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沂楨
⊙ 66세. 연세대 철학과 졸업.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연합회장 역임.
現 한국골프장경영협회·대구컨트리클럽·중국 다롄컨트리클럽·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회장.
⊙ 66세. 연세대 철학과 졸업.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연합회장 역임.
現 한국골프장경영협회·대구컨트리클럽·중국 다롄컨트리클럽·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회장.
“우리나라 골프 인구가 400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 정도면 이제 골프를 스포츠라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스포츠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전(全)세계 유례가 없습니다. 국내 회원제골프장이 유일하죠.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까지 채택된 마당에 말입니다.”
우기정(禹沂楨)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회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았지만 단호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그동안 골프장경영협회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개별소비세(과거 특별소비세) 면제가 논의 중이어서 들떠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뜻밖이었다.
카지노는 세금 5천원, 골프장은 2만원
정부는 지난 9월에 내수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그동안 회원제골프장에 부과해 온 개별소비세를 한시적으로 없애는 세법(稅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골퍼들이 내는 그린피에는 개별소비세 2만1120원이 포함돼 있다. 이를 잠시 풀어 주자는 것이 정부의 생각인데, 정치권은 ‘부자들을 위한 감세(減稅)’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일을 오랫동안 주도해 온 한국골프장경영협회의 우기정 회장은 단호했다.
“개별소비세는 사치성 업종에 부과하는 징벌적 세금입니다. 1976년에 골프를 사치 업종으로 판단해서 부과했는데 52년째 똑같이 매기고 있습니다. 카지노 들어갈 때 세금 5000원 내는데, 골프장 갈 때 2만원 넘게 내는 것이 말이 됩니까. 더구나 스키장에 대해서는 1999년, 또 대중제골프장(퍼블릭골프장)에 대해서는 2000년에 이 세금을 폐지했습니다. 회원제는 부과하고 퍼블릭은 부과하지 않는 것은 조세형평 차원에서도 맞지 않습니다.”
―회원제골프장과 퍼블릭골프장의 상황이 달라서 아닙니까.
“한국리서치에서 2011년에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일반 골프소비자들이 회원제와 대중제를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회원제라서 가고, 대중제라 안 가는 것이 아니라 골프장의 접근성이나 골프코스,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회원제골프장에만 세금을 매겨 왔죠. 더구나 개별소비세를 면제하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세금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국가경제에 도움이 됩니까.
“세수(稅收)감소는 2700억원 정도입니다. 하지만 골프장의 내장객이 늘어서 전국 골프장 매출이 늘어날 겁니다. 골프장 내장객이 늘어나는 것은 2008년에 조세특례제한법이 시행됐을 때를 기준으로 산정했습니다. 이 법에 따라 지방에 있는 회원제골프장의 그린피가 3만1000원 정도 떨어졌을 때 골퍼들이 수도권 대신에 지방으로 향했습니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 볼 때 개별소비세 면제로 전국 골프장 매출이 3800억원 정도 늘 것으로 보입니다. 골프장에 신규 일자리가 생기고, 골프장 인근 식당, 지역 주유소, 콘도미니엄 등 매출이 늘겠죠. 해외 골프를 떠나는 사람들이 국내 골프장을 이용하고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골프 관광객까지 합하면 약 1조5000억원의 기대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세금면제로 인해 4배가 넘는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죠.”
―그린피 2만원 면제해 준다고 해외로 떠나는 골퍼들이 국내로 유턴할까요.
“조세특례제한법이 시행된 이듬해인 2009년에 국내 여행사의 전체 해외골프상품 매출이 전년보다 63% 떨어졌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국내를 찾은 외국 골퍼는 3만5000명에서 5만2000명으로 1년 만에 늘었다고 해요. 세금을 줄여 그린피만 싸진다면 골퍼들이 굳이 해외로 떠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세금면제라는 1차 혜택을 골퍼들이 받으니 부자감세 얘기가 나올 법하지 않습니까.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했는데 회원제골프장 이용자의 70~80%가 회원권이 없는 중산층이랍니다. ‘골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항목에서는 ‘사치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답한 이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대부분이 비용부담을 느껴서 골프를 못 친다고 했습니다. 스크린골프장이 늘면서 월소득이 적은 계층으로까지 골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잠재적 골퍼들인데 이런 사람들까지 싸잡아 부자라고 하고, 부자를 위한 세금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죠.”
남서울CC, 그린피 27만원 중 세금이 11만원
우기정 회장은 손에 여러 장의 데이터 수치를 들고 있었다. 사전에 질문지를 건넨 것도 아닌데, 질문을 할 때마다 리서치 회사의 조사, 언론보도 등을 일일이 보여주며 즉각 답변했다. 그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개별소비세를 면제한다 쳐도, 주말 골프장 그린피가 20만원이 넘으면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지방의 그린피는 평균 9만~12만원인데 서울 부근은 여전하죠. 남서울CC가 일요일에 27만원을 받는다기에 당장 전화했습니다. ‘너그들 아직도 그래 받나. 미친 거 아이가’ 했는데 골프장에서 볼멘 소리를 합니다. 그린피 중에서 개별소비세(2만1200원) 외에 재산세가 9만원이고, 이리저리 떼면 어쩔 수가 없다는 겁니다. 골프에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붙습니다. 어떤 산업보다 무거운 중과세를 하고, 재산세는 일반기업의 16배예요.”
―그린피도 그렇지만 카트비 내고, 캐디피까지 내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부담이 큰데요.
“그렇잖아도 캐디 선택제를 실시하라고 골프장 대표들에게 말했습니다. 돈 내고 골프 치는 사람 입장에서야 카트비며 캐디피가 얼마나 아깝습니까. 그 부분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사실 예전처럼 캐디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철저하게 친환경적으로 골프장을 운영하고 골퍼들의 입장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이 경영자들의 몫이죠.”
