 가리키며) 이 새끼들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어요. ‘당장 현장에 나가 중소기업의 애로가 무엇인지 듣고 와 육성책을 만들라’는 불호령을 내리더라고요. 장관이 무섭데요. 이튿날, 회사 팩스로 안전인증서가 스르륵 들어와요.”
김 대표는 산자부 사무관과 함께 에너지관리공단을 방문, 그곳에서 ‘고효율에너지 기자재 인증’까지 받았다. 보통 절차가 1년이 걸리는데 단번에 받은 것이었다.
“에너지관리공단을 방문하니 임원들이 기다리더군요. 젊은 산자부 사무관 앞에서 벌벌 떨어요. 사무관이 반말 투로 ‘묻는 말에 답해. 돼, 안돼?’라고 따지더니 ‘안 되면 만들면 될 게 아니야’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완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떼돈을 벌기까지 가야 할 길이 더 남아 있었다. 시장의 반응이 싸늘했기 때문이었다. “센서가 다 그게 그거”라는 반응이었고,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꺼지는 유사품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그동안 연구한답시고 돈도 다 까먹고 더는 아내를 볼 면목도 없었어요. 사무실 임대료를 못내 파산 직전까지 갔어요. 몇몇 직원들은 아예 오후에 출근했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해야 했어요. 영업이 되질 않으니 할 일이 없었어요. 다시 정부를 찾아가 ‘이런 고효율 제품을 정부가 써 달라’고 강력히 건의했어요. 그 덕에 조달청 우수제품, 고효율 기자재 인증까지 받았지만,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알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우리가 좀 팔아 봐도 되겠습니까”
회사 시설담당자에게 제안서를 들고 찾아갈 때마다 “책상 위에 두고 가라”는 말뿐이었다. 한번은 화가 나서 “고효율 인증까지 받은 제품”이라고 했더니 직원이 시큰둥하게 ‘그런 인증을 받은 제안서가 부지기수’라며 수북이 쌓인 서류더미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의 어느 교회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보탬의 홈페이지를 본 교회 집사 한 분이 “절전스위치에 관심이 있으니 내방(來訪)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통신(지금의 KT)에 다닌 적이 있다는 그 집사에게 열심히 설명을 했어요. 한참을 듣더니 ‘어디에 설치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요. ‘여기가 처음’이라고 했어요. 기가 막혀 해요. 솔직하게 ‘저도 교회 신자인데 도와주세요’ 그랬어요. 저를 딱하게 봤던지, 집사가 조명기사를 불러 센서를 달았는데, 조명 일만 26년 했다는 기사분이 깜짝 놀라요. 화장실에 들어서면 등이 켜지고 나가면 꺼지니까요. 이런 것 처음 본다며 말이죠. 그 교회에 화장실만 40개나 됐습니다. 은행통장에 처음으로 돈이 들어오는데, 얼마나 감격했던지….”
처음 물건을 판 뒤 뜻밖에도 조명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조명기사가 회사로 돌아가 ‘신기한 제품’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조명회사 관계자 말이 ‘우리가 좀 팔아 봐도 되겠습니까?’였어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 대신 제품을 팔아 주겠다니요? 며칠 뒤 그 회사에서 ‘충남도청에 납품하게 됐다’는 겁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했어요. 도청 화장실에 설치하고 온종일 화장실 출입구에 붙어 서서 오작동 여부를 살폈어요. 그렇게 100여 개를 설치했어요.”
심심찮게 기술적 오류도 자주 발견됐다.
“예를 들어 사람이 너무 빨리 화장실에 들어가거나, 심지어 급한 사람은 뛰어들어가니, 센서를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반응하게 만들어야 했어요. 간혹 햇볕에 의해 오작동이 생겨 센스에 캡을 씌워 빛을 차단하기도 했고요.”
충남도청에 이어 국립대인 공주대에서 연락이 왔다. 영업사원이 전임 총장을 통해 제안서를 넣은 모양이었다.
“한꺼번에 740개를 구매한다는 것이었어요. 금액으로 따져도 억대입니다.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회사 신용도를 조사한다며 사람을 보내 왔어요. 제가 그때만 해도 신용불량자였잖아요. 주저하더군요. 그래서 몇몇 건물에 샘플을 달아 테스트를 한 뒤 구매명령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구매를 담당한 교직원이 ‘절전에 기여했다’고 승진까지 했다더군요.”
