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한민국 대표문학상 수상 작가를 찾아서 ⑩ 이승우 : 월간조선

광화문의 오월은 연푸른 나무 기둥에 걸린 연등이 오색 꽃을 피우는 때다. 두둥실 호박처럼 매달려 괴로운 사바 세계를 밝혀준다. 그 사이를 비껴서 천천히 걸어오는 한 남자, 그는 이 세계와는 무관하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다. 그의 가슴 속에 품은 한 자루의 ‘칼’이 안전하게 그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씩 쓱쓱 삐져나오는 천진한 웃음이 보헤미안적이다.

제10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칼》은 취미로 칼을 수집하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대학생 아들은 애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명품과 고급와인으로 선물 공세를 하다 자취방 보증금까지 날려버린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쓰레기 같은 놈 죽으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는 사실상 버려진 아들로 산다. 아들은 시간과 돈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은 가치 있는 사랑이 있다 하고, 아버지는 시간과 돈을 낭비하며 얻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은 돈이라 한다.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칼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취미로 칼을 주문하는 사람들이지만, 우표나 동전, 열쇠고리 수집 등의 취미와는 달랐다. 그가 만난 한 고객은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마다 가슴 속에 칼을 품고 간다. 냉엄하고 비정한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칼이 없었으면 불안과 절망으로 벌써 죽었을 거라는 고객의 말 앞에서 아들은 동일시된다.

이 소설은 사람들은 가슴 속에 칼을 한 자루씩 품고 살고 그래야만 살 수 있다는 간접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남을 해치기 위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칼이다.

이승우 작가는 우리나라보다는 유럽 독자들에게 더 사랑을 받고 있다. 순식간에 유튜브 검색어에 오르는 싸이의 인기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인기다. 그러나 ‘내 시작은 미약하나 내 나중은 심히 창대하다’ 그는 이런 칼을 품고 살지 않을까. 풍부한 서사와 영혼에 박히는 진리적 사유는 카타르시스와 통찰을 느끼게 한다. 팍팍한 땅에서 마시는 촉촉한 오아시스의 물 한 모금, 서서히 조금씩 대지를 적셔주는 이슬비 같은 존재, 언젠가 그의 소설은 모든 사람이 품어야 할 ‘칼’이 될 것 같다. 대한민국 제2의 싸이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내 고객들은 모두 심약한 사람들이야. 누구보다 약하고 억눌린 게 많고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야. 칼을 모을 만큼 강한 것이 아니라 칼을 수집해야 할 정도로 약한 거지. 칼을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칼을 소지하는 거야…. 다마스커스의 사장이 한 말이다. 칼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칼을 가지지 않고도 잘 살지만, 칼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들은 칼이라도 지녀야 겨우 살 수 있다고, 실제로 그 사람들은 칼을 가지고도 애초에 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칼을 수집하는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말라고 한 말이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하는 척했지만 정말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라고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본문 중에서

칼은 우리 사회 소외된 사람들의 심리적 기제의 상징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칼》은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사는 부자가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아들이 결국 칼을 품고 사는 이야기입니다. 칼을 여러 상징으로 사용한 것 같은데 나타내고자 했던 칼의 상징은요.

“글쎄요,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쓴 작품이라고 읽은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구상을 할 때 부자관계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운 사람들, 권력에 대해서든 사회 구조에 대해서든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이든, 상처를 받고 있거나 소외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 내부의 심리적 기제에 대해 쓰려고 한 거예요. 칼이 그런 심리 기제의 상징으로 선택된 거지요. 품에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 이야기다 보니까 좀 섬뜩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사실은,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칼이 무서운 흉기나 남을 해치기 위한 공격용 무기가 아니잖아요. 오히려 칼이라도 품고 살아야 하는, 그래야 겨우 생존하는 사람들 이야기지요. 그걸 가지고 적극적으로 뭘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이 복잡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런 사람들, 누구보다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겨우 살기 위해서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대변하고 싶은 생각이었죠.”

—신앙적인 상징(성경)으로도 칼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종교가 내 소설 속의 상징적 의미로 칼이 되는 경우가 있죠. 그거라도 있어야 되는, 가슴 속에 품고 있어야 하는 그런 거. 내 소설의 주인공이 품고 다니는 칼이 어떤 사람에게는 성경인 경우도 있겠죠. 또는 다른 것, 미래에 대한 꿈이나 비전, 혹은 좋은 시절의 기억일 수도. 어떤 것이든 견디기 위해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그거 없으면 못 살 만큼 세상이 힘드니까요.”

