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한민국 대표문학상 수상 작가를 찾아서 ④ 李文烈 : 월간조선

경기도 이천 장암리 부악문원은 작가들의 창작 산실이다. 그곳에 가면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다섯 달까지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며 오롯이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 젊은 시절 가난의 경험이 설립 동기이다. 부악문원에서 작가의 집필실까지 가는 언덕길에는 단풍나무가 절경이다. 개나리 같은 노란 은행잎이 얇은 이불처럼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한 번씩 불 때마다, 은행잎들은 바람개비처럼 팔랑대며 구두 위에 리본을 달아준다. 깊어가는 가을은 짧은 도취로 와서 재빨리 사라져간다.

작가의 침묵은 ‘금’(金)이 되는 세상에서 그 금기(禁忌)를 깨고 포문을 열었다가 상처받은 영혼이 있다. 총이 없으면 칼을 사용하고 칼이 없으면 맨손을 사용하듯, 그는 초고속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그런 그가 2012년 대선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진보 102인 예술인이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성명을 발표해도 침묵하고 있다. 그가 또 나서면 100대 1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 지나친 편향을 그는 몹시 우려하고 있다. 소설에만 집착하며 정치를 모른 척하고 싶어도 편중 세상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 그의 작은 신음조차 날개를 달고 파도를 탄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던 시대는 문학은 멀고 인터넷은 가까운 시대로 변한 듯하다. 소설 속 주인공의 내면처럼 약점과 결점이 있는 작가로 알았다가 병정처럼 용감한 그 말의 힘이 싫은 걸까! 옛날처럼 눈 아프게 책을 읽지 않아도 내 인생의 소통 도구로서 SNS가 있기 때문일까!

“정치 얘기 하지 않겠다” 전제로 인터뷰에 응해

‘너희가 빨리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승리는 결코 너희의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천국에 1등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새파에게 예수가 한 말이다. 그들도 나름의 지식인, 천국 구원을 위한 목표 때문에 각자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구원의 목소리가 많다. 대중은 본질을 모르고 부표처럼 떠도는 말에 쉽게 빨려들고 따라가 버린다. 이문열(李文烈) 작가는 젊은 청년들이 자신의 책을 읽어보지 않고, (사실 읽을 시간도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지만) 무턱대고 싫어하는 태도도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에게 닥친 불운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예감은 상처받은 영혼을 싸매고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리라.

이문열 작가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세상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사양했다. 그러다 대선이 임박한 시기에 인터뷰에 응했는데, 때마침 문화예술인 102인이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던 시기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하는 기대도 잠시, 정치 얘기 빼고 문학 얘기만 하자고 못을 박았다.

휴대폰 보급이 낮았던 1980년대 책을 읽으며 지적(知的) 허기를 채우고 정서를 달랜 경험이 있다면 그들에게 이문열은 그리움의 작가이다.

가슴 속에 작가를 상상해 그리고 간 것은 소설처럼 무게 있고 깐깐한 교수님 같은 형상이었다. 하지만 통통한 체구에 작은 키, 화통한 목소리… 논가에 마주앉아 뚝배기 된장찌개로 새참을 먹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순박한 모습이었다. 말을 하다 호탕하게 잘 웃고 어색함을 덜어주는 배려도 남달랐다. 그런데 누가 이런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까! 어쩌면 이런 성격 때문에 속내를 감추지 못했을 텐데….

그의 문학을 진정으로 좋아했던 독자라면 작가가 세상을 향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그 마음을 알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가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그가 왜 우파(右派)가 되어야 했는지, 글을 통하여 깨달음이 있었던 독자라면 적어도 이런 ‘의리’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아닐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어른을 위한 우화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도시에서 지방학교로 전학을 간 남학생이 그곳에서 반 친구들이 영웅처럼 대하고 있는 ‘엄석대’를 만난다. 덩치도 있고 키도 큰 그 친구의 위용 앞에서 반역은 아무도 꿈꾸지 못한다. 석대는 자기 체제를 따르지 않는 그를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핍박을 한다.