―골프장들이 스스로 운동의 저변확대를 위해 세금과 별도로 그린피를 조금씩 내릴 수는 없을까요.
“골프장도 다른 사업체처럼 수입과 운영경비를 계산해서 그린피를 책정합니다. 생각처럼 떼돈을 버는 업종이라면 오늘날 왜 저렇게 많은 골프장이 경영난에 시달리겠습니까. 회원제골프장의 80% 이상이 적자입니다. 법정관리 신청한 곳이 15곳, 골프장 공사를 중단한 곳이 60여 군데예요. 골프장이 망하면 좋을까요. 일자리가 줄고 지역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고 연관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갈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상황, 골프장 개수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그린피는 10만~12만원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세금만 줄여 주면 가능합니다. 골프장에 부과하는 재산세를 절반 줄이면 국가경제가 활성화할 겁니다. 정부에서 세금을 줄여 주면 업장들은 당장 오늘부터라도 그 세금만큼 그린피를 내릴 겁니다.”
국내 골프산업 규모 33조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부자감세 논란에 휘말릴 텐데요.
“하나의 발전과정이자 역사라고 봅니다. 지금도 한 2시간만 움직이면 저렴하게 골프 칠 수 있는 골프장이 많습니다. 골프장끼리 경쟁적으로 그린피를 내려서 골퍼들의 선택권이 늘었죠. 우리나라 골프 선수들이 벌어들인 외화가 2011년에 445억원입니다.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할 때 경제효과가 연간 5000억원이에요. 체육과학연구원에 따르면 양용은(梁容銀) 선수가 2009년 미국프로골프협회(USPGA)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역전승을 거둔 우승효과가 1조원이라고 합니다. 주니어 선수만 5000명이 넘는데 이제는 골프를 산업으로 봐야죠.”
―어떻게 말입니까.
“골프클럽 세트를 100만원으로 치고 골퍼 400만명으로 계산하면 연간 4조원이죠. 골프공, 골프신발, 골프의류를 포함해 국내 골프산업 규모가 33조원입니다. 2011년 국민총생산의 2.7%예요. 여기에 희소식은 여전히 골프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산업이라는 점입니다. 미국 골프채의 상당수가 국산 부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받고 있습니다. 훌륭한 골프선수가 있고, 골프인구가 충분한데 제대로 된 국산 브랜드 골프 클럽 하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품을 생산할 여력이 없거나 기술력이 모자라서겠습니까? 정부가 골프산업을 제대로 인식하고 지원을 해 준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중국도 골프장 영업세 50% 내려
우기정 회장은 골프장 대표들의 모임인 골프장경영협회장이기에 앞서 소위 골프에 대해 한마디 할 법한 위치다. 우선 48년째 골프를 치고 있는 골퍼이고, 부친인 우제봉(禹濟鳳) 대구CC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2대(代)째 대구컨트리클럽을 경영하는 오너다. 베스트 스코어는 언더파 66타, 홀인원은 2번 했다. 골프가 그의 삶 전부다. 스스로 ‘골생골사(Golf生Golf死)’라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그에게 세금 이외에 골프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을 물었다.
―말씀을 들어 보면, 우리나라에 골프장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전국 500개의 골프장 중에서 80군데가 주인이 없어서 왔다 갔다 합니다. 80개 중 절반은 시행사들이 뛰어들었다가 어려워진 케이스입니다. 시행업자 중에서 골프장 경영에 성공한 사람은 몇 안되거든요. 재벌그룹이 몇몇 골프장을 직접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골프장은 지형에 따라 다른데 18홀을 짓는데 200억~700억원 정도가 듭니다. 재벌그룹들이 시행사에서 수주를 받아 골프장 공사를 했는데 공사 대금을 못 받은 겁니다. 골프장을 살 사람은 없고, 그러다 보니 재벌이 직접 운영에 나선 케이스가 있죠. 외부에서는 재벌이 골프장까지 한다고 떠들어대는데 선후(先後)가 다른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향후 골프의 성장가치 등을 감안할 때 500개가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 얼마 전 개천절에 국회의원이 골프를 치는데 기자가 취재를 가고, 또 기자가 취재 왔다고 골프 치던 의원들이 운동을 중단했다고 합디다. 그 얘기 들으면서 씁쓸하데요. 골프가, 치다가 들켰다고 중단할 정도로 이상한 스포츠입니까. 어떤 공기업 사장은 ‘골프 금지령’을 내리면서 뿌듯해합니다. 테니스 치러 가면 괜찮고 골프장 가면 안되는 겁니까. 도대체 왜 이럴까 고민해 봤습니다. ‘골프=호화사치’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더라고요. 골프 치면 사치하는 것으로 오해받으니까 아예 하지 말라는 것, 또 골프를 치면 접대 받는다는 오해를 받을 테니 원천봉쇄 차원에서 하지 말라는 얘기 같습니다.
골프는 오는 2016년 올림픽에서 정식으로 채택한 스포츠입니다. 중국은 국가 전략 스포츠로 육성하려고 하고, 골프장 영업세를 50% 인하했습니다. 일본은 지방세인 토지이용세마저 폐지할 조짐인데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골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논의를 회의실에서 하면 됐지, 굳이 골프장에 가서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의 이슈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건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제일 큰 골프토너먼트를 메모리얼데이에 합니다.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 덕분에 내가 골프를 칠 수 있다고 고맙게 생각하고, 경기를 한 이후에 자기들끼리 기부를 합니다. 50달러, 100달러씩 모아서 유족들에게 전달하고, 메모리얼 기념사업에 기부하죠. 우리 식으로 하면 현충일에 무슨 골프냐고 하겠지만 생각의 차이입니다. 선순환할 수 있는 쪽으로 사고해야죠.”