대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다
김 대표의 절전스위치를 처음으로 설치해 준 조명회사가 대전지역 총판권을 달라며 5000만원을 내놓았다. 한번은 롯데캐슬 아파트에 납품했더니, 한 입주자가 대박 아이템이라며 그를 찾아와 “1억원을 낼 테니 서울지역 영업권을 달라”고 한 일도 있다.
김 대표는 지난 6월 KT의 자회사인 보안서비스 전문기업 KT텔레캅과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었다. KT텔레캅 측에 국내영업을 총괄토록 한 것이다. KT텔레캅은 보탬의 제품을 ‘에너지캅’이란 이름으로 팔고 있다.
“전등, 에어컨 등 전기제품을 자동으로 제어하고 실시간으로 에너지 사용을 통합 관제하는 데 그치지 않아요. 특정 건물 내 인원을 파악할 수 있고, 차량의 교통량 파악도 가능하지요.”
보탬의 절전스위치는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관공서 20여 곳, 서울대와 공주대·공군사관학교 등 전국 40여개 대학교와 230여개 초·중·고교, 일반기업 가운데 삼성전자·LG화학, 의료기관으로는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고대 안암병원·인하대병원 등 30여개 병원, 국방부와 군기관 173개소에 이른다. 몇 년 전부터는 해외로 눈길을 돌려 미국 UC 얼바인(Irvine) 기숙사의 30개 동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실 비치(Seal Beach) 올드랜드 골프장에도 설치됐다고 한다.
—처가살이 경험이 대박을 터뜨렸네요.
“몇 년 뒤에 처가 생활을 청산하고 대전에서 좀 떨어진 외곽지역에 투룸을 임대받아 이사를 하게 됐어요. 기뻐 방바닥에 등을 비벼 보니 너무 따스한 거예요. 이 집이 내 집인가 싶었어요.”
—사채는 다 갚았나요.
“과거엔 대전 시내에 나갈 때 얼굴을 들 수 없었어요. 무시무시한 사채업자를 만날까 봐 두려웠어요. 신앙을 갖게 되면서 더이상 피하지 않게 되었어요. 아직 10원도 못 갚았는데 그 사람들을 찾을 수 없어요. 일설에 따르면, 모두 병들어 죽었다고 해요. 사람들에게 너무 악랄하게 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원금보다 이자를 더 많이 받아 갔어요.”
현재 보탬의 ‘카운터 센서’는 자동 소등을 시작으로 시스템에어컨의 자동제어시스템에도 사용되고 있다. 학교와 사무실의 절전시스템에도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카운터 센서를 이용한 소방시스템과 홈 네트워크 보안시스템까지 센서의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주택형 모델은 에너지 절감 효과와 편리성으로 전등 일괄제어나 전원 콘센트 자동차단, 가스 자동차단, 침입자 모바일 체크 기능까지 적용이 가능해요. 주택경기가 좋아지면 대단위 아파트 세대를 비롯해 독립주택, 조립식 주택에도 확대될 것으로 생각돼요. 심지어 강의실, 회의실, 병원, 제철소, 톨게이트, 터널 등에도 응용할 수 있고요.
고유가에다 에너지난이 가중될수록 보탬의 쓰임새는 더 많아지고 회사의 성장도 가파를 것으로 생각해요. 마치 이때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집에서 엄마와 아내, 아이들에게 매일 듣는 잔소리다. 그런데도 자꾸 깜빡한다. 방이나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문을 나서는 순간 저절로 꺼지면 얼마나 좋을까.
조명 제어장치를 만드는 ㈜보탬의 김효구(金曉九·51) 대표는 이런 상상을 ‘스마트 스위치’를 개발해 현실화시킨 인물이다. 이 똑똑한 스위치는 절전율이 80%에 이른다고 한다. 구호로 절약을 외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없으면 전깃불이 저절로 꺼지니 전기료가 절감되고 전등도 그만큼 오래 쓸 수 있다.
