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미여성리더십세미나 연 레슬리 바셋 주한 미국 부(副)대사 : 월간조선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 당선자는 선거 이튿날인 20일 현충원을 참배한 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통령 당선증을 수령했다. 첫 공식 일정은 성김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것이었다.

성김 대사는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안부와 축하 말씀을 전해 달라고 했으며, 특히 국무장관(힐러리)은 약간 편찮으시지만 그래도 선거를 굉장히 주시하고 관찰했으며 회복되는 대로 안부를 전할 것이라고 꼭 말해 달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힐러리 국무장관이 여성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미국 외교가는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해, 그리고 한국의 여성 리더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서울 정동의 미국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Habib House)에서 레슬리 바셋 부대사를 만났다.

“한국 여성 지도자들은 적극적이고 진취적”

바셋 부대사는 미국 외교관으로 콜롬비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미국 대사관에 근무했으며 필리핀, 멕시코, 보츠와나 미국대사관에서 부대사(공관차석)를 역임했다. 2012년 7월 한국에 부임해 비슷한 시기에 부임한 성김 주한 미국대사와 함께 한미외교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8~9일 한국의 여성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제7회 한미여성리더십세미나를 주최했다. 바셋 부대사는 “한국 여성 지도자들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방식과 더불어 따뜻함과 관대함도 갖고 있는 강한 여성들이었다”고 평가했다.

—한미여성리더십세미나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2006년부터 매년 여성리더십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오고 있었어요. 정치적 리더십, 커리어, 한국의 미래와 여성리더십 등을 주제로 실시되었지요. 이번 제7회 세미나의 주제는 ‘유리천장을 넘어서’였습니다. 제가 부임하고 나서 처음 참가해 본 행사였는데, 쟁쟁한 분들이 다수 참석했었습니다.”

서울 삼성동 포스코센터에서 이틀간 열렸던 한미여성리더십세미나에는 아리랑국제방송 손지애 사장, 한국피앤지 이수경 사장, 아모레퍼시픽 박수경 상무, 콘페리인터내셔널 채은주 부사장, GE코리아 정태희 전무 등 국내 각 기업의 여성 리더들이 패널리스트로 참석했으며 50여명의 기업·문화·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지도자들이 참석해 가족 친화적인 기업 만들기, 성별이 아닌 능력에 의한 승진기회 잡기 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미국은 힐러리나 콘돌리자 라이스 등 정가와 외교가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미국도 아직 여성 대통령은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힐러리 장관을 제외하면 현 오바마 정부 국가안보팀에 여성이 없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미국의 여성 리더들도 한국의 여성 리더들과 서로 배우며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여성리더십이 정착되었다고 보는지.

“한국에 여성 장관이나 총리가 나온 지는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일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킹도 약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 권익도 많이 신장됐다고 보고요.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여성리더십은 앞으로 더욱 가파른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여성에게 필요한 리더십이 따로 있습니까.

“리더란 매일매일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리더십이란 즉 ‘결정’이라고 할 수 있죠.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역할 자체는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여성 리더는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성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해 왔고, 리더가 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여성 리더가 느끼는 책임감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사람들이 여성 리더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고 봐요. 따뜻함이나 관대함, 쓸데없는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냉철한 이성 같은 것이지요. 따라서 여성 리더에게는 좀 더 새로운 개념의 리더십, 제가 ‘스마트 리더십’이라고 부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진심을 담은 ‘스마트 리더십’

레슬리 바셋 주한미국부대사가 한미여성리더십세미나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스마트 리더십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진심’과 ‘이성’ ‘정신’ ‘영혼’을 담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죠. 다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애쓰는 마음이 전달된다면 그 이상 훌륭한 리더십이 있을까요. 진심이란 구체적으로는 관계, 네트워크, 지원, 협력 등을 의미합니다. 서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특히 여성들은 소수이고 어려움을 겪는 만큼 서로간 기회를 창출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좋은 리더십의 원동력이 될 수 있어요.”

—여성 리더십만의 장점이 있다면.