골프장 회원권 절반 이상이 1억원 이하
우기정 회장이 보여준 자료에 따르면 골프가 생각보다 국가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했다. 400만명이라는 골퍼 수치도 그러하거니와, 전국 골프장의 면적을 합하면 4억500만㎡란다. 이 면적은 여의도 땅의 137배, 서울 면적의 60%에 해당하는 넓이다.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 경기 때 10명 중 9명은 한국 여자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국위선양을 하는 스포츠임도 분명하다. 우기정 회장의 얘기가 이어졌다.
“피지라는 자그마한 국가가 요즘 뭘로 유명한 줄 아십니까? 비제이 싱(Vjay Singh)이라는 골프 선수의 국가로 오르내립니다. 피지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비제이 싱은 다 압니다. 비제이 싱이 있을 때랑 없을 때 피지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10배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우리 선수들은 더욱 기특합니다. 선수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저 태극마크 한 번 달아 보는 것이 꿈이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골프를 국가브랜드로까지 키워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 유익하고 쓸모 있는 스포츠인데, 잘못된 인식 때문에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기정 회장의 ‘골프 대중화’ 얘기에도 불구하고, 얘기를 들으면서 ‘골프=호화’라는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지간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회원제골프장 회원권이라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골프회원권은 여전히 부(富)의 상징 아닙니까. 억 단위의 회원권 얘기를 들으면 대중화가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만.
“일부 골프장의 회원권이 비싼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체 골프장 주말 회원권의 절반 이상이 1억원 이하입니다. 10억원 이상은 현재 없고요 남부CC가 10억원 언저리, 남촌CC, 가평베네스트, 이스트밸리가 6억원 정도인데 손에 꼽을 정도예요. 고가 회원권을 가진 사람들의 ‘부자감세’가 걱정된다면 수억 원대의 고가 회원권에 세금을 또 부과하면 되잖습니까. 몇 억짜리 회원권을 몇 개씩 샀다는 사람들의 세금을 추적하고, 또 향후 거기에 대해 세금을 물리면 됩니다. 골프장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징수하면 이 사람이 중산층 시민인지, 골프 선수가 되려는 꿈나무들인지 분간이 안되잖습니까. 골퍼 400만명 중에서 고가(高價)의 회원권을 소지한 사람이 0.1%나 되겠습니까. 1억원 이하짜리 회원권이라고 해도 이것을 소지한 사람이 400만명 중 5%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회원을 동반해야 라운딩할 수 있다, 몇 달 전이 아니면 부킹이 어렵다는 식의 얘기를 들으면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도 골프를 칠 줄은 압니다만.
“골프협회장인 제가 못 가는 곳이 있습니다. 회원 동반 없이 안된다기에, 됐다고 했습니다. 그거는 자기들의 룰인데 협회 차원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부분이 골프를 호화사치라고 여기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미국 베벌리힐스에 산다고 다 때려죽일 놈은 아니잖습니까. 우리의 시민의식도 그 수준은 됐죠.”
―명문골프장 얘기를 하는데, 어떤 곳이 명문입니까.
“명문도 기본적으로 상품성에 대한 얘기예요. 타이거 우즈가 고전한 곳이 명문이 아니고, 대한민국 상위 몇 %가 즐기는 골프장이 명문도 아니고요. 세계적인 골프장 설계자가 짓는다고, 비싼 나무를 즐비하게 심는다고 명문인 건 아닙니다. 흔히 회원권 가격이 비싸면 명문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희소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기들이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곳이라니까 명문이라는 식입니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상업성이 깔렸는데 이런 것에 현혹되거나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명문골프장은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골프장이나 골퍼들이나 어떤 변화가 있어 왔고, 힘든 일 겪고 그 일들을 극복해 내면서 사연이 짙은 곳이면 다 명문입니다. 거기에 골프의 재미까지 극대화하는 코스를 갖췄다면 더할 나위 없는 명문이죠.”
초창기 캐디가 골프채를 머리에 이고 다닌 적도
우기정 회장이 반세기 동안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부친 덕분이었다고 한다. 고(故) 우제봉 대구CC 명예회장은 1965년 친목도모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고양시에 뉴코리아CC를 만들었다. 당시 국내에는 한양컨트리, 관악컨트리, 부산컨트리(9홀) 등 골프장이 몇 개밖에 없었다. 부친이 골프장을 만들다 보니, 연세대 1학년 때 자연스럽게 그 근처를 왔다 갔다 한 것이 계기였다. 부친의 ‘파워빌트’ 골프채를 들고 골프 공사장 옆에서 연습을 했다. 중학교 때 야구선수, 고등학교 때 합기도를 해서 다져진 체력 덕분인지 골프가 마냥 재밌었다는 것이 우 회장의 얘기다.
“그냥 이상하게 재미있더라고요. 영감님 채를 슬쩍 들고 가서 흙바닥에서 공을 쳤는데 얼마나 쳤던지 나중에 클럽 번호가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1966년 골프장 완공 후에는 본격적으로 골프를 했는데 1년 만에 싱글이 됐습니다. 그때 같이 했던 송흥수, 선세호는 나중에 다들 골프 프로가 됐지요. 공이 골프 핀 옆에 팍팍 꽂힐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더라고요.”
부친이 친구들을 대표해 골프장 운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뉴코리아CC를 찾았다. 고 박 대통령은 오전 집무를 시작하기 전에 종종 골프를 즐겼는데, 뉴코리아CC가 청와대에서 거리상 가장 가까웠다. 우기정 회장의 얘기다.