—작가에게 신앙은 칼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근본적으로는 종교를 그런 동기로 가지면 안 되겠지만, 환경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종교를 요청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처음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 상태가 그랬어요. 사춘기 때인데, 세상에 대해 적대감이 많았고 불평불만으로 부글부글 끓던 시절이었어요. 가난하고 힘들고 고민은 많고 아무것도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던 시절, 기독교가 피난처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을 건너가게 한 힘이었던 것 같아요.”

—영국 런던에서 머물 때 유학생이 두고 간 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는데.

“네, 맞아요. 거기서 자기 방 벽에 큰 칼을 걸어놓고 사는 유학생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유학생이 귀국을 해야 하는데 칼을 가지고 갈 수 없으니까 자기가 아는 목사님께 맡기고 갔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유학생에게 왜 칼이 필요했을까, 자기 방에 왜 칼을 걸어놔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굴 죽이거나 해치려고 그랬겠어요, 설마? 사연은 모르지만 자기를 지키려고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소설을 구상하게 했죠.”

—무기로서의 칼은 북한의 핵무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소설 《칼》을 읽으며 북한의 어린 지도자가 떠올랐어요. 선생님이 탐구했던 인간의 자화상과 비슷하지 않나요.

“그럴 수 있겠는데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내 소설 속의 칼은 품고 있고 감춰져 있어요. 주인공은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품 속에 숨겨서 가요. 그렇게 안 하고는 아버지를 못 만나니까. 그런데 아버지에게 칼을 보이지는 않죠. 의도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칼로 아버지를 협박하거나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없으니까. 다만 아버지로부터 자기를 지키려고 할 뿐이지요. 그것으로 만족이고요. 그런데 가령, 문신을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개는 과시를 하고 남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 프로야구 중계를 보다가, 중계하는 분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선수 이름은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 선수가 데드볼을 맞고 얼굴을 다쳐서 꿰맸나 봐요. 그에게 성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더니 투수들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서 선수생활 하는 동안에는 성형을 하지 않겠다고 했대요. 김정은의 경우도 그런 것 아닐까요?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드러내고 과시하는 방식이지요. 하긴 그 역시 살기 위한 안간힘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겠네요.”

“세속적 권력과 헛된 욕망을 동시에 비판하고 싶어”

—본문에서 여자친구의 마음을 얻으려고 명품을 사주다가 신용불량자까지 되어 버리고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세상의 모든 시간과 돈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은 여자와 가치 있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런 아들의 말에 대해 현실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캐릭터는 지극히 실용적이고 세속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에요. 그렇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미숙하고 분별없는 아들의 태도에 대해서 비판하려는 의도도 있었어요. 모든 걸 바쳐서라도 얻어야 하는 가치가 있는 건 맞지만, 그 아들이 한 것은 그런 가치 있는 사랑에 대한 헌신이 아니었지요. 우리는 순간적인 욕망을 가치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욕망하는 것을 가치 있는 것인 양 잘못 생각하고, 혹은 일부러 왜곡하는 경우요. 아버지로 대표되는 세속적 권력과 아들로 표상되는 헛된 욕망에 대한 몰두, 두 가지 비판을 동시에 하고 싶었어요. 그 남자의 말은 동의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은 정당화시킬 수는 없었지요.”

—소설 속의 권위적인 아버지는 절대자의 이미지가 있어요. 인격적인 절대가 아니라 다소 율법적인 절대자 이미지요.

“제 소설에서 아버지가 중요한 테마이긴 해요. 육신의 아버지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모든 권위 있는 것들의 표상으로 많이 써요. 카프카가 그러긴 했죠. 법일 수도 있고, 국가나 제도, 초자아, 신… 우리의 삶을 억압하거나 간섭하는 대상들. 우리는 아버지들에 눌려 살지 않나요?”

—현실에서 자녀가 한 명 있죠? 그 자녀에게는 어떤 아버지인가요?

“그건 걔한테 물어봐야 하는데(웃음). 어릴 때부터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한편으로는 좀 엄격하기도 했고요. 제가 어떤 아버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 노릇에 서툴렀다는 생각도 들어요. 경험이 없었으니까. 우리는 누구나 아버지 경험, 남편 경험이 없는 채로 그 역할을 맡아서 실수를 하지요. 다시 하면 더 잘할 것 같긴 해요(웃음). 나에게는 아버지가 안 계셨거든요. 아버지에 대한 모델이 없었지만 좋은 아비가 되겠다는 열망은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를 경험하지 못하며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 노릇을 잘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미안할 때가 있죠.”

—수년 전, 대중의 감성을 자극한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라는 책은 희생적인 아버지로 독자들로부터 공감대를 불러왔는데, 그와 반대인 선생님 소설의 아버지도 공감대가 있습니다.