홀로 그는 서럽고 힘든 학교생활을 버텨 나간다. 그러던 중 석대가 겉만 그럴 뿐 겁이 많은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친구에 대한 묘한 의리마저 생겨난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담임으로 인해 석대의 권력도 끝이 난다. 훗날 우연히 마주친 석대는 여전히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 화자(話者)는 석대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본질적인 이해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서사(敍事)이다.

—소설의 내용은 도시에서 지방으로 전학을 간 초등학생이 선생님과 반 친구들한테 겪는 서러운 에피소드인데 단순히 왕따 이야기는 아니죠.

“이 소설은 일종의 입사의식(入社儀式)을 다룬 우의(寓意)소설이기도 합니다.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 다른 집단에 편입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죠. 거기서 일종의 기득권이라 할까, 그 새로운 집단의 권력체제와 부딪히게 되는데,

특히 그 권력이 정당성도 정통성도 없는 권력일 때 거기 편입하고 적응하는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합리적인 사회의 구성원이던 사람이 갑자기 뒤틀린 권력구조 안으로 던져질 때 겪게 되는 의식의 파행 같은 것 말입니다. 좋게 말하면 어렵게 편입되는 과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야합이나 동화가 되는 그런 입사의식…”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이 소설에 대해, 왕따 문제를 다룬 것이다,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다, 의견이 분분한데, 저는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하라고 하면 권력과 지식인의 문제를 아이들의 교실을 통해서 다루고 있는 알레고리(allegory) 소설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내가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1980년대 우리 사회를 30년 전의 초등학교 교실로 바꾸어 그려낸 어른들의 우화지요.”

—가장 알레고리적인 특징은 무엇입니까.

“우의 뒤에 숨은 원(原)관념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실은 어떤 시대의 우리 사회이고, 첫 번째 담임선생은 미국, 엄석대는 정통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 그를 둘러싼 아이들은 협력적인 지식인들, 두 번째 담임은 경직된 이념, 이렇게 맞추면 대강 우화 구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어른들을 위한 우화지요.”

—자전적인 체험이 조금이라도 있었습니까.

“자전적인 체험은 거의 없습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학급은 모든 것이 성적순으로 결정되던 꽤 합리적인 학급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는 집단에 갑자기 편입하게 된 지식인의 대응방식은 문학에서 말하는 ‘문제적’인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소설로 바꾸는 작업은 체험이 없더라도 관념만 정연하게 조직되면 추체험(追體驗)이 가능하니까요.”

—작중(作中)에서 화자는 ‘어리석은 다수, 비겁한 다수에 의해 짓밟힌 내 진실이 모진 한처럼 버텨나가게 해주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떤 힘에서 오는 저항일까요.

“사람이란 것이 어떤 경우에는 그래요. 모질게 밟히면 무력(無力)해지고 겁이 많아져서 물러 나갈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밟힐수록 더 저항하게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작품에서는 그런 심리를 나타냈던 것입니다. 모두가 엄석대를 겁내 대들지 못하고 있는데 전학 간 주인공이 겁없이 덤벼들어 더 이상한 놈으로 찍히고, 점점 따돌림만 당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기랄까. 자신의 정당한 폭로와 항변이 철저하게 봉쇄당하고 점점 더 불리한 입장으로 몰리자 오히려 치열해진 저항 심리를 그렇게 표현한 거죠.”

—20년도 훨씬 전에 발표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문제(왕따)가 심각한데요.

“그런데 이 소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 나가서도 왕따 문제를 다룬 것으로 정리가 되고 있는 게 참 묘해요. 최근에 미국의 어떤 교육 잡지와 이 작품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도 주된 질문이 왕따 문제에만 쏠려 있더군요.

그러나 저는 아이들의 왕따 문제가 아니라 지식인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겁니다. 어떤 집단에 편입할 때 그때에 생기는 소외, 따돌림 등은 단체에 처음 들어가서 벌어지는 일종의 입사의식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어느 집단에 들어갈 때 그 집단은 이미 자기 나름의 위계질서와 권력현상을 가지고 있어요. 거기 편입되는 과정에서 기존 집단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잘 받아주지 않고 소외를 시키면 이른바 왕따가 되는데, 내 작품은 왕따 현상 자체를 주제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

—입사의식의 문제는 어디서 발생한다고 봐야 하죠.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고참제(古參制) 같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석한 지 오래된 사람이 그 집단에서 더 많은 권위와 지분을 갖는 현상 말입니다. 그러나 집단 구성 원리로서의 고참제는 여러 합리성과 정당성으로 포장되어야 신참들에게 그 수용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합리성과 정당성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힘으로만 강요한다면 여러 가지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겠지요.”