“대통령이 라운딩을 하면 주치의, 선친이 함께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독대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업상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하루는 박 대통령이 ‘자네는 어차피 개척자로 시작한 것 아니냐. 나도 곧 대구 영남대학으로 내려갈 거니까 가서 골프장을 하나 만들게’ 했답니다. 대통령이 내려가라니까, 그냥 선친은 그 얘기만 듣고 대구로 내려간 겁니다. 뉴코리아CC 지분을 동업자인 미도파백화점 박용학(朴龍學) 회장한테 팔고 그 돈으로 혼자 대구컨트리클럽을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가 1970년이었다. 오늘날 우기정 회장이 운영하는 대구CC는 이렇게 탄생했는데, 그때 대구의 상황은 열악했다. 대구·경북을 다합쳐 자가용이 500대뿐이었으니, 골프장에서 골프를 칠 만한 사람이 많을 수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온 우 회장은 자연스럽게 부친이 고전하는 대구CC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1973년인가, 하루는 골프장 총무부장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날 114명이 골프를 치러 왔는데 게임 진행이 안된다는 겁니다. 다들 초보 골퍼니까 공이 이리저리로 날아가서 공 찾느라 게임이 안되는 겁니다(웃음). 전문 캐디는 고사하고 캐디가 어디 있습니까. 인근 마을 이장한테 연락을 해서, 이장이 확성기로 ‘누구누구 골프장으로 올라가세요’ 하면 젊은 여자들이 업장에 왔죠. 직원 부인, 딸, 이랬어요. 전문 캐디가 아니니까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 게 익숙지 않았잖습니까. 나중에 라운딩을 하다 보면 골프채를 머리에 이고서 페어웨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숱했습니다. 그때 사진을 하나 찍어 뒀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습니다(웃음).”
1996년 중국 다롄에 18홀 골프장 지어
이렇게 엉겁결에 시작한 골프장 근무에서 첫 번째로 맡은 임무는 회원 모집이었다. 당시 회원권은 50만원, 70만원 정도였다. 우 회장은 대학시절부터 골프를 치면서 알게 된 인맥을 활용해 회원 모집에 나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에서 마산으로, 다시 부산으로 회원권을 사겠다는 이가 있으면 따라다녔다. 그리고 1977년 2월에 부친의 뒤를 이어 대구CC 대표이사가 됐다. 그런데 대표이사를 맡게 된 계기가 뜻밖이다. 그의 설명이다.
“1970년에 골프장 만들 때 사채를 썼는데 이자가 계속 불어났습니다. 골프장 짓는다고 은행에서 돈 빌려주던 시절이 아니었거든요. 그때는 회사가 부도나면 전부 구속되는건데, 구속되면 선친보다는 젊은 제가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선친을 설득해서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그는 대표이사가 되자마자 ‘무차입 경영’을 선언했다. 그리고 2년 8개월 만인 1979년, 대구CC는 부채를 전부 갚고 부채 없는 골프장이 됐다.
우 회장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모르겠다. 그저 아침인지 밤인지, 서울인지 대구인지 모르고 살다 보니 빚을 갚았다”며 웃었다.
이후 우 회장은 골프장이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9홀을 추가로 만들고, 클럽하우스를 보수하는 등 대구CC의 기틀을 잡아 갔다. 사업을 확대할 즈음에 그는 중국에 눈길을 돌렸다.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막 수교했으나, 양국간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던 때였다. 우 회장은 1988년부터 자석 관계 회사의 일로 중국을 다녔는데, 이곳에 골프장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부지를 샅샅이 훑었지만, 중국 정부로부터 골프산업은 사치성 업종이라 허가를 내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 다롄(大連)에 골프장 입지로 허가받은 곳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중국 관리들에게 골프장 건설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나중에는 보시라이(薄熙來) 다롄시장과도 만났다. 우 회장의 얘기에 따르면, 당시 보시라이 시장은 ‘다롄을 북방의 홍콩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외국인인 그에게 드러내 놓고 말할 정도로 기개와 포부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1996년 4월, 그는 18홀 규모의 중국 다롄CC를 완성했다.
3대째 골프장 가업 잇는 중
그렇게 그가 승승장구만 했던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는 그에게 새로운 시련을 안겨 줬다. 중국 다롄골프장 등을 만든 인산종합건설회사가 IMF의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이 건설사는 수주금액이 1400억원대의 제법 우량 건설회사인지라, 은행권에서 우량기업으로 평가해 제2금융권에서 이 회사 어음을 사들일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거래했던 종금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고, 이들로부터 어음을 사들였던 시중은행들은 한꺼번에 돈을 빼 달라고 요청했다. 우 회장의 얘기다.
“당장 수십억 원의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사태였습니다. 건설회사가 무너지면 대구CC와 다른 사업체 모두 줄줄이 문을 닫아야 했던 터라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게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배신감도 맛봤고, 그만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의 밤을 이어 갔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제 몫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든 해 보자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몇 해를 지냈지요.”
그렇게 은행과 조율해 가며 몇 년간 애쓴 끝에, 그는 다행히 부도위기를 이겨내고 대구CC를 지켜낼 수 있었다. 2대에 걸쳐 한 골프장을 경영하는 사례가 극히 드문 업계에서 대구CC는 오늘도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우기정 회장은 부인 심성은씨와의 사이에 3남을 뒀는데, 장남 태권씨가 대구CC 부사장, 차남 승태씨가 다롄CC 사장, 삼남 승수씨가 베이징 마그네트 공장과 나노바이오시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저는 평생 전공과목이 ‘도전학’이라고 말합니다. 골프도 도전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매력 있습니다. 지적장애우들을 위한 ‘스페셜올림픽’을 처음으로 전국체육대회로 개최한 것도 도전해 보자는 생각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도전할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해 보세요.”