“차이가 있어요. 김정현씨의 《아버지》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아버지인데, 제 소설은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이 주인공이죠. 아버지를 찾거나 아버지와 다투거나 아버지와 대결하거나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아야 되는 아들의 이야기인 거죠. 아버지는 비인격체이고 아들이 인격체인 거예요. 이 시대 아버지의 아픔, 슬픔, 희생, 그런 주제는 제 소설에 없어요. 그것보다는 좀 관념적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억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아야 하는 아들 이야기니까 실제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실제 현실에서 이런 냉엄한 아버지도 있겠죠.

“그렇죠. 아주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겠죠. 하지만 요즘 아버지들, 특히 젊은 아버지들은 굉장히 자상해진 것 같아요.”

“말할 수 있으면 산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전기수 이야기》의 착상은 조선시대에 실제 있었다는 전기수(傳奇叟)에서 모티브를 얻어 21세기에 사업 목적으로 활용하는 직업인데, 현재 유사한 일이 있다고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시장성이 있다고 봅니까.

“청계천에 전기수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원래 전기수는, 제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청계천 일대 다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모인 곳에서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인데, 관광 차원에서 시행을 하는 모양이에요. 10여 년 전에 유럽에서 소설 낭독회 하는 걸 처음 봤어요. 독일의 한 극장이었는데 관객들이 티켓을 사서 들어왔어요. 전문 성우나 연극 배우 같은 사람이 나서긴 하지만, 말 그대로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어요. 그냥 책을 읽어주는 것뿐인데 그걸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신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행사가 꽤 열리더군요. EBS 라디오는 거의 하루종일 책을 읽어주고 있지요. 그런 유의 팟캐스트도 인기고. 앞으로는 라디오나 인터넷 같은 매체를 활용한 전기수들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해질 것 같아요.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제가 눈이 꽤 좋은 편인데, 언제부턴가 노안이 와서 책 보는 게 힘들더라고요. 책을 마음대로 못 읽게 되니까 불안하고, 답답하고…. 대개 노안은 50대 전후에 와요. 어떤 사람도 피하기 쉽지 않다고 해요. 옛날엔 노안이 오고 얼마 못 살다 죽었지만, 요새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노안이 오고 나서도 꽤 오래 살다 죽어요. 점점 외로운 사람들도 많아지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지게 되겠지요. 오디오북이 꽤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말씀하시니까 생각나요. 드라마 <적도의 남자〉. 거기 주인공 여자가 맹인 남자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사랑이 싹트는 장면이 나와요.

“저도 기억나는 게 있는데, 어떤 대기업 회장은, 회장이니 얼마나 바쁘겠어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 유럽이나 남미로 해외출장 갈 때, 어떤 분야의 전문가 한 사람을 모셔서 비행기 안에서 강의를 들었다고 해요. 직접 책 한 권 읽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어떤 전문 분야의 책을 쓴 사람을 옆에 앉히고 가면서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지요. 이거는 말하자면 독학 선생인데, 새로운 개념의 전기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선시대 때도 저잣거리 출입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양반집 규수들이 은밀히 집으로 전기수를 불러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하니까.”

—비행기표도 다요.

“그렇죠. 비용을 다 대고 관광도 시켜주고 그랬겠죠. 회장님이니까(웃음).”

—전화 기다려도 될 것 같은데요. 전기수 같은 기회가 올지 모르겠네요.

“글쎄, 소설에 관심 있는 회장님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 소설에서 한상철이라는 노인은 어느 권력자의 부하로서 상사의 비밀 하나를 30년째 함구하며 사는데, 실제 시대적인 배경을 모티브로 한 건가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그런 이야기가 더러 돌았지요.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는데 외국에 나가 기자회견 같은 걸 해가지고 부정비리 폭로하는 바람에 정보부에서 어떻게 처리했다더라, 하는 말들이 많았지요. 그런 것을 모티브로 삼은 거죠. 실제 사건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고요.”

—선생님 소설은 화자와 타자가 서로 다른 현실을 경험한 후 우연성에 의해 만남을 갖고 ‘말을 하는 자 말을 듣는 자’가 뒤바뀌는데, 유독 말의 힘을 사용하는 이유는요.

“자기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의 어려움, 이런 것이 제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를 드러내는가, 저는 듣는 행위 또는 책을 읽는 행위가 단순하지 않다고 봐요. 독서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에요.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쓴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은 없지요. 독서하는 도중에 자기 삶이 끼어들잖아요. 내 삶이 끼어들면서 나만의 새로운 버전의 책이 되는 거지요. 사람마다 같은 책을 보고 다른 느낌을 갖는 것은 삶의 경험이 끼어들어서 그 책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쓰는 행위, 유사 창작행위라고도 하지요.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 가만히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에 연결시켜요. 독서라는 행위 속에 쓰고 싶은,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같이 있다는 생각이 제 소설에 표현되었을 거예요.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기 말을 하지 못해서 죽는다고 생각해요. 말할 수 없거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거나. 어쨌든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말할 수 있으면 되거든요. 말할 수 있으면 살아요. 독서가 그런 힘을 준다고 생각해요.”