“나의 약점 감추고 싶지 않다”

—결말에는 ‘엄석대’가 경찰에 쫓기다가 수갑을 차며 끝이 나는데 그의 폭력성이 끝까지 바뀌지 않았던 결말에 대해서는 나름 고민을 했겠습니다.

“현대소설의 결말은 흔히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으로 나지요. 실은 결말에 대해 조금 고심했습니다. 악당이 망한다,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다, 이런 식의 결말은 고전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에 해당돼 현대소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결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악당이 잘되는 그런 결말을 유행 따라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석대가 다시 성공하지도 완전히 수갑을 차지도 않았어요. 석대가 아주 큰 꽃다발을 보냈지만, 그게 석대가 다시 번성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잖아요?”

—이 소설 때문에 유명해진 말 중에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라는 말이 있어요. 법률용어이기도 한데 소설에서는 어떤 의도로 쓴 것인가요.

“미필적 고의라는 것은 그럴지 안 그럴지 모르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하겠다, 정도의 의식을 가지고 범죄행위로 나아갈 때 인정하게 되는 고의의 하나입니다. 온전한 고의는 아니지요. 불확실하지만 범죄적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결과를 용인하고 범죄행위로 나간 경우를 말합니다. 종종 ‘인식 있는 과실’과 나란히 비교되는 개념이지요.”

—‘이문열 소설’에서 화자는 타자(他者)를 향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온갖 복잡하고 때로는 악한 풍경도 솔직하게 내보이는데, 본인의 성격도 이처럼 감정에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사람은 자기를 잘 알기 어렵죠. 하지만 저는 최소한 내 약점이나 결점, 단점 이런 것들을 구태여 감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주 불리하고 치명적인 것이라면 감추고 싶은 유혹도 있겠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감추거나 다르게 위장하는 데 그리 능숙하지는 못합니다.”

—그 솔직성 때문에 많은 독자가 있는 것 아닐까요. 소설을 통해 드러난 작가의 솔직성과 진정성, 뭐 이런 것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유 아닙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런 점이 치명적인 공격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밀고 당기기는 어쩐지 어색”

—작품 중에 연애소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대개 화자가 상대방에게 맹목적인 부분이 많아요. 연애에서는 밀당이라는 것이 있는데 현실에서 그런 사랑을 해보신 적이 없나 봐요.

“밀당? 밀당이 뭐예요?”

—밀고 당기기요.

“하하하, 아마 그런 면이 있을 거예요. 제가 한번 반하면 앞뒤를 못 가리는 그런 맹목적인 데가 있어요. 좋으면 그냥 좋은 거지 그걸 가지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은 어째 좀… 밀당을 안해 봤으니 소설에서도 그런 부분을 만들지 못했겠지요.”

—밀당은 일종의 심리전 같은 것인데, 그런 심리전에 강한 편이 아닌가요.

“우리는 대개 사랑을 심리학의 문제나 이성(理性)의 문제로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을 설명하는데 ‘화학’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군요. 뭔가 심리적이든 육체적이든 간에 서로 잘 맞는다는 그런 화학적 반응 같은 부분이 있다는 뜻일 텐데, 그걸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을 너무 심리학이나 논리로만 해석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겁니다. 아, 이럴 때는 당겨야 하고 이럴 때는 밀어야 한다는 식의 계산은 순수한 감정에 책략이 들어가는 것 같아 별로 마음내키지 않더군요.”

《익명의 섬》

1979년 제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사람의 아들》.

—단편소설 《익명의 섬》은 여성의 성적(性的)욕구를 잘 그려냈는데, 작가가 여자의 욕구를 알지 못하면 이런 소설을 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맞나요.