1년 만에 싱글 골퍼가 된 그에게 ‘어떻게 하면 골프를 잘 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연습이지 뭐. 연습하면 다 됩니다(웃음).”⊙
우기정(禹沂楨)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회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았지만 단호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그동안 골프장경영협회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개별소비세(과거 특별소비세) 면제가 논의 중이어서 들떠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뜻밖이었다.
카지노는 세금 5천원, 골프장은 2만원
정부는 지난 9월에 내수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그동안 회원제골프장에 부과해 온 개별소비세를 한시적으로 없애는 세법(稅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골퍼들이 내는 그린피에는 개별소비세 2만1120원이 포함돼 있다. 이를 잠시 풀어 주자는 것이 정부의 생각인데, 정치권은 ‘부자들을 위한 감세(減稅)’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일을 오랫동안 주도해 온 한국골프장경영협회의 우기정 회장은 단호했다.
“개별소비세는 사치성 업종에 부과하는 징벌적 세금입니다. 1976년에 골프를 사치 업종으로 판단해서 부과했는데 52년째 똑같이 매기고 있습니다. 카지노 들어갈 때 세금 5000원 내는데, 골프장 갈 때 2만원 넘게 내는 것이 말이 됩니까. 더구나 스키장에 대해서는 1999년, 또 대중제골프장(퍼블릭골프장)에 대해서는 2000년에 이 세금을 폐지했습니다. 회원제는 부과하고 퍼블릭은 부과하지 않는 것은 조세형평 차원에서도 맞지 않습니다.”
―회원제골프장과 퍼블릭골프장의 상황이 달라서 아닙니까.
“한국리서치에서 2011년에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일반 골프소비자들이 회원제와 대중제를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회원제라서 가고, 대중제라 안 가는 것이 아니라 골프장의 접근성이나 골프코스,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회원제골프장에만 세금을 매겨 왔죠. 더구나 개별소비세를 면제하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세금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국가경제에 도움이 됩니까.
“세수(稅收)감소는 2700억원 정도입니다. 하지만 골프장의 내장객이 늘어서 전국 골프장 매출이 늘어날 겁니다. 골프장 내장객이 늘어나는 것은 2008년에 조세특례제한법이 시행됐을 때를 기준으로 산정했습니다. 이 법에 따라 지방에 있는 회원제골프장의 그린피가 3만1000원 정도 떨어졌을 때 골퍼들이 수도권 대신에 지방으로 향했습니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 볼 때 개별소비세 면제로 전국 골프장 매출이 3800억원 정도 늘 것으로 보입니다. 골프장에 신규 일자리가 생기고, 골프장 인근 식당, 지역 주유소, 콘도미니엄 등 매출이 늘겠죠. 해외 골프를 떠나는 사람들이 국내 골프장을 이용하고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골프 관광객까지 합하면 약 1조5000억원의 기대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세금면제로 인해 4배가 넘는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죠.”
―그린피 2만원 면제해 준다고 해외로 떠나는 골퍼들이 국내로 유턴할까요.
“조세특례제한법이 시행된 이듬해인 2009년에 국내 여행사의 전체 해외골프상품 매출이 전년보다 63% 떨어졌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국내를 찾은 외국 골퍼는 3만5000명에서 5만2000명으로 1년 만에 늘었다고 해요. 세금을 줄여 그린피만 싸진다면 골퍼들이 굳이 해외로 떠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세금면제라는 1차 혜택을 골퍼들이 받으니 부자감세 얘기가 나올 법하지 않습니까.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했는데 회원제골프장 이용자의 70~80%가 회원권이 없는 중산층이랍니다. ‘골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항목에서는 ‘사치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답한 이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대부분이 비용부담을 느껴서 골프를 못 친다고 했습니다. 스크린골프장이 늘면서 월소득이 적은 계층으로까지 골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잠재적 골퍼들인데 이런 사람들까지 싸잡아 부자라고 하고, 부자를 위한 세금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죠.”
남서울CC, 그린피 27만원 중 세금이 11만원
우기정 회장은 손에 여러 장의 데이터 수치를 들고 있었다. 사전에 질문지를 건넨 것도 아닌데, 질문을 할 때마다 리서치 회사의 조사, 언론보도 등을 일일이 보여주며 즉각 답변했다. 그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개별소비세를 면제한다 쳐도, 주말 골프장 그린피가 20만원이 넘으면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지방의 그린피는 평균 9만~12만원인데 서울 부근은 여전하죠. 남서울CC가 일요일에 27만원을 받는다기에 당장 전화했습니다. ‘너그들 아직도 그래 받나. 미친 거 아이가’ 했는데 골프장에서 볼멘 소리를 합니다. 그린피 중에서 개별소비세(2만1200원) 외에 재산세가 9만원이고, 이리저리 떼면 어쩔 수가 없다는 겁니다. 골프에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붙습니다. 어떤 산업보다 무거운 중과세를 하고, 재산세는 일반기업의 16배예요.”
―그린피도 그렇지만 카트비 내고, 캐디피까지 내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부담이 큰데요.
“그렇잖아도 캐디 선택제를 실시하라고 골프장 대표들에게 말했습니다. 돈 내고 골프 치는 사람 입장에서야 카트비며 캐디피가 얼마나 아깝습니까. 그 부분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사실 예전처럼 캐디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철저하게 친환경적으로 골프장을 운영하고 골퍼들의 입장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이 경영자들의 몫이죠.”
―골프장들이 스스로 운동의 저변확대를 위해 세금과 별도로 그린피를 조금씩 내릴 수는 없을까요.