“리더십을 결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여성 리더십이 남성에 비해 우월한 점이 분명 있어요. 어떤 식으로든 남성에 비해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매사를 면밀히 분석하고 기회를 기다리는 한편 기회를 잡을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여성 리더들이 수많은 어려움과 비판, 희생, 기회불균형을 겪고 극복해 왔기 때문에 리더의 자리에 올랐을 때 더 이성적이고 열정적이며, 한편으로는 겸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성적인 판단과 도덕적인 판단에 대해서도 여성만의 장점이 많이 작용합니다. 리더십의 근간은 정확한 정보와 지식인데, 이것의 바탕이 되는 면밀한 분석력에서는 여성들에게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또 결과에 상관없이 옳다고 믿는 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은 여성들이 상당히 강하다고 봐요. 이 같은 다양한 장점을 활용할 때 여성의 스마트 리더십은 미래를 이끌어 나갈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내 눈물보다 남의 눈물을 생각하라”

바셋 부대사는 미국의 여성 고위직 공무원이나 기업인들 역시 기회 부족과 가정과의 양립 등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학생인 딸이 한 명 있다.

—일을 하다 남몰래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몰래 화장실 가서 눈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요.(웃음) 사실 큰 일보다 작은 일 때문에 서운하거나 억울했던 일이 더 눈물나게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요. 하지만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르자 나의 눈물보다 내가 남에게 눈물 흘리게 한 일이 없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내 눈물보다 남의 눈물이 더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여성 리더라면 내가 힘들어서 눈물 흘리는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아랫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만들지 생각해야 합니다.”

—외교관으로 일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차별 받은 경험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도 여성이 소수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는 여성들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남성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고, 가정도 함께 꾸려 나가야 하기에 남성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그렇게 열성적으로 일해 온 여성들 덕택에 현재 상황에서 여성의 기회는 조금 더 늘어났다고 봅니다. 우리의 딸들이 컸을 때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여전히 직장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승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주변의 여성 지도자들은 모두 남성 동료보다 적게는 두 배, 많게는 5~10배 일을 더 많이 해 왔지만 남성 동료와 겨우 동등한 위치에 오르거나 뒤처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지금 리더의 자리에 오른 여성들은 모두 그런 길을 겪어 왔을 겁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보람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갈 길이 멀지만 우리 후대에 평등의 길을 열어 주는 것, 그것이 지금 여성 리더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는 미 국무부 블로그 안에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거의 매일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주로 리더십에 대한 글이다. “여성 지도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든지 남녀 리더의 차이점에 대한 것 등 여성 리더십과 관련한 글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미국 국가안보팀에 여성이 거의 없다는 점,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국가안보 분야에 여성 인재가 기여해야 하는 바에 대한 글이 국무부 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고요.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블로그는 아니지만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과 느낀 일 등을 포스팅하고 있고, 미 국무부 사람들이 이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단호함과 여성성의 균형이 중요

제7회 한미여성리더십세미나에는 국내 여성지도자 50여명이 참가했다.

—여성 지도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딜레마가 있다면.

“동서고금의 여성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여자는 착해야(nice)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자라게 됩니다. 착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늘 듣는 거죠. 그러나 리더십에서는 올바르고 신속한 결정을 위한 단호함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 점을 어려워해요. 특히 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거쳐 오면서 착한 여성이 우대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기고,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 위치에서는 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호하고 분명하게 결정해야 하고 행동도 냉정하게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능적으로 착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딪치면서 내부적으로 혼란이 생깁니다. 일부 여성 리더는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완전히 벗어버리기도 하지만, 착하다는 것은 여성으로서 갖는 리더십의 장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착하다는 장점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어요. 단호함과 착함,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이나 실패를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실패와 장애물, 어려움을 겪으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남성들도 모두 겪는 일이에요.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바로 리더십입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불평과 불만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리더십’을 설명한다면 무엇일까요.

“리더십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며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리더가 각자 다른 여정에 해당하고, 한 사람의 리더십은 발전할 수도 있고 후퇴할 수도 있어요. 자신만의 방법으로 리더십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바셋 부대사는 “세상의 모든 일하는 여성들을 존경한다”며 “특히 강인하고 열정적인 한국 여성들이 세계 여성 리더십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인터뷰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