“이상하게 저한테는 그런 점이 있어요. 남은 무심히 말하고 지나가는데, 저는 남의 말을 들으면 야, 저건 정말 사람의 이야기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이야기다 하며 듣고, 소설로 구상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익명의 섬》을 쓴 배경은 어느 날 시인 친구가 지나가는 얘기로 자기 고향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의 고향에는 전부 일가친척만 살았는데, 서로 너무 잘 알아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 것까지 아는 정도였다더군요.

그런 곳에서 그 친구가 어렸을 때 이상한 경험을 했다는 거예요. 장마철에 마을의 과수원 옆 창고에 서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캄캄한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나오더라는 거예요. 여자는 똑똑하고 얌전한 친척 아주머니였고 남자는 반편이 같아 일도 제대로 못하고 마을 사람들한테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라 그때는 무심히 보아 넘겼다고 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떠올릴수록 그 상황을 잘 이해 못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아 맞아 그건 익명성이 관련된 얘기라고 생각했죠.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친척끼리니까 상피(相避)관계고, 그 깨철이란 떠돌이 반편은 그 마을의 이름 모를 섬 같은 어떤 존재라 소통이 가능했던 에로티시즘이라고.

꼭 체험을 했다 해서 절실하게 쓰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어떤 상황이 나에게 절실한 느낌을 준다면 남의 이야기라도 아주 절실한 느낌의 소설이 나올 수가 있는 거죠.”

—《사람의 아들》은 방대한 종교적 서사가 배경인데 소설을 쓰기 위해 성경(聖經)을 읽지 않으면 안 됐겠던데요.

“네. 읽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성경을 열 번 정도 읽으려고 했는데 그만큼은 못 읽었고 대여섯 번 정도는 될 겁니다. 처음에는 신·구약(新·舊約)을 정독하는 데 두 달 정도 걸렸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일주일이면 1독을 할 수가 있더군요.”

—그렇다고 종교가 기독교는 아닌 거죠.

“네, 아닙니다. 저는 제사를 지내고 있기 때문에 유교라고 해야겠지요.”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한 걱정 앞서

—현대문학상 수상작 《시인과 도둑》은 문학을 통한 사회변혁 문제를 역사소설로 다룬 것인데, 요즘 세대들은 SNS에 빠져 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다고 해야 하나,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 부분이 제가 요즘 시간을 가장 많이 내서 하는 생각입니다만. 인터넷으로 하는 소통방식이 이 시대의 대세가 되었고, 앞으로 그 위력은 더욱 커질 것이며, 보다 효과적이고 힘있는 소통 방식이 나올 때까지는 오래 인간의 소통망을 장악하고 있을 거예요.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소통의 구조를 발신, 수신, 답신으로 단순화시키고, 그것들을 여러 갈래로 병렬시켜 사회 소통망으로 확대시키는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소통망은 발신과 수신 사이, 그리고 수신과 답신 사이의 거리가 너무 짧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전의 매체와 달리 즉답과 속결을 요구하는 구조여서 빠른 속도가 답신을 수신한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메아리나 확성기로 만들기 쉽다는 겁니다.

보내온 정보에 대해 검증이나 숙고할 틈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발신하면 이것은 엄밀히 말해 발신이 아니라 메아리가 될 뿐이고, 경박한 동의로 여러 곳에 재발신하면 확성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통망에 갇힌 사람들은 속도와 효율성에만 취해 자신이 어떤 의도 있는 소수(少數)의 메아리나 확성기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지금의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해서 걱정한다면 그런 부분이 제일 앞서겠지요.”

—어떤 의도 있는 소수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 시대의 광장 상주자(常住者)들을 말합니다. 초기 민주주의 시절 광장은 모든 시민이 참가하는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여러 가지 직능이 생겨나 모든 결정에 모든 사람이 참가할 수 없게 되었지요. 오히려 직업과 관리해야 할 재산을 가진 시민일수록 광장에 머물 여유가 없고 반대로 광장 안에서만 할 일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만이 모여 다수를 횡령하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광장에 상주하고 있는 자들 가운데 몇몇이 선동과 거짓 정보로 광장에 나온 사람들을 속여 여론을 조작하고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다수의 결정인 것처럼 왜곡시킵니다. 뒷날 간접민주주의를 이끌어낸 광장 상주자들이지요.