“골프장도 다른 사업체처럼 수입과 운영경비를 계산해서 그린피를 책정합니다. 생각처럼 떼돈을 버는 업종이라면 오늘날 왜 저렇게 많은 골프장이 경영난에 시달리겠습니까. 회원제골프장의 80% 이상이 적자입니다. 법정관리 신청한 곳이 15곳, 골프장 공사를 중단한 곳이 60여 군데예요. 골프장이 망하면 좋을까요. 일자리가 줄고 지역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고 연관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갈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상황, 골프장 개수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그린피는 10만~12만원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세금만 줄여 주면 가능합니다. 골프장에 부과하는 재산세를 절반 줄이면 국가경제가 활성화할 겁니다. 정부에서 세금을 줄여 주면 업장들은 당장 오늘부터라도 그 세금만큼 그린피를 내릴 겁니다.”
국내 골프산업 규모 33조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부자감세 논란에 휘말릴 텐데요.
“하나의 발전과정이자 역사라고 봅니다. 지금도 한 2시간만 움직이면 저렴하게 골프 칠 수 있는 골프장이 많습니다. 골프장끼리 경쟁적으로 그린피를 내려서 골퍼들의 선택권이 늘었죠. 우리나라 골프 선수들이 벌어들인 외화가 2011년에 445억원입니다.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할 때 경제효과가 연간 5000억원이에요. 체육과학연구원에 따르면 양용은(梁容銀) 선수가 2009년 미국프로골프협회(USPGA)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역전승을 거둔 우승효과가 1조원이라고 합니다. 주니어 선수만 5000명이 넘는데 이제는 골프를 산업으로 봐야죠.”
―어떻게 말입니까.
“골프클럽 세트를 100만원으로 치고 골퍼 400만명으로 계산하면 연간 4조원이죠. 골프공, 골프신발, 골프의류를 포함해 국내 골프산업 규모가 33조원입니다. 2011년 국민총생산의 2.7%예요. 여기에 희소식은 여전히 골프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산업이라는 점입니다. 미국 골프채의 상당수가 국산 부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받고 있습니다. 훌륭한 골프선수가 있고, 골프인구가 충분한데 제대로 된 국산 브랜드 골프 클럽 하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품을 생산할 여력이 없거나 기술력이 모자라서겠습니까? 정부가 골프산업을 제대로 인식하고 지원을 해 준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중국도 골프장 영업세 50% 내려
우기정 회장은 골프장 대표들의 모임인 골프장경영협회장이기에 앞서 소위 골프에 대해 한마디 할 법한 위치다. 우선 48년째 골프를 치고 있는 골퍼이고, 부친인 우제봉(禹濟鳳) 대구CC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2대(代)째 대구컨트리클럽을 경영하는 오너다. 베스트 스코어는 언더파 66타, 홀인원은 2번 했다. 골프가 그의 삶 전부다. 스스로 ‘골생골사(Golf生Golf死)’라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그에게 세금 이외에 골프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을 물었다.
―말씀을 들어 보면, 우리나라에 골프장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전국 500개의 골프장 중에서 80군데가 주인이 없어서 왔다 갔다 합니다. 80개 중 절반은 시행사들이 뛰어들었다가 어려워진 케이스입니다. 시행업자 중에서 골프장 경영에 성공한 사람은 몇 안되거든요. 재벌그룹이 몇몇 골프장을 직접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골프장은 지형에 따라 다른데 18홀을 짓는데 200억~700억원 정도가 듭니다. 재벌그룹들이 시행사에서 수주를 받아 골프장 공사를 했는데 공사 대금을 못 받은 겁니다. 골프장을 살 사람은 없고, 그러다 보니 재벌이 직접 운영에 나선 케이스가 있죠. 외부에서는 재벌이 골프장까지 한다고 떠들어대는데 선후(先後)가 다른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향후 골프의 성장가치 등을 감안할 때 500개가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 얼마 전 개천절에 국회의원이 골프를 치는데 기자가 취재를 가고, 또 기자가 취재 왔다고 골프 치던 의원들이 운동을 중단했다고 합디다. 그 얘기 들으면서 씁쓸하데요. 골프가, 치다가 들켰다고 중단할 정도로 이상한 스포츠입니까. 어떤 공기업 사장은 ‘골프 금지령’을 내리면서 뿌듯해합니다. 테니스 치러 가면 괜찮고 골프장 가면 안되는 겁니까. 도대체 왜 이럴까 고민해 봤습니다. ‘골프=호화사치’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더라고요. 골프 치면 사치하는 것으로 오해받으니까 아예 하지 말라는 것, 또 골프를 치면 접대 받는다는 오해를 받을 테니 원천봉쇄 차원에서 하지 말라는 얘기 같습니다.
골프는 오는 2016년 올림픽에서 정식으로 채택한 스포츠입니다. 중국은 국가 전략 스포츠로 육성하려고 하고, 골프장 영업세를 50% 인하했습니다. 일본은 지방세인 토지이용세마저 폐지할 조짐인데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골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논의를 회의실에서 하면 됐지, 굳이 골프장에 가서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의 이슈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건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제일 큰 골프토너먼트를 메모리얼데이에 합니다.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 덕분에 내가 골프를 칠 수 있다고 고맙게 생각하고, 경기를 한 이후에 자기들끼리 기부를 합니다. 50달러, 100달러씩 모아서 유족들에게 전달하고, 메모리얼 기념사업에 기부하죠. 우리 식으로 하면 현충일에 무슨 골프냐고 하겠지만 생각의 차이입니다. 선순환할 수 있는 쪽으로 사고해야죠.”