지금까지 절전스위치는 특정 공간에서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사람의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으로 소등되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 불이 꺼져 곤란할 때가 많았다. 전깃불을 다시 켜려면 팔이나 몸동작을 크게 해야 한다. 그러나 김 대표가 고안한 절전스위치는 사람이 실내에 있는 동안엔 불이 절대 꺼지지 않는다.
기자는 똑똑한 스위치를 만든 김효구 대표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서구 탄방동의 한 교회(새비전교회)에 도착해 건물 안채로 돌아가니 작은 사무실이 나왔다.
김 대표는 특허 발명가이자 사업가, 그리고 목회자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남짓 되지만, 목사 안수는 지난 2010년 받았다고 한다. 이른바 ‘초보 양치기’인 셈이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에 거침없이 말하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눴지만 금방 시간이 흘렀다.
‘사람이 있는 곳에 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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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구 대표가 생산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
이미 7건의 국내 발명특허를 받았고 현재 미국과 일본·중국·유럽연합(EU) 등에 국제 발명특허를 받았거나 출원 중이다. 올해 매출액이 7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사업규모는 매년 배 이상 커지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의 말이다.
“이게 말입니다, 자동 소등(消燈)을 통한 에너지 절감은 기본이고요, 백열전구 평균 사용기간이 약 6개월~1년에서 2~3년으로 늘어나요. 또 다양한 전기 장비와 호환이 가능해 조명뿐 아니라 욕실 내 환기 팬, 냉난방, 콘센트 제어기술과도 결합할 수 있어요. 벌써 결합상품이 출시되고 있지요.
지금까지는 센서가 사람을 감지해 수 초에서 수 분 동안 전깃불이 켜져 있다가 꺼지는 방식이었어요. 불을 켜려면 인위적으로 다시 몸을 움직여야 하지요. 전 세계가 그 이상의 기술진보를 이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있는 곳에 불이 꺼져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가 증명한 셈이지요.”
보탬의 절전스위치 기술은 단순하면서 명쾌하다. 출입구에다 입출(入出) 감지센서를 달아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를 세는 방식이다. ‘카운터 센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의 수(In Count)를 세고 자동으로 전등이 켜진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둘 문밖으로 나가면 센서(모션 감지기)가 뺄셈(Out Count)을 하는데, 그 수가 ‘0’일 때 자동 소등이 이뤄진다.
학교나 병원 같은 건물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 수 있다. 친구와 어깨동무하며 들어서면 ‘카운터 센서’가 오작동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실내에 ‘적외선 센서’인 모션감지기를 추가로 단다. 사람의 재실(在室) 여부를 재차 감지해 오작동을 최소화시키는 보조장치인 셈이다.
“오류가 1% 이내입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기술적 오류를 점검하고 계속 개선하고 있어요. 그 덕분에 청와대와 정부 주요기관, 관공서에 많이 공급됐고, 국무총리실에서 ‘에너지절약 시스템’으로 추천되는 상품이 되었지요. 물론 ‘고효율 에너지 기자재’ 인증과 ‘조달청 우수제품’에 포함되기도 했고요. 이제 단독주택은 물론 모든 건축물에 보탬의 절전스위치가 사용될 날이 멀지 않았어요.”
김 대표는 “서울대 연구진이 ‘공대(工大) 신양 학술정보관’에 우리 제품과 태양광 발전을 비교해 전력에너지 사용량을 조사한 일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에서 실험을 했어요. 한 공대 건물 화장실에 절전스위치를 설치했더니 월평균 78.3%(설치 전 전기사용량 126.72kWh→설치 후 27.46kWh)의 전기를 절감할 수 있고, 설치에 따른 손익분기점도 2년3개월이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 건물의 월평균 전기요금이 400만원을 넘었는데 절전스위치로 바꾸면서 약 93만6000원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반면,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을 경우 월평균 1만3500kWh 전력을 생산할 수 있지만 비싼 설치비용을 감안, 손익분기점이 15년이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 제품이 훨씬 이득이지요.”
서울대는 아예 보탬 제품을 2000여 개나 샀다.