지금 인터넷은 근대의 제도와 직능으로 조직되어 필요할 때만 열리던 직접민주주의 광장을 우리 모두 앞에 되살려 놓은 것이 됩니다. 하루종일 광장에 앉아 있는 사람은 진실이나 정의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 따라 소리를 내기 마련이지요.

거기다가 이 새로운 광장이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 광장이 목소리만의 광장이라 다수와 반복이 구별되지 않는 것입니다. 백 사람 중에 90명이 말하는 것하고 백 사람 중에 10명이 아홉 번 말하는 것이 구별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고함을 여기저기서 되풀이하는 10명이 마치 백 명 중에 90명인 양 대중을 선동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현대의 광장상주자들이고, 다수를 횡령하는 ‘의도있는 소수’지요.”

—지금 시대적 대세처럼 돼 버린 SNS나 트위터를 전혀 안 하세요.

“네. 계정은 있는데 전혀 안 합니다. 내 기질에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때 너무 혹독하게 당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인터넷 선동에서 비롯된 책 ‘장례식’

2001년 11월 부악문원 앞에서 반(反)이문열모임 회원들이 책 장례식을 벌인 일은 이문열 작가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때 혹독하게 당하다니요.

“12년 전, 책 장례식과 책 상징 화형식을 당한 일 말이지요. 그 발단이 바로 당시 한창 자리 잡아가던 인터넷광장이었죠. 그때 내가 신문에 쓴 칼럼에 반대하는 독자들이 내 사이트로 몰려와 공격한 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독자가 보낸 메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내 책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함께 나의 칼럼에 대한 실망을 내비치면서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돌려보내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직 인터넷의 속성을 잘 모르던 나는 그럼 책값에 은행이자를 붙여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인터넷 통신이 무시무시한 요술을 부리더군요. 분명히 개인을 지목하며 그런 답신을 보냈는데도, 어느 악의에 찬 네티즌 하나가 ‘이문열이 오만하게 독자들에게 책값을 물어줄 테니 얼마든지 책을 반환하라고 하더라’고 선동하자, 거기 넘어간 네티즌들이 내 개인 컴퓨터가 다운될 정도로 몰려들어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때 이미 내 소설 판매고가 2000만 가까울 때라 내가 책값을 물어주려고 해도 도저히 불가능할 때였습니다. 거기다가 더 기막힌 것은 그 소통망은 정정(訂正)이나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선동은 결국 책 장례식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뒤 12년에 걸친 내 해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가 오만하게 모든 독자에게 책을 반환하면 그 책값을 물어주겠다고 외친 것으로 통하고 있지요.”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상처가 컸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일생에 받은 상처 중에 가장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문학까지 깊이 상처를 입었지요. 앞으로도 오래 못 잊을 겁니다.”

—《금시조》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서화를 불에 태우는 장면이 나오죠. 그런데 실제 자신의 책이 불에 타는 경험을 했다는 건 아이러니네요. 그런 경험은 문학 여정에 있어 최고조의 충격이고 상처였을텐데 그때의 심경은 어땠습니까.

“작가들은 흔히 자신의 책을 ‘정신의 자식’으로 비유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식보다 더한 사랑과 연민의 대상이지요. 나는 그 일이 있고 십 년 가까이 자다가도 그 일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앉을 만큼 깊은 내상을 입었습니다. 근년 들어서는 모든 걸 잊고 새로 시작해 보려고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지만, 아직 모든 것이 평온해지려면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뻔한 조작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2003년 12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선 이문열 작가(맨 오른쪽).

—현재 문인들은 진보 쪽에만 몰려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얼마 전 황석영 작가도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에 가담했더군요.

“그들의 선택이겠지요. 다만 내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을 때 나를 정치적이라고 비판하고 공격했던 지난 날의 기억들을 네티즌 스스로 한번쯤 떠올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인 중에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우선적으로 인정하는 분이 틀림없이 있을텐데 그들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느낌 말이죠.