골프장 회원권 절반 이상이 1억원 이하
우기정 회장이 보여준 자료에 따르면 골프가 생각보다 국가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했다. 400만명이라는 골퍼 수치도 그러하거니와, 전국 골프장의 면적을 합하면 4억500만㎡란다. 이 면적은 여의도 땅의 137배, 서울 면적의 60%에 해당하는 넓이다.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 경기 때 10명 중 9명은 한국 여자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국위선양을 하는 스포츠임도 분명하다. 우기정 회장의 얘기가 이어졌다.“피지라는 자그마한 국가가 요즘 뭘로 유명한 줄 아십니까? 비제이 싱(Vjay Singh)이라는 골프 선수의 국가로 오르내립니다. 피지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비제이 싱은 다 압니다. 비제이 싱이 있을 때랑 없을 때 피지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10배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우리 선수들은 더욱 기특합니다. 선수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저 태극마크 한 번 달아 보는 것이 꿈이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골프를 국가브랜드로까지 키워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 유익하고 쓸모 있는 스포츠인데, 잘못된 인식 때문에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기정 회장의 ‘골프 대중화’ 얘기에도 불구하고, 얘기를 들으면서 ‘골프=호화’라는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지간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회원제골프장 회원권이라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골프회원권은 여전히 부(富)의 상징 아닙니까. 억 단위의 회원권 얘기를 들으면 대중화가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만.
“일부 골프장의 회원권이 비싼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체 골프장 주말 회원권의 절반 이상이 1억원 이하입니다. 10억원 이상은 현재 없고요 남부CC가 10억원 언저리, 남촌CC, 가평베네스트, 이스트밸리가 6억원 정도인데 손에 꼽을 정도예요. 고가 회원권을 가진 사람들의 ‘부자감세’가 걱정된다면 수억 원대의 고가 회원권에 세금을 또 부과하면 되잖습니까. 몇 억짜리 회원권을 몇 개씩 샀다는 사람들의 세금을 추적하고, 또 향후 거기에 대해 세금을 물리면 됩니다. 골프장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징수하면 이 사람이 중산층 시민인지, 골프 선수가 되려는 꿈나무들인지 분간이 안되잖습니까. 골퍼 400만명 중에서 고가(高價)의 회원권을 소지한 사람이 0.1%나 되겠습니까. 1억원 이하짜리 회원권이라고 해도 이것을 소지한 사람이 400만명 중 5%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회원을 동반해야 라운딩할 수 있다, 몇 달 전이 아니면 부킹이 어렵다는 식의 얘기를 들으면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도 골프를 칠 줄은 압니다만.
“골프협회장인 제가 못 가는 곳이 있습니다. 회원 동반 없이 안된다기에, 됐다고 했습니다. 그거는 자기들의 룰인데 협회 차원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부분이 골프를 호화사치라고 여기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미국 베벌리힐스에 산다고 다 때려죽일 놈은 아니잖습니까. 우리의 시민의식도 그 수준은 됐죠.”
―명문골프장 얘기를 하는데, 어떤 곳이 명문입니까.
“명문도 기본적으로 상품성에 대한 얘기예요. 타이거 우즈가 고전한 곳이 명문이 아니고, 대한민국 상위 몇 %가 즐기는 골프장이 명문도 아니고요. 세계적인 골프장 설계자가 짓는다고, 비싼 나무를 즐비하게 심는다고 명문인 건 아닙니다. 흔히 회원권 가격이 비싸면 명문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희소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기들이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곳이라니까 명문이라는 식입니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상업성이 깔렸는데 이런 것에 현혹되거나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명문골프장은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골프장이나 골퍼들이나 어떤 변화가 있어 왔고, 힘든 일 겪고 그 일들을 극복해 내면서 사연이 짙은 곳이면 다 명문입니다. 거기에 골프의 재미까지 극대화하는 코스를 갖췄다면 더할 나위 없는 명문이죠.”
초창기 캐디가 골프채를 머리에 이고 다닌 적도
우기정 회장이 반세기 동안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부친 덕분이었다고 한다. 고(故) 우제봉 대구CC 명예회장은 1965년 친목도모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고양시에 뉴코리아CC를 만들었다. 당시 국내에는 한양컨트리, 관악컨트리, 부산컨트리(9홀) 등 골프장이 몇 개밖에 없었다. 부친이 골프장을 만들다 보니, 연세대 1학년 때 자연스럽게 그 근처를 왔다 갔다 한 것이 계기였다. 부친의 ‘파워빌트’ 골프채를 들고 골프 공사장 옆에서 연습을 했다. 중학교 때 야구선수, 고등학교 때 합기도를 해서 다져진 체력 덕분인지 골프가 마냥 재밌었다는 것이 우 회장의 얘기다.
“그냥 이상하게 재미있더라고요. 영감님 채를 슬쩍 들고 가서 흙바닥에서 공을 쳤는데 얼마나 쳤던지 나중에 클럽 번호가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1966년 골프장 완공 후에는 본격적으로 골프를 했는데 1년 만에 싱글이 됐습니다. 그때 같이 했던 송흥수, 선세호는 나중에 다들 골프 프로가 됐지요. 공이 골프 핀 옆에 팍팍 꽂힐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더라고요.”
부친이 친구들을 대표해 골프장 운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뉴코리아CC를 찾았다. 고 박 대통령은 오전 집무를 시작하기 전에 종종 골프를 즐겼는데, 뉴코리아CC가 청와대에서 거리상 가장 가까웠다. 우기정 회장의 얘기다.