“서울대에서 관심을 보이기에 찾아갔더니 우리 제품에 대한 의심을 그래도 못 버리더군요. 서울대 인문관을 비롯해 여러 곳에 달아 6개월간 모의 테스트 후에 인정을 해요. 서울대에 2000개 넘게 팔았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김효구의 어린시절
여름철을 빼고 1년 내내 목욕 한 번 못하는 가난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젖 동냥으로 근근이 명줄은 부여잡았으나 타고난 약골로 곧 죽을 운명이었다. 어느날, 온 식구가 그를 내려다보며 숨이 끊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 밖에서 울고 계셨다고 한다. “마침내 숨이 멈추기 직전, 길 가던 노인이 집에 뛰어 들어와 ‘벌(나날이)집’을 구해 달여 먹으면 살 수 있다는 거예요. 한겨울에 어디 가서 벌집을 구한단 말입니까. 어머니는 무조건 집을 나와 첩첩산중을 헤매던 중 어느 산골 흙담 틈에서 찾아내셨어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체중이 25kg으로 약골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IQ가 50이었다. 독일산 셰퍼드도 IQ가 80인데, 개만도 못하다는 놀림을 받았다. 그럴수록 그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독사 어머니’가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다시 IQ 검사를 했는데 웬일인지 80이 나왔다. 30이나 더 나와 뛸 듯이 기뻤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그를 보고 웃었다. 그러나 공부는 못해도 ‘효자 효구’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자식들에게 ‘효구만 닮아라, 효구처럼만 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착했어요. 5공화국 시절,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만든 정화추진위원회로부터 ‘효자선행상’까지 받았으니까요.”
“서울에서 잠시 일할 때였는데, 제가 합숙하던 동네가 옥수동이었어요. 서울에는 빌딩만 있는 줄 알았는데 대전보다 더 더럽고 추한 곳이었어요. 조그마한 방 한 개에 7명이 엎어져 자야 했어요. 화장실은 늘 출렁출렁, 넘치기 직전이었죠.” 제기동, 휘경동 근처의 가방공장에 취직해 원단에 단추 박는 일을 하기도 했고 LP(액화석유)가스 충전소에 취직한 일도 있었다. 만 19세에 택시운전을 시작했으며 고압가스취급 자격증을 딴 뒤 철도청 기능직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나 안정된 직장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작은 건설사에 취직해 분양 파트에서 일해 보았고 뉴질랜드산 산양(山羊)을 수입해 체인점을 열기도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제법 큰돈을 만지게 됐을 무렵, 식당을 차렸다가 IMF로 손에 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제가 만든 절전스위치도 ‘신의 작품’이라 생각해요. 2001년부터 신학교에 다니기 시작해 2005년 졸업하고 전도사로 봉사하다 5년 뒤 목사가 되었어요. 신학교 생활이 얼마나 기뻤는지 혼자서 웃고 또 웃곤 했어요.” 김 대표는 현재 대전 서구의 새비전교회 담임목사이다. 신자 수가 50명을 조금 넘는다고 한다. |
IMF로 망해 처가살이할 때 아이디어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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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김효구 대표는 고생 끝에 성공을 거두었으나 IMF로 시련을 겪었다. |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이렇게 말했다.
“IMF(국제통화기금) 때 사업이 망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겨 다녔어요. 빚을 못 갚으니 그들에게 끌려다니고, 구타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한번은 어머니에게 찾아가 방바닥에 칼을 꽂고 웃통을 벗어 던지며 ‘여기가 내 집’이라 우기기도 했어요. 정말 괴로웠습니다. ‘잡히면 죽는다. 안 잡히도록 도망 잘 다녀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의 서늘한 느낌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아요. 결국 야반도주로 충남 공주의 어느 폐가에 숨어 지내는데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는 바람에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처가살이를 하게 됐어요.”
김효구 대표는 젊은 시절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 보았다고 한다. 고생 끝에 큰 돈을 벌면서 대전 유성 근처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그러나 IMF 6개월 전부터 기울기 시작해 많은 은행채무와 고금리 사채를 끌어다 쓰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좁은 처가(28평형 아파트)에 두 가족이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장인·장모의 눈치도 눈치지만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 사용이 가장 껄끄러운 문제였다고 한다.