노벨문학상도 수많은 상 가운데 하나일 뿐

—서사적 사유, 속도감 있는 문체인데, 묘사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은 개성입니까.

“저는 어떤 상태나 현상을 드러내는 것으로는 만족을 못해요. 어떤 상태나 현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묘사에 공을 많이 들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떤 상태나 현상이 만들어진 요인이나 동기에 더 관심이 많아요. 저는 ‘왜냐하면’에 관심을 가지고 문장을 써요. 그러다 보니 묘사를 덜하게 되죠.”

—선생님 소설은 나라는 화자가 이야기를 통하여 상당한 진리를 주고 있어요. 또 1인칭 소설을 주로 쓰는데, 원래 1인칭 소설 쓰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던데.

“처음에는 1인칭 쓰기가 쉬워요. 왜냐하면 객관화의 과정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일기처럼 쓰면 되잖아요. 그런데 내 소설에 1인칭이 많나요? 방금 진리라고 말했는데, 굳이 그런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인식이나 성찰을 드러내는 것을 소설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요. 진리의 그림자 같은 것이라도 암시해야 한다, 진리에 근접할 수 있는 방향 제시 같은 것을 할 수 있으면 좋은 소설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소설을 쓰는 건 맞아요. 성취와는 별개로.”

—선생님 소설은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명문 출판사 갈리마르가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하는 폴리오 시리즈에 한국 소설로서는 최초로 실렸고, 르 클레지오가 노벨문학상 거론도 했고요.

“우리나라 문학이 워낙 해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작은 성과에도 크게 여기는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대단한 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모든 상에는 특유의 메커니즘이란 게 있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제일 잘 쓰는 작가가 상을 받는 건 아니지요. 농담처럼 그러잖아요, 노벨문학상 받으려면 일단 망명을 해야 하고 감옥에 한 번 갔다 와야 한다. 제가 《칼》로 황순원문학상 받고 인터뷰할 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르 클레지오는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나는 황순원문학상을 받았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어로 글을 쓰지 않는 한 내가 받은 황순원문학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황순원문학상은 한국어로 쓰인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니까. 작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에요.”

—노벨문학상이 그렇게 대단한 거가 아니라는 거네요.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게 아니라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지요. 노벨문학상도 수많은 상 가운데 하나의 상이라는 거죠. 상금이 좀 많은 상.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금메달 따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는 거죠.”

—현재 조선대학교 문창과에서 재직 중인데 학생들은 소설가 교수님 글을 많이 읽나요.

“내 소설 안 읽는 것 같아요(웃음). 저도 제 소설을 학생들에게 일부러 읽으라 하지는 않아요. 언젠가 어떤 학생이 ‘선생님 소설 의외로 재밌던데요’ 한 적은 있어요. 방점은 ‘의외로’에 찍어야겠지요(웃음). 주로 20대가 소설을 읽으니까 젊은 독자가 계속 창출되어야 적은 독자 수라도 유지할 수 있는데 힘들어요. 소설 습작생들이 좀 읽으려나?”

—선생님 소설은 문학 지망생에게는 필독입니다.

“필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거기에 독자가 좀 있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다음 작품은 언제쯤입니까?

“우선은 그동안 쓴 단편들을 모아 올해 말이나 내년에 낼 계획이에요. 장편은 그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작가는 인생 2막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점점 수명이 늘어나는 시대에 끝까지 소설을 쓰실 거죠.

“하하하. 예, 그래야죠.”

—현재 소설로 버는 수입이 더 많은가요, 학교에서 버는 수입이 더 많은가요.

“소설이 잘 팔리면 직장생활 안 하겠죠. 알다시피 제 소설 그렇게 잘 팔리는 것은 아니에요. 잘 팔리는 책은 출판사에서 나서서 홍보를 해요. 홍보하지 말라고 해도 팔리는 책은 하지요. 홍보를 해야 팔리는 책, 혹은 홍보 효과가 잘 나타나는 책이 있어요. 그런가 하면 홍보를 하나 안 하나 별 차이가 없는 책도 있어요. 그런 책은 굳이 돈 써가며 홍보할 필요가 없겠지요. 저도 출판사에 그래요. 제 책은 마케팅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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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문학상 수상 작가를 찾아서 ⑩ 이승우

자기중심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진리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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