“대통령이 라운딩을 하면 주치의, 선친이 함께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독대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업상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하루는 박 대통령이 ‘자네는 어차피 개척자로 시작한 것 아니냐. 나도 곧 대구 영남대학으로 내려갈 거니까 가서 골프장을 하나 만들게’ 했답니다. 대통령이 내려가라니까, 그냥 선친은 그 얘기만 듣고 대구로 내려간 겁니다. 뉴코리아CC 지분을 동업자인 미도파백화점 박용학(朴龍學) 회장한테 팔고 그 돈으로 혼자 대구컨트리클럽을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가 1970년이었다. 오늘날 우기정 회장이 운영하는 대구CC는 이렇게 탄생했는데, 그때 대구의 상황은 열악했다. 대구·경북을 다합쳐 자가용이 500대뿐이었으니, 골프장에서 골프를 칠 만한 사람이 많을 수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온 우 회장은 자연스럽게 부친이 고전하는 대구CC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1973년인가, 하루는 골프장 총무부장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날 114명이 골프를 치러 왔는데 게임 진행이 안된다는 겁니다. 다들 초보 골퍼니까 공이 이리저리로 날아가서 공 찾느라 게임이 안되는 겁니다(웃음). 전문 캐디는 고사하고 캐디가 어디 있습니까. 인근 마을 이장한테 연락을 해서, 이장이 확성기로 ‘누구누구 골프장으로 올라가세요’ 하면 젊은 여자들이 업장에 왔죠. 직원 부인, 딸, 이랬어요. 전문 캐디가 아니니까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 게 익숙지 않았잖습니까. 나중에 라운딩을 하다 보면 골프채를 머리에 이고서 페어웨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숱했습니다. 그때 사진을 하나 찍어 뒀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습니다(웃음).”
1996년 중국 다롄에 18홀 골프장 지어
이렇게 엉겁결에 시작한 골프장 근무에서 첫 번째로 맡은 임무는 회원 모집이었다. 당시 회원권은 50만원, 70만원 정도였다. 우 회장은 대학시절부터 골프를 치면서 알게 된 인맥을 활용해 회원 모집에 나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에서 마산으로, 다시 부산으로 회원권을 사겠다는 이가 있으면 따라다녔다. 그리고 1977년 2월에 부친의 뒤를 이어 대구CC 대표이사가 됐다. 그런데 대표이사를 맡게 된 계기가 뜻밖이다. 그의 설명이다.
“1970년에 골프장 만들 때 사채를 썼는데 이자가 계속 불어났습니다. 골프장 짓는다고 은행에서 돈 빌려주던 시절이 아니었거든요. 그때는 회사가 부도나면 전부 구속되는건데, 구속되면 선친보다는 젊은 제가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선친을 설득해서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그는 대표이사가 되자마자 ‘무차입 경영’을 선언했다. 그리고 2년 8개월 만인 1979년, 대구CC는 부채를 전부 갚고 부채 없는 골프장이 됐다.
우 회장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모르겠다. 그저 아침인지 밤인지, 서울인지 대구인지 모르고 살다 보니 빚을 갚았다”며 웃었다.
이후 우 회장은 골프장이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9홀을 추가로 만들고, 클럽하우스를 보수하는 등 대구CC의 기틀을 잡아 갔다. 사업을 확대할 즈음에 그는 중국에 눈길을 돌렸다.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막 수교했으나, 양국간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던 때였다. 우 회장은 1988년부터 자석 관계 회사의 일로 중국을 다녔는데, 이곳에 골프장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부지를 샅샅이 훑었지만, 중국 정부로부터 골프산업은 사치성 업종이라 허가를 내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 다롄(大連)에 골프장 입지로 허가받은 곳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중국 관리들에게 골프장 건설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나중에는 보시라이(薄熙來) 다롄시장과도 만났다. 우 회장의 얘기에 따르면, 당시 보시라이 시장은 ‘다롄을 북방의 홍콩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외국인인 그에게 드러내 놓고 말할 정도로 기개와 포부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1996년 4월, 그는 18홀 규모의 중국 다롄CC를 완성했다.
3대째 골프장 가업 잇는 중
그렇게 그가 승승장구만 했던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는 그에게 새로운 시련을 안겨 줬다. 중국 다롄골프장 등을 만든 인산종합건설회사가 IMF의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이 건설사는 수주금액이 1400억원대의 제법 우량 건설회사인지라, 은행권에서 우량기업으로 평가해 제2금융권에서 이 회사 어음을 사들일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거래했던 종금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고, 이들로부터 어음을 사들였던 시중은행들은 한꺼번에 돈을 빼 달라고 요청했다. 우 회장의 얘기다.
“당장 수십억 원의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사태였습니다. 건설회사가 무너지면 대구CC와 다른 사업체 모두 줄줄이 문을 닫아야 했던 터라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게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배신감도 맛봤고, 그만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의 밤을 이어 갔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제 몫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든 해 보자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몇 해를 지냈지요.”
그렇게 은행과 조율해 가며 몇 년간 애쓴 끝에, 그는 다행히 부도위기를 이겨내고 대구CC를 지켜낼 수 있었다. 2대에 걸쳐 한 골프장을 경영하는 사례가 극히 드문 업계에서 대구CC는 오늘도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우기정 회장은 부인 심성은씨와의 사이에 3남을 뒀는데, 장남 태권씨가 대구CC 부사장, 차남 승태씨가 다롄CC 사장, 삼남 승수씨가 베이징 마그네트 공장과 나노바이오시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저는 평생 전공과목이 ‘도전학’이라고 말합니다. 골프도 도전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매력 있습니다. 지적장애우들을 위한 ‘스페셜올림픽’을 처음으로 전국체육대회로 개최한 것도 도전해 보자는 생각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도전할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해 보세요.”
1년 만에 싱글 골퍼가 된 그에게 ‘어떻게 하면 골프를 잘 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연습이지 뭐. 연습하면 다 됩니다(웃음).”⊙