“그런 동료 문인들이 어딘가 있기야 하겠지만 스스로 밝히고 나선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믿음을 드러내는 순간 이 땅에서 문인 노릇은 끝장나고 말 테니까. 실로 끔찍한 세상입니다. 그래도 정치적 지지율은 아직 보수 우파 쪽에 절반 가까이 손을 들어주고 있는데, 문단에서는 그런 성향의 작가가 10퍼센트도 안되는 게 참으로 기이하지 않습니까.”

—현재까진 조용한데, 혹시 대선 앞두고 정치 참여나 정치 개입의 유혹을 받은 적은 있나요. 문인들의 편향된 목소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생각은 없나요.

“그런 유혹이야 왜 없겠습니까만, 어째 나설 의욕이 없네요. 아직까지는 그저 구경이나 할 작정입니다. 노회한 정치 컨설턴트들이 1년 전부터 추진한 단일화 기획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듯한데, 그 결과가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벌써 두 번째나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그 뻔한 조작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걸 두고 이제 와서 야합이니 협잡이니 하며 노발대발하는 여당은 또 얼마나 엉뚱한 일을 맞불이랍시고 놓을지.”

—8·15 광복절을 앞 두고 지난 8월 10일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독도에 동행했잖아요. 이 대통령과 무척 친한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친한가요.

“글쎄요. 그런 걸 친하다고 해야 할지. 특히 이번 독도 동행은 그 무렵 조금 바쁜 일이 있어 난감했지요. 그러나 아무리 인기없는 말년 대통령이라지만 나까지 그 때문에 몸을 사리는 것처럼 보이기는 싫었습니다. 독도도 한번 가보고 싶던 곳이었고. 전에 두어 번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날씨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해 미뤄졌었거든요.”

—정치적인 발언 때문에 정치인이 되려고 저러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많이 받은 줄 압니다.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 거의 밝혀진 셈이지만, 그래도 그런 의심을 했던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나는 9년 전에 한시적 임시위원회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회의 15명 위원 중 한 명으로 75일에 50번 정도 여의도로 나갔는데, 이 나라의 어떤 정치가보다 유명한 정치가로 알려졌습니다.

이 시대의 악성 광장상주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퍼뜨린 것이지만, 이제는 고치기 어려운 내 이미지가 되었지요. 그저 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이미 정치가가 되었는데요, 뭘.

그러나 아직도 의심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 한 말씀만 드리지요. 이번 생(生)에는 정치가가 되기에 이미 늦어버린 것 같습니다.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정치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요.”

《리투아니아 여인》 수상은 민망

최근 이문열 작가에게 제15회 ‘동리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이곳 ‘부악문원’은 작가들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무료로 숙식제공을 하고 있는데, 어떤 취지에서 설립했습니까.

“원래는 글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문단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곳으로 만들었는데, 그 부악문원은 2003년 5기로 문을 닫았습니다. 그 뒤 몇 년 내 부침에 따라 숙생(부악문원 시절 정규 커리큘럼을 이수하던 원생들)은 없고 객원만 있는 채로 유지되다가 재작년부터는 ‘창작 레지던스’로 전환되었습니다. 곧 등단할 작가들이 몇 달씩 묵으면서 작품 쓰는 집으로 쓰고 있는데, 지금 그 부분은 정부 보조로 독립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최근 장편 《리투아니아 여인》으로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던데요. 그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요.

“노마드 시대의 예술가를 그려본 소품입니다. 예전에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음악가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국제화된 예술무대를 오가는 유목민적 창작활동의 애환을 소설로 엮어본 것이죠. 처음 수상 결정 통고를 받고 적이 민망하였습니다. 동리문학상이 지금까지는 주로 젊은 작가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다, 수상작도 내가 문학적 야망을 건 역작(力作)이 아니란 점이 마음에 걸렸던거지요.”

—이 문학상이 그동안 침체된 문학 활동에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하게도 한쪽으로 쏠린 우리 평단은 오랫동안 침묵의 카르텔로 내 문학을 대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부족한 내 작품을 유의해서 보고, 격려해 줄 선의를 가진 이들이 문단의 일각에 남아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작가로서 제대로 된 마감을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