“매번 부딪히는 것이 화장실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일이었어요. 한번은 화장실 불이 켜져 있기에 한참을 밖에서 기다려도 답이 없어 노크해 보았어요. 반응이 없었어요. 아무도 없는데 불이 켜져 있었던 거예요. 문득, 사람의 유무에 따라 실내등이 저절로 점멸(點滅)하게 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로 어려운 기술이 아닌데 왜 시중에 그런 장치가 없을까 하고 말이죠.”
시장조사를 꼼꼼히 해 보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 세계의 모든 화장실은 수동으로 사람이 직접 켜고 끄는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어떤 세상입니까. 인간이 달나라에 갔다 오는 세상에 스위치는 원시(原始) 방식을 쓰고 있다니요. 만약 이것이 개발된다면 화장실 스위치의 혁명이 일어날 것 같았어요.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우개를 단 연필’처럼 대박 아이디어라 확신했지요.”
나홀로 연구는 쉽지 않았다. 사채업자를 피해 다녀야 했고, 일(화장품 유통)에 쫓겨 연구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관련 정보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2000년 여름이었는데, 어느 업체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화장실 센서를 연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코엑스에서 전시회를 한다기에 찾아갔다.
“코엑스 전시홀에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어요. 제품 설명서 한 장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도우미 아가씨가 시연(試演)을 하는데,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등이 켜지고 나오면 꺼지는 겁니다. 기가 막혔어요. 저는 풀이 죽어 대전으로 내려왔어요. 제 아이디어를 남들이 먼저 현실화시킨 겁니다.”
그는 그동안 노력해 온 연구를 모두 접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코엑스에서 봤던 그 제품이 여전히 출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알루미늄 합금을 이용해 만든 ‘온도 센서’가 자주 오류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센서가 사람의 체온을 감지해 전등을 끄고 켜는데, 사계절의 온도변화, 화장실 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 화장실 샤워 시 온도변화 등에 따른 센서 오작동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저는 다시 용기를 얻어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했어요. 그러나 온도 센서를 가지고 응용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았으나 쉽지 않았어요. 당시 경북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제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져 공동연구를 진행했어요. 1년쯤 하다 역시 실패하고 말았어요.”
콜럼버스의 ‘계란 세우기’에 버금?
1998년부터 시작한 연구는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실패를 거듭하며 관련 자료를 쓰레기통에 처넣고, 쓰던 컴퓨터까지 버린 적도 있었다. 2001년 어느 날, ‘카운팅(counting·수를 세는)’ 개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출입문 한쪽에 ‘카운터 센서’를 달아 사람이 들어오는 수대로 ‘인 카운트’를 하고, 나가면 ‘아웃 카운트’를 하며, 사람이 모두 빠져나가 ‘0’이 되면 자동으로 소등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런 생각을 정리해 서울 청계천을 찾아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만났어요. 80만원을 줬더니 1주일 만에 프로그램을 짜 왔더라고요. 그때부터 컴퓨터 기술자를 고용해 상가 한쪽을 빌려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숫자를 셀 수 있는 신소재 센서 소자도 찾아야 했다. 2003년 무렵, 완성품이 만들어졌다.
“카이스트 박사를 찾아가 시연을 했더니 무릎을 탁 치며 좋다고 난리였어요.”
대전 배재대 창업보육센터에서 가장 우수한 창업육성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참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느껴졌어요. 교수님들이 ‘콜럼버스의 계란 세우기’에 비유하기도 했거든요. 이제 세상 돈이 다 내게로 모여드는 것 같았어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여했는데 ‘예상대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큰 기업들과 미팅이 마련됐고 거래계약도 성사됐어요. 중국에서 최고의 음식도 먹어 보았고 최고의 대접도 받았습니다.”
아직 신용불량자 신분이어서 장인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4년 무렵이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팸플릿도 제작하여 어떻게 영업할 것인지를 구상하니 잠이 오질 않았어요. 회사 이름을 뭣으로 정할까 고민하다가 하늘에서 ‘보탬’이란 단어가 제게 날아와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자람을 채운다’는 뜻의 ‘보태다’의 명사형 ‘보탬’ 말이에요. 남들에게 물으니, 몇몇은 핀잔을 줘요. ‘하이테크’다 뭐다, 첨단의 상표도 많은데 보탬이 뭐냐고요. 그래서 다른 이름을 찾는데, 지인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와 ‘아직 그 이름, 안 잃어버렸지요?’ 그러는 겁니다. 안 잃어버리다니…. 그 말을 듣고 자신감이 생겼고 상표등록까지 일사천리로 해 버렸어요.”
이희범 산자부장관, 갑자기 수첩을 패대기치며…
세상일이란 쉬운 게 없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닥친다. 보통의 여느 사람들은 대개 시련 앞에 좌절하거나 타협하고 만다.
김 대표가 사업자등록을 내고 ‘전기용품 안전인증서’ 발급을 신청했더니 뜻밖에도 “자체 공장이 있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장이 없어 안전인증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벤처를 육성한다면서 공장이 있어야 한다니….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어요. 이튿날 산업기술시험원을 찾아가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당시 산업자원부 이희범(李熙範) 장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어렵게 기술을 개발해 특허권까지 받았는데 신용불량자라 돈도 못 빌리고, 공장이 없어 안전인증도 못 받아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말이죠. 얼마 뒤 장관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당장 정부과천청사로 달려갔지요. 장관 앞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했습니다. 장관이 열심히 무언가를 메모하다가 갑자기 수첩을 패대기치며 ‘(공무원을 가리키며) 이 새끼들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어요. ‘당장 현장에 나가 중소기업의 애로가 무엇인지 듣고 와 육성책을 만들라’는 불호령을 내리더라고요. 장관이 무섭데요. 이튿날, 회사 팩스로 안전인증서가 스르륵 들어와요.”
김 대표는 산자부 사무관과 함께 에너지관리공단을 방문, 그곳에서 ‘고효율에너지 기자재 인증’까지 받았다. 보통 절차가 1년이 걸리는데 단번에 받은 것이었다.
“에너지관리공단을 방문하니 임원들이 기다리더군요. 젊은 산자부 사무관 앞에서 벌벌 떨어요. 사무관이 반말 투로 ‘묻는 말에 답해. 돼, 안돼?’라고 따지더니 ‘안 되면 만들면 될 게 아니야’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완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떼돈을 벌기까지 가야 할 길이 더 남아 있었다. 시장의 반응이 싸늘했기 때문이었다. “센서가 다 그게 그거”라는 반응이었고,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꺼지는 유사품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그동안 연구한답시고 돈도 다 까먹고 더는 아내를 볼 면목도 없었어요. 사무실 임대료를 못내 파산 직전까지 갔어요. 몇몇 직원들은 아예 오후에 출근했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해야 했어요. 영업이 되질 않으니 할 일이 없었어요. 다시 정부를 찾아가 ‘이런 고효율 제품을 정부가 써 달라’고 강력히 건의했어요. 그 덕에 조달청 우수제품, 고효율 기자재 인증까지 받았지만,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알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우리가 좀 팔아 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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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교를 마친 김효구 대표가 전도사로서 2005년 5월 취임예배 후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대표 오른쪽이 아내 임현미씨와 어머니 임을선씨. |
그러던 어느 날, 대전의 어느 교회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보탬의 홈페이지를 본 교회 집사 한 분이 “절전스위치에 관심이 있으니 내방(來訪)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통신(지금의 KT)에 다닌 적이 있다는 그 집사에게 열심히 설명을 했어요. 한참을 듣더니 ‘어디에 설치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요. ‘여기가 처음’이라고 했어요. 기가 막혀 해요. 솔직하게 ‘저도 교회 신자인데 도와주세요’ 그랬어요. 저를 딱하게 봤던지, 집사가 조명기사를 불러 센서를 달았는데, 조명 일만 26년 했다는 기사분이 깜짝 놀라요. 화장실에 들어서면 등이 켜지고 나가면 꺼지니까요. 이런 것 처음 본다며 말이죠. 그 교회에 화장실만 40개나 됐습니다. 은행통장에 처음으로 돈이 들어오는데, 얼마나 감격했던지….”
처음 물건을 판 뒤 뜻밖에도 조명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조명기사가 회사로 돌아가 ‘신기한 제품’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조명회사 관계자 말이 ‘우리가 좀 팔아 봐도 되겠습니까?’였어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 대신 제품을 팔아 주겠다니요? 며칠 뒤 그 회사에서 ‘충남도청에 납품하게 됐다’는 겁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했어요. 도청 화장실에 설치하고 온종일 화장실 출입구에 붙어 서서 오작동 여부를 살폈어요. 그렇게 100여 개를 설치했어요.”
심심찮게 기술적 오류도 자주 발견됐다.
“예를 들어 사람이 너무 빨리 화장실에 들어가거나, 심지어 급한 사람은 뛰어들어가니, 센서를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반응하게 만들어야 했어요. 간혹 햇볕에 의해 오작동이 생겨 센스에 캡을 씌워 빛을 차단하기도 했고요.”
충남도청에 이어 국립대인 공주대에서 연락이 왔다. 영업사원이 전임 총장을 통해 제안서를 넣은 모양이었다.
“한꺼번에 740개를 구매한다는 것이었어요. 금액으로 따져도 억대입니다.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회사 신용도를 조사한다며 사람을 보내 왔어요. 제가 그때만 해도 신용불량자였잖아요. 주저하더군요. 그래서 몇몇 건물에 샘플을 달아 테스트를 한 뒤 구매명령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구매를 담당한 교직원이 ‘절전에 기여했다’고 승진까지 했다더군요.”
대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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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구 대표는 지난 6월 보안서비스 전문기업 KT텔레캅에 국내 영업을 맡기는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었다. |
김 대표는 지난 6월 KT의 자회사인 보안서비스 전문기업 KT텔레캅과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었다. KT텔레캅 측에 국내영업을 총괄토록 한 것이다. KT텔레캅은 보탬의 제품을 ‘에너지캅’이란 이름으로 팔고 있다.
“전등, 에어컨 등 전기제품을 자동으로 제어하고 실시간으로 에너지 사용을 통합 관제하는 데 그치지 않아요. 특정 건물 내 인원을 파악할 수 있고, 차량의 교통량 파악도 가능하지요.”
보탬의 절전스위치는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관공서 20여 곳, 서울대와 공주대·공군사관학교 등 전국 40여개 대학교와 230여개 초·중·고교, 일반기업 가운데 삼성전자·LG화학, 의료기관으로는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고대 안암병원·인하대병원 등 30여개 병원, 국방부와 군기관 173개소에 이른다. 몇 년 전부터는 해외로 눈길을 돌려 미국 UC 얼바인(Irvine) 기숙사의 30개 동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실 비치(Seal Beach) 올드랜드 골프장에도 설치됐다고 한다.
—처가살이 경험이 대박을 터뜨렸네요.
“몇 년 뒤에 처가 생활을 청산하고 대전에서 좀 떨어진 외곽지역에 투룸을 임대받아 이사를 하게 됐어요. 기뻐 방바닥에 등을 비벼 보니 너무 따스한 거예요. 이 집이 내 집인가 싶었어요.”
—사채는 다 갚았나요.
“과거엔 대전 시내에 나갈 때 얼굴을 들 수 없었어요. 무시무시한 사채업자를 만날까 봐 두려웠어요. 신앙을 갖게 되면서 더이상 피하지 않게 되었어요. 아직 10원도 못 갚았는데 그 사람들을 찾을 수 없어요. 일설에 따르면, 모두 병들어 죽었다고 해요. 사람들에게 너무 악랄하게 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원금보다 이자를 더 많이 받아 갔어요.”
현재 보탬의 ‘카운터 센서’는 자동 소등을 시작으로 시스템에어컨의 자동제어시스템에도 사용되고 있다. 학교와 사무실의 절전시스템에도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카운터 센서를 이용한 소방시스템과 홈 네트워크 보안시스템까지 센서의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주택형 모델은 에너지 절감 효과와 편리성으로 전등 일괄제어나 전원 콘센트 자동차단, 가스 자동차단, 침입자 모바일 체크 기능까지 적용이 가능해요. 주택경기가 좋아지면 대단위 아파트 세대를 비롯해 독립주택, 조립식 주택에도 확대될 것으로 생각돼요. 심지어 강의실, 회의실, 병원, 제철소, 톨게이트, 터널 등에도 응용할 수 있고요.
고유가에다 에너지난이 가중될수록 보탬의 쓰임새는 더 많아지고 회사의 성장도 가파를 것으로 생각해요. 마치 이때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